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창세기~
35. 선지서
61. 소선지서
82. 계시록
153. 신약
1. 성경전서의 총론
2. 인류역사와 사회문제
3. 말세 증인의 설교의 의의
4. 설교 방법
5. 설교자의 인격
6. 개인적인 심방설교
7. 사생활 주의
8. 영계 문제
9. 기도 생활
10. 성경 연구에 대하여
11. 금전 문제
12. 여호와의 이름에 대하여
13. 조직신학의 의의
14. 삼위일체에 대하여
15. 빛이 있다는데 대하여 (창 1:3)
16.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함 (창 1:5)
17.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게 하는데 대하여 (창 1:6)
18. 뭍이 드러나게 한 일에 대하여 (창 1:9)
19. 광명으로 징조, 사시일자, 연한이 있는데 대하여 (창 1:14)
20.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창 1:26)
21. 아담과 하와의 관계 (창 1:27-28, 2:18)
22. 선악과에 대하여 (창 2:17)
23. 가장 간교한 뱀 (창 3:1)
24. 선악과를 먹은 죗값은 무엇인가? (창 3:17-24)
25.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하여 (창 6:2)
26. 하나님은 육체와 같이 할 수 없다 (창 6:3)
27. 사람을 지으신 데 대해 한탄 한 것 (창 6:6)
28. 노아가 당시 완전한 자라는데 대하여 (창 6:9)
29. 인류 언어 혼잡에 대하여 (창 11:7)
30.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 받는 일 (창 12:3)
31.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는데 대하여
32.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다 (출 3:14)
33. 지혜의 시로 찬양하라 (시 47)
34. 동무와 가까운 친구가 원수가 되는 일에
35. 선지서에 대하여
36. 예언서의 삼대 의의
37. 야곱의 도를 가르친 데 대하여 (사 2:3)
38. 인도자가 다닐 길을 훼파하는데 대하여 (사 3:17)
39.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자녀를 깨끗하게 한다 (사 4:4)
40. 시온 산과 모든 집회에 대하여 (사 4:5)
41. 북방 앗수르를 들어서 진노의 날에 막대기로 쓰는 일 (사 10:5)
42.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하여
43. 한 가지에 대하여 (사 11:1~)
44. 깃발에 대하여 (사 11:10)
45. 군대 검열에 대하여 (사 13:4)
46. 안정처에 대하여 (사 33:20)
47. 여호와의 책에 대하여 (사 34:16)
48. 성경의 짝을 맞추는 일에 대하여 (사 34:16)
49. 타작기에 대하여 (사 41:15)
50. 새일에 대하여
51. 주님 가신 길에 대하여 (사 53장)
52. 십자가의 원리에 대하여 (사 53장)
53. 그리스도의 부활의 삼대의의
54.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 (사 58:10)
55. 안식일과 예배 (사 58:13-14)
56. 동방에서 영광을 두려워하는 일 (사 59:19)
57. 첫째아담과 둘째아담
58. 성령의 역사
59. 재앙의 날에 남은 종에게 대하여
60. 지상왕국에 대하여
61. 징벌이 오는데 대하여 (욜 2:1-17)
62. 피와 불과 연기기둥 (욜 2:30)
63.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 심판하는 일 (욜 3)
64.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는 일에 대하여 (암 3:7)
65. 쫓겨난 자에 대하여 (미 4:6-7)
66.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데 대하여 (미 5:7)
67. 매를 순히 맞고 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미6:8)
68.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미 7:7)
69. 수년 내에 부흥케 하는데 대하여 (합 3:2)
70. 하나님께서 잠잠히 사랑하는 일 (습 3:17)
71. 스가랴서의 서론
72. 예루살렘을 척량하는 일에 대하여 (슥 2:1-2)
73.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하여 (슥 3:1-2)
74.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는데 대하여 (슥 3:3-5)
75. 면류관을 여호수아 머리에 씌우는 일 (슥 3:4, 6:7-11)
76.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는 일에 대하여 (슥 3:9)
77. 하나님의 신으로 되어지는 일에 대하여
78.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는데 대하여 (슥 4:14)
79. 평화의 의논이 있다는데 대해 (슥 6:13)
80.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이방을 치는 일 (슥 9:13)
81. 십일조에 대해 (말 3:10)
82. 계시록의 서론
83.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주님에 대하여 (계 1:5)
84.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는 일에 대해 (계 1:6)
85. 주의 날에 계시를 보여준 일에 대하여 (계 1:10)
86. 주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일 (계 1:18)
87. 처음 사랑을 버린 일에 대하여 (계 2:4)
88.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는데 대하여 (계 2:17)
89. 이세벨적인 사상에 대하여 (계 2:20)
90.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는데 대하여 (계 2:25)
91. 새벽별을 주는 일에 대하여 (계 2:28)
92. 살았다는 이름만 가진 것에 대하여 (계 3:1)
93.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린다는 일에 대하여 (계 3:5)
94.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일 (계 3:8)
95. 발 앞에 절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9)
96.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10)
97. 성전 기둥이 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12)
98. 차지도 덥지도 않는데 대하여 (계 3:15)
99. 나는 부자라는데 대하여 (계 3:17)
100.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는 일에 대하여 (계 3:19)
101. 24 장로회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계 4:4)
102. 사대병마에 대하여 (계 6:1-8)
103. 잠시 동안 쉬라는데 대하여 (계 6:11)
104. 다른 천사의 역사에 대하여 (계 7:2)
105.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친다는데 대하여 (계 7:3)
106. 인 친다는데 대하여 (계 7:3)
107.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에 대하여 (계 7:9)
108. 쑥물에 대하여 (계 8:11)
109. 독수리가 큰 소리로 화가 온다는데 대하여 (계 8:13)
110. 무저갱을 여니 연기가 올라온다는데 대하여 (계 9:2)
111. 황충이가 받은 권세 (계 9:3)
112.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는데 대하여 (계 9;4)
113. 꼬리에 해하는 권세가 있다는데 대하여 (계 9:10)
114. 5개월 환난에 대하여 (계 9:10)
115. 배에서 쓰게 될 때에 명령을 받는 일 (계 10:10-11)
116.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 척량 하는 일 (계 11:1)
117.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 (계 11:2)
118. 1260일 예언에 대하여 (계 11:3)
119. 두 증인에 대하여 (계 11:3)
120. 감람나무와 촛대에 대하여 (계 11:4)
121.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한다는데 대하여 (계 11:6)
122. 원하는 대로 재앙이 내리는데 대하여 (계 11:6)
123. 짐승의 세력이 증인을 죽인다는 것에 대하여 (계 11:8)
