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문 답

   

[1 ~ 28] [29 ~ 61] [62 ~ 94] [95 ~ 127]

(1970년 12월호)

[문] 29.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예배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문] 30. 교회 발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31. 종교가 완전한 단체를 이루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32. 기도의 힘을 얻고 얻지 못하는데 대하여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문] 33.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복을 받는 일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71년 1월호)

[문] 34.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35. 기독교 사상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문] 36. 신앙 정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문] 37. 신앙 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1971년 2월호)

[문] 38. 세계 교회가 모이는 일이 식어지는데 대하여 어떻게 하면 열심히 모일 수 있게 되겠습니까?

[문] 39. 천국 복음과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40. 사명자가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41.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1971년 3월호)

[문] 42. 기독교가 지금 와서 새로운 번역이 나와야 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문] 43. 성경을 기록한 목적과 성도의 할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44. 기독교가 크게 위기를 만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하느냐에 대하여

[문] 45. 금일에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누구를 따라 가며 누구의 말을 믿어야 될련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을 어떠한 방침으로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1971년 4월호)

[문] 46. 지금 완전 무장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 무장이 안 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문] 47. 필요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도 필요 없이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문] 48. 공연히 집안이 복잡해지고 합심이 안되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순종을 하지 않고 날마다 공연히 어지러워지는 일이 무슨 원인인지?

[문] 49. 지금 교회에 영계가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서 영계를 어떻게 하여야 조금도 혼선이 없이 완전 영계로 들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1971년 5월호)

[문] 50. 시국이 급한 줄 알면서도 기도 힘이 나지를 않고 점점 가라앉는 일은 무슨 원인입니까?

[문] 51. 금일에 기독교가 전부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각 교파가 생겼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52. 기독교 신앙을 양심대로 바로 지키려면 현 사회의 모든 일과는 전부 거리가 멀어져야만 될 형편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신앙 양심을 살려 가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촛대교회를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 53.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저마다 하는 말입니다. 어떻게 싸워 나가는 것이 옳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되겠습니까?

[문] 54. 금일에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일군이 있지만 어찌하여 큰 역사는 없이 점점 교회가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는 원인은 무슨 이유입니까?

[문] 55. 지금 우리나라는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막막한 일이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지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1971년 6월호)

[문] 56. 지금 많은 신자들이 각자가 자기네 영계가 옳다고 생각을 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가운데서 앞으로 어떠한 방면으로 영적 활동을 해야 되는지?

[문] 57. 믿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여야 구 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됩니까?

[문] 58. 아무리 일을 하려고 애써도 무슨 일이나 바로 되지를 않고 점점 막막한 일만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문] 59.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보려고 애를 쓰다 보면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도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은 무슨 원인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문] 60. 금일에 너무나 복잡한 일이 많을 때에 교회에 가도 예배가 안되고 도저히 피곤이 오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하여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문] 61. 현 시국을 위기라 하면서도 실지 생활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점점 세상으로 치우치게 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문】29.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예배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예배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한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아 그에게 믿음을 주고 은혜를 주어서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바를 받으시고 은혜 위에 은혜, 믿음 위에 믿음을 더 주는 동시에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총을 축복으로 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사람 편에서 예배를 하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먼저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성신으로 역사해 주시므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의 신령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한다는 마음으로 합심되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자기 주관이나 자기 이익이나 자기의 어떤 사적 욕망을 바란다면 그 예배는 우상적인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먼저 아시고 내가 구하는 것밖에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그 사랑을 믿고 내게 어떤 핍박이나 혹은 물질의 손해가 되는 일이나 내 몸에 불리한 점이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여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만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에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핍박과 환란 중에서 그들이 생명을 바쳐 예배할 때에 큰 역사가 임했던 것입니다(행4:23~31).

 

  2. 위에서 오는 것을 받겠다는 마음이 불타야 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습관이나 의식에 따르는 것보다도 그 시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흡족히 받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강단에 서는 종이 어떤 자기의 무엇을 나타내려는 것이 있으면 이것은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미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또는 대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어떤 학설이나 웅변이나 그 위협을 따라서 움직인다면 이것은 인물 숭배의 우상적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서는 종도 자기가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전부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보내는 것만을 기다리고 입을 열 때에 그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는 전부가 여호와의 신의 응답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중은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를 기다릴 때에 예배 시간마다 정상적인 응답이 내리므로 그 예배를 통하여 모든 심령들은 나날이 소성하고 발전하므로 신령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큰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행10:30~48).

 

  3. 성경을 조금도 가감없이 믿는 신앙으로 뭉쳐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가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열매를 체험케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이 가감된 신앙을 가진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신이신데 그 말씀이 즉 생명이요,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은 그 예배에 응답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진리대로 역사하려고 해도 말씀대로 믿는 자들의 예배를 통하지 않고는 그 말씀을 인간에게 알도록 역사할 수도 없고 또는 그 말씀대로 복을 나릴 수도 없고 그 말씀대로 싸워 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사65:11~16).

 

 

【문】30. 교회 발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금일에 기독교가 유형적인 교회는 발전되어 보이나 실지는 발전이 아니요 퇴보라고 봅니다. 기독교의 큰 난제는 이것입니다. 이날까지 타종교보다도 세계적인 발전을 본 기독교가 이제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이냐는 것이 큰 관심을 두고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교회 발전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1. 교회는 이제부터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려면 필요 없는 신학설을 버리고 순수한 성경 본문 주의로 들어가서 본문에서 본문으로 얼마든지 이 시대에 나가서 변론할 수 있는 역사를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하나님의 종들로 어떻게 나가서 변론할 것을 미리 다 선지들을 통하여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볼 때에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다른 천사의 역사로 보여줬는데 계시록10장에 작은 책을 들고 사자같이 외치는데는 하나님의 비밀이 옛날 선지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날은 심판이 오고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얼마든지 이 시대에 나가서 변론할 진리가 계시록과 선지서에 완전 변론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누구든지 이대로 다시 예언하는 진리 운동이 있으므로만이 세계를 각성시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개 교회를 완전하게 촛대교회로 이루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교회의 청년 남녀를 진리로써 완전히 무장시키되 현 시국 난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진리를 선지서와 계시록에 의하여 완전히 통달하도록 무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거짓 선지의 미혹의 말이 들어온다 해도 성경 본문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는 성경 지식을 갖도록 하는데는 용사적인 인격을 말씀에서 받되 아무런 미혹이 와도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는 진리 운동을 하여 기독 청년으로서 진리 반공 운동에 용사적인 투쟁이 있도록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리 싸움의 대상자는 공산주의 변론이며 거짓 선지의 협상적인 학설을 말씀으로 물리칠 무장을 청년들이 갖도록 하여야만 교회가 앞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참된 진리 사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를 완전한 신앙 노선에서 하나가 되는 운동을 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기독교 신앙의 완전한 지식을 성경에서 갖되 죽어 천당의 지식으로가 아니고 앞으로 어떠한 환란이 와도 담대히 이겨 나갈 수 있는 신앙 지식을 교회 모든 신자들이 다 갖도록 하는 운동인데 이렇게 되므로 교회를 교파적인 교권 아래 두지 말고 전부가 다 시국 난제를 지식적인 신앙 양심에서부터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문서 운동으로 어느 신자나 다 같이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보도록 만들어서 각자가 골방에 앉아서도 글을 읽을 때에 새로움을 받고 심령이 소성 받도록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인 공산당은 공산 청년 남녀를 공산주의 학설을 문서 운동으로 전부 교양을 주어 그 사상을 그 학설에서 가지도록 하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과 선지서의 말씀으로 얼마든지 공산주의를 대적하는 변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완전히 기록해 놓은 것을 선지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했는데 반 기독적인 사상과 정치가 북방으로 나올 것을 목적 두고 기록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라고 보게 됩니다. 

 

  4. 이날까지는 은사로서 교회가 발전했지만 이제부터는 모든 신자들이 다 새 힘을 받도록 하는데는 새일 성가를 사용하여야 될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 시대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동시에 소망의 노래를 부르게 해서 발전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 천당을 목적하고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고 우리는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고 새 시대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는 새 노래를 불러서 기도가 되며 제사가 되며 승리의 인격을 얻도록 해야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새 노래를 보내신 것은 앞으로 교회에 큰 발전이 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의 입에 말씀을 주어서 얼마든지 이 시대에 변론을 서판에 새겨 출판하도록 하시고 얼마든지 불러도 점점 새로워지는 새 노래도 종의 입술을 통하여 작사, 작곡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일의 역사가 공산당의 압력을 받고 있는 남한 땅에 나타난 것은 기독교에 큰 발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문】31. 종교가 완전한 단체를 이루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성경을 보면 기독교 종말에는 단체적인 구원이요, 단체적인 싸움이 있는 동시에 승리가 있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를 든다면 여름에는 씨를 뿌려 흩어 놓고 곡식이 포기 포기 나누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지만 서리찬 바람이 불어오고 쌀쌀한 겨울이 오기 전에 포기 포기 가꾸어 놓았던 곡식을 한 단 두 단 묶어 타작 마당에 모아 놓고 타작기를 사정없이 두를 때에 알곡은 알곡끼리 모여서 한 단체가 됩니다.

  이와 같이 이날까지는 각 교파를 나눠 놓고 어느 교파나 다같이 신앙이 자라도록 했지만 북방으로 환란이 내려올 때 남은 자로 한 단체를 이루는 촛대교회가 되므로 예루살렘적인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모든 선지는 묵시를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협상이냐, 반공이냐, 빛이냐, 어두움이냐, 승리냐, 굴복이냐 하는 것으로 결판을 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종이 한 교파를 가지고 수가 많다 적다 하는 데만 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교권주의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제 남은 교회가 되느냐, 또는 남은 종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완전 무장을 목적 두어 나 자체가 남은 종의 자격을 이룰 때에 자동적으로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 타작 마당에 알곡이 자동적으로 모이듯이 남은 종으로 교파가 아닌 한 단체가 이루어지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대표적인 선구자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 대표자라는 것은 어느 교파 사람이나 참으로 신앙 양심을 가진 자는 하나같이 그 종이 들고 나오는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를 호응하게 되므로 한 단체가 되는데는 죽어 천당을 목적 둔 진리 운동이 아니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진리 운동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데는 어떤 종이 학적으로 연구한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종을 통하여 진리를 완전히 증거하도록 하는 역사가 오므로써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 평안할 때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기마다 자기 해석이 옳다고 떠들고 있지만 계시록9장과 같이 화, 화가 올 때에 남은 종, 남은 교회가 나오는 것은 이마에 인 맞은 종을 통하여 단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9:4에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준다고 한 것을 보면 인 맞은 종만이 남아서 한 단체가 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인이라는 것은 다른 천사가 가지고 나오는 하나님의 인이라고 했으니 성신의 인을 맞은 종들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으므로써 남은 종이 되고 또는 남은 교회가 나올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로 한 단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농부가 알곡을 모으기 위하여 사정없이 타작기를 두르듯이 하나님께서 남은 종을 한곳에다 모으기 위하여 타작기와 같이 강한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문】32. 기도의 힘을 얻고 얻지 못하는데 대하여 그 원인을 알고자 합니다.

【답】기도라는 것은 이방적인 기도도 있고 이스라엘적인 기도도 있습니다. 이방적인 기도라는 것은 진리가 없는 기도요, 이스라엘적인 기도라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약속을 의심없이 믿고 하나님과에 기도로 승리하고 얻은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자가 자기의 욕망을 목적 두었다는 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 실패를 보고 말 것이로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을 확신하고 아무런 역사나 응답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은 참되신 신이신 것을 믿고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심정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자라야 정상적인 기도의 힘을 가지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기도의 힘을 잃고 나가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마음이 조급하고 진리의 지식이 없는 자가 기도의 힘을 잃게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영원한 것을 목적을 둔 것인데 잠깐인 일에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일에 조급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일이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지면 자기가 크게 성공이나 한 듯이 날뛰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하고 마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2. 남을 살려 보려는 마음이 없고 자기가 이긴다는 마음이 불타 가지고 공연히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얼마 안 가서 기도의 힘을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대언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평하신 주님이신데 남을 이겨 보겠다고 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주님의 마음과 합치되지 않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3. 은사를 목적한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은사를 목적한다면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목적없이 입에 달콤한 것을 찾는 장난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내리는 목적은 자라나서 장부가 되어 진리로써 승리하는 용사가 되라는 것인데 그때 그때에 은사가 내리면 이것이 다인줄 알고 떠들던 자들이 은사로 말미암아 시험이 올 때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의 힘을 잃지 않고 점점 더 강해지는 사람의 상태를 말합니다.

  1. 말씀을 듣고 심령이 소성해서 감사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인격적으로 받기 때문에 정상적인 체험을 자기 인격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인데 이 체험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므로 점점 기도가 강하게 됩니다.

