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33] [34 ~ 63] [64 ~ 96] [97 ~ 126]
(1971년 8월호)
64. 믿어지면서 속는 일
65. 힘이 강한 것 같으나 약한 일
66.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
67.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
68.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
69. 실패가 되는 원인은 무엇
(1971년 9월호)
70.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71.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의 할 일
72.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
73.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
74.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
(1971년 10월호)
75.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디게 되는 일
76. 반공과 멸공에 대한 차이점
77.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
78. 인간 종말에 미워하는 일
79.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
(1971년 11월호)
80.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
81.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인간의 행동
82.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
83. 혼란한 교계에서 바로 나갈 획선을 말한다
84. 천년 시대가 가까워진 증거를 말한다
85.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
86. 청년을 가치 있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자
(1971년 12월호)
87. 삶의 길을 찾는 자는 많으나 참으로 찾은 자는
88.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
89. 열매를 먹고 열매 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90.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로 인생의 가치를 찾자
91.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용사
92. 쭉정과 알곡을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
(1972년 1월호)
93.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한다는 것은
94. 평화 같으나 죽을 일
95. 시국을 몰라 헛수고하는 일
96. 숨어 있던 사람이 나타나 일할 때
64. 믿어지면서 속는 일
인간들은 믿음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어지면서 속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이 흑암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믿어지면서 속는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소위 인본주의적인 인격이다.
이런 무리들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도 자신이 깊이 생각해서 자기 생각에 맞는 것은 믿고 맞지 않는 것은 부인해 버리는 인격이니 이 사람은 스스로 속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든다면 우물 안에 있는 고기를 보고 넓은 바다에서 다니는 거북이가 우물 속에 있는 생활이 얼마나 부자유스러우냐고 하면서 내가 사는 바다는 아주 넓다고 하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생각과 의견에 따라서 믿는 사람은 아무런 발전이 없는 우물 속의 고기와 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이 성서를 비판하고 소위 새로운 신학이라고 하는 학설을 낸다는 것은 교만 중에 교만이요 어리석은 일 중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인도하는 자나 인도를 받는 자가 다 같이 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2. 무조건 자기에게 이상한 일이 있는 것은 다 완전한 것인 줄 믿는다는 것은 혼란에 빠진 종교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을 믿는 것보다도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다. 초인간적인 어떤 이상한 표적이 나타나면 이것은 다 믿을만한 일이라고 무조건 자기에게 복을 줄줄 안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 미개한 사람의 종교심인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명철하고 지혜롭고 삼가고 조심하는 생활에서 합법적인 진리로 분별하는 것이 없다면 그 신앙은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참된 신앙에서 속지 않고 나가려면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을 합법화시키되 모든 이치에 완전 진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합치가 되는 데서 산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완전한 이치에 부합된 신앙에서 진리를 믿어야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그 가운데 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대자연을 창조하신 그 이치에 의하여 진리를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히 바로 믿도록 한 것이니 하나님의 진리는 자연 법칙에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을 벗어나서 이상한 증거를 나타내기도 하고 자연에 어긋난 생각도 나게 해서 사람을 망치게 하는 동물성을 가진 마귀이다. 진리를 믿는 자로서 이상한 것을 믿는 것보다도 만물을 창조하신 신의 섭리가 무엇인 것을 말씀에서 바로 알고 그 섭리대로 행하는 진리가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믿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3. 소위 정통이라는 고집을 가지고 자기가 주장하는 근본이 정통이라고 하는 자들은 스스로 속는 인간들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 고집이 들어갈 때에 마른나무같이 되고 만다. 신앙은 최고의 겸손의 인격을 소유하고 자기 의견이라는 주관을 버리고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 진리를 자기의 주관에 붙이려는 것보다도 그 진리를 인간에게 주신 신의 성품을 맞춰서 자기의 생활이 신과에 접근이 될 때에 그 진리를 이론을 떠난 체험에서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진리를 말씀한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인격을 주는 이도 하나님이요 진리로써 승리하고 진리로써 왕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종이라는 양심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 날 그 날에 순종하는 것 외에 자기 주관을 조금도 가질 수 없고 나의 생각보다도 주님께서 더 먼저 아시는 그의 뜻을 따른다는 양심 생활에 날마다 걸어가야 할 것이다.
4. 자기의 어떤 욕망을 이루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완전한 사랑을 믿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일을 당한다 하여도 만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아의 욕망이 없이 항상 가난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생활이 있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자기 욕망을 바라본다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일이 되므로 하나님 앞에 아무런 것도 받을 수가 없이 된다.
65. 힘이 강한 것 같으나 약한 일
가장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인간이다. 속담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야만적인 인간들의 행동을 말한다. 힘이 있으면 강자요 힘이 약하면 약자라고 취급하는 세계는 동물의 세계이다. 동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보다 힘이 강한 짐승이 오면 떨면서 도망을 가는 것이요 힘이 센 짐승은 무조건 약한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기 힘을 믿고 움직이는 인간이 약자 중에서도
약자가 된다.
과거 역사를 보면 침략적인 정신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무조건 짓밟고 나오던 정치인들은 스스로 자기의 신세가 가련하다는 것을 탄식하면서 종말을 맺은 것이다.
가장 미친 짓을 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 어떤 마취가 되는 술이나 아편을 먹고 그 힘에 끌려서 사는 인간이다. 술을 먹고 사람을 때리고 못된 짓을 하고 아편을 먹고 힘을 얻어서 기분 좋게 살아보려는 인간들은 미친개와 같은 생활이 된다. 이러한 인간들은 불신 사회에서도 아주 버림을 당한 인간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소위 불량자라는 행세를 하면서 무조건 자기의 요청을 들어 달라고 도덕을 떠난 행동을 하게 되는 무리들은 영과 육이 아울러 약자 중에도 약자가 된다. 그리고 아편의 중독병이 들고 술에 중독이 들고 미색의 더러운 병이 들어 망쳐버린 몸이 되어 몸으로 움직일 수 없는 타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있게 된다. 과거 중국에 아편 중독자가 얼마나 쓰러져 죽었으며 우리 나라에 술의 중독자가 얼마나 생겼으며 음란으로 매독이 든 인간들이 많이 있어 가지고
가정을 망친 비극이 있었다.
이것을 본다면 자기의 힘을 정상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아편의 힘이나 술의 힘이나 이런 주색에 끌려서 일시 흥분하여 날뛰다 쓰러지는 인간들은 일시 흥분에 도취가 되어 강한 것 같으나 제일 약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정당이나 교권이나 경제권의 힘을 배경삼고 움직이는 자들이다. 이것은 아주 가증한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가장 가증한 자가 교권주의자요, 사회적으로 가장 가증한 인격을 가진 자가 정치 야욕을 가진 자요, 소위 돈을 가지고 자기의 힘을 삼아서 사람을 매수하는 것은 가장 무가치한 인간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육의 힘이나 어떤 물체의 힘이나 교권과 정권의 힘을 초월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세 새 힘을 받는 자라야 세계를 통치할 인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의 묵시를 볼 때에 심판의 대상자는 자기의 힘을 가지고 일하려는 자, 방탕 생활에 빠진 자, 어떤 세상 권리에 치우친 자들이라고 했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은 자만 남아서 새 시대를 정복한다고 하였다.
66.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
오늘날 믿음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불의한 일이 너무 많다.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불의한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믿음으로 나간다 하면서 타협이 있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계약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믿음으로 한다 하면서 말씀의 탈선된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모든 권능을 행했다 하여도 불법을 행한 자는 주님께서 안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 부흥 운동이라 하면서도 말씀에 가감된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오히려 부흥보다도 쑥물을 먹이는 일이니 죄 중에도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중심하는 신앙이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하는 것은 불의한 일을 얼마든지 범할 수 있는 일이 있게된다.
2.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거짓이 있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외식이 있을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보다도 진노를 받게 된다. 외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떠나가므로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니 외식 자체가 거짓이 된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진실이 없이 행한다는 것은 종교인의 악이라는 것이다. 신앙 세계에서 진실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불의가 된다.
3. 믿음으로 한다 하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일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나라는 자체를 전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일하는데 있어서는 자기의 어떤 명예나 권리를 다툰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불의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자아라는 자체를 조금도 내세울 수 없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만 바라보는 동시에 주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불의가 된다.
4.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교파심을 가지는 일이다.
교파심이라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괴롭히는 죄가 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교파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당신의 의를 믿는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는 것인데 교파심에 치우쳐서 남의 교파를 헐고 자기 교파를 세우려는 야심이 있다면 주님의 의로운 마음을 괴롭히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의를 믿는 동시에 의로운 말씀을 사수한다는 정신에서 싸우는 것 외에 다투는 일은 전부가 불의가 되는 것이다.
5. 믿음으로 하는 일 같으나 인간의 정치성을 띠고 인간 방법을 취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성신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인데 인간의 방법이 들어갈 때에 이것은 오히려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일은 믿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하면서 결말은 인간 방법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신으로 시작하고 육으로 끝을 맺는 일이다.
6.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인물을 숭배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이나 인격이나 기술이나 물질에 차이 없이 동등권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무식하고 인격이 훌륭하지 못한 사람에게 더 강하게 주어서 오히려 지식인보다도 인격자 보다도 역사를 더 많이 하셨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앙 세계에서 인물을 조금이라도 숭배한다는 것은 우상이 되기 쉬운 일이다.
7. 믿음으로 일한다 하면서 자기의 평안을 요구하는 일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괴로움을 극복하지 않고는 향상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괴로움을 통과시키는 것은 향상시키자는 것인데, 이것을 피하려는 자는 아무런 열매 없는 나무같이 되고 마는 것이다.
67.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평안을 맛보지 못하고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평안한 것 같으나 괴로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좋은 집에 살면서 마음이 기쁘지 못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집에 화려한 장치를 해놓고 거기에다 취미를 붙여보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데서 자기 마음의 위안을 받아 보려는 것은 그 인격이 아무런 생명이 없는 물건을 곱게 물을 들여 놓으면 아무런 활동 없이 빛만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자기 집의 아름다운 장치를 취미로 알고 사는 생활이 빛만 좋은 물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이 있는 백합화는 물들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고 향기를 내는 것이니 사람들이 무슨 장치를 해놓고 사는 거기의 취미라는 것은 평안한 것 같으나 오히려 괴로운 일이다.
2. 연락을 일삼고 생활을 하는 일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괴로운 자리에서도 마음이 평안한 것이 인격이다. 그런데 연락을 따라서 자기 괴로운 마음을 잊고자 하는 것은 예를 든다면 괴로운 병이 몸에 있는데 약을 먹고 일시 괴로운 증세를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과 같다. 이런 생활은 매일 약으로 몸의 기분을 돕는 아편쟁이 같은 생활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역경이 닥쳐와도 참 평안을 얻는 것 외에 어떤 위로의 연락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세계를 떠난 행동이다.
3. 어떤 친구에게 취미를 붙이고 자기의 괴로움을 피해 보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보다 우월한 힘이나 기술이나 권리나 인격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자기의 모든 일을 해보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는 그 친구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더 받게 되는 일도 있게 되고 뜻밖에 낙심을 받는 일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참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쳐올수록 참 평안을 받게 되는 체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 친구는 내가 환경이 좋을 때에 친구요, 환경이 나빠질 때에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큰 역사가 있게 하여 참 평안을 얻게 한다.
4. 경제적으로 부요한 가운데 아무런 생활의 염려가 없이 살수 있으면 만족으로 아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배가 부르고 살이 찌므로서 참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생활은 노동을 많이 하는 자 보다도 오히려 몸의 괴로움을 더 가지는 일도 있다. 우리는 몸이 평안한 것보다도 몸이 괴로움을 당하는 환경이 온다 하여도 아무런 피해가 없이 난국을 돌파하고 나가는 인격 외에는 참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을 위해 있는 몸이니 영적 세계에서 오는 힘에 의하여 그 몸이 좌우될 때에 부요한 생활을 가진 사람보다도 평안한 생활이 있게 된다.
5. 어떤 위치에 따라서 평안을 취하려는 자는 오히려 더 괴로움을 받는 일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위치가 좋은 곳일수록 원수의 피해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위치의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산 깊은 나사렛 동네에서 예수님같이 참된 평안이 있는 생활을 가지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신이 같이 하는 위치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위치를 택할 때에 물질을 따르지 않고 화려한 도성을 취하지 않고 여호와 함께 하시는 것을 만족으로 알 때 참 평안이 있었고 롯은 위치를 택할 때에 화려한 도성을 찾아갔다가 큰 화근을 만난 것이다. 오늘날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화려한 위치를 찾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위치를 택하는 것이다.
