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논 설

   

   [1 ~ 33] [34 ~ 63] [64 ~ 96] [97 ~ 126]

(1971년 1월호)

34. 71년도를 맞이하여 사명자의할 말

35. 71년도에 사명자의 나갈 방향

36. 두려워 할 일이냐 기뻐할 일이냐에 대하여

37.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에 대하여

 

(1971년 2월호)

38. 급한 일 많은 세상

39. 인생의 근본과 종말

 

(1971년 3월호)

40. 생명은 많고도 죽을 세상

41. 해 놓은 일 없이 분주한 생활

42. 밝은 것 같으나 어두운 세상

 

(1971년 4월호)

43. 충성된 것 같으나 거짓된 사람

44. 쉬운 것 같으나 어려운 일

45. 슬픈 일 같으나 기쁜 일

46. 작은 일 같으나 큰 일

47. 큰 일만 남은 세상

 

(1971년 5월호)

48.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사람

49.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

50.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51.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

 

(1971년 6월호)

52. 경고를 싫어하는 비극

53. 천하가 다 슬퍼해도 기뻐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

54. 진리 없는 생활은 허무

55. 미혹 많은 세상에 진리의 사람

56. 화가 있는 세상에서 받을 축복

57. 믿을 수 없는 일과 있는 일

 

(1971년 7월호)

58.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

59.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열매가 없는 일

60.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

61. 흑암과 광명에 대하여

62. 유물론 사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63. 경제 혼란과 인심 동태

 

 

34. 71년도를 맞이하여 사명자의 할 말

  슬픈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때는 71년도에서부터라고 본다.  어찌하여 슬픈 경고를 할 때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백의 민족은 71년도에 국가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전 국민은 바로 싸워야 할 해라고 본다. 그러면 전 국민이 바로 싸운다는 것은 바로 싸울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오늘에 우리 기독교의 사명은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아는 자도 적으리 만큼 잠들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에 기름진 강토가 붉은 짐승의 밥이 되다보니 셈의 민족의 탄식하는 눈물겨운 사정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하나님은 노아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야벳의 장막에 나타나지 않고 셈의 장막에 나타나 모든 선지들에게 묵시를 보일 적에 셈의 장막에서 만왕의 왕이 될 메시야가 탄생할 것과 또는 그 빛이 세계를 밝힐 것을 말할 때에 큰 빛이 갈릴리 해변에 비취어지기 시작하여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비취어진다고 사9:1~2에 말씀했다.

  그 빛은 금일에 대 승리를 보아 세계적인 대 종교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빛으로 밝아졌던 이 땅에 소위 무신론 유물적 정치와 그 사상은 전 세계를 흑암으로 떨어뜨리는 금일에 기독교는 그 흑암을 뚫을 힘을 잃고 잠든 이때에 동방 해 돋는 편에 이 흑암을 뚫을 빛이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으로 임하여 이 진리의 빛이 세계를 덮었던 흑암을 물리치고 그 빛 가운데서 모든 나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사59:19~60장에 말씀했다.

  이미 동방 사람에게 말씀의 빛이 임한 것이니 71년부터 이 빛을 발하기 위하여 사명자들은 이 진리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일에 총 궐기하여야 될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이 할 말은 하나같이 동방에 나타난 말씀을 가지고 모든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거짓 선지를 끼고 나오는 미혹의 영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런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71년도부터는 양떼들이 다 쑥물을 먹고 쓰러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네 말, 내 말 할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나가서 할 말을 성경에 분명히 기록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이 시대에 빛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명자들은 환란과 재앙에서 살길을 열어주는 진리를 입으로 바로 증거하지 못하면 그 자체는 사8:20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2. 금일에 소위 반공이라는 표어가 거리 거리에 붙어 있다. 그러나 그 반공 자체의 진리를 모르고 따라간다는 무리는 속에 아무런 생명이 없는 쭉정이같이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반공이라는 간판이 제일 많이 붙은 나라라고 본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공산당을 용납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산당인줄만 알면 농촌에 사는 부인들까지도 묵인하지 않고 경찰에다 고발을 해서 잡아내도록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제일 반공 사상이 강한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 사명자들이 이러한 민족들에게 반공 사상이 있어야 될 진리를 철저히 말해주고 이 시대는 붉은 공산당이 왜 이렇게 일어나느냐는 것을 성경에서 말해주고  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온다는 것을 밝히 말해 주는 진리 운동이 없다면 앞으로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보게 된다. 진리 없는 운동이라는 것은 뿌리 없는 꽃가지와 같다. 임시로 꽃병에 있는 꽃이 보기는 좋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듯이 진리가 없는 반공 운동은 그 반공이란 자체가 완전한 열매가 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남의 말을 듣고 따라가다가 조금 위험한 일이 오면 다 도망하듯이 진리의 생명이 없이 무조건 공산당이 나쁘다는 말을 듣고 움직인다는 국민은 하루아침에 변해지기 쉽다. 오늘에 소위 교권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덮어놓고 남이 이단이라고 말한다고 같이 충동을 받았던 무리들이 몇 날 가지 않아서 따라가던 사람을 또 이단이라고 하면서 돌아서는 일이 많다. 그러면 이런 국민과 이런 교인들을 데리고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오늘에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국민이 되지 않도록, 교인이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진리를 바로 아는 사명자들이 71년부터 목숨을 아끼지 말고 나서야 할 것이다. 먼저 깨달은 자는 먼저 나서고 다음에 일어나는 자들이 완전한 열매를 맺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금 계룡산 새일 수도원이 이단이니 누구든지 거기에 가면 걸려든다고 하니 이러한 기독교라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왜냐하면 덮어놓고 이단한테 전부 걸려든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러한 기독교가 어떻게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고 나갈 수 있겠는가!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났는데 군대가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다 죽는다고 무서워서 가만히 있다면 그러한 국가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금일에 한국 교회가 계룡산을 마귀 소굴이라고 무서워하고 새일 수도원을 이단이라고 가지 못하게 하면서 거기 가면 누구나 걸려든다고 하면 벌써 전쟁에 진 군대와 같다.

  내가 바라기는 새일 수도원 원장된 이 사람이 매일같이 입에 말씀이 임하여 책자를 내고 있으며 이것은 다른 사람이 받아서 기록한 대로 출판하는 것이니 이 책자를 자세히 읽어보고 71년부터 남의 말에 왔다 갔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이 책자를 자세히 읽어보고 입술에 똑똑한 변론을 말하기를 바란다.

 

  3. 금일에 남의 나라 사람보다도 우리 나라 사람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다. 세계적으로 화려한 도시가 많이 있지만 서울 거리같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농촌에 있는 농민들도 서울에 가야 산다고 농장을 버리고 와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할일 많은 농촌은 일꾼이 없고 할일 없이 왕래하는 서울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서 교통로를 만드느라고 지하를 파고 공중에다 비싼 쇠를 건너 놓고 사람을 다니게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하는가. 심지어 외국에서 차관을 내어다 길을 닦고 있다는 것은 남의 나라보다도 유명한 일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 눈을 뜨고 내다보니 이 민족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기쁜 일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임시 살기는 서울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임시를 따라서 사는 국민이 된다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임시는 괴로워도 장래를 생각하고 움직여 준다는 것은 눈물 흘려 감사할 일이지만 임시 살기 좋다고 장래를 생각지 않고 모여드는 서울 시민을 볼 때에 눈물 흘려 경고할 말이 사명자의 입에서 나오게 된다. 우리 인생은 하루살이가 아니고 장래를 위하여 싸워야 할 용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이 민족을 바로 지도할 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그 진리를 분명히 알고 민족의 장래를 하나님의 보호받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길러 주고 인도하는 영도자가 나와야 할 것이다. 정객들이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정견 발표는 번드레하게 실지에 당선이 되면 자기의 당선되기 위하여 운동한 경비부터 보충을 채우려고 하고 보니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게 될 때에 그 애국적 양심은 마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한 지도자를 세우려면 나 자체가 앞으로 어떠한 일이 온다는 것을 성경에서 바로 알고 거기에 따라서 지도자가 나오도록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나서서 71년도에 선거 운동은 국민들의 자체가 사상, 정신이 바로서도록끔 하는 책임은 사명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 사명자가 정치적인 욕망은 가질 필요가 없고 정치인들을 깨우쳐 주는 책임만은 금년에 꼭 책임을 져야만 될 것이다. 이날까지에 우리 나라의 선거 운동이 많이 있었지만 금년 선거 운동은 사명자들이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할 위기에 도착했다고 본다.

 

  4. 남의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부흥 운동을 많이 한다는 것만은 유명한 일이다. 은혜가 많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다니는 무리들도 남의 나라보다도 유명한 열심가들이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부흥회라는 것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되는 일이 있을까 보아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부흥사들이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남을 이단이라고 치는 부흥사는 열광적인 부흥사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술을 먹고 흥분된 사람이 덮어놓고 이놈 저놈 하듯이 금일에 성경도 똑똑히 모르는 자들이 조금만 은혜를 받으면 크게 과장을 시켜서 은혜 받은 간증을 해도 받지 못하고도 받았다고 하고 보지 못하고도 보았다고 하고 심지어 병이 낫지 않은 것도 병이 나았다고 풍을 치면서 자기는 모든 것이 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과장을 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망치는 폐단이 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종말관의 진리를 완전히 무장하고 양떼를 지도할 때 그들이 어디를 가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지식을 넣어주고 아무런 일이 와도 낙심치 않도록 소망의 확실성을 진리에서 갖도록 하여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더 강하여지고 미혹이 올 때에 더 밝아지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하여야 될 책임이 사명자에게 있다고 본다.

  우리는 부흥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오는 난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대하여 자기 자체가 반성을 하고 완전 무장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대중 심리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도 한 두 사람이라도 완전한 종이 나와서 71년도부터 완전한 열매를 맺는 진리 운동을 하되 성경 본문에서 완전 지혜, 지식, 능력, 권세를 얻도록끔 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사명자가 사명자를 방문하고 사명자가 사명자를 무장시키는 선구자가 나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명자라도 새로운 역사가 오지 않고는 71년부터는 교회의 난제를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사명자는 자기가 재림의 주를 영접할 완전 무장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하고 부흥사들까지라도 그런 정도는 안될 것을 알고 자신이 해산의 수고를 다해서 부르짖는 기도에서 완전 무장을 갖추는 기간을 정하고 노력하여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흥사들까지라도 자기 자신이 수치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35. 71년도에 사명자의 나갈 방향

  우리 사명자는 하나님서 시대적인 법을 따라 역사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나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주님께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시부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방향을 한 곳으로 둘 때에 예루살렘 다락방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권능 받기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의 말씀대로 권능이 임하여 그때부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 금일까지 그 법대로 성신이 역사하므로 하나같이 방향을 한 곳으로 두고 나왔으므로써 기독교는 세계적인 대 승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71년도부터 우리 사명자들이 나갈 방향은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는 날이나 금일이나 한 날이므로 방향이 정평적인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1년도부터 우리가 나갈 방향은 정평이 아니고 큰 함정과 올무가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무에 걸리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야 할 것이다.

 

  1. 완전 변론을 가지고 거짓 선지의 영과 싸우는 방향을 나가야 한다

  적 그리스도의 국가는 70년까지 행동 개시할 준비를 갖추는 동시에 선전 포고를 했다. 그러나 71년부터는 거짓 선지들이 본격적인 행동 개시를 하여 얼마든지 흑암의 세력을 교회로 들여보낼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한 것은 참으로 거짓 영을 말씀 변론으로 이기는 자만으로 남은 종이 되는 인권의 역사를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71년부터는 심판의 다림줄을 쥐고 변론하는 권세의 종들이 선구자로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70년에는 완전 변론의 역사가 대표적인 종에게 임하는 해요, 7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명 동지들이 일어나서 하나같이 변론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70년에는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널리 광고하는 정도로 변론이 내리었고, 71년부터는 본격적인 투쟁을 하기 위하여 변론이 내리는 동시에 행동 개시의 역사가 따를 것이다. 사명 동지 여러분들이여, 다같이 변론 권세를 받기 위하여 성산으로 모여들자.

 

  2. 교파를 초월하여 뭉쳐야 된다는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

  예를 든다면 싸움이 시작되는 전란이 올 때는 군대는 다같이 사적을 버리고 한곳으로 집결하는 것을 먼저 목적하여야 될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교파적인 담이 있어도 하등에 지장이 없고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었다. 왜냐하면 농장에 물을 주기 위해서는 둑을 막는 것이 필요한 것 같이 교파에 담이 있어 가지고 서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유리한 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추수기가 오는 때이니 물을 줄 때가 아니고 알곡을 모을 때는 타작기 앞으로 모이되 알곡은 알곡끼리 뭉쳐지는 것이 방향일 것이다. 만일 알곡이 알곡끼리 모이지 않고 쭉정이 속에 있게 되면 오히려 쭉정이로 취급을 받고 같이 불타게 될 것이다. 71년부터 협상주의 세력이 교권을 쥐고 들어오는 것은 알곡은 거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세계가 오는 것이다. 계11:1과 같이 되는 것이 71년도에 나갈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뭉쳐지는데 있어서 두 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 동방에 나타난 말씀 변론에 뭉치자는 것으로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 하나같이 완전 무장을 갖춰야만 된다는 결심에서 목표를 놓고 나가되 선진과 후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날 때에 무장한 군대는 싸우면서 무장을 갖추기 위하여 훈련소가 필요한 것같이 70년도까지 무장한 종들이 싸워야 할 것이고 무장을 갖춰야 될 종들은 1개월간이면 변론 무장을 할 수 있는 새일 수도원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신학의 변론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 시대에 나가서 싸울 무장이 될 수 없으니 신학을 한 자라도 정식 학과를 새일 수도원에 와서 배우므로만이 이 시대에 나가 변론할 수 있는 무장이 될 것이다.

  이것은 현 신학을 반대하는 것보다도 현 신학에서 못하는 변론을 새일 수도원에 오면 다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변론 권세 역사가 71년부터 새일 수도원에 내리게 될 것이다.

 

  3. 새 시대를 목적하는 것으로 방향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의 묵시를 볼 적에 북방에 자리잡고 나오는 침략자이며, 무신론자이며, 궤휼자이며, 가장 강한 세력이 아시아를 중심하여 중동으로 내려올 때는 인류 종말의 환란이니 이때에 동방에서 역사가 일어나되 이 역사는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라고 말씀했다.

