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971년 1월호)

설  교  편

1. 하나님의 인과 어린양의 피 (계7:2, 14) 

2.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자 (계3:7~11)

3.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하자 (막7:1~14)

4. 본 것을 증거하는 요한의 사명 (요일1:2, 계1:2) 

5. 인생의 근심할 일과 믿을 일 (요14:1~3)

6. 시대와 평안 (사33:6, 요14:27) 

7. 미혹의 말이 무엇인가 주의할 일 (창3:1~5, 마4:1~11)

8.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자 (말3:16~18)

9.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하는 종이 되자 (롬9:1~3)

10. 의합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암3:1~15) 

11. 입의 말과 인격 문제 (약3:1~12)

12. 말씀에 떠는 자의 시련과 축복 (사66:5~14)

13. 가르친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요일2:24~29) 

14.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인 사람에게 원하는 일 (창1:26~28)

 

장년 공과편 - 세례 요한의 증거

제1과 세례 요한의 잉태시의 증거 (눅1:8~17, 39~44) 

제2과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 (요1:19~34) 

제3과 세례 요한의 경고 (마3:1~12) 

제4과 세례 요한의 겸손한 증거 (요3:26~36)

 

논 설 편

1. 71년도를 맞이하여 사명자의 할 말

2. 71년도에 사명자의 나갈 방향 

3. 두려워할 일이냐 기뻐할 일이냐에 대하여

4.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에 대하여

 

신앙문답

1.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2. 기독교 사상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3. 신앙 정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4. 신앙 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특    집

1. 동방 땅 끝 야곱이 71년도를 맞이하여 부르짖는 기도 

2. 71년도에 백의 민족의 눈물겨운 소리 

3. 71년도 국가에 대한 관심

4. 71년도 문서 운동에 대하여 부탁하는 말씀 

5.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새 노래

 

 

 

 

 

 

 

설  교  편

 

하나님의 인과 어린양의 피

- 계 7:2, 14 -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과 어린양의 피에 대하여 어떠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금일에 이것을 분별치 못하고 성경을 해석한다든지 영계의 문제를 말하게 된다면 성경 해석도 영계 문제도 혼선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인은 무엇이며 어린양의 피는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1. 하나님의 인 (계7:2)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뜻한 것인데 자유로운 권세가 있는 것을 뜻했다. 왜냐하면 아들도 성신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라고 보게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므로 영원한 속죄가 완성되었고 성신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하므로 하나님의 종들이 이날까지 역사하여서 십자가의 도가 세계 만방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종들의 이마에 친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세밀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 권세를 뜻했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말씀대로 죽기까지 순종한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받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죽은 영이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이었다(히2:14~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를 증거하는 자라면 마귀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가 십자가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의 역사는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로 미혹해 보도록 하는 시험기가 올 때에 종말의 예언의 말씀인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는 역사이니 이것이 말씀 권세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재앙을 내리고 말씀대로 보호하고 말씀대로 심판하고 말씀대로 구원해 주고 말씀대로 새 시대를 이루어 놓는 때이니 모든 육체가 환란 재앙에서 쓰러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몸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뜻했다.

  구원이라는 것은 인력으로 마귀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을 때에 구원해 주는 일인데 이날까지의 영혼 구원은 범죄한 영들이 죄의 권세 잡은 마귀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때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권세로 해방을 주는 것이요, 또는 마귀가 허락을 받고 나와서 크게 미혹을 주며 환란을 일으킬 때에 인간의 힘으로 마귀 미혹을 벗어날 수 없고 그 환란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될 때에 말씀 권세의 역사로 말미암아 마귀 미혹이 물러가고 환란을 면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인권 역사라는 것이다.

  2) 왕권의 역사이다

  성신의 인은 보증의 인이요(엡1:13), 하나님의 인은 왕권의 인이다(계9:4). 십자가를 증거하던 종들은 순교하므로 왕권을 받았고 종말의 다림줄의 진리를 가지고 싸우는 종들은 왕권의 권세를 받아 가지고 환란 가운데 짐승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워 이기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남은 자로 주 재림시에 순교자와 같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세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인의 역사는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서 이긴 자에게 오므로 그 사람을 통하여 모든 종들이 하나같이 말씀 권세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 역사는 해 돋는 동방에서부터 나오므로 모든 종들이 그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는 승리 용사의 단체가 되는 것이다.

  3) 승리의 역사를 뜻한 것인데

  아무리 마귀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인의 역사 앞에서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니 말씀으로 마귀를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말씀 심판이 오므로 인류 전멸이라는 심판으로 마귀의 표를 받은 자를 없이 하는 동시에 마귀도 세상에서 없이 하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던 자들로 지상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말씀 권세를 받아 가지고 역사하던 종은 들림을 받아 왕권을 받게 되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던 자를 큰 환란에서 보호하고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의 백성으로서 지상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은 말씀을 조금도 혼선되지 않도록 증거하므로 자기도 마귀 흑암을 벗어나고 남을 깨우쳐서 흑암을 벗어나게 하여서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역사이니 이 인의 역사로 만이 완전한 역사가 있으므로 완전 승리의 평화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2. 어린양의 피 (계7:14)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재앙을 면코 나올 때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므로 그 재앙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아 가나안 복지에 들어감과 같이 말세에도 어린양의 피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환란에서 보호받고 새 시대 갈 것을 가르쳤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잃어버렸던 지상 축복을 둘째아담 어린양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므로 에덴 동산을 다시 복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은혜시대에는 그 영혼을 구원시켜 주는 역사로 세계 만방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또는 큰 환란이 올 때에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해 주는 역사로 끝을 맺는 것이다.

 이제 어린양의 피에 대하여 세 가지 구분을 지을 수 있다.

  1) 오실 메시야를 믿고 드리던 피의 제사는

  생령된 계통자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인데 이때에는 죽은 영들은 피의 제사를 드릴 수 없고 택한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도 야곱의 족속만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중에도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제사는 받되 순종치 않는 자들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든지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그 피를 받으시고 축복하신 것은 메시야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 예수의 피는 오실 메시야를 믿고 제사하는 자들에까지 구원을 주는 것이다.

  2) 어린양의 피로 받는 영혼 구원

  이날까지는 누구든지 임종시라도 어린양의 피를 믿고 기도하는 자라면 믿는 그 즉시에 그 영혼이 지옥을 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구원은 어린양의 피에만 있기 때문이다.

  3) 어린양의 피로 받는 몸의 구원

  대 환란이 온다해도 하나님의 보호와 새 시대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그 사람들의 죄를 어린양 예수의 피로 사해 주시고 환란에서 죽지 않도록 보호해서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완전 구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원수의 나라 사람이라도 말세 인맞은 종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는 자는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이 되므로 그들은 왕권을 받지는 못했으나 평화 왕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들어가는 자들이니 그 무리는 헤아릴 수 없는 무리들이다.

 

  결    론

  계시록 7장의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은 14만 4천인데 이들은 부활 성도가 아니고 주 재림시까지 남아서 증거하다가 들림 받을 용사들을 뜻했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14만 4천의 종말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이다.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자

- 계 3:7~11 -

 

  금일에 교회가 많다는 것만은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의 자랑 거리가 된다. 남의 나라는 과학 문명에 도취가 되어 있던 교회도 사람이 오지 않으므로 교회가 문을 닫고 또는 예배당을 방매하는 일이 많다는데 우리 나라에는 지금에 와서 해방 전 보다도 교회가 대 확장을 보게 된 것은 어느 나라보다도 하나님을 찾는 열심이 강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빈민들이 사는 부락에도 예배당만은 많은 거액을 들여서 종탑을 높이 쌓고 화려한 성전을 보게 될 때에 그 안에서 예배하는 자들이 앞으로 오는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가 문제가 되는 일이다.

  이제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가 되느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 열린 문이 있는 교회다 (8)

  교회라는 것은 항상 열려 있는 교회가 되려면 말씀 중심에서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항상 역사를 나리는 것은 어떤 화려한 건물이나 유명한 인물이나 엄숙한 의식이나 떠드는 열심을 보고 은혜를 나리는 것이 아니고 화려한 건물도 유명한 인물도 거룩한 의식도 떠드는 열심도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싸워 나가는 생활에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주님의 역사가 소리 없이, 보이는 모양도 없이 흘러오되 나무 가지에 진액이 계속 오는 거와 같이 항상 은혜의 문은 열려서 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항상 열려 있는 은혜의 문은 조금도 닫히지 않고 강물이 흐르듯이 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될 때에 모든 교인들은 말씀에서 소망의 확신과 받는 은혜에서 날마다 자라나는 인격적 체험을 받으므로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2.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교회 (10)

  말씀이라는 것은 지키는 것이 없다면 시험도 핍박도 은혜도 없는 교회가 된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될 때에 참아야만 될 문제가 닥쳐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간교한 뱀을 창조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말씀이 바로 서지 못한 교회는 자기의 도구로 삼고 말씀이 바로 선 교회는 극도로 미워하며 훼방하고 조롱하고 압박하도록 악한 자를 들어서 도구로 쓰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는 뱀이 직접 꾀어 보았지만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사에는 악한 사람들을 마귀가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음이 없다면 시험의 때를 면하는 교회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완전 계시를 볼 때에 사도 요한 같이 참음이 있는 자라야 큰 시험의 때를 면할 수 있는 것을 계시로 보았던 것이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하시는 것이다.

  ① 사람이 힘을 다해야만 되도록 하는 것이요,

  ②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이기도록 해 주시는 것이니 작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동시에 큰 시험의 때를 면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택한 교회에 주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이길만한 역사를 하시면서 시험이 오게 하는 것이니 시험을 해보는 이도 하나님이요 시험의 때를 면케 해주시는 이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으로 시험을 해보는 것이 아니고 시험하는 마귀에게 허락을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말씀을 지키면 더 이상 시험할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마귀는 더 큰 화를 주고 당신의 종은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3.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11)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운 목적은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니 어떻게 하든지 왕권 받을 종을 나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면류관인 왕권을 빼앗긴다면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가 되어 심판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촛대교회를 통하여 지상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교회는 사명자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일이 없다면 시험의 때를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큰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은 끝까지 사명에 충성을 다한 자를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고자 하는 선한 모략의 방법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하나님께서 현 교회를 그냥 두고 새 시대를 이룰 수는 전혀 없을 것이다. 반드시 큰 시험의 때를 통과시키되 쭉정과 알곡을 갈라 놓고 말씀의 다림줄을 잡고 싸워서 나가는 교회만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우리는 반드시 인내의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만이 큰 시험의 때를 면하고 승리하는 길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하자

- 막 7:1~14 -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가 될 적에 충성이라 하고 그 말씀을 이용할 적에 외식이 되는 것이다. 외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할 일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1. 육적으로 치우치는 일이 있을까 몸조심 할 일이다 (1~4)

  주의 종이라는 사람은 영의 사람이요 육의 사람이 아니니 육적으로 지나친 규칙을 따를 때에 영적 방면에 활동은 자동적으로 메말라지는 것이다.

  주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육적 방면에 거룩한 모양을 내어 보려고 치우칠 때에 여러 가지 유전을 지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육적 식물이나 몸을 깨끗이 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로되 그 방면으로 치우쳐지는 사람이 된다면 자동적으로 외식을 따르는 일이 있게 된다.

  금일에 소위 문화인이라는 간판 밑에서 위생적으로 그 몸을 숭배하려는 것을 힘쓰고 그 몸을 아껴 가꾸는 일이라는 것은 은혜자로서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위생적 방면에 손해가 된다고 해서 전부 삼가다 보면 그 몸을 주님의 일 보다도 더 위하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다.

  밤을 새워 기도할 일이 있는데 수면을 시간대로 지키지 않으면 손해라고 하면서 기도를 안 한다든지 아무리 누추한 자리라도 가서 몸소 봉사하여야 될 일이 있는데 위생상 그런 곳에 가면 몸에 위험성이 있다고 가지 않는다면 희생, 봉사도 못할 것이고 밤낮 쉬지 않고 가르쳐야 될 일이 있는데도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위생상 좋지 못하다고 그만 둔다면 급한 경고를 해야 될 말세종으로 나가서 외칠 수 없을 것은 사실이다.

  또는 험한 음식을 먹으면 위생상 몸에 손해가 된다고 하여 그런 음식을 나무란다면 앞으로 재앙의 날에 남은 종으로 외칠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전에 철야기도를 하면 수면에 방해되므로 도저히 안된다는 조건으로 철야를 반대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빈민굴을 찾아가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새로운 은혜를 받게되어 10개월간 매일 30분 이상은 자지 않고 기도하다가 머리가 명랑해지며 요한계시록을 깨닫게 된 일, 또는 설교를 한시간 이상 말하면 피곤을 감당 못한 사람이 매일 8, 9시간이 지나도록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는 일, 영양이 있는 계란이나 우육이나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는 몸의 영양을 보존할 수 없게 되어 빚을 내어서라도 먹고야 7, 8시간 설교하던 사람이 계란이나 우육이나 생선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사용을 하지 않고도 작은 한 공기 밥에 채소만 사용하고도 몸에 영양이 충분함을 받게되어 오히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일을 본다면 말세의 종은 몸도 과학적 위생을 초월한 세계에서 움직여야 된다고 보게 된다.

  이러한 생활에서 역사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는 나로서 몸만을 위하는 그 일을 반대하지는 않아도 그러한 생활에서 좀더 벗어나는 종이 되기를 바란다.

 

  2. 말씀에 없는 것을 숭배하는 일이 있을까봐 조심할 일이다 (5~9)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은 사람이 가르친 교훈을 숭배하며 예배하는 일을 미워한다. 예배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서 합당치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우상과 같이 생각하므로 그 예배를 오히려 미워하신다.

  금일에 교회가 예배시에 응답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서 가감된 사람의 교훈이 섞인 증거라고 보게된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기록했다.

  예배 시간에 강단에 선 종은 순수한 본문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생활이 있으면서 성경에 가감이 없는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은 그 강단에 축복하는 것이요, 일반 양떼들은 그것을 따라 움직일 때에 다같이 은혜를 충만히 받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종은 말씀에 없는 것을 주장한다거나 따라가는 일을 엄금하는 사람이 될 때에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일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 없는 교훈을 너무 숭배하는 일이 있게 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지금 이때에는 성경 본문만 가지고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씀에 눈먼 소경이라고 보게 된다.

 

  3. 사적 생활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10~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사적 생활을 다 버리고서 나를 공경하라는 신은 아니다. 작은 소자에게 사적으로 행한 일을 주님께 행한 일같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마25:40에 말씀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들은 사적으로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합당하다고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행치 않는 것을 주님은 책망하셨던 것이다.

  금일에 소위 열심이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적으로 사는 생활에 본이 못되고 자기만 잘 믿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성경 중심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사적 생활에서 말씀을 따라 생활하고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할 수 있도록끔 역사하는 신이시다. 다윗은 사적 생활에서 충성을 다할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던 것이다.

  그밖에 모든 선지들도 사적 생활에 본이 되는 사람으로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말세의 종도 사적 생활에서 말씀을 준행하던 자들이 말씀대로 나가서 역사할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교훈 하신 말씀은 빠짐없이 가르친 교훈이니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될 적에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모든 역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될 것이로되 성경을 폐하는 일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나서 보았던들 외식하는 바리새인보다 나을 수 없다.

 

 

본 것을 증거하는 요한의 사명

- 요일1:2, 계1:2 -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세우는 동시에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기록하도록 한 책도 있고 깨달아 알게 하므로 기록한 책도 있으니 알지 못하고 쓴 글은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이요, 분명히 알고서 쓴 것은 이루어진 일이 된 것이다.

  이제 사도 요한이 본 것을 증거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는 믿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1.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 (요일1:2)

  기독교는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것이 기독교의 완전한 속죄, 완전한 구원이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일에 대하여 3가지로 구분을 지어서 우리는 신앙하여야 한다.

  1)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으로서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는 신성이라는 것을 친히 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것을 친히 본 것인데 이것을 완전한 증거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한 대로 이루어지되 자연계나 식물이나 사람에게 있는 질병까지라도 다 말씀 한마디에 순종한 사실을 볼 때에 이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모든 증거가 나타나게 한 것은 신성을 가진 아들이라는 것을 알도록끔 표적을 보여준 것이다.

  2) 인성으로 나타난 것을 친히 봄

  요한은 친히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았고 항상 침식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꼭 사람과 같은 인성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친히 보고 증거할 때에 예수는 인간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담대히 증거했던 것이다(요일2:2).