68.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
오늘날 소위 유물주의의 사상을 가진 자는 만져보고 직접으로 본 것 외에는 다 부인하는 것을 자기의 지식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인류 타락의 마지막이 되는 타락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인간의 종말을 묵시로 받을 때에 무신론적인 짐승의 사상이 교회를 짓밟고 들어오는 것이 마지막 환란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심판기에 누구든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숨어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읽고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서 원수를 갚아 주시고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람의 인격에 대하여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은 영이다. 오늘날 유물론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고등 동물이고 영이 없다는 것이다. 영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데 있어서 사람의 몸에 주인과 같다. 왜냐하면 영적 활동이 있게 될 때에 정신이나 몸까지라도 완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이라는 것은 물질계를 초월해서 조물주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을 인격이다. 그 영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을 때에 독생자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게된다. 그러므로 그 영이 의롭다함을 받게 될 때에 의로운 영이 되어 의로우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게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을 가진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이다.
2. 사람의 생활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의하여 목표를 둔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를 이룰 수가 없는 생활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생활이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세계에서 오는 것을 체험하게 될 때에 모든 난제가 해결되는 것을 확신하게 되니 확실한 소망이 나타나고 확실한 소망이 있게 될 때에 그 생활은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단계로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완전이라고 하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세계에서 오는
것으로만 현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생활을 하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물질계를 창조하신 것은 물질계에서 사람이 생활을 할 때에 물질계 안에 있는 것으로 인생에게 완전을 줄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물질계에 사는 동안에 자연을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물질계 밖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세계의 것을 사람에게 주어서 완전한 인격을 준다는 것이 창조의 큰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물질계 밖에서부터 오는 것을 받으므로만 물질을 사용하는 생활에서 완전한 세계로 옮겨지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숨어 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에 완전한 것을 주어서 물질계 밖의 세계의 왕권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이다.
3. 사람의 역사에 대하여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가운데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완전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문학을 배우고 모든 지식을 다 배운 자라고 하여도 없는 것 같은데서 완전하게 되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아무런 열매 없는 활동을 하다가 끝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절망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자리에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써 완전이라는 것으로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계를 볼 때에도 완전이라는 것은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활동이 있으므로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의 의견이나 생활이나 역사도 인간이 볼 때에는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하게 역사하시는 조물주의 능력을 통하여서만 완전이라는 단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임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데서 완전한 것을 숨겨 놓고 당신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 것을 주겠다고 언약을 세우고 그 말씀을 의심 없이 믿는 자에게 없는 것 같으나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을 하나님의 선한 모략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69. 실패가 되는 원인은 무엇
많은 인간 중 실패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소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돈이 많아지면 성공이요, 돈이 없어지면 실패라고 보며, 취직이 되면 성공이요, 취직을 못하면 실패라고 보며 좋은 친구를 사귀면 성공을 하고 못 사귀면 실패로 보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된다. 그러나 그 이 외에 실패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열매 없는 생활을 하다가 열매 없이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1. 사람이 무엇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가질 때에 실패가 되는 위기가 온다.
왜냐하면 인간의 일은 언제나 대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적은 항상 사람의 마음에 방심을 가지는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언제나 자신이 있다고 방심하는 마음을 엿본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씨름을 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방심을 한다면 실패의 근본이 되는 것과 같다. 씨름이라는 것은 항상 힘을 쓰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야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혹된 마음이다. 왜냐하면 자기 부족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약자 중에도 약자요, 어리석은 자 중에도 어리석은 것이 나라고 깨달아지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패의 근본이 되는 것은 되지도 못하고 된 체 하는 인격이나 동일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있다는 사람을 대적으로 아시지만 자신이 없게 생각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짐승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물이므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므로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2. 사람이 스스로 속는 일이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므로 실패의 원인이 된다.
누구든지 속지 않고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공산당이라 하여도 진리를 분명히 안다면 자기들의 사상이 잘못인 줄 알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무신론자는 스스로 속는 자 중에도 인격 전체가 흑암에 빠진 자이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에게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나게 만드는 것이 혼미의 영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혼미라는 것은 자기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나도록 감화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는 자는 자기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3. 큰 일을 작은 일에 희생시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제일 큰 일을 하여야 될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스스로 하셨지만 창조 후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는 사람을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일꾼으로 쓰시려고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름까지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이름을 짓게 하신 것이다(창2:19).
사람이라는 것은 큰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지식인 동시에 그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방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작은 일이 희생될 때에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로되 큰일을 위하여 작은 일을 희생시키는 것을 영광으로 알 때에 그 사람은 분명히 성공을 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있다 하지만 큰 일을 작은 일에 희생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신앙 발전의 열매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4. 잠깐이라는 기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실패의 원인이 된다.
누구든지 잠깐이라는 시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이것이 근본이 되어 많은 시간을 허송하게 되고 많은 시간을 허송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는 시간에 되어지는 일이 영원한 세계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항상 그때 그때 살아가는 시간을 아끼는 마음이 있으므로 그 사람은 많은 시간을 남보다도 더 갖게 되어 생활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기계 두 개가 있는데 한 기계는 잠시도 고장이 나지 않으므로 시간을 허송하지 않게 되고 또 하나의 기계는 고장이 자주 나므로 시간을 많이 허송하게 된다면 같은 하루를 사용했다 하여도 그 열매는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잠깐의 시간도 허송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열매가 많은 사람이 될 것이로되 잠깐의 시간을 허송하는 사람이 되면 영원한 것을 이루는데 큰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5.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시작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무슨 일이든지 참 이치가 없는 일은 없다. 그런데 그 이치를 분명히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시작하는 시간부터 실패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이치를 분명히 알고 일하므로 성공이 될 때에 그것을 보고 욕심이 나서 그 일의 이치를 분명히 알아보지도 않고 시작한다면 그것이 탈선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나 시작하기 전에 그 이치를 바로 알고 여기에서 자아라는 인격을 그 이치에 부합된 인격인지 이것부터 검열해 보고 그 일을 시작하여야 될 것이다.
70.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오늘날 세계 통일이라는 간판 밑에서 여러 가지 활동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 지식이 극도로 발달됨에 따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날까지의 전쟁은 세계 통일을 꿈꾸지 못하였지만 오늘의 전쟁은 세계 통일을 하겠다는 데까지 들어갔다. 원자 무기를 사용하면 세계 인류를 한시간에 없앨 수 있으므로 오늘의 전쟁은 인류 전멸이냐, 인류 구원이냐 하는 단계에 도달했고 종교계도 세계 통일의 꿈을 꾸고 합동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떠들고 있다.
정치로나 종교로나 전쟁으로나 자동적으로 세계라는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전쟁이나 종교나 정치는 세계를 정복할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좌우되는 것이다. 이제 세계를 정복할 인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과학 만능을 말하는 지식은 자멸이라는 무서운 전쟁을 일으키는 비극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이루어지는 지식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진리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 종교, 전쟁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가 승리하며 어떠한 전쟁이 승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아는 지식이다. 만일 기독교인으로서 말씀의 지식이 없을 때에 자신이 망쳐지는 인격을 이룰 수밖에 없고 말씀의 지식이 충만할 때에 세계를 살리는 인격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의 지식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되는 것이다.
소위 신학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이는 자도 있지만 현재의 신학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성경 지식에 모순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레닌 막스가 소위 유물론 사상으로 변론했지만 이 지식이라는 것은 사람을 고등 동물로 아는 지식이니 이것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지식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짐승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인류 종말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않고는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룰 수가 없다.
인격이라는 것은 지식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동물이라는 것은 힘이 센 놈이 승리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힘이 있다 하여도 지식이 없으면 지식이 있는 사람의 도구가 된다.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는 지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 나의 나갈 방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방향을 잘못 둘 때에 그 종말은 후회 막심을 이룰 것 뿐이다.
둘째 : 자신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것이 완전한 지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금물이 된다. 누구든지 자신을 바로 아는 지식이 있을 때에 자기라는 한계를 벗어나서 객관적인 세계의 것을 찾게 된다.
셋째 : 나를 완전케 할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완전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생을 완전케 할 수 있는 대상자가 있으니 이 대상자는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은 삼위 일체를 바로 아는 데서부터 있게 된다. 삼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완전한 지식이 아니요 인생들에게 역사하는 성부의 활동과 성자의 활동과 성신의 활동을 알 때에 어떠한 방법으로 활동하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지는 완전한 진리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이 지식을 바로 가지고 나갈 때에 성부 성자 성신의 활동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므로 세계를 정복할 인격이 이루어진다.
2.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생활에 따라서 그 인격이 좌우된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 하여도 그 아는 지식과 생활과의 합리화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활동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참된 지식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 있으므로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생활의 열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학자가 지식을 따라서 그 물체를 사용하는 생활이 있게 되므로 그 가치를 자랑하게 된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기계를 만들었다 하여도 그 기계를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면 그 기계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삼위일체의 진리를 알았다 하여도 그 진리대로 사는 생활이 없을 때에는 거룩한 삼위가 그 사람에게 역사하지를 않는다. 지식이 있어도 순종해야만 삼위는 그 사람에게 역사하므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역사가 같이 하는 생활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십자가의 능력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체험하게 된다.
둘째 : 성신님께 순종할 때에 성신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확실히 체험하게 되며 많은 열매를 맺게된다.
셋째 :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천만인이 쓰러지는 재앙의 날에도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이 있지만 생활이 삼위와 의합되지 못했다면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3.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완전한 전쟁이 있어야 한다
전쟁이 없이는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볼 수가 있다. 침략적 전쟁도 있고 평화를 위한 보수적 전쟁도 있다.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전쟁이 있으므로만 있는 것이니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려면 다음과 같은 전쟁이 있어야 한다.
첫째 : 마음속의 전쟁
이 전쟁은 인격을 이루는 전쟁이니 마음은 내 가슴에 있지만 전쟁 터는 공중에 있는 것이다. 공중의 세력을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 하는 것이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은 공중 세계에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영계가 있기 때문이다(엡2:2). 어떤 사람의 말에 사람의 몸은 소천지라는 것이 있다. 공중의 세력을 이기고 못 이기는 것은 마음의 전쟁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할
때에 완전 승리를 보게 된다.
둘째 : 환경에서 싸우는 전쟁
사람이라는 것은 그때 그때 자기 앞에 닥쳐오는 환경을 돌파하고 나가는 승리가 있게 될 때에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진다. 환경이 좋고 나쁜데서 좌우되는 인격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격이 될 수 없다. 전쟁이라는 것은 환경이 나빠도 그 환경을 돌파하여 좋은 환경을 이루어 놓는 것이 있을 때에 용사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셋째 : 영원한 것을 이루는 전쟁이라는 것은 진리의 사상이 결부되는 것인데 세계를 앞에 놓고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전쟁이다.
그러므로 붉은 용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므로 세계를 정복할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진다. 세계를 정복할 인격은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격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것이 있으므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놓은 이것을 종말의 성도 통치의 왕국이라는 것이다.
71.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의 할 일
신앙이라는 것은 덮어놓고 믿음으로 한다는 것도 좋지만 믿음으로 할 일과 사람이 할 일의 한계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 믿음으로 할 일은 사람이 할 수도 없고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을 하지도 않고 믿음으로만 한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믿음으로 할 일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는데 있어서는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알아서 믿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법을 떠난 믿음이 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법을 떠난 믿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법대로 메시야가 오셔서 이날까지 역사가 흘러왔는데 이것을 믿지 않고 메시야가 오므로 지상 평화 왕국이 온다고 믿는 것은 큰 과오를 범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알아서 믿는 것 외에는 아무리 믿음으로 한다고 하여도 다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또 오늘에 와서 신자라 하면서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덮어놓고 예수만 믿는다는 것은 환란과 재앙의 날에 도저히 남은 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시대의 비밀을 모르고 무조건 믿는다는 노선은 앞으로 큰 수치를 당할 일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을 믿은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의 변천의 징조가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분명히 믿는 동시에 이루어질 말씀도 예언 글자 그대로 믿고 나가는데 있어서는 예언대로 역사할 책임은 예언을 말씀하신 하나님께 있고 믿는 사람은 그대로 역사할 줄 믿고 따라갈 것 뿐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밖에는 아무런 것도 가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믿음으로 참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오는 시험을 당할 때에 말씀대로 이길 것을 믿고 참는 것이다. 말씀대로 믿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신앙 노선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덮어놓고 끝까지 참고 기다린다고 한다면 흑암에 빠진 사람이 갈팡질팡 하면서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참는 일도 바로 참는 일이라야 믿음의 열매가 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믿기 위하여 믿음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오늘에 교파가 많이 있으므로 교파의 싸움을 하는 일도 많이 있다. 싸움이라는 것은 진리를 바로 믿기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다 죄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이 적군과 아군을 모르고 무조건 무기를 쓴다면 이것은 오히려 수치를 당하는 일이 되기 쉽고 큰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주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공박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술에 도취된 사람이 아무 사람에게나 욕을 하고 구타하는 일이나 같다.