  금일에 인력으로 극동 난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하며 중동으로 일어나는 환란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하여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동방 해 돋는 곳에 나타나므로 인종 전멸의 재앙이 올 때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하였으니 시기는 완전히 단언할 수 없으나 금일에 모든 환경이 불가피한 큰 문제가 닥쳐오게 된 현실에 우리 사명자들은 새 시대를 목적하고 싸우는 진리 운동에 방향을 두고 하나같이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36. 두려워할 일이냐 기뻐할 일이냐 에 대하여

  우리는 71년도를 맞이해서 두려워서 떠는 자가 될 것이냐, 기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자가 될 것이냐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 세계 인류는 이 두 가지 일에 다 걸려 들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을 묵시로 기록할 때에 북방의 세력이 무서워서 타협하는 자는 망할 것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는 영원히 기뻐할 일이 올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이제 두려워 할 일과 기뻐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두려워 할 일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죄의 결과라고 본다. 언제나 죄가 있는 자는 두려움이 오는 것인데 금일에 와서 두려워할 자는

  첫째 : 지각이 없는 사람이다.

  이 지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지각인데 어찌하여 시국이 이렇게도 어지러워지느냐 하는 것을 바로 깨닫기 전에는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일이 현재 닥쳐왔다고 본다. 이제 전쟁을 하면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일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도 같이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선지서를 보면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살라지는 날이라도 어떠한 자가 남은 자가 된다는 진리가 똑똑히 기록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사66:4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한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말씀대로 북방으로 환란이 오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승리가 있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있는데 이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심이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제일로 두려운 일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라고 보게 된다.

  둘째 : 완전한 인격을 이루지 못한 자이다.

  이날까지는 죄인을 부를 때이니 죄가 있어도 살 수 있었으나 진노의 날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속화된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두려워하게 된다(사33:14). 조금이라도 용서가 없는 재앙이니 양심에 거리끼는 죄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영적으로 흑암이 오고 몸에 무서운 재앙이 부딪칠 때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하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잘못된 것은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사8:21). 예를 든다면 여름에는 가꾸어 기르던 농장에 타작기가 들어오니 알곡 외에는 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 받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셋째 : 남을 억울하게 하는 자들이다(사10:1~4).

  이제 오는 환란이라는 것은 억울한 피 값을 갚아주는 환란이니 경제권을 가지고 빈민의 피를 빨던 자, 교권을 쥐고 참된 성도를 괴롭히던 자, 정권을 쥐고 백성의 피를 빨아먹던 자들이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인 환란이 올 것이니 이때에 두려워할 자는 누구란 것을 이 세 가지로 알 수 있다.

 

  2.  기뻐할 일

  이날까지는 악자가 의인을 압박하고 불신자가 신자를 해치고 거짓 선지가 참 선지를 해치는 억울한 일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왔다. 그러므로 모든 악자들은 죄악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죄악의 세력이 의의 세력을 해쳐도 아무런 재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동방 역사를 일으킬 때에 세계를 뒤집어엎는 날이라고 사24:1~13에 말했다. 그러나 동방 땅 끝에서부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리니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말씀했다.

  이제 기뻐할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다.

  첫째 : 빈궁한 자를 보장하는 일이 있으므로(사25:4)

  끝까지 기다리고 참던 자들이 기뻐하게 된다(사25:9~10).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궁핍이 와도 동방에 나타난 진리 하나를 붙들고 싸우다가 진리대로 여호와의 산에 역사가 임할 적에 기뻐하게 되는 일이다.

  둘째 :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이 있으므로(사26:3)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당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한 자는 무슨 환란이 오든지 오히려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

  이제부터 항상 기뻐할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지가 견고한 자라고 보게 된다.

  셋째 :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보게 된다(사66:5, 13~14, 22).

  하나님께서 말씀에 떠는 자라면 기쁘게 해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종말에 기록된 말씀은 전부가 억울함을 당하던 자들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것이니 누구든지 말씀에 떠는 자라면 아무런 환란 재앙이 와도 오히려 더 기뻐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인생의 최고 기쁨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에게 있다고 본다. 하나님은 이날까지 죄 값으로 고통받던 백성을 최고로 기쁘게 한다는 것이 새 시대를 이루는 목적이 된다(사35:10).

 

 

37.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은 오늘에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교통이 편리하고 소식의 연락이 빠르고 또는 노동을 적게 하고라도 먹을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날뛰고 있다.

  교통이 빠르고 정보가 빠르고 모든 노동이 빠르게 된다고 이것을 최고의 발전으로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라고 본다. 인생의 가치란 것은 모든 것이 빠르게 되었다고 해서 가치를 찾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든다면 독수리가 날아가는 흉내를 내는 것이 비행기요 맹호가 달리는 것을 흉내내는 것을 급행 열차라 하고 정보가 빠르게 교통하는 것은 기도의 사람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 오늘의 전화, 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은 생명 없는 우상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사람을 낼 때에 비행기나 급행 열차가 없어도 하늘 보좌에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올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내었다는 증거를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줬고 또는 전보 전화가 없어도 교통할 수 있는 증거를 예수님을 통하여 증거로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과학을 자랑하는 인간들을 성경에 짐승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볼 때에 가장 어리석은 자가 유물론 과학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일은 흑암 중에 흑암이요, 자기 지식으로 다 안다는 것은 교만 중에 교만이요, 자기 무력으로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은 자멸 중에 자살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본다면 현재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것이 심판 받을 어리석은 짐승들의 행동이라고 본다.

  슬프다. 인생들이여,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집 위에 집을 더하고 물질의 세력을 통하여 세계를 점령해 보려는 것은 꿈을 꾸는 잠꼬대가 아닌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를 쓰다 잠이 들어 떡을 먹어 보는 모양이 아닌가. 목이 말라 물을 찾던 사람이 환상을 보는데 물을 먹어보니 그 꿈과 환상은 오늘에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들의 형편이 아닌가.

  조물주를 모르고 피조물이 피조물을 가지고 싸우다가 피차에 죽는 모양 가련하구나. 사람의 인정을 최고의 미로 알아서 인정 따라 가다보니 도덕이 부패되고 사회가 문란한 현실에 인정이라는 간판 밑에서 절개를 빼앗기고 사상을 빼앗기고 신앙을 빼앗기고 인정 마귀에 도취된 세상, 음란하기 짝이 없고 사치하기 짝이 없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구나. 울긋불긋 눈 홀리는 귀신 단지, 사치 상품 하루 아침 불탈 때가 멀지 않다.

  인기 전술 쓰기 위해 모양을 내다보니 사람의 모양 되지 않고 머리카락 꼬아 올려 모양내다 보니(겉 부시시한) 모양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는 세상 가련하기 짝이 없고 자기 몸을 가꾸느라고 하다보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 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그 모양 동물같이 보인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백의 민족 거룩한 예의를 어찌하여 야만적인 풍속과 바꿀 소냐. 우리는 어리석은 과학 문명 부러워 말고 하늘 지혜 받은 민족 되어서 새 시대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어보자. 하늘로부터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백의 민족 중 고아이며 빈민이며 농민이며 가장 짓밟히는 사람에게 임하였으니 이것으로만이 새 시대를 이룰 것이다. 인간 지혜 지식은 부끄러워할 일이 동방 땅 끝 여호와의 산에 나타났다.

  이제 지혜로운 자는 누구일까.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성경 본문으로 얼마든지 이 시대에 나가서 깨우칠 사람이 되는 일이다.

  금일에 소위 학설이라는 것이 나왔는데 이것이 하나님께로 온 말이 아니고 붉은 용의 혼미한 꾀임에 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 학설이니 이 학설에 미혹 받지 말고 우리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로 파악하고 말씀에서 자아를 파악하고 말씀에서 사상을 파악하고 말씀에서 정로를 파악하는 지혜가 아니고는 붉은 용의 사단의 꾀임을 막을 자는 전혀 없다.

  아무리 인간들이 연구하고 발전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니 하늘로부터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라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바로 알 수도 있고 변론할 수도 있는 것이니 71년부터 우리는 완전 지혜와 지식의 변론이 아니고는 가장 간교한 거짓 선지의 변론을 막을 자 없을 것이다.

 

 

38. 급한 일 많은 세상

  누구든지 지금 이 세상을 급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각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1971년이라는 세월은 모든 인류가 정평의 길을 걸어 왔다고 본다. 정평이라는 것은 구렁텅이나 걸리는 올무가 없이 마음놓고 가는 길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하는 한마디 음성이 세계 어느 민족이나 다같이 듣고 복을 받을 기간이라고 본다.  

  죄인 오라 할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음성을 하늘의 하나님은 들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은 진노의 날 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할 때에 시온의 거룩한 자가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룬다고 어느 선지나 꼭 같이 묵시를 받았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이 때를 당하여서 급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 준비할 때가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금은 세계 문제가 진노의 날에 되는 징조라고 본다. 인간이 볼 때는 임시 편리한 점도 있고 화려한 점도 있고 또는 물질만 있으면 재미있게 살 수가 있다고 볼 수가 있지만 거룩한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전부가 진노할 일이라고 본다.

  모든 인류의 사상 동태나 정치 경제, 문화, 도덕, 종교적 모든 전부는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을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에 급한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각자 인격 문제인데

  우리는 반성할 것은 나 자신이 이러한 상태에서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는 인격이냐는 것을 반성해서 덮어놓고 믿으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지 말고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선지서와 계시록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내 사상과 생활과 모든 행동을 말씀에 대조하여 보면서 철저히 인격 개조를 받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되 해산의 수고를 다해야만 될 때라고 생각된다. 누구든지 이 때에 제일 급한 문제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가 되는 인격 문제라고 생각하고 최선의 힘을 다하여야만 되리라고 본다.

 

 2. 제단 문제인데

  이날까지는 개인 신앙에서 개인 구원을 목적하는 때이니 만큼 약간의 부정, 부패가 교회에 있다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말씀에 혼선된 점이 있다 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너그러이 용서하는 십자가만 증거하면 그를 믿는 자에게 은혜를 내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남아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교회가 되려면 그야말로 조금도 교회에 부정, 부패가 없는 완전히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동산에는 부드러운 풀들이 무성했지만 북풍 한설이 부딪칠 때는 연한 풀은 쓰러지고 송죽의 푸른 빛 만이 남아 있듯이 진노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절개 있는 성도들로 뭉쳐진 단체를 이루어야 될 것이다.

  알곡을 뿌렸던 농장에 다시 알곡으로 끝을 맺듯이 환란과 핍박 속에서 시작된 교회가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졌던 것 같이 종말에 재앙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려면 완전히 성결한 단체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단이 없이 역사가 내리지 않고 역사가 없이 거룩한 제단이 될 수 없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를 없이 하려는 정치와 교권 속에서 예수는 분명히 부활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예수를 반대하는 정권과 교권을 대항하여 싸운 거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반대하는 정권과 교권을 더불어 싸우게 될 것이다.

  진노의 날에 심판의 대지는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산다는 것이 인종 전멸의 심판인 동시에 먼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도 못하고 절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인다는 것이 기독교가 당할 마지막 환란이다. 이러한 환란 속에서 남은 교회가 되려면 성결한 단체가 이루어진 교회에서 단체적인 보호를 받는 일이 있으므로 남은 교회가 되어서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되려면 시급히 완전한 무장이 된 성도들이 되도록 할 일이라고 본다. 말씀을 완전히 무장한 자가 아니고서는 촛대 교회의 강단에 설 수도 없고 또는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에 가감된 자를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재앙기가 아니므로 말씀에 혼선되었으나 말씀대로 오는 재앙이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긴급한 일은 재앙의 날에 남을 교회가 되도록 제단을 쌓는 일이 큰 일이라고 본다.

 

  3. 문서 운동인데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에게 묵시를 보일 적에 심판기라는 것은 하나님이 북방의 침략자인 무신론 죄악의 정치를 독수리 같이 강하게 올라가게 하므로 세계 열방을 침투하여 나올 때는 심판기니 누구든지 달려가면서 정한 때의 묵시의 글을 읽어보고 깨닫도록 하면 의인들은 그 말씀을 믿으므로 살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 중에서 각성을 받고 일어나는 일이 있으므로 북방의 세력이 망하는 동시에 재림의 주가 올 것을 가르쳤다.

  우리는 문서 운동에 전력을 두지 않고는 안될 것이니 얼마든지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임하여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변론하는 문서 운동이 있게 되므로 진리 반공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므로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4. 부흥단을 일으키는 일인데

  합3:1~3을 보면 주님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하박국 1장과 같이 북방으로부터 심판의 위령을 가진 악의 세력이 나올 때에 2:3에는 문서 운동을 할 것을 말했고 3장에는 주의 일을 부흥케 할 것을 말했다.

  우리 기독교에서 71년부터 급한 문제는 시대적인 경고의 나팔을 부는 대 부흥단이 나와야 될 일이다. 이 사명은 동방 땅 끝에서 할 사명이라고 사24:14에 말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가 천국 복음 운동을 할 때가 아니고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진리 운동을 할 때라고 본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부흥 운동은 다시 예언하는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으로써 재림시까지 증거하게 되는 부흥단이 각 나라에서 나오므로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가 될 것이다.

 

  5. 가정 문제인데

이날까지는 자녀를 두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혹은 불행하게도 부모를 두고 자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식구를 슬프게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 오는 환란은 가정이 다같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가정이 되어야만 어린 자녀까지 환란 가운데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되 도덕적인 문제보다도 사상적인 문제로 진리 반공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넣어주는 교훈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만일 청소년들에게 종말관의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청소년의 사상을 바로 지도할 수 없을 것이니 부모나 선생들은 반드시 급선 문제가 어린 청소년들에게 이 시대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공산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진리 사상을 넣어주는데 전력을 두는 것이 급선 문제라고 본다.

  금일에 제일 급한 문제가 청년 학도들을 기독교 종말의 변론의 역사로 바로 지도할 일이 급한 문제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6. 정치 문제인데

정치라는 것은 그 시대를 따라 정치는 변동해야 될 것이다. 봉건주의 정치가 자본주의 정치에 먹힘을 당하였고 자본주의 정치를 공산주의가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이때에 어떠한 정치를 가져와야 할 것이냐는 것을 바로 알아서 행하는 문제가 급한 문제라고 본다.

  모든 선지의 종말론 묵시의 글을 보면 인류 종말에 북방에 자리잡고 나오는 궤휼적 정책은 참된 진리에 입각하여 진리대로 싸우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같이함으로써 승리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우리 나라의 국가가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고 한 그 사상이 정치인에게 무엇보다도 철두한 것이 있어 가지고 진리 반공 정책을 하는 것이 아니고는 안될 것이다.

