차 례 (1970년 10월호)
설 교 편
1. 주님의 선택과 역사 (요15:16~20)
2. 메시야를 영접하는 인격 (요1:35~51)
3. 복음의 일꾼 된 바울 (골1:23~29)
4. 사랑과 인격 (요일3:13~19)
5. 말씀의 증거와 흑암 세력 (사8:16~22)
6. 인 맞는 이스라엘이 되자 (계7:2~4)
7.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사49:1~7)
8.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계18:4~10)
9. 기독교 난국 돌파의 위력 (계12:1~6)
10. 인생의 두 가지 형체 (고전15:44~49)
1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서 4:16~21)
12. 스스로 속는 자가 누구냐 (요7:37~53)
13. 백마 탄 자의 승리와 천년 왕국 (계19:11~20:3)
14.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되자 (딤전3:8~13)
장년 공과편 - 비유
제1과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 (마13:17~23)
제2과 신앙의 역사를 비유함 (마13:31~35)
제3과 심판에 대한 비유 (마13:36~43)
제4과 시대적인 역사를 비유함 (마13:44~50)
논 설 편
1. 영계 혼란을 벗어난 말씀의 종
2. 영계 혼란을 수습할 길은 무엇인가
3. 반공 투쟁과 종교인
4. 과학 발전과 기독교의 사명
5. 근심 많은 성도의 가정
신 앙 문 답
1. 삼위 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 기독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4. 부활성도와 변화성도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5. 중생과 성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6.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특 집
1.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도
2. 시련 끝에 감사할 말씀
3. 9.24를 맞이하여 그날을 회상하면서
4. 알리는 말씀
※승복 인쇄소
설 교 편
주님의 선택과 역사
- 요 15:16~20 -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인생 자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이니, 이 역사를 방해할 자는 전혀 없다. 주님께서 택한 종을 시련을 받게 하는 것도 역사하기 위한 방법이요, 핍박을 만나게 하는 것도 역사를 하기 위한 방법이니, 택함 받은 종으로는 아무 것도 염려할 것 없고 두려워 할 것도 없이 순종할 것 뿐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 예지와 예정 아래서 택한 것이니 주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왕래하였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택한 자가 없으므로 그들은 오히려 메시야를 반대하는 운동에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요10:26~31). 아무리 인간이 볼 때는 거룩한 자 같고, 진실한 자 같지만 택한 자가 아닌 자들은 중심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형식을 따르게 된다. 이제 택한 자에 대한 주님의 역사를 본문에서 읽으면서 알아보기로 하자.
1. 택하여 세움 (16상반절)
주님께서 택하여 세우는 일은, 택한 자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우는 것이니 택함을 입는 자도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일로 되는 것이다. 벳세다 동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자기네가 사도가 되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역사라는 것은 종 된 사람이 어떤 계획이나 방법을 세운 것이 아니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므로 오히려 자기 사명을 모르고 떠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베드로가 부름을 받을 적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하고 떨었던 것이다(눅5:8).
사람이라는 것은 언제나 주의 일을 할 때에 자기의 어떤 욕망이나 기대를 가진다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고 아무런 소망 없는 자리에서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택하신 하나님 편에서 그를 찾아와서 강권으로 깨우쳐 주고 붙들어서 쓰는 것이니, 누구든지 스스로 섰다 하는 사람은 자칭 선지가 될 것이다.
금일에 와서 아무런 체험이 없이 신학을 나오고 시취를 받고 주님께로부터 특명을 받은 일이 없이 나선 사람에게는 아무런 주의 역사가 없는 것이니, 주의 종이 되는 자는 주님이 채워 주는 체험을 확실히 받은 자가 되어야만 참으로 택한 종이라고 보게 된다. 어떤 종이 자기는 아무런 체험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떤 큰 체험을 받고 나온다는 것을 오히려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2. 기도의 응답이 있음 (16하반절)
택한 종의 기도라는 것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이, 강권으로 시키는 일이 있는데 심지어 징계까지 하는 일이 있다. 어떠한 종이 기도를 하기 싫어하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징계가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께서 택한 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택한 종이라는 것은 무엇을 내가 얻겠다고 구하므로써 주님이 준다는 것보다도,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기도할 목적을 알려주는 일까지 있다.
우리의 참된 기도라는 것은 억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이 무시로 되는 것인데 이것을 성령이 시키는 기도라고 보게 된다(롬8:27).
택한 종의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기도를 항상 하게 되는 일이요.
② 중심에 불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일이요.
③ 구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일이므로 뜻밖에 더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종이나 택한 종은 자기가 기도하지 못하던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자기가 메시야가 오면 수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도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하려고 기도했는데 이루어지는 일은 다른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택한 종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의 앞으로 될 일을 모르는 것이니 만큼 구하는 바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더 큰 것이 이루어지는 일이 열매가 더 많아지는 택한 종의 역사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그 양심에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할 때 그는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할 때에 3천명이 회개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3. 서로 사랑하게 된다 (17~20)
택한 종이 된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일인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오거나 심지어 옥중에서도 불 속에서도, 환란 속에서도 서로 변치 않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택한 종들의 사랑의 단체라는 것이다. 우리 사랑이라는 것은 주의 손에 붙들린 종으로서 사랑의 도구가 되다 보니 억지가 있을 수 없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단체다. 금일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동역자의 잘못을 흠잡아 보려는 마음이라는 것은 성령이 떠난 사단의 회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랑이라는 것은 세상과는 원수가 되는 사랑이다. 왜냐하면 세상과 싸우는 단체이니 세상이 미워하는 것이다.
금일에 종들이 세상과 타협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택함 받은 종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주님이 택한 증거라는 것을 본문에 말했다. 주께서 싸우던 싸움을 택한 종이 싸우는 것이니 우리는 끝까지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택한 종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특색은 택한 종의 역사이다. 만일 택한 종이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세상보다 다른 점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세속화된 교회로서 세상에 밟힌 바 되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가 될 것이로되 택함을 받은 종으로 말미암아 되는 일은 세상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받고 압박을 받지만 초인간적인 역사가 나타나므로 오히려 세상 사람들까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종 앞에 다 굴복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기도 응답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일이니 타협적인 노선에는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될 것은 택함 받은 종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시야를 영접하는 인격
- 요 1:35~51 -
하나님께서 야곱의 씨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메시야가 올 것을 빠짐 없이 가르쳤으므로 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믿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보다도 이스라엘 나라에 메시야가 온다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큰 자랑이 되었던 것이다. 만왕의 왕 메시야가 자기 나라에 오면 그들은 세계에 으뜸가는 나라가 되고 세계 열방을 다 통일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민족을 상대하지 않고 자기네만이 메시야를 영접할 민족이라는 것을 믿는 동시에 극도로 교만한 위치에서 남을 무시하는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거리에 많은 사람이 거룩한 예복을 입고 왕래하지만 세례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는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이 메시야를 영접했던 것이다. 어찌하여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세례요한의 전도를 받지 않고 이방 갈릴리에 있는 불학무식한 어부들이 받았던가 하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할 일이다.
1. 마음이 겸손한 자들이다 (35~42)
언제나 겸손한 자는 영안이 밝고 교만한 자는 어두운 것이다.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할 때에 교만한 인간들은 오히려 이단시하고 대적했지만, 기도의 사람으로 메시야를 고대하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볼 때에 영적으로 알려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 안드레 이 사람들은 비록 무식하고 빈곤한 생활을 하지만 메시야를 고대하고 기도하던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한 일이라고 본다. 주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그들을 만날 때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었던 것이다.
언제나 신령한 세계를 체험하려면 부유한 생활보다도 빈곤한 생활에서, 호화로운 자리보다도 비천한 자리에서, 화려한 도시보다도 조용한 곳에서, 많은 무리보다도 작은 무리라도 합심하는 곳에서, 영계 운동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 양심에서 산명수려(山明水麗)한 갈릴리 해변을 찾아 작은 동네의, 작은 집에, 적은 무리가 모여서,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들을 만날 때에 직접 따라 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던 신앙가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런 믿음이 없고 합당치 못한 사람을 모르고 택한 것이 아니고 알고 택할 때에 가룟 유다 외에는 다 승리의 왕권을 받게 되었다. 가룟 유다를 택한 것도 말씀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메시야를 영접할 자격은 성신을 충만히 받지는 못했으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날 그날에 하나님과 그의 양심과에 접촉되는 생활에서 메시야를 영접했던 것이다.
2. 성서적인 사람이다 (43~45)
언제나 성경을 많이 읽고 사모하는 생활이 없이 도저히 영계 생활은 보존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성경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에 메시야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되, 동정녀 몸에 탄생한다는 것(사7:14), 베들레헴에 난다는 것(미5:2), 갈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사9:1~2), 이와 같은 성경을 절실히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메시야의 역사는 예루살렘에서가 아니고 갈릴리 해변에서부터 날 것을 특히 깨닫고 지금 우리가 재림의 주가 올 때는 동방에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듯이, 메시야가 올 때에 갈릴리 해변에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볼 때에 자기네가 기다리던 메시야인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벳세다 동네의 어촌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신앙 양심에서 두텁게 사귀어졌던 친구들이다.
이 친구야말로 고락을 같이 겪는 영원한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많은 친구가 있지만 이와 같은 친구는 역사적으로 한 페이지가 되는 친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때에 동방에서 나오는 선구자의 한 단체가 나오는 것도, 사도와 같이 막역한 친구의 한 무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신앙적인 양심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친구가 메시야를 맞이하던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친구와 같은 인연이 있게 될 것이다.
3.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46~51)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메시야를 영접할 참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은 참 이스라엘을 찾기 위하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을 찾아갔던 것이다. 모든 바리새교인들은 간사한 무리들이므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권리를 다투며 싸우는 무리였던 것이다. 이들도 메시야를 고대했던 것은 학과적으로 배우고 교리적으로 남을 가르치고 베들레헴에 난다는 것을 마2:4~6에 말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신앙은 교리만이 아니요, 양심이라고 보게 된다. 아무리 이들이 학과적으로 가르치는 무리들이나 한 교권과 명예의 감투를 쓰고 세상 안락에 마음이 어두워진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찾아올 때에 그들은 오히려 헤롯과 같이 왕으로 나신 메시야를 죽이는 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가 아니고 전부 간사한 거짓 선지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책망했던 것이다. 예수님도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까지 했던 것이다(요8:44).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간사한 정욕이 있는 사람은 죽은 영이니 자동적으로 마귀의 자식이 된다. 신앙은 간사함이 없는 양심에서라야 이스라엘이라는 영적 사람이 될 것이다. 나다나엘은 비록 어촌에 사는 사람이지만, 날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보았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은밀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양심의 사람이라야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서 메시야를 영접한 사도들이요, 또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동방 땅 끝의 종들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갈릴리 벳세다 사람은 은혜시대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선구자가 되었고, 동방 땅 끝에 해변의 종들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진리 운동의 선구자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그러므로 갈릴리 바다 옆의 어부들은 부활성도의 선구자요, 동방 땅 끝에 있는 종들은 변화성도의 선구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영접할 자의 자격과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의 자격을 논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동방 땅 끝에 종들이 일어남으로써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고 나간다고 했고, 사41:8~25을 보면 분명히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라고 했고, 사9:1~2을 보면 갈릴리 바다 해변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이방의 빛이 된다고 말했으니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은혜시대 역사라면 이방 세력을 짓밟고 나가는 역사는 진노의 날에 남은 변화성도의 역사라고 본다. 그러므로 언제나 시대가 바뀔 때에 종은 선구적인 자격을 가져야 된다.
결 론
율법시대가 끝이 나고 은혜시대가 이루어질 때에 메시야를 영접한 사도의 인격은 율법시대의 영계에 선구자로서 은혜시대를 이루는 일에 처음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복되고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가 된 일과 사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세계 만방에 기독교가 대 승리를 보게 된 일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진 자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복음의 일꾼 된 바울
- 골 1:23~29 -
기독교를 핍박하고 훼방하면서 나섰던 사울이 복음의 일꾼 된 바울로 나서게 된 것은 세계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의 처음 열매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를 회개시켜서 썼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의 특징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할 때에 기독교에 이런 역사가 없다면 세계 인류를 마귀 권세 아래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일꾼 된 기독교 역사의 표준적인 일이다. 이제 복음의 일꾼 된 바울에 대하여 그가 일꾼 된 자격은 어떠한 자격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배우는 동시에 우리가 따라 가야 할 선구자가 되는 바울이다.
1. 우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했다 (24)
복음의 자체는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받은 고난을 기뻐했으니 복음의 일꾼도 이 사상을 가지게 된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사람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뻐했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꾼이라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그 목적을 완전히 바로 두지 못한 원인일 것이다.
금일에 어떤 종이 양떼를 위하여 괴로움을 받는 것을 회피하려는 것은 우리의 선구자 바울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쓸 때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쓴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깨달을 때 자기가 구원받은 복음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당해도 기뻐한다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다. 참된 기쁨이라는 것은 이것이라고 보게 된다.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그 자체가 복음의 일꾼 된 마음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들어 쓰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올 때에 기쁨으로 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참과 거짓은 자동적으로 판명된다. 그러므로 미혹하는 선지라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화평으로 말하고 유익이 없으면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이 거짓 선지의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미3:5). 누구든지 일꾼 된 자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니 이러한 것이 없는 자라면 자동적으로 삯꾼이 될 것이다(미3:11).
2. 하나님 말씀을 이루려고 함 (25~27)
복음이란 자체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대로 행하는 일이 복음이니 그 복음은 자체가 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도성인신하여 나타난 일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은 복음이 될 수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 한 분이 나타나므로 그 목적은 유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 세계를 위한 복음인 것을 깨달을 때 이 복음을 모든 이방 사람들이 알게 하므로 그들이 살게 될 것을 생각할 때에 그는 전하지 않으면 화가 오리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방 사람은 다 영들이 죽었는데, 내가 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괴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밤낮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비밀이니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억울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때나 인간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요, 모르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려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로만이 된다는 것을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일에 종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될 것이다. 어떤 종이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을 목적하지 않고, 자기의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면 그 자체가 복음의 대적이 되는 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복음은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어느 인간이 막을 자가 없다는 담력을 가지고 나서야만 될 것이다.
3. 남을 완전케 하려는 것이다 (28~29)
완전이라는 것은 복음으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남의 단점을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음과는 관계가 먼 자이다. 언제나 복음 안에서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완전케 될 것을 믿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과오를 말하지 않고, 언제나 능력의 역사를 따라서 완전해진다는 것만을 믿고 힘을 다하여야만 될 것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복음을 따라서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겠다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니 능력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능력으로써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완전케 해 주실 것을 믿고, 남의 실수를 볼 때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이다. 아무리 수고한다 하여도 남을 완전케 해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결 론
복음의 일꾼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가 복음에서 일꾼이 되어 가지고 나서야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이 내게 완전한 체험이 없다는 사람은 그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인격이니 복음을 전할 자격을 가진 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반대하던 자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 운동의 표준이 되는 일이다.
사랑과 인격
- 요일 3:13~19 -
인생이라는 것은 사랑이 있으므로 인격이 향상되고 사랑이 없으므로 인격이 타락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사랑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요일4:8).
사랑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요일3:14).
사랑이 없는 자는 빛이 없다(요일2:11).
그러므로 사랑은 인격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그 사랑을 남에게 줄 자격도 있다. 인생의 지식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오히려 타락이 된다.
이제 사랑과 인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랑이 있어야 생명으로 들어가는 자가 된다 (13~14)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사람을 완전케 하기를 원하시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생명으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영생은 바라보면서도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인격은 영생할 생명을 받은 자가 아니고 영생을 바라는 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바리새교인에게 책망할 때에 너희는 하늘에 오를 듯 싶으냐 음부에 떨어지리라고 했던 것이다.
형제를 사랑함이 없는 자에게는 성경을 읽어도 기도를 하여도 아무런 열매가 없는 생활이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이루어지기 위한 약속이요, 기도는 사랑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인데,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종교라는 것은 오히려 그 인격을 가증하게 만드는 폐단이 될 것이다.
2. 사랑은 용사 인격을 이룬다 (15~16)
온 세계를 점령할 왕권을 받을 인격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이다. 사람이 볼 때에 약한 것 같으나 강한 자는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요구하는 인격은 형제를 위하여 죽는 것을 마땅히 아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어부의 한 사람인 요한이 예수님 다음 가는 지위를 받게 되는 것은 본문의 말씀대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것은 동물에 불과한 인격이요, 약한 형제를 구원해 주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것은 예수와 같은 인격이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은 전부가 이러한 사상을 가진 자에게 소유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형제의 것을 탐내는 욕심이 있는 것은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밥 먹는 벌레요,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는 하늘에 속한 영생체를 이루는 변화 승천이 있을 것이다.