  3) 그는 완전히 승리를 이루었다는 것을 목도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에 이루어진 사실을 친히 목도하고 증거했던 것이다(요19:35).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지만 십자가 앞에서 그 증거를 확실히 본 자는 사도 요한 뿐이다. 그는 친히 본 것을 증거할 때에 성경이 그대로 응한 사실을 완전히 믿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강하게 증거했던 것이다(요일3:5).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친히 본 자들이 증거한 그것을 의심없이 믿을 때에 이것을 하나님이 의로 인정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보고 믿는 자 보다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 있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요20:29).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 보인 것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증거할 대표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보고 증거하도록끔 하였고 그밖에 믿는 자들은 대표적인 사도들의 증거한 것을 그대로 믿을 때 믿는 자에게 증거가 나타나게 된다(요일5:10).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사람이 기록한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인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저마다 보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고 행하신 일을 본 자가 나가 증거할 때에 그 증거를 믿는 자에게 말씀대로 응답이 왔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에 뚜렷한 사실이다.

 

  2.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 (계1:2)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서는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와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구별해야 한다.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는 믿는 자의 영혼을 중생시키어 구원해 주는 진리요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는 환란 가운데서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몸이 재앙 속에서 구원받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시대는 은혜 시대라면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진리를 증거할 때는 환란과 재앙시기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증거한 자의 그 증거를 보고 믿을 때에 그 영혼이 중생 받는 체험이 있고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것을 읽고 지킬 때 그 몸이 변화를 받아 승천하는 일과 보호를 받고 구원받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는 부활 성도요, 이루어질 것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증거하는 자는 변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변화 성도라는 사람은 환란과 재앙에서 구원받는 비밀을 증거하는 것이니 이루어질 일을 증거하는 선지가 된다(계11:10).

  이제 사도 요한이 이루어질 것을 보고 증거한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있다.

  1) 대표적인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다

  계11:1이하를 보면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볼 때에 앞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나올 것을 뜻한 것이 11장의 계시이다.

  이루어질 것을 요한은 보고 기록할 때에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본대로 기록해서 증거한 것뿐이나 종말에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서 역사할 것을 요한에게 보여준 것이니 이 대표는 보고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고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한다고 요한은 계시를 보았다(계10:7~11).

  왜냐하면 기독교가 이날까지 요한이 보고 증거한 계시록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주석이 나왔지만 이것은 증거할 만한 진리를 알지 못한 자들이요, 완전히 그 진리를 증거할 사람은 변화 성도들인데 먼저 성령과 신부가 말할 것을 계22:11~17에 말했다. 그러므로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면서 성전과 제단 안에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라 한 것은 앞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을 완전히 깨닫고 나와서 증거할 때에 모든 사람은 다 하나같이 그 진리 역사에 하나가 될 것을 계11:1에 말했다.

  언제나 기독교 통일이라는 것은 대표를 통하여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한 단체라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종들은 사도들이 증거한 교훈 안에서 통일을 가져오게 했고 종말에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진리를 권세 있게 증거할 때에 그 역사에서 하나가 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남은 교회와 남은 종이 나올 것을 가르친 것이니 계시록 11장과 12장에 관한 진리이다.

  2) 환란 가운데서 보호받을 것을 목적한 진리이다

  인류 역사에 없던 환란은 북방으로 온다는 것을 아시아에서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증거했고 사도 요한은 붉은 짐승으로 말미암아 환란이 올 때에 보호를 받은 자가 남은 종이요 남은 교회라 했는데 남은 종은 권세 역사로써 승리하게 되고 남은 교회는 예비처의 특별 보호가 있으므로 그 환란에서 남은 교회가 될 것을 가르친 것이 계시록에 요한 사도가 보고 증거한 진리이다.

  3) 심판과 새 시대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인종 전멸의 심판이 있고 새 시대가 오고, 행위 심판이 있고 무궁 세계가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종 전멸의 심판이 올 때 종족이 구원을 받아 새 시대를 이루고 행위 심판이 올 때에 생명책에 기록된 자를 통하여 영원한 무궁 세계에 아름다운 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진리의 대표적인 사람은 사도 요한으로 본다. 보고 증거한 진리도 완전한 것은 요한 사도가 쓴 글이라고 본다. 이루어진 일을 보고 증거한 것은 4복음 중에 요한 복음이 진리의 권위가 있고 이루어질 일을 보고 증거한 요한계시록도 앞으로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권위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근심할 일과 믿을 일

- 요 14:1~3 -

 

  신앙이라는 것은 근심할 일이 있는 동시에 믿어야 될 일을 믿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다. 인생에게 근심할 일이 없다면 믿음이라는 것도 하등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근심할 일과 믿을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근심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일을 가르쳤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는 메시야라는 것을 믿고 메시야 왕국이 지상에서 이루어질 것을 제자들은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승상을 다투는 일까지 있었던 것이다.

  왕권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받는다는 것도 모르는 자들이 누가 크냐하는 것을 서로 다툴 때에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앞에 놓고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인생이 근심할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말한다.

  ① 자기의 기대가 어그러질 적에

  ② 자기가 감당 못할 어려운 시험이 올 때

  ③ 자기가 아무리 애써도 할 수 없게 될 때에 근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근심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요 근심하는 자를 위로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했던 것이다.

  이제 근심하는 사람으로서 믿어야 될 일에 대하여 말한다.

 

  1.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는 것을 믿어야 된다 (1~2상반절)

  이 세상은 근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닥쳐오는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낼 때에 싸워서 이기라고 세상에 낸 것이니 간교한 옛 뱀 마귀와 사단의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만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밖에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이 많다는 것을 믿는 신앙에서 세상에 끌리지 말고 세상을 분토 같이 보는 신앙이 있어야만 이 땅에 닥쳐오는 근심된 일을 이길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근심된 일이 있게 한 것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 근심된 일이 올 때에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굳게 믿는 자라면 그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게 하신다(요16:20).

  믿음이라는 것은 이 땅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을 믿는 동시에 그곳에 목적을 둔 것이니 누구든지 그곳에 목적을 두고 싸울 때에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도록끔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또는 대신 싸워주는 역사를 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이 많다는 것을 믿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는 하나님의 무소불능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2. 있을 곳을 예비하는 주님을 믿어야 된다 (2하반절)

  신앙이라는 것은 날마다 날마다 싸우는 생활이 있는 것은 있을 곳을 예비하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니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사명을 맡기고 여러 가지의 십자가를 주시는 것은 있을 곳을 예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있을 곳을 예비하는 하늘의 역사는 주와 같이 고난을 당한 자라야 주와 같이 영광을 받기 위한 예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사랑하는 종은 다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시면서 초인간적인 역사로 그를 도와주고 그를 도와야 승리하도록끔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의 역사와 땅의 역사가 아울러 병합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목적이 이 땅에 있지 않고 있을 곳을 예비하는 그 일에 있기 때문에 있을 곳을 예비하는 예수를 믿는 자는 이 땅에서 받는 괴로움을 영광으로 아는 영계의 지식을 가져야 될 것이다.

 

  3. 나를 영접하려 다시 오시는 예수를 믿어야 된다 (3)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자녀의 권세를 얻을 것이요(요1:11~12), 있을 곳을 예비하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왕권을 받게 된다(계20:4).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려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에 밤낮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참고 나가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신자가 죽어 천당만을 생각하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졌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가 떠난 자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신 목적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 앞에 영접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성신은 오셔서 역사할 때에 마귀 시험을 받도록 인도하는 일도 있다(마4:1). 완전이라는 것은 완전 속죄가 있는 동시에 완전 구원이 있고 완전 구원이 있는 동시에 완전한 왕권이 있는 것이니 다시 오시는 주님은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자들이 일한데 따라서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용사적인 걸음을 걸을 때 자기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진의 걸음을 걷는 것은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을 살리기 위한 사랑 용사의 걸음을 걸어 나가던 자가 순교를 했고 주님 올 때까지 남은 종이 되어서 주님을 영접할 자도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용사적으로 싸우던 자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① 자기가 죄에서 해방 받기 위하여 믿고 회개하는 신앙이요

  ② 성신을 받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신앙이요

  ③ 성신을 받은 자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용사적인 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앙 단계는 중생 받는 단계에 신앙도 있고, 장성 단계에 신앙도 있고, 승리의 열매를 맺는 단계에 신앙도 있다. 이제 근심된 일과 믿어야 될 일을 통하여 인간의 걸어가는 길은 완전이라는 세계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시 대 와  평 안

- 사 33:6, 요14:27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참 평안을 주시되 시대를 따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평안을 주시되 법에 따라 주시는 신이시니 인간에게 참된 평안이 없는 것은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귀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를 좋아하는 신이요 하나님은 평안을 주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니 이제 시대와 평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은혜시대와 평안 (요14:27)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참 평안을 주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아무리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이적을 보고 교훈을 받았지만 그들은 마음에 참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환경에 따라 두려워하는 마음, 분한 마음, 서로 시기하는 마음, 또는 의심하는 마음도 항상 있게 되므로 그들은 주님을 따라가면서도 서로 다투고 싸웠던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전 승리를 이루고 부활 승천하여 성신을 보내기까지 도저히 심령에 참된 평안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떠나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 한 것은 보혜사 성신이 옴으로만이 주님이 함께 할 때 보다도 완전한 평안을 소유할 것을 말씀한 것이다. 이제 성령을 통하여 오는 평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마귀의 세력을 이기므로

  ②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마음에 거하므로

  ③ 말씀으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일이 있으므로 참 평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할 때에 자신 속에 있는 사단의 세력이 없어지지 않고는 평안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자신 속에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간직할 때 말씀은 나를 완전케 하는 능력이 있으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산 체험을 받게되므로 참 평안을 얻게 된다. 또는 많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하는 생활이 되므로 천국을 이루는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참 평안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와 성도들은 아무리 환란과 핍박이 와도 두려움 없이 담대히 나가 싸워서 승리를 이룬 것이다.

 

  2. 환란 시대와 평안 (사33:6)

  하나님께서 이사야 33장을 말씀하신 것은 환란 가운데 성도의 참된 평안을 목적 두고 말씀한 것이니 이 평안이라는 것은 심령의 평안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몸에까지 참된 평안이 있을 것을 가르쳤다. 은혜시대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그 몸을 원수의 손에 쓰러지게 하면서 순교를 당한 자들에게 참된 평안을 영적으로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영적 사망을 면하게 된 심령으로 육적 사망이 왔다해도 그 영은 영생의 세계로 가는 동시에 참 평안을 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사57:1). 괴로운 세상을 떠나서 영적으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이것이지만 이사야 선지에게 나타난 말씀은 온 세계 인류가 불에 굽는 횟돌 같이 되는 환란이 오게 될 때에 공기가 불이 되어 모든 사람이 쓰러지지만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안정처가 있고 물과 양식을 공급하므로 아무런 피해 없이 새 시대에 들어갈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사33:7~24까지 기록된 말씀이다.

  우리가 이제 오는 환란은 성도를 해치는 환란이 아니고 성도의 시대를 이루어 남은 종이 되며 남은 백성이 되기 위한 환란이니 지금 평화조약의 모든 일이 다 허사로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은 진노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란 날에 성도의 받는 평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은혜를 베풀어주시므로 환란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사33:2)

  ②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5)

  ③ 지혜와 지식이 풍성케 하므로(6)

  ④ 물과 양식을 공급하므로(16)

  ⑤ 위엄 중에 함께 하시므로(21)

  ⑥ 여호와께서 친히 구원해 주시므로(22)

  이와 같이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과 백성으로써 35장과 같이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계 공기가 불이 되고 인류가 횟돌 같이 타지는 날에 당신의 백성을 함께 당하게 하는 신이라면 세계 인류를 심판할 수 없을 것이로되 하나님께서는 33장과 같이 당신의 종과 백성에게 평안을 주고 34장과 같이 심판을 내리시고 35장과 같이 새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것과 두려워할 것 없이 여호와를 경외하므로만이 이 평안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참된 평안을 당신의 백성에게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신이시니 아무리 타락한 인생이라도 그 법에 순종할 때에 영적 평안과 육적 평안을 아울러 받는 것이니 이 평안을 우리가 받게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사랑이라는 것이다.

 

 

미혹의 말이 무엇인가 주의할 일

- 창 3:1~5, 마 4:1~11 -

 

  하나님께서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에게 간교한 마귀로 미혹의 말을 하도록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자가 되느냐를 시험하는 거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변론을 바로 해서 이기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만 존경하는 생활이 있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아담 하와에게 미혹의 말이 왔고, 둘째아담 예수에게 미혹의 말이 왔다.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그때에 그 인격을 따라서 오는 것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오는 그 환경과 입장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아담 하와에게 오는 미혹의 말 (창3:1~5)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인데 인격과 환경에 따라서 미혹을 받도록끔 하는 말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어떠한 환경과 인격에 따라서 오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 말씀을 물어보는 말로 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하여 완전한 답변을 못할 인격을 가진 자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와 같이 말씀을 옳게 대답을 못하는 자가 되면 대답을 바로 못하는 시간에 벌써 마귀에게 지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와가 마귀의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나님 말씀에서 정확히 대답을 못하는 인격이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죽을까’ 라는 말로 대답이 나올 때에 하와는 미혹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귀는 말씀 무장이 못된 자에게 답변을 바로 못할 줄 알 때는 성경을 물어보는 말로 미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미혹의 말을 이기려면 물어보는 말에 정확히 대답할 무장이 있어야 한다.

  금일 소위 목자라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하나님 말씀으로 정확히 대답을 못한다면 교회를 망치는 목자가 될 것이다(창3:1~3).

  2)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도 미혹자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볼 것이 아니고 한 상징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말이나 같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말씀은 언제나 사랑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미혹의 말이다.

  우리는 공의를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데서 말씀은 공의의 법이라는 것을 믿고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법인줄 알고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 미혹은 얼마든지 말씀을 변경시키려는 것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창3:4).

  3)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이루어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마귀는 이것을 의심나도록 하는 말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까봐 먹지 말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마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케 해 주고자 하는 사랑을 의심나게 하는 말을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나도록끔 하는 것이니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해 주시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가야 할 것이다(창3:5).

 

  2. 둘째아담 예수에게 오는 미혹의 말 (마4:1~11)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아담 하와를 마귀의 말로 미혹해 보듯이 둘째아담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마귀의 말로 미혹을 시켜 본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미혹해 보는 말을 할 때에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 말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신을 받고 성신의 인도 하에서 미혹을 하는 말을 할 때에 성신 받은 사람으로서 미혹 받을 말을 했던 것이다.

  1)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이적이다 (3~4)

  이것은 성신 받은 사람이 이적을 중심한다는 것은 미혹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적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양떼를 살리기 위한 목적인데 말씀으로 살리지 않고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이적이라는 것은 곁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적을 행했다 하여도 진리로서 우리를 살리는 일이 없다면 그 이적은 필요가 없는 일이요. 금일에 아무리 이적을 행하는 종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양떼를 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이적은 오히려 미혹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으로 이겼던 것이다.

  금일에 아무리 이적이 많아 육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그 생명을 살려 주는 일이 아니라면 거짓선지의 미혹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높은데서 뛰어 내리면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5~7)

  성신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한다고 해서 함부로 위험한 일을 저지르면서 보호할 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되는 것이니 마치 마술자가 필요 없이 마술을 행하듯이 아무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이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할 일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전쟁을 할 때에 자기가 주의치 않고 싸움에 실패하면서 상부의 보호만 믿고 있다는 것은 망령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사람이 주의할 일을 주의하고 피할 일을 피하고 싸울 일을 싸우면서 그밖에 내가 못할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된다는 것을 믿고 나가지 않고 공연히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고 하면서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오히려 미혹을 받는 길이 될 것이다.

  3) 타협적으로 나가자는 말이다 (8~11)

  마귀는 언제나 싸우지 말고 자기 말만 들으면 얼마든지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금일에 공산당이 기독교를 향하여 공산 사상을 지지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니 이 말이 마귀의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온 것인데 마귀 앞에 타협을 한다면 벌써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은 붉은 마귀의 일을 없이 하려는 것인데 마귀의 일을 없이 하기 위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마귀의 일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그 시간에 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의 주로 오신 것은 타협할 수가 없이 죄를 진 인간들을 향하여 대신 죽으러 온 것이요 재림의 주로 오실 것은 이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몽땅 없애려 오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마귀의 일에 타협하자는 것은 미혹의 말로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사명은 마귀에게 미혹 받은 세상을 깨닫게 해서 구원해 주자는 것이니 마귀의 미혹의 말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기독 신자로서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자

- 말 3:16~18 -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특별한 소유가 된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된다고 가르친 것이 말라기 3장과 4장의 말씀이다. 예들 든다면 타작 마당에서 짚이나 쭉정이도 다 농부의 소유이지만 알곡만이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다음과 같은 자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시련 중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 (2~4)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 특별한 소유를 삼으려고 할 때에 은과 금을 풀무불에다 연단 시키듯이 당신의 백성을 연단을 주어서 그 시련 속에서도 의로운 제사를 드릴 적에 그 제사를 기꺼이 받으시고 그들로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우리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므로 구원해 주는 일이요 성도의 의라는 것은 아무런 시련이 와도 원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일이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이다 (7~12)

  십일조라는 것은 특별한 소유가 되는 백성이 지상의 축복을 받게 하는 한 계명이 되는 것이다. 영혼이 천당을 가는 일에는 지상 축복이 필요가 없지만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지상 왕국의 새 땅 축복을 받는 일에는 다음과 같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집에 바쳐야 한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특별한 소유가 되는 자들이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교회를 가르쳤다. 만일 의로운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단의 회가 되는 교회에 바치면 안될 것이다.