  이날까지 종교는 정치와 분리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종교와 정치가 병합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받아 기록할 때에 아무리 북방의 세력이 강하지만 세계를 통일하는 정치는 시온산 정치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정 정치를 가르쳤다.

  신정이라는 것은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신의 보호를 받아 초인간적인 힘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신정 정치를 썼으므로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한 것 같으나 백전 백승의 열매를 거두어 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때에 신의 감동으로 다윗은 예언서를 쓸 적에 필연코 자기의 신정 정치가 세계를 통일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기록했고 다윗 왕국 말기에 그 정치가 다윗의 신앙을 떠나서 속화될 때에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예언을 기록할 적에 아무리 다윗 왕국이라도 신정 정책을 쓰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이방에게 망할 것을 말하고 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라야 하나님이 같이 하므로 세계 통일의 새 시대가 오는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올 것을 가르쳤다.

  이와 같이 되는데는 동방 땅끝 해 돋는 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므로 평화 왕국이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급한 문제는 우리 나라는 신정 정치를 이루는 것이 급한 일이라고 성서를 통하여 깊이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눈물겹게 소리 높여 할 말은 급한 문제가 강단에 선 종이 시대에 적합한 진리를 양떼들에게 흡족히 먹여 주는 일과 또는 협상주의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진리 반공 운동에 순교적인 투쟁이 있어야 할 것과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종으로서 진리 반공 투사를 길러서 앞에 나서도록 하는 일과 어떻게 하든지 교회가 국가에 대한 큰 관심을 두고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가지고 산 활동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목회를 못하고 삯이나 받아먹는 삯꾼이 된다면 각자가 다 큰 화를 받을 것을 알고 강단에 선 종들이 맹렬히 일어나야 할 때가 이때이며 모든 사명자들은 하나같이 단결해서 잠자는 종들을 깨워주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39. 인생의 근본과 종말

  인생이라는 것은 근본이 무엇이며 종말이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을 가지므로써 만이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정로에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가치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인생의 근본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근본과 종말

  이 몸이라는 것은 흙에서 지음 받은 몸이다(창2:7, 3:19). 사람은 몸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영만 있고 몸이 없다면 영이 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신은 신만이 사는 영계라는 것으로써는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혼돈, 공허, 흑암에 있는 물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가 된다.

  창조라는 것은 물체의 것을 가지고 이루어 놓은 것을 가르친 것이다. 물을 갈라 물질계를 창조할 때 많은 물을 궁창 밖으로 몰아내고 크게 공간을 낼 적에 우주 공간 안에서 물체는 활동하여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니 신께서는 물질계를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창조할 때에 전부가 몸을 위하여 움직이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신의 대행자가 될 수 있는 모양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신께서 사람의 몸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한 것이니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흙에서 난 몸으로 흙에서 난 열매를 먹고 흙에서 난 모든 만물을 조물주의 뜻대로 다스리면 그 몸이 변화해서 영생할 영체가 된다는 것이 사람의 몸을 창조한 신의 공의라는 것이다.

  조물주 신은 사람의 몸이 영생체가 되게 하는 데는 그 사명을 맡기고 그 사명을 대적하는 동물을 냈으니 이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마음의 법이라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얻기로 작정하고 내기할 때에 상대편에 동등한 권리를 주고 서로 마음껏 해보는 것을 사람들이 큰 취미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신의 형상을 받은 증거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신들도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낼 때에 가장 귀한 몸을 이루고자 할 때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뱀은 가장 간교하게 사람을 꾀어보도록 했고 사람은 가장 진실한 사람으로 활동하여 꾀임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활동하면 사람의 몸이 생명과를 먹고 영원히 신과 같이 동거동락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이 가장 간교한 뱀에게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활동하지 않고 가장 간교한 뱀의 말대로 활동했기 때문에 인생의 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몸이 가치 없는 노동을 하게 된 것이 사람의 몸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이 헛된 수고를 하게된 것도 죽게된 것도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그 몸을 움직인 죄라고 본다.

  이제 인간 몸의 종말이라는 것은 조금도 헛된 수고가 없이 영생을 하고 다시는 죽음이 없는 변화체를 이루는 것이 몸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것은 영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요 사람의 몸이 끝을 바로 맺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탄생할 때에 그 몸은 흙에서 났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된 타락한 몸에 속한 것이 아니고 신의 능력으로 마리아 몸에 새로운 물과 피가 생기게 하되, 성령의 역사로써 마리아 몸의 피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마리아 몸에 성신의 역사로 물과 피가 임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몸이 아니고는 그리스도의 몸을 탄생케하는 역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도 처음 아담같이 흙에서 창조했더라도 만민을 대속하는 몸이 될 수 없고 흙에서 난 몸으로 타락한 사람의 피를 가지고 이루어졌더라도 구속의 역사를 할 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몸에 새로운 물과 피가 임하도록 하나님의 신은 역사했던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몸은 인생의 몸의 종말을 바로 맺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몸이 끝맺는 날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첫째아담의 불순종으로 몸의 사망이 왔고 둘째아담 예수가 순종하므로 사람의 몸에 영생이 온 것이니 인생의 몸이라는 것은 재앙의 날에 가서야 끝을 맺는 것이다. 재앙이라는 것은 옛 뱀 붉은 용을 통하여 오는 것이니 붉은 용의 간교한 말인 공산당의 변론을 이기고 말씀을 바로 지켜 나가는 자라면 그 몸이 영생할 몸이 되어 구름을 타고 승천하게 되므로 하늘에 속한 몸이 되어 세세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원자핵이 나온 것은 세계 사람의 몸에 큰 재앙을 주는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동방에 말씀이 임하는 것은 그 말씀을 전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히 영생할 몸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2. 영의 근본과 종말

  금일에 유물주의자들은 사람에게 영이 없고 고등동물이 되는 정신작용이 동물보다 우수한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표준하여 나오는 학설이라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영의 활동이 있으므로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발전을 가져오는 인격이라고 본다.

  사람의 영의 근본을 말하자면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였고 슥12:1을 보면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라 하였고 말2:15에 하나님은 영이 유여 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지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할 적에 영을 대하시어 활동을 하도록 할 때에 당신의 요구하신 뜻은 몸에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그 영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할 때는 하나님도 그 영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지만 이 죄는 몸에 해당되는 죄요 그 영이 하나님을 대적한 죄는 아니다. 그 영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어린양의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된 자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영원한 속죄를 완성한 보혈이므로 그 피를 믿고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취급하는 일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운 제사로 말미암아 그 의를 보고 무조건 그 영을 구원해 주는 것을 기독교의 중생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것은 인간이 행하므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이라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죽은 영이라는 것은 지옥 갈 영을 가르친 것이요 산 영이라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녀가 된 영들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승리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들이 속죄제를 양을 잡아 드리면서 역사가 내려온 것 뿐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승리하신 후로는 누구든지 그 보혈을 믿으면 죽은 영들이 되는 마귀의 자녀들이 되었던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의 빛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므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의 근본은 하나님이니 근본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 마귀 권세 아래서 사망의 법으로 다스림을 받게되었던 영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를 받을 적에 천국으로 이름이 옮겨지는 것을 기독교의 영적 구원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죽음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있는데 몸이 죽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온 것이니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로 그 몸은 죽었지만 그 영은 피의 제사를 드리는 영이므로 하나님 앞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이라도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자범죄를 지을 적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양의 피를 제사로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그 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과 같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다 버림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 천당이라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죄의 값으로 이루어진 것이요, 영이 구원받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죽은 영도 중생을 받고 죽은 몸도 부활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안식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간교한 사단에게 미혹을 받지 않고 말씀으로 이긴 자가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인간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40. 생명은 많고도 죽을 세상

  이 세상은 생명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는 죽음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바로 하면 살 수 있고 바로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거침으로 영생과 멸망으로 갈라서는 가장 복잡한 세상이 되었다.

  옛날 공자도 순천자는 살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지만 공자도 죽었고 석가는 말하기를 선한 일을 많이 하라고 대자비를 말했지만 그도 죽은 것이다. 누구나 다 살기를 위하여 도를 찾고 살기를 위하여 빵을 찾고 살기 위해서 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이 살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완전한 생활은 아니다.

  완전한 생명을 가질 적에 완전한 인격이 있고 완전한 인격을 가질 적에 완전한 생활이 있고 완전한 생활이 있으므로 완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생명을 가져야 할 것이냐는 것을 바로 깨닫고 받아 체험하는 것이 참된 종교 신앙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종교 생활을 하므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보다도 참된 생명을 찾으므로 올바른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인의 올바른 노선이 되고 활동을 바로 하므로써 살 수 있다는 것보다도 올바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찾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인간 생활의 정로가 될 것이다.

  이 땅에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이 삶의 길을 찾아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은 인생 생활의 원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생명을 찾지 못한 종교와 또는 참된 인격을 찾지 못한 사회 활동이라는 것은 오히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여야 생명을 잃지 않고 사망을 면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아야 된다

  이 생명이라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를 통하여 받는 생명이다. 그러면 사망의 권세라는 것은 마귀에게 있고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역사는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다. 생명이 있다 하여도 사망을 이길 수 없는 생명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것이요,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은 자는 비록 적은 것 같으나 최후에는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이 없는 생명은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니 그 생명을 믿음으로 받은 자로서 움직일 때에 완전한 인격도 생활도 이루어질 것이다.

 

  2. 생명의 법에 의한 활동이 있어야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법이 없는 활동은 있을 수 없다. 사망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생명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하는 것에 의하여 인간들은 종국을 맺게 될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사망의 법에 종된 생활을 하면서 살아 보겠다고 하는 자들이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생명의 법에 종된 생활을 하면서 초인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3. 용사적인 투쟁이 있어야 한다

  금일에 모든 사람이 세 가지로 흐른다고 볼 수 있다. 용사적인 투쟁에도 첫째:자기의 주권을 찾기 위한 투쟁도 있고, 둘째:남을 섬기기 위한 투쟁도 있고, 셋째: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도 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싸워야 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용사의 투쟁도 있으니 이 투쟁은 인간의 주권보다도 인간 주권을 지배할 수 있는 하늘의 주권을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것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간을 초월한 대상자를 섬기기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힘으로 살리는 것보다도 인간 밖에의 능력과 권세로 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니 이러한 용사라야 완전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용사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끝으로 생각할 것은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을 따라간다든지 또는 사모한다든지 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소극적인 인격인 것이니 생명이 많은 동시에 사망이 없는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고 사모하고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완전한 생명에서 완전한 인격으로, 완전한 인격에서 완전한 생활로 들어가는 동시에 새 시대를 정복하는 열매를 이룰 것이다.

 

 

41. 해 놓은 일 없이 분주한 생활

  지금 사람은 대단히 분주한 것같이 보인다. 너무 분주하게 다니다 보니 그전에는 없던 길을 닦느라고 심지어 외국에서 차관을 내기까지 하면서 수고하고 있다. 그러나 다니는 사람들이 무엇을 뚜렷이 해 놓은 열매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못살겠다는 소리만 들려온다. 이것이 왜 이렇게 되느냐에 대하여 그 원인을 바로 아는 것이 완전한 지식이라고 본다.

 

  1. 인격 문제라고 본다.

  한번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는 인격이라면 열 번 백 번 왔다갔다해도 분주할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분주하지 않고도 한번이면 되게 하는데 하나님을 떠난 벌레같은 인격이 되고 보니 주권자 없는 곤충떼같이 밀려다니는 복잡한 거리가 되고 분주한 것 뿐이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빨리가는 급행차 달리기만 분주하다. 완전한 인격을 찾게될 때 분주하지 않아도 열매가 많은 생활을 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독립적 생활은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요 또는 많은 대중이 한다 하여도 완전한 지도자가 없다면 완전한 열매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들어 쓸 적에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 사람을 들어 쓰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번 말하면 그 말한대로 되는 사람이 나타나므로만이 시국난제가 해결될 것을 선지서에 미리 예언한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걸어오신 길이 즉 한번 말하면 열매가 되고 한번 손을 얹어도 열매가 되고 한번 죽어도 열매가 되고 한번 살아서 열매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를 믿는 자로서 그 손에 붙들린 종이 될 때에 전부가 열매있는 인격의 생활이 될 것이다.

 

  2. 방법 문제일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은 법이 없이 역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인간의 방법으로 해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하고 보면 허사일 것이다. 인간의 방법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이 되고 보니 공연히 분주하게 다니게 되는 것은 술 취한 사람이 공연히 떠드는 것같이 된다는 것을 모든 선지는 가르친 것이다(이사야 28장).

  방법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의한 방법이 아니고는 다 꿈꾸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사29:7~8).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자기의 방법을 취해보려는 것은 다 멸망을 자취하는 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3. 분별일 것이다.

  지금 인간들이 극도로 미혹 받기 좋은 세상이라 본다. 왜냐 하면 전부가 그전에 없던 새로운 일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1960년으로 70년까지의 기간에는 어제가 옛날이라고 하는 말이 속담이 되었다. 왜냐 하면 경제나 인심 상태 또는 과학기술이나 사람의 생활 상태가 여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됨에 따라서 종교가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본다. 왜냐 하면 종교인들이 왜 이러한 시대가 오는지 분별을 못하고 거기에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도 못 하고, 성경도 못 보고, 은혜도 못 받고, 전도도 못 하고, 한 일 없이 분주한 가운데 머리가 복잡하고 심지어 신령한 마음이 둔해지는 상태에서 공연히 세월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영계도 진리도 분별할 줄 모르고 남의 말에 충동받고 떠드는 자 되고 보니 해놓은 일 없이 분주한 생활하는 자는 교회안에까지 들어와 강단까지 점령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에 합당한 인격, 합당한 방법, 합당한 분별의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기독교가 가장 열매가 많을 때는 이때요 시간을 다투어가며 일할 때가 왔다고 본다. 해놓은 일 없이 분주한 생활은 흑암의 생활이요, 인간이 볼 때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열매가 많은 생활은 지혜로운 생활일 것이다.

 

 

42. 밝은 것 같으나 어두운 세상

  금일에 20세기 문명을 자랑하는 세상이지만 실지는 어두운 세상이라는 것을 바로 아는 자가 아니라면 시대를 분별할 수 없고 때를 모르는 금수의 생활을 하게될 것이다. 밝은 것 같으나 어두운 세상이라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이 없다는 세상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소위 문명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내가 볼 때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은 무신론이 아니고 무식론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받고 볼 때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은 너무 악해서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큰 장벽이 막힌 사람이라고 본다. 요즘 기독교가 강단에 선 사람이 하나님이 있다고 설교를 해도 신의 역사가 없을 때에 오히려 무신론 사상을 넣어주는 목사가 될 수 있다.