124. 모든 백성이 3일반 목도하는 일에 대하여 (계 11:9)
125. 땅에 거하는 자를 괴롭게 한다는데 대하여 (계 11:10)
126. 하늘에 큰 이적에 대하여 (계 12:1)
127.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 일에 대하여 (계 12:6)
128. 마귀참소 이기는 일에 대하여 (계 12:11)
129.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계 12:17)
130. 머리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은 상처가 나았다는 것에 대하여 (계 13:3)
131.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에 대하여 (계 13:6)
132. 다른 짐승에 대하여 (계 13:14)
133. 우상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계 13:14)
134. 우상에게 생기를 준다는데 대하여 (계 13:14)
135. 손과 이마에 표를 받는 일에 대하여 (계 13:16)
136. 14만 4천이 시온 산에 선 것에 대하여 (계 14:1)
137. 흠이 없는 자들에 대하여 (계 14:5)
138. 누구든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 (계 14:9-11)
139. 주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다는데 대하여 (계 14:3)
140. 주의 백성이 바닷가에서 하나님을 찬송한 일에 대하여 (계 15:3)
141. 도적같이 오신다는 데 대하여 (계 16:15)
142. 전에 있다가 없어졌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계 17:8)
143. 짐승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운다는 것에 대하여 (계 17:14)
144. 짐승이 음녀를 망하게 한다는 것에 대하여 (계 17:6)
145.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데 대하여 (계 19:10)
146.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계 20:5)
147. 하나님께서 마귀를 사용하는 이유 (계 20:7-8)
148. 행위심판에 대하여 (계 20:12-15)
149. 어린양의 아내를 보인다는 것에 대하여 (계 21:9)
150. 12 지파의 이름과 12 사도의 이름이 있다는데 대하여 (계 21:12-14)
151. 성곽을 척량 하니 일백 사십 사 규빗이라는 것에 대하여 (계 21:17)
152. 우리 수도생으로서 긴급히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53.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대하여 (마 24:50-51)
154. 도성인신에 대하여 (요 1:14)
155.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요 1;17)
156. 신앙 역사에 대하여 (요 14:12)
157. 종된 생활의 삼대 의의 (요 17:3-5)
158.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심 (요 17:24)
159.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에 대하여 (롬 8:2)
160. 성령이 하는 기도 (롬 8:26-27)
161.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16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 (엡 4:13)
163. 연단 중에서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종이 되자 (빌 2:19)
164. 그리스도 구원 완성에 대하여 (골 3:13)
165. 소망의 담대함에 대하여 (히 3:6)
166. 담대한데 대하여 (히 10:35)
167. 영계문제 요일서
168.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 (요일서 1:3)
169.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데 대하여 (요일서 5:4-5)
170. 주님이 물과 피로 임하신 일에 대하여 (요일서 5:6)
17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에 대하여 (요일서 5:14)
172.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에 대하여 (요일서 5:17)
173.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하여 (요일서 5:10)
174. 도둑의 집에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가는 일 (슥 5:4)
175. 망령된 맹세에 대하여 (슥 5:4하)
176. 침례에 대한 의의
177. 성찬의 의의에 대하여
1. 성경전서의 총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인 동시에 알파에 대한 진리를 정확히 알도록 가르친 동시에 오메가의 역사도 정확히 알도록 가르쳐 준 것이 성경전서가 된다. 성경이 인간에게 읽고, 듣고,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시작과 끝을 분명히 알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과거를 기록한 일도 있고 또는 현 생활에 대한 법칙을 기록한 것도 또는 미래에 대한 것을 묵시로 받아서 기록한 것도 있으니 영감이라는 것은 머릿속으로 알려 오는 것을 가르쳤고, 묵시라는 것은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르나 장래 비밀을 알도록 말씀이 임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역사도 있고, 그 때 사람이 지켜야 할 법도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법도 있다.
그러므로 그 때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분명한 역사를 기록하도록 한 것이 있으니 첫째로 “창세기”란 것이다.
창세기 : 이것은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이 율법적인 교회를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질 적에 하나님은 율법 교회에 대표적인 모세에게 천지 창조시부터 모세 때까지에 역사를 분명히 쓰도록 완전 영감을 주어서 쓰되 조금도 희미한 것이 없는 완전 역사를 기록하게 한 것이다.
출애굽기 : 출애굽기는 직접 모세가 애굽에서 나올 때 당한 사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때에 나타난 역사도 썼고 그 때에 그 민족이 지켜야 될 법도 기록할 때에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이것은 완전한 역사, 완전한 율법, 율례를 목적한 성서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율법적인 교회가 성립된 것이다.
여호수아 : 여호수아는 모세를 대신하여 쓰여진 종이니 가나안 복지를 찾던 일을 기록한 글이니 여호수아의 글이다.
사사기 : 하나님이 직접으로 선지를 세워서 선지자로서 정치까지 겸하여 보는 것이 사사기라고 한다.
룻기 : 한 여자로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기(史記)이다.
사무엘 상·하 : 사사 시대에서 열왕 시대로 전환된 것을 가르친 글이다.
열왕기 상·하 : 다윗 왕을 비롯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된 때까지 왕의 사적을 기록한 글이다.
역대 상·하 : 역대 상·하는 왕의 대수를 기억하도록 계산하여 기록한 책이다.
에스라 : 바벨론에 포로 생활에서 다시 해방을 받고 돌아온 사적을 기록하되 스룹바벨의 성전 지은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느헤미야 : 느헤미야는 그 시대 율법 학사의 한 사람으로 역사한 사실을 기록했고
에스더 : 여자의 한 사람으로 자기 민족을 원수의 손에서 살린 일을 기록했다.
욥기서 :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시련을 참는 일에 대하여 죄가 없는 자라도 하나님이 모략적으로 마귀를 들어서 시련 시키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시편 : 만왕의 왕조가 될 다윗이 억울하게도 원수에게 압박을 당하고 쫓김을 당하고 멸시를 받는 중에 그 때 그 때에 성신 감동으로 말세에 다윗 왕국을 이룩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될 일, 성도들의 되어질 일을 아울러 쓴 글이다.
잠언서 : 솔로몬이 지혜를 받아서 청년 된 사람으로 마땅히 알아야 할 경계의 말인 것이다.