그러므로 진리 하나를 바로 믿기 위하여 싸우는 것 외에는 함부로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떠한 행동을 취할 필요도 없다. 진리대로 믿는다는 것도 성경의 법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시대적인 법이니 그 시대의 사람이 그 비밀을 바로 알아서 싸우므로 그 시대적인 사단의 참소를 깨쳐 버리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봉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손해가 있고 고생스러워도 자기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인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순종한다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명예나 권리나 영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믿음의 봉사가 아니다. 믿음으로 봉사를 한다고 말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있을 때에 중지를 하고 만다는 것은 영원한 상급을 목적한 믿음의 봉사가 아니고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는 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으로 하는 일에 대하여는 이 네 가지로 표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제 사람이 할일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조심하는 일이다.
조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정신 작용을 쓸 필요도 있고 몸의 기술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심은 믿음으로 하는 일이 잘못 될까 조심하는 것이니 이것은 주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는 것보다도 양심적인 행동에서 죄 되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노력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시험에 들까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해야될 일이라는 것이다.
2. 부지런하는 일이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내가 정성을 모아 힘을 다해서 영적 보다도 몸에 관한 노력이 전부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 게으르다는 것은 탈선된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일은 게으르지 말고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3. 담대할 일이다.
담대라는 것은 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가는 일인데 이것은 사람 편에서 하여야 할 일이다. 아무리 믿음으로 일한다 하여도 강하게 담대한 것이 적다면 원수를 물리칠 수가 없는 것이다.
4. 정직한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정직하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으로 일한다 하여도 정직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이 정직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적 문제보다도 사람의 도덕적인 행위나 사업적인 방면에서 정직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을 사람이 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믿음으로 하여야 할 일에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72.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여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가 충성을 못해도 남이 충성되지 못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것은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이 내게 충성을 다해 달라는 것이다.
어떤 공장에 사장이 있다면 그 사장은 공장 안에 직공들이 충성을 다해서 일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자기 공장이 잘 되겠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든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 줄 사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권을 좀 더 확장시켜 자기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위정자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인 야욕에 속한 것이며 어떤 종교 지도자가 자기를 충성되이 받들라고
한다면 이것도 교권의 야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된 일 같으나 헛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비진리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종교인으로서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비 진리적인 종교를 위하여 충성을 했다는 이것은 허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 진리를 위하여 수고했으므로 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성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판단을 내릴 때에 비 진리를 위하여 충성한 자는 그만큼 화를 받게 될 것이고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자는 그만큼 큰 축복을 받되 화를 받는 일이나 축복을 받는 일이 다 갑절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했다는 것은 허사인 동시에 후회 막심이라는 슬픔을 가져오는 일이 진노의 날에 있게 될 것이다.
2. 불의한 일에 대한 충성이다.
어떤 사람이 불의한 정치인이나 불의한 일을 꾸며내는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불의의 도구가 된 것이니 이러한 불의한 자가 망할 때에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18:4을 보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도 불의한 일에 동참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불의한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 달라는 것이 불의한 자라는 것이다. 아무리 충성을 다했다 하여도 불의한 자가 시키는 일에 충성을 했다는 것은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딴 것을 섬기는 일은 전부가 불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섬기기 위하여 일했다는 것은 전부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자기의 영리에 대한 충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영리가 있는 일이라면 시간을 아끼지 않고 심지어 생명을 바쳐 가면서라도 충성되이 그 일을 해보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이 죄가 된다는 것보다도 물질을 자기를 위하여 쓰고 하나님을 위하여 쓰지 않는다면 그 물질이 쓰여지는 일이 불의한 일이므로 그 물질을 위하여 모든 일을 충성되이 했다 하여도 이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충성을 다해야 될 일을 알아보자.
1) 유일신 종교 신앙 양심에서 유일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다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대자연을 통하여 오는 모든 축복은 전부 하나님의 의를 위한 일에 열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창조된 물질이니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목적이 의를 위한 것이라면 다 하나님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참된 사랑을 받은 양심에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고자 하는 일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인간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했다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속에서 속죄를 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가 용서를 받은 것 같이 다른 사람도 용서받기를 원하고 자기가 구원받은 것 같이 다른 사람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랑에서 충성을 다하는 일은 전부가 세세 왕권의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73.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
하나님께서 참되신 진리의 말씀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동시에 그 말씀이 거짓된 것같이 생각이 나도록 미혹을 주는 가장 간교한 마귀를 창조해서 지금까지 사람을 꾀어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참되신 말씀은 참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만 알도록 하고 순종치 않는 사람은 유혹의 영을 부어 주고 그 말씀이 거짓된 것 같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쓰시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거짓이 없다고 믿는 사람만을 모아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것 같으나 참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인간의 두뇌로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의 머리는 자기가 사용하는 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범위로 준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을 사용하는 것 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무조건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머리 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위대한 신이시니 나는 연구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에는 무조건 순종한다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머리를 낼 때에 물질계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세계까지 다 알게 했다면 순종을 하고 하지 않는 것은 구별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이 할 것만 깨달아 알도록끔 창조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범위에 두어서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방법인 것이다. 참된 일이라는 것은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 체험이라는 것이다.
2.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힘을 주실 적에 강한 짐승보다도 힘이 약하게 하셨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믿고 나가면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해준다는 말씀을 믿는 자로써 승리하도록 역사하시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겠다는 것은 거짓말 같으나 이것이 참된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겠다는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는 동시에 그때에 그러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내가 이렇게 해주는 하나님이니 너는 나를 믿고 의지하면 너로 승리하게 역사해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장 약한 사람을 택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없이 믿을 때에 홀연히 나타나서 그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산 체험이라는 것은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해주겠다는 말씀을, 거짓이 아니고 참이라고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만 참으로 의지하는 자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지상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3.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물질의 모든 것은 보지만 신을 못 보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두려워서 살 수가 없게 된다.
신의 영광은 너무나 놀라운 영광이므로 그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신의 역사의 체험만 받게 한 것이다. 오늘날 신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무신론 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이렇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구약 때에 이스라엘에 나타나시되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묵시로 주기 위하여 나타나셨고,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 세상에 나타나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주었고, 지금은 성신을 보내어 볼 수 없는 마음속에 와서 역사하되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에게만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증거도 체험도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 진리를 믿고 보면 하나님의 신이 자기와 함께 하는 증거가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참으로 믿는 자만 모아서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잠잠히 숨어 계셔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신은 같이 해서 그 사람이 복을 받게 하신다. 만일 누구든지 다 신을 본다면 진리를 참으로 믿나 믿지 않나 하는 것을 구별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것보다도 보지 못하고 진리를 믿도록 해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의롭게 인정하고 그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보호하기도 하시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하자는 것이 신을 보지 못하게 하시는 경륜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말을 거짓말로 알고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참말로 아는 것은 마귀의 미혹이다.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합법적으로 믿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게 된다.
74.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
마귀의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그때 그때에 사람의 마음에 맞도록 말을 하고 증거를 보여 주기도 하면서 실지는 거짓을 행하는 일이 마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면 진실한 것 같으나 거짓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1. 먹어야 산다는 일이다.
마귀란 놈은 언제나 먹어야 산다는 제목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꾀일 적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마귀는 먹으면 유익하게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한 생각이 나게 해서 결국은 먹고야 말도록 역사했던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고 먹어야 산다는 것이 진실한 것 같으나 이것은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므로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믿지 않고 먹어야 산다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참된 말 같으나 실지 그대로 따라가 보면 결국은 속았다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에는 의심이 나지만 그대로 따라가면 참되신 말씀이라는 것이 완전히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요, 마귀가 하는 말은 처음에는 참인 줄 믿어지나 결국은 참이 아니라는 것이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2. 배워야 산다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볼 때는 합리적인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배워서 참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고 계시로 알게 해 주므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과학을 배우므로 사회가 물질적으로 발전되는 것을 볼 때에 여기에 도취가 되어 인간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존중시하고 자기가 배운 지식을 참인줄 알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비판한다는 것은 자기가 배운 지식과 지혜가 자기를 속이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리석은 자 같으나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참된 진리의 지식을 알도록 성신을 보내서 참된 종의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 학적으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으로 말한다면 누구나 다 학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진실하다고 인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학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속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워야 산다는 것보다도 진리를 믿어야 산다는 마음에서 믿음으로 배워지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 소위 문명국가일수록 배워야 산다는 것이 표어가 되었지만 이것을 신령한 영계로 본다면 마귀의 미혹의 말이 된다.
3. 교제가 있어야 산다는 일이다.
이 말은 합법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을 교제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과 교제하면 훌륭해 지고 낮은 사람과 교제하면 위신이 낮아진다는 것이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는 속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는 연락을 베풀 때에 가난한 자, 병자, 죄인들을 데려 다가 대접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적에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다고 하셨고 친히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셨던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외에 인간과의 교제라는 것은 외모로 볼 때에는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에는 거짓이 따르는 교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인간이 인간을 교제하는 일을 스스로 속는 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간과에 교제를 끊지 못해서 참된 신앙 노선을 걷지 못하는 자도 있다. 인간이 인간을 교제하는 일은 다 자기의 유익을 보자는 것이니 참된 진실이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는 교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했던 것이다.
인생의 참된 교제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찍어서 버린 나뭇가지같이 말라서 불에 던지워진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4. 자본이 있어야 산다는 일이다.
누구든지 이 말을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이 있어야만 산다는 인격의 사람이 될 때에 얼마든지 거짓이 따르게 되고 심지어 악한 일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자본이 있어야 산다는 말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만 산다는 것으로 참된 양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세상은 자본이 있어야 살고 돈이 많아서 돈을 잘 내면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을 하고 자본이 없어서 돈을 내지 못하면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인정해 버리는 것이다. 사람 앞에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신용가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을 진실로 보시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물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돈 자체가 거짓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위해 돈을 쓸 적에 이것은 상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자본주의 정신에 도취가 되어 돈으로만 신용 본위로 삼는다는 것은 얼마든지 거짓된 미혹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5. 싸우지 않아야 산다는 일이다.
이 말은 오늘에 와서 가장 참된 말이라고 인정한다. 싸우게 되면 세계 인류가 전멸이요, 싸우지 않아야 인류가 산다는 것이 문화인으로서 인간의 장래를 내다보는 예언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 종말의 심판은 악의 세력과 타협하면 반드시 악의 세력과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요, 붉은 짐승 앞에 머리를 숙여 절하면 죽고 절하지 않아야 산다는 것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붉은 짐승과 싸우지 않아야 산다는 것은 진실한 것 같으나
실지는 거짓 선지의 미혹의 말이다.
75.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디게 되는 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든 일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안될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빠르게 다니기 위하여 많은 연구를 하며 많은 노력을 해서 많은 돈을 들여 교통 시설을 공중으로, 지상으로, 지하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리적으로 깊이 깨닫는 사람이 볼 때는 이 세상 사람이 빠르게 하는 일 같으나 더딘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혼란한 세상을 이루어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에 오히려 피곤을 느끼는 사회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가 되고 보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일에는 너무나 더디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를 당해서 조용한 산을 찾는 사람도 있고 바닷가를 찾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고 혼란한 세상에서 얻지 못하던 신성한 생활을 가져 보려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더딘 사람이라고 본다.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 조속한 시일 내에 과학을 초월한 인격을 얻기 위하여 밤을 새워 가면서 부르짖는 일이 있으므로 모든 난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여호와의 영광이 와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일생 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일초 동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과학적 기계 문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 같이 보고 있지만 이것은 한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화려한 세상이 한 시간에 불탄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역사가 홀연히 나타난다고 하였다.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은 강권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야 되는 것이요,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홀연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므로 된다고 성경은 가르쳤다.
인간이 볼 때는 분주하게 왕래하는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아무런 열매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늘의 교통을 받는 사람은 홀연히 변화를 받아 승천하게 되는 일도 있고 도둑같이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난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인하며 그 역사를 부인하며 인간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보려는 과학 만능 주의는 빠른 것 같으나 실지는 더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76. 반공과 멸공에 대한 차이점
오늘날 반공이라는 두 글자가 많이 붙어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멸공이라는 글자가 씌어진 것은 심히 보기가 드물다. 이제 반공과 멸공에 대하여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반공에 대하여
이 반공이라는 것은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여러 가지라고 본다.
첫째 : 자본주의적 반공이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정치가 다르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로 공산주의를 완전히 이룬다는 것인데 현 공산주의라는 것은 세계를 공산화시킨다는 것을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국유화시켜서 개인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보다도 개인의 자본이나 자력이나 자신이나 자유 전체를 공산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바치자는 것인데 공산 사회가 완전히 이루기까지는 전 인민의 희생이 들어가야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산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재산이나 힘이나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산 당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공산 당원이 일반 백성을 마음대로 지배하되 사회주의 정치로 일반 백성을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협력하지 않는 자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공산당의 자격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권리 있게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본을 정부에서 옹호해 주고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주권을 주는 동시에 자본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정치라는 것은 자본이 있는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어서 정부를 밀어 주므로 정부는 개인 자본의 힘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정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얼마든지 개인에게 자유를 주어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정부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므로 자본주의 반공이라는 것은 자본에 의한 정치적 반공이 될 것이다. 이 반공이라는 것은 강한 반공이 될 수가 없다.
둘째 : 종교 단체적 반공이 있다.