  오늘에 무신론 사상이 일어나는 것은 종교가 부패한 원인이라고 본다. 이 사람도 학생시에 부패한 목자를 볼 때 하나님이 없다는 점도 있어 보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있다고 했고 예배를 드리면 아무런 은혜가 없을 때에 이것이 무엇 하는 일이냐 하는 감도 있어 보았다. 이때는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노회 총회가 말할 때다. 금일에도 기독교가 공산 사상과 협상을 해도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교회안 사람은 다 아무런 은혜가 없게 것이니 결국은 짐승의 표를 받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스스로 숨어 계셔서 누가 내 말을 가감없이 믿고 순종하나 잠잠히 살피고 있다. 나의 신앙 체험에 의하면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말을 따라가면 아무런 응답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고 본다.

  내가 과거에 장로교파 외에는 다 이단이라는 말을 듣고 교회를 다닐 때에 아무런 체험도 받아보지 못했고, 다음은 믿으면 구원을 다 받으니 주일을 거룩히 지킬 필요도 없고 애써 기도할 필요도 없고 감사할 뿐이라는 복음주의를 따르다가 큰 실패를 보았고, 또는 순교 생활을 한다고 나섰지만 중심에 성결을 부인하는 종들의 말을 듣고 중심 성결을 지켜보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아무런 체험을 얻지 못했고, 그 다음에 중심 성결을 얻기 위하여 중심으로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그때부터 중심에 뜨거움을 받고 기도할 때에 15년간 한번도 중심이 식어본 일이 없고 죄가 마음에서 발생해 본 일이 없는 생활에서 영계가 열려질 때에, 예배할 때나 기도할 때나 항상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계속으로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말씀 자체가 성경 본문에서 햇빛같이 밝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성경이나 한자도 혼선되어 있지 않고 온전한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합법적 변론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제 와서 기독교는 완전한 합법적인 진리의 빛의 종교이며 완전한 생명의 신의 종교이며 완전한 거룩의 성결한 종교인 것을 체험할 때에 이 세상은 밝은 것 같으나 흑암의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 협상적인 노선

  지금 공산당과 싸우면 이 세상은 망하게 되는 환란이 온다고 공산당과 협상을 해야만 된다는 것은 밝은 것 같으나 어두운 일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 말씀에 여러 선지를 통하여 인간 종말을 기록하게 할 때에 북방을 자리잡고 나오는 무신론 사상과 침략적 정책과 기만적인 행동을 하고 나오는 세력은 인간이 볼 때는 강하게 보이므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 앞에서 떨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북방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용기있게 나가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역사가 하나님께로 나리게 되어 북방세력이 굴복을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악의 세력을 사르는 재앙이 오므로 북방이 망하는 동시에 북방 앞에 타협을 하던 무리는 함께 망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싸우던 자들이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고 말씀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이때에 말씀으로 빛을 발휘해야 될 것이다. 기독교가 민족적 국경의 차별 없이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가 된다는 빛을 발하므로 세계를 구원하는 종교가 되었고 이제 종말에 심판의 비밀의 진리를 들고 빛을 발하므로 평화 왕국을 이 땅에 이루는 완전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협상 노선이라는 것은 흑암으로 본다.

 

  3. 물질 문명에 도취가 되는 일

  금일에 인간이 물질 문명이 비약적 발전을 보게 될 때에 이것이 지상천국을 이룰 것 같이 본다는 것은 흑암중에 흑암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물질을 지배하는 인격이 아니요 물질 문명에 기계화된 이때 그 기계의 종이 된 사람이니 타락중에 타락이라고 본다. 우리는 그 기계를 바로 사용하는 목적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기계는 기계에 국한된 사회를 이루는 것이 끝이 아니요, 기계를 초월한 신정적인 세계까지가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기계 문명은 별세계까지가 끝이요 세계 인류가 한시간에 불타는 진노의 병기가 나오는 것이 끝이라고 말했고 그 기계가 피해를 줄 수 없는 신의 역사로 남은 자가 있게 되어 신의 축복을 받는 신정적인 시온산 통치 왕국이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물질 문명에 도취가 된 세상은 밝은 것 같으나 어두운 세상이다.

 

 

43. 충성된 것 같으나 거짓된 사람

  모든 사람은 다 무엇이든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충성이라는 것이 거짓이 없는 진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충성된 것 같으나 거짓이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미혹 받은 자의 충성

  이것은 가련한 일이 된다. 왜냐하면 헛된 수고를 했기 때문이다. 가장 불행스러운 일은 거짓선지를 위하여 재산을 바치고 몸을 바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덮어놓고 열심이 있다는 것보다도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먼저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 안에는 충성을 다한 것 같지만 실지는 거짓을 위한 충성이 된다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진리 하나가 바로 서는 데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 하나에서 자아를 바로 찾고 충성을 다해야 될 것이다.

  누구든지 참된 신앙 노선에서 진리 하나를 바로 찾아보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이니 반드시 옳은 종을 만나게 하고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2. 자기 주권을 위한 충성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순종하는 충성이 아니고는 아무리 열심이 있게 일했다 하여도 자기의 주권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거짓이 되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것은 진실한 것 같으나 참되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위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진실이라고 볼 수가 없고 거짓된 자로 인정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체가 거짓 영에게 미혹을 받게 되므로 진리를 바로 알 수 없다. 탈선된 길을 가게 되므로 충성된 것 같으나 필경은 거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3. 세상의 안락을 얻어 보려는 충성

  스스로 속는 자는 세상의 안락을 꿈꾸는 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볼 때에 제일로 어리석은 자는 현세의 안락을 위하여 충성을 다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한 평강을 목적두고 싸우는 자에게만 맑은 영감과 지식과 또는 총명도 주므로 무엇이든지 바로 알 수도 있고 인도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니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 향락을 목적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충성을 다한 것 같으나 결국은 바람잡이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다.

 

  4. 도덕적인 의를 위한 충성

  소위 도덕적인 사람 가운데서 자기는 양반이라는 행세를 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바쳐서 예의를 행해 보려고 애를 쓰는 자가 사람이 볼 때는 점잖고 도덕이 높은 것 같으나 실지는 거짓된 자가 된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소위 유교학자라는 사람들 중에서 이러한 일이 많이 있었으므로 이 민족이 발전을 못하고 거짓이 많은 사람이 된 것은 겉모양만 남에게 보이려는 것이 이날까지에 내려온 습관화된 자리에서 진실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일이 너무나 많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위 양반행세를 못하면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실지는 부패해지고도 겉은 양반이라는 것 때문에 국가를 망친 일을 볼 때에 충성을 다한 것 같으나 실지는 거짓이 되고만 것이다.

 

  5. 정통을 위한 충성

  기독교 안에 소위 정통이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정통을 위한 정통이 되고 정통을 위한 교리가 되고 정통을 위한 예배가 되고 정통을 위한 열심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님을 위한 충성보다도 정통의 교권을 위한 충성이 될 때에 도저히 그 예배와 기도를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판정해서 자기의 행동을 내세웠으므로 하나님은 그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도저히 그 사람의 기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종교가 부패할 때에는 소위 정통이라는 교권이 강하게 되어 정통의 교권을 순종하지 않으면 축출을 하고 압박을 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정통이라는 교만의 눈이 어두워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통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충성이라는 것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44. 쉬운 것 같으나 어려운 일

  세상의 모든 일은 쉬운 것 같으나 바로 알고 보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을 완전한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엇이나 다 경솔히 보고 쉽게 여기는 것이로되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일을 볼 때에 경솔히 보지도 않고 쉽게 여기지 않고 어렵게 여기는 동시에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로만이 해결된다는 것을 믿는 것을 영적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제 쉬운 것 같으나 어려운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지식에 대하여

  오늘에 인간들은 과학적 지식이 조금 발달했다는 교만에서 너무나 인생관을 과학적 지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만다는 것은 멸망을 자취할 교만이라고 본다.

  사실인즉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가는 지식보다도 사람이 참된 진리를 바로 믿는 신앙의 지식을 바로 찾는 일이 더 크다고 생각지를 못하고 과학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의 완전 계약을 믿는 신앙을 쉽게 여기고 판단하는 일은 도저히 인간 영계에 대한 이치를 조금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흑암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쉽게 보고 쉬운 일을 어렵게 보는 사람을 어두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 자체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전부가 어려운 일 뿐이요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할 적에 어려운 일 같으나 모든 일은 다 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조물주의 역사없이 자기 힘으로 하려는 자에게 역사하지 않으므로 교만한 자는 넘어지게 되고 겸손한 자는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2. 싸움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은 자기가 어떠한 방침으로 해서든지 이겨보려고 하는것이 인간의 야심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실패는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이겨보려고 싸우다가 피차 망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싸움을 많이 싸워서 이긴 사람을 영웅으로 보고 못이긴 사람을 못난 사람으로 본다.

  인간의 싸움이라는 것은 사실인즉 어리석은 싸움이다. 왜냐하면 참된 이치를 모르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힘으로 싸우던 사람들은 결말은 다 후회하고 슬픈 비관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금일에 싸움을 위하여 연구하다 보니 인간 자멸이라는 비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참된 진리를 위한 싸움이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마귀편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니 인간 생각으로는 어려운 일 같으나 싸우고 보면 쉬운 일이 될 것이로되 인간 야욕에서 싸우는 싸움은 쉽게 이길 줄 알고 싸웠지만 결말은 피차에 승부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쟁의 난국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금일에 이 난국을 돌파하는 일은 서로 협상을 하는 것이 쉬운 일 같으나 이것조차도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난국 해결의 승리는 멸공진리 운동이라고 본다. 하나님편에서 말씀한 진리를 위하여 싸울 적에 붉은 마귀의 세력은 바람앞에 등불같이 꺼지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는 이도 하나님이요 그 일을 하루아침에 해결시키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이렇기 때문에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싸움에 실패할 것이고 진리를 아는 사람은 싸움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3. 사업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은 사업을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밤낮으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에 완전한 성공이라는 것을 본 자는 심히 적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욕심이 많은 인간들은 무슨 사업을 할 때에 욕심에서 쉽게 알고 시작했다가 실패를 당할 적에 오히려 사업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한 실망을 당하고 만다.

  풀 한 포기에 열매를 먹고사는 인생이 자연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떠난 사업이라는 것은 쉽게 보았지만 결국은 다 어렵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되는 사업은 어려운 일 같으나 모든 일이 쉽게 되는 것이요 축복이 떠난 사업이 될 때에 쉬운 것 같으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4. 인격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난 멋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잘난 것 같이 생각을 하나 자기의 잘못조차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한 인격에서 결국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위한 인격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나 쉽게 생각을 하나 다 실패가 되고 보니 쉬운 일같이 생각했던 사람으로 실지 어려워 못할 때에 자기인격이 수치라는것 하나를 나타낸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 주는 것을 받은 인격은 자기를 위한 인격이 아니요 대중을 위한 인격으로서 모든 일이 어려운 일 같으나 말 한마디에 해결되는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인격이 인격을 위한 인격이라는 것은 동물이 동물을 잡아먹는 세계와 같이 될 것이다. 인격을 위한 인격이 아니요 인격을 주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인격이 될 때에 사람의 인격을 초월한 신의 사람으로 세계를 하루아침에 통일하게 될 것이다.

 

 

45. 슬픈 일 같으나 기쁜 일

  인간의 생활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아볼까 하는 것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즐거움을 찾으면서도 실지는 슬픔이라는 것을 면치 못하고 마는 것은 슬픈 일 같으나 기쁜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즐거운 일을 찾다가 오히려 슬퍼하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슬픈 일 같으나 기쁜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부족을 깨닫는 생활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부족을 깨닫는 애통의 눈물이 없이는 참된 기쁨의 세계라는 것을 맛 볼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의 몸에 나쁜 균이 들어가서 전염이 되는 상처가 있다면 그것을 사정없이 깎아내는 수술을 받을 적에 슬픈 일 같으나 오히려 이것은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잘못된 죄가 무엇인지를 알 때에 오른손이라도 찍어 버리고 오른팔이라도 찍어버리고 눈이라도 뽑아 버리는 일은 슬픈 일 같으나 그 손과 눈과 팔이 있어 가지고 전체가 망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슬픈 일 같으나 고치기 위한 일이라면 결말은 기쁜 일이 될 것이다.

 

  2.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

  인간의 모든 생활은 싸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 타락한 인간 사회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아니고는 싸움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 싸우다가 자기를 망치는 비참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라는 것은 싸우도록 점점 기쁨을 얻는 체험을 받게 된다.

  어리석은 인간이 볼 때는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이 당하는 일을 망했다 실패했다고 보고 있지만 실지는 그 사람은 거기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을 얻고 인간 밖에의 미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중 스데반이라는 사람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돌에 맞아죽는 자리에서도 그 얼굴이 천사같이 기뻐하면서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하면서 그 영은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이 정의를 위하여 싸울 때에 로마 옥중이 슬픈 일 같으나 오히려 항상 기뻐하라는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인생의 참된 기쁨이라는 것은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데서 체험한 자라야 참된 영원한 기쁨을 소유하는 인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3. 작은 일에 충성하는 생활

  모든 인간들은 각각 자기가 큰 일을 해보려는 영웅심을 가지고 날뛰다가 그대로 되지 않을 때에 심지어 자살을 하는 데까지 떨어진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사르밧 땅 과부의 생활은 엘리야를 만나서 엘리야에게 떡 한 조각을 빚어주고는 과부와 그 아들 독자는 굶어죽을 비극을 만났던 것이다. 엘리야는 그 비극을 만난 가정에서 한번 기도한 후에 그 집에는 3년 6개월 비참하게 가무는 기근 속에서도 먹고 남음이 있는 기쁨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모든 사람이 무서운 재앙을 받을 때에 기뻐할 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던 빈곤한 자들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인간이 볼 때는 돈 많은 부자가 큰 일을 하는 것 같으나 쓸쓸한 빈민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을 했고 사도들이 나오게 되었고 모든 성도들이 다 비참한 카타콤이라는 빈민굴 속에서 싸워 승리하므로 전세계 인류를 살려내는 열매를 가져 왔다는 것은 슬픈 일 같았으나 기쁜 일이 된 것이다.