3. 사랑하는 자는 주 앞에 굳센 자가 된다 (18~19)
사람의 인격은 사람 앞에 굳센 자 보다도 주 앞에 굳센 자가 되어야만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 주 앞에 굳센 자가 될 때에 이것은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인격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홀로 있을 적에 주님 앞에 굳세게 부르짖는 인격이라면 이 사람은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인격이 될 것이다. 가장 강한 인격은 주 앞에 굳센 자라고 보게 된다. 만일 어떤 종이 사람 앞에는 자기 배짱을 부려도 주 앞에서 굳센 인격으로 강하게 부르짖는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사람 앞에 자기 인격을 세우려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자에게 말씀할 때에 너희는 큰 자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신 것은 섬기려 하고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고 함이라고 말했다(막10:43~45). 예수님도 죄인을 대할 때에 겸손히 대해 주셨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땀이 흘러 피가 되기까지 간구했던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하고 고생스러운 일이 와도 주님 앞에 굳세게 서서 진리를 믿고 나간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다 이루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이 주 앞에서 굳세게 믿고 나가느냐 하는 것을 시험해 볼 때도 있다.
결 론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과에, 인간과 인간과의 온전을 이루는 생명의 빛이니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과도 완전한 교제를 할 수 있고 참 사랑이 있는 자라야 참된 성도의 교제를 가지므로 완전한 교회의 기둥이 되는 인격을 이룰 것이다.
말씀의 증거와 흑암 세력
- 사 8:16~22 -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증거하는 종과 흑암과의 대립을 시켜 놓고 말씀 증거가 바른 자는 흑암을 이기게 하고 말씀 증거가 바르지 못한 자는 흑암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을 공의롭게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재앙이 북방으로 올 시기에 종된 자가 받는 심판을 중심하여 말씀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북방으로 재앙이 오고 그 재앙 속에서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환란이며 심판인 동시에 말씀을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모든 결말을 맺게 하는데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1. 여호와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심 (16~18)
아무리 북방으로 환란이 온다해도 북방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만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를 승리하도록 하신다(13). 하나님은 심판기에 북방으로 환란이 오게 하는 것은 당신의 종과 백성을 해코자 하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호하되 끝까지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아무런 환란이 없이 참된 종을 알 수 없고 또는 보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려운 환란이 인력으로 당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나타나 보호할 때가 온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이므로 극도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했던 것이다. 심판기에도 북방 환란이 하수같이 오게 하는 것은 임마누엘의 세력으로 세계를 정복할 때가 온 증거이다(사8:7~8).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때에 아브라함에게도 네 백성이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고생할 것을 말씀하고 이방 세력이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괴롭게 할 때에 하나님이 이방 세력을 징벌하고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겠다는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왕국으로 이루어질 때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애굽의 세력을 강하게 하며 이스라엘을 탄압하게 하고 거기서 모세를 들어 재앙으로 땅을 치며 그 민족을 해방시켜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북방 세력을 삭도같이 강하게 쓰겠다고 사7:20에 말했고, 막대기로 쓰겠다고 사10:5에 말했고, 넘치는 하수같이 내려온다고 사8:7에 말했고, 북방 세력을 사자같이 강하게 쓴다고 나2:11~12에 말했고, 미5:6에는 앗수르 사람이 짓밟고 나올 때에 북방을 없애고 새 시대가 온다고 하였으니 이 전체는 다 하나님의 심판기에 모략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말했다.
금일에 와서 북방 세력을 강하게 높이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종들을 심판할 때가 왔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때에 종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큰 징조가 하나님께로 나타나게 되므로 필연코 승리할 것은 사실이다. 악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 말씀이 응했다면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 쓴다는 것은 반드시 응할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로 승리한 것 같이 오늘에도 필연코 승리는 여호와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2. 탈선된 길에 서지 말 것 (19)
탈선이라는 것은 정확 무오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지시에 치우치는 일이다. 심판기에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개방시켜 지절거리고 속살거리는 마귀의 시험이 많이 오게 할 것이니 조금도 말씀에 탈선된 길에 서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야만 될 것이다. 에덴 동산의 하와에게도 지절거리는 마귀의 말이 올 때에 필요 없이 뱀과 말하게 되므로 미혹이 왔던 것이다.
심판기에 흑암을 물리치려면 조금도 말씀에 가감된 신비에 치우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계 혼란이 극도로 심할 것이니 마술사의 큰 미혹이 올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니 어지럽고 딱한 일이 올 때에 거짓 선지는 기회를 타서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환란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또는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자로서 그 말씀 하나만을 굳게 잡고 강하게 나갈 때에 흑암은 물러갈 것이다. 왜냐 하면 마귀 미혹도 말씀이 응하는 과정이므로 말씀에 바로 서느냐 못 서느냐는 것을 목적한 마귀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3. 말씀 증거가 바르지 못한 자의 받을 화 (20~22)
하나님의 빛이라는 것은 말씀을 따라오는 것이니 말씀의 증거가 바르지 못한 종은 빛의 역사가 떠나가므로 자동적으로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고 하였으며 주릴 때에 마음이 번조하여져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환란과 흑암과 고통에 떨어지되 극히 심한 환란 중에 빠질 것을 말했다. 가장 큰 일은 재앙기에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바로 증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심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장 크고도 강한 일은 말씀의 증거가 바로 되어 흑암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니 누구든지 말세에 흑암을 뚫고 나가려면 진리의 완전 무장이 있어야 될 것이며 조금도 혼선이 없는 증거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오늘의 큰 시험은 3가지로 온다고 볼 수 있다.
1. 횡설수설하는 쓸데없는 학설이다.
2. 횡설수설하는 지시에 치중하는 일이다.
3. 횡설수설하는 말로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종된 자의 심판이라는 것은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못하는데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결 론
인류 역사에 시대를 따라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시대가 변천될 때에 큰 신앙 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앙하되 잘못된 노선에 들어가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큰 문제는 진리의 혼선된 신앙자가 받는 재앙이니 진리의 다림줄을 바로 쥔 자의 완전 승리로 평화 왕국을 이루는 일이다.
인 맞는 이스라엘이 되자
- 계 7:2~4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에게 아무런 증거 없이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확실한 인을 치시는 동시에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은혜시대는 죽은 영을 살려서 성신의 인을 쳐 신앙의 확정을 마음에 가지게 하여 담대히 증거하게 되었다(엡1:13~14). 신앙이라는 것은 마음에 확정적인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완전한 천국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인 맞는 자가 14만 4천이라는 것은 현 유대족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 말씀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줄 적에 예수를 반대하라고 준 이스라엘이 아니다. 현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볼 때에 이스라엘이 아니요 참으로 성신의 인을 받고 확실한 보증이 있는 신앙으로써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새 시대를 정복할 용사를 이스라엘 중에 인 맞은 자라고 한 것이다.
이 인을 맞는 이스라엘이 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이라도 성별된 생활이 없이 이방인과 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때에 하나님은 용서 없이 이스라엘을 이방 세력을 들어서 친 것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피를 더럽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 하여도 성별된 생활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인도만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은 보호하고 다스리되 인정하는 뜻으로 이마에 인치는 것이다.
사명을 맡은 자로서 핍박과 어려움이 온다 하여도 끝까지 절개 있게 싸워 나갈 때에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남은 종이 되게 할 것으로 확인하는 것을 이마에 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를 완전히 사했다는 확인을 마음에 주는 것이요 여러 가지의 시련 가운데서 끝까지 절개 있게 나가는 자를 남은 종이 되게 하였다는 것은 완전 영감을 머리 위에 주는 동시에 조금도 마귀의 권세가 그 사람을 대항하지 못하도록 이름 권세의 인을 주는 것이다(계9:4). 그러므로 계시록 7장에 인 맞은 이스라엘은 분명히 환란 가운데 남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를 가르친 것이니 변화성도는 완전한 승리의 왕권을 받는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라고 한 것은 종 중에서 특별히 뽑아 내는 것을 뜻했다. 그러면 이 종이라는 것은 구약의 선지를 말함이 아니요 신약시대에 온 세계 인류가 살라져 버리는 무서운 환란을 앞에 놓고 마지막 역사를 할 종들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은 땅과 바다가 피해를 당할 무서운 전쟁의 피해를 뜻한 것이다.
2. 완전 무장으로 한 단체를 이루어야 된다
본문에 해 돋는 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와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이스라엘 중에 14만 4천이 나온다는 것은 완전 결합을 이루는 용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결합이라는 것은 역사가 종들에게 일시에 임할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을 치는 역사가 해 돋는 곳에서 나온다는 것은 사59:19이하와 같이 종말의 역사가 동방에서 나와서 세계의 모든 하나님의 종들로 한 무리를 이루게 하는 기독교 통일의 역사를 뜻했다.
이날까지 역사라는 것은 이방을 찾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 회개시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성신의 은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는 역사였다(갈3:28~29, 엡3:6). 이 역사는 기간이 20세기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미 종된 자에게 이마에 인치는 역사는 땅과 바다를 해칠 권세를 받은 네 천사가 나타난 후라고 했으니 이것은 계9:15이하를 보면 분명히 년, 월, 일, 시에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며 마병대가 2만만인데 말들의 머리는 사자 같고 꼬리는 뱀 같고 꼬리에 머리가 있고 입이 있어서 불과 유황이 나와서 사람 3분의 1을 죽인다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이 분명히 무력적인 전쟁을 뜻한 것이다. 불과 유황으로 죽이는 무력이라는 것은 금일에 와서 과학 발전으로 되는 신 무기 전쟁을 가르친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때에 동방에서 인을 치는 역사가 나와서 14만 4천이 나온다고 한 것을 보면 부활성도가 아니고 분명히 무서운 전재가 와서 세계가 전멸 상태에 들어갈 때 쓰여질 종이라는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교파를 초월하여 재앙 속에서 남을 종은 하나같이 완전 무장을 받게 되되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로 말미암아 받게 될 것을 가르쳤다.
3.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육적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아무리 성민의 이름을 가진 자라도 북방 사마리아가 된 일이 있고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하여도 반 기독자가 되어서 스탈린과 같은 공산당이 나온 일도 있으니 소위 이스라엘 국가라는 간판을 가졌다고 그것이 영원한 이스라엘이 아니요 땅이나 바다나 다 피해를 당할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될 때에 이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다윗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책망할 때에 너희는 독사의 새끼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고 주님도 바리새교인들에게 네 아비는 마귀라고 했고 바울도 롬2:18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 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재앙기에 남은 자가 되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때에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다(사44:5).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명의 이름을 주신 것은 육적 혈통을 뜻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이름을 주신 것이다. 신약시대에 베드로란 이름을 준 것도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라 한 것은 유대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교회를 다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벧전2:9~10까지를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하는데는 계14:4~5과 같이 된 자라야 영원한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천하의 가장 복 있는 자는 재앙 가운데 남은 종으로서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사66:20을 보면 열방에서 다시 제사장과 레위족을 택해서 그 자손이 영원히 복을 누린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만민을 피로 사서 한 나라를 이루게 하는데는 먼저 이 땅에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지되 중생을 받고 성신 받은 종으로서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적인 사명을 하다가 들림을 받게 되는데는 그 종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고 나오는 무리는 아무리 이방 사람이라도 새 시대의 종족이 될 수 있다(계7:9이하).
결 론
가장 복되도다. 인 맞은 이스라엘이여 첫째 화를 당치 않고 남은 종이 되어 공중에 나타나는 주님을 맞이할 것이요 그들이 전하는 종말에 심판의 경고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는 무리는 촛대교회에 들어오는 양 떼가 되어 큰 환란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 영광을 시민권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명을 맡은 자로서 인 맞은 이스라엘이 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될 시기가 이 때라고 보게 된다. 역사적인 조류가 흘러오던 중 지금같이 위기를 앞에 둔 때는 없는 것이니 아무쪼록 인 맞는 이스라엘이 되기 위하여 순교적인 생활을 하자.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 사 49:1~7 -
하나님께서 승리의 용사로서 환란 가운데 남은 종이 될 자를 이스라엘이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하나님은 모략적인 방법으로 택한 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게 하고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니 말세에 남은 종이 될 자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에 인정을 받은 자라야 될 것이다.
2)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자는 환란 가운데 남은 종이라야 될 것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새 시대를 보는 자는 다 이스라엘이 된다.
3) 잃었던 지상 축복을 다시 찾는 것은 간교한 뱀인 마귀의 세력을 이겨야 할 것이니 누구든지 붉은 용과 싸워서 이기는 자라면 다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제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일에 대하여 그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사람이 되어야 한다 (1~4)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조건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택한 종을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내려고 할 때에 그 종을 시련시키되 사람으로서는 감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많이 당하게 한다. 이스라엘이 일곱 해 큰 흉년이 질 때에 애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요셉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고, 애굽에 무서운 바로의 압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출시키는 모세도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갔다.
우리는 사람이 인정하는 정도의 일만을 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일이 없다면 금시는 영광스러워 보이나 결말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금시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증 설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일이라고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적인 구원을 전하는 자이다 (5~6)
인생이 세상에 났다가 자기 하나를 위하여 살았다는 것은 영광 될 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가 될 것이로되 전 세계 인류를 환란에서 구해 내는 복음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 같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세세 영광을 줄 것이다. 영광이라는 것은 잠깐의 영광도 있고, 영원한 영광도 있는 것이니,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했다는 것이 아니고는 영원한 영광을 소유할 자는 전혀 없는 것이다.
갈릴리 어촌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던 베드로의 사명을 비롯하여 세계 인류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며 동방 땅 끝 지렁이 같은 야곱이가 새 타작기 같이 쓰여져서 태산같이 교만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우리는 새 시대의 구원, 방주를 이루는 촛대교회의 운동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영광이 아닌 영광을 좋아하고 심지어 영광이 되는 진리 운동을 어리석게 본다는 것은 이방적인 세력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 시대 영광을 목적하고 싸우는 사람은 다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3.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일 (7)
이날까지에 소위 강대국이라는 이름 하에서 한 때는 약소 국가를 짓밟아버리는 침략적 행동을 한 일이 있지만 세계 열왕을 모두 굴복시키는 자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종 앞에 세계 열왕이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은 그를 택한 신실한 여호와 하나님을 인함이라고 가르쳤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책임지고 원수를 갚아 줄 조건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승리를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세계의 국가 운영이나 개인의 생명이나 대 자연계를 하나님은 다스리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는 종만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가장 복된 자는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성도라고 보게 된다.
결 론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훌륭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같이 어리석은 자가 없다. 이날까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흑암 중에 흑암이다. 그러므로 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은 동방 땅 끝이라는 것을 사41:8에 말한 것이다.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 계 18:4~10 -
인류역사상 환란과 재앙이 없은 것은 아니로되 바벨론이 망하는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은 무엇이냐는 것을 택한 백성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다가 보호를 받고 축복을 받은 일도 없진 않지만 바벨론이 받는 재앙을 받지 않고 남은 자 같이 복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큰 재앙도 이제 남았고 제일 큰 축복도 이제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큰 재앙을 받느냐, 큰 축복을 받느냐는 것이 금일에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아서 진리를 바로 찾아야 할 때는 이때라고 보게 된다. 오늘에 남은 전쟁이라는 것은 바벨론이 한 시간 동안에 전멸을 당하는 광경으로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보았는데 오늘에 과학 발전으로 일어날 전쟁은 요한 사도의 인류 종말을 본 이때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재앙 받을 행동에 대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1. 죄가 하늘에 사무친 일 (4~5)
역사적으로 이 세상은 죄의 세상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금일같이 죄악에 사무친 세상은 과거에 없던 일이라고 보게 된다.
1) 정치적으로 범한 죄
금일에 공산주의가 정치적으로 범한 죄는 인류역사상 처음 되는 일일 것이다. 도둑 중에도 큰 도둑이요, 제일 거짓 중에도 제일 큰 거짓이요, 배도 중에도 큰 배도 라고 볼 수 있다.