이것은 종교 단체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반공일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의 종교라는 것은 공산국가를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싸워주는 범위 하에 종교 단체가 소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종교 단체는 공산당의 한 도구가 되는 것이므로 종교 단체에서 이것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 단체의 반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단체의 반공이라는 것은 아무런 생명이 없는 반공 운동이라고 본다.
셋째 : 사회 단체적 반공이 있다.
이 반공이라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에서 사회 단체라는 것은 공산 국가를 위한 봉사의 목적을 두는 것 외에는 경제 자유나 언론 자유나 출판 자유가 없고 전부가 공산 사회의 건설의 한 기관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 단체적인 반공이라는 것은 이것을 반대하는 반공이다. 사회 사업은 국가의 보장을 받아서 모든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한 것이 목적인데 한 공산 국가를 이루기 위한 것만을 목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공은 권리를 가지고 싸울 능력이 없다고 본다.
2. 멸공에 대하여
멸공이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권리를 초월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멸공이다.
이 멸공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정권이나 물권이나 교권을 보장하기 위한 데 국한된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여호와 말씀할 때에
첫째 : 세계적인 기독교 확장이 있을 것과
둘째 : 인간 종말의 재앙이 북방으로 오는데 있어서는 무신론적 사상과 침략적 정책과 궤휼적 미혹의 세력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것은 전 세계 인류가 큰 환란을 만나게 되는 환란이 되므로, 인간의 부요한 자나 모든 세력을 잡은 자들이 그 앞에서 굴복하게 되는 것을 말씀했으며, 이때에 하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시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상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고 초인간적인 역사가 진리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므로 북방은 멸망을 당하게 되는 동시에 어느 나라든지 북방 세력과 타협을 하던 무리는 다 같이 망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멸공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나 병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멸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멸망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기독교 종말의 승리를 이루는 역사가 된다. 자본주의 경제권이나 사회 단체나 종교 단체의 반공이 있다 하여도 이것은 완전한 결전을 이루지 못하고 최후의 결전은 어떤 단체를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므로 완전 멸공 심판의 역사가 이루어지되 말씀을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공이라는 것은 사람의 주관이나 권력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요, 멸공이라는 것은 초인간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므로써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종말의 진노 심판을 멸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멸공이 이루어지므로 평화로운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77.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어떠한 사람이 제일 큰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은 심히 적다고 본다. 제일 큰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 적으면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더욱 적을 것은 사실이다. 이제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시대의 비밀을 바로 알고 일하는 자이다.
시대적인 과거 역사를 들어본다면 그 시대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 일을 했는지 알지를 못했지만 그 시대가 지나서 볼 때에 누가 그 시대에 큰 일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첫째 : 노아이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때에 그때 사람들은 미친 사람으로 알고 다 조롱을 했었다. 그러나 홍수 심판이 임하게 될 때에 모든 사람들은 노아가 제일 큰 일을 한 사람이라고 알게 된 것이다.
둘째 :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말씀 하나를 믿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지시를 받고 천신만고의 시련을 받으며 다닐 적에 아브라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대 종교가 이루어진 것을 볼 때에 아브라함이 이삭 하나를 하나님께 제사로 바친 일이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100세에 가서 이삭을 낳고 이삭을 하나님께 제사로 바친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어리석은 일 같았으나 이것이 제일 큰 일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 요셉이다
열 두 지파 중 요셉이가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갈 때에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보디발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옥중 생활을 하던 사람이 7년 동안 곡식을 저축한 일은 그때 사람이 볼 때에 필요 없는 일 같았다. 그러나 7년 흉년이 올 때에 가장 큰 일을 한 요셉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넷째 : 모세이다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소망 없는 민족이 되었으나 모세가 양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고자 하오니 보내달라고 말할 때에 바로의 눈에 미친 사람같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의 정권은 그 앞에서 굴복을 하고 역사적인 선지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에 모세가 큰 일을 한 자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는 말은 인간이 볼 때에 미미한 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제일 큰 일로 아시고 역사하신 것이다.
다섯째 : 예수님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간 어린 양 예수다. 나사렛 목수가 유대 광야에 나타날 때에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교만한 유대인들은 나사렛 목수 예수를 무시하고 이단시했지만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어린 양 예수 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가장 큰 일이 된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서 가장 큰 일은 어린 양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것을 만민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들은 레닌맑스주의의 변론을 큰 일로 보고 있지만 이것은 큰 미혹이요 큰 화를 받을 붉은 용의 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전부가 큰 일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계7:2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10:2~3에 힘센 다른 천사가 작은 책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12:3에 큰 붉은 용이 나타나서 해를
입은 여자를 해코자 하는데 있어서는 1절에 큰 이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하나님 편에서도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였고 마귀 편에서도 큰 용이 나타나서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므로 짐승이 큰 말을 한다고 계13:2~5에 말하였다. 거짓 선지도 큰 이적을 행한다고 13절에 말했으니 마귀 편도 큰 일을 하고 하나님 편도 큰 일을 하는 것이 계시록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전부가 큰 일이 닥쳐오는데 있어서는 큰 역사, 큰 환란, 큰 미혹, 큰 승리, 큰 축복이 남은 것이다. 우리의 원수도 큰 권세를 가지고 큰 말을 하며 큰 이적을 가지고 나온다 했으니 오늘날 우리는 붉은 짐승의 큰 말과 거짓 선지의 큰 이적을 이기는 역사가 제일 큰 일이 될 것이다.
오늘날 붉은 정권은 큰 권세를 큰 용에게 받고 큰 말을 하면서 거짓 선지를 통하여 큰 이적을 행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싸움의 대 승리를 본 자는 작은 책을 들고 크게 외치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 인간 종말의 계시라는 것이다.
이날까지에 큰 일을 한 종들이 많지만 제일 큰 일을 하는 자들은 종말의 비밀을 바로 알고 나가서 증거하는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증거하는 말대로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2. 세계 통일을 하는 자이다
계15:1이하를 보면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이 나타났다. 이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크고도 기이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16:1에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진노의 큰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하였다. 이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큰 멸망이 오는 것이 보여졌다.
큰 성 바벨론이 한 시간에 망하는 것이 18장에 보여졌고 19장에는 가장 큰 음성으로 노래할 때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오므로 종들의 피 값을 갚아준다고 하였다. 계시록20장에는 천사가 큰 용을 큰 쇠사슬로 결박해서 무저갱에 가두는 광경이 보여졌고 그 다음에 천년 동안 다시는 미혹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큰 화를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큰 음녀가 되는 바벨론이 망하고 성도들이 대 승리를 보게될 것을 보여 주었다.
제일 큰 일은 성도들이 붉은 용과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를 이기고 지상 평화 왕국이 오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제일 큰 일은 성도의 권세 역사라고 본다. 천하에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은 인류 종말에 짐승의 세력을 때려부수고 세계 통일을 하는 자이다.
78. 인간 종말에 미워하는 일
과거에도 미워하는 일은 있었지만 인간 종말에 극도로 강하게 될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하나님편도 미워하고 마귀편도 미워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마귀편이 미워할 일
마귀가 미워하는 일이 생긴 것은 예수가 세상에 오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마귀가 미워할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다 마귀의 권세 아래 있었으므로 마귀가 미워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부터 마귀가 미워하게 된 것은 자기를 멸하려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다(요15:18~19).
마귀가 가장 미워할 일은 마귀를 섬기던 사람이 마귀를 배척하고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십자가를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저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바울을 미워했고 이방인은 이방인대로 바울을 미워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지켜 내려오던 모세 율법과 할례와 제사가 다 필요가 없고 예수만 믿어야만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요, 이방인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던 우상을 때려부수고 모든 신들을 다 버리고 풍속을 버리고 십자가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네 종교와 대적이 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어느 나라에 들어가든지 그 나라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교리를 전하게 되므로 다른 종교보다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워할 일이 더 크게 생긴 것은 다음과 같다.
성경을 보면 인류 종말에 심판의 대상자는 붉은 용이요, 붉은 짐승이요, 거짓 선지요, 바벨론이라고 증거하는 자를 마귀도 미워하고 짐승의 정권도 미워하고 거짓 선지도 미워하고 바벨론 세상이 다 미워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 선지들이 부패한 정치와 부패한 종교와 부패한 사회가 다 망할 것을 증거할 때에 그 시대 사람에게 미움을 받은 것과 같이 인류 종말에도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 편이 미워할 일
마24:14이하를 보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세상 끝이 오는데 있어서는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행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절개를 지키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할 일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쑥물을 만들어서 양떼를 죽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사명을 맡아 가지고 교회의 일을 한다 하면서 교회를 망치는 사람이 미운 물건이 된다는 것이다.
심판의 대상자는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한 데도 불구하고 짐짓 독생자의 거룩한 피를 더럽히며 전한 말씀을 짓밟는 자이다. 이런 무리들은 다시 용서할 수 없고 몽땅 멸망을 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79.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
오늘날 누구를 막론하고 부흥 발전을 원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보아도 망하는 사람들이 흥하는 것 같이 보이다가 결말은 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모양을 내는 일이다.
이것은 정치나 종교나 가정이나 동일하다고 본다. 정치도 남의 나라에게 잘 보이려는 정치는 결국은 먹힘을 당하게 된다. 남의 나라가 볼 때에 부흥 발전을 크게 하는 것 같이 보이려는 정치는 어리석은 정치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남이 잘되는 것 같이 보이면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나라가 볼 때에 겉으론 훌륭하게 보이고 내막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나라에게 정신적으로 벌써 먹힘을 당한 정치라고 본다. 그리고 사람이 어떠한 사람 앞에 잘 보이려고 가면을 쓰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덕을 보자는 정신이니 결국은 정신적으로 먹힘을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도 이웃의 어떤 사람이 잘 사는데 그 사람이 볼 때에 나도 너 만큼 산다고 겉모양을 내려고 한다면 벌써 그 사람에게 먹힘을 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내막이 충실해서 잘 사는데 자기는 내막이 잘못되어 가지고서 그 사람과 같이 모양을 내려고 한다는 것은 몇 날이 가지 않아서 그 사람 앞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도 어떤 교회가 부흥 발전한다고 해서 영적으로는 아무 것도 충실치 못한 교회에서 그 교회와 같이 겉모양을 내어 보려고 할 때에 영적으로 충실한 교회에게 자동적으로 눌림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내용이 충실하므로 외형이 발전되었는데 내용이 충실치 못한 교회가 억지로 모양을 내어 보려는 것은 벌써 영적으로 그 교회에게 지배를 받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나 가정이나 교회나 남에게 보이려고 모양을 내는 일은 흥하는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침략적인 행동을 하는 일이다.
정치나 가정이나 교회가 남의 것을 침략해서 흥해 보려는 생각은 결국은 망하는 일이 된다. 침략이라는 것은 남을 해롭게 해 가지고 내가 이익을 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제나 자기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보아도 침략적 정치의 나라는 반드시 망했으며 개인을 보아도 남을 해롭게 해서 자기가 잘 되겠다는 자는 언제나 자기가 망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교파도 남의 교파를 침범해서 자기의 교권을 세우려는 교파는 다 영계가 망치고 말았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침략적 행동으로 일시 흥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일도 있지만 이것은 반드시 망할 일이라고 보게 된다.
3. 진리가 없이 하는 일이다.
인생과 진리는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는 섭리이므로 진리를 떠난 운동은 처음에는 부흥되는 것 같으나 결말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종교 역사를 볼 때에 진리 없는 부흥 운동은 오히려 불행스러운 일을 가져왔던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어디든지 따라가게 된다. 참 이치라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헛 꿈같이 되고 만다. 마귀는 언제나 진리를 떠나서 사람을 미혹시킬 때에 처음에는 사람의 마음에 호기심을 주고 일시로 잘 되는 것 같이 보이게 하나 결말은 망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생명이니 진리가 잘못된 단체나 사업이나 사람은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결말은 수치스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희생을 다해도 나의 영광이라는 마음을 가진 자 외에는 다 헛수고가 되고 만다.
80.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 무엇인 것을 사람으로서는 알기가 어렵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임시 좋은 것을 따라 살면서 이 일이 결과적으로 나를 망케한다는 것을 아는 자가 몇 사람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인간이 볼 때는 영웅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모르고 있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도 모든 일을 잘하는 것 같으나 그것을 모르고 있고 아무리 문학을 자랑하는 지식인도 아는 것 같으나 이것을 모르고 있는 세상이라고
보게 된다.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화려한 도성을 이루는 일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서 소위 도시 계획이라는 것을 가지고 화려한 시가지를 만들고 화려한 건물을 높이 짓고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오늘날 모든 인간들은 이곳을 좋은 곳이라고 찾아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을 보면 인간 종말에 가서 화려한 도성이 일시간에 무너져 버리므로 그 속에서 남을 자가 심히 적다고 말씀했는데 무슨 원인으로 망하느냐 하면 첫째:사치, 둘째:음란, 셋째:정치 부패, 넷째:도덕 부패, 다섯째;인심 악화, 여섯째:사기적인
행동을 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막대기를 그 성에 던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한데 모이도록 죄가 팽창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은 자기 홀로 짓는 것이 아니고 보고 듣고 하는데서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보면 쫓겨난 자, 유리하는 자, 압박을 받는 자,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해변가에서 생명을 보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말했다.