  2) 농민은 토지에서 나는 현물에서 드려야 하고 상인은 상품에서 그날에 본전에서 남는 돈을 드려야 하고 노동자는 월급에서 드려야 할 것이다.

  3) 십일조를 드리되 새 시대의 축복을 받는 진리를 굳게 믿는 신앙에서 드려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지상에서 차고 넘치는 새 땅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이다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택한 것은 영광을 받고자 하여 택한 것이니 언제나 말이나 행동에나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더럽힐까봐 조심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될까봐 조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의 입술에 열매를 주고, 머리에 완전한 영감을 주므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 신자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고 함부로 행동에 주의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기에 어려운 자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천하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자로서 온 세계가 풀무불 같이 타지는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듯이 악인이 타져 버린 재를 밟고 하나님의 성호를 찬송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4:1~3).

  우리는 시련 중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항상 조심하는 생활이 있는 자는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하는 종이 되자

- 롬 9:1~3 -

 

  하나님의 종은 양심과 성신의 역사가 함께 하여야 될 것이다. 성신은 언제나 어떤 인격이나 학식이나 재능이나 의식을 따라서 움직이는 신이 아니고 양심을 보고 양심의 활동을 따라서 성령은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하는 생활을 본문에서 배우기로 하자.

 

  1.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 사랑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도덕도 거짓이 있을 수 있고 의식도 있을 수 있고 인간적인 혈통에도 거짓이 있을 수 있고 문학적인 신사라도 거짓이 있을 수 있고 과학적인 기술자에게도 거짓이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은 교파 울타리 안보다도 한 교회 안보다도 정통 교리 체계 안보다도 신학적인 학설의 체계 범위 안보다도 좀더 들어가서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참 사랑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참사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것 외에는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살리되 그리스도의 참 사랑만이 참된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니 이 사랑 안에는 형제를 위하여 내가 목숨을 바치고 싸워준다는 것 하나만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어떤 종이 자기의 위신이나 명예나 생활에 타격을 받는다고 하여서 불평을 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이 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 사랑 안에는 그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 그대로 남에게 준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14만 4천에 드는 종은 거짓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는 데서는 아는 것을 모른다 할 수도 있고 보고도 못 보았다 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단점을 알고도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밖의 거짓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2. 형제를 위하여 근심과 고통이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2)

  만일 하나님의 종이 자기의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근심과 고통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형제를 위하여 근심하고 고통 하는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와 전도는 열매있는 종의 생활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심령 고통을 받은 것은 우리를 위한 고통이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쉬지 못하고 기도하는 것도 우리를 위한 애달픈 기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양떼를 위하여 마음에 근심하고 남의 시련을 나의 시련보다도 더 근심하고 남의 고통을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도 더 안타까워하는 것이 있다면 이 종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격동하는 마음이라고 보게 된다. 양떼가 주려도 목이 마르다해도 목자의 마음에 근심이 없다면 그 목자는 삯을 위해서 있는 목자라고 보게 된다.

  마음에 하나님의 양떼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종은 형제를 위하여 근심과 고통을 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자기 몸이 병들 때 근심을 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며 자기 몸이 괴로울 때 고통 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리요. 이와 같이 사랑하는 형제들의 딱한 사정을 볼 때에 근심하며 기도하고 가슴을 두드려 가며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이 오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옷을 찢고 성전에 올라가 울며 기도할 때 북방 앗수르가 무너졌던 것이다. 금일에 와서 아시아의 넓은 대륙을 공산당이 집어삼키되 교회를 짓밟고 들어와 다 황폐화된 금일에 남한 땅 작은 모퉁이에 있는 종으로서 이 비참한 일을 보고도 기지개 켜며 잠자기를 좋아하며 오락과 연락에 도취가 된 자라면 그 양심은 성령 안에 있는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마음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근심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3. 희생적인 소원이 있다 (3)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친히 담당하시면서 인간이 구원받기를 소원한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저주를 받아도 자기 골육과 친척이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 일꾼의 정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자아를 희생하고 남을 살린다는 마음이 불탈 적에 그리스도의 능력은 십자가를 통하여 그 종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찾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찾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과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과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와서 항상 역사하는 성신과 항상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괴로움을 극복하고 나가는 종과 합해지므로 왕국 건설 운동은 필연코 대 승리를 보게되는 것이다.

  자기네 유대 교권을 내세우기 위하여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정죄 하던 바리새교인들은 열매 없는 나무같이 찍힘을 당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을 두고 복음을 전하던 그 역사는 세계를 정복하는 대 확장을 이루는 동시에 필연코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자아를 위하여 날뛰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자아를 희생하여 형제를 살린다는 사랑의 용사가 될 적에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어 새 시대를 왕권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옳은 일에 증거하는 자가 될 때에 옳은 사람이 되고 불의한 일에 증거하는 사람이 될 때에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이다.

  금일에 공산당은 허위 선전에 날뛰고 있지만 이것은 아무런 열매 없는 검불이 될 것이요 참된 양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증거하는 진리의 사람은 완전히 열매를 맺는 푸른 나무같이 될 것이다.

 

 

의합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 암 3:1~15 -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요, 영원 존재자이시요, 무소불능의 신이시며, 진실 무위하신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홀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요,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되 어떤 인간의 지식이나 권리나 또는 영광을 따르는 자를 원치 않으시고, 지식도 권리도 아무런 영광도 없는 농촌에 농부의 한 사람으로 뽕나무를 재배하고 있던 아모스를 불러서 경고의 나팔을 불게 할 때 하나님은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하시면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지만 아모스를 불러 썼던 것이다.

  금일에 지구상의 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지만 이 시대에 의합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의합된 사람을 찾으시기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느냐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의합 되기까지 징벌하심 (1~2)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선지 국가를 이루셨지만 순종치 않을 적에 용서 없이 징벌을 하였다. 이것은 사명을 맡겼기 때문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왕국 건설을 위하여 싸우라는 것인데 마귀와 타협이 있다면 하나님은 왕국 건설을 방해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원수로 알고 행한 대로 갚으시되 악한 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 사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일국의 한 정당도 자기의 당원이 그 정당의 하는 일을 방해하는 당원은 제명 처분을 하거든 조물주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창조하시고 창조의 목적인 왕국을 위하여 사명을 맡긴 이스라엘이 사마리아가 될 적에 하나님은 무서운 지진의 불로 징벌했던 것이다. 사명을 맡지 않은 자가 잘못이 있는 것은 사업에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러나 사업의 사명을 맡은 자가 잘못할 때는 사업에 큰 방해를 하는 자이므로 하나님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의합된 자에게 비밀을 알려주심 (3~7)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에게 의합된 사람에게 자기의 비밀을 알려주시고 일을 진행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가 있고 종들이 있지만 의합된 자가 없으므로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를 찾아 비밀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비밀을 한 사람에게 알려준 다음에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용서 없이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합된 자에게만 하나님은 나타나기 때문이다. 노아에게 방주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 법에 의하여 판단을 나렸고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알린 후에 그 법에 의하여 판단을 나렸고 모세에게 율법과 계명을 준 후에 그 법에 의하여 판단을 나렸고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서 십자가의 비밀을 알려준 다음에 그 법에 의하여 이날까지 판단을 나렸고 말세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비밀을 바로 전하는 종에게 권세를 맡겨 세계를 통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에게 알려준 묵시의 비밀은 그 때에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계10:7, 11:15과 같이 되는 날에 끝을 맺는 것이다. 의합한 자들에게 보여준 묵시는 심판기에 남은 종이 될 변화 성도가 다시 예언하는 역사가 있는 동시에 그들을 통하여 지상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3.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찾으시는 것이다 (11~12)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는 멸망의 도성이라도 그 안에 택한 사람을 찾되 양을 찾는 목자가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다 남은 두 다리나 귀 조각을 버려 두지 않고 가져오는 것같이 당신의 백성을 그 도성의 어느 침상 모퉁이에 있다하여도 찾아낸다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공산 정권 아래 신앙 자유가 없다하여도 그 속에서도 택한 백성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아모스가 사마리아를 찾아가서 생명을 바치고 나가서 외치듯이 지금도 어느 종이나 의합된 종이라면 강하게 들어 쓰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4. 경고가 있은 후에 보응을 내리심 (13~15)

  아무리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자 같으나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입을 통하여 친히 말씀하시고 듣지 않을 때에 용서 없는 보응의 심판을 내려 멸망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택한 종의 말씀 권세라는 것이다. 가장 권세 있는 자는 하나님께 의합된 자로서 시대적인 비밀을 받아 말하는 종이라고 볼 수 있다.

 

  결    론

  가장 복되고도 귀한 사람은 하나님께 의합된 자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자라고 볼 수 있다.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 지렁이 같은 인간에게 의합을 하자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과 의합 하기를 싫어하고 또는 의합된 사람을 멸시하고 그의 전하는 말을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살길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이 전하는 말을 겸손히 순종하는 것밖에는 없다.

 

 

입의 말과 인격 문제

- 약 3:1~12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입에 말할 수 있는 특권을 맡긴 것은 그 입의 말에 의하여 보응을 내리시겠다는 법이 있는 것이다(마12:36~37). 그러므로 그 말과 인격과는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말에 의하여 하나님같이 되기도 하고 마귀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자기 입이 부정한 것을 떠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성경의 심장이 되는 이사야서를 하나님께 받은 선지는 입이 부정한 것을 떨 때에 하나님은 대표적인 사람으로 세워서 대 선지가 되게 했던 것이다(사6:5~8).

  이제 입의 말과 인격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입에 실수가 있는 선생이 될까봐 떨어야 한다 (1)

  죄 중에 큰 죄는 말에 실수가 있는 선생이라고 본다.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는 입으로 사람을 죽이는 죄가 더 큰 것이다. 왜냐하면 입으로 사람을 죽이는 죄는 그 영과 사상을 죽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때려죽이게 하던 바울도 그 입을 들어서 열방을 깨우치는 일이 있었지만 입에 실수가 있는 종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를 받았다. 입에 실수가 있는 선생은 누구냐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①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종

  ② 성경을 잘못 말하는 종

  ③ 공연히 횡설수설하는 말을 하는 종

  하나님의 종은 입에 법이 있어야 한다(말2:6). 지식을 지켜야 한다(7). 인생 중에 제일 열매가 많은 사람은 입에 실수가 없이 진리를 증거하는 종이요, 제일 열매가  없이 나가는 자는 필요 없는 인간이라고 본다.

  입은 하나님과 상대하는 입이요 사람을 상대하는 입이다. 하나님을 상대할 때 입에 실수가 있으면 사람을 상대할 때도 큰 실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상대할 때 입에 실수가 없이 되는 사람은 사람을 상대할 때도 입에 열매가 많을 것이다.

 

  2.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입을 조심할 것 (2~8)

  입은 지체 중에 제일 약한 것 같으나 제일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든지 항상 자기 인격은 학식보다도 기술보다도 체격보다도 금전보다도 입에 실수가 없는데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생각하고 모든 일을 다 잃어 버렸다 하더라도 입만을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한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물질에 끌리어 말을 할 때 물질의 종이요, 명예에 끌려서 말할 때에 명예를 탐하는 거짓 선지요 세상 지식을 따라서 말할 때에 세상 지식에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할 때에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를 정복할 자는 하나님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입에 따라서 모든 결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혀는 막막한 바다를 건너가는 배를 좌우하는 작은 키와 같고 많은 섶을 불사르는 적은 불같고 영원한 지옥의 불로 가게 하는 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말하는 대로 보응을 받을 인격을 하나님께 받았으니 입을 조심해야 될 것이다.

 

  3. 하나님께만 찬송하는 입이 되어야 한다 (9~12)

  누구든지 영원히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영원히 슬피 통곡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영원히 찬송하는 사람도 되고 영원히 통곡하는 사람도 될 것이니 지금 하나님께 상달하는 찬송을 제사로 올리는 사람이 되려면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다.

  입으로 범죄하고 입으로 찬송과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오히려 가증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입이 깨끗한 자로서 찬송할 때에 하나님은 그 찬송을 제사로 받으시고 그 찬송대로 이루어지도록 축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입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송을 부르는 입으로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슬픈 일이 입에 있고 가장 기쁜 일이 입에 있다. 지옥 불에서 영원히 슬퍼하는 입이 얼마나 불행이며 천국에서 영원히 기뻐하는 입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인가. 그러므로 마귀는 항상 입으로 죄를 짓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성신은 항상 복을 받도록 입을 들어서 쓰는 신이시다. 베드로가 입으로 예수를 부인할 때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입으로 한번 말할 때에 3천명이 회개할 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50일 전의 베드로의 입과 50일 후의 베드로의 입과는 인격의 큰 차이를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말씀에 떠는 자의 시련과 축복

- 사 66:5~14 -

 

  인생의 최고의 인격과 축복은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할 때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완전이요 순종치 않으면 타락이라는 것이니 하나님과 인생과에 연합할 수 있는 것은 말씀에 의하여 연합될 수도 있고 멀리 떠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그 뜻을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필요가 없고 말씀이 없이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되 말씀을 언약으로 세우시고 말씀대로 사람에게 역사해서 사람에게 완전한 인격도 완전한 축복도 주시는 것이다.

  이제 말씀에 떠는 자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며 어떠한 축복이 온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시련을 당하게 됨 (5~9)

  이 시련이라는 것은 교회 밖에의 사람을 통하여 오는 것보다도 교회 안 사람들에게 시련이 올 것을 가르쳤다. 어찌하여 교회 안 사람에게 시련을 받게 된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유 없이 미움을 받게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큰 혼선이 오는 때에 말씀에 혼선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그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유혹의 영이 들어가 역사하기 때문이다(4).

  앞으로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혼선되게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은 말씀을 중심 하지 않고 교권 중심, 인물 중심, 인간 문학 중심으로 흐르는 자들이 다수요 그들은 마음에 사랑이 없으므로 오히려 말씀에 떠는 사람을 미워하고 교회에서 쫓아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비방하는 무리들이다. 이러한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교회를 대적으로 여기시고 원수를 갚는 심판을 하되 용서할 수 없는 진노의 재앙으로 벌하시게 되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가 여러 가지 교파로 나뉘어 있지만 심판기에는 말씀에 떠는 자와 말씀을 만홀히 아는 자와 한 교회에 있을 수 없이 분열이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날까지는 기독교가 심판기가 아니므로 믿음으로 중생을 받고 다같이 민족적 국경에 차별 없는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지만 심판기에는 이사야 성경에 가르친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말씀에 의하여 심판하기 때문에 말씀에 떠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게 될 때에 성산의 축복을 받을 사람에게 형제들을 통하여 큰 시련이 오게 될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쭉정과 알곡을 갈라서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에 떠는 시온의 자녀는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자기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는 없고 또는 완전한 축복을 받을 교회를 이룰 수도 없게 될 것이다.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목적은 말씀에 가감 없이 믿고 순종해 나가기 위한 데서 받게되는 시련이다.

 

  2. 축복을 받게 됨 (10~14)

  1) 함께 기뻐하게 됨 (10)

  말씀에 떠는 자들이 다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은 잠깐의 시련을 겪었지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오므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씀에 떠는 종들을 통하여 많은 백성이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 기쁨은 다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복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이 즐거운 에덴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떨지 않는 아담 하와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는 다시 고통이 없는 기쁨의 생활이 있게 하신다.

  2) 만족함이 있게 하신다 (11)

  최고의 만족이라는 것은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 있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축복이 오니 이 축복이라는 것은 최고의 만족을 주는 축복이다. 이날까지 저주받았던 만물은 최고의 만족을 주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젖 먹는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안에서 만족한 것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의 생각밖에 만족을 주는 것이니 이것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은 온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떠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책임을 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3) 평강을 주심 (12)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사랑하는 제자를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것은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잃어 버렸던 평강을 다시 주신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은 평강의 신이시니 당신이 가진 평강을 인생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평강의 영광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랑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께서 오히려 슬퍼하시고 인생에게 그 평강을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4) 친히 위로하심(13~14)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순종한 자는 친히 위로하시되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를 위로할 것인즉 네 마음이 기뻐서 네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 몸이 늙지 않고 항상 청년같이 젊어서 영원히 있을 것을 가르쳤다. 사람의 몸이 뼈가 피곤해지고 온 몸의 피가 피곤한 것은 죄 값이라고 본다. 우리 영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고 몸까지 영생하는데는 항상 연한 풀같이 소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불신자와 같이 그 몸이 죽는 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고 그 영을 잠시 동안 낙원에 머물러있게 하는 것 뿐이고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은 그 몸이 영원히 청춘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을 가르쳤다.