2) 사상적으로 범한 죄
금일에 무신론 사상이라는 것은 최후의 인심을 악화시키는 죄다. 이 사상은 사람을 금수화시키는 동시에 죄를 짓고도 하등 양심에 거리낌없이 살게 만드는 사상인데 이 사상으로 말미암아 범하는 죄는 금수보다도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
3) 전쟁으로 범한 죄
과거의 전쟁은 도덕적 전쟁이었다. 그러나 금일의 전쟁은 애매한 백성을 전멸시키는 폭격이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이유 없이 남의 건물을 파괴하고 가족을 몰살시키고 한다는 것은 전쟁 중에도 죄악의 전쟁이라고 보게 된다.
4) 종교적으로 범한 죄
종교라는 것은 그 종교의 신앙 절개라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오늘의 종교는 어느 종교나 다 타협적인 노선을 걷자는 것인데 더구나 기독교가 협상주의로 흐른다는 것은 종교적인 큰 죄악이 되는 것이다.
5) 방랑적인 자유의 죄악
소위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극도로 사람들이 방랑생활에 다수의 악당들이 주권을 쥐고 사회의 도덕까지라도 다 파탄을 당하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면 대략적으로 보아도 정치, 사상, 전쟁, 종교, 자유로 짓는 죄가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무엇으로 보든지 이때는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때라고 보게 되니 이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이 죄에 참여하지 않아야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니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2. 갚아 주는 재앙 (6~7)
하나님은 갚아 주는 공의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재앙도 갚아 주기 위해서 축복도 갚아 주기 위해서 오는 것이니 갚아 줄 일을 하나님은 이날까지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억울하게도 마귀에게 미혹 받고 타락한 인간을 그냥 심판한다는 것은 의로운 심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독생자를 보내서 전세계 인류에게 얼마든지 살길을 찾아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한 인간들이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참된 종의 말을 배척하고 거짓 선지의 말을 따라 갔다는 것은 갚아 줄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목숨을 바쳐 피를 쏟으며 증거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영화롭게 해보려는 교만에서 현실주의 향락에 도취가 되어 오히려 참된 종들을 무시하고 압박을 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을 했다는 것은 의로운 심판자로서 갑절이나 재앙으로 갚아 줄 일이다.
죄 중에 큰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진리를 대적하고 음녀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은 영원히 멸망을 당할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음녀주의 사상에 동참한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다 망하는 것이다.
3. 일 시간에 불에 살라지는 재앙 (8~10)
지금 과학 발전으로 세계가 한 시간에 살라지게 되는 원자핵이 나오게 된 것은 큰 재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없어지는 재앙이 온 후에는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 계시록과 모든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 우리는 그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으나 무엇으로 보든지 지금은 심판기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경고의 나팔을 나가 불때가 왔다고 본다. 지금은 이 경고의 나팔을 부는 마지막 변화성도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때다. 부활성도가 전하는 복음은 속죄 구령이지만 변화성도가 전하는 복음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지라”라고 말할 책임이 있다.
오늘에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산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다 하나같이 총 궐기 해서 한데 뭉쳐 성별된 단체를 이루는 동시에 신령한 촛대교회를 일으켜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전할 자는 세상이 불타서 전멸되는 가운데서 재앙을 받지 않고 새 시대 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니 우리들은 각성하여 바벨론에서 주의 백성들이 나오도록 외쳐야 할 때가 왔다.
결 론
슬프다. 주의 백성들이여! 이때를 알라! 각성하라! 준비하라! 하는 경고의 나팔을 불 때는 이때이니 우리 기독교는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온 교회가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종된 자의 사명이라고 본다.
기독교 난국 돌파의 위력
- 계 12:1~6 -
기독교는 시작될 때부터 어려운 난국을 놓고 싸우는데서 시작되어서 전세계 인류에게 큰 빛을 비춰 주었던 것이다. 이 빛이라는 것은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서 죽은 영들을 살리는 큰 빛이다(사9:1~2). 그러나 이 본문에 몸에 해를 입고 발아래 달을 딛고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은 기독교가 무서운 붉은 용의 세력과 마지막 싸움을 싸우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기독교의 큰 난국은 과거보다도 앞으로 큰 붉은 용을 이겨야만 된다는 것이니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꾀이던 옛 뱀은 큰 용이 되어 종말에 허락을 받고 나오는 때에 기독교로서 그 난국을 돌파하고 나갈 일을 큰 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어떻게 하여야 큰 붉은 용의 세력으로 나오는 난국을 돌파할 힘을 얻을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해를 몸에 입어야 한다 (1상반절)
이것은 큰 빛을 발하는 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큰 흑암의 세력이 허락을 받고 나오는 환란기에 빛을 따라간다는 것보다도 빛의 큰 세력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앞으로 기독교가 조금도 진리나 영계에 어두운 것이 있다면 난국을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말씀도 영계도 햇빛같이 밝아서 감히 어두움의 세력이 침투할 수 없는 교회가 되어야만 된다.
만일 어떤 교회가 말씀이 조금이라도 가감된다면 그 교회는 붉은 용의 세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고 큰 미혹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붉은 용의 세력을 짐승의 정권에 주고 거짓 선지의 교권에 주어서 13장과 같이 미혹해 보는 것은 진리가 완전히 밝은 교회만을 남은 교회가 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2. 발 아래 달이 있어야 한다 (1중반절)
이것은 땅의 권세를 의지하고 있는 교회가 아니고 성도의 권세를 중심하여 뭉쳐진 교회이다. 달이라는 것은 자체의 빛은 없는 것이로되 태양 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에 비춰 주는 작은 광명이니 앞으로 남은 교회가 되려면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성별된 생활을 하는 성도들만이 뭉쳐진 단체가 되어야 난국을 돌파할 위력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성도의 권세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계시록 11장에 증인에게 권세를 준다고 하였으니 달과 같은 종들이 뭉쳐진 힘으로 세운 교회를 발아래 달이 있다고 한 것이다. 지금은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부패성을 가지고 세속화된 일이 많이 있지만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교회는 조금도 부정이 없는 성도들만으로 뭉쳐진 교회로써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교회 단체를 이룰 것이다.
3.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써야 한다 (1하반절)
우리 교회라는 것은 과거에 열 두 사도가 승리하고 왕권의 면류관을 받은 것이니 조금이라도 그들의 교훈이나 사상에서 변하면 큰 위력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 하면 그들이 시작한 말세 교회가 마치는 일이 마지막 난국을 돌파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왕권의 반열에 들려면 그들의 모든 승리의 면류관을 목적 두고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 재림할 때에 그들과 같이 왕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승리의 왕권을 받은 종들로 말미암아 우리도 강권적인 큰 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4.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힘이다 (2)
만일 기독교가 금일에 와서 해산할 힘을 잃는다면 이 교회는 난국을 돌파할 수가 도저히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순교자의 계통적인 신앙 노선에 선 자라면 하나님께서 큰 위력을 주어 철장권세의 종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다. 아무리 붉은 용이 대항해 나온다 하여도 기독교는 필연코 권세의 종을 내므로써 난국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이날까지의 모든 성도들이 피 흘리며 싸우던 싸움은 이제 끝이 나는 단계에 들어갈 것이니 우리는 막다른 골목과 같이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자와 싸우지 않고는 도저히 교회를 유지할 수 없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령한 촛대교회만을 남기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인생의 두 가지 형체
- 고전 15:44~49 -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사람의 몸을 창조하여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산 영을 가진 아담이 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창조할 때 완전한 몸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완전케 될 수 있는 피조물로 낸 것이다. 많은 동물을 흙에서 나게 했지만 사람만은 그 몸이 영체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낼 때에 어떠한 방침으로써 영체가 되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뱀은 악한 형체를 가질 수 있게 내었고, 사람은 영생할 영광의 형체가 되게 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될 사명을 하지 못하므로 흙으로 돌아갔고 간교한 뱀은 사람을 꾀어서 이길 때에 자기의 사명을 했으므로 용이 되어 공중 세력을 잡고 크게 역사하게 된 것이다(계12:9, 20:2).
다시 말하면 사람은 생령으로서 영화로운 영체를 가지므로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간교한 뱀은 간교한 사탄의 영으로서 대 승리를 보고 큰 용이 되어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중에서 사탄의 말을 순종하면 용과 같이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요, 사람은 산 영으로서 용을 이기고 하늘에 속한 영체가 이루어지면 영원한 천국의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대 섭리 하에서 사람에게 두 가지 형체가 있다.
1. 땅에 속한 형체
이 형체는 땅에 속한 열매를 먹고, 땅에 속한 물을 먹고, 땅에 속한 동물을 다스리며, 땅에 속한 식물을 가꾸며, 땅에 속한 나라를 이루어, 땅에 속한 자녀를 교육하며, 땅에 속한 사람으로 하여야 할 일을 해야 된다. 이제 땅에 속한 자가 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육하고 번성해서 의로운 씨를 이 땅에 충만케 하여야 될 사명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마귀에게 미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그 몸은 의로운 씨를 전하지 못하고 악한 씨를 전하는 타락한 몸이 되었다. 이렇게 되므로 이 세상은 죄악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둘째아담 예수가 세상에 오신 것은 흙에서 그 몸이 나지 않고 성모 마리아 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물과 피가 임하여 땅에 속한 사람의 몸을 이루어서 인간이 땅에서 할 일을 친히 하시고, 그 몸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은 이 땅 사람이 땅에서 지은 죄를 다 걸머지고 땅에서 죽은 것이며, 땅에서 장례를 받은 몸이 다시 부활할 때에, 이 땅에 있지 않고 승천하신 것은 땅에 있는 형체를 가진 사람들로 땅에서 할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하여 승천하셔서, 지금 땅에 속한 사람들의 몸에다 성신을 부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땅에서 사는 생활에서 예수를 믿고 그 영이 산 영이 되는 중생을 받고 성신을 받을 적에 산 영의 사람으로 땅에서 할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부어 주는 성신을 받으므로 땅에 속한 몸이 땅에서 할 일을 하는 인격을 이루어 주님께서 땅에 있을 때에 어떻게 하라는 사명을 할 수 있게 되므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통하여 회개하게 되고 성신을 받게 되므로 교회를 이루고 주의 사업을 하게 되는 기독교 단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라는 것은 이 땅에서 하는 사명은 땅에 속한 사람이 땅에서 하는 일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을 성신의 역사라 하며 기독교 진리 운동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땅에서 걸어다니는 몸으로써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의무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교인이 땅에서 자기 몸으로 할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신령한 세계를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은 기독교인의 사명적인 정신이 아니요, 이것은 염세주의적인 것이니 이런 것은 생명이 있는 종교인의 활동이 아니다.
금일의 기독교가 세계에 대 종교를 이룬 것은 땅에서 할 일을 할 수 있는 그 인격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성신의 역사가 있으므로 대 승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제 땅에 속한 몸을 가진 사람으로 사는 기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쉬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일한 대로 갚아 주려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있다.
2. 하늘에 속한 형체
주님께서 땅에 속한 몸으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땅 위에 교회를 세워 땅에 속한 자들이 할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고,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것은 땅에서 할 일을 충성 되이 하되 그 몸이 쓰러지기까지 활동하던 사람들의 몸을 당신의 몸과 같이 하늘에 속한 형체를 이루어 주와 같이 할 일을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림의 주는 세계 만방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오신 것이요, 재림의 주로 오시는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충성 되이 일한 자들의 죽은 몸을 다시 살려 하늘의 형체가 이루어지게 하고, 주님 올 때까지 교회를 대적하고 나오는 붉은 용과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와 싸우던 사람들은 죽지 않고 변화 승천시켜 하늘에 속한 몸을 받은 자들로써 왕국 조직을 이루어, 이 세상에 악한 자의 세력을 다 때려부수고 세계를 통일하되,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진 자들이 통치하는 평화 왕국을 이룰 때 이 세상은 완전히 에덴 동산보다 더 좋은 나라를 이루어서, 마귀의 세력이 없어진 평화 왕국을 이루어 아담에게 맡겼던 사명을 다시 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는 것을 지상 왕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악한 씨가 땅을 더럽혔지만, 이 때는 의로운 씨가 복을 받고 거룩한 성산을 이루어 조물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형체를 받은 자들이 통치하는 시대를 가르쳐서 이 땅에는 천년 왕국이요, 천국에 영원한 무궁 세계가 이루어지는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는 땅에서 할 일을 다 했으므로 하늘의 형체가 이루어지고 그 자손은 땅에서 번창하게 되므로 변화성도의 전도를 받고 따라 오던 양떼들이 지상에서 평화로운 시대의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은 변화성도의 전하는 말세의 비밀의 진리 운동이라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땅에 속한 형체가 없이 하늘에 속한 형체가 없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으므로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땅에 속한 몸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야 할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 하며 하늘에 속한 형체가 이루어져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 되는 세세 영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요일 4:16~21 -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신 동시에 사랑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뜻을 만족히 채우기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사랑을 목적하고 역사하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 외에는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조물 자체에는 남을 사랑할만한 인격이 완전히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 끌려서 활동하는 것 뿐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한 것이요, 영계를 움직이는 것도 사랑을 목적한 것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순종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것 뿐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요소가 있는 것이다.
1. 사랑 안에 거하는 자를 만족케 하심 (16)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시는 그 안에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만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이제 그 사랑 안에 들어오라고 죄인들을 부르는 것이니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며 그 안으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만족한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외에는 만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동물은 먹는 것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으나 사람은 먹는데 국한된 동물이 아니요,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졌으므로 하나님 안에 안기는 생활이 있으므로만이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기도 하며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만족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라는 것은 누구든지 사랑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만족함을 누리도록 해 주는 것을 십자가 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십자가이니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께 받게 되기 때문이다.
2. 심판 날에 담대함을 주심 (17)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의 법을 완성하는 오메가 역사이다. 사랑의 시작은 누구든지 아들을 믿으면 다 사랑 안으로 들어와서 만족을 얻게 하는 것이라면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에 들어 온 자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종말적인 역사이니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판이라는 것은 사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배반한 자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이다.
누구든지 죄가 있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보다도 그 사랑을 믿지 않은 조건으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안에 들어오는 자를 온전하게 만들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어 남은 자가 되게 하는 동시에 심판을 나리기 때문에 심판이라는 것은 오히려 온전하게 된 자를 더 사랑하는 시대로 옮겨 놓기 위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지금 이 세상은 사랑하는 자가 시련을 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시대이지만 심판은 사랑하는 자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서 영광의 복락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3. 두려움이 없게 하는 사랑 (18~21)
인간은 죄를 질 때부터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게 되어 거기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항상 인류 역사가 두려운 전쟁, 사망, 고통, 재앙으로 내려온 것 뿐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에 빠진 인생들을 두려움이 없는 자리로 옮겨 놓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히2:14~15).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공포심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랑에서 온전함을 이룬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온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두려움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며 죽음을 돌파하고 나가는 인격이다.
어떤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사랑의 인격을 갖지 못한 자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인간에게 주시는 동시에 사람으로서 그 사랑 속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온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영생의 생명과 영광의 나라의 기업을 택한 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원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이 주고 싶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는 형식과 의식이 필요 없고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하나님 마음에 사랑이 불타는 심정으로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죽게 한 것이다.
이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사랑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지되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인격을 만들어 영원히 같이 영광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완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스스로 속는 자가 누구냐
- 요 7:37~53 -
종교 신앙을 가진 자로서 스스로 속는 자들의 형편을 본문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을 떠나게 되면 무엇이나 스스로 속는 자가 되는 것이다.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스스로 속게 하는 것을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성신은 언제나 그 사람의 마음에 부족을 깨닫게 하는 역사이요, 마귀의 술을 먹는 사람은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속게 만드는 것이니 스스로 속는 자의 형편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성경을 잘못 해석함 (37~44)
사람의 마음에 자기의 주권을 세우고자 하는 자는 성경을 해석해도 잘못 해석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들어도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이단이라고 정죄까지 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5:2을 들어 가지고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베들레헴에 날 것을 말하며 갈릴리에서 나오는 예수는 성서에 의하여 이단이라고 정죄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나시고 갈릴리에서 나오는 것이 사9:1~2이 응하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성서를 들어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메시야가 아니라고 한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응하는 것인데 성경을 한 절만 가지고 자기 주장을 세우는 자는 마귀의 미혹을 받는 탈선된 길에 서게 될 것이다. 금일도 많은 종들이 다 성경을 들고 각자가 자기 주장을 세운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 많게 된다.