 

  2. 남을 살려 보려고 우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언제나 힘을 더 얻게 되는 것은 한 사람, 두 사람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불타 오르게 되므로 계속으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항상 주님의 대언기도가 같이 하므로 남을 살릴 수 있는 인격이 하나님께로 올 때에 작은 데서 큰 것을 약한데서 강한 것을 이루는 발전이 있게 되어 대중을 살리는 큰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3. 숨은 봉사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누가 알아주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기쁨을 가지게 되므로 주님께로 오는 힘을 받아 기도의 생활이 점점 깊은 체험을 받게 되어 주님과 직접 교통하는 세계에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영계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문】33.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복을 받는 일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과에 함께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요一1:3). 아무리 목회자가 바로 하려고 해도 교인들이 바로 못하면 할 수 없고 아무리 교인들이 바로 하려고 해도 목회자가 바로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말해도 그들이 듣지 않을 때에 너희는 내 양이 아니라고 말씀했고(요10:26), 아무리 양들이라 하여도 삯꾼은 양을 버리고 간다고 요10:12에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싸워 주는 것이 목자의 책임이라면 양은 그 말을 듣고 뭉쳐지는 것이 책임입니다(요10:15~16).

  이제 목회자의 할 일에 대하여 먼저 말합니다.

 

  1. 언제나 목회자는 주님의 대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할 말을 목회자가 하고 주님이 붙들 자를 목회자가 붙들고 주님이 사랑할 자를 목회자가 사랑하고 주님이 미워할 일을 목회자가 미워하고 주님이 슬퍼할 일에 목회자도 슬퍼하고 주님이 기뻐할 일에 목회자가 기뻐할 때에 이 목회자는 주의 손에 붙들린 종이라고 보게 됩니다(계1:20).

 

  2. 양떼들을 위한 식모가 되어야 합니다 (마24:45~46)

  식모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그 집의 식구에 따라서 양식을 잘 제공하여 건강을 보존하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이것을 전적으로 책임을 지되 식모가 주인에게 생활비를 가지고 적합한 식물을 사 들이듯이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 가지고 때를 따라 적합한 양식을 공급할 책임이 있는데는 주인의 요구대로 할 것뿐입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는 주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공급하되 자기가 무엇을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없어야 될 것입니다. 만일 무슨 값을 요구한다면 식모가 집안 사람들에게 식대를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은 망령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벌써 목회자의 위신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신령한 양식을 하늘로 받아 공급할 때에 교인들은 건강한 영적 생활이 있게 될 때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성금을 바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는 것 뿐이요,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바치는 성금을 당신의 종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잘 길러 주니 하나님은 그 종을 대접해 주는 것으로 되어야 될 것입니다.

 

  3. 대적을 물리치는 용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딤후2:3~4)

  목회자는 언제나 마귀와 싸우는 용사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예배 시간이나 지켜주면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봅니다. 항상 쉬지 말고 정신을 차려 교회를 대적하는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생명을 바치고 나가는 용사적인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마귀를 대적해 싸우는 한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싸워 이길 때에 교인들은 마귀 권세를 벗어날 수 있고 싸우지 않을 때에 교인들은 마귀 흑암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 생활을 할 때에 공중 세력은 그 목회자를 대항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회자나 마귀 참소를 이기는 자라면 그 교회는 은혜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요, 마귀 참소에 지게 되면 그 교회는 혼란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일선 용사가 싸워 이길 적에 그 뒤에 있는 백성들에게 안정이 있고 싸워 주지 못할 적에 그 백성은 혼란 중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교인들이 하여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교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통하여 자기들에게 풍성한 것을 주실 줄 믿고 목회자를 만나는 시간을 가장 귀한 시간으로 알고 목회자를 중심하여 모이는데 힘을 다하여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식모가 좋은 음식을 해 놓았다 하더라도 식구들이 그 음식을 합심하여 모여 먹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벌써 단체를 이루는 가정이 아니고 내막이 무엇이 잘못된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교인들은 자기가 개인으로 은혜를 받는 것보다도 목자를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을 갈망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가 될 적에 하나님께서 그 목회자를 통하여 큰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2. 순종심이 강해야 됩니다

  일선에서 싸워 주는 목회자를 순종하지 않을 때 그 목회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목숨을 바쳐 싸워 주는 목회자라면 절대로 순종심이 강할 때에 마귀는 큰 패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양떼를 위하여 싸워주는 목회자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순종치 않는 것이나 같습니다. 왜냐하면 군대가 전쟁할 때 사령관의 지령을 받은 장교의 말을 졸병들이 순종하지 않는다면 사령관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종의 영계를 간섭하지 말고 그 영적 지도를 절대로 순종해야만 신령한 싸움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3. 목회자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내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전부를 바치고 나선 종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를 주님보다 더 의지한다든지 또는 숭배한다는 것은 탈선이겠지만 귀한 종으로 존경해 준다는 것은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종을 무시한다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니 주님의 대행자로 쓰여지는 종을 존경할 때 주님께서는 대신 갚아 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언제나 목회자를 자기 집의 식구보다도 더 존경할 때에 그 가정에는 무한한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할 일을 바로 하고 교인이 할 일을 바로 할 때에 이것을 완전한 교회라고 인정하는 동시에 그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고 영광을 받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34.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성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법으로 쓴 글도 있고 완전한 변론으로 쓴 글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란 것은 모세 5경에 기록 되어 있는 것이요, 역사라는 것은 모세 5경을 그대로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은 역사가 구약 역사입니다. 그 밖의 말씀은 전부가 변론적이라고 보게 됩니다.

  신약 전서에 4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을 대하여 말씀한 변론이 기록되어 있고 편지서는 성신을 받은 종들이 성령으로 변론한 것이 기록되어 있고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변론한 글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이란 것은 4복음과 편지서에 있지 않고 선지서와 계시록에 있는데 계시록은 하나님의 변론을 혼선되지 않게 증거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보여준 글입니다. 계시록은 선지서에 심판의 변론을 열어주는 책입니다. 계시록을 바로 알므로 얼마든지 여호와의 책에 세밀한 변론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론은 계시록에서 완전히 조직을 알아 가지고 선지서를 다음과 같이 변론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데 일곱 교회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 성도의 신앙 지침이요, 일곱 인은 재림의 주가 올 시기를 알려준 것이요, 일곱 나팔은 재림 시기에 올 환란의 순서를 보여준 것이요, 일곱 대접은 재림 후 이 땅에 재앙 심판이 올 때 될 일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것이 선지서 전체의 이스라엘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변론 전체의 요지가 됩니다. 일곱 인의 시기는 신약 시기에 붉은 말이 허락 받고 나온다는 것은 구약 세계에 앗수르의 세력을 말한 것으로 변론이 되고 검은 말은 경제권의 세력이 빈민을 압박한다는 선지서의 말이 결부가 되고 얼룩말은 선지서에 음녀적인 거짓 선지에 대한 변론이 결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4대 병마는 구약 선지서에 심판기에 올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북방 세력이 강하게 올 것을 붉은 말로, 극도로 부패한 정치를 검은 말로, 극도로 미혹을 시키는 거짓선지를 얼룩말로 하며 계시록도 전부 내용이 결부되고 구약 선지서도 전부의 내용이 4대 병마에 결부됩니다. 인간 종말에 불가피한 진노의 심판이 오는 것은 이 세 가지가 심판의 대상자가 됩니다.

  언제나 변론이란 것은 알파와 오메가를 바로 말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작했던 일을 폐하지 않고 그대로 끝을 맺습니다. 만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시작을 했다가 누가 방해한다고 그대로 끝을 못 맺는다면 그대로 끝을 못 맺게 하는 자가 하나님보다 높은 자가 될 것이니 하나님은 시작을 하면 아무리 방해자가 있어도 그 법에 의해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시작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얼마든지 아름답고 평화롭고 거룩한 영광의 나라를 목적을 둔 것인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법이 없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말씀의 법을 세워서 그 법을 순종하면 목적을 둔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서 떨어졌다 하여도 그 목적을 달성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둘째아담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아담을 창조할 때의 목적이었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째아담에게 주었던 그 에덴 동산을 다시 둘째아담으로 이루어 준다는 것이 목적이니, 그 둘째아담 예수의 보혈은 사람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생령의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을 중생이라는 것이요, 중생 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첫째아담은 성령을 받지 못하므로써 이기지 못한 것을 아시고 둘째아담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 성령으로 역사하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다시 부활해서 승천하시어 성령을 부어 주므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승리하는 자로 평화 왕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로되 타락할 것도 아시고 타락하면 이런 법으로 근본 창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말씀한 것이 여호와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을 믿는 것은 구약에 행하겠다는 방침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에 심판이라는 것은 인종 전멸의 심판인데 이날까지 꾀어보기 위하여 사용한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마귀를 순종하던 자를 마귀와 같이 없애 버리는 것을 인종 전멸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귀 역사를 들어서 당신의 자녀를 괴롭히면서 괴로운 가운데서도 이기는 자에게 묵시를 주기를 지금 너를 괴롭히는 마귀를 내가 없애는데는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귀 편에 서서 너를 대적하던 무리는 마귀를 없앨 적에 다 없애고 너같이 내 말만 순종하는 자로 지상 왕국을 이루겠다고 말씀한 것이 선지서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마귀 세력을 없애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만민을 그 피로 구원하는 동시에 끝까지 순종치 않는 자를 마귀와 함께 없애 버리고 너와 같이 순종하던 사람들로 남은 자가 되게 하며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묵시를 받은 사람이 받던 고난이 심판날에 환란이 되고 묵시를 받던 종들이 받은 왕권이 종말에 환란 가운데 남은 종들에게 같이 오므로 그날에 가서 묵시를 받은 자나 그 말씀대로 싸운 자나 같이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오메가 역사라는 것입니다.

 

 

 

【문】35. 기독교 사상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답】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머리 속에서 연구했거나 또는 창작한 것을 초월하여 조물주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목적을 두고 말씀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믿고 나가는 것을 기독교의 정통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완전한 것이 충만한 여호와의 신이지만 이것을 누구에게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니 신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람에게 주고자 할 때에 사람이 그것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랑의 신이십니다(요14:13). 예를 든다면 어떤 선생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  술을 많은 사람이 배워서 국가에 큰 복리를 준다면 이것이 그 선생에게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완전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어서 그것으로써 완전한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영광을 받으실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것을 피조물 된 인생에게 주고자 하는 그 애(愛)의 사상이 신의 감화로 사람에게 올 때 사람에게 이 사상이 들어가도록 역사하므로 자기가 완전한 것을 체험하는 동시에 남도 그것을 받게 해 주겠다는 것이요, 완전한 소망을 가진 동시에 남에게도 그 소망을 알려 주어서 신께서 원하시는 사랑에 이끌려서 뭉쳐진 단체를 기독교의 완전한 신앙 단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십니다. 공의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세운 언약의 법입니다. 이 법이라는 것은 인생에게 완전한 것을 주겠다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을 세우는 동시에 이 법을 지킬 사람을 꾀어 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끝까지 순종하느냐는 것을 시험해 보고 아무리 시험이 와도 그 시험을 이기는 믿음이 있는 자를 신앙의 옳은 사상으로 인정을 하고 그 신앙에 의하여 세계 통일의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 사상 운동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과 사람 편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하나님의 권리

  첫째 : 사람을 마귀로써 꾀어 볼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꾀어 보는 목적은 사람이 망하는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꾀어 보는 것이니 우리 사람으로서 마귀가 시험할 때에 불평이나 원망을 둔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인정됩니다. 만일 어떤 학생이 선생님이 자기를 시험을 해 본다고 선생에 대하여 불평을 둔다면 학교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지키나 시험해 보는 일을 원망한다면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방해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1:2을 본다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였고 12절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주기 위하여 시험을 해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 도와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를 낸 것은 도와줄 권리를 행하고자 한 목적이요, 마귀를 낸 것은 시험해 볼 권리를 행하고자 하는 것이니 먼저 마귀로 시험해 볼 권리를 행할 때에 끝까지 마귀와 싸우는 자라면 천사로 보호해 줄 권리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마귀와 천사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얼마든지 꾀어 보라고 권리를 주었고 천사는 얼마든지 도와주라는 권리를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2:7이하를 보면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를 못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이 싸움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하여 싸우는 것인데, 용의 앞잡이는 계13:2에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머리가 상했다 나은 짐승에게 주었다고 했고, 11절에 보면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히 붉은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교권의 사상은 붉은 용의 감화를 받은 사상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상을 대립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진리 멸공 사상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붉은 용을 들어서 꾀어 보는 것은 천사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갈 참된 신앙 사상을 가진 성도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입니다.

  셋째 :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마귀를 들어 쓸 권리도 있고 천사를 들어 쓸 권리도 있으니 이겨야 할 권리도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마귀와 싸우는 자를 천사로 싸워주는 동시에 권세를 주어서 당신의 사람으로 승리케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끝은 사상전으로 맺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인류 종말을 가르친 다림줄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어떤 국경이나 민족을 따라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몽땅 없앤다는 것이 최후에 결전을 짓는 아마겟돈 전쟁이란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인간 자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데는 그 사상을 보고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사66:18이하에 가르쳤습니다.

 

  2. 사람의 주권

  첫째 : 사람은 받을 주권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장자는 부모의 기업을 상속할 권리가 있는 것같이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는 받을 주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받을 주권이 있고 믿지 않으면 주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마귀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간교한 것이요, 하나님의 사상이라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동시에 말씀 그대로 믿는 자에게 얼마든지 그대로 준다는 것이니 금일에 공산당은 하나님 말씀을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상이요, 기독교의 사상은 하나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는 사상입니다. 누구든지 신앙의 사상이 바른 자는 얼마든지 받을 주권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 얼마든지 활동할 주권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이란 것은 마귀의 충동을 받은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열매 없는 헛수고를 하는 것은 그 사상이 바르지 못한 증거입니다. 사상이 바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지혜도 지식도 능력도 권세도 주어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주권을 맡겨 열매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사상과 활동이란 것은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공산주의는 붉은 용의 앞잡이로 적극 활동하는 것이요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서 적극 활동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신앙 사상이 바른 사람은 얼마든지 초인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활동이란 것입니다.