2. 소위 평화라, 협상이라 하면서 친선을 도모한다는 일이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 인류는 다 하나같이 옹호하고 있다. 평화라고 해도 망할 평화가 있고 협상이라는 것도 망할 협상이 있으니 이것을 바로 아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악한 자들이 선한 체하며 자기의 유리한 조건을 내다보고 평화를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속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기만적인 정책을 하는 자들이 자기 정책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협상을 하고자 하는데 그 비밀을 모르고 협상적인 정치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심리를 따른다는 것도 좋은 것 같으나 망하는 일이요, 현실에 맞추어 그때 그때에 형편을 따라서 나간다는 것도 좋은 일 같으나 망하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에 억울한 일 같으나 결국은 좋은 일이 되고,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결국은 승리가 되고 어리석은 일 같으나 지혜로운 일이 되고, 가장 고생스러운 일 같으나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알려면 말세 비밀의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이 볼 때에 좋지 못하도록 해서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요, 마귀는 언제나 인간들에게 좋게 보이도록 하면서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의 사람은
진리의 눈을 떠서 이것을 바로 아는 완전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81.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인간의 행동
언제나 새로운 변동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올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인간들이 하게 될 때에 여호와 일어나서 진노를 베푸시는 동시에 새로운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행동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홍수 심판의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생활을 개척할 때에 아담이 하나님 말씀보다도 여자의 말을 따라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정도이지만 아담의 장자 가인이 차자 아벨을 쳐죽였다는 것은 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는 정도까지 노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동생을 죽인 가인의 혈통이 극도로 번창해지는 동시에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었지만 셋의 후손은 여지없이 가인의 후손에게 피해를 당하게 되어 그대로 두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난국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셋의 후손이 가인의 후손에게 끌려서 몸을 더럽히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악의 씨는 지면에 충만해지고 의로운 자손은 도저히 번성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을 내려 악의 씨를 없애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편케 하였던 것이다. 악의 세력이 팽창하여 의의 세력으로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베풀었던 것이다.
2.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가서 압박을 받을 때에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애굽 사람들이 와서 죽이고 억울한 노동을 시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지없이 악한 애굽인들에게 먹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할 때에 여호와 일어나서 진노의 채찍으로 애굽을 쳐서 이스라엘을 구해낸 것이다.
3. 이 이스라엘이 부패해서 참된 선지들이 도저히 일할 수 없이 되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백성들이 쑥물을 먹고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을 쳐서 황폐화시키고 신령한 순의 종들로 예루살렘을 복구했던 것이다.
4. 기독교가 유대에서 새로이 출발을 가질 적에 메시야를 기다리던 다윗 왕국이 메시야를 환영치 않고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이방 군대를 들어 예루살렘의 성전을 황폐화시키고 기독교로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5. 오늘날 여호와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행동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공산당이 세계를 침투하게 되는 일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므로 붉은 짐승의 세력은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올 징조이다. 하나님을 몰라서 우상을 섬긴다는 것보다도 있던 교회를 없이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대적하는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일이라고 본다.
둘째 :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알고 세속주의로 흐르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보다도 짓밟아 버리는 행동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부득불 임하게 될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다가 진노를 받은 것과 같은 행동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피를 더럽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등한히 알고 나간다는 것은 짐짓 십자가를 짓밟고 나가는 일이므로 진노를 받을 행동이다.
셋째 : 진리를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를 없애는 진노가 내릴때인데도 불구하고 적 그리스도국과 협상하는 일이다. 이것은 진노를 함께 받을 행동이다. 왜냐하면 음녀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넷째 : 하나님의 성직을 맡아 가지고도 충성을 다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 교회의 원수이므로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상을 망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 하나님의 성금을 함부로 남용하는 일이다. 세상의 물질을 사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성금을 사기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사기꾼이니 용서없이 진노를 받게 된다.
여섯째 : 동역자를 공연히 치는 일이다. 하나님의 참된 종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와 같이 되는 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줄 일이다.
일곱째 : 게으른 일이다. 급한 시기를 만난 이때에 게으른 자는 하나님의 싸움을 패전케 하는 자이다. 전쟁의 날에 싸우지 않고 숨어있는 군인은 엄벌에 처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행동은 진노를 받을 행동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물질 문명이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전부가 진노를 받을 행동이므로 심판기로 보는 것이다.
82.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
언제나 마귀의 미혹은 진리인 것같이 말하지만 그 말대로 따라가고 보면 비 진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오늘날 모든 종교인들이 다 자기 종교의 진리가 제일이라고 하지만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가 무엇인 것을 모르고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그 열심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짝이 맞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구절 구절이 독립성을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코자 하여 구원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변론한 말씀이니 성경 한 절만 가지고 주장한다는 것은 진리인 것 같으나 비 진리가 된다. 그러므로 마귀는 언제나 성경을 가지고 나오지만 짝이 맞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을 짝을 맞추어 증거하여야 될 것이다.
2.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시대의 법을 따라서 있는 것이니 이미 이루어진 법도 있고 이루어지는 법도 있고, 이루어질 법도 있다. 이루어진 법을 이루어질 것으로 말해도 비 진리요, 이루어질 법을 이루어진 것으로 말해도 비 진리요, 현재에 이루어지는 법을 과거나 미래로 본다는 것도 비 진리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루어진 법으로 알아야 될 진리와 이루어지고 있는 법을 현재에 체험하여야 되며 이루어질 예언을, 이루어진 일과 이루어지는 일과에 합법적인 연결을 지어 원리와 변론에 맞아야만 될 것이다. 성경에 짝이 맞는다 하여도 원리가 맞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요, 원리가 맞는 것 같아도 성경 전체에 변론적으로 맞지 않아도 진리가 아니다.
3. 성경을 가지고 말하나 자기 주관에 붙이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의 주관에 의하여 기록된 말씀이니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서 성경을 이용한다는 것은 일반이 들을 적에는 진리같이 보이나 하나님과는 대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공산주의니 인본주의니, 현실주의니 하는 등의 주의와 사상이 있지만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주관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니 어리석은 인간들에게는 미혹이 되고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아는 사람이 볼 때에는 가소로운 일이 된다.
4. 성경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은 전부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니 이것은 그 역사를 체험한 자로서 본문 그대로 읽어 증거할 진리다. 그런데 조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보지를 못한 사람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역사를 체험치 못한 자기 생활에 맞도록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너무나 어린애와 같은 일이라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 진리와 인격이 떠날 수 없는 것이니 그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라야 그 진리를 진리대로 바로 증거할
수 있다고 본다.
83. 혼란한 교계에서 바로 나갈 획선을 말한다
우리는 사회도 혼란하거니와 교회의 혼란을 볼 때에 우리가 나갈 획선이 무엇이냐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이 혼란한 교계에서 나갈 획선이 무엇인 줄 모른다면 그야말로 비극 중에서도 비극이다. 이제 혼란한 교계에서 나가야 될 획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시대 변천에 대한 영계 획선을 알아야 한다.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서 영계가 바뀌어진다는 것도 알아야 될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그 시대를 따라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데 있어서 우리 영계는 그 시대에 역사를 따라서 나갈 획선이 있다.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로 바뀌어질 적에 하나님 편에서 그 영계를 변동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계의 변동을 모르는 바리새 교인들은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판정을 나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네가 영계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서 백성을 지도한다고 하던 것인데 자기네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인간이 볼 때는 불학 무식하고 더러운 죄인들에게 성신의 역사가 임하기 때문이다.
소위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무리들이 자기에게는 그런 역사가 없는데 사도들에게 역사가 내릴 적에 영계 변동을 모르고 오히려 성신의 역사를 바알세불이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바리새 교인들의 영계가 메시야를 영접할 만한 영적 사람이었던들 영계 변동을 알았을 것이다. 메시야를 영접할 만한 영적 사람이 아닌 자들이 교권을 쥐고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는 영계를 가진 자들을 억압할 권리가 있으므로 무조건 자기네 직권 행사를 했던 것이다. 대제사장의
직분을 참으로 행할 이는 예수님이신데 이것을 모르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저주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재림의 주를 영접할 영계를 못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서 직권 행사를 하므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의 전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며 변화성도가 받는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이단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일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성도의 영계는 베드로 계통적인 영계요, 변화성도의 영계는 사도 요한 계통적인 영계이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는 천국 복음 운동의 영계에 대한 대표자라면 사도 요한은 다시 예언의 영원한 안식 복음 운동의 대표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계가 오순절로 돌아간다는 것보다도 재앙의 날에 변화성도가 되는 영계로 들어가야 한다. 변화성도는 성경 전체를 전하되 권세 영감을 받아야만 싸워 나가게 된다.
2. 말씀 전파의 진리 운동에 대한 변천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때는 앞으로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 운동을 하는 것보다도 영, 육이 아울러 새 시대에 들어가는 영원한 복음의 진리 운동을 해야할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큰 싸움은 진리 싸움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에 신학자들이 성신의 잉태, 십자가의 구속, 부활의 중생, 성신의 은사 이것은 다 통일적으로 되어 있지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말세론이 혼선 중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해석을 따르는 것보다도 선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다림줄의 획선을 바로 찾게되고 계시록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 다림줄의 획선을 바로 찾아 아무런 미혹이 와도 본문 성경에서 그대로 읽어 미혹을 물리치고 기독교 종말에 말세론을 하나같이 증거할 수 있는 변론을 찾아야 한다. 쓸데없이 이 주석, 저 주석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주석이라는 것은 변화성도가 전할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전한 천국 복음 외에 계시록과 선지서는 글자 그대로 읽어서 전할 안식 복음이 된다. 안식의 복음이라는 것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진리를 말한다(계10:7).
3. 교파 문제에 있어서 알아야 한다.
교파라는 것은 예수교 안에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등의 교파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양떼를 살리는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촛대교회를 세울 것 뿐이다.
교회는 교파 문제로 획선을 찾는 것이 아니고 진리를 가르치는데 따라서 획선을 찾아야 한다. 어느 교회든지 단에 선 종이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까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느냐 못 주느냐에 의하여 교회가 남게 되고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님 재림할 때에는 변화성도가 움직이는 교회가 따로 구별되는데 있어서는 환란과 재앙에서 양떼를 살리는 교회만이 특별 보호를 받게 되므로 세계적으로 남은 촛대교회가 새 시대를 이루는 끝을 맺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때는 영계로나 진리로나 교회로나 새로운 변동을 가지게 된다. 그 변동은 하나님께서 영과 육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영계나 진리나 교회가 큰 변동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84. 천년 시대가 가까워진 증거를 말한다
인간에 천년 시대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 하와를 내서 축복했지만 범죄하므로 지상 축복을 빼앗긴 후에 오늘까지 영혼이 구원받는 일은 있었으나 지상에서 만물을 축복으로 받아 영광을 누린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천년 시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붉은 용의 미혹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지금 천년 시대가 가까웠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붉은 용의 미혹이 짐승의 세력과 거짓 선지의 세력을 끼고 세계를 침투하고 있는 일이라고 본다.
오늘날 붉은 정권은 분명히 붉은 용의 마지막 머리가 되는 세력이라고 보며 오늘날 교계에서 소위 통합이라는 간판 밑에서 한가지 한가지 하는 일을 보면 분명히 붉은 용의 감화를 받은 꾀임의 말이라고 본다. 최고 영계를 가지고 최고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야 이것이 붉은 용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는 것은 이 미혹을 받지 않은 자로 천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환란이 올 시초라고 본다.
2. 천년 시대는 바벨론이 한 시간에 불탄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온 세계 인류의 사상이 붉은 짐승과 협상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는 것은 이 세상이 바벨론이 되는 증거이니 계시록17장을 보면 붉은 짐승을 탄 바벨론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붉은 짐승의 세력 앞에 협상을 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가 지상 강림하시므로 한시간에 이 세상이 불타고 천년 왕국이 올 것을 말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천년 시대가 가까운 때라고 본다.
3. 천년 시대는 인간 종말에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는 역사가 동방 땅 끝에서 나와서 세계를 그 말씀으로 깨우친 다음에 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천년 시대에 들어가고 순종치 않는 자는 바벨론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하게 된다.
모든 성경은 동방에서 나타난 말씀에 의하여 환란과 재앙과 심판이 오는 동시에 그 말씀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자가 있으므로 천년 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지금 동방 땅 끝인 이 나라에 새 시대에 들어가는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는 일은 천년 시대가 가까운 증거라고 본다. 지금은 누구나 다 천년 시대의 안식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준비가 있어야 할 때이다.