메시야가 올 때도 성경을 가감하는 자들이 망했고, 재림의 주가 올 때도 그와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여러 선지를 통하여 그리스도 한 분을 가르친 것이니 한 선지의 예언만 치중하고 모든 선지의 예언을 종합하여 획선을 바로 찾지 못하면 스스로 속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용하려는 야심이 있으므로 성경에 눈이 어두워져서 큰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2. 함부로 남을 미혹되었다고 하는 자이다 (45~47)
대부분이 영계가 어둡고 스스로 속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남을 미쳤다, 미혹을 받았다, 이단이다, 마귀다 하는 말을 많이 한다. 예를 든다면 술에 취한 자가 함부로 남에게 이유 없이 욕설을 하는 것이나 꼭같다. 금일에 교회가 자기는 영계에 아무런 체험이 없으면서 조금만 자기와 다르면 미혹으로 본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함부로 남을 미혹으로 보는 것보다도 영계를 잘 분별할 때에 남이 혹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여도 그 사람을 아끼는 심정에서 그 시험을 벗어나도록끔 해 보려는 안타까운 심정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언제나 마귀에게 시험받는 사람을 겸손히 찾아가서 건져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교인들은 그것까지도 훼방하며 귀신이 들려 가지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마12:27에 말했는데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미혹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미혹을 받은 심령인 것을 분별치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자들은 소위 교권에 치우친 자들이라고 보게 된다. 자기 교파 외에는 다른 사람은 다 미혹으로 보는 어리석은 자들이 자신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는 것이다.
3. 함부로 남을 저주하는 자이다 (48~53)
율법을 알지 못하는 예수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속는 자들이다. 무엇이 바로 아는 것인지 이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다. 금일에 와서 소위 정통 신학이라고 하면서 고집만 남아 가지고 성경의 해석을 자기네 주관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자라고 하면서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정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잘못 사용하면 자신을 망치는 자가 되는 것은 자기 주관에 따라서 움직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리 성경을 가르친다 하여도 오히려 교만을 가져오게 되고 안다는 지식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속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되는 생활에서 그 시대 그 시대 비밀을 아는 사명자 외에는 다 스스로 속게 되는 폐단이 있다. 성경을 자기가 안다는 것도 탈선이요, 성경을 깊이 알아보지 않는 것도 탈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는 것을 아는 신령한 성신이 같이 하므로만이 자기 사명을 행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된다. 소위 율법자라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한 것은 스스로 속는 자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아도 보지 않고 무조건 자기가 안다는 자체는 스스로 속는 교만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중에 하나인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교훈을 받고 깨달은 바가 있은 후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를 저주할 때에 그 동료들을 합당치 않다고 지적하고 말할 때에 오히려 니고데모까지도 무시했던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함부로 경솔히 남을 판단하는 자이다.
결 론
스스로 속는 자가 되지 않으려면 성경을 세밀히 상고하여 성경의 연관성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고 그 시대의 법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며 무엇이 미혹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영계가 있어야 할 것이니 사람의 인격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근본적인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며 그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인 중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교권에 치우친 자, 자기의 주관에 치우친 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날뛰는 자, 이러한 무리가 다 스스로 속는 인간들이다.
백마 탄 자의 승리와 천년 왕국
- 계 19:11~20:3 -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신이시며 사랑의 자체가 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 쓸 적에 공의롭게도 쓰시고 사랑으로도 쓰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은 백마 탄 군대를 일으켜서 승리를 이루게 하므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기까지가 끝을 맺는 일이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십자가의 종말을 천당으로만 본다는 것은 종말관을 똑똑히 모르는 자라고 보게 된다. 백마 탄 자의 승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시대를 구분한다.
1차 승리가 있으므로 은혜시대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2차 승리가 있으므로 천년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승리로 말미암아 1차 승리의 역사가 많은 종들을 들어서 역사 하게 되어 세계 만방에 십자가의 도가 땅 끝까지 전파되었고, 2차 승리가 이루어지므로 천년 왕국이 오는데는 그 비밀은 바울 서신에 있지 않고 계시록에 있는 것이다. 이제 백마의 승리와 천년왕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말할 수 있다.
1. 준비 기간 (11~12)
그리스도의 승리로 말미암아 만 왕의 왕을 모시고 싸울 수 있는 자의 수가 차게 되는 기간을 은혜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충성된 증인으로 승리하시므로 임금의 머리가 되시었다(계1:5). 이날까지에 수많은 성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피 흘려 순교를 하였고 마지막 때의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무장을 하고 일어나는 것이며 수가 찰 때에 되는 일이니 수가 차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참고 기다리면서 잠잠히 계시므로 그리스도밖에는 알 자가 없다. 누가 백마 탈 군대가 될 자격이 있는지도 사람은 모른다.
그러므로 본문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그 이름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어느 사람이 면류관을 쓰고 만 왕의 왕을 따르며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인지 이것을 알 자는 전혀 없다. 수가 찰 때까지는 각자 각자의 완전 무장을 목적하고 역사하는 것이니 우리는 각자가 진실이라는 것으로써 주님을 따라갈 것 뿐이다. 우리가 지금은 주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백마 탄 군대가 되어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자격을 얻기 위하여 훈련 중에서 따라가는 생활이다.
2. 군대를 이루어서 싸우는 기간 (14~16)
군대를 완전히 이루는 것은 주님이 재림한 후에야 완전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이 군대라는 것은 부활성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 주님이 공중 재림할 때 죽은 자는 부활하고 남은 자는 변화를 받는데는 남은 자가 될 자격은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교권과의 진리를 가지고 전하기 위하여 싸우던 사람들이 변화성도가 되어서 들림을 받게 되고 완전한 조직을 이루어서 다시 지상 강림할 때에 백마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쳐 없이하기 위하여 만국을 치게 된다.
3. 짐승의 군대가 전멸을 당하고 천년 왕국을 이룸 (19~20:3)
짐승의 군대가 전멸 당하는 시기는 바벨론이 완전히 불타고 그 다음에 전멸을 당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14만 4천이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14장에 보여준 것은 계9:4과 같이 첫째 화를 피하고 남은 종이 되어 들림을 받아 다시 내려올 때에 자기네가 싸우던 싸움을 끝을 맺는 것은 전하던 말씀에 의하여 완전히 승리를 이루는데는 짐승의 세력이 세상을 불태우는 일이 있다(계17:16).
붉은 짐승은 거짓 선지를 이용하여 이 세상 사람을 다 미혹하여 짐승의 표를 받게 했으므로 세계를 사상으로 통일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적같이 만 왕의 왕이 백마 탄 군대를 데리고 붉은 짐승을 치기 시작할 때에 짐승의 세력이 자기네 군대를 내놓고는 온 세계를 다 불살라 버리는 것이다. 지금 공산당이 지하정부를 다 만들어 놓은 것은 이때에 그들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은 지하정부에 들어가서 온 세계가 불타도 피해를 당치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8장에는 바벨론이 한 시간에 불타는 광경을 보여줬고 19장에는 백마 탄 군대가 짐승의 군대를 전멸시키는 광경을 보여줬으니 이것이 있으므로 완전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천년 왕국이라는 것은 변화성도의 승리로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변화성도라는 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동방에서 나와 인을 칠 때에 한 무리가 된 14만 4천이니 이 무리가 남은 종이 되어 재앙으로 땅을 치며 짐승의 나라에까지 전도하게 될 때에 굴복하고 들어온 자들이 곡과 마곡의 한 무리가 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완전히 승리하므로 짐승의 군대가 전멸되는 동시에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니 지상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근본이 동방에서 나오는 역사이다.
구약 말기에 동방 고레스가 바벨론을 치므로 남은 자가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같이 동방에서 일어난 역사가 변화성도를 일으켜 짐승의 군대를 없이하므로 바벨적인 세력은 전멸 당하고 시온산 통치의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군대를 이길 자는 백마 탄 군대요, 붉은 용을 이길 자는 천사들이다.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되자
- 딤전 3:8~13 -
믿음의 큰 담력이라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오는 축복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에는 큰 담력을 얻어서 작은 일에 충성을 하던 자가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지만, 맡은 일에 충성을 하지 않는 자는 큰 일을 맡아 하다가도 점점 맥이 빠져 쓰러지는 상태에 들어갈 때에 오히려 일을 시작하지 않았던 자보다도 더 불행스러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집사의 일을 잘 하는 자가 믿음의 큰 담력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언제나 큰 역사를 하는 종들은 다 집사의 일을 충성되이 보던 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역사를 하는 종이 집사의 직을 거치지 않고 된 자는 없을 줄 안다. 그러면 어떠한 집사가 되어야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될 것이냐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단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단정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함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다. 누구든지 한 번 하나님 앞에 작정한 것은 변함이 없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직을 맡은 자로 입의 말이나 물질이나 모든 일에 단정한 사람이 될 때에 입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오고, 물질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일구이언을 한다든지 세상 재리에 명랑한 사람이 못된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입을 쓰고, 물질을 통하여 주의 일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니 신앙의 큰 담력을 얻으려면 입에 열매가 있고, 물질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정직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깨끗한 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9)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할 때에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의 비밀을 체험하게 된다. 만일 이것이 없는 자라면 어려운 난제를 당할 적에 이길 수 없이 쓰러지고 말게 된다. 신앙이라는 것은 비밀의 교통이 없다면 진액이 없는 마른나무 같다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의 비밀이 있는 자라야 날이 갈수록 더 담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을 적에 점점 튼튼한 가지가 되듯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는 자는 날마다 점점 자라나는 신앙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된다.
3. 가정에서부터 바로 서야 한다 (13)
가정은 신앙을 길러 주는 학교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부터 배워지는 일이 없다면 그 신앙은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볼 수가 없다. 가정 자녀를 다스릴 줄 모른다면 큰 교회를 바로 지도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가정에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가정의 식구들에게 감화를 주지 못한다면 그 종은 내장이 잘못된 몸과 같이 될 것이니 가정에서부터 바로 서는 종이 될 적에 그 종은 모든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하여 부모나 전토나 모든 자녀를 버리고 나가는 자라면 백 배나 받는다”고 한 것은 주를 위하여 일할 때에 가정에 얽매이지 말고,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올 것을 믿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면 가정의 모든 난제 해결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이루어 준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가정 식구가 방해한다고 주의 일을 중지하고 만다는 것은 오히려 가정을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니 가정의 자녀나 모든 식구를 다스리되 주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하여 권위 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모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한 것은 이것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의 일꾼이 되려고 할 때에 주님의 일 하나를 바로 하기 위하여 승리의 길을 가므로 갈수록 큰 힘을 얻는 종이 될 것이니 조금도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만 큰 담력을 얻는 종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종이 신앙의 큰 담력을 얻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명심하여야 될 것이다.
1) 주님의 일을 내 일보다도 더 존중히 할 것.
2)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큰 일로 생각하여야 될 것.
3)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주님의 역사로만이 될 것을 믿는 마음이 강하여야 될 것.
이와 같이 나갈 때에 집사의 일을 하던 자가 큰 담력을 얻고 아름다운 지위를 받게 될 것이다.
장 년 공 과 편 - 비 유
제1과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
- 마 13:17~23, 요절:23 -
서 론
주님께서 성신의 역사가 임하여 모든 사람이 바로 깨달을 때까지는 언제나 비유로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비유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그 비유를 통하여 마음이 진리로 기울어지는 동시에 그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목적이 천국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식물에 대한 이치나 광물에 대한 이치나 인류 사회를 이루는 진리와 합법적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이치나 신앙의 이치나 꼭 같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비유다. 이제 개인 신앙에 대한 비유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1대지 : 신앙은 일시적인 흥분이 아니라는 것을 비유함 (17~21)
신앙은 역사적인 체계를 가지는 동시에 신앙 양심에 산 체험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복을 받는다 하는 말을 일시 흥분에 끌려 금시 즉각으로 무슨 일이 다 이루어지는 줄 생각하고 경솔하게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개인 신앙의 완전성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선지가 예언한 말씀을 믿을 적에 시대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알아서 반드시 어려운 문제가 닥쳐오더라도 이것은 성서에 입각하여 반드시 있어야 될 일이라고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길가에 뿌린 씨와 돌밭에 뿌린 씨를 들어서 잠깐동안 되어지는 일에 흥분되어 움직이는 일을 따라가는 자의 신앙 상태를 가르쳤다. 돌밭에 뿌린 씨가 비가 올 때에는 속히 자라는 것 같으나 가뭄이 올 때에 말라지고 마는 것같이 일시 모든 일이 은혜롭게 될 때에 일이 다 된 것 같이 생각하다가 그 일이 다 이루어지지 않고 그 일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올 때에 넘어지고 만다는 것은 한 흥분에 끌리는 신앙이라고 보게 된다.
2대지 : 신앙은 세상 영화가 필요 없다는 것을 비유함 (22)
신앙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을 초월하여 천국의 것을 목적한 것인데 세상 재리에 끌린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자 되시는 성부, 성자, 성신은 역사하는 목적이 세상 물질이나 영광을 주자는 목적이 아니요, 영원하고도 완전한 것을 주자는 목적인데 신앙자가 세상의 일을 생각하고 염려를 한다든지 그 물질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벌써 심령 상태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우상과 같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완전 축복을 믿고, 그 하나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간다는 용기가 없으면 그 신앙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천국에 두고 싸우는 생활에서 세상에 끌린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옆길로 가는 생활이니 옆길로 가는 시간부터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이니 신앙자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영광을 분토같이 보아야만 될 것이다.
3대지 : 항상 깨닫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비유함 (23)
신앙 생활은 정상적인 신앙에 서야 될 것이니 정상이라는 것은 항상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깨닫는 것을 가르쳤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자체가 열매 되는 것이 아니고, 깨닫는 마음에서라야 열매가 되는 것이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에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이 사는 생활이니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에는 작은 죄라도 잘못인 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에 자기 부족을 깨닫는 동시에 깊이 깨달아지는 것을 가르쳤다.
돌밭에나 가시떨기가 있는 땅에는 그 내막이 순수하지 못하고 굳은 돌이 박혀 있고 쓸데없는 쓴 뿌리가 박혀 있으니 도저히 깨닫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깨닫는 마음이라는 것은 먼저 자기 마음에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니, 무엇이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조금도 마음을 둘 필요도 없는 생각에서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생각하는 마음이라야 항상 깨닫는 마음이 있게 되니 만큼 성령은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자는 것이니 누구든지 자기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보화로운 것이 마음에 충만히 임하게 되므로 열매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제 깨닫는 마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말한다.
1) 작은 데서부터 충성한다는 것이요,
2) 은밀한 가운데서 삼가는 것이요,
3) 어려운 일이 올 때 담대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항상 깨닫는 지각을 하나님께 받으므로 모든 일에 실패 같으나 결국은 성공이요, 모든 일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 같으나 결국은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결 론
신앙이라는 것은 자연 법칙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것이니 무조건 열심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니 반드시 깊이 깨닫는 마음에서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나가는 것이 있으므로만이 열매가 있는 종이 될 것이다.
제2과 신앙의 역사를 비유함
- 마 13:31~35, 요절:35 -
서 론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나 교육이나 또는 도덕, 수양을 초월한 산 생명의 활동이라는 것을 비유하신 것이다. 만일 기독교 신앙의 큰 변동을 주는 산 활동이 없다면 기독교는 오늘의 세계를 정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할 때에 다음과 같은 비유로 하신 것이다.