  셋째 : 통일 통치의 주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는 통일 통치의 주권을 가질 자는 하나님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통일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자들로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과 의합된 사상을 가진 자라면 그 말씀대로 그 사람에게 역사해 주시므로 통일 통치의 주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금일에 사상전은 붉은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의 사상과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성도의 사상이 대립되어 인류 역사에 전쟁의 끝을 맺는 것입니다(계19:19~21).

 

 

【문】36. 신앙 정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답】신앙 정로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말씀할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세운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 정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너는 복의 근원이니 천하에 모든 족속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서 인정을 받을 때는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걸어간 신앙 노선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약속대로 복을 받을 사람들의 표준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도 또는 복을 주리라고 믿는 것도 다 정로라고 볼 수 없고 그 언약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아무리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이 없는 신이신데 약속의 말씀이 조금도 변할 수 없다고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참고 순종하는 길을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 정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을 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 정로

  구약 때 아브라함의 육적 혈통의 자손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에서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의 부족을 날마다 깨달으며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향기롭게 받으시고 축복을 내리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일, 물질의 축복을 받는 일,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승리의 길을 걷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는 특별한 성신의 역사나 또는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고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고 국가적으로 부흥하는 일이 있고 특별히 앞으로 될 일을 묵시로 받아 기록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라는 것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에서 하나님을 공경한 종들의 역사와 메시야의 왕국이 올 것을 묵시로 받아 기록한 글입니다.

  둘째 : 오신 메시야를 믿는 신앙 노선

  이 신앙 노선은 선구자가 있으니 즉 사도들입니다. 이 사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는 성민의 한 사람으로 주님을 친히 따라가면서 보고 듣고 만진 바를 증거할 때에 오실 메시야를 믿는 선지들이 묵시를 받아 기록한 말씀을 밝히 가르칠 때에 나사렛 예수는 분명히 선지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한 대로 오신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자들이므로 그들은 성신의 큰 역사가 항상 같이 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역사라는 것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부활을 증거할 때 성신의 역사가 일반에게 내린 일, 교회가 불일 듯 일어난 일, 성신 계시를 받아 글을 기록하여 문서 운동을 한 일, 이 세 가지인데 이것을 사도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까지 걸어온 신앙 노선은 그들이 증거하던 그 증거를 우리가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들은 선구자요 우리는 따라가는 자들로서 그들이 받던 성신의 역사를 우리도 받게 되고 그들이 세우던 교회를 우리도 세우고 그들이 시작한 문서 운동을 우리들이 그대로 할 때에 우리는 그들이 못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사명을 계대하여 그대로 가감 없이 증거하면서 이날까지 온 것을 정로라는 것입니다.

  셋째 :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신앙 정로

  오신 메시야를 온 세계에 알려 주는 때를 은혜 시기라고 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때를 환란과 재앙의 날이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이날까지 오신 메시야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사도적인 사명을 계승한 것 뿐이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날에 대하여는 정확히 가르치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도들도 주님이 다시 온다는 것은 말했으나 오시는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어떠한 환란이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밝히 증거하지 않은 것은 오신 메시야를 먼저 세계에 알리는 것이 사명이므로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성신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는 부탁만 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네로 황제 박해로 교회가 큰 화를 만나고 사도들은 다 순교를 하고 남은 자는 사도 요한 뿐이었는데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어 재림의 날에 있을 환란과 큰 역사와 또는 지켜야 될 말씀을 기록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주 재림을 살아서 영접할 변화 성도의 신앙 정로를 가르친 글이라고 보게 됩니다. 계22:18~19에 이 책에 기록한 예언에서 가해도 감해도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절대 구원이 없다고 한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날에 남은 자들이 지켜야 될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11장에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서 예언하는 날에 감람나무 촛대가 나온다는 것은 재앙의 날에 신앙 정로를 가는 종들과 교회를 가르친 것입니다.

 

  2. 순교적인 신앙 정로입니다

  이 순교라는 것은 개인적인 자기의 구원 문제나 생활 문제를 목적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을 순교적인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용사적인 장부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이 순교적인 신앙 노선에서도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 오실 메시야를 믿는 언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부패가 있을 적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서 책망하는 선지들입니다. 이들은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을 내다보고 아무리 다윗 왕국이라도 이방과 타협하면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정통 신앙을 잃어 버리지 않는 자라야 메시야 왕국의 축복을 받을 것을 말했습니다.

  이때에 그 선지의 경고를 순종하지 않을 때에 그 왕국을 바벨론을 들어서 없이 하고 남은 자로 다시 예루살렘을 복구할 때에 그들이 받은 묵시는 전부가 심판의 다림줄이 된 것입니다.

  둘째 : 오신 메시야를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증거하는 자들은 목적이 유대나 이방이 차별이 없이 예수를 믿되 유대인은 유대교를 떠나야 된다는 것이요, 이방인은 이방 종교를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유대 교인들에게도 박해를 받고 이방 종교인에게도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유대교의 할례나 속죄나 모든 의식이 다 필요가 없고 예수를 믿으므로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무서운 박해를 당한 것이요, 이방 종교인을 만나서는 이방신을 버리고 우상을 철폐하고 그 모든 의식과 풍속을 버리고 예수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이 나가는 십자가의 신앙 정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십자가 외에는 증거하지 않는 증인으로서 피를 흘려 쓰러지면서도 변치 않고 증거하여 세계 만방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셋째 :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의 증인은 아무리 신자라도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환란에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간다고 하는 증거인데 여기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붉은 짐승의 정권은 심판의 대상자이니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앞에 절을 하거나 표를 받으면 붉은 용과 짐승의 정권을 없이하는 심판이 올 때 함께 다 죽는다는 것이요.

  2) 누구든지 짐승의 세력을 무서워 말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예비처에 보호하므로 짐승의 박해로 오는 환란을 피하고 짐승의 정권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없애는 재앙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증거하려면 권세를 받지 않고는 도저히 이 진리를 증거할 수 없을 것이니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재림의 날까지 증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대표적인 사람이 증거하는 증거를 가해도 감해도 재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예언할 권세를 맡겼으니 이 예언이라는 것은 모든 선지가 묵시로 받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와 계시록을 들어서 다시 예언하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그 입술에 말씀을 주어서 조금도 혼선이 없는 완전 변론의 역사를 하게 하므로 그 변론을 통하여 간교한 마귀 흑암이 물러가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같이 깨닫고 진리 안에서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어 그 교회로 말미암아 지상 평화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되 은혜 시대에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요, 환란기에는 죽을 몸을 살려서 새 시대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문】37. 신앙 생활의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공적, 사적의 생활이 합리화 될 때에 이것을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봅니다. 예를 든다면 사람의 몸이 외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공적이라면 그 몸의 모든 지체가 보이지 않는 힘을 보급하고 있는 활동은 항상 자나깨나 쉬지 않고 있어야 되는 것 같이 신앙 생활에도 공적인 활동은 유형적인 것이요, 사적인 생활은 무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신앙 생활에 공적과 사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공적인 활동

  공의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위한 문제가 아니요 대중을 위한 문제입니다. 예배에도 공적 예배가 있고 기도에도 공적 기도가 있고 전도에도 공적 전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자가 믿음이 있다 하여도 공적 예배를 등한히 한다면 공적으로 범하는 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할 때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개인 신앙을 위해서 보다도 약한 자를 붙들어 주며 모르는 자를 깨우쳐 주며 피곤한 자를 소성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니 이 일을 등한시하고 믿음이 있다는 자들이 자기 믿음 하나를 목적하고 나는 개인으로도 신앙을 얼마든지 보존한다고 하면 이것은 벌써 신앙 양심을 떠난 자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예수를 모르고 믿음을 모르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서 은혜를 받고 이제 와서 교회의 공적 예배는 필요가 없다고 하면 마치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학생이 나는 배웠으니 학교가 필요 없다고 하는 식이니 이러한 자라면 공적으로 죄를 범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에는 공적 예배를 존중시하는 것이 있어야만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큰 역사를 받을 때도 공적으로 한곳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 큰 성신의 권능이 내렸던 것입니다.

  공적 기도에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는 공적 기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 기도라는 것은 개인 사정을 위한 문제보다도 국가적이나 민족적이나 교회적이나 모든 문제를 내게 관한 문제로 알고 기도하는 것인데 이 기도를 하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하나님께서 공적인 대중의 생명을 살려주는 역사를 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공적 기도에 힘쓰는 것이 사명자의 할 일이라는 것을 권했던 것입니다(딤전2:1~3).

  누구든지 공적인 기도를 많이 하는 자에게 영계가 속히 올라가는 열매가 있습니다. 자기의 은밀한 죄를 자복하는 기도나 딱한 사정을 고백하는 기도는 소극적인 기도라면 공적으로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하는 기도는 적극적인 기도라고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왕권의 축복을 나리는 것입니다.

  공적인 전도는 개인을 만나서 하는 전도가 아니고 강단에서 서서 대중을 깨닫도록 가르치는 설교나 또는 전도 강연을 공적 전도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공적으로 대중을 회개시키는 설교는 특별한 종에게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 삼천 명이 회개하고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습니다. 앞으로 말세 증인이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가면서 예언을 증거하는 것도 역사적인 한 페이지에 끝을 맺는 전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에는 공적 예배, 공적 기도, 공적 전도가 없이는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2. 사적 생활

  이것은 신앙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하여 날마다 은밀한 것을 하나님께 보이려고 하는 신앙 양심의 생활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큰 열매를 많이 맺어 공적인 대중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사적인 세포에 들어가서 작게 뻗어 나가는 뿌리에서부터 힘을 얻어 큰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신앙 생활도 사적으로 은밀한 생활에서 하나님께로 통하는 것이 있는 자라야 공적인 교회에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신앙 생활의 사적에 대하여 사적 봉사, 사적 교제, 사적 인내의 생활이 있으므로 큰 발전을 보게 됩니다.

  사적 봉사라는 것은 하나님만 알게 숨은 봉사를 하는 일이요, 사적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소리 없이 교통하는 동시에 성도가 영적으로 교통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법칙이나 어떤 단체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지금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참된 성도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영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또는 사적으로 참고 나가는 힘입니다. 예를 든다면 큰 가옥을 건축할 때에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모든 것을 그것에 의지하여 집을 지을 때에 모든 짐을 똑같이 지고 견디고 있듯이 교회라는 것은 성도들이 사적 생활에서 오는 모든 시험을 참고 나갈 때에 이것이 교회 전체를 받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하여도 그 사람이 사적 생활에서 참는 신앙이 없다면 이 교회는 아무런 열매 없이 무너질 날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적 생활에서 참고 나가는데 의하여 축복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자기의 세력을 높이려 할 때에 지극히 작은 아이에게 행한 것을 내게 행한 것과 같이 갚아 줄 것이니 누구든지 작은 일에 충성한 자라야 큰 권세를 받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므로 사생활에 숨은 봉사, 교제, 인내, 이 세 가지로 말미암아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듯이 신앙 생활에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므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그 신앙을 통하여 완전한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문】38. 세계 교회가 모이는 일이 식어지는데 대하여 어떻게 하면 열심히 모일 수 있게 되겠습니까? 만일 이대로 나간다면 큰 문제가 될 일이라고 봅니다.

【답】금일에 교회가 모이는 힘이 식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1.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만한 말씀이 없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 시대는 무엇으로나 큰 변천을 가져오므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거기에 끌려졌으므로 사상, 정신이 다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새로워지는 것이 없이 오히려 모든 것이 퇴보 상태로 들어가고 보니 이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끌려가는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이대로 나간다면 기독교는 아무런 필요 없는 기관이 되고 말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기독교는 이 시대 사람에게 큰 소망을 주고 감화를 주고 큰 개혁을 일으킬 새로운 진리 운동이 나와야만 될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고 각성을 주는 일이 없다면 큰 위기에 떨어지고 말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되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론과 역사가 나타나야만 될 것입니다.

 

  2. 지도자 부패로 봅니다. 과거에는 지도자들이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종들이므로 예수를 모르는 나라나 지방에 가서도 역사가 일어나므로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보았지만, 금일에 교회가 교권, 물권을 쥐는 동시에 지도자들이 신령한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는데다가 전력을 두지 못하고 교권으로, 물권으로 기울여질 적에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는 상태로 들어가니, 그 종이 서는 강단에 여호와 응답하지 않으므로 예배를 드린들 일반에게 아무런 응답이 나리지 않으므로, 예배는 시간을 지키는데 불과하고 새로운 것을 받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 들어가니 교회에 모이는 것은 우상을 공경하는 사람이 가끔 한번 가서 제사나 드리는 그런 식에 불과하게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마귀를 섬기는 식과는 다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이 주고픈 사랑에서 사람에게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응답을 내려 다 소성을 받게 하는 것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니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 생명을 받은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므로 그 생명의 줄을 통하여 오는 공급을 받되 말씀으로 받고 직접 능력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선 종이 하나님과에 연락이 되는 줄이 없다면 아무리 강단에 서 보았던들 예배를 드리는 생명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 교회가 새로운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강단 개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니 욜2:17과 같이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3. 마귀 압력이 허락을 받고 나온 것이니 아무리 마음에는 간절해도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는 자리에서 깊이 잠드는 상태에 있게 되므로 믿음이 다 식어지고 기도의 힘을 잃고 보아도 모르겠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이러한 흑암이 허락을 받고 나오는 것은 변화 성도를 일으킬 때가 온 증거이니 변화 성도라는 것은 권세 역사를 받고 나오는 종들을 가르쳤다.