 

  4. 시련 속에서 참는 생활

  하나님께서는 크게 쓸 종에게는 남보다도 시련이 많게 한다. 쓰지 못할 사람에게는 시련을 주지 않고 크게 쓸 사람에게는 시련을 줄 때에 쓰지 못할 인간들은 그 사람을 비소하게 된다. 그러나 시련 가운데서 낙심하지 않고 눈물 흘려 밤을 새우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므로 슬픔에 잠겼던 눈물의 기도는 승리의 개가로 바꾸어지는 기쁨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크게 쓸 종에게는 그슬린 나무같이 되도록 사단에게 피해를 당하게 하고 오히려 사단의 세력을 짓밟고 나가는 용사가 되게 하여 새로운 역사를 하게 하므로 그 종을 통하여 여호와를 자랑하게 하는 것을 촛대 교회의 스룹바벨 역사라는 것이다.

 

 

46. 작은 일 같으나 큰 일

  인간들은 작은 일 같으나 큰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작은 일을 큰 일로 보고 큰 일을 작은 일로 볼 때에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모든 학자들까지도 실패를 하는 일이 있다. 이제 작은 일 같으나 큰 일이 무엇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정치적으로 작은 일 같으나 큰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바로알고 정치를 할 때에 그 정치가는 큰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정치가의 제일 큰 일은 작은 국민 하나를 바로 깨우치는 인격이 될 때에 전국민을 살리는 인격이 될 것이다. 어떤 정치가가 백성 하나를 바로 깨우쳐 줄 인격이 없다면 그 정치가는 어리석은 시민의 자격에 불과한 인격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적어도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인격을 가지고 대중을 지도 할 때에 대중이 하나같이 깨닫게 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2. 종교인으로서 제일 큰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체험한 자라야 산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인은 골방 속에서 소리없이 묵상하는 일이 있으므로써 큰 일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받는 것이니 고요한 밤 고요한 침상에서 소리없는 묵상으로 하나님께로 교통을 받는 일이 종교인에게 없다면 그 사람은 큰 일을 하는 것 같으나 죽은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3. 학자로서 작은 한마디 학설이 대중을 살리는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을 모른다면 그 학자는 간판을 위한 학자가 될 것이다.  소위 박사라는 간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사가 간판을 위한 박사라는 것보다도 일언반구의 말 한마디에 생명의 진리가 없다면 그 학설은 생명없는 이론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학자가 되려면 한마디 말에 생명의 진리의 초점이 무엇이냐는 것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지혜와 명철을 받아야만 될 것이다.

  4. 사업에 관하여 작은 사업 같으나 큰 사업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그 사업은 아무런 열매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가장 작은 일 같으나 큰 사업은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사마리아 여자 하나를 구원시킨 것을 내 양식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내 몸같이 알고 그 생명 하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가장 큰 일인줄 알고 전 사업의 초점을 여기에다 두는 사업이라면 그 사업 전체는 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사업기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성신 삼위께서 역사하는 초점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이 아무리 큰 사업을 하는 것 같이 보이나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일이 있는 사업이라면 그 사업 전체는 천국을 위한 것 보다도 지옥을 위한 사업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지극히 작은 생명의 소자 하나를 내 생명과 같이 아는 심정이 없다면 열매없는 가을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구원해 주는 일이 제일 큰 일이라는 것을 알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축복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47. 큰 일만 남은 세상

  인류 역사상 큰 일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같이 큰 일이 많은 세상은 없다고 본다. 인류역사상 크게 복 받을 일도 크게 화 받을 일도 이제 남았다고 본다. 이제 크게 화 받을 일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상 문제다

   이날까지 타락한 인간의 생활이 없이 온 것은 아니로되 지금같이 인간들이 사상적으로 타락한 때는 없었다고 본다. 크게 화 받을 사상은 배도적인 사상이다. 배도라는 것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데서가 아니고 진리를 듣고도 그 진리를 대적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배도라는 것이다. 금일에 유물론 공산사상이라는 것은 전부가 그리스도의 사상을 없애기 위하여 꾸며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이 사상은 간교한 옛 뱀 마귀가 최후 발악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사상이다. 잔인해도 극도로 잔인하고 기만적인 행동 중에도 극도로 기만적이요, 인생이 타락하는 중에도 극도로 타락한 사상이다. 이 사상이 금일에 세계 인류의 마음을 끌고 가는 것은 인류전멸이라는 큰 화를 가져오는 바벨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 사상은 죄악의 사상인데 사람을 금수화 시키는 사상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2. 전쟁 문제다

  이날까지에 전쟁은 역사를 이룬 것이다. 인류역사라는 것은 전쟁이 없다면 역사가 될 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세계 전멸이라는 전쟁을 완전히 무력으로 준비되었다는 것은 큰 화를 가져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협상을 한다는 것도 큰 일이요, 이 전쟁을 강조한다는 것도 큰 일이다. 그러면 전쟁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일이 오늘에 머리가 아픈 두통거리라고 본다. 세계 인류를 다 죽이고 몇 사람이 남아도 공산주의는 하고야 만다는 공산 정책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의 큰 화를 가져 올 일이라고 본다.

 

  3. 큰 미혹이다

  이날까지에 미혹이라는 것은 없는 것은 아니로되 이제 전 세계 인류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 외에는 다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큰 미혹이 있은 다음에 표 받은 자는 몽땅 없애고 표 받지 않은 사람만 남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인종 전멸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미혹은 거짓선지가 교회에 들어와 붉은 짐승의 세력 앞에 머리를 숙이도록 하는 미혹인데 이것은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첫째 : 세계 인류를 살린다는 조건이요,

  둘째 : 완전한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요,

  셋째 : 빈민을 살려준다는 간판 밑에서 큰 미혹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 대적이 되는 사상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기를 인류종말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사람은 전부 불로 살라 없이 한다는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덮어놓고 싸우지 않도록 해서 세계 인류가 똑같이 다 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은 악자는 버리고 의로운 사람을 남은 자가 되게 하고 악자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없이 하므로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인데 이들은 말씀을 떠나서 덮어놓고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곤고하고 가난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보호하여 남은 자가 되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데는 교만하고 물질향락에 도취가 된 자는 다 없이 한다는 것인데 이들은 부자를 없이하는 것보다도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 시켜서 누구든지 그 정치를 순종하는 자는 빵을 주고 순종치 않은 자는 무조건 죽인다는 것이니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주장하는 공산당에게 물건을 다 맡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거짓선지를 이용하여 거짓선전을 하고 미혹을 시켜서 자기네 정치로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니 누구나 다 미혹을 받도록 허위 선전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적과 기사까지 마술적으로 행함으로써 다 표를 받도록 하는 미혹이 오는 것이다.

  이제 크게 복받을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라고 본다

  과거에 모든 선지들은 큰 축복이 성도에게 올 것을 묵시로 보았고 사도요한도 계시로 보았던 것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같이 환란가운데 남은 자의 축복을 목적두고 말씀한 성경을 알아보려고 애썼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맡은 사명이 아니므로 이날까지 봉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때에 와서 그 비밀을 몽땅 알려준 것은 이 축복을 받을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지금 이 축복을 받기로 택한 자가 있으니 이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나님은 강권으로 들어쓰게 될 것이다.

  종 중에 복 있는 종은 종말에 남은 종으로서 예언을 증거하다가 변화 승천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지금은 무엇으로 보든지 분명히 변화성도가 되어 큰 축복을 받을 시기라고 보게 된다. 부활성도는 순교의 피를 흘리고 죽은 자로서 부활하여 왕권을 받게 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예언을 증거하던 종으로서 그 자손까지 지상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촛대교회라고 본다

  이날까지는 교회가 부분적인 지식에 은사를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 그 영혼을 구원해 주는 역사를 하였지만 촛대교회는 완전한 신앙 지식을 가지는 동시에 완전한 역사를 하게 되고 완전한 역사를 하게 되는 동시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단체적으로 남은 교회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촛대교회의 양떼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정의 전체가 새 땅 축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아의 가정이 복을 받았다 하여도 새 시대를 이룬 것은 아니요, 아무리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가 복을 받았다 하지만 새 시대를 이룬 교회는 아니다.

  그들의 몸은 다 풀과 같이 쓰러지는 자가 되어 지금까지 흙이 되어 있다. 그러나 촛대교회의 양떼는 들림 받지는 못하였지만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고 원수의 피해를 조금도 당치 않고 천사의 보호를 받아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이제 큰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든지 촛대교회를 이루어야만 될 것이다.

 

  3. 동방 땅 끝의 나라이다

  모든 선지는 가장 복 있는 나라는 동방 땅 끝의 한 나라인 것을 말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며 열방의 복 받을 성도들이 자녀와 은금을 아울러 싣고 동방 나라에 들어오므로 그 곳이 영화롭게 되고 그 나라 전체가 세계에 빛나는 나라가 되어 시온이라 이스라엘이라 명칭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이 나라에 여호와의 영광이 비치는 반면에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나라가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대한민국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국가를 주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중심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신정 국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은 우리 나라를 가장 불행스러운 나라로 보지만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는 위기에 빠진 나라에 나타났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동시에 이제 이루어질 일이다.

 

 

48.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사람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 인간들이 다 취한 사람같이 된다고 말하였다. 정치인이나 문화인이나 종교인이나 다 사람이 볼 때는 분명한 것 같으나 실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다 취한 사람으로 본다고 했으니 이것은 어떠한 사람이냐는 것을 성서를 통해서 증명한다.

 

  1. 세상의 안락에 도취된 자 (사28:1~5)

  오늘날 물질만 있으면 얼마든지 영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물질문명에 도취가 되기 쉬운 세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은 보통 자기의 생각밖에 놀랄 일이 있으면 거기에 끌리고 마는 것이 인간이다. 금일에 물질문명은 19세기 사람으로 감히 상상도 못하던 세계를 이루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사상은 19세기까지 종교가 필요했지만 20세기에는 종교가 필요 없다고까지 되는 현실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자랄 적에 완전한 성년이 되기까지는 부모를 의지하지만 완전한 장부가 되어 무엇이나 자유롭게 활동할 때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이 19세기까지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20세기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금일에 와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20세기 과학 문명은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심판이 올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데 이것을 말하자면 1917년부터 일어난 쏘련 혁명은 종교가 필요 없다는 소위 종교를 대적하는 적색 사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을 기준하여 연구해 볼 때 반드시 종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 소위 레닌맑스주의라는 것이다.

  실지 과학이 발달되므로 성경은 분명히 증거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니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성경이 없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라고 본다.

 

  2. 종교적인 교만에 도취된 자 (사28:8~10)

  소위 정통이라는 신학을 가진 자들이 정통에 취해 가지고 새로운 발전을 모르고 바짝 마른 나무같이 말라 가지고 새로운 순의 종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 소위 바리새교라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을 배운다는 사람들이 메시야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교만에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여 예수를 이단이라고 정죄 했고 성경 해석을 잘못하여 십자가를 반대했다.

  이 사람들이 분명한 것 같으나 취한 자들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소위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만 분명한 종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분명한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자들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으면 기분에 취하고 기분이 나빠 성을 내게 될 때에는 거기에 취한 자가 되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종교라는 것이 흥분, 감정에 치우치면 그 종교는 다 마귀 술에 취한 자라고 본다. 종교가 발전할 때에 그 세력에 도취가 되어 진리보다도 그 세력을 따라갈 때에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분명히 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자가 된다. 여기에는 진리의 생수가 없고 마귀의 독주가 따르기 때문이다.

  성령은 언제나 정상적인 진리에 입각하여 역사하는 신이니, 진리에 잘못된 판단이나 해석이 있을 때는 자동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분명히 교회를 처리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금일에 와서 영계 분별의 지식도 없고 성경을 변론하는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일이나 함부로 자행자지하는 것은 종교적인 생활이 똑똑한 것 같으나 실지는 취한 종교 생활을 하게된다.

 

  3. 정치적인 권리에 도취된 자 (사19:13~15)

  정치라는 것은 그 시대를 따라 인생을 살 길로 지도해 주는 일에 지식이 없이 덮어놓고 자기에게 권리를 주었다고 함부로 백성을 지도하는 것은 취한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권이라는 것은 인간 자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님께 있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지도하는 자 외에는 모든 정치인들은 대부분이 그 권리에 도취가 되어 남을 함부로 죽이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하는 정치인은 분명한 사람같이 보이면서도 실지는 취한 자이다.

 

  4. 오락에 도취된 자 (사5:11~14)

  사람이라는 것은 오락적인 방면에 도취가 되면 그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므로 오락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일시 기분을 주는 것 같으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분명한 사람도 분명한 일을 못하게 되는 마술적인 행동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마술이라는 것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하는 흥분을 주어서 사람들을 끌리게 만든 후에 사람을 미혹시키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락적인 방면으로 흐르는 인격은 분명한 사람 같으나 취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인격이 무엇에 끌리지 않고, 보이고 들리고 만지는 바를 초월해서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만지는 바를 바로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자라고 본다.

  과학적인 지식에 끌리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인 지식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하며, 정치적인 권리에 끌리지 말고 정치를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하며, 종교적인 어떤 세력에 끌리지 말고 종교 신앙 양심을 바로 갖고 종교 기관을 좌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며, 오락적인 방면으로 끌리는 것보다도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격이라는 것이다.

 

 

49.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

  인생은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이 무엇인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입에 무엇이 잘 먹여지면 그것을 만족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은 잘 먹는 것 같으나 실지는 빼앗기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주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고 굶주린 자에게 떡을 주고 최후에는 죽을 인생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시었다. 또 지금은 성령을 부어 주신다. 이것이 전부 받는 일이다.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은 주시므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2. 주고 싶은 하나님의 종 된 생활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주시고 주는 일의 종이 된 자에게 얼마든지 몇 갑절의 상급을 주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된 생활은 언제나 주는 생활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누구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사람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종을 쓸 때 주고 싶은 사랑 속에서 쓰는 것이니 진리를 남에게 나눠주는 종은 언제나 진리를 공급하는 동시에 하늘의 왕권의 상급을 아울러 주는 것이다. 주의 종으로서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얼마든지 남에게 줄 것이 있게 된다. 이것을 충만한 종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생활이 가장 재미있는 생활이다.