1대지 : 겨자씨 비유 (31~32)
겨자씨라는 것은 씨 중에 제일 작은 씨지만 그 속에 큰 나무를 이룰 수 있는 생명의 힘이 있으므로 밭에 심으면 자동적으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에 새까지 와서 깃들일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1)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지만 절대로 무엇이든지 역사를 시작할 때 인간이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올 때에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육안으로 볼 때에 미미한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필이면 세상에 탄생할 때에 찬 말구유 위에 누였다는 것은 인간들의 위신이나 도덕이나 또는 권리를 볼 때에 이것은 이치에 합당치 않는 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사람의 머리로써 도저히 옳다고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될 때에 농촌에서 양을 치던 이새의 가정에 어린 목자 다윗을 택해서 만 왕의 왕조를 삼았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만왕의 왕이 올 때에 목수의 가정에 태어나되 마구간에서 났다는 것도 너무나 미미한 일이요, 인류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동방 역사도 지렁이 같은 야곱을 들어 쓴다는 것도 미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니 적은 흙덩이로 사람을 만든 것도 천국을 이루는 인생 창조의 근본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을 이루는 것도 지극히 작은 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본질이 변치 않게 역사한다
씨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겨자씨지만 어디를 가져다 심든지 겨자나무가 이루어지는 본질이 변치 않고 나타나는 빛이나 맛이나 모양이 꼭 창조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인간이 진실치 못하고 변함이 많다 하여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목적을 이루어 놓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은 시작할 때가 생명으로 되었으니 끝도 생명이나 능력으로만이 이루어 놓는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산 생명의 약동하는 체험을 받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로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산 체험이 있다면 다 그리스도의 가지로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3) 유익을 주는 열매를 맺는다
기독교는 조금도 인류에게 손해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인류에게 참된 행복을 주자는 목적에서 열매를 맺는 종교니 그리스도 한 분이 작은아이로 세상에 탄생했지만 전 세계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며 큰 나라를 이루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인간들이 수많은 생명들로 천국을 이루게 된 것은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2대지 : 누룩 비유 (33)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가 아니고 자동적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누룩 비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1) 맛을 나게 하는 것이다
누룩이라는 것은 가루에 들어갈 적에 누룩 자체는 쓴 것 같으나 그것이 들어가므로 좋은 맛을 내는 것과 같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처음에는 쓴잔 같으나 이것을 받아들이고 보면 자연적 큰 변화를 받아 부드럽고도 맛있는 떡과 같이 가장 부드럽고 재미있는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 있다. 만일 어떤 기독교가 부드럽지를 못하고 좋은 맛을 잃어 버렸다면 이것은 참된 진리의 역사를 받는 교회라고 볼 수 없다. 언제나 진리라는 것은 큰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2) 발전의 힘이 있다
기독교는 그 진리가 들어갈 때에 누룩이 퍼져 나가듯이 조금도 어떤 세력이 막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힘이 있다. 아무리 핍박하고 억압을 준다 해도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불길이 일어날 때에 무서운 박해가 정권과 교권으로 있었으나 금일에 와서 무서운 박해를 이기고 세계를 복음화시킨 그 힘이라는 것은 그 진리가 산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기독교의 진리를 통하여 역사하는 종은 작은 일같이 시작하나 그 사회의 큰 변천을 일으킨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비유한 말씀대로 기독교는 대 확장을 이룬 금일에 와서 우리는 이것으로만이 끝이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기준하여 필연코 마지막 결실을 하는 역사는 새로운 왕국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나서야 된다. 지금 많은 기독교가 확장되었지만 참된 겨자씨의 열매가 참된 누룩의 변동을 일으키는 일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고 활동을 해야만 될 것이다.
제3과 심판에 대한 비유
- 마 13:36~43, 요절:4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는 주님편이나 마귀편이나 다 동등한 자유를 주어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주시고 심판한다는 것을 가르칠 때에 씨를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제 주님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가 있다.
1대지 : 주님의 역사
1) 좋은 씨를 뿌리심(36~37)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님을 보내서 역사할 때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을 말씀하시되 세상을 밭이라고 했고 좋은 씨를 천국의 자녀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에 모태로부터 좋은 씨로 택하여 세상에 나게 한다고 본문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좋은 씨가 되는 자라야 믿는 것이요, 나쁜 씨가 될 사람은 참으로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요10:26~29).
신앙이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종을 통하여 전도하는 것은 택한 자를 찾기 위하여 들어 쓰시는 것이다(행13:48). 그러므로 주님의 역사는 인간의 어떤 힘이나 방법이 필요가 없고 참으로 들어 쓰는 종을 통하여 택한 자를 찾으시는 데는 종을 강권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는 택한 사람이 종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고넬료 가정에 천사로 지시하여 베드로를 찾아가게 한 일이나 또는 베드로에게 지시해서 고넬료를 찾아가게 한 것을 본다면 전부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것 뿐이다(행10: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고 입을 열어 주는 대로 말씀을 증거할 것 뿐이요, 그 밖에 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므로만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써 전도하려고 계획한다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고 언제나 택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주의 인도를 따르는 종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행18:9~11).
2) 선과 악이 함께 자라게 둠 (마13:28~30)
하나님께서 지금 잠잠히 계신 것은 택한 자녀를 찾아 구원할 때까지 가라지 같은 악한 자들을 그냥 두는 것은 택한 자를 아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악자를 벌하기 위하여 세상에 심판을 나릴 때는 용서 없는 때이니 택한 자가 완전하게 준비할 때까지 잠잠히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택한 자가 완전한 열매를 맺기 전에 가라지를 불태워 버린다면 택한 자에게 큰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모르는 인간들은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이 더 왕성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되고 악자가 더 왕성하는 것을 볼 때 악자의 세력을 오히려 존중시하고 그 앞에 굴복하는 일도 있다. 자기가 어떤 곳을 갈 것이라는 걸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밭에 가라지가 더욱 키가 높아지고 더 왕성하듯이 심판기에는 악자의 세력이 머리를 들고 교만한 자리에 있다가 망할 것이다.
언제나 알곡이라는 것은 수가 적고 오히려 머리를 들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알곡이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 악자를 그냥 왕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나를 완전하게 되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경륜인줄 알고 완전 준비를 갖추어야만 될 것이다.
3) 천사를 보내어 가라지와 알곡을 갈라놓음 (39~41)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천사를 보내서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놓는 것은 다음과 같다. 어느 곳에 있든지 택한 자를 다 찾아서 한 곳에다 모으는 것이다(마24:31). 지금은 한 동네, 한 가정에 악자가 선자를 해치려는 일이 있지만 심판기에는 악자가 선자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천사가 와서 강권 역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택한 자를 진노의 날에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택함 받은 사람으로서 악자를 두려워할 것도 없고 타협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것 뿐이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역사하는 것이다.
4) 의인으로 해같이 빛나게 함 (42~43)
지금은 악자들이 더 빛나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지만 새로운 왕국이 올 때는 악자는 슬피 통곡을 하게 될 것이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는 크게 빛나는 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에게 권세를 주어서 쓰는 것은 의로운 자에게 더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이 세상이라는 것은 악자가 자기 세상같이 알지만 심판 날에 가보면 악자는 모든 한 일이 의로운 사람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모략 아래서 있는 것 뿐이다.
2대지 : 마귀의 역사
1)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하는 영이다(마13:39, 엡2:1~2)
하나님은 언제나 마귀에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은 불택자를 다스리는 권세를 준 것이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 마귀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조롱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도 짐짓 주님을 바알세불이라고 했고,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할 때에 악자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악평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지를 않았다(마13:11).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의 종으로 하여금 왕권을 받는 일에 더 큰 축복이 되게 하는 방법이다(마5:11~12).
2) 수가 찰 때까지 참소권을 줌(계12:7~10)
하나님께서 마귀의 권세를 들어서 택한 종을 참소하는 것은 완전한 왕권의 반열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자만 수에 채우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이 아니고는 의로운 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성신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시에 악령과 대립을 시키는 것이다(엡6:10~13).
3) 천하를 꾀이게 함(계13:7~8)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새 시대를 이루는 심판이라는 것은 마귀의 표를 받고, 받지 않은데 대하여 심판하는 것이니 심판기까지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마귀와 대립을 시켰는데, 첫째아담이 이기지 못하므로 전 세계 인류는 마귀의 권세 아래 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둘째아담 예수를 보내서 역사할 때에 택자와 불택자를 위하여 마귀와 주님과의 대립을 시켜서 주님이 완전히 승리하시므로 누구든지 택한 자는 다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므로 주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4과 시대적인 역사를 비유함
- 마 13:44~50, 요절:4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진리운동을 하게 하시되 때를 따라 그 시대 사람에게 합당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다음과 같이 역사한다.
1대지 : 값진 보화를 찾는 비유 (44)
기독교 복음 운동은 온 세계 인류에게 역사하는 것을 값진 보화를 발견하는 자와 같이 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세계 사람이 영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 아무런 보화가 없는 생활을 하던 인간들에게 인생의 가장 만족을 줄 진리의 보화를 찾게 할 때에 모든 사람은 다 기뻐서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자기의 소유를 삼는 것이다.
이제 감춘 보화를 발견한 자의 행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기뻐함
2) 희생인데 누구든지 기독교의 숨은 보화가 되는 진리를 찾게 되는 사람은 억지가 아니고 참된 기쁨을 가지는 동시에 보화를 사는 것같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니 우리는 기독교 복음운동을 할 때에 남을 억지로 지배할 필요는 없고 복음의 진리 하나를 그들이 깨닫도록 할 것 뿐이다. 만일 어떤 전도자가 참된 보화를 남이 찾도록끔 해 주는 역사를 떠난다면 그 교회는 완전히 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것은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라는 것은 소망이 확실할 때에 자동적으로 모든 일을 희생해서 하는 것을 참된 자유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교회를 반대하고 교회는 하등에 자기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자라도 그 교회 안에 있는 숨은 보화를 찾게 될 때에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교회를 세우려는 것이 기독교 은혜시대의 진리운동이라는 것이다.
가장 힘있는 단체라는 것은 외형적인 일에 속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잘 알 수 없는 숨은 비밀에 확실한 소망이 보일 때에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기독교를 반대했지만 그 속에 있는 보화를 발견할 때에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같이 보고 그 진리를 위하여 희생해 가며 교회를 세우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빌3:8~9).
2대지 : 진주를 찾는 비유 (45~46)
기독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듯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섰다 하더라도 이날까지의 모든 교회는 값진 진주와 같은 참된 진리의 비밀을 발견치 못한 일이 많이 있으니 이것을 찾기 위하여 많은 종들은 성경을 해석하되 각 방면으로 해석하여 진리를 탐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진주를 찾듯이 많은 사람이 기독교 안에 가장 귀한 진리를 완전히 찾게 되는 역사가 있다.
이것은 완전히 승리하고 지상왕국을 이루는 진리라고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죽은 영이 산다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만나는 것과 같고, 중생 받은 사람이 진리의 다림줄을 찾으므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은 진주를 찾는 장사와 같이 이날까지 모든 종들이 알고자 하던 진리요, 밤을 새워 가며 연구해 보던 진리다. 그러나 말세 변화성도로서만이 이 진리를 바로 찾아서 그 진리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까지 승리해 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날까지 찾던 것은 말세 비밀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찾은 자는 이 말씀을 완전히 자기의 소유를 삼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진주라는 것은 어두운 가운데도 빛을 내는 것이니 종말의 진리는 어두운 데서도 빛이 되는 완전역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진주와 같은 진리로써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 승리를 이루고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참된 진리를 찾던 자들은 하나같이 무장을 갖추게 될 것이다.
3대지 : 그물을 치는 비유 (47~50)
기독교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온 세계 인류에게 완전한 다림줄의 진리를 전파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나리고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역사인데 이것으로 완전한 끝을 맺는 역사이다. 아무리 진리를 듣고라도 그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다 버리고 완전히 순종하는 자로써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주님은 바다에 그물을 치는 비유를 가르친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듣고 순종치 않는 자는 버릴 것이요, 순종하는 자만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의인과 악인을 완전히 갈라놓고 심판하는 것이니 종말의 진리를 전파할 때에 이것을 듣고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은 다 악인으로 취급하고 전멸시킨다는 것이다. 크고도 위대한 역사는 종말의 그물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세계에 전도할 때라고 본다. 이날까지는 개인적인 구원 문제를 두고 역사했지만 말세의 심판기의 역사라는 것은 전 세계 인류를 구원할 자는 다 구원하고 버릴 자는 다 버리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때는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동원하여 택한 자를 위하여 적극적인 역사를 하므로 의인과 악인을 갈라놓고 심판하는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쓰시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쓰신다.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보화를 받아 가지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우리는 감추인 보화 같은 예수님을 찾았으며, 귀한 진주 같은 종말의 진리를 완전히 찾아서 온 세계 인류에게 큰 구원을 베풀며 심판을 나리는 재림의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최선의 희생적인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논 설 편
1. 영계 혼란을 벗어난 말씀의 종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계 혼란으로 큰 미혹이 올 것을 미리 통과시켜 주신 것을 감사하는 바입니다. 내가 이런 영계 혼란을 거쳐 나온 것은 오히려 말씀의 종이 되는 영적 신학의 한 과정으로 봅니다.
우리의 신학이라는 것은 학설로써 끝을 맺지 못하고 직접 혼란을 가져오는 마귀의 세력과 체험적인 생활에서 마귀의 흑암은 사랑하는 종에게 무엇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쓴 잔의 시련을 통과하는 생활에서 알게 될 때에 말씀을 바로 변론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 받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사랑하는 종에게 마귀의 흑암이 어떤 방법으로 온다는 것을 체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교파심이라는 것은 마음에 마귀의 흑암을 가져오는 문이 됩니다. 내가 과거에 장로교 외에는 다 이단이라는 교파심을 가지고 나가다가 큰 흑암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 교파는 정통이라는 마음이 철저하던 사람이 되어 19세 때에 마귀의 흑암을 받게 된 것은 어린 집사로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과오를 볼 때에 반박하는 마음이 생겨서 흑암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 후에 깨달은 바는 하나님의 종들도 사람이니 만큼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할 적에 실수한다는 것을 깨닫고 실수하는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에 지금은 그런 압력을 받지 않습니다.
2. 소위 순 복음주의라는 사상에 흑암을 받아 보았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으니 그 밖에는 감사한 것 뿐이고 무엇을 철저히 해 나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큰 흑암을 받아 방랑적인 생활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큰 잘못인 줄 알고 철저히 회개하고 목숨을 바치고 싸워 나가면서 말씀을 위하여 순교적인 생활을 한다는 결심에서 나설 때에 그 흑암은 물러가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순교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면서 나섰다가 순교를 못하게 될 때 탕개가 끊어진 창애같이 아무런 힘이 없이 안락을 따라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질 때에 흑암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소성한 것은 육이 죽는 순교보다도 내 마음에 있는 인간성을 죽여 보려고 해산의 수고를 다 하다가 중심에 뜨거움을 받게 될 때에 다시 큰 힘을 얻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4. 중심에 성결을 체험하고 나는 신같이 된 것으로 알고 아무런 시험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가 마귀의 잘못된 지시가 올 적에 흑암을 받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 보려고 애를 쓸 적에 말씀이 밝아지는 동시에 믿을 것은 말씀밖에 없다는데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5. 말씀을 밝히 알아 남을 가르치는 자가 되었으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해치려고 모략을 할 때 흑암을 받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큰 새 힘을 받고 나올 때에 다시는 흑암의 세력이 침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영감을 받게 되어 진리를 변론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이제 깨닫는 바는 영계 혼란을 거치므로만이 신앙은 향상되고 인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흑암이 없으므로 향상이 아니고 흑암이 덮여도 거기서 깨닫고 나갈 때에 흑암을 통하여 일층 더 새로운 영계로 올라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은 실천 신학의 한 과정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이때는 어느 종이나 종말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 완전히 통달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오는 마귀의 큰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 봅니다.
영계라는 것은 혼란이 없이 나간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말입니다. 혼란이 있을 때에 영계적으로 나가던 자가 후퇴하고 이지적인 학적이라는 논설만 가지고 나간다는 것도 퇴보라고 봅니다. 영계는 반드시 혼란을 뚫고 나가므로만이 다시 그 혼란이 오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한 나로서 간단한 간증의 글을 쓴 것입니다.
2. 영계 혼란을 수습할 길은 무엇인가
금일에 기독교 영계 혼란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일은 혼란이 무엇 때문에 오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마귀 흑암의 권세를 개방시킨 일이 있기 때문이다(계9:1~4).
왜 이렇게 하느냐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날까지의 기독교 영계 활동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하여 역사하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마귀 흑암을 가두어서 기독교에 영계를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마귀 권세 아래서 죽은 영들을 살리는 운동이니 만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통하여 마귀가 물러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예수님의 권세가 그 영을 죄에서 해방시킬 때에 자녀가 되는 권세를 무조건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었던 것이다(요1:11~12). 그러나 지금에 와서 마귀의 권세를 개방시킨 것은 변화성도를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중생 받은 자로서 아무리 마귀 미혹이 와도 그 미혹을 받지 않고 말씀으로 승리하고 이긴 자라야 남은 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귀 권세를 허락해서 성도를 대항하도록 하기 때문에 영계의 혼란기가 오는 것이다.
2. 영계의 활동법이 바뀌는 때이므로 오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종들이 종말관을 바로 증거 못해도 십자가 부활을 바로만 증거한다면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 하는 종을 통하여 환란 가운데 남은 교회가 되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예언의 말씀이 아니고는 도저히 마귀 흑암이 물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증인 권세로 종말의 예언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변화성도를 모아서 한 단체를 이루어 마귀의 앞잡이 거짓 선지자와 싸우는 때이므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완전 무장을 주기 위하여 마귀의 흑암을 개방시켰으니 완전 무장이 못된 자는 얼마든지 혼란에 빠지게 되는 시기가 있으므로 극도로 영계가 혼란해지는 것이다.