  종말에 역사라는 것은 마귀 권세를 개방시키고 그것을 이기고 나간 자들로 변화 승천케 하는 역사이니 이 역사로써 새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11:3과 같이 증인에게 권세를 주어 예언할 때에 촛대교회가 나오므로써 세계 교회는 바벨적인 음녀 교회와 증인 권세 촛대교회가 나오므로 버릴 자는 버림을 받고 남을 자는 남아서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끝으로 간곡한 부탁을 드릴 것은 절대적으로 교파의 담을 헐으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굳게 잡고 싸우시기 바랍니다. 또는 남을 보지 말고 먼저 자기의 영계 상태를 주 앞에 검열을 받는데 전력을 두고 또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깨닫기 위하여 심각히 생각하며 이리저리 치우치지 않고 대표적인 종을 통하여 나타나는 진리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서 진리에서 뭉쳐지는 권세 부흥단이 나오므로만이 세계 교회를 크게 각성을 주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문】39. 천국 복음과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주님께서 감람산에 앉았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어보기를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물어볼 때 대답하시기를 난리를 무서워하지 말고 미혹에 들지 않도록 주의할 일을 말씀하면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할 것이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받는데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시었고, 계14:6이하에는 영원한 복음을 가졌는데 바벨론을 심판할 시간이 이르렀다고 하는 것을 사도 요한은 계시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에 있어서는 첫째로 시대를 구분해야 됩니다. 천국 복음이 전파된 후에야 세상 끝이 온다고 하였고 영원한 복음을 전할 때는 바벨론을 심판할 때라고 한 것을 보면 천국 복음은 은혜시대에 전할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심판기에 전할 복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의 복음은 죄인을 불러서 중생을 받게 하는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바벨론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탈 때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되 이 땅위에 남은 백성으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게 하는 복음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세밀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국 복음은 영원한 영생의 나라로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인데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을 증거하므로 사망 아래 다스림을 받던 죽은 영들이 중생을 받는 동시에 몸은 죽으나 영혼은 구원을 받는 것을 목적한 것이니 여기에는 십자가로만이 구원을 받는 속죄 구령의 역사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는 때이므로 죽은 영들이 중생 받는 일은 없으므로 복음을 전하는 때가 아니고 조상적부터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유일신 하나님을 율법에 의하여 속죄제로 공경하는 때요, 천국 복음을 전할 때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아무런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즉시에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죽었다가 천년 왕국이 지난 다음에 심판의 부활에서 생명의 부활을 받아 천국의 영원한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영원한 복음은 천년 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갈 자들에게 전하는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앞에 절하는 자는 다 죽게 되는 재앙이 내릴 때에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보호를 받아 지상 왕국에 들어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전하는 복음입니다.

  세세 왕권을 받을 자는 두 가지로 봅니다.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순교한 자는 주 재림시에 왕권으로 부활을 하고 영원한 복음을 환란 가운데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우던 자는 재림시에 변화 성도로 왕권을 받아 승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권은 복음을 전하던 자에게 있되 순교를 하기까지 전한 자에게 있고 시민권은 천국 복음을 받아 영혼이 구원받은 자가 천국의 시민권이며 영원한 복음에는 예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자는 천년 왕국의 종족이 됩니다.

  다시 세밀히 말하자면 천국 복음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도들에게 전한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구약 선지에게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복음인데 이것은 바벨론이 망하고 예루살렘이 복구된 사실을 들어 인간 종말의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친 것입니다(계10:7).

  성경은 목적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전할 복음을 세밀히 가르친 것은 선지서요, 계시록인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라는 것은 한날 한시에 구원받는 복음이 아니고 심판기가 올 때까지 온 세상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영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했으므로 많은 글이 쓰여져 있지 않고 진노의 날에 온 세상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고 남은 백성이 될 자는 지상 축복을 받는 동시에 영원한 천국에까지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은 직접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은 지상 왕국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40. 사명자가 자기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사명자는 자기 사명이 무엇인 것을 먼저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명에 대하여도 환란과 재앙 가운데 남은 종으로 복음을 전할 사명은 은혜시대의 사명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대가 바뀔 때에 사명자들이 사명을 바로 알지 못하므로 혼란을 일으킨 일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올 때에 사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사도를 이단시하고 훼방하다가 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시대에도 환란기가 임박할 때에 환란 가운데 말씀을 전할 사명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자가 있다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금일에 자기 사명을 모르고 환란시대의 종들이 전할 성경을 은혜 시대의 종들이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봅니다. 은혜시대의 사명자는 사도들이 예언서를 해석한 것 외에는 더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게 주님께서 부탁할 때 너희는 내가 전해준 말을 땅 끝까지 전파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깨닫게 해 준 성경 외에는 더 연구할 필요도 없고 순수하게 사도가 전한 복음을 그대로 전할 때에 성신의 역사가 강하게 나리는 것만이 열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 재앙의 날에 전할 말씀은 재앙의 날에 가서 남은 종들이 그 말씀을 분명히 전하도록 하시되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듯이 대표적인 사람에게 기독교 종말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여 대표적인 종이 성경 전체를 바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대표적인 사람을 통하여 환란 가운데 역사할 종들이 하나같이 무장을 받게 되는데는 성경은 대표자가 증거하는 것 외에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려면 대표 사람에게 절대로 순종하는 것과 그가 받은 진리를 가감 없이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꼭 같이 역사하므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될 것입니다.

  사명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대표를 세운 후에 대표자가 받은 사명을 함께 하기 위한 사명 외에는 따로 있지를 않습니다. 은혜시대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꼭 같이 하게 되어 있으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문서화 시켜서 이날까지 그대로 전하는 것이 사명의 통일성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성경 주석이라 해 가지고 신학자들이 자기 멋대로 선지서나 계시록을 썼다는 것은 기독교를 혼란케 한 것밖에는 못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에게 묵시를 보일 때에 계10:11에 다시 예언하라는 부탁을 하시면서 11:1에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척량하라고 한 것은 다시 예언하는 대표 사람이 나오므로 그 사명 아래서 종들이 하나같이 단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은혜자들이 함부로 내 사명은 따로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세계를 통일할 듯이 떠들어댄다는 것은 탈선된 일이라고 봅니다. 소위 동방 역사라는 간판 밑에서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것은 큰 혼선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므로 세계 열방이 그 빛으로 들어온다고 하였는데 말씀이 없이 무슨 이상한 징조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표제로 삼아 사람을 끌어 보려는 것은 대중을 혼란케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명자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말씀을 햇빛같이 밝히 증거하는 종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말씀이라면 하나같이 떨면서 그 말씀 하나를 바로 전하는 일에만 전력을 두고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마음과 심령 통회에서 하나가 되고 말씀에 떠는 것으로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은 권고하시므로 하나같이 대 승리를 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문】41.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되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향하여 하는 일도 아니요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일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행하시는 일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진리를 사람이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금일에 기독교가 가르치는 일에 다른 종교보다도 시간을 많이 소비하고 또는 많은 종들이 강단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목자가 다 되느냐가 큰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이 되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극도로 겸손해야 됩니다.

  이 겸손이라는 것은 도덕적인 겸손보다도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나의 체험을 말하자면 내가 빈민굴에 가서 빈민과 같이 울며 빈민을 위하여 희생 봉사할 때에 불쌍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3일간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십자가를 깊이 깨닫는 묵상에 들어갔습니다. 십자가의 의를 깨닫게 될 때에 전부가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만 될 심정이었습니다. 10개월간 십자가 묵상에서 밤을 새울 때에 10개월이 되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계시록과 선지서가 통달될 것 같은 명랑한 영감이 오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계시록 4~14장까지의 비밀을 영음으로 세 번이나 가르쳐 주는 소리를 듣고 네 번째는 들려오는 대로 기록해서 약 13년 동안 진리를 깨닫는데 들어가는 체험을 말하자면 극도로 더러운 부정을 피우는 사람을 수종들게 할 때, 조금이라도 불평을 두지 않아야 말씀이 밝아지는 체험,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불평을 두지 않아야 말씀이 밝아지는 일,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단 마음으로 순종할 때에 말씀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밝아지는 것은 내가 연구해서가 아니요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한 사람도 무시하지 말고 나보다 낫게 생각이 날 때 말씀은 저절로 밝아지므로 아무런 연구가 없어도 성경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았습니다.

 

  2.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순수라는 것은 성경 말씀의 본문 그대로 읽어서 만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알아 볼 필요도 없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도 말고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연구할 자격도 없고 가감할 권리도 없고 그대로 믿고 증거한다는 순수성을 가질 적에 강단에 서면 뜻밖에 새로운 말씀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체험을 받게 되며 조금도 세상의 말을 하지 않고서 성경 본문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그 시간에 만족함을 받을 말씀이 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한다는 미명하에서 그 말씀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다는 것은 나는 위험한 일로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기에는 성경은 그 한 절에서 독립성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음 읽어 나갈 때에 그 어려운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계속으로 변론을 하셨다고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는 목적을 말하고 다음에는 목적을 이루는 큰 뜻을 말하고 다음은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세밀하게 말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해석을 하여도 하나님 말씀을 말씀으로 해석한 만큼 세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독교에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여러 가지로 주석을 쓰는 일이 있지만 성경은 주석이 필요 없고 반드시 사람이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할 수 있는 완전한 말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3.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께서 불타는 사랑 속에서 당신이 타락한 인생을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해 주겠다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살려 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 것을 성경 본문에서 발견할 때 성경을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인간의 두뇌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의 비밀을 상상도 못할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이 마음에 올 적에 성경을 증거할 때 사랑의 불꽃이 붙는 역사가 마음에 있으므로 입의 말은 자동적으로 은혜롭게 나오면서 듣는 편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이 있게 됩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직접으로 체험할 말씀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그 말씀을 체험하게 될 때 말씀이 내 생활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 있게 되므로 체험적인 설교가 있는 동시에 성경을 바로 증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성경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 문제이며 자기의 어떤 실력이나 웅변이나 학설은 아무런 효과를 주지 못합니다.

 

 

【문】42. 기독교가 지금 와서 새로운 번역이 나와야 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답】기독교는 번역을 따라 가는 종교는 아닙니다. 만일 기독교가 금일에 부패되는 것이 성경 번역이 잘못 되어 부패해졌다고 볼 수 없고 성경 본위를 떠난 신학설이 교회를 망치는 것은 그 신학을 받은 자들이 성경에 무식하고 영계가 밝지 못하므로 잘못된 신학설을 가지고 강단에 설 때에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진리를 잘못 증거하는 강단에 역사가 나리지 않으므로 부패한 것입니다.

  오늘에 성신의 역사가 없이 성경을 번역하다가 오히려 마귀의 세력이 번역을 끼고 들어올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신,구약 성경만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금일에 구교와 신교가 합해서 다시 성경을 번역해야 될 기독교라면 루터 종교개혁에 대하여 큰 의문이 될 일입니다. 만일 루터가 성경을 잘못 번역했다면 루터 종교개혁은 오히려 교회를 망쳐 버린 것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나는 기도 가운데 생각하는 바는 이제 와서 구교와 신교가 합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고 이미 들고 있는 성경을 바로 알아서 완전 무장을 하는 일에 종들은 전력을 둘 때라고 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신 떠난 사람이 기록한 신학설, 성신 떠난 사람이 번역하는 성경책, 성신 떠난 사람들의 다수 가결된 일입니다. 신학도 번역도 가결도 성신이 떠난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마귀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순금 등대 교회는 인간의 힘이나 능으로 되지 않고 여호와의 신으로 되어야 합니다. 나는 금일에 와서 우리 기독교가 필요 없는 일에 성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문】43. 성경을 기록한 목적과 성도의 할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성경이 있기 전에도 성도적인 생활이 있었지만 성경을 쓴 목적은 성도들이 단체적인 행동을 할 때부터 기록했다고 봅니다.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때까지도 완전한 성경이 없이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체적인 나라를 이루기 시작할 때에 신정적인 국가가 시작된 것이 성민의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민의 나라에 모든 법을 직접 모세에게 명령하여 기록한 것이 모세5경이라고 합니다. 이 성민에게 확실한 역사를 기록하도록 하는 동시에 확실한 법을 세워서 신정 정치의 나라를 세운 것이 다윗 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제사를 드려도 법대로, 성전을 지어도 법대로, 모든 정치를 하나님이 가르친 법대로 해 나갔으므로 성민이라, 성산이라, 성전이라 하는 말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이 종교는 성민적인 종교로 세웠던 것입니다. 성민 외에는 이 종교를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장벽이 이방과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네 성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사사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등의 역사책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운 법을 절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남의 나라보다도 용서 없이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신정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법은 한 몽학적 교훈에 지나지 않았고 그 나라에 거룩한 성도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일이 있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자들이 성민에게 박해를 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들은 목숨을 바치고 자기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러한 종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앞으로 될 일을 묵시로 받아서 책을 기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책은 그 민족만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적인 예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그 시대 사람들은 인정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 하면 첫째가 예루살렘이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한다는 말이 있고, 또는 동방 파사 왕 고레스가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한다고 했으니 하나님을 공경하는 나라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한다는 일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일을 생각할 때에 그 하나님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으랴 하는 것이요, 또는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나라 사람이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한다는 말도 그 시대 사람이 다 반대했던 것입니다.