전도서 : 솔로몬이 아무리 세상 영광을 누렸지만 이것은 다 허사란 것으로 전도서를 썼다.
아가서 : 다윗 왕족의 솔로몬으로서 왕녀들을 교제할 때 영적 뜻이 신랑의 주와 처녀가 되는 성도들의 관계를 내포한 것이다.
이사야 : 이스라엘이 부패하여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큰 화를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은 기독교 종말에 종교 부패와, 정치 부패, 인심 악화, 경제 혼란이 올 것이니 그 때에 되어진 사실을 들어서 종말을 말했고 북방 앗수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친 막대기로 쓰고 기독교 종말에 북방은 막대기가 된다는 예언을 한 동시에 아무리 북방이 강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들어서 쓰는 것뿐이고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서 세계 인류가 다 그를 통하여 새시대 복을 받게 되되 이방과 타협을 하는 자는 다 심판 날에 죽을 것이로되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인 보호를 하시되 동방에서부터 하나님은 나타나서 북방 세력이 내려오는 환난에서 보호를 받고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새시대를 이룬다는 사실을 가르친 것이다.
예레미야 : 예레미야가 부패한 이스라엘이 회개치 않으면 북방 바벨론에게 망한다는 경고를 한 동시에 종말에 종교 부패를 책망한 글이다. 이 글은 이사야서에 결부되는 참고적인 경고가 되는 말이다.
애가서 :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지 않던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 나타난 슬픈 경고이다.
에스겔 :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되고 70년간 황폐된 기간에 포로의 한 사람인 숨은 선지 에스겔에게 묵시가 임할 적에 기독교 종말에 종교 지도자 부패로서 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니엘 : 포로의 한 사람인 다니엘이 인류 종말에 심판기에 될 일을 꿈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 시대에 느브갓네살 왕이 큰 우상을 본 비밀에 대한 해석을 1차, 2차, 3차로 거듭 본 묵시이다.
호세아 : 아무리 부패한 이스라엘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너그러이 용서하고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가지고 종말을 예언했다.
요엘 : 이스라엘 말기에 무서운 흉년과 북방 환난이 내려온 것같이 인간 종말에 무서운 흉년이 있고, 북방에서 무서운 환난이 내려오지마는 철저히 회개하는 운동을 일으키면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북방을 쳐 없이하고 새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아모스 : 북방 이스라엘이 배도적인 운동을 하므로 무서운 지진에 망할 2년 앞에 놓고 경고의 말씀이 묵시로 기록한 것이니 인류 종말에 부패한 교회를 책망한 글이 된다.
오바댜 : 아브라함의 가정에 에서와 야곱이 있듯이 기독교 종말에 에서적인 신앙 노선과 야곱적인 신앙 노선으로 끝을 맺는 데는 에서는 후손이 남은 자가 없고 야곱의 남은자로 에서를 심판하고 새시대가 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은 신앙의 씨를 가지고 축복을 받은 사람이 새시대 간다는 것이다.
요나 : 북방 니느웨를 향하여 경고한 뜻을 가르친 글이다. 아무리 악한 도성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해 준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가 : 심판주가 올 때는 극도로 종교 지도자가 부패하지마는 그 가운데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새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친 글이다.
나훔 : 북방 군대가 아무리 강하지만 종말에 여호와께서 그 군대를 없이 하고 피값을 갚는다는 것이다.
하박국 : 아무리 주의 종에게 어려운 시련이 오지만 그 종으로서 남은자가 되게 하는데는 북방 세력을 들어서 세상을 치고, 남은 종을 들어서 북방을 치므로 새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다.
스바냐 : 인류 종말에 전 세계 인류가 다 죽되 짐승까지 피해를 당하는 일에는 남은자는 공의와 겸손을 찾는 자가 바닷가에서 인종이 남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학개 : 예루살렘 성전을 고레스의 강권 명령으로 건축하기 시작했지만 악당들의 피해로 중지 상태에 있다가 다시 학개에게 말씀이 임하여 힘을 낼 적에 다리오의 왕권으로 강권 역사, 권리 행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스가랴 : 학개와 한 때에 묵시를 본 것인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명자들이 극도로 시련을 받다가 성전을 지은 것같이 기독교 종말에 촛대 교회를 일으키는 사명자도 무서운 시련이 있은 다음과 권세 역사로서 종말의 완전한 교회가 이루게 되고 그 권리를 통하여 새시대가 이룬다는 것을 묵시로 본 것이다.
말라기 : 아무리 촛대 교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지도자가 부패할 때 촛대가 옮겨지는 것같이 말세에도 완전히 성결함이 있기 전에는 그 교회가 새시대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4복음 : 신약은 하나님의 완전한 언약이 되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열매이니 4복음은 메시야를 영접한 사람으로서 친히 본 것과, 들은 것과, 체험한 것을 증거한 증거이다. 이것은 영감설이니 듣고, 보고, 체험한 바가 영감으로 떠오른 글이다. 이것을 쓴 목적은 주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라는 것을 증거하는 동시에 믿음으로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전한 것이다.
사도행전 : 사도들이 주님이 승천한 후에 역사한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편지서 : 사도 당시에 사도바울이 이방 땅에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 교인들에게 율법과 은혜를 분명히 혼선되지 않도록 가르친 것은 율법주의자들이 이방 성도를 미혹시키는 일이 있기 때문에 미혹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쓴 것이요, 또는 성신을 받은 사람으로서 열매 있는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고, 또는 성직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할 일과 교인으로서 성직자에게 대하여 할 일을 가르친 것은 그 때에 니골라당 때 미혹이 있었던 것이다.
또는 소위 은혜를 받았다 하면서 성신의 역사를 혼선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성신의 역사는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편지서는 교회를 중심하여 쓴 글이니 롬, 고전·후, 갈, 엡, 빌, 골, 살전·후, 각 교회에 보낸 편지요. 그밖에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 딤전·후, 디도, 빌레몬이다.
대중적으로 보낸 편지는 약, 벧전·후, 유다서, 요한 1·2·3서, 히브리서 이것이 합하여 신약 시대에 성도들이 복음, 신앙 문제, 성신의 은사 문제, 교회에 대한 문제, 사생활이 전부 바로 되도록 가르친 성경이 된다. 바울의 옥중 서신은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 디모데후서 5권이다.