3. 종들을 시험해 보는 때이므로 극도로 혼란해지는 것은 아무리 영계가 밝은 종이라도 시험을 해 보고야 새로운 역사를 주기 때문에 과거의 은사만 가지고는 도저히 혼란을 수습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새로운 역사로 들어 쓰기 위한 방법이다. 예를 든다면 무슨 단체든지 그 단체의 법을 변동시키려면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종들을 들어 쓰는 방법이 달라질 적에 종들의 영계 상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에 대표적인 사람을 세워서 혼란한 영계를 하나되게 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을 말세의 증인 권세 역사라 하는 것이다.
영계 혼란을 수습하는 길은 다음과 같다.
1. 완전 개조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은혜시대에는 그 영이 중생 받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때이므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나가서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때이지만 마귀 권세가 개방을 받을 때는 중생 받은 영으로서 그 몸까지 완전 개조를 받아 변화 승천할 수 있는 인격을 받아야 된다. 중생은 영이 사는 역사요 개조를 받는 것은 몸이 성결하게 되므로 피곤이 없는 동시에 죄의 몸이 영생의 몸으로 바꿔지는 역사를 말한다. 이것은 새 힘으로 되는 일이다(사40:30~31). 이 새 힘을 주는 목적은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환란에서 역사하는 종의 인격을 이루어 주는 것이다(사41:25).
2. 말씀 변론이 밝아야 한다
이것은 마귀의 세력을 들어서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만을 남은 종이 되게 하기 위한 방침이니 어느 종이나 말씀 증거가 바르지 못하면 사8:20 이하와 같이 흑암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은사의 종이라도 말씀이 혼선되면 마귀 흑암에 떨어져서 혼란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 권세 역사로만이 역사하는 때니 촛대교회 사자가 되려면 말씀에 가감이 없는 증인이 되어야만 될 것이다(계11:3~4).
3. 순교자 동무로 인정을 받아야 된다
마귀 권세를 개방시킨 것은 누구든지 순교자의 뒤를 따르는 생활이 아니고는 신앙 영계를 보존하기가 어려운 혼란이 오게 된다. 이것은 순교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진노의 날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극도로 괴로운 시련이 있게 해서 순교자의 동무가 되는 자라야 하늘에서 인정을 하고 순교자들의 기도가 그들에게로 강한 응답이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세에 남은 종으로써 피 값을 갚는 싸움을 싸우게 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순교자의 동무로 인정을 받는 자라면 강한 영감이 위로부터 올 때에 사자같이 강한 용사가 되는 것이다(미5:7~9). 기독교는 이제부터 앞으로의 영계 혼란을 수습하는 길이 무엇이냐는 것을 분명히 바로 찾아 나가지 못한다면 남은 종과 남은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역사가 어떠한 종을 통하여 어떤 방침으로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면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를 세밀히 대조하여 볼 때에 7:2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온다고 했고, 8:3~5에는 이미 담겨있는 향과 성도의 기도가 합한다고 했고, 10장에는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친다고 했고, 14:6 이하에는 영원한 복음을 들고 바벨론이 망하되 누구든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자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영계 혼란이 올 때에 새로운 역사가 해 돋는 동방에서 나와서 그 역사로 말미암아 원수의 세력이 완전히 망하고 지상에 새로운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3. 반공 투쟁과 종교인
금일에 반공이라는 간판 밑에 모든 국민은 시선을 그곳에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반공이라는 자체의 목적을 어느 곳에다 두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1. 자본주의적 반공 투쟁
이것은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시키는 정치를 반대하는 것이다. 소위 공산국가 건설이라는 간판 밑에서 사회주의가 있으니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시켜 국체를 부강케 하기 위하여 전국민의 노력이나 물질이나 언론이나 모든 활동을 자유를 주지 않고 사회주의 노동당의 정권 아래 무조건 굴복하라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위한 국민으로서 자유가 없다는 것은 한 공산국가를 이루기 위한 사회주의 노동당의 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농장에서 농사를 하는 사람이 소를 부릴 때에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해야만 되는 것과 같고 품을 파는 사람이 품을 사서 부리는 주인에게 하루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거와 같이 사회주의 국가 안에 있는 국민의 생활은 생명 없는 기계같이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은 얼마든지 자기가 활동하면 자본을 가질 수 있고 자본이 있는 자가 권리를 가지고 자기 마음껏 호화롭게 생활할 수도 있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목적한 자본주의 정치는 반공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반공 운동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결부된다.
소위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자본을 가진 자는 권리가 있고 자본이 없는 사람은 권리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사회가 될 적에 자본을 많이 가진 자는 소수요, 가지지 못한 자가 다수인 환경 속에 반공이라는 사상이 자본에게만 있다는 사상은 흙같이 무른 무력한 사회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이 없는 자가 반공 사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반공이라는 사회가 단결이 못되는데서 자동적인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없지 않다.
2. 종교적 반공 투쟁
종교라는 것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가 되므로 종교인은 정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어떠하든지 모든 국민의 사상을 좋은 길로 이끌어 주자는 목적에서 인생의 큰 복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종교라는 것을 공산주의의 방해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무신론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신의 존재가 객관적으로 있다고 보지 않고 자연의 물체를 신과 같이 여기는 동시에 물체가 움직이는 활동을 과학으로써 하게 될 때에 얼마든지 과학 발전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을 쓰는 데는 신을 숭배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은 하등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으로서는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종교 반공 투쟁이라는 것이다.
3. 기독교인의 반공 투쟁에 특수한 점은 기독교인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신앙의 정로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탄생하기 전에 모든 선지를 통하여 장래를 예언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어린아이로 날 것을 말했고 그가 복음을 전파할 것과 십자가에 죽을 것과 부활 승천할 것을 말했고 성신이 강림할 것을 말한 동시에 이 역사가 세계 인류적으로 전파될 것을 가르쳤다.
이 선지들의 예언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700여년 전 시기에 예언한 말씀인데, 서기 1970년 되는 금일에 시대의 조류를 선지 예언과 맞추어 보면 일점일획도 희미하지 않고 햇빛같이 밝게 나타나는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금일까지 기독교는 죄를 사하고 그 영혼이 천당 간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말세 비밀이란 진리를 계시록과 선지서를 통하여 대조해 보면 인류 종말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는 무신론적 정책이 북방에 자리 잡고 백성의 경제 자유를 박탈하고 모든 사람을 압박하는 정치를 하는데는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나오다가 그리스도가 그때에 재림하므로 북방 세력이 다 망하고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통치 왕국이 온다고 가르쳤다.
그러면 이것을 믿는 기독 신자가 반공 운동을 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같이 개인의 자본을 옹호하자는 목적보다도 모든 종교인들이 종교 신앙 자유를 찾자는 목적보다도 좀더 들어가서 공산당은 북에 자리잡고 기독교를 짓밟고 진리를 대적하고 나오는 것은 분명히 심판의 대상자라고 보는 것이다.
이 세력이 망하는 것은 자연을 초월한 신의 역사가 주 재림기에 나타나서 북방을 무찌르고 짓밟고 나간다는 말씀과 북방 세력이 다 심판을 받고 새 시대가 올 때에, 북방의 정치와 타협을 한 자는 누구든지 다같이 심판 받을 것을 분명히 말씀했으니, 우리 기독교인의 반공 투쟁은 경제 자유나, 언론 자유를 목적한 것보다도 공산 국가는 반드시 망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성경에서 믿기 때문에, 아무리 공산당이 강하게 일어난다 해도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말씀에서 무장하여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싸워 나간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반공 투쟁의 특수한 점이라는 것이다.
4. 과학 발전과 기독교의 사명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 대적이 될 수도 없고 서로 떠날 수도 없고 과학과 기독교가 그 위치를 바로 움직일 때에 완전한 인격도, 완전한 사회도, 완전한 국가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과학 발전을 할 수 있는 정신 작용의 기능도 주셨고 또는 얼마든지 종교도 발전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룰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이제 과학 발전과 기독교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과학이 발전되므로 기독교는 완전한 진리를 증거할 때가 왔다.
이날까지 기독교는 영혼이 천당 간다는 진리를 전하는 것만은 완전한 진리 운동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되므로 이 땅에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온다는 것을 증거하려면 오늘의 과학 발전이 되므로만이 모든 선지의 예언과 계시록을 증거할 수 있다.
그러면 과학 발전이라는 것은 그것으로만 완전이 아니고 과학이 발전되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룰 수 있는 시대적인 증거가 되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된다. 과학이 발전되므로만이 기독교의 종말의 세계적인 복음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세계 인류의 전멸이라는 환란과 재앙도 있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종말론이다.
모든 선지는 종말론을 말할 때에 하나님께로 묵시를 보았는데 교통이 극도로 빨라질 것을 보았다(단12:4, 나2:4).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환란은 공기가 불이 되고 사람이 횟돌같이 되는 환란이라고 사33:10~12에 말했고, 심판기에는 인간 지혜와 지식이 별세계까지 간다고 옵1:4에 말했고, 인간의 지식이 발달되므로써 극도로 사치한 세상이 될 것을 계18:5이하에 말했다.
또는 사람들이 극도로 인간 지혜와 지식에 미혹되어 자기밖에 없다고 한다고 사47:10에 말했고, 온 세계 인류는 한 시간에 불사름을 당한다고 계18:9~10에 말했다. 그밖에 모든 성경은 다 하나같이 북방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나올 때는 세계 인류는 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자기 중심에서 극도로 방탕한 사회가 될 것을 말했으니 우리는 이때에 기독교가 일할 사명이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2. 기독교가 이때에 일을 해야 할 사명은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활동하여야 된다.
우리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도 필요 없는 말이요 세계를 불태우는 전쟁이 오지 않도록 함으로만이 기독교의 사명을 한다는 것도 필요 없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을진대는 이러한 때에 살길이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에서 분명히 가르칠 수 있다. 만일 기독교가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지 못한다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주님 다시올 때는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 있다고 말한 것은 영혼 구원만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니, 성경을 비추어 볼 때에 사람이 극도로 빠른 교통을 하게 된 것도 주 재림기에 될 일이라고 했고, 세계 인류와 공기가 불이 되는 전쟁이 나온 것도 주 재림기에 될 일이라고 말했고, 인간 지식이 별세계까지 가는 것도 주 재림기에 될 일이라고 말씀했으니 우리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들이 당할 환란과 활동할 역사와 받을 축복이 무엇인 것을 과학 발전을 이룬 금일에 와서야 분명히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과학 발전이 지금같이 되는 일이 없다면 증거할 수가 없는 것이로되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현실에 와서 이 시대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는 말씀이 계시록이요 선지서라고 보게 된다. 지금 이때는 특별한 주석이 필요 없고 성경 본문 그대로 읽어서 이 시대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본다.
5. 근심많은 성도의 가정
인생의 근심은 왜 있느냐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근심이란 자체는 범죄한 인생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한 인생이라도 두 가지 근심이 있다고 본다. 소망이 없는 근심은 죽은 영의 근심이요, 소망이 있는 근심은 산 영의 근심이다. 오늘의 산 믿음을 가진 성도의 가정에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대를 만났다고 보게 된다. 어찌하여 참된 성도의 가정에는 근심이 있을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시대를 근심한다
이 시대라는 것은 성도에게 큰 시험이 오는 때이므로 이 시험에 이기지 못하면 다시는 성도가 시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려운 문제를 앞에 놓은 사람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대하여 근심하는 것은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려운 문제가 닥쳐와도 아무런 근심을 하지 않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있다면 이 사람은 그 사명을 감당할 소망조차 끊어진 상태라고 본다.
이와 같이 금일에 어떤 신자가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세속으로 흐른다는 것은 자기 사명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한 자인 동시에 아무런 소망조차 똑똑하지 못한 신자라고 본다. 누구든지 산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이때에 이 시대를 알고 근심치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 되는 일은 전부가 성도의 신앙에 대적이 되는 것만 왕성해가기 때문이다.
오늘의 과학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참된 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기쁨을 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근심을 주는 일이 많이 있게 된다. 이것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참된 신앙의 사상을 지키기가 어려운 난제가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산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이 시대를 근심하면서 왜 이러한 시대가 오느냐에 대하여 다시 한번 성경을 읽어볼 필요가 있고 그 성경에서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지식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 시대에는 어떠한 노선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닫기 전에는 모든 것은 다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율법 시대가 끝이 나고 은혜시대로 바꿔질 때도 외식하는 바리새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악평하면서 자기가 큰 승리를 보았다는 듯이 날뛰고 있었지만 참된 신자들은 크게 근심하게 된 것은 예루살렘이 앞으로 망하게 될 것을 근심했던 것이다(롬9:1). 근심하던 사도들은 오히려 영계가 새로운 역사를 하는 자가 되었지만 사도를 악평하고 자기네 권세를 내세우려고 하던 유대교는 다 망하고 만 것이다.
오늘의 이 시대는 분명히 은혜시대에서 환란 시대로 바뀌는 시대라는 것을 분명히 안 성도들은 금식하며 밤을 새워 눈물 흘려 기도할 수밖에 없는 때라고 본다. 이제 다시 전쟁이 난다면 미리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던 자들이 남은 자가 되고 아무런 근심없이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음녀적인 행동을 하던 자는 분명히 망할 때가 왔다고 본다. 인류 역사상 이같이 무서운 환란이 있는 시대는 다시 없다는 것을 성서에서 알아야 한다.
2. 시온 대회를 위하여 근심한다 (습3:18)
지금 이때에 성도로서 근심하는 일은 기독교에 관한 일이다. 과거에는 교회의 상부가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워주는 일이 있으므로 따라가는 양떼들이 진리의 바른 노선을 찾아서 교회를 세웠지만 금일에 와서 오히려 양떼가 강단에 선 종을 근심하고 심지어 은혜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상태에 들어갔다.
과거에는 성령을 충만히 받은 종이 양떼가 성신 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사도의 활동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신 받은 교인들이 성신 받지 못한 자가 강단에 서는 것을 눈물겹게 생각하고 오히려 금식하고 강단에 서는 종이 은혜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광경은 가련하기 짝이 없다.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상부의 결정이라는 것은 오히려 참 종을 몰아내는 사단의 회가 되었으니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어찌 근심치 않으리요.
양떼들은 피 흘리기까지 싸우려고 결심하는데 앞장을 서야 할 종들이 오히려 협상주의 노선을 걸어가며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협상주의 노선의 길로 끌어 보려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될 것이냐는 교회 장래를 근심하게 된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독수리 같이 올라가야 될 종들이 땅만 바라보고 기어다니는 유물적 정책과 보조를 맞출 수 없다. 하늘의 것을 사랑하는 사상과 짐승같이 땅의 것만 사랑하는 사상과 어찌 한자리에 앉아서 합의를 볼 수 있으랴.
그러므로 계13:15에 다른 짐승이라고 한 것은 소위 종교 지도자로서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거짓 선지를 가르친 것이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리엘을 대적하니 아리엘은 약할대로 약해지는 자리에서 음성조차 낮아진다(사29: 1~4). 하나님은 참된 성도의 근심에 잠기어서 부르짖는 그 눈물을 받으시고 원수를 갚는 진노의 날이 임박했다. 남은 좋은 때가 왔다고 날뛰는데 오히려 근심하는 성도의 가정, 이 시대의 숨은 비밀 알고 보니 근심 중에 새 힘을 받도다.
3. 생활 염려의 근심 (눅21:34, 사41:17)
거짓 많은 세상에 양심대로 살아보려는 성도의 가정, 억울하게 사기를 당하고 보니 사업조차 실패하고 아들 딸 앞에 놓고 탄식하는 그 소리 가련하도다. 내 마음같이 믿고 도와주었건만 보람없이 되고 보니 오히려 미움 받고 쫓겨나는 그 광경 가련하도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천신만고 다하여서 자녀를 길렀건만 할일 없는 실업자 되고 보니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쓴잔이 되었도다. 주일 성수 하려고 하다보니 취직할 길 없어 방황하며 신앙을 자라게 하는 교회를 찾아갔다가 소방대같이 은혜의 불을 끄는 교회에 가 상처를 받고 이것 저것 할 일 없어 방황하다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지개 켜며 잠자는 그 모양 가련하도다.
슬프도다 잠자는 자여, 낙심 말고 일어나라. 가련한 자 복 받는 심판의 다림줄 동방에 나타났다. 화려한 생활 부러워 말고 심판주를 맞이할 준비 갖추어 새 시대 보자. 잠깐동안 근심 중에 밤을 새워 부르짖던 성도의 기도 응답이 내리므로 주의 천사 보호하여 승리의 길을 가게 되리. 사람이 무엇을 주고 성도의 믿음 빼앗을 수 있을까.