 

  결    론

  가장 가련한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떨지 않는 인간이요, 가장 복되고 화려하게 되는 사람은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 복음을 주신 목적은 말씀에 떠는 자에게 자손 만대에 축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사66:22~23).

 

 

 

가르친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 요일 2:24~29 -

 

  기독교는 세계 통일의 완전 교훈을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니 그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그 교훈 안에 그대로 거하는 생활을 할 때에 그 교훈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에서 그 시대 사람에게 각성을 주는 것이 기독교 사명이다. 그러므로 요일2:27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교파의 울타리 안에서 거하는 것보다도 가르친 그대로 가감없이 생활할 때에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있다.

 

  1. 영원한 생명이 있다 (24~25)

  가르친 교훈은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교훈이니 그 교훈에서 가감된 생활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은 그 생활에 있을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진액이 없는 나무가 발전이 없듯이 영원한 생명이 없는 생활에는 아무런 생활에 산 체험적인 발전을 가질 수가 없다. 영원한 생명이 있을 적에 산 믿음이요 없을 적에 죽은 믿음이다.

  기독교의 신앙 체험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오는 것이니 이것은 가르친 그대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자만이 받게되는 체험이다.

 

  2. 기름 부음을 받게 된다 (26~27)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교훈은 물질에 국한된 교훈이니 사람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요 기독교 안에 교훈이라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종들이 성령으로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것이므로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교훈이니 완전치 못한 인간의 지식이 완전한 것을 가르치는 교훈에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가르친 교훈 안에 거하는 자라야 그들이 받은 기름 부음을 같이 받으므로 그들이 못 다한 사명을 우리가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3. 주의 날에 담대함을 얻게 된다 (28)

  주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셔서 부활 승천하기까지 행하신 일은 죄인을 부르기 위한 법을 완성하신 것이요 다시 강림하실 때는 가르친 교훈 그대로 생활하며 싸워서 승리한 자에게 갚아주러 오시는 날이니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도 가르친 그대로 교훈 안에 거하며 생활하지 않은 자는 주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학생이 시험을 보는 날에 가서 그 선생이 가르친 교훈 그대로 답을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기독교 안에 많은 종들이 각각 자기의 주관을 세우면서 여러 가지 학설을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교훈 안에 그대로 있지 않는 생활이 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운 사도들의 교훈 그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조금도 혼선이 없고 조금도 가감이 없는 정확한 다릴줄의 진리를 잡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가르친 교훈은 하늘이 돈다는 과학이 지구가 돈다는 과학으로 변해진 것은 사람은 완전한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고 나날이 발전하는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조물주의 교훈이니 조금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교훈이므로 그 말씀대로만 순종할 때에 주의 날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왕권의 영광을 영, 육이 아울러 받게되므로 담대함을 얻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은 하나님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생활이요 가장 작은 일에서 큰 열매를 가져오는 생활은 그 교훈 안에 거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서 불학무식한 사람으로 어장을 버리고 예수를 따를 적에 너무나 어리석은 일 같으나 요한이 교훈 안에 거하므로 완전한 승리의 사도로서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하나님께 받은 사도가 되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교훈 안에 거할 때에 강한 자가 되고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그 교훈 안에 거하게 될 때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역사하시되 교훈대로 역사하는데는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을 들어 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인 사람에게 원하는 일

- 창 1:26~28 -

 

  하나님께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화로운 형상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당신과 같은 형상을 만들 적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당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 놓으라는 것이 인생이 맡은 사명이다. 하나님은 첫째가 사랑인 동시에 사랑의 심정을 맞추어서 일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맡은 사명이다.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서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한다.

 

  1. 땅에 충만 하라는 것이다 (26~28상반절)

  충만하려면 남자 홀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아시고 남자의 사명을 돕기 위하여 여자를 창조할 때 여자는 남자의 씨가 이 땅에 충만해지는 일에 돕는 배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금일에 와서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충만해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마귀의 자녀들이 충만해진 것은 여자가 자기 사명을 벗어나서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것은 남자가 맡은 사명을 도와서 남자의 거룩한 씨가 이 땅에 충만해지게 하는 일에 절대 복종할 것뿐인데 자기 사명을 탈선해서 남자에게 나쁜 씨를 나도록끔 한 것은 선악과를 먹을 때부터 남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씨를 전해줄 수 없는 여자의 몸이 되었다.

  이것은 의로운 씨를 전하는 몸에 선악과의 질이 들어온 원인이다. 여자의 몸이라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몸에서 갈빗대 하나로 하나님이 만든 몸인데 그 몸을 남자를 위해서 쓰지 못하고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으므로 그 몸을 더럽힌 것이 사명을 할 수 없는 자리로 떨어진 동기다. 자기가 도와야 될 남자를 망치게 했다는 죄는 더 큰 죄라고 본다. 자기 몸을 더럽히고 남자의 몸까지 더럽히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 사업을 망치는 행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자에게 다시 역사해서 성신의 잉태를 받도록 할 때에 선악과를 먹은 타락한 몸의 피를 통하지 않고 성신의 역사로 물과 피가 임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을 하도록 한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하나가 영생을 줄 수 있는 몸이 되므로 그 피로 말미암아 영과 육을 다시 구원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 의로운 씨로 충만해지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신부로 비유했고 당신을 신랑으로 비유한 것은 여자의 몸에서 의로운 씨가 나므로 지면에 충만해지라는 그 사명을 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는 둘째아담이 되었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종족을 내기 위하여 신부 자격을 이루어 놓는 것이 성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변화 성도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영생할 몸이 되므로 말미암아 의로운 씨를 이 땅에 전하는 신부의 자격을 이룰 수가 있다. 기독교의 온전한 역사라는 것은 이 땅에 의로운 씨를 충만케 하는 것이 신부 된 저희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 미혹을 받지 않고 절개 있는 신부가 됨으로만이 하나님의 원하는 일을 하므로 이 땅에 의로운 씨로 충만케 하는 사명을 하게 될 것이다.

 

  2.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28중반절)

  하나님께서 제일로 원하는 것은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원수를 이기고 정복하라는 것이다. 가장 간교한 뱀을 낸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간교한 뱀을 이기고 왕권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정복이라는 것은 통치권을 뜻한 것인데 금일에 와서 붉은 용인 옛 뱀의 세력이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하나님은 원수를 대립시켜 놓고 당신의 사람으로 정복하라는 것이니 승리하려면 정복할 수 있는 인격을 받아야 할 것인데 여자가 벌써 자기 인격을 상실한 것은 첫째 의심이요, 둘째 경솔이요, 셋째 몸을 더럽힌 것이다. 우리의 정복이라는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승리해야 되는 것이다. 세계를 정복할 용사를 많이 낳아 길러야 될 하와가 그 사상이 철저하지 못한 데서부터 금일에 악의 씨가 세계를 정복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할 사상은 유일신 종교의 사상인데 이 사상은

  첫째 : 하나님밖에는 참된 신이 없다는 것,

  둘째 : 그 말씀밖에는 믿을 진리가 없다는 것,

  셋째 : 그 사랑밖에는 다른 사랑은 필요 없다는 것이 세계를 정복할 하나님의 사람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다는 것은 너무나 사상적으로 큰 죄요, 또는 뱀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는 것은 몸을 더럽히는 음녀의 사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금일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을 정복하려면 유일신 종교의 사상, 정확무오한 진리의 사상, 백절불굴의 사랑의 절개를 지켜야만 이 땅을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는 것은 이 사상의 3대 요소를 가진 자가 이 땅을 정복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니 하나님만이 참되시니이다 하는 것과 그 말씀만이 확실합니다 하는 것과 그 사랑만이 그립습니다 하는 사람으로서 대 승리를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승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3. 다스리라는 것이다 (28하반절)

  하나님은 조물주이시지만 당신이 사람을 통하여 다스리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름까지라도 아담으로 하여금 이름을 짓도록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것은 몸도 영도 다스릴 수 있는 인격으로 주신 것이다.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요 몸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는 그릇으로 지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으로 말씀을 의심할 때에 영도 약해지고 몸으로 절개를 지키지 못할 때에 몸도 약해지므로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약해서 영적으로는 마귀에게 눌리고 몸으로는 동물에게 피해를 당하는 것은 영으로 마귀 말을 믿고 몸으로 마귀에게 절개를 빼앗기는 과오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승리의 십자가를 의심 없이 믿을 때에 영이 다시 소성하는 것이며 몸으로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괴로움을 극복하고 나갈 때에 하나님의 신의 역사가 승리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게되므로 우리는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일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다스리는 일이다. 아무리 교회라도 원치 않는 사람이 다스릴 때에 하나님은 역사를 거두어 가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이 다스리게 될 때에 하나님은 강한 역사를 내리시어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 하실 일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결    론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왕권을 받는 일에 돕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요 천국의 열두 진주문에 열두 가지 보석으로 쌓은 성에 황금 길을 걸어가는 그 거리는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완전히 승리하고 왕권을 가지고 길이 길이 영광을 누리라는 거룩한 곳이다.

  열두 가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달마다 맺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승리의 왕권을 받은 몸으로서 재미있게 살며 맛있게 먹는 식료가 되게 하셨고 생명수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마시고 피곤 없이 길이 길이 살라는 것이다.

 

 

 

장 년 공 과 편 - 세례 요한의 증거

 

  총    론

  금년 71년을 맞이하여 세례 요한의 증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강림시까지 증거하는 증거를 구체적으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려고 할 때에 과거에 선지시대는 약속을 세우는 시대가 구약 전서가 완전히 기록된 시대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때부터는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시대라고 봅니다.

  금년에 공부는 증거한 종들의 사기를 공부하는 동시에 우리 사명자의 할 일을 실천적으로 배우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1과  세례 요한의 잉태시의 증거

- 눅 1:8~17, 39~44,  요절:17 -

 

  서    론

  세례 요한은 잉태시부터 메시야가 오시는 일을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낼 때에도 앞길을 열어주기 위한 선지를 내세운 것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던 성도들로 메시야를 영접하여 온전한 사도의 직을 받을 사람들을 찾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잉태시에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일이나 모든 이루어진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간구한 기도 응답 (8~13)

  부친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려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할 때에 주의 천사는 향단 우편에 서서 너의 기도가 응답되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아들을 간구한 일이 있었는데 응답으로 수태 못하던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제사장족에서 세례 요한이 출생하여 마지막 예언자로 나타나되 이날까지 양을 드리던 제사는 메시야의 어린양의 피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제사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나타나 지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외쳤던 것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둘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세례 요한이니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선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라는 예언적인 계시록을 받았다. 그러므로 요한이라는 이름 하에서 두 선지 사명이 나타났다.

 

  2대지 : 주 앞에 큰 자가 됨 (14~17)

  모든 선지 중에도 요한은 메시야를 직접 영접하도록 하는 선지이니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자요 율법시대의 끝을 맺는 선지였다. 이는 모태로부터 성신이 충만함을 입었다고 한 것은 생령의 사람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세상에 나되 예수와 같이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 아니고 그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지의 영으로 역사를 마치는 완전한 영으로 났다고 본다.

  자범죄가 없는 자이며 많은 사람을 준비시키는 사람으로 날 때에 성신 역사 시대가 오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영접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영적으로 부패된 교계에 나와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는데 모든 부족을 회개하고 메시야를 영접하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역사가 있기 전에 회개를 외친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에게 깨우쳐 주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선지로서는 큰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시대의 종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이 되기 전 시대의 사람이니 회개를 외쳐도 베드로같이 큰 역사는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신이 내리는 때가 아니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자에게 영접하도록끔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들이 나오게 되므로 열두 사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3대지 : 복중에서 뛰노는 증거가 있음 (눅1:39~44)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6개월 된 태중에 있는 요한이가 기뻐 뛰노는 증거를 보인 것은 모태로부터 성신이 함께하는 증거이다. 이렇게 된 것은 마리아에게 더 확신을 주게 되었고 엘리사벳도 더 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사가랴에게 천사의 지시가 있은 것이나 마리아에게 지시가 있은 것이 꼭 같은 동시에 복중에 있는 아이가 기뻐 뛸 때에 분명히 마리아 몸에는 메시야가 잉태되고 엘리사벳의 몸에는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위한 선지가 잉태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주지 않고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예수님은 분명히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세례 요한은 잉태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세례 요한의 증거는 메시야를 영접할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선지로 났으니 만큼 예수는 완전한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 일에 증인이 되는 세례 요한은 잉태될 때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메시야를 영접할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하여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제단에서도 증거가 있었고 메시야를 잉태하는 마리아에게도 큰 증거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제2과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

- 요 1:19~34,  요절:23 -

 

  서    론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의 위신이나 명예나 안락을 생각한다면 바른 증거를 할 수 없다. 증인은 들은 대로 본대로 명령대로 증거하되 본 것도 양심대로 들은 것도 양심대로 명령을 받은 것도 양심대로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참된 증인이니 이 증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인을 말한다. 이제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를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대지 : 사명에 탈선이 안된 증거 (19~23)

  아무리 듣고 본 것이라도 자기가 할 말이 아닌 것을 증거한다면 이것은 월권이라고 본다. 단지 자기가 할 말은 무엇을 책임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네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자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이사야 선지가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는데는 사40:3에 가르친 말씀이 내게 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오늘에 주의 종들이 자기의 사명에 한계를 모르고 성경을 함부로 해석할 때에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 사명자는 세례 요한 때부터 주님 재림 때까지 선지 예언을 증거하되 자기가 증거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증거할 때에 열매가 있게 된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증거할 사명을 이사야가 기록한 글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사명의 한계를 바로 말했던 것이다. 구약 때 거짓 선지는 하나님께로 온 말씀이 없는데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일을 했고 신약 때 거짓 선지는 먼저 구약 때 선지들이 예언한 말씀에 맞지 않는 증거를 하는 것이 거짓 선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 때부터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도 선지 예언이 자기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적이 있고 교파가 우승하다 하여도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증거라고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은 구약 선지로 빠짐이 없이 책을 기록하게 하고 그 책대로 행하시는 것이 신약 시대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대지 : 하나님께서 행하라는 대로 함 (24~28, 33)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한대로 행한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종들이 행하라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명을 옮겨가기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할 때에 이것도 사명을 옮겨가는 수가 있다. 모세는 반석을 한 번 치라는데 두 번 쳤다는 조건으로 사명이 옮겨갔고 사울은 하라는 것을 그대로 하지 않을 때에 사명이 옮겨갔다. 이렇게 된 것은 큰 교훈이 된다.

  모세는 선지 중에 첫 선지요 사울은 열왕 중 첫째 왕이었다. 첫째 선지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사명이 옮겨갔고 첫째 왕도 사명에 순종치 않으므로 왕권이 옮겨간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전에 없던 일을 행하는 것이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인데 모든 교권주의자들은 이것을 반대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한 것을 담대히 말하면서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물세례라는 것은 완전히 원죄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은 자가 메시야를 영접할 때에 물로 세례를 받게 한 것은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죽게된 몸이 메시야를 영접하게 되므로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몸은 흙에서 난 몸이니 흙이 물에서 나왔으므로 그 몸이 물에 잠겨 올라올 때에 첫째아담의 몸을 벗어나고 둘째아담 예수님과 같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3대지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증거함(29~31)

  증인이라는 사람은 알아주든지 말든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예수를 나사렛 목수로 보는데 요한은 인간의 죄를 걸머진 어린양이라고 할 때에 그 증거를 옳다고 인정할 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목수가 세상 죄를 걸머졌다는 것이 도저히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가 참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행1:21).

  참된 증거라는 것은 처음에는 어리석은 말 같으나 마지막에는 참말 인줄 알게 되고 거짓 증거는 처음에는 참말인 것 같으나 마지막에는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된다. 지금도 거짓 선지의 말은 그때 그때 사람들을 끌기 위해서 말을 꾸며내는 것이요 참된 증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증거하는 것뿐이다.