계시록 : 완전히 십자가 복음을 믿은 사람으로서 종말에 세계적인 인류 전멸의 환난과 재앙이 올 때 그 말씀을 지킴으로서 환난 재앙을 벗어나서 안식의 복락을 지상에서 받고 무궁 세계까지 세세 왕권을 누릴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해석할 성경은 모세 5경, 사사기, 열왕기, 역대기,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친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타난 역사로 증거가 되는 성경이다. 현재와 미래를 가르친 성경은 그 외에 전체가 해당되는데는 은혜시대에 해당되는 글은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에게 대하여 가르친 말이니 사복음과 편지서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한 것 전부가 계시록과 선지서와 결부되는 해석으로 봐야 된다.
왜냐 할 때에 모든 예언은 전부가 메시야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 심판할 일, 새시대의 축복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서는 목적을 은혜 시대에 둔 것이 아니고 새시대를 목적으로 가르친 것이니 은혜 시대에 관한 일은 사도들이 신약 성경을 인용할 것 외에는 전부가 여기에 대하여 요점이 되는 성경은 계 10:7이다.
2. 인류역사와 사회문제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할 때에 주인이 모르는 집안 일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일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역사는 흑암에 잠긴 소경에 불과한 일이니 그것을 빛의 역사로 믿을 수 없다. 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쓴 역사는 얼마든지 거짓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공경한 역사는 시작되어 계통적인 종교 역사 인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조물주 하나님의 가르친 말씀이 아니고는 과거를 분명히 알 수도 없고 미래를 분명히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한 것은 당신을 떠나서는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一. 천지개벽 홍수가 있기 전의 역사.
이때는 세계 모든 땅에 사람이 다 산 것은 아니로되 아시아를 중심한 지역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있던 에덴 동산은 분명히 동방 에덴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동방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방 아시아를 중심해서 역사했기 때문에 완전한 역사의 시발점 아시아를 중심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언어가 혼잡된 때가 아니고 언어 통일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아담의 족속이지만 이방적인 가인의 계통과 성민적인 셋의 계통이 영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뿐이다. 그 때 사람은 완전한 정치적인 조직 또는 종교적인 조직도 없는 동시에 버림받은 사람의 양심과 버림받지 않은 사람의 양심의 두 가지 아래서 악하다, 선하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양심 시대라고 볼 수 있다.
二. 홍수 심판 후의 역사.
(1) 하나님의 아들인 셋의 계통만 남은 심판.
하나님은 영적으로 버림당한 양심의 악인들을 없애기 위한 목적에서 물로 심판할 때 하나님 앞에 양심적인 신앙의 종교 계통인 셋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노아를 통하여 널리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이나 방주설을 의심하고 믿지 않으므로 다 물에 침몰 당하고 노아 가정이 남았던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 가족으로 민족을 번창시킬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셈과, 함과, 야벳 중에서 셈의 족속을 택한다는 예언을 노아의 입을 통하여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입으로 말한 대로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때에 “너는 복의 근원이며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으리라”는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이 언약이 성립되는 기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다.
그래서 이 3인에게는 똑같이 하나님이 나타나서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언약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야곱의 족속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완전한 종교를 이룬 조직은 없으나 할례의 법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의 법을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제사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언약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2)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는 3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야벳이 창대하다는 말씀이 응하고, 함은 종이 된다는 말씀이 응하고, 셈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정통적인 계통자 이외는 다 이방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은 다수를 점령하고 성민은 소수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 노아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던 자리에서 언어가 혼잡될 때에 사방으로 흩어져 분산 상태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을 바로 찾은 사람은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 외에는 다 다신 숭배의 종교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되므로 열방이라는 지역도 언어가 혼잡해 언어에 따라서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언어에 따른 국경을 정한 것이 열방이 되었다. 국경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 인종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그 씨를 분산시켜 그 영토를 각각 차지하도록 역사했던 것이다.
셋째 : 이방족이 번창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버려뒀으므로 자유자재하고 아무런 죄를 지어도 그들은 막대기가 없고 재앙이 없고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번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택한 민족은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조금만 잘못이 있으면 용서 없이 이방을 들어서 치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많이 받게 되고 재앙을 피값으로 내리기 때문에 재앙으로 죽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성민은 소수요, 이방족은 온 세계를 덮게 되었다.
三. 성민의 고난과 율법 시대의 역사.
성민의 고난과 율법 시대란 다음과 같다.
(1)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첫 계단은 이방 땅의 고역이다.
하나님께서 성민에게 고역을 준 것은 완전한 조직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이 심할 때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요셉이 환난이 올 때에 큰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70여명이 기근을 피해간 것이 그 민족의 고역의 근본이 되었다. 성민이 이방의 객이 되니 자유가 박탈되고 경제가 부흥되지 못하고 억울한 노동, 억울한 죽음을 80여 년 간 받게 되었다.
그 때에 그들은 어찌할 길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신이신 것을 알고 생명을 좌우하는 신이신 것을 그들은 분명히 증거로 알게 되었다. 이것이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그 일과 홍해를 건너는 일, 하늘의 만나를 먹는 일, 반석의 생수와 메추라기 고기를 약식으로 삼고, 의복을 아무리 입어도 헤지지 않는 체험을 받았다. 그 때부터 세계 인류가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한 백성으로 알게 되었다.
(2) 율법적인 종교가 완전 조직을 이루어 그 때부터 성서라는 모세 5경이 나타났다. 이 때에 그 민족은 그 법에 따라서 정치를 받고 교육을 받고 나갈 때에 그들은 이방과 다른 유일신의 종교와 거룩한 신정적인 국체를 이루어 나갈 때에 그 나라는 신정의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선지와 정치인은 병합된 정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선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했고 선지의 말을 들으면 흥했던 것이다.
이 역사가 즉 구약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서 율법 시대라고 하는 것이니 아무리 택한 민족이지만 율법을 범하면 용서 없이 처벌이 있되 속죄제에 중점을 둔 성전이 수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속죄제는 수도에 있는 성전밖에는 드릴 수 없고 외국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성민이라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찾아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四. 부패와 멸망.