산 믿음 가진 성도, 근심은 많지만 은혜도 많도다. 화려한 교회 찾아가 상처를 받았지만 천막 교회 찾아갔다가 새로운 힘을 받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성도들이 많도다. 근심 중에 절개있게 일하는 자들아 신랑 주를 맞이할 그 날에 세세 영광 누리는 큰 기쁨 받으리로다. 근심도 할 때가 있고, 위로도 받을 때가 있으니 택한 자를 까불어보는 시련 속에 낙심 말고 나간다면 끝까지 기다렸다는 그 생활, 새 시대 가는 열매가 되리(사25:9).
신 앙 문 답
【문】1. 삼위 일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삼위 일체라는 것은 그 언어 자체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일체란 뜻은 사상, 정신, 목적, 활동이 동일한 것을 뜻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무엇이나 여호와라고 이름을 말씀하면서 나타나기도 했고 말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라는 신은 나는 스스로 있는 신이라고 했으니 스스로 있는 신은 조물주를 말하는 것인데 조물주께서 역사할 때에 우리가 우리 형상이라 한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역사하시되 동거하는 신이 있었다는 것이 내포됩니다.
그러므로 예를 든다면 한 집이 있는데 집의 모든 일을 아버지가 하지만 그 안에 아들이 있고 식구가 있을 때에 그 모든 일은 가장의 주권 아래 있되 가장이 하는 일을 협조하는 것과 같은 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여호와라고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아들을 통하여 역사할 것과 성신으로 역사할 것을 예정하시고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낸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천국을 위한 것인데 천국이란 것은 신의 삼위의 영광을 중심하여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신만으로서 나라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창조하여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리는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는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없는 자격이므로 하나님은 간교한 뱀을 만들어 꾀어 보고 사람이 말씀에만 순종할 때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생명과를 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성 삼위의 영광을 같이 누릴 수 없는 인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의 활동은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1. 약속을 세움
이 약속이라는 것은 네가 타락하였지만 나는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고, 부활하게 하고, 승천하게 하여 왕국을 건설하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성신을 부어 주어, 아들과 동등한 왕권을 받는 자의 수가 찰 때에 마귀의 세력을 없이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마귀의 말을 순종하던 자는 다 유황 불 못에 던지우고, 끝까지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자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되 이 천지를 새롭게 해서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을 다시 찾게 하고, 다음에 신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하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이 성립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인간에 나타나 누구든지 그 책을 보고 종교 신앙을 갖게 한 것이 기독교의 근본 진리의 말씀입니다.
2. 아들로 약속을 준행함
영광이란 것은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누릴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것이니 아들을 사람의 인격을 가지게 하되 첫째아담과 같이 흙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성신으로서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역사해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만민을 약속의 말씀대로 구원하기 위하여 죄의 대가를 걸머진 제물로써 십자가의 화목제를 이루고 부활 승천케 하는데 까지 성자를 통하여 역사한 것입니다. 이것을 도성인신한 성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3. 성신으로 약속을 준행함
이것은 아들을 통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중생 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은 인생으로서는 성신을 받을 자격이 없으나 아들의 피로 산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아무리 중생을 받았더라도 인간 자력으로는 왕국을 이룰 수가 없음으로 성신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인간을 지혜롭게, 약한 인간을 강하게 해서 마귀와 싸워 승리하게 하시므로써, 아들이 승리한 것같이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승리한 자를 왕국 반열에 들게 하고, 그 수가 찰 때에 하나님은 원수 마귀를 역사하지 못하도록 없이하는 것을 심판이라 하는 것인데, 이 때에 아들을 보내서도 믿지 않는 자와, 성령을 보내서도 순종치 않는 자와, 또는 예언대로 보호하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를 다 없이하고, 예수를 믿고 성신을 받은 자가 예언을 지킨 대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성부 성자 성신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있으므로 조물주 하나님은 다시 새 일을 행하므로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더러워진 천지를 다시 새롭게 해서 조물주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된 사람으로 누리게 하므로 성부 성자 성신은 사람과 같이 동거하며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길이 길이 받으시면서 당신의 사랑의 뜻을 이루는 영생의 기업을 사람에게 주어서 신의 영광 안에서 길이 길이 찬송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 일체라 하는 것입니다.
【문】2. 기독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기독교는 조금도 복잡성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는 사람이 어떤 신을 찾거나 어떤 진리를 연구하거나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신께서 사람을 찾고 신께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원칙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금일에 기독교가 복잡성을 띠게 된 것은 신앙의 대상자인 하나님의 불완전이 아니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자들의 과오라고 보게 됩니다. 그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탄생한 것이나 교훈한 것이나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으로써 완전한 교회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부활을 증거하라 모든 죽은 영혼도 다 중생을 받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해서 민족적 국경적 차별이 없이 다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을 뵈올 수 없고 다락방에 들어와서 합심하여 기도를 하던 중에 오순절에 홀연히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큰 불이 혀같이 나타나서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던 그때부터 큰 역사는 일어나서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반대하던 자라도 그 역사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에 건너가 로마에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주후 66년경에 네로 황제라는 악한 임금이 거짓 흉계로 로마 도성에 14개구나 되는 도성을 10구를 자기 손으로 불살라 놓고 기독교인이 이렇게 했다는 누명을 씌워 가지고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일을 할 때에 모든 사도는 다 세상을 떠나되 순교로 세상을 마친 것입니다. 그 후에 기독교는 200년이 가까운 세월을 지상에서 예배를 못드리고 카타콤이라는 산 속에 굴을 파고 거기서 신앙을 보존하며 성서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노 황제 때에 기독교는 큰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어 황제 명령으로 교회를 움직이며 포교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카타콤에서 나온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고 다음에 사람들이 성신의 역사보다도 권리를 쥐고 소위 카톨릭이란 이름 하에서 교회가 사도적인 시대의 교회와는 달라지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이 원인은 카타콤의 성도들의 신앙을 본받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들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숭배라는 것은 그들이 보던 성경이나 그들의 해골이나 또는 패물 기타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자기네는 정통이란 것을 자랑하기 위하여 무형적인 영계 운동보다도 유형적인 어떤 기념품, 사진, 동상 등의 숭배가 시작되어 성신의 법을 어기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질 될 때에 소위 교황이라는 교권이 나와서 신자들의 신앙을 구속시켜 성신의 활동을 못하게 하고, 교황이 명령하는 것만을 순종해야 정통이라는 데서 교회는 진리가 암흑 세계로 들어가고, 교인들은 성경을 듣지 못하고 교황이 기록해 보내는 글만을 가지게 되므로 신앙생활이 전부 의식화되고, 봉건주의적인 교황 권리 아래에서 예속화되는 자리에까지 들어가므로 로마 교인은 이대로 있어서는 도저히 사도들이 전한 교훈의 광명을 세계에다 비출 수 없는 자리에 떨어졌으므로, 하나님은 루터라는 사람을 들어서 쓸 때에 복음의 비밀을 성신의 계시로 알게 해서 교황의 모순된 점을 95조나 발견하여 반기를 들 때에 이것을 비롯하여 종교 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생명이 피해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구교와 신교라는 양파가 생기어 세계적인 선교 활동을 동등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와서 소위 신교라는 파에서 많은 종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신앙 자유를 부르짖는 간판 밑에서 성신의 역사로 시작되었지만 그 자유가 세속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교회는 복잡성을 띠는 폐단이 있으므로 그때 그때에 영계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부패한 교계를 다시 신령한 운동을 일으킬 때에 부패한 교권이 반대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장구한 시일이 흘러갈 때에 많은 교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각 교파가 시작은 신령하게 한다고 했지만 교회가 확장될 때에 또다시 부패성을 띠게 되고 보니 신령한 사람은 소수요 부패한 자가 다수가 될 때에 민주주의 정책을 쓰는 신교는 자동적으로 분열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황의 명령에서만 움직이는 교단이므로 아무리 의식화되고 세속화되었다 하더라도 분열을 가질 수 없는 교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일에 와서 소위 신학자라는 인물이 신 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하는 것을 들고 나오는 현실에 신학계에 큰 복잡성을 띠게 되어 종된 자들이 자기가 들고 나온 신학을 중심하여 교파를 세우고 성경의 원리를 중심하지 않고 신학설을 중심할 때 성경은 오히려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가 이렇게 복잡성을 띠는 이때에 소위 통합이니 합동이니 하는 간판을 들고 야단을 치지만, 이 시대는 어떠한 때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성도들이라면 여기도 저기도 가입할 필요없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성경에서 시대를 바로 알고, 성경에서 우리의 시대적인 사명이 무엇인 것을 바로 알아 현대에 닥쳐오는 난국을 어떻게 돌파한다는 것이 성서로서 분명히 알 것이니, 우리는 복잡한 신학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목적하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맞추어서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계10:6~11).
【문】3.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이것은 인간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올 때에 남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계7:1이하를 보면 땅과 바다가 큰 피해를 당할 바람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불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다른 천사를 통하여 있는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다나 땅이나 나무나 해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진노의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을 종이 되려면 은혜시대 종으로서 다시 무장을 해야 된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엡1:13을 보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종된 사람에게 오는 인이 아니고 죄인으로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에 받는 성령의 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14만 4천명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사명자들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성신의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과 이마에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이 성서를 보아서 다른 시대라고 봅니다. 계9:4에 보면 첫째 화가 올 때에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검은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오는데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을 보면 인 맞은 종이라야 첫째 화를 피한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화가 오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각 지파라고 한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선지를 통하여 아무리 이방 세력이 강하게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만 필연코 승리는 이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새로운 왕국을 이룰 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한 것을 보면 이방 세력을 없이하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종이 이 14만 4천을 현재 아랍과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이라고 본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에 의하여 큰 모순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으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율법주의자와 싸웠던 것입니다(갈3:28~29). 만일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못되고 현재에 십자가의 도를 배반하는 중동의 이스라엘국이 진짜 이스라엘이라면 십자가는 하등에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계5:9을 보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한 것을 보면 피로 산 백성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요 또는 왕권을 가진다고 한 것을 보면 지상 왕국은 피로 산 백성으로 이루어지되 종들을 통하여 왕국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동방 해 돋는 데라고 한 것은 사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사명이 14만 4천을 일으키는 사명이라고 보게 됩니다. 14만 4천은 강한 용사로서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군대가 되는데 12지파의 모양으로 12반열이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록을 보일 때 변화성도가 일어날 시기, 일어나야 될 환란, 또는 붉은 세력을 없애버릴 심판의 재앙을 뜻한 것이니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14만 4천명으로서 끝을 맺는 역사가 되고 이들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성도가 되는 것입니다(계14:3).
【문】4. 부활성도와 변화성도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부활성도와 변화성도는 계20:4을 보아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던 자들이라고 봅니다. 부활도 2차가 있는 것이니 1차 부활은 왕권 받을 자를 일으켜서 왕국 조직을 이루어 지상 통치 천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요, 2차 심판의 부활은 천국에 들어갈 자나 지옥에 갈 자를 다 부활시켜 행함에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 것인데 이미 구원을 받은 자 중에도 1차 부활에 참여할 자는 왕권의 반열에 들 자요 2차 부활에 들 자는 천국의 시민권을 받을 자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부활성도는 믿고 구원받은 자가 아니요, 구원받은 자 중에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순교를 당했지만 1차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주님 재림시까지 말씀을 증거하되 기독교 종말에 대하여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는 그 증거를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 환란 가운데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백성으로 바다의 모래같이 번창하게 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말씀을 증거하다가 공중에 나타나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변화 승천하여 왕국 조직의 반열을 이루어 지상 강림할 때, 변화성도는 계19:19이하와 같이 짐승의 군대를 쳐 없애는 백마 군대가 되어 대승리를 보게 되므로, 부활성도들은 이것을 감사하다고 화답하는 노래를 계19:1~5와 같이 노래하면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부활성도는 부활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왕권 반열이 있고, 변화성도는 변화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반열이 있게 됩니다.
변화성도는 지상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고 그 자손이 지상 축복을 받는 새 시대 왕족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새 시대라는 천년 왕국은 변화성도의 사명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모든 백성은 다 변화성도의 열매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 통치권을 받되 부활성도는 정치의 문관과 같은 반열이 되고 변화성도는 무관과 같은 반열이 됩니다. 왜냐하면 변화성도는 사명이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가지고 싸우던 사람이므로 거기에 따라서 반열이 조직되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나라의 대통령의 계통적인 반열이 있고 군부의 총사령관의 계통적인 반열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주 재림시에 대표적인 사람의 지도하에서 하나같이 움직이다가 하나같이 들림을 받게 되는 것이니 세밀히 말하자면 부활성도는 베드로의 사명 계통에서 반열이 이루어지고 변화성도는 뢰자의 사명 계통에서 반열이 이루어집니다.
뢰자라는 것은 요한에게 준 이름인데 피 값을 갚는다는 사명의 뜻이요, 베드로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사명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계통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순교의 피를 흘렸고 뢰자의 사명 계통은 교회를 심판할 때에 쓰여지는 계통입니다. 아무리 베드로의 사명 계통에서 선 교회라도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진노의 날에는 예언의 말씀에 의하여 종들과 교회를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누구든지 네가 죄를 사하면 사하여지고 정하면 정하여 진다고 말했고, 요한 사도에게는 계시록을 줄 적에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가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한다고 했고 감하면 이 책에 기록된 거룩한 성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사명 계통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만을 중심했고 뢰자적인 사명은 재앙의 날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을 일으켜서 지상 왕국을 이루는 사명입니다.
【문】5. 중생과 성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중생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과정이라면 성결은 완전히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보게 됩니다.
중생은 누구든지 십자가 부활을 믿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며 숨은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게 되는 동시에 마음에 시원함을 받고 깊이 깨달아지는 마음이 생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리가 명백히 믿어지며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는 동시에 죽어도 진리를 위해 산다는 결심이 생기며 누가 아무리 말려도 거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신앙을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 중생 받은 사람의 걸어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결이라는 것은 결심보다도 마음이 성결해지는 데는 죄의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이며 아무리 복잡한 일이 와도 마음이 평화롭고, 아무리 죄의 환경을 보아도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아무리 억울한 사정을 만나도 마음에 타격을 받지 않고, 아무리 낙심될 일이 와도 마음에 피곤을 느끼지 않고 나가는 것을 성결 단계라고 봅니다.
이 성결이라는 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직접으로 통하는 세계에서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는 영계에 도달하며 자기의 구원관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남을 살린다는데 목적을 두고 조금도 괴로움을 생각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을 성결 단계에 있는 사람의 생활이라고 보게 됩니다.
【문】6.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답】구약은 약속을 세운 것이라면 신약은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구약의 약속을 세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5경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고생하다가 그 민족을 하나님이 징벌하여 해방을 시켜 가나안 땅으로 온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 하나를 목적 둔 글이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증거는 모세5경으로 섰던 교회는 십자가로 끝을 맺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사기,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금일에 새 시대를 이루는 말기에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글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46:10에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민족의 역사에서 나타난 일은 말세 성도에게 영자적인 교훈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그 시대의 묵시를 본 것은 전부가 말세의 새 시대를 이룰 시기를 당하여 지상에 왕국을 이룰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된다고 봅니다(계10:7).
이제 구약과 신약을 연결 지어 말하자면 모세5경은 십자가의 화목제로 폐지하고 은혜시대의 교회는 구약을 이용하되 사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이용한 것 외에는 신약에다가 더 첨부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성신이 역사해서 은혜시대에 천국을 목적한 성도로서 조금도 혼선된 신앙에 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 놓은 것이니, 우리는 예수 행적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되 그 밖에 구약 성경을 더 가감시키면 순수한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가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게 할 때에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더 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딤전1:5에 우리의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는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시대의 순 복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세밀히 뽑아놓은 성경 절수 외에 다른 성경을 더 가입시키면 신앙의 혼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맞이할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는 변화성도는 모세5경은 필요 없지만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본 묵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이니 만큼 전체를 우리가 그대로 읽어서 전할 복음이 되는 데는 계시록 10장과 11장 같이 다시 예언하는 사명자들이 그대로 읽어서 진노의 날에 남는 백성이 될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되 자기 사명에 따라서 해석하여야 되는 것이니, 사도들이 기록하지 않은 주석책을 사람이 썼다는 것은 완전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4복음서와 편지서 외에 선지서와 계시록 주석이라는 것은 은혜시대 종이 감히 알 수도 없고 전할 사명도 아닌 것이니, 이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들이 전할 말씀인데, 지금 기독교에서 어떤 박사들이 쓴 계시록 주석이나 선지서 주석을 가지고는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고, 오직 특별한 사명자가 나와서 하나님께로 분명히 가르쳐 주는 일을 받으므로만이 전하게 된다는 것을 모든 선지는 미리 말한 것입니다.