  또는 선지들이 기록한 글은 메시야가 탄생할 것과 천하 모든 족속이 다 그를 믿게 될 것과 인간 종말에 가서 이스라엘 말기와 같이 되는 일이 있는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천하 사람이 다 복을 받아 새 시대로 가는데는 아무리 이스라엘이요, 야곱이요, 시온이라도 부패한 자는 다 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부패한 이스라엘이 공연히 자기네만 복을 받는다는 교만한 사람들로 선지들이 받은 묵시를 오히려 자기네를 무시하는 글이라고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의 글대로 예루살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될 때에 선지서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남은 자들이 선지들의 예언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고 조상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기도할 때에 몇 사람의 간곡한 기도로 예루살렘이 회복될 때에 권리를 잡고 다시 다윗 왕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세계적인 대 종교가 이루어질 예언의 역사가 되고 완전한 구약 성서가 기록된 것 뿐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데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서 너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고 창12:1~3에 말씀했고, 이삭에게도 나타나서 창26:4에 말씀했고, 야곱에게도 창28:13~14에 너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으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된 사람들에게 선지를 통하여 언약의 말씀을 세울 때에 모든 나타난 증거까지라도 다 앞으로 세계적인 구원과 심판에 관한 표적과 증거로 세우는 동시에 모든 민족이 다 그 성경을 보고 복을 받도록 기록한 책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기독교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여 교회를 세운 것 뿐이요, 이제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가 전체로 이루어지는 환란과 재앙과 심판 속에서 교회로서 남게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기독교의 완전 구원, 완전 축복,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 전서는 왜 있느냐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4복음을 쓴 목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인 줄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요20:30~31), 사도 행전을 쓴 것은 사도의 역사를 전해준 것이요, 편지를 쓴 목적은 십자가를 믿으므로 다 하나같이 한 지체가 되고 후사가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신앙의 도리를 바로 지키고 생활 도리를 바로 지키면서 성신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선지서에 기록한 말씀대로 인간 종말에 환란 재앙이 올 때 미혹 받지 말고 심판을 받지 말고 재림의 주를 영접하여 새 시대의 지상 축복을 받을 성도들에게 주신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와 계시록과에 목적이 같고 신약 전서의 4복음과 편지서는 심판과 새 시대가 오기 전에 세계적으로 교회를 세울 때에 예수 믿고 성신 받고 일하다가 영혼이 구원받는 범위 하에서 전하는 천국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는 말씀이 4복음이요, 사도들이 성신의 감화로 쓴 것이 편지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은 예수 믿고 성신 받은 자로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가지고 교회에 끝을 맺는 역사를 해야 할 때가 즉 이때라고 봅니다.

 

 

【문】44. 기독교가 크게 위기를 만났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하느냐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금일에 기독교가 위기를 만났지만 실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보면 큰 역사와 큰 축복이 올 시기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인도할 때에 극도로 어려운 난제를 당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더 영광을 받고자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제 기독교가 위기가 온 것은 어떠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 기독교에 큰 개혁이 일어날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이 개혁은 하나님 편에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다는 것은 성경에 예언의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일이로되 금일에 기독교가 개혁될 일은 선지서와 계시록에 구체적으로 말씀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 개혁은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 있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소위 W.C.C라는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이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면 전쟁이 일지 않도록 해야만 된다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세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피차 서로 이해를 잘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의 두뇌로 연구해 보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교회이니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구약 교회가 성민적인 종교로써 세계적인 새로운 출발을 할 때에 유대교가 기독교로 개혁이 되어야 할 때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 놓은 것인데 이 역사를 반대하던 유대교는 망하고 기독교는 세계적인 대 확장을 보았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종교가 세계 평화왕국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가 나와야만 될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사명보다도 하나님 말씀대로 환란이 와도 그 환란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즉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시대를 따라 가르칠 말씀이 따로 있고 일어날 역사가 따로 기록되어 있고 또는 세계 만국을 다 그 말씀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인데 이날까지에 이루어진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출생과 전도, 십자가 부활, 성신 강림, 세계적인 종교가 된 일, 이것이 성경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면 이루어진 일이 성경 글자 그대로 되었다면 이루어질 말씀도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위기라는 것이 성경을 자세히 알고 보면 기독교는 때를 만났다고 봅니다. 이 때 기독교로 말미암아 새로운 평화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 인간이 볼 때 북방의 세력을 큰 문제로 삼고 정치인이나 종교인들이 협상이니 평화이니 하면서 인간의 정치적인 두뇌와 철학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일이 협상과 평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안다면 북방 세력이 하등 우리와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종교 지도자로서 이 시대에 할 일을 하느냐가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종교 지도자는 협상적 평화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망할 행동이라고 성경은 가르쳤고 북방을 무서워도 말고 타협을 하지도 말고 이 때에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더 크게 받아서 북방 세력이 하나님의 역사 앞에 떨면서 도망을 가고 굴복을 당하게 한다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할 일은 종교 지도자들이 큰 개혁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볼 때는 기독교가 지도자들이 이러한 상태로 나간다는 것은 성경과 거리가 너무 멀어진 느낌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사상, 정신, 생활이 성경과에 거리가 멀 때에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고 보니 교회 안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있다는 정도의 교회요, 실지는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될 때에 기독교는 자동적으로 시대적인 조류를 거스리지 못하고 그 물결에 흘러 떠내려가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웅장한 나무라도 뿌리가 없는 나무는 물결에 떠내려 갈 것이고 아무리 작은 고기이지만 생명이 있는 고기는 자유로운 활동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진리의 뿌리가 깊지 못한 자는 물결을 따라 세속주의로 협상주의로 흐르게 될 것이고 아무리 작은 자라도 이 시대의 진리를 깊이 알고 새로운 힘을 받은 자는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지도자들은 좀더 깊은 영계 체험이 있어야 하고 좀 더 깊은 진리의 지식이 풍부하여 영계로부터 오는 새 힘을 받고 완전한 진리의 변론적인 권세 역사가 있어서 오히려 이 시대에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 두고 지도자 개혁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소위 신학교라 하는 기관이 깊은 영계를 모르고 깊은 성경의 지식이 없이 쓸데없는 철학이니 어학이니 신 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또는 바짝 마른 정통 신학이니 하면서 횡설수설하지 말고 지금은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영계가 있어야 하고 성경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이 시대 사람에게 각성을 주고 감화를 주는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할 일은 종교 단체 문제입니다.

  현 종교 단체는 너무나 형식적이요 실지 사상적으로 진리적으로 사랑으로 뭉쳐진 단체는 못된다고 봅니다. 현 종교 단체는 소위 교파라는 관념 하에서 과거에 내려오던 습관 또는 의식, 교파의 법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처음에는 신령한 사람들이 교파 초월의 양심에서 시작되었고 물질을 초월한 영계 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장구한 시간이 흘러 올 때에 그들이 가졌던 신앙과 양심과 영계를 떠난 자들이 다수가 되고 보니 그 교파의 세력은 신앙 양심과 영계를 떠난 자들이 좌우하게 되므로 실지는 단체가 된 것이 아니고 양심을 가진 자가 괴로워 할 일, 영계를 보존하는 자가 오히려 압력을 받을 현실에 처했다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교파를 초월하여 같은 신앙 양심에서 같은 영계에서 괴로움을 느끼고 압력을 받던 종들은 총 궐기하여 십자가 중심에서 마음이 뭉치고 신령한 영계에서 오는 힘을 새로이 받아들이는 단계로 들어가야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알곡은 알곡끼리 모여야 될 추수기라고 봅니다. 왜냐 하면 쭉정이를 불태울 시기가 왔으니 알곡은 알곡끼리 모여야만 그 불의 피해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앙과 영계가 떠나면 아무런 일을 한다 하여도 불탈 쭉정이밖에는 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할 일은 종교 교육 문제입니다.

  이날이때까지는 부분적인 성경을 가지고 교육을 했지만 지금은 성경 전체의 완전 교육이 있어야만 될 때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 시대 사람에게 만족을 주려면 성경 전체의 지식을 가지고 시국 난제를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완전한 소망을 확실히 가질 수 있는 지식을 성경에서 가르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만일 기독교가 이 시대에 난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진리가 없다면 이 시대에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깨달은 바에 의하면 기독교는 이제부터 완전한 지식을 성경에서 가르치고 완전한 구원의 확실성을 가지는 동시에 완전 승리 평화 왕국을 이루는 진리 운동으로만이 난국을 돌파하고 나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 교육을, 완전한 구원이 영만이 아니요 살아서 새 시대 가는 진리를 정확히 가르칠 때가 이때이니 모든 성도들에게 새로운 교육을 해야될 것입니다 말로만 반공을 말하지 말고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교육이 있으므로 만이 완전한 반공 투사의 역사를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기독 신자들이 성경이 햇빛같이 밝아지도록 교훈 해야만 앞으로 오는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2. 종교적인 큰 각성을 주는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이제 제일 큰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선지는 은혜시대 역사는 이방의 빛이 된다는 말과 교회가 확장될 것과 모든 나라 백성이 주님의 교훈을 앙망하게 될 것을 사42:1~8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말씀은 전부가 기독교 종말에 일어날 역사를 말할 적에 동방 땅 끝에서부터 역사가 일어나므로 대적이 떨게 되고 세계 열방이 큰 각성을 받게 될 일과 하나님의 종을 들어서 모세 때보다도 더 강한 역사가 일어나므로 회개할 자는 회개를 시켜서 구원하되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날까지는 그 영혼을 구원해주는 일에 목적을 두는 역사이지만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영과 육을 아울러 환란과 재앙이 올 때 구원해 주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훈 중에 제일 큰 일은 지상 왕국을 목적하고 말할 때에 과거 다윗 왕국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는 세상 종말에 일어날 예언이 되는 동시에 많은 선지를 통하여 빠짐없이 심판과 새 시대를 가르쳤으니 우리 인생은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할 때가 이때라고 봅니다.

 

 

【문】45. 금일에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누구를 따라 가며 누구의 말을 믿어야 될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을 어떠한 방침으로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답】이것이 큰 문제라고 봅니다. 소위 교역자를 기른다는 신학교가 더 복잡해졌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 40년전 때만 해도 평양 신학이라면 귀한 종들을 많이 길렀다고 봅니다. 금일에 와서 신학교도 많고 신학생도 많고 교회도 많아졌지만 오히려 교인들이 하는 말이 우리 목사님도 은혜를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상태를 볼 때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성경을 든 지 40년 되는 오늘에 성경 본문을 그대로 읽어서 극도로 밝아지는 체험을 받았고 성경 본문만 가지고 얼마든지 상대편이 만족하도록 변론할 수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성경은 현 신학 박사들의 주석이 필요 없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성경 본문에 완전한 변론을 빠짐없이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금일에 와서 신학적으로 무슨 신학, 무슨 신학 할 필요조차 없다고 봅니다. 또는 내가 생각하건데 성경은 이렇다 저렇다 할 수도 없고 또는 성경은 갖다 붙일 탓이라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께서 어떻게 행하시겠다는 말씀을 선지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시고 그대로 역사하는 신의 역사를 받으므로써 인격적인 생활의 체험을 받게 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시국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으므로 해결될 것을 믿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오는 것이 예언대로 왔다면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결해 주겠다는 것도 예언대로 될 것을 믿을 때에 난국을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인격도 생활도 신의 역사로 완성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때에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 본문이 햇빛같이 밝아지도록 증거해 주는 일과 또는 그들에게 새로운 신의 역사를 체험 하도록끔 인도해 주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하려면 우리 자체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는 듣는 대로 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즐거움을 삼는 자가 될 적에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잘못된 노선을 가면서 자기의 영계를 옳은 줄 생각한다는 것이 취한 자의 생활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종교를 지도할 때 그 교인들의 인격을 누구 말이나 듣고 따라 가는 정도에 있지 않게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 인격이 신의 체험을 받아 용사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있지 않으면 앞으로 교회는 도저히 거짓 선지의 더러운 영의 미혹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종말의 심판기에 형편을 빠짐없이 기록할 때에 본문만 읽어 가지고도 충분히 미혹의 영을 막을 수 있게끔 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도의 교훈은 이미 흑암에 빠진 죽은 영들을 살려 천국에 들어가도록 목적을 두고 증거했다고 보며, 선지서와 계시록은 극도로 영계가 혼란하고, 교계가 혼란하고, 정계가 어지럽고, 인심을 수습할 수가 없이 악해지고, 경제가 혼란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도저히 앞일을 생각할 때에 살길이 없는 무서운 혼란이 올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히 바로 서서 나가도록 한 말씀이 계시록이요, 선지서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시국이 올 때에 선지서를 다시 예언하는 역사로만이 많은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할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문】46. 지금 완전 무장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 무장이 안 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답】완전 무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싶은 마음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 무장이 되는 일에 그 요소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 완전 무장은 하나님께로 직접 받는 종도 있고 또는 완전 무장을 받은 종을 통하여 받는 종도 있을 것입니다.