(1) 아무리 신성한 종교를 이루었고 정치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역사가 흘러갈 적에 정치와 종교가 극도로 변질되었다. 이와 같이 부패될 적에 하나님의 사람 선지에게 경고의 묵시가 나타났다. 이 묵시는 3가지로 되었으니
첫째 : 그 나라의 종교 부패와 정치 부패를 아울러서 책망하여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둘째 : 메시야 탄생을 말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셋째 : 말세의 종말의 일을 예언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으니 이 글에는 3대 요소가 있는 것이다. 목적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글이지만 그 시대의 민족들에게 경고도 되었고 은혜 시대에 택한 백성에게도 구원에 대한 확실성과 심판을 알게 했고 심판기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여야 환난에서 죽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방법을 분명히 가르친 글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이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으므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은혜 시대가 올 때에도 그 선지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 영원히 망하고 말 것은 두려워할 일이 되는 것이니 구약의 역사는 그 때 된 일이나 그 때 예언한 일이 전부가 은혜 시대와 심판기와 새 시대까지 이루어지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율법 시대에 가르친 말씀은 율법이나 예언이 다 완성한 성서를 이룬 것이다.
(2) 이방 민족과 성민과의 관계.
이 성민이라는 족속은 비록 국경은 적었고 민족 수도 적으나 역사적인 단일 민족으로 열조의 피를 지켜 내려온 동시에 유일신 종교를 지켜 내려왔고 또는 아무런 난관이 부딪혀도 자기네 성민의 사상이라는 사상이 보전되어 내려온 것은 특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방족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당한 비참한 일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만 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강한 이방 나라를 쳐서 물리치고 독립 국가의 부흥을 가져옴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에 알리는 증거가 되고 대종교의 진리가 완전히 열매로 나타난 것이 기독교라는 것이다.
五.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계 문제.
(1) 그리스도께서 세계 민족 중에서 탄생할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역사적인 유일신의 종교는 모든 속죄와 할례와 율법에 관한 모든 것이 기독교가 탄생하므로 폐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에 관한 역사가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대종교의 진리가 되었던 것이다.
금일에 어느 나라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게 된 것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단일 민족의 성민은 목적이 그리스도가 탄생하기까지의 목적을 다 이룬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탄생 후 20세기 기독교 문명은 세계 인류를 흑암적인 다신 종교에서 유일신의 참된 하나님의 교회로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세계에 빛이 되어서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택한 백성을 광명한 빛의 나라로 옮겨 놓는데 불과한 역사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는 세계 인류를 대신한 속죄의 은총을 이루기 위하여 20세기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역사에 불과하였고 모든 선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한 묵시의 진리는 아직까지 전할 시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성경을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데 대하여 있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였지만 예언이 이루어진 시대에야 인간이 알도록 역사 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기까지의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날까지 이루어진 효과는 개인적인 심령을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을 주는 일에 효과를 주는 역사에서 세계 인류에게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의 역사라는 것은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인류적인 구원과 심판으로 끝을 맺는 것이니 이것은 선지의 예언이 전부 해당되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 문제를 위한 역사에는 그리스도의 행적인 4복음, 초대 교회 사도들이 쓴 편지로서의 개인적인 구원 문제는 밝혀졌다고 볼 수 있으나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구원의 진리는 계시록과 선지서가 대조된 다림줄의 진리로서 이룬 것이니 다림줄의 진리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어떠한 방법으로 종말의 심판기에 구원하는 것과 멸망시키는 진리가 결부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목적을 완성시키는 것이니 이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심령 문제보다도 영과 육을 아울러 죽음 없는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을 목적한 것이다. 기독교는 교회를 확장시키는 시기도 있고 알곡만 모아들이는 시기도 있으니 전기는 은혜 시기라면 후기는 심판기이다. 심판기라는 것은 알곡된 백성을 죽지 않도록 절대 보호가 있는 것이요, 그 밖의 사람은 아끼지 않고 전멸시키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 인류라는 것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받은 것이니만큼 구원하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조물주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과 성민과 갈라져 있는 것이 율법 시대요, 이방과 교회를 분별시키는 것이 은혜 시대요, 쭉정과 알곡을 갈라놓은 것을 심판이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근본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목적 밑에서 역사하되 그 영을 구원하는 목적도 있고 그 몸을 구원해 주는 목적도 있으니 몸을 구원해 주는 역사를 새 시대를 이루는 종말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을 구원하는 시기는 온 세계 인류에게 기독교를 확장시키는 시기라면 몸을 구원하는 때는 교회를 다 없이하는 환란이 오는 동시에 당신의 택한 백성을 환난에서 구출하며 보호와 인도와 축복이 같이 하므로 완전한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말세에 다림줄을 쥔 종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六. 그리스도의 통치와 새 시대.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목적을 달성한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새 시대를 가르친 동시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첫째 아담이 승리를 이루지 못하므로 잃어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둘째아담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 놓은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이것은 완전한 천국이 아니요, 창조의 근본 목적에서 원칙을 이루어 놓은 것뿐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라 하는 것이다. 왕국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얻는 것이니 왕권으로서 새 시대를 얻는 자도 있고 시민권으로 얻는 자도 있으니 왕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 순교적인 실천 생활에서 왕국 건설을 위하여 승리적인 역사를 한 자에게 주되 부활성도와 변화성도가 있다.
그밖에 백성된 자격은 말세에 변화성도의 자격을 가진 종들의 예언적인 다림줄의 진리를 믿고 순종함으로써 환난에서 남은 백성이 된 자에게 종족이 되는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은 천년왕국이라 하는 것이니 이 때는 세계 인류가 다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지배를 받고 축복을 받고 사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七. 무궁 시대와 인류 문제.
무궁 시대라 하는 것은 세계 인류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체가 갈라지는데서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이것은 행위 심판을 거친 후에 되는 일이다. 행위 심판이라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천년왕국의 왕권을 가졌던 성도 외에는 상선벌악의 행위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까지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자는 것을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이 때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교훈이 하등에 필요가 없다. 왕국을 가진 자는 영원한 왕권이요, 시민권을 가진 자는 영원한 시민권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는 것뿐이다.
3. 말세 증인의 설교의 의의
말세 다림줄을 쥔 증인의 설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1) 심판기에 설교자라는 것은 합법적인 다림줄에 의한 정확무오한 설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강단에 선 종이 조금만 말씀이 혼선된다면 그 자체가 흑암을 뚫을 수 없기 때문에 양떼를 바로 재앙에서 구출시킬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에 혼선이 없는 설교라는 것은 알파적인 진리와 오메가적인 진리를 완전히 짝을 맞춰서 증거하는 설교라야 될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시기에는 죄인을 부르는 때이니만큼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하는 것 하나에 중심된 설교이면 모든 영들은 죄의 권세 잡은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주는 열매를 가져올 수 있었으나 심판의 다림줄을 쥔 종으로서는 재앙기에 양떼로서 재앙을 피하도록 인도하는 설교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진리도 정확히 증거하는 동시에 재앙의 날에도 어떻게 됨으로 피로 산 백성은 재앙을 받지 않고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는다는 길을 명확히 말해 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변론적인 설교라야 한다.