4. 천년 시대는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 후, 가장 어려운 난제가 닥쳐오는 때에 천년 시대를 목적하고 하나같이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와 싸우기로 결심한 자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뭉쳐지게 되므로 그들을 통하여 대 승리가 있게 하여 천년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지금 많은 종들이 자동적으로 참된 진리를 따라서 나가야 된다는 충격을 받고 하나같이 종말의 진리를 찾게 된다는 것은 천년 시대에 들어갈 종들의 정한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이 네 가지를 보아서라도 충분히 천년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날과 그 시를 안다는 것은 미혹을 받을 일이지만 여러 가지 징조를 보고 천년 시대를 목적하고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히 있어야 될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천년 시대가 임박했다는 것은 선지서와 계시록의 말씀을 보아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달리 해석할 필요도 없이 본문 그대로 읽어서 이 시대를 비추어 볼 때에 정치, 종교, 전쟁, 인심 동태, 경제 상태, 사상 문제, 도덕 문제 전체가 추호도 어김이 없이 그대로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85.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
조물주 하나님은 즐거움을 인생에게 주고 싶어하시고 인생의 본질은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얻고자 하는 인생이 의합되지 못하므로 인생은 즐거움을 얻고자 하나 오히려 근심, 고통, 번민, 원망, 공포, 불안이 닥쳐오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즐거움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 앞에 오히려 진노를 받을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즐거움을 주시되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자 하여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있나 없나를 검열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마귀를 창조해서 쓰는 것은 인생을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니요, 아무리 마귀가 시험을 하여도 거기에 끌리지 않고 하나님만 참으로 내게 즐거움을 주시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아무런 시험이 와도 이것이 있으므로 내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즐거움이 온다는 것을 믿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라면 다음과 같은 즐거움을 주시려는 방법이다.
첫째 : 중심의 즐거움, 둘째 : 몸의 즐거움, 셋째 : 생활의 즐거움, 넷째 : 사업의 즐거움, 다섯째 : 영원한 왕권의 즐거움이다.
기독교 신앙의 산 체험은 시험 끝에 즐거움이라는 것을 체험한 자라야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는 것이다. 즐거움을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행할 일을 빠짐이 없이 기록하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그때에 말씀을 받아 서책에 기록하는 사람에게 괴로운 시험을 있게 하시고 그 시험을 참고 나갈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체험케 하시는 동시에 앞으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인생에게 즐거움을 주시되 어떠한 방법으로 즐거움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대로 행하시는데 있어서 먼저 행하신 일이 인생에게 고통 대신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신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참된 즐거움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 값을 짊어진 몸으로서 인간이 받을 심령 고통과 몸의 고통을 받게 했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자는 영. 육간 아울러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시는 것은 흥분적인 것이 아니고 실지로 체험적인 생활에서 물질로 얻어 볼 수 없는 그 세계의 정상적인 즐거움을 현 세상에서도 가지게 하며 영원히 더 큰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체가 사랑이시다. 당신 안에 있는 모든 보화로운 것을 택한 자에게 주므로 즐거워하시고 못 주게 될 때에 슬퍼하신다.
인생의 본질은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지만 즐거움의 가치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다. 마귀의 미혹이라는 것은 영원히 고통을 당할 일을 하면서도 일시 즐겁게 해주는 일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는 잠깐의 괴로움이 있게 하시고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잠깐의 즐거움을 따라갈 때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만다.
86. 청년을 가치 있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자
오늘날 청년들은 청년을 가치 있게 활동할 줄 모르고 육의 정욕인 피의 작용에 따라 만족을 채워 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동물에 가까운 생활이 된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날 때부터 피를 받을 적에 그 피는 많아질수록 죄질 마음이 강하게 생기는 피를 타고났다. 피가 적으면 죄를 질 마음이 적게 일어나고 피가 많아지면 죄질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 육체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여야 청년으로서 그 좋은 피의 활동을 가치 있게 움직일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중심 사상을 바로 가지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이라는 것은 중심 사상에 따라서 그 피가 움직이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거룩한 중심과 사상을 가질 적에 몸의 피까지도 거룩해지는 가운데서 의에 대한 감화가 그 몸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청년이 혈기 방장이 있다 하여도 그 피의 작용이 마귀의 도구가 되지 않고 성신의 도구가 될 적에 의로운 일을 위하여 그 힘을 소비하는 생활이 있으므로 그 청년을 아무도 당할 자가 없으리 만큼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청년의 피를 성신의 도구로 바쳐지는 자이다. 성신은 청년의 몸을 도구로 쓰시기를 기뻐하신다. 마귀는 청년을 자기의 도구로 쓰려고 미혹을 주고 있고 성신님께서도 청년의 몸을 쓰시려고 강권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2. 청년으로 시간을 아껴 주께 바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하감하실 적에 청년이 시간을 아껴 당신 앞에 바치고자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청년의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귀하다. 청년 때부터 그 시간을 주께 바치는 자라면 일할 시간이 더 풍부히 바쳐지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공장에 노인이 가고 청년이 간다면 누구든지 청년이 더 좋다고 할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청년은 기술을 배워주면 그 공장에 큰 성공이 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생산 공장이라는 것은 청년의 기술이 좋을 때에 성공하고 나쁠 때에 실패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왕국을 건설하는 사업에 청년 하나가 큰 일꾼이 된다면 얼마나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이 사람은 고아의 한 사람이지만 17세부터 주 앞에 시간을 바치는 것을 제일 중대한 일로 알고 40년 신앙 생활에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60세가 가까운 사람으로 매일 학과를 배워주는 시간이 9시간이 넘고 그 밖의 시간은 서책을 쓰는 일에 바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어려서부터 시간을 아끼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청년이 시간을 주께 바쳐보려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본다.
3. 청년의 힘을 의를 위하여 소비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청년의 힘이라는 것은 가장 귀하다고 볼 수 있다. 청년이 힘을 아끼고 놀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가장 불행 중에 불행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어떤 청년은 그 힘을 음란, 방탕, 난동을 부리는 일에다 바치고 있는데 이것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청년 때에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가면서 내 힘을 짜 바치는 일이 있으므로 몸이 허약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60세가 가까운 사람으로 청년 때보다도 더 강한 힘을 받아 얼마든지 진리를 위하여 힘을 바치되 남에게 유익이 되는 일에 바치게 될 때에 조금도 피곤이나 권태증이 없이 점점 더 명랑하고 상쾌하고 씩씩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청년이 그 힘을 남의 유익을 위하여 바치는 생활이 가장 축복을 받는 일이라고 더욱 깨닫게 된다.
4. 청년이 필요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나는 청년 때부터 필요없이 청년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필요없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같이 알았으므로 친구가 적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없는 말을 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면 그 자리를 피해서 몰래 도망을 가는 일이 많았다.
하나님과 말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고 좋은 서책을 읽어서 말하는 시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내게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신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하여 한번 불러서 기록하면 서책을 계속으로 낼 수 있게 하신 일을 보면 분명히 기뻐하시는 증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축복이 될 줄로 믿는다.
87. 삶의 길을 찾는 자는 많으나 참으로 찾은 자는 적은 세상
누구나 살려고 애쓴다는 것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 보려는 마음이 정욕적이냐, 진리적이냐 하는 데서부터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떻게 해야 살 길이 있느냐는 것을 과거보다도 더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국을 만났다고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이것이 인생관의 원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죽는다는 문제보다도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어도 살 수가 없는 문제가 닥쳐 온 것이 시국 난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까지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 이익을 보겠다는 욕심에서 싸우는데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여야 세계를 정복하느냐 하는 넓은 생각에서 꿈을 꾸는 사상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때이니 만큼 크고 넓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좀 더 넓고 높고 깊게 깨닫는 지식에 들어가야 기독교인으로서 삶의 길이 어디 있다는 것을 찾게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천당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 신앙 세계에서 움직일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하여야 난국을 돌파하고 가정을 살리며 교회를 살리며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해방 후 5개년 계획을 다섯 번째 하여 자기네 계획했던 바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자신 속에서 살길이 완성된 것처럼 꿈을 꾸고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알고 보면 공산당이 심판 받을 날은 임박하였다고 본다. 심판기에 심판의 대상자는 무신론자요, 침략자요, 궤휼자요, 강포를 행하는 자요, 진리를 대적하는 자요, 붉은 짐승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를 심판기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영화롭게 살 수 있는 경제 확보를 해 놓고 화려한 건물을 건축하여 이 시대는 자기의 때라는 생각을 가지고 황금이면 지상 천국이라는 꿈을 꾸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 물질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사치의 세력이 부요해져서 자기만을 영화롭게 하려는 자들이 불의 사름을 당하는 날에 슬피 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물질 문명으로만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물질에 도취된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오히려 가난한 자 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는 이 시대를 염려하고 살길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므로 이 시대의 숨은 비밀을 알 수가 있지만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된 자는 이 시대의 비밀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물질이 많아질수록 영계는 어두워지고 마음은 컴컴해지고 생각은 더욱 둔해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돈이 있어야 산다는 말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의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교리나 신조로만 살 길이 있다고 생각을 하며 깊은 기도와 진리의 세계는 들어가 보려고 하지도 않는 교만한 종교인들은 구원을 바라나 오히려 스스로 속는 불행도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한 빛을 찾고 하나님께서 보내는 신의 능력에서 인격 개조를 받아 신의 사랑에 깊이 들어가서 자신이 그 사랑 속에서 “나”라는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겨 그 사랑 안에서 형제를 대하고 그 진리 안에서 남을 바로 인도하고 그 능력 안에서 인격을 이루어 승리의 생활을 한다면 새 시대를 왕권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살 길은 믿어서 중생을 받았다는 것이 끝이 아니고 아무런 미혹이 와도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자아의 인격이 그 사랑의 능력에서 완전 변화 성결을 이루어야만 된다. 왜냐하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야만 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이 꾀인 것과 같이 지금은 붉은 용의 권세를 개방시켜 그 권세가 붉은 짐승의 정권을 움직이고 그의 간교한 말이 거짓 선지의 입을 주관하여 마지막 미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받은 사람으로서 이 미혹을 이기고 나가는 자라야 살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 각각 자기네가 산다는 교만에서 서로 무시하고 미혹에 빠져 스스로 멸망을 자취할 종교 혼란이 왔다. 그러므로 이때에 우리는 교파를 초월하고 어떤 주의와 사상에 끌리지 말고 말씀 하나를 그대로 읽어서 밝아지고 깨끗해지고 강하게 되고 능력 있게 싸워 나가는 길에 서야만 될 것이다.
88.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
오늘날 종교인들이 각각 자기가 가장 바로 믿는다는 교만이 들어서 오히려 죄를 짓는 생활에 들어가는 자도 많다고 본다. 이제 믿음이 없다는 생각에서 향상하는 생활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항상 나는 믿음이 없어서 어찌할꼬 하는 생각이 있는 자는 향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겨자씨 만큼 있으면 산이라도 옮겨진다고 하신 것은 항상 내 믿음이 적어서 어찌할꼬 하는 마음에서 겸손히 골방에 엎드릴 때에 겨자씨 한 알이 땅속에 묻혀 소리없이 수분을 흡수하여 자라나듯이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적어서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주여, 어찌 하오리까 하는 묵상에 들어가게 될 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액을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건강한 사람이 항상 음식의 맛을 알고 달게 먹듯이 심령이 소성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데서 새로이 흘러오는 은혜의 맛을 얻고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2. 항상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믿게 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향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라는 자체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세계로 들어가야 될 것이다. 나를 모태로 택한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길러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나를 보호할 이도 하나님이니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이라는 생각에서 깊이 깨달아질 때에 하나님의 세계가 너무 크고 넓으며 내가 믿는 세계는 너무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자라면 그 인격이 향상된 증거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올라갈수록 아래서 보던 것과 달라지듯이 신앙 생활도 향상되는 사람은 항상 지나간 일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고 생각이 나며 새로이 깨달아지는 생활을 하게 된다.
3. 항상 나는 시험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구하는 자는 향상하게 된다.
어려운 시험이 닥쳐 올 때에 원망하지 말고 나는 이 시험을 이길만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오니 내게 믿음을 주셔서 이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할 때에 뜻밖에 산 체험을 받는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신앙 세계로 들어갈 때에 향상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영계가 너무도 어린 사람들이 믿음의 교만을 가지고 공연히 남을 비판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많다고 본다. 그 신앙 세계를 들어가려면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완전 영계에 들어 간 사람의 생활을 비판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나를 떠나가라 하는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89. 열매를 먹고 열매 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모든 나무와 채소와 곡물은 사람을 위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셨고 사람은 그 열매를 먹고 또 열매를 맺어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모든 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그대로 열매를 맺고 있었지만 사람은 사람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범죄하게 되므로 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은 세상이 되어 열매를 먹기 위하여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으면 식물이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어 주지를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열매를 얻기 위하여 수고하고 그 열매를 먹고 또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고 그 열매를 먹고사는 것이 인간들의 생활이 된 것이다.