 

  4대지 :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함 (32~34)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인 줄 알라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노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증거할 때에 확실한 증거를 보지 않고 증거한다는 것은 참이라 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성신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했던 것이다. 지금도 참된 증인은 자기가 직접 체험한 바를 가지고 성경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는 자라야 참된 증인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참된 증인은 참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자이다. 세례 요한은 성경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증거했는데 요한에게 대한 것도 성서적이요, 예수님께 대한 것도 성서적인 증거니 요한의 증거가 참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제3과  세례 요한의 경고

- 마 3:1~12,  요절:10 -

 

  서    론

  경고라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안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백성들에게 책망을 하는 말이니 아무리 친 백성이라도 합당치 않은 사람은 진노의 날에 망하게 될 것이고 합당한 자라야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세례 요한은 아무리 택한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영접하면 사는 것이요 영접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오는 것은 목적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 가운데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라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대로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1대지 : 회개 운동을 일으킴 (1~6)

  이 회개라는 것은 중생을 일으키는 운동이 아니고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에게 부패를 책망하고 누구든지 회개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요한은 이 경고를 하기 위하여 성별된 생활에서 인간의 화식을 목적하지 않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으로 속화된 인간을 찾아와서 회개를 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죄를 자복 하면서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2대지 : 거짓 선지를 책망함 (7~9)

  거짓 선지란 것은 정통을 말하면서도 사상과 마음은 진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거룩을 말하면서도 마음이 더럽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마음에 남을 이용하는 교만이 있어 자기가 사람의 숭배를 받기 좋아하고 남을 불쌍히 볼 줄을 모르는 자이며 자기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신앙 사상을 가지지 않고 공연히 남의 흠을 잡기를 좋아하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세력을 내세워 보려는 자들이다. 이런 무리는 마음에 독사의 독이 있으므로 회개할 기회가 있어도 짐짓 진리를 대적하고 자기네만 정통이라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대적하러 나왔던 것이다. 이 때에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던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이 조상될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계통적인 신앙 양심이 없고 신앙 양심을 떠난 인간들이라는 것으로 책망한 것이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신앙 양심을 가진 자라면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무리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여도 진노의 날에 다 망할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3대지 : 시대를 구분하는 경고 (10~12)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준비 없이 심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농부가 그 손으로 곡식을 가꿀 때도 있고 날 센 타작기를 두르며 사정없이 부수어서 쭉정과 알곡을 갈라놓는 일을 하는 것은 목적이 알곡 하나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모든 사람을 다 중생케 하며, 자라게 하며 완전히 결실케 하시는 것이요 다음에는 알곡만을 모아들이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선지서 전체는 이 진리 하나를 목적 두고 가르친 것이니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때는 은혜시대를 가르쳤고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이 종말에 심판이니 이것이 선지서의 전체 중심 되는 요점이 된다. 그러므로 요한은 예수를 증거할 때에 선지서 전체에 대한 뜻을 들어서 증거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재림의 주가 올 때까지 전할 사명자 들에게까지 다 포함된 것이니 사도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따라가서 그 증거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한 자들이요 금일까지의 기독교 복음 운동은 사도적인 계통을 이룬 것뿐이다. 그러나 변화성도가 전하는 사명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고 심판한다는 경고를 구체적으로 전하게 될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사도적인 사명도 있고 선지적인 사명도 있으니 사도는 선지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증거하는 사명이요 선지는 이루어질 것을 전하는 사명이다. 그러므로 변화 성도는 선지의 사명을 다시 끝을 맺는 것이다.

 

  결    론

  세례 요한의 경고는 선지적인 사명을 하되 메시야를 영접하라는 경고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경고는 변화 성도가 하게 될 것이다.

 

 

제4과  세례 요한의 겸손한 증거

- 요 3:26~36,  요절:30 -

 

  서    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증인이 되려면 겸손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증인은 하나님의 종이니 자기의 권리도 명예도 또는 인격도 내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증거하라는 일에 가라면 가고 말하라면 말할 것뿐, 그밖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요한의 겸손한 증거를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위에서 주시는 바가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함 (26~27)

  하나님의 종이 항상 위에로 부터 주시는 것만을 목표하고 조금도 땅의 것을 생각하여 어떤 흥분이나 또는 명예나 위신을 따라서는 안된다. 남이 역사할 때에 그 역사도 위에서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내가 역사하는 것도 위에서 주신 줄 믿을 때에 남의 역사나 내 역사나 다 하나님의 역사이니 내가 하든지 남이 하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금도 마음에 너냐 나이냐 하는 것이 있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여야 된다.

  남의 역사가 강하다, 내 역사가 강하다 할 것도 없다. 강해도 위에서 주는 것이요 사람이 스스로 역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 사람이 많이 따르고 따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서로 논할 필요도 없다.

 

  2대지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함 (28~30)

  세례 요한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라고 증거한 다음에 모든 제자를 보고 너희는 내가 증거한 것을 너희가 증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니 나를 증거하지 말고 내가 증거하는 메시야를 증거하라고 부탁할때에 그 제자들이 예수만을 증거하여 예수님으로만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친구가 신랑으로 올 때에 그 결혼식에서 우리 신랑이 왔으니 우리는 기쁘다 하면서 그 잔치의 음식을 먹을 것뿐이고 그밖에는 그 신랑이 축복을 받고 잘 되기를 축하할 것뿐이라고 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셔서 온 천하를 구원하러 오는 일에 승리하시고 즐거운 평화 왕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그는 증거를 마치게 된 것이다.

 

  3대지 : 예수의 증거는 위로부터 온 것이라고 강조함 (31~33)

  하늘에서 온 자는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것이니 이 증거를 받는 자는 이 땅에 심히 적을 것이로되 그의 증거를 받는 자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을 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나사렛 목수 예수가 하는 일은 전부가 하늘의 것을 가져온 것이니 조금도 땅의 것으로 생각지 말고 받아서 그대로 믿으라고 간곡히 말한 것이 요한의 증거다.

 

  4대지 :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 있고 순종치 않으면 진노를 받으리라고 증거함 (34~36)

  예수님이 스스로 증거하는 것보다도 세례 요한이 담대히 증거할 때 많은 사람은 그 증거를 받고 예수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요10:41).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에 오셔서 증거할 때 반드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증거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②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③ 아들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증거하게 한 것이니 이 증거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몸소 예수님이 3년간 전도를 할 때에 받들어 수종을 들고 봉사하도록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사렛 목수의 한 사람으로 복음 전도를 시작할 때에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 승천하기 전이므로 모든 사람이 세례 요한과 동등 되는 사람으로 인정할 때마다 세례 요한은 나는 나사렛 예수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이니 나를 따르지 말고 나사렛 예수를 따라 가라고 증거한 것이 요한의 증거이다.

 

  결    론

  참된 종교라는 것은 증인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거짓 종교는 증인이 나가서 하는 일이 인간의 학적이나 권력이나 물질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요 참된 종교의 증인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여호와의 말씀만 증거하고 하나님의 역사만 순종하며 물질을 초월하여 신의 영원한 영광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는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왔다는 것만을 증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을 전부 예수님만 따르도록 소개해 주고 세례 요한은 쓰러져 순교하므로 끝을 맺은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에서 반드시 배울 바는 이것이다.

  ① 서슴치 않고 담대히 외치는 일.

  ② 순수하게 하나님의 아들 한 분만을 내세운 일.

  ③ 자기 사명의 한계를 바로 지켜 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은 일.

세 가지를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논 설 편

 

1. 71년도를 맞이하여 사명자의 할 말

  슬픈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때는 71년도에서부터라고 본다.  어찌하여 슬픈 경고를 할 때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백의 민족은 71년도에 국가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전 국민은 바로 싸워야 할 해라고 본다. 그러면 전 국민이 바로 싸운다는 것은 바로 싸울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오늘에 우리 기독교의 사명은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아는 자도 적으리 만큼 잠들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에 기름진 강토가 붉은 짐승의 밥이 되다보니 셈의 민족의 탄식하는 눈물겨운 사정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하나님은 노아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야벳의 장막에 나타나지 않고 셈의 장막에 나타나 모든 선지들에게 묵시를 보일 적에 셈의 장막에서 만왕의 왕이 될 메시야가 탄생할 것과 또는 그 빛이 세계를 밝힐 것을 말할 때에 큰 빛이 갈릴리 해변에 비취어지기 시작하여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비취어진다고 사9:1~2에 말씀했다.

  그 빛은 금일에 대 승리를 보아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빛으로 밝아졌던 이 땅에 소위 무신론 유물적 정치와 그 사상은 전 세계를 흑암으로 떨어뜨리는 금일에 기독교는 그 흑암을 뚫을 힘을 잃고 잠든 이때에 동방 해 돋는 편에 이 흑암을 뚫을 빛이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으로 임하여 이 진리의 빛이 세계를 덮었던 흑암을 물리치고 그 빛 가운데서 모든 나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사59:19~60장에 말씀했다.

  이미 동방 사람에게 말씀의 빛이 임한 것이니 71년부터 이 빛을 발하기 위하여 사명자들은 이 진리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일에 총 궐기하여야 될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이 할 말은 하나같이 동방에 나타난 말씀을 가지고 모든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거짓 선지를 끼고 나오는 미혹의 영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71년도부터는 양떼들이 다 쑥물을 먹고 쓰러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네 말, 내 말 할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나가서 할 말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이 시대에 빛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명자들은 환란과 재앙에서 살길을 열어주는 진리를 입으로 바로 증거하지 못하면 그 자체는 사8:20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2. 금일에 소위 반공이라는 표어가 거리 거리에 붙어 있다. 그러나 그 반공 자체의 진리를 모르고 따라간다는 무리는 속에 아무런 생명이 없는 쭉정이같이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반공이라는 간판이 제일 많이 붙은 나라라고 본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공산당을 용납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산당인줄만 알면 농촌에 사는 부인들까지도 묵인하지 않고 경찰에다 고발을 해서 잡아내도록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제일 반공 사상이 강한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 사명자들이 이러한 민족들에게 반공 사상이 있어야 될 진리를 철저히 말해주고 이 시대는 붉은 공산당이 왜 이렇게 일어나느냐는 것을 성경에서 말해주고  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온다는 것을 밝히 말해 주는 진리 운동이 없다면 앞으로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게 된다. 진리 없는 운동이라는 것은 뿌리 없는 꽃가지와 같다. 임시로 꽃병에 있는 꽃이 보기는 좋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듯이 진리가 없는 반공 운동은 그 반공이란 자체가 완전한 열매가 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남의 말을 듣고 따라가다가 조금 위험한 일이 오면 다 도망하듯이 진리의 생명이 없이 무조건 공산당이 나쁘다는 말을 듣고 움직인다는 국민은 하루아침에 변해지기 쉽다. 오늘에 소위 교권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덮어놓고 남이 이단이라고 말한다고 같이 충동을 받았던 무리들이 몇 날 가지 않아서 따라가던 사람을 또 이단이라고 하면서 돌아서는 일이 많다. 그러면 이런 국민과 이런 교인들을 데리고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오늘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국민이 되지 않도록, 교인이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진리를 바로 아는 사명자들이 71년부터 목숨을 아끼지 말고 나서야 할 것이다. 먼저 깨달은 자는 먼저 나서고 다음에 일어나는 자들이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계룡산 새일 수도원이 이단이니 누구든지 거기에 가면 걸려든다고 하니 이러한 기독교라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왜냐하면 덮어놓고 이단한테 전부 걸려든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러한 기독교가 어떻게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고 나갈 수 있겠는가!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났는데 군대가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다 죽는다고 무서워서 가만히 있다면 그러한 국가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금일에 한국 교회가 계룡산을 마귀 소굴이라고 무서워하고 새일 수도원을 이단이라고 가지 못하게 하면서 거기 가면 누구나 걸려든다고 하면 벌써 전쟁에 진 군대와 같다.

  내가 바라기는 새일 수도원 원장된 이 사람이 매일같이 입에 말씀이 임하여 책자를 내고 있으며 이것은 다른 사람이 받아서 기록한 대로 출판하는 것이니 이 책자를 자세히 읽어보고 71년부터 남의 말에 왔다 갔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이 책자를 자세히 읽어보고 입술에 똑똑한 변론을 말하기를 바란다.

 

  3. 금일에 남의 나라 사람보다도 우리 나라 사람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다. 세계적으로 화려한 도시가 많이 있지만 서울 거리같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농촌에 있는 농민들도 서울에 가야 산다고 농장을 버리고 와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할일 많은 농촌은 일꾼이 없고 할일 없이 왕래하는 서울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서 교통로를 만드느라고 지하를 파고 공중에다 비싼 쇠를 건너 놓고 사람을 다니게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하는가. 심지어 외국에서 차관을 내어다 길을 닦고 있다는 것은 남의 나라보다도 유명한 일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 눈을 뜨고 내다보니 이 민족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기쁜 일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임시 살기는 서울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임시를 따라서 사는 국민이 된다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임시는 괴로워도 장래를 생각하고 움직여 준다는 것은 눈물 흘려 감사할 일이지만 임시 살기 좋다고 장래를 생각지 않고 모여드는 서울 시민을 볼 때에 눈물 흘려 경고할 말이 사명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 우리 인생은 하루살이가 아니고 장래를 위하여 싸워야 할 용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이 민족을 바로 지도할 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그 진리를 분명히 알고 민족의 장래를 하나님의 보호받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길러 주고 인도하는 영도자가 나와야 할 것이다. 정객들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정견 발표는 번드레하게 실지에 당선이 되면 자기의 당선되기 위하여 운동한 경비부터 보충을 채우려고 하고 보니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게 될 때에 그 애국적 양심은 마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한 지도자를 세우려면 나 자체가 앞으로 어떠한 일이 온다는 것을 성경에서 바로 알고 거기에 따라서 지도자가 나오도록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나서서 71년도에 선거 운동은 국민들의 자체가 사상, 정신이 바로서도록끔 하는 책임은 사명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 사명자가 정치적인 욕망은 가질 필요가 없고 정치인들을 깨우쳐 주는 책임만은 금년에 꼭 책임을 져야만 될 것이다. 이날까지에 우리 나라의 선거 운동이 많이 있었지만 금년 선거 운동은 사명자들이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할 위기에 도착했다고 본다.

 

  4. 남의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부흥 운동을 많이 한다는 것만은 유명한 일이다. 은혜가 많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다니는 무리들도 남의 나라보다도 유명한 열심가들이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부흥회라는 것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되는 일이 있을까 보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부흥사들이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남을 이단이라고 치는 부흥사는 열광적인 부흥사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술을 먹고 흥분된 사람이 덮어놓고 이놈 저놈 하듯이 금일에 성경도 똑똑히 모르는 자들이 조금만 은혜를 받으면 크게 과장을 시켜서 은혜 받은 간증을 해도 받지 못하고도 받았다고 하고 보지 못하고도 보았다고 하고 심지어 병이 낫지 않은 것도 병이 나았다고 풍을 치면서 자기는 모든 것이 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과장을 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망치는 폐단이 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종말관의 진리를 완전히 무장하고 양떼를 지도할 때 그들이 어디를 가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지식을 넣어주고 아무런 일이 와도 낙심치 않도록 소망의 확실성을 진리에서 갖도록 하여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 강하여지고 미혹이 올 때에 더 밝아지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하여야 될 책임이 사명자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는 부흥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대하여 자기 자체가 반성을 하고 완전 무장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대중 심리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도 한 두 사람이라도 완전한 종이 나와서 71년도부터 완전한 열매를 맺는 진리 운동을 하되 성경 본문에서 완전 지혜, 지식, 능력, 권세를 얻도록끔 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사명자가 사명자를 방문하고 사명자가 사명자를 무장시키는 선구자가 나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명자라도 새로운 역사가 오지 않고는 71년부터는 교회의 난제를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사명자는 자기가 재림의 주를 영접할 완전 무장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하고 부흥사들까지라도 그런 정도는 안될 것을 알고 자신이 해산의 수고를 다해서 부르짖는 기도에서 완전 무장을 갖추는 기간을 정하고 노력하여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흥사들까지라도 자기 자신이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2. 71년도에 사명자의 나갈 방향

  우리 사명자는 하나님서 시대적인 법을 따라 역사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나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주님께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시부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방향을 한 곳으로 둘 때에 예루살렘 다락방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권능 받기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의 말씀대로 권능이 임하여 그때부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 금일까지 그 법대로 성신이 역사하므로 하나같이 방향을 한 곳으로 두고 나왔으므로써 기독교는 세계적인 대 승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71년도부터 우리 사명자들이 나갈 방향은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 날이나 금일이나 한 날이므로 방향이 정평적인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1년도부터 우리가 나갈 방향은 정평이 아니고 큰 함정과 올무가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무에 걸리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야 할 것이다.

 

  1. 완전 변론을 가지고 거짓 선지의 영과 싸우는 방향을 나가야 한다

  적 그리스도의 국가는 70년까지 행동 개시할 준비를 갖추는 동시에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러나 71년부터는 거짓 선지들이 본격적인 행동 개시를 하여 얼마든지 흑암의 세력을 교회로 들여보낼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한 것은 참으로 거짓 영을 말씀 변론으로 이기는 자만으로 남은 종이 되는 인권의 역사를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71년부터는 심판의 다림줄을 쥐고 변론하는 권세의 종들이 선구자로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70년에는 완전 변론의 역사가 대표적인 종에게 임하는 해요, 7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명 동지들이 일어나서 하나같이 변론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70년에는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널리 광고하는 정도로 변론이 내리었고, 71년부터는 본격적인 투쟁을 하기 위하여 변론이 내리는 동시에 행동 개시의 역사가 따를 것이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이여, 다같이 변론 권세를 받기 위하여 성산으로 모여들자.