  완전 무장을 하나님께로 직접 받은 종은 많은 사람이 못되고 대표적인 사람이 하나님께 받으므로 그 종을 통하여 받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 무장을 시킨 종을 통해서 내게도 그 무장이 먼저 받은 자와 같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자기가 독립적으로 무엇을 따로 연구해 보려는 것이 없어야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법의 하나님이니 일단 한 종에게 주신 다음에 그 종을 대표로 세운 이상 그 종의 사명을 하나님께서 침범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군대 훈련소에 훈련 소장을 세운 이상 그 소장을 세운 대장이 소장의 맡은 일을 가서 자기가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세에 완전 진리 무장을 하는 일도 한번 대표적인 종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무장시킬 책임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둘째 : 자신이 지켜야 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 한번 작정한 바가 있으면 아무런 일이 닥쳐오더라도 사명적으로 작정한 일은 죽어도 그 사명을 위하여 죽는다는 결심 하에서 변치 않고 진행해 나갈 때에 하나님 편에서는 진실이라는 것으로 인정하고 무조건 실수가 있다하여도 완전 무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작정한 일을 진행치 않고 변하게 되면 하나님 편에서 불신으로 취급이 된다면 있는 것도 빼앗아 가고 아무 것도 주지를 않고 사명이 옮겨가는 것이니, 완전 무장을 받으려면 진실이라는 인정을 하나님께 받기 위하여 한번 작정한 것은 변치 않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게으르지 않아야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완전 무장을 주는 목적은 환란이 박두할 때에 환란 가운데서 남은 종이 되게 하기 위하여 완전 무장을 주는 것인데 이 무장을 받고자 하는 자가 게으른 자가 된다면 하나님 편에서 그 사람을 들어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 무장을 받고도 게으른 자가 된다면 할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절대로 게으르지 않고 순종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까불어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 무장을 받으려면 적은 일에도 절대 게으르지 말고 철저히 열심을 내어 순종할 때에 하나님 편에서는 쓸 수 있다는 인정이 있게 되므로 무조건 완전 무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 무장을 받으려면 작은 일에서라도 자기 책임을 다해 보려고 하는 열성이 있어야 됩니다.

 

 

【문】47. 필요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도 필요 없이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답】이것을 마귀의 압력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란 놈은 사명자들을 어떻게 하든지 필요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한 방침에서 다음과 같이 시험을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 필요 없는 말을 하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은 대부분이 입에 말이 수다한 편을 통하여 오는 시험입니다. 입을 놀리지 않고는 참을 수 없으리만큼 오는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말을 해 가지고 많은 사람이 그 한사람 때문에 헛된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어 놓는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을 막으려면 첫째는 말하는 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려는 데서 하나님께 입이 더러운 것을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런 사람이 말을 하더라도 듣지도 말고 말할 시간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 공연히 머리가 복잡하게 하는 시험이 마귀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필요 없는 생각을 할 때 들어오는 시험입니다. 필요 없는 생각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머리가 예민한 사람에게 들어옵니다. 무엇을 볼 때에 쓸데없이 판단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자의 쓸데없는 판단으로 많은 사람이 참된 종을 의심하게도 되고 또는 필요 없는 생각들이 들어오는 일이 있게 되므로 한 사람이 머리가 복잡해져서 시끄럽게 되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다 시끄럽게 되어서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기도도 안되고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되고 공연히 시간만 보내게 됩니다.

  이러한 시험을 막으려면 머리가 예민한 사람이 주의해서 하나님 앞에 완전한 영감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며 혹 쓸데없는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이런 사람은 용납하지 말고 깨닫도록 해주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큰 죄가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죄인 줄 알고 필요없는 생각을 물리치는 일에 전력을 두어 기도하므로 그 압력이 물러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 육적 안락을 연구할 때에 사람에게 공연히 모든 일이 다 귀찮게 되는 시험이 옵니다.

  이러한 시험을 받은 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제일 좋게 생각이 들어옵니다. 대부분이 이런 시험은 감정적으로 노는 사람들에게 이런 시험이 들어옵니다.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맥이 풀리고 기분이 좋으면 힘이 나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까지도 하던 일을 못하게 되고 열심으로 일을 하려해도 이런 사람들이 끼워져서 일을 속속히 진행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시험을 막으려면 항상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오는 감화를 정상적으로 받기 위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이 많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혹 이러한 사람이 있다 하여도 여기에 치우치지 말고 용기있게 나가는 박력이 있어야 됩니다.

  넷째 : 큰 일을 기대하는 허영심을 없이 하여야 됩니다.

  대부분이 이러한 시험은 좀 영웅적인 인물이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이 많이 시험으로 옵니다.

  예수님도 세계를 구원하는 일을 할 때에 인간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목수 생활에서 또는 노방 전도, 개인 전도, 병자 방문 전도를 하셨는데 공연히 큰 역사를 기다리고 큰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나사가 넘은 생활이니 이러한 생활에는 공연히 시간을 허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한 날의 괴로움을 그날에 족한 줄 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영웅심을 가진 사람이 되지 말고 매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대로 작은 일에 충성을 할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므로써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완전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허송하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나 양심대로 시간 시간 움직여 나간다면 모든 일은 열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문】48. 공연히 집안이 복잡해지고 합심이 안되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순종을 하지 않고 날마다 공연히 어지러워지는 일이 무슨 원인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성도의 가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첫째 : 가모가 되는 사람이 항상 하나님께 기도로써 새로운 영감을 받으면서 적은 일 하나라도 경솔히 하지 않고 마귀의 시험이 들어 올까봐 조심하는 마음에서 가정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기도의 어머니가 지혜롭게 움직이는 가정에서 어거스틴 같은 성자가 나왔고, 아브라함 링컨 같은 위대한 정치 혁명가가 나왔고, 루터 같은 종교 개혁자가 나왔고, 웨슬레 같은 부흥사가 나왔고,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본다면 기도하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 가장된 호주의 굳센 마음에서 엄격한 교훈과 활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더라도 아담이 엄격한 처리를 해 나갔던들 세상은 이러한 비극을 이루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가정은 세계를 움직이는 본부인데 본부의 주동자가 죄와 싸우는 힘이 약하다든지 또는 세상의 어떤 사람을 대할 때에 약해서 흔들리는 자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 가정은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됩니다.

  셋째 : 하나님의 성신이 함께 하는 가정이 되지 못할 적에 자녀까지도 다 사단의 기계가 되고 맙니다. 성신이 함께 하는 가정이 되려면 언제나 말씀에 떠는 가정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노아의 가정은 말씀에 떠는데 합심이 될 때에 세계 인류의 모든 일에 모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큰 일은 가정에 성신이 역사하느냐, 사단이 역사하는냐는 문제가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이 될 것입니다. 가정은 언제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성신님이나 같이 움직이는 가정이 되어야만 새 시대를 이루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깊이 생각할 일은 가정이 누구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느냐 하는 것을 깊이 깨닫는 지각이 있는 것으로 서로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을 때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신의 역사는 같이 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여도 가정 식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면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오히려 옳은 것으로 보지 않고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될 때에 역효과를 나타내므로 오히려 기도를 등한시하는 식구들이 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많이 하는 비밀이 그 식구들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인정이 된다면 안 되는 것이니, 기도하는 사람은 사생활이 덕이 되어야만 동거하는 식구들에게 감화를 주는 것입니다.

 

 

【문】49. 지금 교회에 영계가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서 영계를 어떻게 하여야 조금도 혼선이 없이 완전 영계로 들어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영계라는 것은 인생 자신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부터 말씀대로 역사하기 위하여 영계를 좌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위에서부터 영계를 좌우하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 율법시대의 영계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영계를 움직일 것을 언약의 말씀으로 세상의 사람이 알도록 여호와의 말씀이 서책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말씀 하나를 정확히 인간에게 알도록 기록해 놓도록 하는 것을 목적했기 때문에 은혜를 나리는 일이나 교회가 확장되는 일은 있지를 않았고 다만 선지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감동 감화해서 그 시대의 선민에게 경고의 말을 하는 동시에 완전 계약의 다림줄의 진리가 인간에게 완전히 전할 수 있는 문서를 성립시킨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는 영계가 복잡한 일은 없고 선지들이 고독을 느끼고 핍박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둘째 :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 시대에 예언한 말씀을 이루는 역사를 할 때에 첫째는 마리아 한 사람에게 성령으로 잉태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역사했고 예수님이 삼십 세가 될 때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성신이 예수님께 비둘기 같이 강림하여 역사하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구주라는 것을 이적과 표적으로 나타나서 완전한 복음을 만방에 증거할 수 있는 증거가 예수 행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일반에게 성신의 역사가 나리는 때는 아니었습니다. 바리새 교인들의 박해가 있었지만 영계가 혼란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때는 예수님 한 분이 역사하다가 충성된 증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3일만에 부활하여 40일만에 승천하시어 10일만에 성신이 강림하여 일어난 그 역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들이 회개하고 중생을 받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내려오는 중 중생의 역사가 강하지 못하고 속화되는 때에 그때 그때 중생의 운동을 일으키는 영계의 신령한 사람이 나타나서 기독교가 없는 지방으로 새로이 개척을 하는 역사가 있게 되어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지금까지에 큰 혼란이 있는 것은 아니로되 약한데서 다시 강하게 일어난 것뿐입니다.

  셋째 : 현재에 영계 혼란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상 없던 혼란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마귀 권세를 개방시켜 기독교를 시험해 보는 때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상 왕국을 이루는 역사는 마귀 권세를 개방시켜 모든 사람을 시험을 해보고 시험을 다림줄의 진리로 이긴 사람에게 지상의 안식 축복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혼란한 영적 미혹이 오는 때에 다음과 같이 하므로 올바른 영감과 신앙의 노선을 가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수 있습니다.

  ① 완전한 권세의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죄인들에게 무조건 주는 은사의 영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시대에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살리는 역사이므로 은사 영감이었으나 피 값을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의 영감은 권세의 영감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따라서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은혜 시대 진리는 속죄 운동의 영감이요 진노의 날의 영감은 심판 권세의 영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따라 오는 권세 영감을 나리는 것을 하나님의 인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따라서 오는 역사이므로 어느 종이나 이 진리를 완전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이 될 때에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② 말씀에 떠는 심정으로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얼마든지 말씀을 혼선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권세를 받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없애는 심판의 다림줄의 말씀 권세가 아니고는 도저히 마귀의 흑암권세를 물리치고 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가지고 종들을 하나되게 하는 역사이므로 어느 종이나 말씀이 혼선되면 다 흑암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③ 완전 개조의 인격을 받아야 됩니다

  은혜시대는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만은 중생 받은 시간에 지옥을 면하게 되는 역사이므로 몸이 완전 개조를 받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몸이 살아서 변화 승천할 때는 마귀의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몸으로 신 창조적인 개조를 받은 자만이 환란에서 남은 종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강권 역사가 하나님의 종들을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주므로 완전 승리의 열매를 맺는 종이 되게 하므로써 재림까지 촛대교회를 지키게 합니다(사43:1~7).

  끝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역사는 모든 사람이 다 직접 하나님께로 받는 것이 아니고 대표적인 사람에게 완전 영감, 완전 개조, 완전 변론의 역사가 임하므로써 모든 종들이 다 그 종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같이 승리하는 단체를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큰 전쟁이 났는데 전쟁을 지휘하는 대장에 의하여 모든 군대는 승리를 이룰 수 있는 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문】50. 시국이 급한 줄 알면서도 기도 힘이 나지를 않고 점점 가라앉는 일은 무슨 원인입니까?

【답】이것은 영계가 달라진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흑암을 개방시켜 어느 종이나 말세에 사명이 있는 종들을 대항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종들로 하여금 재무장을 시킬 때가 왔기 때문에 어느 종이나 다 새로운 무장을 받아 가지고 일할 때가 왔으므로 과거의 역사는 걷어 가고 새로운 역사를 나리고자 할 때에 마귀로 하여금 자유로운 행동을 하게 하되 종말에 권세의 종을 세워서 그 마귀를 물리치는 역사를 하게 하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새로운 권세 역사를 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로운 역사를 받아야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1. 말씀 권세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날까지 마귀 흑암이 물러간 것은 주님께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므로 누구든지 그 피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게 될 때에 죄에서 해방을 받으므로 죄의 권세를 잡고 있던 마귀는 물러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때가 아니고 새 시대로 인도하기 위하여 예언대로 환란, 재앙이 오게 하고 예언대로 보호가 있고 예언대로 심판이 있고 예언대로 새 시대가 오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때는 예언 권세의 역사로만이 마귀의 흑암이 물러가기 때문에 예언 권세의 역사를 받은 종이 아니고는 흑암을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2. 절대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순종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시대의 회개라는 것은 자기가 계명에 의한 죄를 회개하면 율법을 도말한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로 죄를 사함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의 흑암으로 시험해 볼 때는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도 환란에서 보호받고 새 시대 갈 사람들에게 지킬 예언이므로 그 예언을 바로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흑암이 물러가고 또는 말씀을 받는 자들이 예언의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를 받게 되므로 만이 새로운 역사를 권세 새 힘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여도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든지 반대하는 경우에는 흑암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아담, 하와가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마귀 흑암에 들어간 것이나 같은 것이니 지상에서 아담, 하와가 잃었던 에덴 축복을 다시 받으려면 예언의 말씀을 지켜야만 됩니다.