심판기의 종은 완전한 변론이 서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마귀가 죄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뿐이었으나 종말에는 환난과 재앙을 가져오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완전 변론의 설교가 아니면 마귀의 허락 받은 재앙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앙이라는 것이 오는 것도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요, 재앙 중에 살 길을 찾아 구원하는 것도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날까지 기독교 신학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국한된 신학을 말한 것이요, 종말에 재앙기에 한 진리가 은혜 시대에는 필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봉하여 두었던 까닭에 사람으로서 변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앙이 올 때는 재앙기에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변론을 할 수 있게끔 진리의 창고를 열어 놓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3) 권세가 같이하는 설교가 있어야 한다.
은혜시대 설교라는 것은 은사가 같이할 때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이 되었고 재앙의 날에 설교자는 권세 역사가 있음으로서야 흑암의 재앙을 물리치고 양떼를 구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권세라는 것은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마귀를 쳐부술 수 있는 권세는 다림줄을 통하여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혜 시대의 종된 자로서도 이 권세가 없이는 환난 중에서 역사할 수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권세는 보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4. 설교 방법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법을 따라서 쓰지 않을 때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같이 아무리 다림줄의 진리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방법을 바로 해야 할 것이다.
① 강해적인 설교
이것은 성경을 읽어 가면서 글자글자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 해석 방법은 어느 성경이든지 펼쳐들 적에 먼저 이 성경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가르친 예언이라는 것을 명확히 말하고 그 성경의 의의를 말할 적에 모조리 성경을 읽어 가면서 먼저 말한 목적을 해석하면서 성경을 순서 있게 말하되 성경에서 성경을 풀어야 한다.
성경이란 것은 목적을 하나 두고 말세 성도로서 바로 알도록 가르친 것이니 본문에서 본문을 해석하는 설교가 되지 않고는 완전한 강해를 하는 설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감히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② 요지 설교
이 설교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성경의 요지가 되는 절수 하나를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말씀을 내리는 대로 대중 앞에 말하는 설교이다. 요지를 말할 때는 그 시간에 그 뜻을 대중이 알도록 할뿐이다. 일반 심령들이 마땅히 각성해야 할 문제를 놓고 혹은 권면, 책망, 경고, 위로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이 요지를 따라서 대지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일로 결부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설교하는 시간에 무슨 일을 앞에 놓고 그 일을 완성시키는 힘을 얻기 위해서나 또는 큰 시험문제가 닥쳐올 적에 새로운 소성을 가져오도록 하는 설교의 목적이다.
③ 교리 설교
기독교의 역사적인 신앙체계를 바로 가르치며 각 말씀을 들어서 신앙노선이 바로 서도록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신앙의 지식을 넣어 주는데 효과를 주는 것이다. 마음 판에 똑똑히 새겨지도록 신앙체계를 말해 주는 것이다.
5. 설교자의 인격
설교자라는 것은 대중 앞에 대표로 서는 인격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음성을 듣는 반면에 그 태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인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조심할 문제가 있다.
① 설교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엄숙하고도 경건한 태도가 따라야 한다. 엄숙과 경건이란 것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대중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든지 그 영들에게 만족한 진리를 증거해 보려는 눈물겨운 심정이 있을 적에 신께서 역사하므로 대중이 바라볼 때 그 인격에 영감을 받게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모양을 내 보려고 해도 그 영들에게 경건하고 엄숙하고 사랑스런 무엇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그 심령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② 설교는 음성이 대중이 알아듣도록 너무 빠르지 않고 너무 뜨게도 않게 한마디 말이 명랑하고 힘있게 말이 나가야 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해도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떠들기만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주는 일도 있다. 어떻게 하든지 한마디의 말이라도 대중의 심령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균일된 태도라야 한다. 이것은 말씀에 사로 잡혀가는 설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마음속에 그 진리를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서 말하는 것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③ 입의 구제에 대하여
억지로 멋있게 말해 보려는 그 방법을 할 필요 없고 한마디의 말이라도 정직, 간절, 진실한 태도로서 말해야 된다는 것이다. 만일 설교자가 중심에 없는 변명적인 것이나 어떤 포섭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설교자가 말만하면 된다는 것에 국한된다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보다는 중심을 움직여 주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가 말을 꾸며 보려고 말의 재료를 얻기 위해서 책을 볼 필요가 없다. 성령이 와서 말하게 하므로 입을 열겠다는 신앙에서 겸손히 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자기의 인격을 내세우려는 마음이 있다든지 자기의 어떤 마음을 나타내는 마음이 있을 때 성령은 떠나는 것이다.
설교자는 모든 사람의 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외에는 딴 방침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한 마디의 말씀이라도 성령이 내 입을 사용해야만 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있어야 될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말재주를 가졌다 해도 성신의역사가 내게서 떠나면 아무 소용없는데서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해야 될 것이다.
6. 개인적인 심방설교
방문적인 설교자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 찾아갈 적에 성경을 가지고 말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생명 하나를 살려 준다는 친근의 태도와 말이 있어야 한다.
① 병자방문
그 자리에서 소성을 주고 믿음에 도움이 될 성경절수를 바로 찾아서 한마디 말을 그 마음에 기억하도록 간절히 읽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을 하고 그 말씀에 의해서 간절한 기도를 한 다음에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위로의 말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병자가 새힘을 얻도록 주의 사랑을 깊이 말해 주는 위로가 있어야 할 것이다.
② 시험을 받고 있는 자
법을 들어서 권면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할 것이다. 권면 하되 그 사람에게 오해가 가는 단점을 들어서 말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의 장점을 들어서 소망을 넣어 주는 동시에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권면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압력을 받은 사람에게 단점을 지적할 때에 사단은 더욱 강하게 와서 마음에 공포심을 주고 의심이 나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마귀가 물러가는 것은 그 사람이 주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면 주님께로 힘을 받아야만 마귀는 물러가기 때문이다.