 

  3. 하나님은 거저 주고 거저 받도록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은혜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남에게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축복을 받게 될 때에 이것은 복된 생활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기쁨이나 만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남에게 주는 종을 받들어 주는 생활이다

  아무리 종을 받든다 하여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는 종을 받드는 것은 무효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선지자를 받들면 선지의 상을 받는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언제나 진리를 풍성히 하나님께 받아서 남을 살려주는 종을 받든다면 그 종이 하는 일을 받드는 종도 같이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은 취급한다. 그러므로 참된 종 하나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엘리야에게 떡 한 조각을 준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하나님은 기름과 가루를 공급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주고받는 일과 대표적인 종이 주고 받는 일과 일반적인 성도가 주고받는 일에 대하여 잘 분별할 때에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 하나를 체험할 때에 이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

  소위 공산당들은 배고픈 자에게 빵을 준다는 미명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공산이 아니요, 공상당이라고 볼 수 있다. 공상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일을 공연히 생각을 하며, 하고 본즉 실패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큰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씨가 없이 망하고 마는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50.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에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으로 창조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믿음이 있되 바로 참된 것을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완전한 세상을 두고 완전치 못한 세상을 두었다고 본다. 이것은 완전치 못한 세상에서 완전한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완전한 세상으로 가게 한 것이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믿음이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해 주시는 대상자를 믿으므로써 완전한 것을 받으므로 만이 완전한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물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는 대로 끝을 맺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이다. 믿는 대로 갚아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동시에 가장 간교한 마귀의 말도 있게 하신 것은 믿는 대로 받게 하는 공의로운 법칙에 대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법을 주는 동시에 간교한 뱀을 통하여서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말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마귀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 이 세상에 사망, 고통, 슬픔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참 인줄 믿고 타락한 인생에게 다시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미래를 모르는 인간이므로 현재 좋은 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장차는 망하더라도 그때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방침을 쓰는 미혹을 시키는 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요, 하나님은 금시는 괴로움을 주는 것 같으나 장차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축복으로 주자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내일 일을 모르는 인간들은 대부분이 마귀의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제 믿음에 대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만 믿는 다는 소위 과학적 신앙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금일에 문화인들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관을 가진 자들은 그 인격이 물질계 안에 국한된 인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격자는 그 생활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세계에서 오는 것으로 미를 이루고 살아보려는 자들이다.

  이러한 생활은 인생의 생명의 가치를 다 발휘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그런 범위 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공중으로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는 새가 광주리 속에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생활이라고 본다.

 

  2. 신비를 믿는 신비주의적 신앙이 있다.

  이 사람들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을 믿는 신앙보다는 좀더 들어가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영안으로 본다는 것과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신의 역사를 몸에 체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노선은 예를 든다면 아무런 목적 없이 술을 먹고 즐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이 신비의 체험으로만 종교 신앙의 미를 두는 것은 한 광신의 신앙가가 될 수도 있다.

 

  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합법으로 믿는 신앙이 있다.

  이 신앙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 : 소위 정통파라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이적은 폐지라는 학설이 있다. 이것은 신께서 성경을 세상에 나타내 주기 위하여 그 시대에는 이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신비적인 체험을 부인하는 소위 학자적인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앙에는 바리새교인과 같이 외식하는 일이 있게 된다.

  둘째 : 참된 약속을 믿는 동시에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산 체험을 받고 말씀이 교리화된 것보다도 인격화되고 생활화되어 그 말씀을 증거하되 교리적 학설보다도 체험적인 인격을 가지고 생활화되는 세계에서 그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서 증거 할 때에 받는 자들도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동시에 인격과 생활로 체험 있는 은총 속에서 날마다 푸른 새순같이 새로워지는 생활이 있게 된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로되 믿음이 과연 조물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의하여 그 생활은 좌우되고 있다. 신앙은 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조물주를 통하여 완전치 못한 인생에게 주는 것을 받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참된 믿음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믿음을 자신이 가진다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로되 택한 자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준다는 것은 완전한 것을 택한 자에게 주기 위한 사랑의 법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께로 믿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51.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

  금일에 인간 과학적 지식이 극도로 발달하여 19세기 사람으로서 놀랄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금일에 작은 것 같으나 큰 지식이라는 이 체험을 가진 자만이 삶의 길이 있게 될 것이다. 인간들은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을 모르고 종교를 무시하며 작은 지식을 가지고 큰 지식을 판단하며 작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큰 지식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는 일도 있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작은 지식 같으나 큰 지식이라는데 대하여 그 지식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자기 하나를 바로 아는 지식

  모든 인간들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 그것조차도 모르면서 소위 박사라고 하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 때 그 생명을 위하여 활동하는 생활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땅속에 있는 광물을 캐내는 것은 광물 박사라 하면서도 자기 속에 있는 생명 하나를 바로 아는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어떤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했던 것이다. 어떤 부자가 물질을 많이 쌓아 놓고는 말하기를 내 영혼아 편히 지내보자고 할 때에 하나님 편에서는 그 영혼을 그날 밤 부르셨는데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간단히 말했던 것이다.

  소위 유물론 공산당들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꼭 같다고 하면서 사람을 고등 동물이라고 하니 자기 생명조차도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 세계를 통일해 보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고 웃을 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삼척 동자라도 자기 속에 있는 생명 하나를 바로 알고 그 생명을 위한 진리를 탐구한다면 이 소년은 세계를 통일할 인격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아무리 만리 장성을 길게 쌓고 아방궁을 높이 짓고 자기 혼자 살아보려고 삼신산 불사약을 구하려고 동남 동녀 500인을 동방 바다 섬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이 진시황은 큰 일을 한 것 같으나 그는 어떻게 해야 사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허덕이다 말았다는 것이 동양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것이다.

  나사렛 작은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던 나사렛 예수가 병자 하나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문둥병이 있는 자를 어루만지던 예수님의 역사는 필연코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누가 천국에서 제일 크냐고 하던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앞에 놓고 이 어린이 같이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제일 큰 자가 된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 하나를 바로 하는 것이 장차 내게 얼마나 큰 일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소위 정치가라 하면서 이것 하나를 모른다면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바람잡이 생활을 하는 무식한 사람일 것이다.

 

  3.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지식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금일에 소위 기독교의 지도자라 하는 자들이 이런 말을 하는 자도 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가게 되면 성경은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감으로써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것으로만이 세계를 바로 알 수 있고 시대를 바로 알 수 있고 앞  길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신학생이 신학교는 성경을 배우는 신학교가 아니고 신학을 배우는 신학교라 하는 것은 위험한 말이라고 본다. 소위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 한 절을 잘못 알므로 교회를 망치는 일이 있고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 있는 것이다. 성경 한 절을 바로 알기 위하여 하늘에서 오는 지혜, 지식을 찾는다는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과학 연구소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자는 위대한 일로 알고 작은 골방에서 소리 없이 하나님과 교통 받으며 그 시대에 대한 말씀 하나를 바로 알기 위하여 하늘의 지식을 찾는 사람은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라고 보는 세상이 되고 보니 이 세상은 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의 도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리석고 가난한 자 같으나 성경 한 절을 바로 아는 지식을 받는 자만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는 자격을 가진 자라고 보게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전 생애를 그 지식에 바쳤던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바리새교인들은 바울을 염병 같은 놈이라고도 하고 이단 중의 괴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목수 예수를 바로 아는 지식을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친  바울은 세계 통일의 대종교를 이루는 진리의 대표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감찰할 때에 당신의 말씀 한 절을 바로 아는 지식을 찾는 사람에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새 일의 역사라는 것이다.

 

 

52. 경고를 싫어하는 비극

  인간이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있어서 모든 일이 바로 되는 것이 아니고 경고를 달게 받아서 바로 깨닫고 나갈 때에 아무리 재앙이 내리던 땅이라도 다시 축복이 내리고 인심이 악화된 사회라도 다시 평화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고를 싫어하는 자가 될 적에 축복이 내리던 땅에 재앙이 나리기도하고 평화로운 자리에서 기뻐하던 땅에 무서운 환란이 오기도 한다.

  이제 경고를 싫어하는 자의 비극이라는데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1. 경고를 싫어하던 예루살렘의 비극 (왕하25:1~21)

  아무리 하나님의 성전이 화려하게 건축되었고 거룩한 도성이라 하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싫어하던 예루살렘이 만난 비극은

  첫째 : 기근이 왔고

  둘째 : 왕의 두 눈을 뽑은 일과 아들들을 목전에서 죽인 일이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하던 왕이 경고를 싫어하므로 가족 전멸을 당하는 비참을 볼 때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셋째 : 모든 귀인들의 집을 불살라 버린 일과 모든 성벽을 헐어버린 일을 보면 하나님의 성민이요 성직자라는 귀인들이 몽땅 원수에게 망하여 그 화려한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넷째 : 하나님의 성전이 다 헐리고 모든 거룩한 기명을 다 원수가 가져가고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예루살렘의 슬픔일 것인가.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면케 해 보려고 눈물을 흘려 경고를 하였지만 선지의 경고를 싫어하고 심지어 참된 선지를 박해했던 것이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비극을 가져오는 죄가 되었던 것이다.

 

  2. 경고를 싫어하는 인류의 비극 (계18:17~24)

  지금 인간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보다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하고 죽었다는 말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부패하였으므로 경고를 싫어하다가 망하였고 인간 종말에는 싫어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대적하는 정치를 하다가 멸망을 하는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죽이는 환란이 있을 것을 말씀했다.

  지금 공산주의를 이기는 일은 선지의 경고의 묵시를 달게 받고 순종하면 큰 축복이 오고 순종치 않을 때에 큰 화가 온다는 것이 기독교 종말의 경고가 된다. 모든 선지서는 그 때의 선지들이 경고를 말로 나가서 증거할 때에 예루살렘 거민이 순종치 않으니 선지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눈물 흘려 기도하며 하나님께 자기의 사정을 호소할 때에 인간 종말에 대한 경고의 묵시를 받아서 기록한 것이 선지서라는 것이다.

  금일에 계10:7과 같이 경고할 때가 왔다. 우리 나라에 모든 선지의 경고의 묵시가 다시 예언할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새일수도원은 이 시대의 경고를 할 사명자를 양성하는 기관이라고 보게 된다. 지금 새일수도원에 나타난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만일 한국 교회가 이 진리 운동을 계속 반대한다면 큰 수치를 당할 일이 있을 것이니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고 무엇이 성경의 탈선인 것을 발견해 주기를 바란다. 무조건 경솔하게 풍설을 듣고 이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멸망을 자취하는 비극이 될 것이다.

  금년부터 우리 나라는 동방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정치인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부 받아들일 적에 이 나라에 큰 축복이 임할 것이다. 만일 이 백성이 이 나라에 임한 경고의 말씀을 듣기 싫어한다면 비극이 있을 것이로되 멸공 진리 운동이 가장 옳다고 하는 국민이 된다면 새 시대를 이루는 동방의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세계가 다 화를 받는다 하여도 우리 나라만은 애국가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노래를 축복 속에서 부르게 될 것이다.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때가 왔고 그 경고를 달게 받고 순종하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릴 때가 왔다고 본다.

 

 

53. 천하가 다 슬퍼해도 기뻐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천하가 다 슬퍼한다 하여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계18:19~20).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에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아벨 때부터 온 천하가 슬퍼하여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만들기 위하여 지금까지 역사하시었다고 본다. 왜냐 하면 아담이 범죄하므로 이 세상은 불가피한 죽음이라는 비극을 가져 왔지만 이러한 세상에서 천하가 슬퍼하여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했다. 인간이 볼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천하의 모든 사람이 슬퍼해도 기뻐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18:19~20을 보면 온 천하가 한 시간에 멸망할 때에 모든 사람은 슬퍼해도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고 하셨다. 이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했다.

 

  1. 사랑하는 자를 항상 징계하는 일을 하셨다 (암3:1~8)

  이것은 의합된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생을 구원코자 하는 하나님께서는 의합된 사람이 없이는 일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의합되기까지 징계를 하시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시대적인 경고를 하게 하여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던 것이다. 징계를 받고 즐거이 순종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했던 것이다(미6:9).

  이러한 일이 없이는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을 들어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징계가 와야만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징계를 많이 받고 일한 사람은 천하 사람이 슬퍼하는 날에 기뻐하는 인격을 갖게 된다.

 

  2. 사랑하는 자에게 억울한 죽음을 주었던 것이다

  어느 종이나 다 같이 임종을 억울하게 죽도록 하신 것은 심판 날에 기뻐하는 반열에 들게 하는 목적이었다. 인간이 볼 때는 평안히 죽는 것을 행복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다 험악한 길에서 싸우다가 죽게 하신 것은 축복 중에 큰 축복이라고 보게 된다.

 

  3. 마귀 참소를 많이 받게 하신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참소를 이기므로만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되어서 영광을 누리기 때문이다. 가장 복된 일은 마귀 참소가 있을 때에 그 참소를 이기고 나간 자라고 본다. 모든 천하 사람이 슬퍼하는 날은 사랑하던 자를 참소하던 마귀를 없애는 날이므로 참소를 받던 자는 즐거워하게 되고 마귀 도구가 되어 택한 종을 참소하던 자는 크게 슬퍼하게 된다.

 

  4.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도록 역사한다

  가장 진노의 날에 기뻐할 자는 예언을 지키던 사람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그 영이 중생을 받아 새로워지는 것이요 이루어질 예언을 바로 깨달아 지킬 때에 특별 보호가 같이 하므로 슬퍼하는 세상에서도 기뻐하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되 예언을 순종치 않던 자를 승리하게 하는 것은 예언을 지키는 자의 힘으로가 아니요 예언대로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에 예언을 지키지 않던 자는 자동적으로 망하게 되고 예언을 지키던 자들로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을 하나님의 공의라 하는 것이다.

 

 

54. 진리 없는 생활은 허무

  진리라는 것은 동물에게는 있을 수 없고 동물은 진리를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 동물이다. 식물은 진액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동물은 피가 없이 살 수 없고 사람은 영이 없이 살수 없는 동시에 진리 없는 영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진액을 받는 식물이 열매를 맺어 동물의 피를 공급하고 동물이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생활을 위하여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식물과 동물은 그것으로써 본분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진리가 없으면 그야말로 전부 허무한 일이 되는 것은 식물과 동물보다도 더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사람이 진리가 잘못되면 죄가 되고 죄의 값은 사람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 없는 생활은 허무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진리가 없는 생활은 흑암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창조를 받을 적에 빛의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니 빛이라는 것은 앞길을 분명히 바로 아는 것을 빛이라고 하고 앞길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흑암이라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앞길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인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만물이다. 그러므로 앞길을 모르고 사는 생활은 눈먼 소경이 길을 가는 생활이니 무엇이나 다 허무한 것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자동차를 몰고 가는 운전수가 앞길을 모르고 간다는 것은 큰 위험을 만나게 되는 동시에 모든 수고가 오히려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2. 진리가 없는 생활은 악이다.

  금일에 소위 유물론 공산당은 사람은 아무런 것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 날에 먹다 죽으면 그것으로써 인생의 끝이니 어떻게 하든지 기만적인 정책을 써서라도 자기가 할 일을 해서 마음껏 하고픈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자유라 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최고의 악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만일 이러한 사상을 가진다면 그야말로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피조물된 인생을 향하여 어떻게 행하므로써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직접 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들어서 그 진리를 알게 하고 믿게 하고 행하게 하겠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 수 있는 지식을 하나님께 받고 진리를 믿을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로 받는 동시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진리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으므로 사람은 인생된 본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떠나서는 사람은 악마의 격동을 받게 되므로 악하게 되는 것이다.