 

  3. 기도보다도 실천이 앞서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열매를 맺는 단계에 들어가는 때이니 철저한 회개가 있는 동시에 철저하게 싸워 나가는 힘이 강하여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려면 강하게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은혜를 받고도 강하게 싸워 나가는 생활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그 영계는 가라앉아서 잠든 상태로 들어가고 맙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마귀가 침투해 올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귀 권세라는 것은 이전에는 죄를 지은 사람만 점령했지만 지금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라도 시험해 볼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강하게 싸워 나가는 영계가 아니라면 자동적으로 마귀 흑암에 눌리게 됩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얼마든지 적군이 침투해 들어올 권세가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이 싸워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는 동시에 시국 난제를 돌파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 싸워 나가야만 됩니다. 이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압력에 눌려 영계가 가라앉는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장을 갖추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문】51. 금일에 기독교가 전부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각 교파가 생겼는데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지금 무조건 자기네가 정통이라고만 고집한다는 것은 흑암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똑똑히 모르면서 남을 무조건 그르다고 하면서 자기만 옳게 믿는다고 생각이 나는 자체가 교만이니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물리치고 그 예배와 기도를 받지 않으시므로 아무런 응답도 없는 예배를 드리며 기도한다는 것은 실지 흑암에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성경 전체를 바로 알고 보면 십자가의 도를 바로 믿는 신앙이 있다면 다 하나같이 인정하되 성경을 모르는 것도 하나같이 취급하고 영계가 하나같이 흑암을 거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교파적인 관념을 떠나서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는 신앙 양심에서 이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을 하나같이 깨닫게 될 때에 성경 전체를 다 바로 알게 되므로 진리 통합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소경 세 사람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다리를 붙들고 기둥 같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배를 만져보면서 바람벽 같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코를 쥐고 큰 구렁이 같다고 하다가 눈을 번쩍 뜨게 되어 본다면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는 사람은 없고 서로 자동적으로 코끼리를 볼 때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하나같이 알 것뿐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밝히 아는 진리의 눈을 뜨게 될 때 자기 해석이 옳다는 생각은 저절로 없어지고 어떻게 되어서 새 시대 간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하나같이 미혹을 받지 않고 남을 때에 자동적으로 그 교회가 촛대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은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고 짐승의 표를 받고 심판을 받는 자와 참된 증인의 말을 듣고 재앙 심판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문】52. 기독교 신앙을 양심대로 바로 지키려면 현 사회의 모든 일과는 전부 거리가 멀어져야만 될 형편이니 이것을 어떻게 하여야 신앙 양심을 살려 가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촛대교회를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답】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세상에 염려와 향락에 마음이 둔하여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성도의 생활을 철저히 해 나가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만 될 것입니다.  

 

  1. 항상 하나님께로 오는 새로운 영감을 받는 일과 항상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새로운 힘을 얻는 일과 항상 주의 천사가 같이 해 주는 생활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일이 축복 속에서 기적적으로 되어 가는 일이 가정에 있기 위하여 가정 제도를 철저히 개혁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는 혁신적인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모든 생활 제도를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는데 가정이 전력을 두듯이 우리는 앞으로 오는 환란과 재앙을 피하고 새 시대에 가는 진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희생적으로 싸워 나가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3. 사상적인 문제에서 모든 일을 해 나갈 때에 어떤 도덕적이나 의리적이나 또는 이기적을 떠나서 사상 하나를 바로 보존하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초자연적인 신비에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때 보다도 사상을 보시고 사상에 따라서 축복도 나리고 재앙도 나리기 때문에 사상적인 투쟁이 철저해야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예언의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승리가 있고 새 시대 축복이 올 것을 바라보는 사상입니다.

 

 

【문】53.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이 기독교인의 저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떠한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말인지 복잡한 문제입니다. 어느 신자든지 성경을 들고 자기도 성서적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어떻게 싸워 나가는 것이 옳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되겠습니까?

【답】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떻게 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할 때에 은혜 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교훈하실 것을 말씀했고(사42:3~4), 환란과 재앙이 올 때에 행하실 일은 하나님이 직접으로 새 일을 알려 주되 어떻게 행하므로 환란과 재앙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 영광을 누릴 것을 가르칠 때에 직접으로 선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42:9, 34:16).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시대에는 사도들이 기록한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믿으면 은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요 마지막 환란과 재앙이 올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들에게 전해준 말씀,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교훈을 선지서 그대로 읽어서 믿을 때에 계시록과 선지서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이 역사하므로 그 역사를 힘입어서 보호를 받게 되고 승리하게 되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니요 그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보다도 그 하나님의 교훈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서는 하나님이 행할 책임이 있는 동시에 우리는 글자 그대로 될 것을 믿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온다 하여도 무소불능의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정한 때가 되면 홀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잘못된 신앙 노선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적인 법이 되는 것을 분별할 줄 모르고 혼선시키는 일입니다.

  유대교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던 민족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므로 이방 민족은 은혜 시대에 복을 받는데 은혜 시대에 오히려 망해 버린 것이 유대 나라였습니다.

  이제 기독교가 은혜시대와 환란시대에 대한 진리를 분별을 못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계1:2~3, 계22:6~7, 18~19을 보면 예언을 지켜야만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은혜를 받았다 하여도 예언을 지키지 않는다면 환란과 재앙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2. 말씀은 그대로 읽어서 은혜 받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은혜 받지 못하고 읽을 때에 마음이 공연히 뒤숭숭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 틈을 타서 마귀는 들어오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느 성경이나 본문 그대로 읽어서 그 뜻을 알게 되고 은혜를 받게 한 성경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볼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금일에 소위 성경 주석이니 해서 이 학설, 저 학설을 끌어 붙이는 것은 마귀의 미혹을 청해 들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이런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을 알고도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치 않을 적에 흑암에 빠지게 되어 모든 성경을 자기의 주관에 붙이게 되는 사람이 될 때에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생활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가시덤불에 뿌린 씨와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그 말씀 하나를 따라서 충성을 다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므로 그 성경이 자기 생활에 체험화 될 때에 모든 성경을 바로 깨닫는 영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54. 금일에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일꾼이 있지만 어찌하여 큰 역사는 없이 점점 교회가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는 원인은 무슨 이유입니까?

【답】언제나 큰 역사라는 것은 대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한 두 사람을 통하여 일어났다는 것이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역사적으로 나타난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교회가 많아지고 일꾼이 많아진 것은 사도적인 신앙을 가진 종들의 피 흘린 순교의 열매라고 봅니다. 그러나 금일에 순교의 사상을 가지고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소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 신학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신학이라는 것은 순교적인 생활에서 성신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그 생활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학적인 방면으로 흐르는 것이 시작되어 소위 신 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여러 가지 학설이 나왔는데, 이것은 부패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일이 있게 되므로 교회에 다수가 그것을 따라갈 때에 장구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교회의 주권을 그들이 잡게 될 때에 신령한 종들은 그 교권 아래서 활동할 수가 없게 되므로, 교회에 영적 지도가 미약해지고 소위 현실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과학적 문명을 따라가는 일이 있게 되어서, 교회가 과학을 초월한 것보다도 교회가 과학을 따라가는 영적 퇴보가 있게 되므로 현 교계는 영적 발전을 찾아볼 수 없고 유형적인 교회만 확장되었다고 보게 됩니다.

  둘째 : 교회가 강단이 속화될 때에 예배를 하나님이 받을 수 없으므로 형식에 불과한 예배를 계속할 때에 자동적으로 교회는 세속화되는 것이니 사람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을 받지 못하면 속화라는 것은 따라가는 것보다도 속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 가지가 진액을 받지 못하면 마르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마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강단에 선 종을 통하여 위로부터 내려오는 역사가 없을 때에 그 아래에 있는 교인들은 자동적으로 세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교회에 와서 맛보지 못할 때에 필연적인 열매가 세상에 있는 것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를 찾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 교회는 역사할 사명 가진 지도자는 부패되고 그 아래 있는 양떼는 신령한 것을 찾고 있으니 이 교계는 어떤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아무런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 방침이 성서에 어긋난 데로 흐를 때에 하나님은 그 일에 축복을 하지 않고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니 사람의 방침에서 되는 교회는 아닙니다. 사람의 방침으로 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의 방침으로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승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현 교회가 소위 교권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방법을 가지고 남을 이용하려면 그 시간부터 하나님은 역사를 걷어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이용하는 것 뿐이요 사람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대적이라고 봅니다. 현 교계에 너무나 사람의 방침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보다도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속히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종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한데로 뭉쳐지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

  넷째 : 기독교는 이 시국에 일할 사명이 무엇인 것을 성서에서 바로 알아 멸공 진리 운동을 하는 일이 있으므로 만이 큰 역사가 일어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성경에 큰 목적은 개인 천당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빛이 이방의 빛이 된 다음에 북방으로부터 마귀의 흑암의 세력이 올 것을 말했고 그 흑암이 없어지는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말씀의 빛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동시에 북방으로 오던 흑암의 세력은 말씀의 빛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시대가 동방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난 빛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으니 지금 유물론 공산 사상은 북방으로부터 오는 흑암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멸공 진리의 봉홧불을 높이 드는 새로운 종들이 나오므로 모세 때 보다도 칠 배나 강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문】55. 지금 우리 나라는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 막막한 일이 많이 있는데 우리 기독교 신자로서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지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과거에는 모든 문제가 정치나 종교나 큰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는 전쟁도 지금같이 사상적인 문제가 결부되지 않았으므로 종교인과에 큰 관계가 되지 않고 또는 아무런 세상의 정치가 기독교인의 생활과에 큰 문제가 되는 점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우상 종교를 숭배하는 왕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지금 같이 기독교를 집어먹는 사상을 가지고 학설적으로 대립하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위 공산주의라는 것은 한 민주 국가의 정당만도 아니요, 일개 국가의 한 정부만도 아니요, 이것은 사상적인 대립이 기독교에 정면 충돌이 되는 사상을 가지고 세계에 과학적인 지상 통치 공산 국가를 이루므로 다시 전쟁이 없는 시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작은 우리 나라가 아시아 대륙에 동방 땅 끝 반도 중에도 남한에 불과 천리 미만에 길이를 가지고 북에는 대륙을 공산 국가가 점령했고, 망망한 바다만이 둘러 싼 위치에서 우리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 나라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에 새로운 역사는 동방 땅 끝 바다 옆에서부터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죽어 천당의 진리로 난국을 돌파할 수 없고 성도의 나라가 지상에 이루어지는 진리 운동을 할 사명이 우리 나라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 이렇게도 어려운 난제가 많게 된 것은 이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역사가 일어 날 때가 온 것입니다. 모든 선지가 동방 땅 끝의 사람이 극도로 두려워할 일, 겁날 일, 가련한 일, 빈핍으로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이 올 때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올 것을 이사야41장에 말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는 모든 난제가 닥쳐 올 때에 그 난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 될 일도 이와 같이 된다고 한 것이 하나님 말씀에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우리 나라에 정치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만이 세계를 지도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은 이 나라 정치를 방관하지 말고 정치는 하나님의 진리로써 세계를 깨우치는 일에 큰 뜻을 두고 움직이는 일에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은 진리에 따라 오는 것이니 하나님이 보호하는 진리 운동을 해서 새로운 시대로 모든 사람을 인도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이 같이 하므로 세계 모든 민족을 깨우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 각성을 받은 성도들이 각 나라에서 우리 나라를 자기의 나라같이 사상적으로 알게 될 때에 우리 나라는 세계를 사상으로 지도하는 지도국이 되므로 사상적인 싸움에 승리하는 나라가 되어서 초인간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평화 왕국을 이루는 열매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정권을 잡는다는 것보다도 정치인들을 멸공 진리가 되는 말씀으로 깨우쳐 줄 책임이 있고 정치인들은 멸공 진리 운동을 적극 후원할 때에 이 나라 정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다음과 같이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 경제 문제가 축복 속에서 해결이 됩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에 유력한 성도들이 동방에서 나타난 진리를 깨닫게 될 때에 사상적으로 동방의 나라를 지지하는 동시에 물질까지 동방의 나라를 위하여 바치는 일이 있게 되므로 모든 문제는 성도의 축복 받은 물질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사60:8~9).

  둘째 : 북진 통일이 됩니다.

  이 역사는 아시아에 해방 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을 잠깐 동안 쳤지만 말씀대로 다시 해방을 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북방을 굴복시키므로 셈의 장막인 아시아는 완전히 공산 정권 아래에서 해방을 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지금 철의 장막 속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공산당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전부 우리 나라를 지지하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속았다는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요, 둘째로는 공산 정치만이 제일 옳다는 것이요, 셋째로는 기독교의 진리는 아편이라던 것이 다 허위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공산주의는 자동적으로 아시아에서 굴복을 당하게 됩니다. 단11:44, 계11:3이하와 모든 성경을 보면 북방의 세력이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도망을 간다고 하였고 짓밟힘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공산당이 말하는 평화 통일이 승리한다면 성경은 전부가 거짓말이 될 것이니 어찌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확실한 동시에 예언의 말씀이 조금인들 이루어지지 않을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아시아가 난국을 당한 것은 셈의 장막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증거라고 봅니다.