 

  2. 교파를 초월하여 뭉쳐야 된다는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

  예를 든다면 싸움이 시작되는 전란이 올 때는 군대는 다같이 사적을 버리고 한곳으로 집결하는 것을 먼저 목적하여야 될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교파적인 담이 있어도 하등에 지장이 없고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었다. 왜냐하면 농장에 물을 주기 위해서는 둑을 막는 것이 필요한 것 같이 교파에 담이 있어 가지고 서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유리한 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추수기가 오는 때이니 물을 줄 때가 아니고 알곡을 모을 때는 타작기 앞으로 모이되 알곡은 알곡끼리 뭉쳐지는 것이 방향일 것이다. 만일 알곡이 알곡끼리 모이지 않고 쭉정이 속에 있게 되면 오히려 쭉정이로 취급을 받고 같이 불타게 될 것이다. 71년부터 협상주의 세력이 교권을 쥐고 들어오는 것은 알곡은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세계가 오는 것이다. 계11:1과 같이 되는 것이 71년도에 나갈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뭉쳐지는데 있어서 두 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 동방에 나타난 말씀 변론에 뭉치자는 것으로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 하나같이 완전 무장을 갖춰야만 된다는 결심에서 목표를 놓고 나가되 선진과 후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날 때에 무장한 군대는 싸우면서 무장을 갖추기 위하여 훈련소가 필요한 것같이 70년도까지 무장한 종들이 싸워야 할 것이고 무장을 갖춰야 될 종들은 1개월간이면 변론 무장을 할 수 있는 새일 수도원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신학의 변론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 시대에 나가서 싸울 무장이 될 수 없으니 신학을 한 자라도 정식 학과를 새일 수도원에 와서 배우므로만이 이 시대에 나가 변론할 수 있는 무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 신학을 반대하는 것보다도 현 신학에서 못하는 변론을 새일 수도원에 오면 다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변론 권세 역사가 71년부터 새일 수도원에 내리게 될 것이다.

 

  3. 새 시대를 목적하는 것으로 방향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의 묵시를 볼 적에 북방에 자리잡고 나오는 침략자이며, 무신론자이며, 궤휼자이며, 가장 강한 세력이 아시아를 중심하여 중동으로 내려올 때는 인류 종말의 환란이니 이때에 동방에서 역사가 일어나되 이 역사는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라고 말씀했다.

  금일에 인력으로 극동 난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하며 중동으로 일어나는 환란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하여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동방 해 돋는 곳에 나타나므로 인종 전멸의 재앙이 올 때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하였으니 시기는 완전히 단언할 수 없으나 금일에 모든 환경이 불가피에 큰 문제가 닥쳐오게 된 현실에 우리 사명자들은 새 시대를 목적하고 싸우는 진리 운동에 방향을 두고 하나같이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3. 두려워할 일이냐 기뻐할 일이냐 에 대하여

  우리는 71년도를 맞이해서 두려워서 떠는 자가 될 것이냐, 기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자가 될 것이냐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세계 인류는 이 두 가지 일에 다 걸려 들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을 묵시로 기록할 때에 북방의 세력이 무서워서 타협하는 자는 망할 것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는 영원히 기뻐할 일이 올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이제 두려워 할 일과 기뻐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두려워 할 일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 본다. 언제나 죄가 있는 자는 두려움이 오는 것인데 금일에 와서 두려워할 자는

  첫째 : 지각이 없는 사람이다.

  이 지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지각인데 어찌하여 시국이 이렇게도 어지러워지느냐 하는 것을 바로 깨닫기 전에는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일이 현재 닥쳐왔다고 본다. 이제 전쟁을 하면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일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도 같이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선지서를 보면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살라지는 날이라도 어떠한 자가 남은 자가 된다는 진리가 똑똑히 기록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사66:4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한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말씀대로 북방으로 환란이 오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승리가 있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있는데 이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심이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제일로 두려운 일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라고 보게 된다.

  둘째 : 완전한 인격을 이루지 못한 자이다.

  이날까지는 죄인을 부를 때이니 죄가 있어도 살 수 있었으나 진노의 날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속화된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두려워하게 된다(사33:14). 조금이라도 용서가 없는 재앙이니 양심에 거리끼는 죄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영적으로 흑암이 오고 몸에 무서운 재앙이 부딪칠 때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하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잘못된 것은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사8:21). 예를 든다면 여름에는 가꾸어 기르던 농장에 타작기가 들어오니 알곡 외에는 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 받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셋째 : 남을 억울하게 하는 자들이다(사10:1~4).

  이제 오는 환란이라는 것은 억울한 피 값을 갚아주는 환란이니 경제권을 가지고 빈민의 피를 빨던 자, 교권을 쥐고 참된 성도를 괴롭히던 자, 정권을 쥐고 백성의 피를 빨아먹던 자들이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인 환란이 올 것이니 이때에 두려워할 자는 누구란 것을 이 세 가지로 알 수 있다.

 

  2.  기뻐할 일

  이날까지는 악자가 의인을 압박하고 불신자가 신자를 해치고 거짓 선지가 참 선지를 해치는 억울한 일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왔다. 그러므로 모든 악자들은 죄악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죄악의 세력이 의의 세력을 해쳐도 아무런 재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동방 역사를 일으킬 때에 세계를 뒤집어엎는 날이라고 사24:1~13에 말했다. 그러나 동방 땅 끝에서부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리니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했다.

  이제 기뻐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다.

  첫째 : 빈궁한 자를 보장하는 일이 있으므로(사25:4)

  끝까지 기다리고 참던 자들이 기뻐하게 된다(사25:9~10).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궁핍이 와도 동방에 나타난 진리 하나를 붙들고 싸우다가 진리대로 여호와의 산에 역사가 임할 적에 기뻐하게 되는 일이다.

  둘째 :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이 있으므로(사26:3)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당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한 자는 무슨 환란이 오든지 오히려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

  이제부터 항상 기뻐할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지가 견고한 자라고 보게 된다.

  셋째 :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보게 된다(사66:5, 13~14, 22).

  하나님께서 말씀에 떠는 자라면 기쁘게 해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종말에 기록된 말씀은 전부가 억울함을 당하던 자들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것이니 누구든지 말씀에 떠는 자라면 아무런 환란 재앙이 와도 오히려 더 기뻐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인생의 최고 기쁨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에게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이날까지 죄 값으로 고통받던 백성을 최고로 기쁘게 한다는 것이 새 시대를 이루는 목적이 된다(사35:10).

 

 

4.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은 오늘에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교통이 편리하고 소식의 연락이 빠르고 또는 노동을 적게 하고라도 먹을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날뛰고 있다.

  교통이 빠르고 정보가 빠르고 모든 노동이 빠르게 된다고 이것을 최고의 발전으로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라고 본다. 인생의 가치란 것은 모든 것이 빠르게 되었다고 해서 가치를 찾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든다면 독수리가 날아가는 흉내를 내는 것이 비행기요 맹호가 달리는 것을 흉내내는 것을 급행 열차라 하고 정보가 빠르게 교통하는 것은 기도의 사람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 오늘의 전화, 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은 생명 없는 우상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비행기나 급행 열차가 없어도 하늘 보좌에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올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내었다는 증거를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줬고 또는 전보 전화가 없어도 교통할 수 있는 증거를 예수님을 통하여 증거로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과학을 자랑하는 인간들을 성경에 짐승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가 유물론 과학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일은 흑암 중에 흑암이요, 자기 지식으로 다 안다는 것은 교만 중에 교만이요, 자기 무력으로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은 자멸 중에 자살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본다면 현재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것이 심판 받을 어리석은 짐승들의 행동이라고 본다.

  슬프다. 인생들이여,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집 위에 집을 더하고 물질의 세력을 통하여 세계를 점령해 보려는 것은 꿈을 꾸는 잠꼬대가 아닌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를 쓰다 잠이 들어 떡을 먹어 보는 모양이 아닌가.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사람이 환상을 보는데 물을 먹어보니 그 꿈과 환상은 오늘에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들의 형편이 아닌가.

  조물주를 모르고 피조물이 피조물을 가지고 싸우다가 피차에 죽는 모양 가련하구나. 사람의 인정을 최고의 미로 알아서 인정 따라 가다보니 도덕이 부패되고 사회가 문란한 현실에 인정이라는 간판 밑에서 절개를 빼앗기고 사상을 빼앗기고 신앙을 빼앗기고 인정 마귀에 도취된 세상, 음란하기 짝이 없고 사치하기 짝이 없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구나. 울긋불긋 눈 홀리는 귀신 단지, 사치 상품 하루 아침 불탈 때가 멀지 않다.

  인기 전술 쓰기 위해 모양을 내다보니 사람의 모양 되지 않고 머리카락 꼬아 올려 모양내다 보니(겉 부시시한) 모양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는 세상 가련하기 짝이 없고 자기 몸을 가꾸느라고 하다보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 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그 모양 동물같이 보인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백의 민족 거룩한 예의를 어찌하여 야만적인 풍속과 바꿀 소냐. 우리는 어리석은 과학 문명 부러워 말고 하늘 지혜 받은 민족 되어서 새 시대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어보자. 하늘로부터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백의 민족 중 고아이며 빈민이며 농민이며 가장 짓밟히는 사람에게 임하였으니 이것으로만이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인간 지혜 지식은 부끄러워할 일이 동방 땅 끝 여호와의 산에 나타났다.

  이제 지혜로운 자는 누구일까.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성경 본문으로 얼마든지 이 시대에 나가서 깨우칠 사람이 되는 일이다.

  금일에 소위 학설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이것이 하나님께로 온 말이 아니고 붉은 용의 혼미한 꾀임에 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 학설이니 이 학설에 미혹 받지 말고 우리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로 파악하고 말씀에서 자아를 파악하고 말씀에서 사상을 파악하고 말씀에서 정로를 파악하는 지혜가 아니고는 붉은 용의 사단의 꾀임을 막을 자는 전혀 없다.

  아무리 인간들이 연구하고 발전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니 하늘로부터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바로 알 수도 있고 변론할 수도 있는 것이니 71년부터 우리는 완전 지혜와 지식의 변론이 아니고는 가장 간교한 거짓 선지의 변론을 막을 자 없을 것이다.

 

 

 

신 앙 문 답  

 

【문】1.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성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법으로 쓴 글도 있고 완전한 변론으로 쓴 글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란 것은 모세 5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이요, 역사라는 것은 모세 5경을 그대로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은 역사가 구약 역사입니다. 그 밖의 말씀은 전부가 변론적이라고 보게 됩니다.

  신약 전서에 4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을 대하여 말씀한 변론이 기록되어 있고 편지서는 성신을 받은 종들이 성령으로 변론한 것이 기록되어 있고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변론한 글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이란 것은 4복음과 편지서에 있지 않고 선지서와 계시록에 있는데 계시록은 하나님의 변론을 혼선되지 않게 증거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보여준 글입니다. 계시록은 선지서에 심판의 변론을 열어주는 책입니다. 계시록을 바로 알므로 얼마든지 여호와의 책에 세밀한 변론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론은 계시록에서 완전히 조직을 알아 가지고 선지서를 다음과 같이 변론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데 일곱 교회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 성도의 신앙 지침이요, 일곱 인은 재림의 주가 올 시기를 알려준 것이요, 일곱 나팔은 재림 시기에 올 환란의 순서를 보여준 것이요, 일곱 대접은 재림 후 이 땅에 재앙 심판이 올 때 될 일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것이 선지서 전체의 이스라엘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변론 전체의 요지가 됩니다. 일곱 인의 시기는 신약 시기에 붉은 말이 허락 받고 나온다는 것은 구약 세계에 앗수르의 세력을 말한 것으로 변론이 되고 검은 말은 경제권의 세력이 빈민을 압박한다는 선지서의 말이 결부가 되고 얼룩말은 선지서에 음녀적인 거짓 선지에 대한 변론이 결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4대 병마는 구약 선지서에 심판기에 올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북방 세력이 강하게 올 것을 붉은 말로, 극도로 부패한 정치를 검은 말로, 극도로 미혹을 시키는 거짓선지를 얼룩말로 하며 계시록도 전부 내용이 결부되고 구약 선지서도 전부의 내용이 4대 병마에 결부됩니다. 인간 종말에 불가피한 진노의 심판이 오는 것은 이 세 가지가 심판의 대상자가 됩니다.

  언제나 변론이란 것은 알파와 오메가를 바로 말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작했던 일을 폐하지 않고 그대로 끝을 맺습니다. 만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시작을 했다가 누가 방해한다고 그대로 끝을 못 맺는다면 그대로 끝을 못 맺게 하는 자가 하나님보다 높은 자가 될 것이니 하나님은 시작을 하면 아무리 방해자가 있어도 그 법에 의해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시작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얼마든지 아름답고 평화롭고 거룩한 영광의 나라를 목적을 둔 것인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법이 없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말씀의 법을 세워서 그 법을 순종하면 목적을 둔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서 떨어졌다 하여도 그 목적을 달성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둘째아담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아담을 창조할 때의 목적이었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째아담에게 주었던 그 에덴 동산을 다시 둘째아담으로 이루어 준다는 것이 목적이니, 그 둘째아담 예수의 보혈은 사람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생령의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을 중생이라는 것이요, 중생 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첫째아담은 성령을 받지 못하므로써 이기지 못한 것을 아시고 둘째아담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 성령으로 역사하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다시 부활해서 승천하시어 성령을 부어 주므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승리하는 자로 평화 왕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로되 타락할 것도 아시고 타락하면 이런 법으로 근본 창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말씀한 것이 여호와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을 믿는 것은 구약에 행하겠다는 방침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에 심판이라는 것은 인종 전멸의 심판인데 이날까지 꾀어보기 위하여 사용한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마귀를 순종하던 자를 마귀와 같이 없애 버리는 것을 인종 전멸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귀 역사를 들어서 당신의 자녀를 괴롭히면서 괴로운 가운데서도 이기는 자에게 묵시를 주기를 지금 너를 괴롭히는 마귀를 내가 없애는데는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귀 편에 서서 너를 대적하던 무리는 마귀를 없앨 적에 다 없애고 너같이 내 말만 순종하는 자로 지상 왕국을 이루겠다고 말씀한 것이 선지서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마귀 세력을 없애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만민을 그 피로 구원하는 동시에 끝까지 순종치 않는 자를 마귀와 함께 없애 버리고 너와 같이 순종하던 사람들로 남은 자가 되게 하며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묵시를 받은 사람이 받던 고난이 심판날에 환란이 되고 묵시를 받던 종들이 받은 왕권이 종말에 환란 가운데 남은 종들에게 같이 오므로 그날에 가서 묵시를 받은 자나 그 말씀대로 싸운 자나 같이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오메가 역사라는 것입니다.

 

 

 

【문】2. 기독교 사상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답】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머리 속에서 연구했거나 또는 창작한 것을 초월하여 조물주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목적을 두고 말씀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믿고 나가는 것을 기독교의 정통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완전한 것이 충만한 여호와의 신이지만 이것을 누구에게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니 신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람에게 주고자 할 때에 사람이 그것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신이십니다(요14:13). 예를 든다면 어떤 선생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  술을 많은 사람이 배워서 국가에 큰 복리를 준다면 이것이 그 선생에게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완전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어서 그것으로써 완전한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영광을 받으실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것을 피조물 된 인생에게 주고자 하는 그 애(愛)의 사상이 신의 감화로 사람에게 올 때 사람에게 이 사상이 들어가도록 역사하므로 자기가 완전한 것을 체험하는 동시에 남도 그것을 받게 해 주겠다는 것이요, 완전한 소망을 가진 동시에 남에게도 그 소망을 알려 주어서 신께서 원하시는 사랑에 이끌려서 뭉쳐진 단체를 기독교의 완전한 신앙 단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십니다. 공의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세운 언약의 법입니다. 이 법이라는 것은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겠다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을 세우는 동시에 이 법을 지킬 사람을 꾀어 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끝까지 순종하느냐는 것을 시험해 보고 아무리 시험이 와도 그 시험을 이기는 믿음이 있는 자를 신앙의 옳은 사상으로 인정을 하고 그 신앙에 의하여 세계 통일의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 사상 운동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과 사람 편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하나님의 권리

  첫째 : 사람을 마귀로써 꾀어 볼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꾀어 보는 목적은 사람이 망하는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꾀어 보는 것이니 우리 사람으로서 마귀가 시험할 때에 불평이나 원망을 둔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인정됩니다. 만일 어떤 학생이 선생님이 자기를 시험을 해 본다고 선생에 대하여 불평을 둔다면 학교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지키나 시험해 보는 일을 원망한다면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방해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1:2을 본다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였고 12절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주기 위하여 시험을 해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 도와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를 낸 것은 도와줄 권리를 행하고자 한 목적이요, 마귀를 낸 것은 시험해 볼 권리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니 먼저 마귀로 시험해 볼 권리를 행할 때에 끝까지 마귀와 싸우는 자라면 천사로 보호해 줄 권리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마귀와 천사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얼마든지 꾀어 보라고 권리를 주었고 천사는 얼마든지 도와주라는 권리를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2:7이하를 보면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를 못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이 싸움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하여 싸우는 것인데, 용의 앞잡이는 계13:2에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머리가 상했다 나은 짐승에게 주었다고 했고, 11절에 보면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붉은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교권의 사상은 붉은 용의 감화를 받은 사상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상을 대립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진리 멸공 사상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붉은 용을 들어서 꾀어 보는 것은 천사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갈 참된 신앙 사상을 가진 성도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입니다.