사28:11과 59:21을 보면 환란 가운데 역사할 종에게 입에 말씀을 주어서 모든 비밀을 알도록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은 초림의 주를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의 복음서와 편지서가 연결되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성도가 구약 선지서와 계시록을 연결시켜서 전할 때에 성경은 전체가 다 이루어지며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특 집
1.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도
- 지렁이 같은 야곱의 기도 -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가 무엇이관대 이 땅에 나게 하셨나이까. 한 때는 이 땅에 난 것을 고민하여 비관할 때도 있었나이다. 왜정 36년간 신앙 생활에 쓰라린 고초를 당하던 일을 회상할 때에 인간으로서 가슴이 뭉클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먹지 못하고 나무 껍질을 벗기던 생각, 자유를 잃고 말을 마음대로 못하고 목멘 소리로 울던 생각, 몸을 피하여 심산 심곡에 들어가서 나 자체를 감추어 보려고 할 때에 부모, 친척을 떠나 고독하게 떨고 있던 그 생각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신 품안에서 생명 보존한 그 은혜를 감사하오며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아와 자유로운 천지를 얻었다고 기뻐했더니 공산당의 정치 아래 토지, 재산 다 빼앗기고 문전 거지로 3?8선을 넘게 될 때에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순교 생활을 해보려고 결심하고 싸우던 싸움은 아무 열매 없이 남한 땅에 들어와 보니 북한에서 기대하던 남한은 너무나 한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공산당은 전쟁 준비에 미칠 듯이 날뛰고 있는데 남한 국군들은 오락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큰일 났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교회를 찾아가 보니 북한의 교회는 압박 속에서 눈물 흘려 기도하고 있는데 남한 교회는 아무런 걱정 없이 물질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상태를 볼 때에 참으로 근심스러웠습니다.
돈 없이 지게꾼의 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섭리만 믿고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 주의 명령받아서 3?8선을 향하여 강원도 일대에 개척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1년간 전도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게 되어 개척 교회 건축을 두 곳에나 하게 되어 이곳 저곳 왕래하며 예배를 드리던 중 1950년 6월 25일 주일입니다. 오전, 오후로 갈라 이곳에서 오전, 저곳에서 오후로 주일 예배를 인도하던 중 예배당 주위에 사람이 물밀 듯 밀려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웬일입니까? 물어보니 3.8선에서 전쟁이 일어나 괴뢰군이 물밀 듯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빨리 마치고 나서 보니 국군과 경찰은 앞서 도망을 갑니다. 새로 믿는 교인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다보니 벌써 김일성 사진, 거리에 나 붙었고 노동당 신문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어보니 서울은 함락되었고 십리밖에 괴뢰군이 집결해 있답니다. 할 수 없이 산 위의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밤 공산당이 따라와서 손을 들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손을 드니 포승줄로 수족을 결박하고 너 북한에서 온 목사로구나 합니다. 실지는 그때에 전도사 였습니다. 목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서울에 장사꾼이라고 했습니다. 책가방에 설교집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고 할 때에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받아 기록한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겁쟁이라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역사해서 나를 내무서로 끌고 가지 않고 하는 말이 “당신은 내무서로 데리고 갈 마음이 도저히 없으니 우리가 풀어놓아 줄테니 어디로 마음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이상하게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지방에 내무서에 있던 사람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총살을 당했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들어 쓰기 위하여 공산당의 마음도 주관했다고 보게 됩니다.
눈물 흘려 기도를 하는 것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고 당황한 것뿐입니다. 나는 순교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공산당과 싸우다가 월남을 한 사람이 이러한 광경을 지나고 보니 나는 순교를 할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날 때에 북한에서 가졌던 용기를 잃고, 후회하기 시작하여 세상에 재미있는 생활을 해 볼 마음을 가지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교회를 맡아서 이전보다도 좀 새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고려 신학을 가게 되어 준비 기도를 하려고 산으로 갔더니 이상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눈을 떠도 똑똑히 보이는 것입니다. 못자국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주님의 뼈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는 너를 위하여 이렇게 죽었으니 너는 한 일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개척 교회를 여러 군데 세워 보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한 일이 없다는 것을 눈물겹게 깨닫고 그때에 기도하기를, 주여 내가 이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무슨 일이나 참고 나가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후부터 내게는 동역자를 통하여 억울한 일을 15년간 당해오는 시련의 길을 거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이 나의 축복인 줄 믿나이다. 이 길이 아니었던들 나는 오늘 이 일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었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사랑하셨나이까. 내가 중심성결을 목적 두고 기도할 때에 하늘 문을 여시고 나타나시던 주여, 당신은 나를 위하여 대언 기도를 하시는 주님이시온즉 그때에 내 마음에 불을 보내주신 은총으로 15년간 중심에 성결과 평화를 보존케 해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내가 언제 이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나이까. 빈민굴을 찾아 들어가 기도할 때에 내게 강한 생수를 나리시고 소성케 하신 주여, 내가 언제 계시록의 해석을 구한 일이 있나이까. 그러나 주께서 나같이 게으른 자식도 10개월이나 밤을 새워 기도할 힘을 주시고 계시록의 비밀을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시므로 받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를 분명히 알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 몸은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쓰지 못할 맥빠진 몸이었사오나 하나님께서 완전 개조를 시켜 13년간 피곤 없이 봉사하게 한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큰일을 만났사오니 어찌하오리까. 1964년 9월 24일에 이 산에서 큰 벼락불이 내리고 불 가운데 떨고 있는 나에게 새일수도원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지도 벌써 7년이 접어드는 오늘에 큰 일은 다름이 아니라 내게 새 힘을 주시고, 내 몸에 하늘 영양의 충만을 주시고, 입에 말씀을 주시고, 매일 10시간씩 수도 학과를 가르치게 하시고, 남은 시간에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70페이지로 정식 출판을 하도록 입에 말씀을 주신 것을 큰 일로 알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아버지여! 모든 서책을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오늘의 이 진리 운동을 축복하실 이도 하나님이시요, 앞으로 세계 열방을 이 진리로 깨우치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시온즉 아무리 붉은 용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내가 승리할 것을 믿고 용기있게 나서겠나이다. 마귀를 창조하시고 들어 쓰시는 아버지여! 이 진리 운동이 필연코 승리할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나이다.
2. 시련 끝에 감사할 말씀
할렐루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나이다. 인생은 시련을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뜻 깊이 깨달았나이다. 왜냐하면 시련이 없으면 무슨 일이 잘되면 자기를 자랑하고 잘되지 않으면 인간의 수단, 방법을 부리다가 마귀 올무에 들어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통과하므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을 깨닫게 되고, 또는 모든 일이 다 실패로 돌아가도 하나님의 뜻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겸손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때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합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웬 사랑인지 웬 일인지 인간으로는 그 사랑을 측량할 수 없나이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더러운 인간을 찾아와서 깨닫도록 시련을 주어 하나님과 연합이 되자는 그 사랑을 내가 분명히 깨달았나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자기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날 그날에 향락을 일삼고 있지만 하나님은 세상에 쓴맛을 보여주시고 세상 밖에서 오는 신비를 체험케 할 때 하나님은 과연 완전한 신이신 것을 분명히 깨달아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게 되나이다.
세상에 영광이 좋은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는 얼마나 더 크고도 복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나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노력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종 하나를 이루는 것이 더 큰 일로 아시고 역사하는 그 사랑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나 하나를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죽게 하시고, 나 하나를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살리시고, 나 하나 완전한 종으로 만들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의 대언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주시되, 넘어져도 일어나도록, 미혹을 받아도 깨닫도록, 피곤해져도 소성 하도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련 중에서 길이 참고 기다리시면서 길러 주시는 은총을 진심으로 감사하나이다.
내가 약하므로 강한 사람의 힘을 의지할 때도 나를 징계하시고 내가 무식하므로 지식이 있는 자를 의지해도 징계하시고, 내가 가난하므로 부한 자를 의지해도 징계하시고, 내가 영계가 얕은 줄 알고 영계가 높다는 사람을 의지해도 징계하시고, 내가 입이 둔하므로 구재가 있는 자를 의지해도 징계하시고, 이모저모로 다 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중심하는 깊은 영계를 체험케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약해도 강하게, 어리석어도 지혜롭게, 가난해도 부하게, 입이 둔해도 구재를 주시고, 영계가 얕아도 높게도 하시고, 아무리 무식해도 진리의 지식을 주시는 것을 받을 때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용기있게 나가겠나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므로 진리 안에서 사람을 완전케도 하시고 완전하게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나이다. 이제부터 나갈 길은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나갈 때에 여호와만 자랑하는 일이 있을 줄 믿나이다.
3. 9.24를 맞이하여 그날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동방 땅 끝 부산 영도의 빈민굴에서 불쌍한 과부와 고아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던 이 사람에게 강한 바람이 부딪치는 일과 하늘로부터 생수가 강같이 흘러오는 체험을 주시면서 10개월간 30분 이상의 잠을 더 이루지 못하도록 기도를 강권으로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기도를 하겠다고 작정한 바도 없이 하루, 이틀…… 깊은 묵상에 들어가다 보니 철야를 자동적으로 하게 되어 10달 동안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내 머리는 명랑하여지고 강한 힘은 충만해졌는데 나도 모르게 그 힘을 통하여 알려오는 영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은 하늘에서 결정된 일을 알린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의 종말에 대한 비밀을 다 네게다 알려주기로 되었으니 먼저 계시록 4장~14장까지의 해석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1958년 3월 16일입니다. 똑똑한 음성으로 들려오지만 기록할 수는 없었습니다.
3일간 철야 시에 한 번씩 들려올 때에 3차나 들려왔지만 기록할 수는 없고 이상하게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하여 영음이 들려와서 둔필로 받아쓸 때에 2차, 3차까지 불러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받아서 기록하여 놓고 읽어보니 계시록 4장~14장까지의 내용이 순서 있게 빠짐없이 해석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때에 그 음성은 내게 말하기를 이 글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복음 운동을 할 일이 있으리라고 하면서 네가 주님 다시 올 때까지 쉬지 못하고 밤낮으로 증거하게 될 것이니 네 몸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겠으므로 신창조의 몸을 만들 것이니 오늘밤에는 정신을 차리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나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고 앉아 있던 중에 홀연히 신의 증거가 나타나서 내 머리를 뇌 속으로부터 수술하는 증거가 나타나서 사지백체를 전부 다시 뜯어서 맞춰 놓는 증거가 있은 후에 지금까지 조금도 몸에 피곤을 모르는 중에서 밤낮 말씀을 증거하게 될 이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1960년 3월 1일부터 이 글을 출판하되 말세 비밀이라는 책자를 세상에 내놓고 각 곳에 초청을 받아 집회를 계속하던 중 1964년 9월 5일에 계룡산 상봉 앞 새일수도원 이곳에 기도하려 왔던 것입니다. 첫날 밤 이상하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오기를 내가 이 산을 창조할 때 사19:19절과 같은 제단이 설 자리를 준비하였으니 찾아서 제단을 쌓고 너는 종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 3차나 계속으로 알려오므로 이 산을 편답 중에 지금 새일수도원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이런 우렁찬 석조 건물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9월 24일 오전 3시에 기도 중 하늘에서 큰 불덩이가 떨어져 내려오면서 나를 치는 것입니다. 나는 기절을 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큰 소리를 질러서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불 속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오늘부터 이곳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방식을 알려올 때에 앞에 삼탑을 쌓고 70평 건물을 짓되 사람이 다듬은 돌을 외면에 보이지 않게 자연색 돌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성전을 지으므로 이 성전에 말씀이 임하여 모든 책자가 학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되 이름을 “뢰자”라고 고쳐 가지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순종치 않으면 너는 이 불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므로 떨리는 마음으로 그날부터 성전 건축을 시작하기로 작정하매 불은 걷어가고 조용한 밤이 되었습니다. 나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그날부터 수중에 있는 일금 2천원을 가지고 공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종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건축 헌금이 계속 들어오므로 1965년 5월 15일에 헌당식을 하고 수도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식 학과 책이 없고 임시 대지 책을 기도 중에 영감으로 기록하여 수도를 진행하던 중 1967년 8월 15일날 하나님께로 내게 새 힘이 임하면서 입에 말씀이 임하여 그때부터 책자를 쓰라는 명령이 오므로 말씀의 칼, 요한一서 강의, 성경 해석법, 조직 신학 강의, 계시록 강의, 선지서 강의, 인간론, 새일 성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까지 발행하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자는 한 자도 홀로 쓴 일이 없고 강단에서 설교 중에 책자를 쓰라는 명령이 올 때는 수도를 받던 수도생들이 내 입에 말씀이 나리는 대로 기록한 것을 그대로 출판한 책입니다. 지금도 계속으로 매일같이 월간지를 받아쓰고 있습니다. 내가 9?24에 그런 일을 당할 때에 어떤 종들은 마귀의 지시를 받았다고 비난을 많이 했지만 지금에 와서 열매를 본다면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역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강권으로 명령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에 지금도 떨리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4. 알리는 말씀
1. 누구든지 정식 수도학과를 공부하고자 하시는 분은 매월 1일부터 25일까지 수도회가 진행 되오니 오실 분은 식대로 매일 80원, 학과 책대(성경 해석법, 요한一서 강의, 조직신학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새일 성가집 합계 7백여원)만 준비해 가지고 오시면 모든 설비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수도할 수 있습니다.
2. 교통은 어디서든지 대전에 하차하면 대흥동 버스 정류소에서 신도안 행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됩니다. 또는 기차로 하차하실 분은 두계역에서 하차하여 신도안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됩니다.
3. 서울에서 이 진리를 탐구하실 분은 서울 종로구 종로 1가 3번지(광화문 비각 옆) 의사 빌딩 새일 중앙 교회에 오시면 얼마든지 진리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주일 오전, 오후, 저녁, 매일 저녁 계속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4. 서책을 구독하실 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가 3번지(의사빌딩) 새일중앙교회로 연락하시거나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신도안내 새일수도원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5. 친히 진리를 듣고자 하여 강사를 요구하시려면 상기의 주소로 연락하시면 얼마든지 강사를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 새일 문서 전도회 -
승복 인쇄사 소식
새일 문서 전도회 승복인쇄소가 1970년 9월 29일 정오, 개업식 예배를 이뢰자 목사님 인도 하에 거행하고 현재 작업 중에 있습니다. 이 인쇄소는 전지옵셑인쇄기 1대, 제판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김왕복 집사가 운영 자금을 전담하며, 앞으로 국제적인 문서 운동에 큰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누구든지 아름다운 소식 월간지를 읽어보시고 이 진리 운동에 협력할 마음이 계신 종님이나, 또는 인쇄관계로 연락하고자 하시는 분은 전화(서울 23-5523)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표어와 같이, 우리는 반공 운동을 기독교 진리 운동 목적하에 전력하며, 기독교 종말에 맡겨진 우리의 사명이 아름답게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기도하며 나갑니다.
대 표 이 뢰 자
지배인 김 진 호
외 무 박 승 복
내 무 김 왕 복
표 어
1.우리는 동방에 임한 말씀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는 문서 운동에 전력을 다하기로 맹서한다.
2.우리는 순교자의 피값을 갚는 마지막 싸움의 승리는 문서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에서 사상적으로 단결할 것을 깨닫는 마음에서 사상적으로 단결할 것을 맹서한다.
3.우리는 자아를 희생하고 세계인류를 거짓선지 미혹에서 구출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인 것을 믿고 돌진의 걸음을 걷기로 맹서한다.
새일 문서 전도회 승복 인쇄사
승복 인쇄사 노래 (성가 15장 곡)
1. 붉은 세력 없이하는 멸공인쇄사
이곳에서 출판되는 말씀의 칼로
마귀목을 잘라내는 승리가 오니
후 렴 : 할렐루야 영광 돌려 우리는
단결해서 말씀 밝혀 승리하자
2. 누구든지 받고 보면 살길 찾으리
잠든 자는 깨어나서 정신 차리라
우리 살길 여기있네 와서 뭉쳐라
(1970년 9월 30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