소위 생산 확장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일년에 생산 수확이 얼마가 되어야 국가를 유지한다고 방법을 세우고 전 국민이 그 열매를 먹기 위하여 노력했는데도 양식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의 곡식을 구해다 먹는 우리 민족이 되고 보니 1년간 밥벌이도 못하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여도 먹지야 못하겠느냐고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밥이나 먹게 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열매를 먹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해도 가련한 일인데 열매도 먹을 수 없는 인간이 된다면 그 가련한 것을 어디에 가서 호소할 것인가. 참으로 인간들의 그 생활의 가치를 무엇에다 비교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한 이때에 열매를 먹고 열매가 있는 인격이 되어야만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자.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먹을 것이 없는 대중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앞에 놓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그 떡과 고기를 주실 때에 남자만 5천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때에 많은 대중은 떡을 먹고 배가 부르는 일이 있었으므로 목적없이 무조건 주님을 따라 온 것이다.
주님께서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할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면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양식이니 나를 먹는 사람은 영생을 얻으리라고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은 차마 들을 수가 없다고 하며 다 물러갔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도 가고자 하느냐고 하실 때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영생할 말씀이 있사온즉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였다. 인간이 볼 때는 불학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어부 베드로이지만 영생할 말씀을 듣고 어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가서 열매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한 것은 아무런 상급이 없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수고한 것은 영원한 왕권의 상급이 되는 것이다.
2. 잠깐의 효과를 주는 열매를 먹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싸워 나가자
인생의 제일 가치 있는 생활은 썩어질 양식을 먹고 영원한 것을 목적하고 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않을 것을 거두어 열매가 되고 잠깐의 고난을 참음으로 영원한 열매가 되고 잠깐의 시간을 소비하여 일한 것이 영원한 나라의 열매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질 열매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영원한 나라를 목적하고 싸워 나갈 때에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생활이 아니고 하늘에 쌓아두는 생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과 능력과 권세를 주는 동시에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생활에 들어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3. 많은 열매를 거두어서 영원한 열매가 되도록 사용하자
어떤 사람이 남보다는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에 열매가 많은 축복을 받아서 자기가 먹는 것보다도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한다면 이 생활이 잠깐의 열매를 먹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고 본다.
우리가 열매를 먹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보다도 열매를 많이 거두는 축복을 받아 그 수확이 많을수록 영원한 열매를 많이 맺도록 사용한다면 이 생활이 가장 복된 생활이다. 그러나 많은 수확이 있을 때에 이것을 가지고 자기 자신이 만족을 얻어 보려는 것은 그 열매가 많아질수록 죄의 열매가 될 것이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열매를 먹는데서 만족을 누려보려는 생활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열매를 조금 먹고 영원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가장 고귀한 사람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90.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로 인생의 가치를 찾자
인생이라는 것은 교제가 없이 살 수 없고 교제가 없이 일할 수 없고 교제가 없이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도 없다. 교제라는 것은 죄를 짓는 교제도 있고 의를 이루는 교제도 있고 실패하는 교제도 있고 성공하는 교제도 있고 죽는 교제도 있고 사는 교제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영원히 사귀어지는 교제라는 것은 어떠한 교제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복음으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1:5)
사람이라는 것은 돈을 가지고도 교제할 수 있고 식물을 가지고도 교제할 수 있고 한 오락적으로도 교제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복음을 전하므로 말미암아 영원한 교제를 이루는 것이 인생의 참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다.
바울이 아시아 사람으로 유럽에 건너가 빌립보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빌립보 사람과 교제하게 된 것이 바울 자신에게 큰 상급 받는 일이 되었고 그 교제의 열매에 의하여 구라파인들에게 큰 열매를 이루게 되었다.
복음적인 교제라는 것은 은과 금을 주어서 그 사람을 구제했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게 되니 그 복음을 믿으므로 중생을 받고 영생을 받은 사람이 될 때에 이 것은 영원한 천국을 이루는 교제이므로 영원히 동거동락하는 교제가 된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단체가 있다 하여도 그것은 영원한 단체가 될 수 없고 복음을 전해서 사귀어진 단체는 영원한 단체가 될 것이다.
2. 거룩한 사랑으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4:1~3)
부모와 자식의 사랑, 부부의 사랑, 친구의 사랑이 있지만 이 사랑의 교제로는 천국을 이룰 수 없다. 이 교제로는 한 가정을 이룰 수도 있고 한 사업적인 단체를 이룰 수는 있지만 그 속에는 거룩한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도덕적인 사랑이요 한 사업적인 교제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사랑의 교제라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양심, 사상, 정신이 결합된 교제이다. 거룩한 사랑의 교제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주관적으로 나온 사랑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신이 사람에게 오셔서 역사하실 때에 거룩한 사랑의 교제는 그 성신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당신의 사랑을 떠나서 교제를 가지게 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한 교제를 가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에서 선악과를 주고 먹고 하는 교제가 있으므로 인간은 사랑의 동산을 떠나서 죽음의 동산, 피땀의 동산, 싸움의 동산을 이루었다. 이러한 인생에게 다시 거룩한 사랑의 동산을 주기 위하여 독생 성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 사랑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이루어 영원한 사랑의 동산인 낙원이라는 세계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사랑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사랑을 떠난 인생을
그 사랑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3. 축복을 받아서 서로 교제하는 일이다 (빌4:18~19)
영적 축복을 받아서 영적으로 남을 살리는 사명자와 물질의 축복을 받아서 물질로 남을 살리는 사명자와 서로 사귀어지는 일은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것을 왕권을 받는 영광의 교제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이 축복 속에서 서로 교제하는 일이 없다면 이것은 완전한 교제가 될 수 없다.
강단에 서는 종이 넘치는 축복을 받을 때에 모든 교인들이 만족한 은혜를 받게 되고 교인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을 때에 신령한 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받들어 주게 되면 이것이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길 때에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사명을 맡긴 것이 아니고 각자가 사명 한 가지씩 맡아서 서로 축복을 받아 교제를 하는 단체를 이루어 주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하므로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주님 앞에 설 때에 영원한 영광을 왕권으로 누리는 단체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91.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용사
인류 역사를 상고해 본다면 자기의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박하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던 세력은 열매없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강한 세력 앞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일어난 용사들의 열매는 오늘도 우리에게 큰 힘을 주는 진리가 되었다.
400년간 애굽의 압박 속에서 자기 민족을 살려 보려고 나섰다가 자기 민족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살인 범죄자로 발각이 나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 소망 없는 목자 생활에서 일어난 용사 모세를 통하여 나타난 역사는 그때에 끝을 맺은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열매를 가져올 근본이 되었다(미7:15).
그리고 애족심에 불타서 작은 물매돌로 골리앗의 머리를 때려죽이고 자기 민족에게 대 환영을 받은 다윗이 버림을 당한 사울에게 7년간이나 억울하게 쫓겨다니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의의 용사로 승리하므로 다윗 왕국에 나타난 여호와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대 승리를 가져올 다림줄의 진리가 되었다.
70년간 포로 생활에서 고국의 황폐화된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하여 고레스의 명령을 받아 돌아왔지만 15년간 압력 속에서 성전을 준공할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용기있게 나서는 용사들로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된 일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예언적인 역사가 된 것이다. 사람이 볼 때는 미약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도와주므로써 이루어진 일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일이 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들은 동방 땅 끝 붉은 산 밑에 초라한 오막살이집을 쓰고 빈한한 생활 속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아들딸이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은 나타났다.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빈민촌에 종말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을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동방 땅 끝의 야곱은 지렁이 같은 인격이지만 날선 새 타작기 같이 강하게 들어 쓰는 일이 있으므로 산같이 높아진 원수의 세력이 거꾸러지고 이 야곱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동방 땅 끝에 닥쳐온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용사가 나올 때가 온 징조라고 본다.
모든 성경을 비추어 볼 때에 마지막에 세계를 통일할 용사는 동방 땅 끝에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말세의 용사가 동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다면 기독교의 종말의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빈한한 민족이라 하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신앙이 강하고 기도가 강하며 멸공 사상이 강하고 심지어 40일 단식을 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새일수도원만 해도 400명이 초과했는데 이 나라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있는 것은 용사적인 진리의 투쟁을 사상적으로 할 종말의 승리의 종이 나올 징조가 분명하다. 언제나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를 들고 나오는 종은 극도로 빈한하고 혼란하고 악화되고 부패된 환경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다.
92.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 일에만 목적을 두고 그 언약을 성립시키는 때를 율법시대라 하고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때를 은혜시대라고 한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 인생들이 은혜의 법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시대가 오므로 누구든지 은혜로 부르시고 은혜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사망의 구렁텅이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하여 은혜시대에 없던 모든 난제가 닥쳐 온 것이다.
1. 붉은 용의 권세를 들어 쓰는 일이다.
이날까지는 마귀를 들어서 쓰는 때가 아니고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시키는 때이었지만 지금은 해방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붉은 용의 세력을 들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붉은 정권이 강하게 일어나게 된 것은 붉은 용이 권세를 그들에게 주어서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계13:2이하). 에덴 동산에서는 뱀의 도구가 될 사람이 없으므로 뱀이 직접 아담, 하와를 미혹했지만 지금은 옛 뱀인 붉은 용의 세력 앞에 부하가 많으므로 그 부하를 들어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는 것이다.
알곡이라는 것은 은혜를 받은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그 마음에 진리가 충만해져서 말씀으로 마지막 붉은 용의 도구가 되는 붉은 짐승과 사상적으로 싸워 승리해야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은 잘못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와를 꾀이던 뱀은 오늘날 붉은 공산당을 도구로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심지어 종교를 아편이라고 하는 사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혼란케 만드는 유물론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흔들 수 있는 권세를 잡은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신앙의 산 체험을 가지고 말씀에 충만한 자 외에는 다 그 짐승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말 것이다.
알곡이라는 사람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신의 능력으로 성결이라는 인격을 소유한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운데 충만히 간직한 자이다. 이러한 자들은 이 시대에 더 강하여지고 영계가 깊어지고 말씀이 햇빛같이 밝아지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사도 시대보다도 7배나 강한 능력을 받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알곡 될 사람은 영계가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이고 쭉정이가 될 사람은 세속주의로 흐르는 동시에 짐승과 협상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2. 진노의 병기를 들어 쓰는 일이다.
이제 전쟁이 나면 세계는 한 시간 동안에 전멸이라는 문제를 놓고 두 가지 노선으로 흐르게 된다.
쭉정이가 될 사람들은 그 불이 무서워서 전쟁을 하지 않도록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평화를 가져 와야 한다고 할 것이요, 알곡 될 사람은 세계가 불로 사름을 당할 때에 구원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알곡인 사람은 말씀 그대로 진노의 병기로 온 땅을 멸할 때가 왔으니 말씀대로 불에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조금도 타협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불을 무서워하는 자는 쭉정이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불에서 구원해 준다는 말씀을 믿고 담대히 싸워 나가는 사람은 알곡이 될 것이다.
3. 거짓 선지를 들어 쓰는 일이다.
거짓 선지는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짐승의 세력을 의지하고 역사하게 된다. 이때에 쭉정이가 될 사람은 그 역사를 따라갈 것이요, 알곡이 될 사람은 아무리 불이 내리고 이적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이적을 중심하지 않고 사상과 그 열매를 중심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그 미혹을 이기고 나가게 될 것이다.
어떤 이적을 따른다든지 세상 권리를 따른다는 것은 쭉정이가 되는 일이니 우리는 이적보다도 더 분명한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하며 세상 권세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권세 역사를 믿어야 되며 세상의 향락보다도 더 평안한 축복의 안식을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환경을 따르는 자는 쭉정이요, 환경을 돌파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알곡이 된다.
93.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한다는 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정직하지 않다는 것은 벌써 붉은 용에게 먹힘을 받은 사람의 행동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붉은 용인 옛 뱀은 가장 간교하게 창조를 받았으므로 그 뱀은 어떻게 하든지 남을 속이는 것이 근본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위 막스주의라는 것은 기만정책을 정통으로 아는 것이 그의 근본 사상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진실이란 것이 근본적인 사상인 동시에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앞으로 행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에게 미리 예언적으로 알려 주지 않으시고는 절대 행하심이 없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완전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여 완전케 해 주겠다는 언약을 세우신 것이 말씀인데 무조건 완전케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고 네가 완전케 해 주겠다는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면 완전케 해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시는데 있어서는 먼저 가장 간교한 뱀인 사단의 세력을 내 보내서 완전케 해 주겠다는 말씀을 의심이 나도록 하는 동시에 믿어지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허락 받고 나온 것이 붉은 용의 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에는 붉은 용의 세력을 들어서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나, 하지 않나 보기 위하여 꾀어보는 것이니 아무리 꾀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완전케 하는 언약의 말씀인 것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셔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동시에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인간 종말의 환란이라는 것은 진실한 하나님의 종과 거짓 선지가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거짓된 자와 싸우지 않고 싸우다가는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에서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거짓된 자에게 먹히는 생활이다. 왜냐하면 거짓된 붉은 용과 짐승의 세력과 거짓선지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하게만 싸워 나간다면 그 밖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전부 역사하셔서 약해도, 가난해도,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이기도록끔
싸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증거를 보여줄 때에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거짓된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게 했고 진실한 사람이 끝까지 싸우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역사이다.