 

  3. 진리 없는 생활은 비극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 없는 생활은 아무리 정치적으로 영웅이라도 종말은 비극이었고 아무리 문학을 자랑하던 지식인도 종말은 비극이요 아무리 황금을 자랑하던 자본가도 종말은 비극이다. 그러므로 정치나 문학이나 경제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로되 진리가 없다면 종말은 비극이다. 정치나 문학이나 경제를 진리대로 움직일 적에 그야말로 많은 열매를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를 하나 바로 알므로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니 진리 하나가 바로 선 사람에게는 흑암도 죄악도 비극도 있을 수 없고 참 빛을 따라 생활하는 동시에 참된 의를 이루게 되고 참된 의를 이루는 동시에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55. 미혹 많은 세상에 진리의 사람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사람을 낼 때에 하나님과 사람과는 진리에 의하여 교통하며 진리에 의하여 향상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뱀으로 미혹을 해 볼 수 있게 창조한 것은 진리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이다.

  진리의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미혹이 있어도 진리로 미혹을 이기고 나가는 것을 말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 하는 것인데 진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더 완전하고 영원한 것을 주고자 해서 언약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법을 범했다 해도 그 사람을 다시 깨우쳐서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 타락한 인생에게 하나님이 가르친 진리라는 것이다. 이미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인생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는 것이 십자가의 도의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가 자범죄로 흑암에 빠진 백성을 다시 구원해 주는 역사가 회개, 중생, 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혹이 많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십자가의 도를 믿고 중생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써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지상왕국인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십자가 도의 끝을 맺는 것이므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은 회개하고 중생을 받은 사람들을 마귀에게 권세를 주어서 큰 미혹이 있는 어지러운 흑암을 거쳐서 미혹 받지 않고 말씀을 지킨 자들로 남은 종이 되게 하고 남은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가 된다.

  이제 마귀 미혹이 오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붉은 용의 큰 권세를 받은 짐승으로 오는 미혹 (계13:1~4)

  오늘의 모든 사람들은 무신론 사상을 가진 붉은 짐승의 정권이 강하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누가 능히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더불어 싸우리요 하리만큼 공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심판기에 오는 큰 미혹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공산주의가 들고 나오는 레닌 맑스 주의는 마귀의 미혹의 흑암이라고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동양에 도덕은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하던 교훈도 지금 보면 다 쓸데없는 것으로 알게 되었고 성경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라야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사람들은 망한다는 말이 다 쓸데없는 말과 같이 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종교나 다 과거보다는 다 세속화되는 경향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미혹의 흑암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오늘에 무신론 공산당의 정권이 점점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종교인이라도 이 시대를 바로 아는 진리의 사람이 아니고는 다 잠자는 상태로 들어가는 때이다.

 

  2. 협상주의의 거짓 선지 교권이 세계를 좌우하게 되는 일이다  (계13:11~18)

  기독교는 큰 위기를 만났다고 본다. 왜냐 하면 현 교계의 영적 상태와 진리의 지식수준으로는 도저히 거짓 선지의 미혹을 막을 수 없다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지도자들이 영계에 대한 것은 아무런 체험이 없다보니 진리조차 분명히 가르칠 수 없는 단계에 놓였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니로되 너무나 영계가 어리고 지식이 박약하기 때문에 그 미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큰 붉은 용의 권세를 이겨야 될 현실에 와서 현 교계가 이런 미약한 영계를 가지고 또는 무식한 신앙에 있어 가지고 도저히 흑암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 본다.

  지금 교계에서 소위 통합이라는 간판을 붙였지만 이것은 얼마든지 현 교계가 거짓 선지의 미혹을 받을 단계에 들어간다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계적으로나 진리적으로 좀 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되 칠 배 영감으로 들어가야만 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미혹을 개방시킨 것은 은혜 시대의 영계대로 종들을 쓰려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영계를 몇 갑절 올라가게 하고 진리의 지식도 완전한 지식에 올려서 종말의 역사를 일으킬 경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7:2 이하를 보면 성신의 인을 받은 종들에게 하나님의 인을 더 친다고 한 것은 성신의 은사적인 영계에서 하나님의 권세의 영감으로 올라갈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마귀에게도 권세를 허락하니 만큼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권세를 주어야만 하겠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이때에 권세 역사를 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기독교는 난국을 돌파하고 나갈 수가 없는 위기가 온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사람을 세워서 권세 있게 역사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3. 미혹을 해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생령된 아담, 하와는 뱀으로 미혹을 하게 한 것은 미혹을 받지 않고 이긴 자라야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흙에서 난 몸이 썩지 않는 몸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시험 없이 무조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로 미혹해 보는 것은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하는 축복을 주어서 그 자손이 지상 축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첫째아담은 마귀 미혹을 이기지 못하므로 지상 축복을 빼앗겼지만 변화성도는 마귀 미혹을 이기므로써 지상 축복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계20:4).

  셋째 : 새 시대에서 번창한 백성을 꾀어 보는 것은 그 많은 대중을 아무런 시험도 없이 무조건 천국으로 보내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천년 시대 말기에도 미혹을 시켜 보고 미혹을 받지 않아야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56. 화가 있는 세상에서 받을 축복

  이날까지 인류역사의 모든 사람들이 지상에서 큰 축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죽어 천당을 목적한 신앙가라도 이 땅에서 받는 축복을 바라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어떤 신자에게 누가 말하기를 당신은 오늘밤 세상을 떠나기를 바랍니다 하면 참말로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죽어서 천당을 가라고 낸 것이 아니고 그 몸이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면서 영원히 복을 누리라고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화가 올 때에 받는 축복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첫째 화가 올 때에 복 있는 자

  요한 계시록을 보면 인류 종말에 화, 화, 화가 온다고 하였다. 이 화라는 것은 택한 자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한 시기를 말한다. 왜냐 하면 영혼 구원을 목적할 때는 이 땅에서 택자나 불택자나 동등하게 취급했지만 화가 올 때에는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제 화가 올 때 복 있는 자를 말하자면 첫째화는 큰 흑암이 와서 온 세계를 어둡게 할 때에 그 흑암을 뚫고 나가는 사람은 왕권을 받는 동시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축복이 온다. 계9:1이하에 첫째 화는 흑암이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는데 황충떼 같은 악당이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고 나와서 사람을 해치는 데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만 해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화가 올 때에는 인 맞은 종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으로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남은 종으로 큰 축복을 받게 되는 데는 계시록11장과 같이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 종들은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를 하는 종들로 지상에서 가정적으로 큰 축복을 받을 영적 이스라엘이다. 모든 선지들은 하나같이 이 축복을 바라본 것이다. 첫째아담은 마귀 흑암을 말씀으로 물리치지 못하므로 만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들은 마귀 미혹을 이기므로 이 땅에 에덴 축복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

  사59:18~60장까지를 보면 종말에 원수를 갚는 날에 여호와의 영광이 해 돋는 편에 나타나는데는 여호와의 신을 받고 입에 말씀이 임한 종이 흑암을 물리치고 빛의 역사를 하므로 그 빛을 따라 세계의 열방의 성도들이 동방으로 모여들어 큰 축복을 받는데는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가르쳤다.

  계시록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의 역사가 해 돋는 편에서 나오므로 첫째 화를 피하는 역사가 된다는 것을 계시록9장에 말했고, 그 인의 역사를 받은 14만 4천이 세계를 통치하는 왕권을 누리게 될 것을 계14:1이하에 가르쳤다.

  인간 종말의 완전 역사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종의 역사가 있으므로 완전한 성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화가 오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왕권의 축복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2. 둘째 화가 올 때에 복 있는 자 (계12:13~16)

  지금은 하나님의 교회가 죄악의 세상에서 시련을 받고 있지만 둘째화가 오는 대 환란에서는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는 축복이 있다.

  모든 선지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할 적에 기독교 인류 종말에 복 받을 백성은 피난처의 보호가 있다는 것을 하나같이 말했다. 이날까지는 악자나 선자나 다같이 물과 양식을 주었지만 대 환란이 올 때는 첫째 화를 피하고 증거하던 종들이 가르치던 교회는 하나같이 말씀대로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네 영혼이 살리라 하는 전도요 변화성도가 전하는 복음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이 단체적으로 예비처에 있을 것과 온 세계가 불타는 날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진리를 예언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이 증거를 믿고 따라가는 자는 대 환란이 올 때에 예언대로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게 된다. 이것은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계7:9~17).

  백성 중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은 둘째 화를 예비처에서 피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사33:20~24). 영혼 구원은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고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셋째 화가 올 때에 복을 받는 가정은 온 가정이 하나같이 환란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사49:16~26). 노아 가정보다도 나은 축복이 환란 가운데서 보호를 받는 가정이라고 보게 된다.

 

  3. 셋째 화가 올 때에 복 있는 자 (계15:1~4)

  인류 역사상 많은 화가 있었지만 셋째 화와 같은 전무후무한 화는 없었다. 계시록16장을 보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헌데가 몸에 나게되고 물이 변하여 피가 되므로 물을 먹을 수가 없게 되고 햇빛이 뜨거워 사람을 태우게 되고 캄캄한 흑암이 오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아파서 자기의 혀를 깨물게 되고 애를 쓰는 광경이 보여졌다.

  이때에 주님께서 지상 강림이 있으므로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 있다고 한 것은 들림 받는 종들의 경고를 듣고 갑자기 회개하고 예비처에 들어간 무리들이 양육을 받고 구원을 받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아무런 공로가 없으나 예언의 말씀을 순종해서 보호를 받고 구원을 받는 자들이다. 지상에 에덴 축복을 그들이 받아 천년 시대에 그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57. 믿을 수 없는 일과 있는 일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나 무엇을 믿고야 사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미로에서 헤매게 된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완전한 종교라는 것이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일과 있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믿을 수 없는 일

  지금 소위 유물론 과학자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 외에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흑암이라고 본다. 참으로 알고 보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나 만질 수 있는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이라고 본다.

  왜냐 하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하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이 물체라는 것은 그것을 믿는 것보다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의 역사를 따라서 바로 사용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사람을 두고 말하자면 사람의 몸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그 몸을 움직이고 있는 영과 혼이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와 같이 우주계 안에 있는 만물을 볼 때 만물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만물을 움직이고 있는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이 물질만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허무한 생활이라고 본다.

  언제나 마귀는 사람을 홀릴 때에 현재 보고 만질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끌고 사람의 생각을 끌리게 해서 보이지 않는 장래를 망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완전한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고 만질 적에 보고 만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현재는 좋은 것 같으나 장차는 나쁘다는 것과 현재는 나쁜 것 같으나 장차는 좋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와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것을 구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이 다 풍족히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참된 종교의 빛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을 빛이라는 것이다. 참된 진리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것을 믿는 자는 모든 일이 헛되지 않고 전부가 열매가 되는 것이다.

 

  2. 믿을 수 있는 일

  믿을 수 있는 일은 참되신 조물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밖에는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진리 신앙 체험이라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신앙이라는 것은 겉으로 볼 때 허무한 것 같으나 실지 알고 보면 정확한 진리라는 것이 확실하되 그 진리를 따라 생활하도록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은 처음에는 될 것 같으나 실지 체험해 본즉 허무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라는 것은 쓴 고난이 있을 수록 그 진리를 더 분명히 깨닫게 되고 자기가 실패할 때에도 그 진리를 더 깨닫게 된다. 참된 진리라는 데는 자아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말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활이므로 항상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세계에서 오는 힘을 받고 역사할 때에 모든 일이 물질 밖의 신의 역사로 움직여지는 것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고 생활에서 체험하는 동시에 모든 활동이 다 신비적인 역사를 힘입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금일에 많은 사람이 성경을 들고 자기의 신앙 노선을 가장 옳은 줄 아는 자가 많이 있지만 그 옳다는 것도 허무한 일이 많다. 성경은 완전한 역사를 하실 하나님께서 완전한 계약을 기록한 문서이다. 그러므로 그 문서가 어떠한 목적으로 썼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하실 것을 기록했다는 것을 바로 믿을 때에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신앙가에게는 전부가 완전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된다. 참되신 진리의 신은 완전한 법이 있고 그 법을 따라서 역사하는데는 그 법대로 될 것을 믿는 자에게 그 법대로 역사하므로써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이 그 법을 준행하시는 신이시므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40년간 신앙 생활에서 참으로 믿을 것이 하나님 말씀인데는 성경 말씀 본문대로 읽어서 만족히 알게 되고 믿게 되는 동시에 본문 그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더욱 체험하게 될 때에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으로 하나를 이루게 된 것이다. 기독교는 믿을 수 있는 것만을 분명히 믿게 하는 진리의 종교인 것을 담대히 증거하게 된다.

 

 

58.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

  인간이라는 것은 노력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요 노력을 하여도 참된 노력을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노력은 하여도 헛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이다

  사람은 노력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먹을 것이 있어도 못사는 것이 인간이다. 먹기를 위하여 노력하는 인격보다도 옳은 일을 위하여 노력할 때에 먹을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는 것이다.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범위에 국한된 인간이라면 동물의 생활과 거리가 멀지 않는 생활이다.

  어떤 사람이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으니 만족이다 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도 먹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간과 같은 범위 하에 있는 사람이다. 자기 하나가 먹고 보니 만족이라는 것이나, 먹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하는 것이나, 그 인격적인 범위는 동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 있다고 만족하는 것보다도 먹을 것이 없다고 염려하는 것보다도 좀더 나아가서 사람이 먹고사는 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을 바로 찾는 진리의 사람이 될 때에 모든 문제는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 하나가 바로 선 사람이라면 먹고 못 먹는 이 세계를 초월해서 움직일 때에 먹느냐 못 먹느냐 하는 것은 생각에 둘 필요조차 없는 인격에 들어가게 된다.

 

  2. 자기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주권을 침범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본질이요, 남의 주권을 빼앗아 보려는 것이 야욕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에 있어서도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주권을 잃지 않으려고 싸우는 일도 있고 남의 주권을 빼앗아 보려고 싸우는 일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는 자는 약자가 되고 빼앗아 보려고 싸우는 자는 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라는 것은 여기에 국한된 것을 역사라는 것이다.