  셋째 :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마귀를 들어 쓸 권리도 있고 천사를 들어 쓸 권리도 있으니 이겨야 할 권리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마귀와 싸우는 자를 천사로 싸워주는 동시에 권세를 주어서 당신의 사람으로 승리케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끝은 사상전으로 맺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인류 종말을 가르친 다림줄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어떤 국경이나 민족을 따라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몽땅 없앤다는 것이 최후에 결전을 짓는 아마겟돈 전쟁이란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인간 자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데는 그 사상을 보고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사66:18이하에 가르쳤습니다.

 

  2. 사람의 주권

  첫째 : 사람은 받을 주권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장자는 부모의 기업을 상속할 권리가 있는 것같이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는 받을 주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받을 주권이 있고 믿지 않으면 주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마귀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간교한 것이요,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동시에 말씀 그대로 믿는 자에게 얼마든지 그대로 준다는 것이니 금일에 공산당은 하나님 말씀을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상이요, 기독교의 사상은 하나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는 사상입니다. 누구든지 신앙의 사상이 바른 자는 얼마든지 받을 주권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 얼마든지 활동할 주권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이란 것은 마귀의 충동을 받은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열매 없는 헛수고를 하는 것은 그 사상이 바르지 못한 증거입니다. 사상이 바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지혜도 지식도 능력도 권세도 주어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주권을 맡겨 열매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사상과 활동이란 것은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공산주의는 붉은 용의 앞잡이로 적극 활동하는 것이요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서 적극 활동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신앙 사상이 바른 사람은 얼마든지 초인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활동이란 것입니다.

  셋째 : 통일 통치의 주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는 통일 통치의 주권을 가질 자는 하나님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통일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자들로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과 의합된 사상을 가진 자라면 그 말씀대로 그 사람에게 역사해 주시므로 통일 통치의 주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금일에 사상전은 붉은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의 사상과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성도의 사상이 대립되어 인류 역사에 전쟁의 끝을 맺는 것입니다(계19:19~21).

 

 

【문】3. 신앙 정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답】신앙 정로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말씀할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세운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 정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너는 복의 근원이니 천하에 모든 족속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서 인정을 받을 때는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걸어간 신앙 노선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약속대로 복을 받을 사람들의 표준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도 또는 복을 주리라고 믿는 것도 다 정로라고 볼 수 없고 그 언약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아무리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이 없는 신이신데 약속의 말씀이 조금도 변할 수 없다고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참고 순종하는 길을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 정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을 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 정로

  구약 때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의 자손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에서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의 부족을 날마다 깨달으며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향기롭게 받으시고 축복을 내리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일, 물질의 축복을 받는 일,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승리의 길을 걷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는 특별한 성신의 역사나 또는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고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고 국가적으로 부흥하는 일이 있고 특별히 앞으로 될 일을 묵시로 받아 기록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라는 것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에서 하나님을 공경한 종들의 역사와 메시야의 왕국이 올 것을 묵시로 받아 기록한 글입니다.

  둘째 : 오신 메시야를 믿는 신앙 노선

  이 신앙 노선은 선구자가 있으니 즉 사도들입니다. 이 사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성민의 한 사람으로 주님을 친히 따라가면서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할 때에 오실 메시야를 믿는 선지들이 묵시를 받아 기록한 말씀을 밝히 가르칠 때에 나사렛 예수는 분명히 선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한 대로 오신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자들이므로 그들은 성신의 큰 역사가 항상 같이 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역사라는 것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때 성신의 역사가 일반에게 내린 일, 교회가 불일 듯 일어난 일, 성신 계시를 받아 글을 기록하여 문서 운동을 한 일, 이 세 가지인데 이것을 사도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까지 걸어온 신앙 노선은 그들이 증거하던 그 증거를 우리가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은 선구자요 우리는 따라가는 자들로서 그들이 받던 성신의 역사를 우리도 받게 되고 그들이 세우던 교회를 우리도 세우고 그들이 시작한 문서 운동을 우리들이 그대로 할 때에 우리는 그들이 못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명을 계대하여 그대로 가감 없이 증거하면서 이날까지 온 것을 정로라는 것입니다.

  셋째 :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신앙 정로

  오신 메시야를 온 세계에 알려 주는 때를 은혜 시기라고 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때를 환란과 재앙의 날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이날까지 오신 메시야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사도적인 사명을 계승한 것 뿐이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날에 대하여는 정확히 가르치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도들도 주님이 다시 온다는 것은 말했으나 오시는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어떠한 환란이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밝히 증거하지 않은 것은 오신 메시야를 먼저 세계에 알리는 것이 사명이므로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부탁만 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네로 황제 박해로 교회가 큰 화를 만나고 사도들은 다 순교를 하고 남은 자는 사도 요한 뿐이었는데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어 재림의 날에 있을 환란과 큰 역사와 또는 지켜야 될 말씀을 기록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주 재림을 살아서 영접할 변화 성도의 신앙 정로를 가르친 글이라고 보게 됩니다. 계22:18~19에 이 책에 기록한 예언에서 가해도 감해도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절대 구원이 없다고 한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날에 남은 자들이 지켜야 될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11장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서 예언하는 날에 감람나무 촛대가 나온다는 것은 재앙의 날에 신앙 정로를 가는 종들과 교회를 가르친 것입니다.

 

  2. 순교적인 신앙 정로입니다

  이 순교라는 것은 개인적인 자기의 구원 문제나 생활 문제를 목적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을 순교적인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용사적인 장부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이 순교적인 신앙 노선에서도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 오실 메시야를 믿는 언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부패가 있을 적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서 책망하는 선지들입니다. 이들은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내다보고 아무리 다윗 왕국이라도 이방과 타협하면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정통 신앙을 잃어 버리지 않는 자라야 메시야 왕국의 축복을 받을 것을 말했습니다.

  이때에 그 선지의 경고를 순종하지 않을 때에 그 왕국을 바벨론을 들어서 없이 하고 남은 자로 다시 예루살렘을 복구할 때에 그들이 받은 묵시는 전부가 심판의 다림줄이 된 것입니다.

  둘째 : 오신 메시야를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증거하는 자들은 목적이 유대나 이방이 차별이 없이 예수를 믿되 유대인은 유대교를 떠나야 된다는 것이요, 이방인은 이방 종교를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유대 교인들에게도 박해를 받고 이방 종교인에게도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유대교의 할례나 속죄나 모든 의식이 다 필요가 없고 예수를 믿으므로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무서운 박해를 당한 것이요, 이방 종교인을 만나서는 이방신을 버리고 우상을 철폐하고 그 모든 의식과 풍속을 버리고 예수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이 나가는 십자가의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십자가 외에는 증거하지 않는 증인으로서 피를 흘려 쓰러지면서도 변치 않고 증거하여 세계 만방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셋째 :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증인은 아무리 신자라도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환란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간다고 하는 증거인데 여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붉은 짐승의 정권은 심판의 대상자이니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앞에 절을 하거나 표를 받으면 붉은 용과 짐승의 정권을 없이하는 심판이 올 때 함께 다 죽는다는 것이요.

  2) 누구든지 짐승의 세력을 무서워 말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예비처에 보호하므로 짐승의 박해로 오는 환란을 피하고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없애는 재앙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증거하려면 권세를 받지 않고는 도저히 이 진리를 증거할 수 없을 것이니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재림의 날까지 증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대표적인 사람이 증거하는 증거를 가해도 감해도 재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예언할 권세를 맡겼으니 이 예언이라는 것은 모든 선지가 묵시로 받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와 계시록을 들어서 다시 예언하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말씀을 주어서 조금도 혼선이 없는 완전 변론의 역사를 하게 하므로 그 변론을 통하여 간교한 마귀 흑암이 물러가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같이 깨닫고 진리 안에서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어 그 교회로 말미암아 지상 평화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되 은혜 시대에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요, 환란기에는 죽을 몸을 살려서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문】4. 신앙 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공적, 사적의 생활이 합리화 될 때에 이것을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사람의 몸이 외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공적이라면 그 몸의 모든 지체가 보이지 않는 힘을 보급하고 있는 활동은 항상 자나깨나 쉬지 않고 있어야 되는 것 같이 신앙 생활에도 공적인 활동은 유형적인 것이요, 사적인 생활은 무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앙 생활에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공적인 활동

  공의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위한 문제가 아니요 대중을 위한 문제입니다. 예배에도 공적 예배가 있고 기도에도 공적 기도가 있고 전도에도 공적 전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자가 믿음이 있다 하여도 공적 예배를 등한히 한다면 공적으로 범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할 때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개인 신앙을 위해서 보다도 약한 자를 붙들어 주며 모르는 자를 깨우쳐 주며 피곤한 자를 소성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니 이 일을 등한시하고 믿음이 있다는 자들이 자기 믿음 하나를 목적하고 나는 개인으로도 신앙을 얼마든지 보존한다고 하면 이것은 벌써 신앙 양심을 떠난 자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예수를 모르고 믿음을 모르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서 은혜를 받고 이제 와서 교회의 공적 예배는 필요가 없다고 하면 마치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학생이 나는 배웠으니 학교가 필요 없다고 하는 식이니 이러한 자라면 공적으로 죄를 범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는 공적 예배를 존중시하는 것이 있어야만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큰 역사를 받을 때도 공적으로 한곳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 큰 성신의 권능이 내렸던 것입니다.

  공적 기도에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는 공적 기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 기도라는 것은 개인 사정을 위한 문제보다도 국가적이나 민족적이나 교회적이나 모든 문제를 내게 관한 문제로 알고 기도하는 것인데 이 기도를 하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하나님께서 공적인 대중의 생명을 살려주는 역사를 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공적 기도에 힘쓰는 것이 사명자의 할 일이라는 것을 권했던 것입니다(딤전2:1~3).

  누구든지 공적인 기도를 많이 하는 자에게 영계가 속히 올라가는 열매가 있습니다. 자기의 은밀한 죄를 자복하는 기도나 딱한 사정을 고백하는 기도는 소극적인 기도라면 공적으로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적극적인 기도라고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왕권의 축복을 나리는 것입니다.

  공적인 전도는 개인을 만나서 하는 전도가 아니고 강단에서 서서 대중을 깨닫도록 가르치는 설교나 또는 전도 강연을 공적 전도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공적으로 대중을 회개시키는 설교는 특별한 종에게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 삼천 명이 회개하고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습니다. 앞으로 말세 증인이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면서 예언을 증거하는 것도 역사적인 한 페이지에 끝을 맺는 전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공적 예배, 공적 기도, 공적 전도가 없이는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2. 사적 생활

  이것은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하여 날마다 은밀한 것을 하나님께 보이려고 하는 신앙 양심의 생활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큰 열매를 많이 맺어 공적인 대중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사적인 세포에 들어가서 작게 뻗어 나가는 뿌리에서부터 힘을 얻어 큰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신앙 생활도 사적으로 은밀한 생활에서 하나님께로 통하는 것이 있는 자라야 공적인 교회에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신앙 생활의 사적에 대하여 사적 봉사, 사적 교제, 사적 인내의 생활이 있으므로 큰 발전을 보게 됩니다.

  사적 봉사라는 것은 하나님만 알게 숨은 봉사를 하는 일이요, 사적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소리 없이 교통하는 동시에 성도가 영적으로 교통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법칙이나 어떤 단체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지금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참된 성도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영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또는 사적으로 참고 나가는 힘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가옥을 건축할 때에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모든 것을 그것에 의지하여 집을 지을 때에 모든 짐을 똑같이 지고 견디고 있듯이 교회라는 것은 성도들이 사적 생활에서 오는 모든 시험을 참고 나갈 때에 이것이 교회 전체를 받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하여도 그 사람이 사적 생활에서 참는 신앙이 없다면 이 교회는 아무런 열매 없이 무너질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적 생활에서 참고 나가는데 의하여 축복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자기의 세력을 높이려 할 때에 지극히 작은 아이에게 행한 것을 내게 행한 것과 같이 갚아 줄 것이니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권세를 받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므로 사생활에 숨은 봉사, 교제, 인내,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듯이 신앙 생활에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그 신앙을 통하여 완전한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특  집

 

1. 동방 땅 끝 야곱이 71년도를 맞이하여 부르짖는 기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날까지 나를 붙들어 주시므로 넘어져도 일으켜 주시고 곁길로 가도 인도해 주시고 피곤해도 새 힘을 주시고 인간들은 나를 버려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사랑 속에서 길러 주시고 길이 참으시면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71년도 새해를 맞이하여 두손 들어 기도하나이다.

  천하 사람이 다 바벨론을 따라가도 나는 시온성을 바라보고 돌진의 걸음을 걷고자 하오니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서 쓰실줄 믿나이다. 천만인이 쓰러져도 시온의 아들, 딸 하나님의 나래밑에 보호받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날이 올 것을 믿나이다.

  아무리 모진 광풍이 불어와도 아버지의 품안에 안식일 것을 믿사오니 아담, 하와가 뱀에게 미혹을 받고 잃어 버린 에덴 축복 동방 야곱에게 오되 옛 뱀 붉은 용의 앞잡이 짐승과 거짓 선지의 간사한 변론을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변론 권세의 역사로 때려부술 이 해가 될 것을 믿나이다.

  나의 눈물, 나의 땀 인간이 누가 알아주지 않았지만 동방에 나타난 변론 권세의 말씀 앞에 떨게 될 것을 믿나이다. 위대하다. 심판의 변론, 천하를 심판할 다림줄의 진리, 내 입을 통하여 만방에 알려질 때 동방에 야곱의 집에 큰 축복이 올 것을 믿나이다. 야곱의 축복받을 자 억울하게 쫓겨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훼방을 받던 종들에게 내리는 일은 71년부터 있을 것을 믿나이다.

  아슬아슬하게도 낭떠러지 좁은 길 걸어왔지만 이제부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대는 동방 야곱에게 올 것을 믿나이다. 푸른 하늘 그 빛깔 처량하다. 은빛 같은 십자가의 성결 나의 맘속 점령하고 세계 통일 푸른빛 살려주는 깃발 앞에 각 나라에서 찾아오는 성도들의 감사 예물 드릴 때에 모든 문제 해결되는 아름다운 새 시대에 들어갈 촛대교회 방방곡곡 이루어질 것을 믿나이다.

  천하를 얻었던들 에서적인 에돔의 세력 하루 아침 불탈 때에 동방 야곱 세계 통일 깃발 앞에 새 노래 부를 승리 용사 집결하여 우렁차게 시온 나팔 높이 들고 행진곡을 부르면서 발맞춰 북진할 날 반드시 올 것을 믿나이다. 하늘이여, 땅이여, 기뻐하라. 동방 야곱 승리하고 새 시대 올 때 세계 열방 모든 성도 하나같이 새 노래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믿나이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오니 셈의 장막에 새로운 광명을 나타내서 하나님이 누구신 것을 열방이 알게 하옵소서. 이날까지 사단의 흑암이 내 앞을 막고 있었으나 이 해부터 이 흑암을 뚫고 세계로 진출하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정치는 진리 반공으로써 무력을 초월한 하늘 권세 아래서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는 이 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백의 민족은 야곱이 축복받는 이스라엘의 영광의 빛 안에서 하나같이 뭉쳐지어 멸공 진리 운동에 선구자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

  이날까지 억울하게 짓밟히던 이 민족 하나님을 자랑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나이다. 사람 앞에 자랑할 것 없는 민족이오나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나타날 것을 믿나이다.

  주만 따라가는 나의 발걸음 70년의 해는 한 일 없이 지내 온 것 같사오나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할 때에 70년도는 71년도에 해야 될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케 하시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주는 은총의 해이며 또는 71년도에 싸워야될 싸움을 할 무기를 얼마든지 쓸 창고를 열어주는 해라고 봅니다. 이 해에 열려진 무기 창고에서 무기를 들고 나가는 용사를 새해부터 집합시켜 주시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굶주린 양떼는 진리의 용사를 찾고 있나이다. 양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대 부흥단을 일으켜서 그들에게 갈 길을 열어주는 일이 있게 하옵소서. 이 나라에 나를 나게 하신 것도 무슨 뜻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나타나게 하옵소서. 나를 기르신 아버지여, 이 해는 열매를 맺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숨은 봉사하던 종들 만나게 하옵소서. 이들이 합해질 적에 여호와의 영광은 이들을 통하여 세계를 밝히도록 역사할 것을 믿나이다.