 

  4. 기독교인은 이때에 성도의 나라가 올 것을 확실히 성경에서 알고 천국을 목적하는 것보다도 지상의 성도의 나라가 오므로 하나님 말씀에 기록한 진리가 다 이루어지는 역사를 순종해서 싸워 나갈 때에 진실한 자로 승리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평화로운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문】56. 지금 많은 신자들이 각자가 자기네 영계가 옳다고 생각을 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가운데서 앞으로 어떠한 방면으로 영적 활동을 해야 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영계 활동이라는 것은 어떤 교파 중심이나 또는 신학 중심에서 일어날 것이 아니고 교파와 신학을 초월해서 새로운 역사가 오므로만이 모든 성도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장성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부모가 무엇을 주면 서로 자기 것이 더 좋다는 식입니다.  

  금일에 기독교는 장부의 영계로 올라가야만 될 것입니다. 교파를 초월하여 십자가를 바로 전하는 교회는 하나같이 중생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으로 기독교의 영계 활동이 끝이 아니고 중생 받은 사람이 자라나서 장부와 같은 신앙 단계에 들어가서 철장 권세를 받으므로만이 신앙 장성의 초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의 역사를 받는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러 가지 영계의 계급이 차이가 있으므로 하나가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 길에서 서로 보는 관찰이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같은 산이라도 상봉에 올라간 자와 산 중턱에 있는 자와 산밑에 있는 자의 관찰이 맞지를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철장 권세를 받는 자는 하나같이 산 위에 올라간 자라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장 권세를 받은 영계는 다 통일될 것입니다.

  이제 영계 활동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진리 활동에 대하여

  이미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 받은 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전부가 아니고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로서 앞으로의 여러 가지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 나간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만 될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으로써 교회를 일으켰지만 이제는 불가피 오는 환란 재앙 속에서 그 몸이 어떻게 살아서 새 시대 간다는 진리를 정확히 증거하는 진리 운동을 해야만 그 진리 안에서 모든 성도들의 신앙 상태는 완전히 올라가는 역사가 있으므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지금 이 시국에 몸의 구원론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진리를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 기독교는 이제 모든 신자들에게 새로운 진리로써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역사가 없이는 도저히 새로운 발전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2. 새로운 교회 운동에 대하여

  현 교계가 새로운 교회 운동이 없이는 도저히 안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신학의 부패성

  둘째 : 교권의 부패성

  셋째 : 사업의 부패성

  이 세 가지 부패는 새로운 교회가 나와서 활동하기 전에는 그 부패 아래서 도저히 진리 운동을 바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성경과 대적이 되는 교훈이요 교권자들의 소위 행정이라 하는 일들이 성경과 대적이 되고 소위 교육 사업이니 자선 사업이니 하는 등의 사업은 성경과는 대적이 되는 인물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오므로만이 영계를 바로 잡고 진리를 혼선이 없이 바로 잡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 주권을 쥐고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종을 대적하는 교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말기에 참된 예언을 하는 종들을 거짓 선지들이 탄압을 할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친 것 같이 종말의 환란도 진리의 종이 거짓 선지에게 압박을 받는 환란이 올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와야만 합니다.

 

  3. 강권 역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강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 행사의 권세 역사를 가르친 것입니다. 원수를 무찌르고 나가는 역사가 아니고는 악한 시대에 도저히 진리를 바로 증거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종에게 권세를 맡겨 재앙으로 땅을 치며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의 정권 아래서 찾기 위한 하나님의 강권 역사라고 봅니다. 진노의 날에 종은 하나님이 권세있게 쓰므로써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지상왕국을 완전히 이루는 권세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말하자면 지금 기독교는 새로운 역사가 오지 않고는 큰 위기를 모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문】57. 믿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여야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됩니까?

【답】믿음이라는 것은 인생 자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난 믿음이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그 차 주인이 발행하는 차표라야 그 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이 천국을 향하여 가는 믿음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께로 받은 믿음이라야 예수를 바로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글자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믿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믿어지므로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게 하므로 믿고 못 믿게 하므로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믿어질 적에 죽어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나무 가지가 진액을 받을 때에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순이 나고 열매를 맺듯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믿어지도록 깨달아지고, 이기고 나가도록 힘이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는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믿는 믿음에서 그 뜻대로 기도가 나오므로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응답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 뜻대로 구할 때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어지는 사람이 자기의 뜻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히 생각이 나고 그 뜻만이 옳다고 생각이 날 때에 그 뜻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부족이 있다 하여도 응답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룩한 성도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사랑의 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자체는 사랑인 동시에 불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마음에 사랑의 불이 없다면 하나님의 신의 역사가 떠난 마음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 마음이 즉 하나님과 합치가 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구하기 전에 마음에 벌써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2. 항상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이 부족이라는 것은 도덕적이나 율법에 의하여서가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낸 그 사랑, 우리의 죄를 아들에게 짊어지게 하시고 아들을 제물로 주신 그 사랑, 죽기까지 순종한 주님의 사랑, 그 의를 생각할 때에 인간의 어떤 도덕이나 어떤 희생적 생활이 있다 한들 그 사랑에 비할 수가 없으므로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을 적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 마음에서 완전히 역사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성신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와 같이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3.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 하면 기도는 항상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기도로 승리하는 것이니 기도하는 사람이 원수를 무서워한다든지 또는 자기의 인격 부족을 생각하고 스스로 약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기의 약한 것을 생각하고 담대치 못할 때에 이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은 더 강하게 역사할 것을 믿고 담대히 구할 적에 마귀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는 강하게 내리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보다도 완전한 것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문】58. 아무리 일을 하려고 애써도 무슨 일이나 바로 되지를 않고 점점 막막한 일만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좀 더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두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기를 때에 어떻게 들어 쓰려는 목적이 있는데 그 종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해산의 수고를 다해서 부르짖도록 하는 것은 그 종에게 일할 수 있는 인격을 주기 위한 방법입니다.  

  사람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자기가 어떠한 인격을 가져야 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든다면 지혜로운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에 그 자식으로 하여금 어떠한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을 아는 부모가 그 자식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무엇이나 풍족히 주지 않고 그날 그날에 배우는 데에만 지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부모의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기를 때에 완전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그 종이하는 일을 시련 속에 두어서 자기의 자신은 자신이 없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주시는 것이 아니고는 나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부르짖을 적에 홀연히 모든 문제가 해결되도록 역사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종된 자의 인격을 완전히 가지게 되기도 하고 역사가 일어날 때에 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2. 시련 속에서 순교자의 동무라는 인정을 받게 되므로 환란 중에 역사할 수 있는 종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니 하나님의 종은 아무런 일이 닥쳐와도 후퇴하지 않고 나갈 때에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역사를 그 종에게 주어서 모든 일에 끝을 바로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시련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주의 일을 해 나가다가 앞으로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안될 환란이 있으므로 종에게 담대한 인격을 이루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권세의 역사를 종에게 주기 위한 것이니 권세 역사라는 것은 막막한 일을 당할 때에 조금도 자기의 인격이나 생활을 가지고는 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호소할 때에 홀연히 하나님의 역사가 권리 행사로 나타나게 되므로 환란과 재앙 중에서 남은 종이 되게 하는 것이니 우리는 현재에 역사가 있고 없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앞으로 환란 중에서 남은 종이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1:1이하를 깊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의 역사를 일으킬 종은 아무런 역사도 없는 것 같이 되게 하고 앞길이 캄캄한 가운데로 이끌어 주시면서 길러 남은 종이 될 인격을 주는 것이니 이것을 알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가되어야 합니다.

 

 

【문】59.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보려고 애를 쓰다 보면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도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은 무슨 원인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답】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종이 실천을 못했다 하여도 중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다 하여도 그 일이 오히려 영광이 되도록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 이러한 일을 당할 때에 조금도 낙심하지를 않아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종은 누구든지 인간이 볼 때에 수치스럽고 낙심될 일을 만났지만 거기서 용기 있게 일어날 때에 그를 비소하고 조롱하던 사람들까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의 종은 인간이 볼 때는 지렁이 같이 밟히는 일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가운데서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일어나게 하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이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것을 만족으로 아는 것보다는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박대를 받는다 하여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참고 나간다면 사람에게 환영과 대접을 받던 자 보다도 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종들이 사람에게 자기의 위신을 세우고 자기의 명예나 영광을 바란다면 이 사람은 앞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는 사람이 될 것이로되 아무런 시련이 와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종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종을 통하여 끝을 맺는 역사를 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 것을 인간이 다 알도록 끝을 맺는 일이 있게 될 때에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본다는 것은 중심, 사상이 무엇이냐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문】60. 금일에 너무나 복잡한 일이 많을 때에 교회에 가도 예배가 안되고 도저히 피곤이 오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하여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답】누구나 그런 환경을 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체험으로는 복잡한 문제가 닥쳐오는 것을 진리로 해결해야 됩니다. 어찌하여 과거에 없던 문제가 이렇게 닥쳐오는가 하는 것은 선지서나 계시록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강단에서 설교하는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론을 할 때에 말씀 안에서 복잡한 생각이나 마음이 없어지고 말씀의 빛이 마음에 들어올 때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말씀을 통하여 역사가 나릴 적에 예배는 내가 성의가 있으므로 예배를 신령하게 드린다는 것보다도 나는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고 은혜를 새로이 받게 될 것입니다.

  신령한 예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나의 힘에 있지 않고 강단에 선 종이 영력이 강하고 말씀이 날카로울 때에 예배를 은혜롭게 드릴 수 있는 힘을 그 종을 통하여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아무 교회나 가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진리를 바로 가르치고 새로운 역사가 임하는 교회를 찾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마귀가 허락을 받고 나와서 얼마든지 영적 피곤을 주고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마귀의 흑암에서 피곤을 느끼는 때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시대적인 사명자를 바로 만나야만 영계를 보존하고 새로운 역사를 받으므로 그 종을 통하여 나 자체가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은혜시대에는 개인의 믿음을 지켜나가므로 영계를 보존해 내려오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단체적으로 호소하고 단체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이 없이는 앞으로 영계가 올라갈 수가 없고 자동적으로 약해지는 일이 있게 됩니다. 왜냐 하면 변화성도는 단체적으로 들림을 받는 데까지 하나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날 때는 개인적 활동을 취할 수 없는 것 같이 지금은 영적으로 전쟁을 하되 마귀도 최후 발악적인 행동을 하고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도 단체적으로 부르짖는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같이 무장을 갖추게 되고 하나같이 역사를 하게 되고 하나같이 승리하므로 하나같이 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개인적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했지만 앞으로는 단체적인 역사를 하기 위하여 역사하므로 교회는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진 교회가 되어야 남은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61. 현 시국을 위기라 하면서도 실지 생활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점점 세상으로 치우치게 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답】이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보다도 이 시국에 하나님의 숨은 비밀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그 뜻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믿음이 식어지는 일이나 생활이 속화되는 것은 그 영적 상태가 올라가지 못하고 정지 상태에 있을 적에 자동적으로 식어집니다. 영적 생활이 새로워지지 못할 때에 자연적 그 생활은 속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지 않은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제 이 시국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합니다.

 

  1. 조금도 타협이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귀가 얼마든지 참된 종을 침투해 들어올 권리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마귀와 타협이 있는 경우에는 그 즉시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어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이 영적 상태가 피해를 당하는 동시에 그 생활이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세상에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초대 교회는 영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시험을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고 이미 마귀 권세 아래서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하여 복음을 전할 때에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자는 그 즉시에 흑암에서 해방을 받고 나오게 되므로 흑암은 물러가고 광명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생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든지 마귀의 흑암이 우리에게 침투해 들어올 권세를 가지고 나오는 때이므로 조금이라도 타협이 있을 때는 그 영적 상태가 흑암의 침투를 당하여 아무런 빛을 내지 못하고 잠든 상태에 들어가므로 아무런 활동을 못하고 피곤에 빠져 쓰러지게 됩니다.

 

  2. 말씀을 밝히 증거하는 일에 힘써야 됩니다. 왜냐 하면 말씀이 밝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쑥물을 먹고도 잘못인 줄 모르고 공연히 남을 잘못 판단하는 일도 있게 되고 또는 말씀을 전한다 하여도 남을 잘못 지도할 때에 오히려 죄가 됩니다.

  왜냐 하면 과거는 십자가 하나를 증거하는 것으로만이 그 시대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영적 흑암 시대를 만나서 말씀이 무장되지 못한 자는 마귀의 허락 받은 흑암 권세를 물리칠 수가 없으므로 흑암 속에서 자동적으로 영, 육이 피곤해서 아무런 활동을 못하게 되므로 세속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타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3. 각성을 해서 강하게 나서야 됩니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날 때에 군대는 부득불 강하게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지금 이때에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좌우를 보지도 말고 임박한 진노의 날에 설 수 있는 인격 하나를 찾기 위하여 전심 전력을 다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여튼 무엇보다도 자신이 완전 무장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일과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 될 때에 권세 새 힘을 받게 되므로만이 이 시대에 물들지 않고 나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