③ 마음이 식어진 자를 심방할 때
이 때는 각성을 받도록 말하되 무엇 때문에 식어졌다는 것을 본인이 깨닫도록 법을 들어서 말해야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이 교만해져서 시험이 될 것이다. 얼마만큼 자기 신앙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때는 그 사람이 도저히 이래서는 내가 안될 것이라는 자극을 받도록 만들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말을 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극도로 위기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법을 들어서 강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에게 겸손히 가서 붙들어 주는 태도보다는 하나님 편에서 노여워한다는 것을 들어서 말해야 할 것이다.
7. 사생활 주의
말세의 성도 생활이라는 것은 재앙의 날에 보호받는 생활이니 주의할 점이 있다.
① 사람을 주의할 일
어느 사람이나 함부로 사귄다는 것은 재앙의 날에 큰 위험을 가져올 것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교제하되 말세의 다림줄의 진리를 붙들고 나가는 사람을 중점으로 하는 교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말세의 진리를 바로 받는 사람 외에는 다 마귀의 흑암이 그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영적 손상을 당하게 될 것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죄인을 부르는 시대이니 어떻게 하든지 안 받는 사람이라도 잘 교섭해서 믿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는 재앙의 날에는 알곡은 알곡끼리만 모여지는 일이 없이는 손상을 볼 것이다.
② 사업에 관한 문제
말세 재앙의 날에 어떤 사업에든지 큰 손상을 보게 될 우려가 많게 될 것이다. 함부로 어떤 영웅적인 심리를 가지고 사업을 하면 안될 것이다. 사업을 하되 하나님의 축복을 중심하여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종말적인 뜻을 이루겠다는 목적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사업을 하는 것도 말세진리운동에 필요 없는 일은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알곡을 모아 오는 추수기이니 모든 것은 다 일조에 무너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③ 가정의 식탁문제
재앙의 날에 남은 가정이 되려 할 때 절대적인 식탁의 조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 식탁에 더러운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 그 집에 재앙이 올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경제적인 생활을 연구하여 사치를 제하고 영양에 필요한 것만을 중심으로 하는 식탁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식탁시간에 언제나 식탁노래를 부르고 공동기도를 시키되 매양 어린 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중점을 배울 적에 이 음식 먹고 이 몸이 죽지 않고 새시대 가게 해 달라는 법을 배워 주는 목적으로 할 것이다. 재앙의 날에 남은 가정은 식탁의 축복을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임했다는 축복이 성도의 가정에 같이 할 것이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영양이 충분해지는 일도 있고, 사람이 모르게 무슨 일인지 양식이 핍절하지 않고 신기한 일도 있다는 것이다. 남이 다 굶고 병드는 날에라도 식탁에 축복을 받은 가정은 전염병이나 또는 기근의 재앙이 들지 못하도록 천사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8. 영계 문제
영계의 생활에서 3 가지 지켜야 할 요소가 있다.
① 항상 시간을 아끼는 각성의 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기의 성도는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헛된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오락, 좌담과 오래도록 쉬기를 좋아하는 일을 금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사단의 시험이 타고 들어오는 시간은 쓸데없는 시간을 소비할 때 얼마든지 영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니 항상 내 심령이 쓸데없는 일에 쏠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말세의 다림줄을 쥔 종이라도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필요 없는 시간을 소비할 적에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② 항상 사명을 감당해 보려고 해산의 노력을 다하는데서 싸워야 할 것이다. 각각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서 자기 사명을 어떻게 하든지 감당해 보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외에는 다 자기 사명을 빼앗기는 큰 손해를 보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이라는 것은 어느 사명자나 총 궐기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전투가 일어나는데 어떤 군대나 자기 책임을 잘못하므로 대군을 거느릴 큰 일에 큰 영향을 가져오는 일이 있다는 것과 같다. 기독교 종말에 마지막 싸움을 하는 것이 다림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③ 사상문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인류 최후의 결전을 일으키는 전쟁은 무력전보다도 사상전이니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도 그 사상이 잘못될 때 전멸을 당하는 화가 올 것이다. 이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사상을 가진다는 것은 주 강림시에 불법을 행하는 자는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금일의 사회주의 공산당이라는 것은 근본이 반기독교적이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가 반기독적인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납할 적에 벌써 영적으로 표를 받은 사람이다. 우리의 사상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상문제와 영계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의 싸우는 전쟁이니 조금이라도 사상적으로 미혹 받을 때 그는 용서 없는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9. 기도 생활
기도의 생활이 은혜시대와는 다르다. 은혜시대에는 각자 각자의 영계문제를 목적 두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기도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앙의 날의 사명자는 그런 방식의 기도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할 때 심판의 다림줄을 쥔 종의 기도생활은 모든 선지와 사도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강권역사의 때이니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는 종이 나가서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것은 합당한 생활이 못되기 때문이다.
심판기 역사라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역사이니 그 때에 시간을 다투어 가면서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남을 살려 주는 일과 또는 자기 사명 분야에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증거한다는 목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의 사명자는 싸워 나가는 전투적인 방법으로 합심호소하는 것을 중점으로 해야 될 것이다.
개인이 나가 싸우다가 피로가 올적에 단체로 집결해서 우렁찬 호소를 해야 큰 권세 새힘을 받는다. 사적인 행동에서 개인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심판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종말의 역사는 군대적인 한 사람의 자격을 가지고 사적인 자유의 행동을 버리고 부흥단의 한 사람의 자격으로서 활약한다는 정신에서 강하게 나간다는 정신이 없이는 기도의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은혜시대의 기도 생활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은사를 중심한 기도가 아니고 권세 역사를 중심한 기도.
② 영을 구원하는 영적 운동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환난에서 저 사람을 사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③ 은혜시대에는 어떻게 하든지 개인 영적 문제 하나를 목적 두고 애를 썼지만 심판기에는 나 자체가 완전한 기도를 강권역사를 통하여 받는 동시에 변화성도의 자격으로서 몸의 인간성, 죄악성 이것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하는 합심호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를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10. 성경 연구에 대하여
말세의 심판기의 사명자는 자기가 한번 연구해 보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대표적인 사람을 통하여 말씀을 나타내리만큼 나타냈는데 그것을 존중히 알지 않고 자기가 따로 연구한다는 것은 그 대표자를 무시하는 교만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일단 다림줄이 나타난 종에게 나 자신이 진리를 함께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신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심판기의 역사이니 벌써 진리가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종에게 권세 역사를 하는 때이니 그 종의 나타난 진리에서 내가 측량을 받고 바로 쓰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그 종의 다시 예언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겸손히 다림줄을 쥐고 같이 싸우는 것 외에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심판기에 가서 어떤 사람이 또다시 연구해서 나온다고 하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증인권세 역사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권세를 대표자 종에게 맡긴 것은 다시 예언하라는 권세이니 이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주관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심판기의 종으로서 성서연구로 크게 두 가지로 본다.