구약시대에 진실한 사람으로 거짓된 자를 이기게 하시면서 인간 종말에도 완전 승리를 이루고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자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제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실패의 근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지 않고 싸워야만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보아도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앞으로 망하리라고 말씀하였다. 과거 히스기야 왕이 정직한 왕이었지만 바벨론에서 온 거짓된 사신을 받아 들여서 비밀을 다 보여 주었다는 조건으로 그 즉시에 이사야를 통하여 바벨론 사신이 본 것은 다 바벨론이 가져가게 된다고 예언했던 것이다. 과연 그대로 궤휼적인 바벨론 정책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이것을 보아도 정직한 사람이 거짓된
자와 타협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망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둘째 :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면 하나님께서 동참죄로 인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를 회개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리시지 않으므로 타협하는 자는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하여도 다 무효가 된다. 예배와 기도라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불의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가기 위하여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응답하기도 하시고 싸워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셋째 : 정직한 사람이 타협하면 주권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속이자는 사람은 양심을 떠나서 일을 해도 거리낌이 없고 정직한 사람은 양심을 거리끼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거짓된 사람이 주권을 쥐게 되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된 사람과 타협하는 시간부터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니 아무런 일도 바로 할 수가 없게 된다.
오늘날 공산당은 전부가 거짓인데 그 세력과 협상한다는 것은 그 시간부터 실패의 근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공산주의 세력이 평화 통일이니 자유 보장이니 하는 것은 기만 정책을 쓰기 위하여 가지고 나오는 한 표어에 불과하다. 평화라는 것도 거짓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자유라는 것은 거짓이 없는 곳에서라야 이루어지게 되는데 기만 정책을 쓰는 공산주의의 평화와 자유라는 것은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멸망 받을 음녀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정직한 사람에게 큰 시험은 72년부터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협상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직한 양심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협상주의를 배격하고 일어나야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게 될 것이다.
94. 평화 같으나 죽을 일
어리석은 인간들이 무조건 자기에게 좋게 해주면 거기서 평화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간교한 마귀라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와 평화를 누려 보자고 하는 유혹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에덴 동산에서부터 가장 간교한 뱀은 어리석은 여자를 찾아와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불만이 생기게 말을 하고 자기와는 평화롭게 생각이 나도록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마귀는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될 것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될까봐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해서는 마음이 멀어지게 하고 자기에게로 끌리도록끔 한 것이니 이것이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간교한 뱀은 어리석은 여자에게 정말 사랑하는 줄로 생각할 만큼 꾀었던 것이다. 언제나 꾀임이라는 것은 감언이설이 들어간다. 그런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감언이설을 좋아하게 되며 지혜로운 사람은 충성된 사람의 권고를 달게 받는 것이다. 기독교가 언제나 세상과 평화적으로 타협을 하지 않고 강하게 회개 운동을 일으키며 나갈 때는 부흥되었으며 나라도 복을 받았던 것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일이요, 미혹이라는 것은 죽이기 위해서 평화롭게 말하는 일이다. 이제 평화 같으나 죽을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진리 아닌 것을 가지고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단체가 있지만 진리로 뭉쳐진 단체가 아닌 것은 결말에 가서 아무런 열매 없는 죽은 나무같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역사하시므로써 진리로 하나된 단체를 이루신다.
이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세우신 법인데 그 법을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같이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란 놈은 언제나 진리가 탈선된 단체를 이루기 위하여 간교한 방침을 쓰게된다.
오늘날 소위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진리에 가감된 단체를 이루게 된 것은 전부가 사단의 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로 하나되게 위한 평화 외에는 전부가 죽음을 가져오는 평화이므로 사단의 유혹이라고 본다.
2. 인물을 중심하여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어떠한 인물을 숭배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따르면 평화요 따르지 않으면 싸움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인물을 숭배할 수는 전혀 없다. 언제나 인물을 중심하여 이루어졌던 단체는 그 사람이 쓰러질 때에는 아무런 열매 없이 분산되고 만 것은 역사가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사람을 숭배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대표자도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고 모든 대중도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것으로 한 단체를 이루어야만 세계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한정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중심한 단체로 이루어진 평화라야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람에게 아부하고 숭배해서 자기의 권리를 보장해 보려는 일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므로 대표자가 오히려 바른 일을 할 수 없고 인의 장막 속에서 갇혀있던 사람으로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아부하는 사람의 한 도구가 되는 수도 있다.
3. 어떤 주의의 일을 중심하여 하나가 되자는 일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이니, 공산주의니, 신비주의니, 인본주의이니, 협상주의이니 하는 등등의 단체가 있다. 그러나 그 주의라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람에게 완전한 평화를 줄 수도 없고 오로지 허영심에 불과한 것으로 되고 만다.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람들은 자기 주의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평화를 누리고 다른 주의는 배격하는 폐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믿고 그 복음을 중심하여 뭉쳐진 단체로써 될 것이다.
95. 시국을 몰라 헛수고하는 일
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전부가 다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는 모든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날마다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되어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떠들다가 하루살이 같이 죽으리라고 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집도 지어야 하고 가정도 이루어야 하고 여러 가지 계획도 세워야 되겠지만 이것만 목적을 두었다는 것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집을 짓는데 유명하다고 볼 수 있고 길을 닦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날마다 자기 몸 하나를 단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되어있다. 집을 지을 만한 형편도 못되면서 좋은 집을 짓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요, 도로를 닦고 다닐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면서 그 길을 닦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요, 몸치장을 할 정도의 형편이 되지 못하고도 몸단장에 전력을 둔다는 것도 인격 부족이다.
우리가 이 시국에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이 몸이 거처할 집을 짓는 것보다도 나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지금은 집을 높이 짓는 것보다도 자기 인격이 향상하는 것을 목적하고 해산의 수고를 다 하여야 될 때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그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인격이 가장 훌륭하다. 소위 현실주의라는 것은 그때 그때의 현실에 따라서 살자는 것인데 이것은 실패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불의의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가 세력을 쥔 현실에서 불의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세하면 자본주의의 현실을 따르고 공산주의가 우세하면 공산주의의 현실을 따른다는 것은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바람잡이와 같은 생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현실이 올 때에는 자본에 끌리지 않는 인격을 가지고 공산주의의 현실이 올 때에는 그 사상에 흔들리지 않는 인격을 가지고 어찌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이 되는 시국이 왔느냐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다. 계6:1이하를 보면 백마의 2차 승리가 이루어질 때에는 붉은 말과 검은 말이 대립될 것이 보여진 것은 심판기에 가서는 붉은 세력과 검은 세력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붉은 세력이요, 자본주의는 검은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붉은 사람도 되지 말고 검은 사람도 되지 말고 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협상주의의 현실이 온다고 해서 협상을 따르게 되면 얼룩말이 된다. 계시록 6장에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얼룩말로 나타난 것은 흰말이 승리하고 또 두 번째로 승리할 시국에는 붉은 말이나 검은 말이나 얼룩말을 따르지 말고 흰 말을 따라 간 사람이라야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흰 말을 탈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만 할 때가 이 시국이라고 본다.
2. 우리는 빨리 다니는 길을 닦는 것보다도 우리가 앞으로 나갈 신앙 노선을 바로 가지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아무리 빨리 다니는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사상 노선을 바로 가지지 못했다면 빨리 다니는 길이라는 것은 하등에 필요가 없이 될 것이다. 사상전을 할 시국을 만나서 국민들의 사상의 길을 바로 닦아주는 지도자가 못된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로 돌아가고 만다. 공산당은 모든 국민에게 사상을 닦아주느라고 심지어 허위 선전까지 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공산당을 없이할 진리 사상의 길을 닦아주는 일을 해야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고속도로는 잘 닦아 놓았어도 국민들의 진리 사상의 획선을 바로 잡아주지 못한다면 고속도로를 닦은 그 수고는 다 헛수고가 될 것으로 본다.
3. 우리는 겉모양을 단장하는 것보다도 속 사람을 단장하는 일이 더 급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겉 단장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들이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겉 단장을 하는 일에 전력을 두고 있다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치라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되어야 하며 백성의 인격을 바로 세우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 국민을 인격으로 지도하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겉모양만 내는 정치를 하면 백성들도 겉모양을 내고 있는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가 겉모양을 내는 정치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성들까지라도 겉모양만 내려고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지도자가 자기 위신을 세워 보려고 한다는 것은 하는 일이 위태로워져 가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체 하는 것이요, 악한 사람이 선한 체 하는 것이요, 사기꾼이 양심이 바른 것처럼 하는 것이니 우리 나라의 형편은 사람들이 다 겉 단장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든다면 철모르는 미성년들이 겉모양을 내기 좋아하는 것과 같다. 우리 나라의 국민들의 수준이 너무나 얕기 때문에 문화인 인체, 신사 인체, 숙녀 인체 하는 단장을
하고 다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각성을 해서 72년도에 오는 시국은 어떠한 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인격을 바로 세우며 사상 노선을 바로 닦으며 생활 개선을 하되 겉모양을 내지 말고 외빈내부의 생활을 해야될 것이다.
96. 숨어 있던 사람이 나타나 일할 때
언제나 위기를 만날 때에는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가서 극도로 위기를 만날 때에 숨어있던 모세를 강권으로 나타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난국을 돌파하게 하였고 북방 이스라엘이 위기를 만날 때에 숨어있던 엘리야를 명령하여 바알 선지에게 승리하게 하였고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을 때에 포로 생활에서 숨어있던 순의 종들을 들어 예루살렘을 복구하게 하였고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하에 있는 유대 나라에 숨어 있던
나사렛 예수가 나타나므로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이루어졌다.
72년도는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타나야 할 때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지와 예정 아래서 그 시대에 써야할 종들을 다 숨겨 놓았다가 홀연히 나타나게 하셨던 것이다. 극동 난제 위기를 만난 오늘에 극동에서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나서 역사할 것을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할 적에 지렁이 같은 야곱을 새 타작기로 쓴다고 하셨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 인격이 숨겨져 있는 가운데서라야 완성되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이미 나타난 종들로 말미암아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위기를 만나게 되면 어떠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기도의 분량이 찬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종말의 역사는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역사이니 만큼 억울함을 당하고 압제를 당하면서도 악으로 대하지 않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기도하던 종들이 기도 응답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남을 압박하던 자는 넘어지고 압박을 당하면서 기도하던 사람은 홀연히 큰 역사가 임하므로써 자신도 감당치 못할 격동이 오게 되어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강하게 나서는 일이 있게 된다.
이날까지 인간의 방법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들도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나갔지만 종말의 역사는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조금도 필요가 없는 응답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어떠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강권으로 보내듯이, 아모스를 강권으로 보내듯이, 갑자기 농장을 떠나고 직장을 떠나서 나서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위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어떤 사람의 제재를 받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2. 말씀의 변론이 완전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날까지 어떤 주석이나 학설은 모두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완전 변론의 역사를 입에 받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말씀이 임하여 증거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무식하다 하여도 그 입의 변론은 누가 당할 수 없으리 만큼 나타나는 일이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의 증거를 들을 때에 택한 자라면 바로 깨닫고 환란과 재앙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일이 있게 된다.
오늘날 강단에 서는 종들이 너무나 말씀이 혼선된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심판을 나릴 수가 없으시므로 심판의 변론을 바로 하는 종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의 변론이 완전한 종들로 말미암아 거짓선지의 미혹의 영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3. 죄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려면 죄의 생각이나 나쁜 성질까지도 완전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에 죄의 생각이나 죄의 질이 있어 가지고는 도저히 허락받고 나오는 사단의 세력과 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는 누구든지 십자가만 믿으면 마귀 세력이 물러가게 되었지만 종말에는 마귀 권세가 허락을 받고 몸에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권세가 있으므로 자신이 죄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허락 받은 사단의 세력을 짓밟고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숨어 있으면서 자기의 인격을 완전히 무장한 종들이 나타나므로 북방 세력을 무찌르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짐승의 정권이라는 것은 마귀의 권세를 받았으므로 죄에 관한 것이 남아있는 사람은 그 권세를 무찌르고 나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죄악의 권세를 짐승이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상전이라는 것은 의의 사상과 죄의 사상이 싸우는 것이니 오늘날 공산 사상과 싸우려면 자신이 죄에서 완전히 떠나는 인격을 가져야 주의 천사가 같이 하므로 북방을 무찌르고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북방 세력을 이기는 것은 기도의 응답으로 되는 것이니 기도의 향이 찬 자는 나서게 될 것이고 마귀 미혹을 말씀으로 물리친 자는 공산주의의 변론을 말살시키게 될 것이고 거룩한 인격을 완전히 받은 자는 죄의 세력인 공산주의와 싸우게 될 것이니 우리는 기도로 무장, 성경으로 무장, 변화 성결로 무장을 갖추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