 

 

2. 71년도에 백의 민족의 눈물겨운 소리

  슬프다. 백의 민족 사대주의 5백년간 양반 상놈 가려놓고 양반 타령하는 정치 앞에 배울 것을 못 배우고 소학 대학 하다보니 세계를 무대 삼고 나갈 인격을 가진 백의 민족, 가정에 앉아서 부모 효성 다한다고 양반을 찾다보니 서양 문화 발전하여 하늘 높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하늘에 귀신이 다닌다고 하는 무식한 민족 되고 보니 서양 문명 먼저 받은 왜적에게 삼천리 금수강산, 어린아이 떡을 들고 네거리에 나섰다가 욕심 많은 아이한테 빼앗기듯이 어리석은 양반들이 못된 야심 가진 일본에게 하루 전쟁 해본 일없이 빼앗기고 후회하여 애국자 자살한들 무슨 영광되며 애국 청년 망명 생활 해보았던들 후회 막심 되었구나.

  아름다운 한양 거리 왜적에 밟히어서 소위 대 일본 제국 아래 소위 개화라는 미명하에 자기 나라 글도 못 배우고 언어조차 무시를 당하고 양반들이 벼슬하고 받았던 성조차 갈게되고 소위 허울 좋은 독립이란 만세를 불러 보았다는 죄로써 애국자는 송두리째 없어지고 친일파 간신들만 일본의 삯을 받아먹고 얼마나 잘난 듯이 자기 민족을 압박할 때 칼을 찬 순사 앞에 벌벌 떠는 민족 되고 보니 36년 허송 세월 배울 것을 못 배우고 소위 일본의 국사를 배우고 그 말을 배우고 그 나라 앞에 종 될 정도만 배우고 그 밖의 것을 못 배운 민운(民運), 뜻밖에 해방을 맞고 보니 자기 민족 사랑할 줄 모르고 서로 잡아먹는 북한, 남한 해 가지고 멋도 모르고 북괴, 남괴 하고 보니 민족끼리 서로 생명 없는 허수아비란 말이구나. 과연 들어야 마땅한 말 누구를 원망할 소냐.

  소련의 앞잡이 된 것이 자랑할 일 될 수 없고, 미국의 앞잡이 된 것이 자랑할 일이 될 수 없다. 민족들이 싸우다보니 백의 민족의 피를 빨던 일본은 장사할 기회 만나 돈벌이에 부자 되고 민족끼리 싸우던 삼천리 강토 고아 많고, 과부 많고, 실업자 많고, 빈민 많은 거지 나라, 빚진 나라 되었구나.

  해방 25년에 정당 싸움 많이 하는 정치 아래 국민들은 맥떨어지고 교파 싸움 많은 교권 아래 양떼들은 갈팡 질팡 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와 교권 아래에도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40일 금식기도 소리 없이 하면서 이 나라 장래와 한국 교회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던 성도들은 양떼의 피를 빠는 교권주의 앞에서 이단으로 취급받고, 정당 싸움하는 정치 아래 애국심 가지고 눈물 흘리는 정치가는 인의 장막 뚫지 못해 한숨 쉬는 그 모양 가련하구나.

  71년도를 맞이하는 새해에 슬픈 소리 들려온다. 눈물 없이 갈 수 없고 피 없이 못 가는 사상 싸움, 안 할 수 없어 적은 무리 골방 속에 모여 앉아 부르짖는 호소 소리 하나님이 받으시리. 교파 싸움, 정당 싸움 할 때는 다 지났고 이제라도 교파를 초월하여 신앙 용사 단결하자. 정당을 초월하여 애국 투사 뭉쳐지자. 이와 같이 하고 보면 이날까지 부르짖던 호소의 기도 응답, 순교자 피의 호소, 우리 호소 합해서 이루어질 때 하나님 자랑할 일 이 나라에 나타나리.

  우리의 살길은 하늘의 응답 내려야 산다. 교회의 지도자 원망 말고, 정치의 지도자 원망 말고, 민족 살릴 길만 찾아보자. 남의 잘못 말할 사이 없고 자기 잘못 회개하기 바쁘도다. 완전한 사람 찾지 않는 하나님은 눈물 흘려 회개하며 자기의 잘못된 것 회개하는 지도자를 요구한다. 완전한 지도자 찾아볼 수 없고 완전히 회개하는 지도자 완전히 들어 쓸 강권 역사 내리고 있다.

  소리 없이 참고 기도하던 기도 용사들이여! 금년부터 시온에 나팔을 들고 높이 불어 경고하자. 이날까지 압박 속에 눈물 흘려 기도하던 성도의 기도는 이 해부터 권리 행사 진행되는 응답이 되리로다. 사람 많던 서울 거리 이날까지 의인이 잠잠했지만 의인들의 부르짖는 다림줄의 진리 운동 권세 있게 일어나 세계에 진출 되리로다. 돈 많은 나라 부러워 말라. 황금 만능 꿈꾸던 허수아비 바람 앞에 겨같이 날아가되 신앙 만능 진리 운동 내다보고 기다리던 권세의 종 나타나리.

  눈물 없는 교회 후회하고 눈물 있는 교회 하나님 자랑하리. 화로다 삯군의 가정. 복되도다 희생 용사의 가정. 이제부터 여호와의 영광 보게되는 복된 가정 되리로다. 이 해에 눈물 흘려 호소하는 민족의 지도자 나타나게 되리로다.

 

 

3. 71년도 국가에 대한 관심

  우리 나라는 세계 인류의 큰 사명을 가진 국가라는 것은 성서가 증명하는 바이다. 가장 선지 중에도 대 선지인 이사야는 인간 종말에 대하여 심판의 변론을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선지다. 심판에 관하여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고 남을 자는 심히 적다는 것을 기록할 때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남을 자가 심히 적다는 것이다.

  세계 인종 전멸의 재앙은 불에 살라진다는 것인데 여기서 남을 자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 크게 외치는 소리가 있게되면 가장 가련하고 빈핍한 자 중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며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을 목적을 둔 것이 이사야서라는 것이다.

  심판의 대상자는 북방의 세력인 동시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않고 북방의 세력을 무서워 떠는 자는 북방이 망하는 날에 같이 망할 것이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만 보호를 받고 남은 자가 된다고 하였으니 금일에 극동 아시아에 남은 교회는 한국 교회라고 본다. 그러면 기독교인으로서 71년도 국가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 71년도 이 나라에 영도자가 누가 될 것이냐에 대하여 과거보다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때 보다도 큰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이 위기라는 것은 소망이 없다는 것보다도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을 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도자가 하나님께 축복 받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지도자로서 자기의 사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겸손히 그 뜻을 순종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작은 소자 하나를 아끼는 사랑이 있으므로 지도자의 부족이 있다 하여도 택한 백성을 보아서 들어쓰는 것이다. 과거에 예루살렘이 북방 세력에게 망하고 남은 자들이 포로 생활에서 울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모르던 고레스 마음에 감동하여 예루살렘을 복구하게 한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나는 현 기독교인이라고 하여서 옳은 영도자가 된다고 단언할 수도 없고 또는 현재에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영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양심과 사상을 보고 그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하고 역사하기도 하는 것이니 금일에 영도자가 되는 대통령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역사해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진리를 분명히 하나님 말씀에서 알고 하나님 말씀에서 멸공의 진리를 알고 말씀을 황금보다도 귀하게 알고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 나라에 위기가 왔으니 말씀대로 새로운 역사가 이 나라에 올 것을 믿고 예언의 말씀에 의하여 국민을 지도하는 영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기도하는 바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제 이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떠는 마음으로 이 나라를 지도하는 영도자가 되어서 71년도 선거에 다시 당선되어 이날까지 애쓰던 일이 열매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양심적 고백이니 지금 이 나라에 박정희 각하께서 하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이 시키시는 줄 믿는 바이다.

  성경에 보면 이 나라에 말씀이 임하여 이 말씀의 빛이 세계를 깨우치고 세계 중에서 말씀의 빛을 따라 오는 성도들이 비둘기가 날아오듯이 은, 금을 아울러 싣고 동방 나라로 들어온다고 하였으니(사60:8~9), 지금 어떻게 보면 외국에서 차관을 내어다 고속도로를 닦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동방 사람이 민족들을 위하여 큰 길을 닦고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고 세계에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다(사62:10~11). 적어도 우리 백의 민족은 금일에 와서 과학 문명은 선진국으로 못 보지만 영적으로는 선구적인 지도국이 될 줄을 믿는다.

  내가 있는 새일 수도원을 본다하여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 계룡산을 덮고 불 속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는 금일부터 새일 수도원을 이곳에 시작하라고 하면서 이 수도원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세계를 깨우치는 일이 있으므로 네 민족이 살 길이 열릴 것을 말했고 하늘로 일곱 별이 빛을 내어 계룡산에 비춰지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이 있은 다음에 그날부터 40일 금식 기도 운동이 일어나서 350명이라는 청년 남녀가 40일 금식하며 민족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40일 금식이라는 것은 과거에도 없는 것은 아니로되 계속으로 350명이나 되는 40일 금식 기도자가 생겼다는 것은 앞으로 이 나라에 큰 역사가 올 증거라고 본다. 내가 바라기는 위기를 만난 71년도부터 모든 성도의 기도가 응답으로 오되 박정희 각하에게 오기를 바란다. 나는 정당인도 아니요 정치인도 아니다. 단지 노동자의 하나인 사람으로 계룡산 산봉 앞에 돌로 집을 짓고 있는 사람인데 민족의 장래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말하는 바이다.

 

  2. 이 나라로 말씀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뜻이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71년도 국가에 대한 관심이다. 나같이 불학 무식한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계속하여 이 시대에 있어야 할 새로운 책자가 계속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은 나로서도 하나님 앞에 떨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국가적으로 깨닫도록 재앙이 올까봐 떠는 것이다. 과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을 적에 북방 세력에게 망한 사실을 보아서 알파와 오메가인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지금 소위 교권에 치우친 자들이 내가 한국 교회를 망칠 것처럼 생각하고 이유 없이 덮어놓고 이 책들을 보지도 말라고 하면서 이단으로 판정을 내린다는 것은 한국 교회에 막대기가 올까봐 떨리는 것뿐이다. 나 자신은 이단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오히려 축복이 되는 점도 있지만 그 말을 듣고 덮어놓고 피동을 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본다.

  만일 이러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한국 교계라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이날까지 시달리던 한국 교회가 경솔히 생명 없는 허수아비같이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한심스러운 일이다.

  신앙은 3대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떠는 것이요,

  둘째는 국가에 관심을 두고 떠는 것이요,

  셋째는 입에 실수가 있을까봐 떠는 것이다.

  이 떤다는 것은 소망 중에 큰 관심을 둘 적에 그 소망을 달성치 못할까봐 떠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아는 자라면 어느 때 보다도 이 때에 말씀에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소망의 확실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 국가는 이제부터 71년을 계기로 하여 큰 소망이 보이는 나라이며 우리 종들이 이제부터 정말 입술에 법적 변론이 있어야 할 때이다.

 

  3. 우리는 정치적인 야욕을 떠난 신앙 양심에서 사상적인 문제를 놓고 국가에 관심을 두고 맹렬히 활동해야 될 때가 왔다고 본다. 만일 우리 국가에 협상주의 세력이 선거에 승리한다면 우리 나라는 남의 나라와 달라서 몽땅 붉은 짐승의 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극동 아시아를 다 점령하고 남한 반도에 남은 이 나라가 경제에까지 큰 위기를 만났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지 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 되겠지만 특히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보호 없이 안될 절정기에 달했다고 본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은 죽어 천당을 꿈꾸는 잠꼬대를 버리고 살아서 붉은 세력을 이기므로써 새 시대를 이룬다는 계시록의 말씀을 중심하여 싸우되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복음 운동에 목숨을 바치고 싸우되 국가에 큰 관심을 두고 싸워주기를 바란다.

 

 

4. 71년도 문서 운동에 대하여 부탁하는 말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요구하는 것은 문서 운동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족한 사람이오나 내 입술을 통하여 매달 아무런 피곤 없이 70페이지의 글을 출판하도록 하여 주시는 것을 생각할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 입을 기계로 쓰시는 것을 믿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이 책을 전도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종님들은 무조건 책을 주지 마시고 먼저 말씀을 전할 때 이러한 일이 우리 나라에 나타났다고 할 말은 이날까지 말씀의 혼선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28:11과 같이 하나님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다는데 대하여 정확히 증거하고 요청하는 자에게 책을 주되 1차 2차까지 주시고는 반드시 정식 구독자가 되도록 권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계속 보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전하는 종님들이 이 책을 2, 3차 읽어보도록 하시어 본인이 이 책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요점을 말씀하면서 책을 전하도록 하셔야만 되겠습니다.

 

  2. 이 책을 가지고 강단에서 증거하시는 종은 이 책의 말씀을 이용하는 자가 되지 말고 이 책을 가지고 설교할 때는 조용히 기도하면서 여러 번 읽어 볼 때 어떻게 진리를 말해야 된다는 영감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변론은 아무리 영계가 혼란하고 진리가 혼선된 이 때라도 조금도 혼선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오니 언제나 조용히 기도하면서 읽어 볼 때에 햇빛같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설교나 공과를 달리 만들어 보려고 하지 마시고 그 안에서 새로운 변론을 하나님께로 받기 위하여 기도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설교나 공과나 논설이나 신앙문답등 모든 문장이 일점의 글자도 사람의 생각이 가입되지 않고 입에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느 잡지와 같이 보지 말고 삼가고 조심하여 읽어보시면서 천천히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가 마디 마디 변론체로 되어있는 글이오니 빨리 보는 정도로만 보아서는 깊은 뜻을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70년도는 한 광고에 불과한 정도였사오나 71년부터 본격적인 진리 투쟁의 변론으로 책자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3. 71년도부터 본격적인 진리 변론을 해야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금일에 완전 변론의 문서 운동이 없다면 거짓 선지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양떼를 끌고 갈 위기에 도착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새해부터는 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사명자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다 받아서 읽어가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끔 해야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도의 가정에서라도 새일 성가를 부르면서 이 책을 읽어가면서 예배 할 때에 하늘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내릴 것입니다. 또는 직접 이 책을 전하는 일에 전력을 두는 자는 영권 물권의 축복이 올 것입니다.

 

  4. 인쇄비에 대하여는 독자 여러분께서 책대라는 관념을 떠나서 이 진리 운동을 위하여 인쇄비를 돕는다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송금하여 주신다면 큰 축복이 될 것을 믿습니다. 새해부터는 미국, 일본, 대만으로까지 번역하여 보내고자 합니다. 다소를 막론하고 기도중 외국 선교 운동에 협력하여 주시면 하나님 앞에 영광이요, 귀하의 자손만대 축복이 될 일이라고 믿습니다. 사66:18이하를 보면 동방에 나타난 말씀의 빛을 열방에 전파하면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택하여 자손이 영원히 복을 받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5.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새 노래

  조물주 하나님은 택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를 기꺼이 제사로 받으신다. 이날까지는 죽었던 영혼이 예수의 보혈로 속죄의 은총을 받고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찬송한다는 범위 하에서 모든 사람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적으로 찬송을 올리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생 받은 자로서 야곱의 족속이 된 이스라엘이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다가 아름다운 새 시대를 지상 축복으로 받는 자들이 부를 노래를 새 노래라고 하는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죄에서 해방을 받는 시대이니 그 진리에 의하여 찬미의 제사를 올렸고 환란과 재앙 속에서 재앙을 면코 새 시대 갈 시온의 자녀는 이 진리에 의하여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새일 성가집이 나왔는데 이것을 현 교회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모순 중에 모순이라고 본다. 사42:9을 보면 새 일을 고한다는 말씀이 있고 10절을 보면 땅 끝에서부터 새 노래를 노래하며 찬송한다는 말이 있고 12절을 보면 그의 찬송을 선전하라고 하였고 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신다고 하였다.

  사60:6을 보면 여호와의 찬송을 선전할 것이며  모든 나라 사람이 자손과 은, 금을 아울러 싣고 동방으로 온다고 하였으니 이 새일 성가집은 앞으로  어느 나라 사람이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새 시대에 들어갈 남은 종과 남은 백성들은 새 노래를 같이 부르게 될 것이다.

  새일 성가집을 소개하자면 이뢰자 목사님이 대중 앞에 서서 설교하다가 하늘로부터 새 노래를 받아쓰라는 명령이 올 때는 약 10분 15분내에 입으로 작사가 나오는 것을 대중이 받아썼고 작곡이 있어야 할 때는 위에서 작곡을 받으라는 지시가 올 때 단번에 입에서 작곡이 나오므로 음을 잡아 작곡을 그린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현저히 강한 역사가 내리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요구하신다면 아름다운 소식을 보낼 때에 같이 보낼 수 있습니다. 곡조 성가 250원 무곡 50원입니다. 지금 새해를 맞이해서부터는 새 노래를 부르면서 예배하며 호소해야만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유명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큰 영광이며 큰 축복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