  이 땅의 전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서 강자가 약자를 먹고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고 할 때에 아무리 주권을 쥐고 움직이던 나라도 그 주권을 빼앗길 때 아무런 열매 없는 허수아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세력을 자랑하던 느부갓네살에게 인류 역사의 강국을 우상으로 보여준 것이다.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은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허사가 된다는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주권을 위한 싸움은 침략적 정신이 있으므로 언제나 자기가 침략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죄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권은 우리 자유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순종하는 사람 외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 : 주권을 위한 싸움은 하지 않지만 무조건 남의 말만 듣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도 침략자를 위한 도구가 되니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순종하는 것 외에 어떤 주권이든지 함부로 순종할 수 없다.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주권을 위해 싸우든지 싸우지 못하고 무조건 순종하든지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 :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앞에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었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외식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그것을 죄로 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하고 책망을 하셨던 것이다. 도덕이니 수양이니 의식이니 하여 사람에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일을 하기 위하여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중심하는 노력 외에 사람에게 보이려는 노력은 다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가면적인 행동을 할 때에 이것은 열매 없는 가을 나무와 같이 되는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종교인으로서 신앙의 대상자인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에 비종교인 보다도 더 헛수고가 많게 된다.

  넷째 :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일이다. 큰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열매가 있지만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어리석고 몽매한 인간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되려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하셨던 것이다.

  무엇이 큰 일이며 작은 일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큰 일을 무너뜨리고 작은 일을 할 때에 이들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큰 사람이냐 작은 사람이냐 하는 것은 여기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작은 일을 위하여 큰 일을 희생하는 사람을 작은 사람이라고 하고 큰 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하고 나서는 사람을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59.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열매가 없는 일

  오늘에 기독교인들이 믿음은 좋은 것 같으나 열매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 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있으므로 그 신앙은 열매가 있게 되기 때문에 아무리 믿음이 좋게 보이나 다음과 같은 신앙이 된다면 열매가 없는 믿음이 된다.

 

  1. 교파에 국한된 신앙

  아무리 열심이 있고 봉사를 잘 하고 전도를 한다 하여도 교파의 관념을 가지고 남의 교파를 공연히 치고 자기 교파만을 내 세우려는 그러한 신앙 노선은 범죄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신앙은 교파적인 관념을 벗어나 십자가 중심에서 남을 살려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것 같이 보여도 깊은 영계에 들어가서 열매를 맺는 생활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2. 독선적인 신앙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은 다 틀리게 보이는 신앙이 있게 될 때에 이것은 자칭 유대인이라는 신앙 노선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의 신앙적인 부족을 깨닫는 것 외에는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 없고 공연히 고집만 많은 사람이 되어 열심이 있다 하여도 영계에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3. 협상적인 신앙

  이 신앙은 사람이 볼 때에는 사랑이 있는 것 같고 도덕 방면으로 볼 때는 신사적이요, 인품으로 볼 때에 호인이요 모든 일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으므로 호감을 주고 흥분을 주고 또 일시적 도덕 방면으로 정당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제일로 가증한 인간으로 보시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절개가 없으므로 음녀와 같이 취급을 하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에서 절대적인 순종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리 열심이 있고 노력이 있다 하여도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무슨 운동이니 하여 사업적인 방면으로 볼 때에 열매가 있는 것 같으나 실지는 아무런 열매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4. 신비적인 신앙

  이 신앙은 기도를 많이 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영적 방면으로 노력을 많이 한다 하여도 특별한 열매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인데 진리를 중심 하지 않고 신비를 중심 할 때 하나님의 역사보다도 마귀의 잘못된 계시나 지시나 환상이나 입신 등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취가 되어 아무리 시간을 보내고 노력을 한다 하여도 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공연히 가정을 망치고 사업을 망치는 일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진리의 합법적인 신앙 노선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인격적인 체험으로 진리가 생활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여도 결말은 허사로 들어가고 마는 일이 있게 된다.

 

 

60.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

  오늘날 불의한 일 같으나 의로운 일도 있고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이 많다는 것을 바로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의로운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말한다.

 

  1. 자본주의의 정신이다

  봉건주의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바뀌어질 적에 자본만 있으면 얼마든지 산다는 것보다도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자본이 있게되는 활동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자본주의의 정신이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일은 인간이 볼 때는 옳은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불의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 자본주의가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축복 속에서 자본을 얻는 정신이라는 것은 불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사람의 인격이 자본에 끌려서 도구가 되므로 하나님의 사람보다도 자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자본을 의지할 때에 이것은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 자기의 자본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오는 법이라고 보지만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보면 경제권을 가지고 남을 억압하게 되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계18:3).

 

  2. 협상주의의 정신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싸우면 세계는 전멸이 될 것이니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협상의 노선을 취해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옳은 일 같으나 성경을 보면 붉은 짐승의 표를 받는다든지 경배를 한다는 것은 심판의 대상자라고 하였다(계14:11).

  짐승이라는 것은 만왕의 왕을 대적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그 표를 받고 협상한다는 것은 음녀로 취급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공산주의와 협상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불의라고 본다.

 

  3. 성경을 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성경 주석을 낸다는 것이 옳은 일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불의한 일로 본다. 왜냐 할 때에 성경은 사람이 주석을 쓸 일이 아니고 본문 그대로 읽어서 해석 할 수 있도록 짝이 있고 연관성의 원리가 있고 변론의 완전 조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도들이 선지서를 신약 전서에 옮겨서 기록한 것 외에는 은혜 시대의 종이 전할 사명이 아니요, 해석할 사명도 아니다. 그 밖의 것은 심판기에 전세계 인류가 불에 사름을 당하는 재앙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기록되었으며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증거하기 위하여 선지서 글이 이루어진 것을 글자 그대로 증거한 것 뿐이다. 은혜 시대의 종은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을 그대로 증거할 것 뿐이요, 예언서를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예수님이 선지서대로 행하신 일을 증거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예수 행적을 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말씀한 선지서는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올 때에 그대로 읽어서 설교할 수 있는 심판의 변론이다.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심판의 변론이므로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선지서 본문대로 읽어서 책망할 일, 위로할 일, 앞으로 될 일을 그대로 읽어서 증거할 일, 이와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의 계약서가 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변경을 시킬 권리가 없고 계약서 그대로 읽어 분명한 것이냐는 것을 확신할 것 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약서를 주신 것이니 이 계약서는 인생에게 복을 받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초림의 주가 오셔서 계약대로 행하셨고 환란 시대에는 재림의 주가 오셔서 계약대로 행하시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약서를 어떤 박사가 주석을 낼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때를 당하여서 자세히 읽고 짝을 맞추어 기록된 대로 증거할 것 뿐이다. 이것 외에는 사람이 침범하는 것은 불의가 되는 것이다(사8:20, 계22:18).

 

  4. 시대를 따라 나간다는 목적에서 속화되는 일이다

  오늘날 소위 과학 문명을 따라가자는 것은 옳은 일 같으나 성경에 비추어 보면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사47:10~11). 과학을 따라 간다는 것보다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도구로 쓸 것 뿐인데 과학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 될 행동이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과학을 따라서 이 시대가 과학 만능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 같으나 불의가 된다. 왜냐하면 피조물된 물질을 사용하는 지식으로 조물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61. 흑암과 광명에 대하여

  흑암과 광명은 그 시대에 따라 언제나 있는 것이니 그 시대의 흑암이 무엇이며 광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라야 그 시대에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광명과 흑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흑암에 대하여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말하기를 인류 종말의 흑암은 북방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흑암 속에서 올바른 빛의 노선을 찾는 자라야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고 가르쳤다.

  이날까지의 흑암이라는 것은 인간 자신이 범죄 하여 흑암의 세력인 사망의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중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무엇이 흑암인지 광명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마4:14~17).

  그러므로 예수님의 빛이 비쳐질 때에 그 빛을 받은 자는 자동적으로 그 영이 사망의 권세인 흑암을 벗어나서 광명한 빛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다(골1:13~14). 그러나 이 시대의 흑암이라는 것은 인류 전멸이라는 무서운 재앙이 올 흑암이다(사8:22, 60:2, 욜2:1~2, 계9:1~2).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는 흑암의 권세를 개방시켜 당신의 자녀들을 미혹시켜 보시고 그 속에서 이기고 나가는 자를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기독교 종말의 큰 환란은 붉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짐승은 거짓 선지에게 권세를 맡겨 세계를 침투해 나오는 것을 마지막 환란이라고 계시록13장에 가르쳤다. 하나님은 그 몸이 영생을 받아 변화 승천할 종에게는 반드시 흑암의 권세를 대립시켜 그것을 이기는 자로 남은 종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자범죄에서 속죄의 은총을 받을 때에 받는 것이요, 이 몸이 영생하게 되는 것은 마귀의 흑암 세력을 말씀으로 이긴 자라야 완전 변화를 받아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흑암이 무엇이냐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 무신론 사상이요,

  둘째 : 공산주의 사상이요,

  셋째 : 협상주의 사상인 것이다.

  이것은 인류 종말의 심판기에 나올 것을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로 받아 기록한 말씀이다.

 

  2. 광명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는 두 가지 빛을 말했다. 사9:1~2을 보면 갈릴리 해변에서 빛이 나타나 이방의 빛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59:18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원수를 갚는 날에 서방에서는 그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동방 사람에게 입에 말씀이 임하고 신이 임하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자손손이 영원한 빛이 될 것을 말할 때에 이사야60장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다. 이 빛은 새 시대를 이루는 빛이라고 이사야 60장 이하에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빛은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 새 시대에 들어가는 말씀을 빛이라고 성경에 가르쳤다. 계시록과 선지서는 지금 이 시대의 빛이 되되 현재 되는 일과 장차 될 일이 햇빛같이 나타났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미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죽은 영이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지막 흑암에서 말씀으로 이긴 자라야 자손만대의 축복을 지상에서 받게되는 것이다(사66:22).

 

 

62. 유물론 사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오늘날 소위 유물론 사상이라는 것이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까지도 그 것을 배우게 될 때에 과학 문명이라는 것은 유물론 사상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종교적으로 받는 영향

  대학을 거친 사람으로서 기독교에 들어올 때에 이미 유물론 사상을 배워 그 영향을 받았으므로 교회에 와 본즉 아무런 감화를 주는 것이 없고, 오히려 교회에 다니므로써 교회를 자기가 배운 유물론 사상으로 지도해 보려는 영향이 있게 되므로 신학교까지도 큰 영향을 받아 나날이 부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시대적인 교훈이 교회에 없기 때문이요, 그들에게 신의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단에 선 종이 유물적 교훈을 받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어보려는 전술을 쓸 적에 그들에게 감화를 주는 것보다도 종교는 하등에 필요가 없다는 마음을 생기게 만드는 영향을 주고 만다.

  강단에 하나님의 역사가 내리지 않고 이 시대의 비밀이 햇빛같이 나타나지 못할 때에는 강단에 선 종이 대중을 끌어 하나님께로 가는 것보다도 오히려 대중에게 끌려 그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주는 것보다도 듣는 자들에게 실족함을 주는 설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신앙을 갈망하던 사람들까지도 세상으로 기울어지는 영향을 주고 만다.

 

  2. 도덕적으로 받는 영향

  사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서 도덕이 좌우된다. 도덕이라는 것은 유물적 사상으로 인생관이 되면 자동적으로 부패되는 것이다.

  유물론 사상이 들어간 청년 남녀의 도덕 부패는 첫째:남녀의 절개를 상실하는 일, 둘째:부모를 공경하는 효성이 없어지는 일, 셋째:사업적인 진실의 양심을 잃어버리는 일, 넷째:정치적인 방면에 애국심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물이 성관계에 있어서 절개가 없듯이, 새끼가 어미에게 아무 도움을 주는 일이 없듯이, 동물이 내 것 네 것이 없이 마구 먹듯이, 동물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보다도 고등 동물적인 죄를 짓고 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죄를 짓는 연구를 할 줄 모르지만 사람은 죄를 짓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3. 사회적으로 받는 영향

  사회라는 것은 서로 돕고 서로 우애하고 서로 믿는 것이 없다면 사회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고 만다. 유물론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동물과 같은 사회가 될 수 있다. 동물이 서로 이유 없이 싸우듯이 오늘에 와서 공연히 민족이 민족을 이웃이 이웃을 형제가 형제를 도와 줄줄 모르고 빼앗아 먹으려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당은 공산주의 사상을 넣어서 사회를 공산화시키기 위하여 백성에게 언론 자유나 출판 자유나 경제 자유나 신앙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짐승을 길을 들이듯이 최고상임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하여 모든 것을 위에서 진행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만을 백성들에게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를 위한 것보다도 공산당의 거두가 되는 사람을 위하여 도구가 되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유물론 사상이 들어간 사람은 이런 정책을 쓰지 않고는 안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을 고등동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만난 이 때에 새 일의 역사가 없이는 종교, 도덕, 사회를 바로 지도할 수가 없고 유물론 공산주의의 피해를 자동적으로 받게되는 것이다. 새 일이라는 것은 이러한 시국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새 일에 대한 진리가 변론으로 나타나며 또는 권리행사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므로써 인간 종말의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63. 경제 혼란과 인심 동태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경제에 국한된 인격이 되지 않고 경제를 초월한 인격이 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러한 인격을 가진 자가 몇 사람이냐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경제 혼란이 닥쳐오는 오늘에 인심 동태를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이냐에 대하여 정치인이나 종교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속담에 인심이라는 것은 광에서부터 좌우된다고 한 말도 있다. 이제 인심 동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닥치는대로 먹고 보자는 것이 다수를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빚을 내어서라도 먹고 보자 또 그 때 그 때에 사기를 해서라도 먹고 보자는 것이다. 사흘 굶으면 도둑질을 안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속담이라면 배가 고파 남의 것을 먹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심 동태다. 남의 것을 먹고 없어서 갚아주지 못하는 것은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심 동태인 것이다.

  2. 어떻게 해서라도 머리를 도끼로 삼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된다는 사람이다. 도덕과 양심을 떠나서 상업에는 상업인의 도덕을 떠났고, 정치에는 정치인의 도덕을 떠났고, 종교에는 종교인의 도덕을 떠나서라도 돈을 번다고 악착같이 나서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밤새도록 침상에서 연구를 하여 계획적인 죄를 짓고 다니는 것이다.

  3. 이러한 시국을 당하여서 좀더 심각히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 우리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바로 알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나가야 할 것이다. 예언대로 시국이 이렇게 되는 것은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반드시 오되 이 민족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내릴 것을 믿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성도들도 있다.

  사41:17을 보면 동방 땅 끝에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되 동방 땅 끝 사람이 세계적인 역사를 하게 되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을 들어서 역사한다는 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심 동태를 낙심하지 말고 좀 더 각성을 하고 일어나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