① 성경은 그 시대를 따라 하나님이 개봉하는 것이니 사명자가 개봉할 것 이외의 다른 해석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나갈 것.
② 성경은 조금도 빠짐 없는 글이니 그 시대의 일을 성경에 있는 대로 할 것뿐이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것이 하등에 필요 없다. 성경은 시대적인 대표자에게 나타난 것 외에는 함부로 사적 해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에는 성경대로 주께서 오셔서 이루어진 사실을 사람이 깨닫는 것뿐이다.
그 밖의 될 일은 아무도 성경을 정확히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알도록 하나님은 대표자에게 알려서 그 말씀으로서 통일을 가져오도록 하는 것을 종말의 다시 예언하는 역사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권세 역사를 주는 것은 대표적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낸 진리를 가지고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11. 금전 문제
심판기의 종으로서 금전관계가 명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의 큰 화는 물질에 치우친 자에게 임하는 것이 예언서의 전편(全篇)대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물질문제에 대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물질이 없다고 물질 문제에 대하여 마음이 둔해지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물질을 아끼고 심판기의 역사가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쌓아 두기를 좋아하면 이 마음은 심령이 흑암으로 떨어지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사명자로서 물질에 대하여 있고 없는데다가 뜻을 둘 것이 아니고 자기의 할 사명을 하기 위해서 최후의 노력을 하는데 정신을 두고 싸울 것뿐이다.
12. 여호와의 이름에 대하여
여호와의 신은 입법의 신이다. 입법자는 법대로 시행할 책임이 있는 것이니 여호와의 이름은 입법자의 하나인 여호와의 신이 공의의 법대로 용서없이 벌을 나리는 것이다. 또는 그 법대로 지키는 자는 절대로 공의의 법칙으로 보호할 일, 원수들의 피해를 당치 않도록 싸워 주는 일을 하는 것을 여호와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신은 말씀을 직접 자유롭게 인간에게 명령하는 신이신 동시에 말씀대로 공의를 진행하여 사랑을 진행하는 신이시니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사랑의 법칙을 진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낼 적에 어린양 예수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죽을죄를 당신의 아들에게 대신 지운다는 뜻으로 어린양 예수라 했던 것이다. 이날까지는 주님의 이름은 어린양의 이름이니 죄사함을 받는 것을 목적한 교회는 여호와의 이름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은혜시대가 지나고 환난기가 올 때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쓰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동방의 다른 천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 권세 역사를 말한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 권세를 받은 사람은 살인죄가 없고 심판권을 받고 나오니만큼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를 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나간 종들은 원수에게 피를 흘리며 죽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며 어린양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던 종이다.
그러나 종말에 선지적인 사명은 여호와의 권세 역사가 같이 함으로 그를 해코자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환난의 증인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책의 예언이 보수(報讐)적인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을 전하는 사명자니 여호와 이름을 통하여 적군을 무찌르고 나가는 것이다.
13. 조직신학의 의의
신앙은 혼선된 것을 믿는 것을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은 조직적인 조물주 하나님의 진리가 조직화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을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조직신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① 인류타락을 긍휼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빠짐없이 말씀하시되 어떻게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을 바로 믿도록 하는 것이다.
②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되 이루어질 것을 믿는 시대도 있고 이루어진 것을 믿는 시대도 있으니 이것이 인류역사의 삼대구분이 되는 것이다.
③ 믿는 것은 시대를 따라서 시대의 진리를 믿는 것이 신앙이니 시대의 비밀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이 조직신학이라 한다.
14. 삼위일체에 대하여
삼위라는 것은 세 존재를 뜻한 것이다. 이 존재는 각각 나누어 존재하지만 신의 활동이나 목적이나 하나같이 움직이는 데에 사람을 창조할 때도 같이했고 사람을 다시 구원해 주는데도 같이 하고 영원히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는데도 같이 하는 신이시다. 삼위의 영광은 인간을 위해서 역사하므로 세세 영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5. 빛이 있다는데 대하여 (창 1:3)
하나님은 자체가 빛이시다. 빛이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물체에 있는 빛도 있고, 신의 영광으로 오는 빛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 빛이라는 것은 신의 영광의 생명의 빛이 물체 속에 활동하기 시작한 것을 말한 것이다. 물체자체는 생명의 빛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의 빛이 물체에 임하므로 물체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16.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함 (창 1:5)
빛을 낮이라 칭한 것은 물체에서 오는 태양 빛의 낮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활동기간을 가르쳐서 낮과 밤이라 한 것이다.
17.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누게 하는데 대하여 (창 1:6)
창조의 원리는 물을 나누는 것이 첫째 창조의 단계이다. 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물을 갈라놓기 위하여 궁창을 짓는 것이 첫째 단계이다. 궁창이라는 것은 물을 갈라놓기 위한 곧 하나님의 창조이다. 그러므로 궁창을 하늘이라 한 것은 물을 우주밖에 갈라놓은 것을 가르친 것이다.
18. 뭍이 드러나게 한 일에 대하여 (창 1:9)
이것은 지구가 완전히 굳어진데 대하여 가르친 것이다. 지구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둘째 단계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위치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모든 식물과 동물은 흙에서 나오게 한 것이 창조의 원리이다.
19. 광명으로 징조, 사시일자, 연한이 있는데 대하여 (창 1:14)
하나님께서는 흙에서는 식물과 동물의 생산을 목적했고 광명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징조 사시 일자 연한을 이루게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것은 땅의 식물을 통하여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또는 동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의 모든 식물 동물은 하늘의 광명의 활동에 의하여 생산의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징조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큰 섭리를 나타내려 할 때에는 하늘에 징조를 보인다. 시대적인 징조, 국가의 흥망이 징조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0.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창 1:26)
하나님은 신이시므로 완전한 역사를 하시되 물체적인 사람을 창조할 때 신의 형상을 빚어 놨던 것이다. 이것은 일시에 보기 좋게 만든 것이 아니고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 당신이 지은 만물을 다스리며 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신의 영원한 생명이 들어오는 동시에 몸은 영이 와서 활동할 수 있는 집이 되는 물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생명과를 먹음으로서 영원히 신과 같이 살수 있는 자격을 이루도록 하신 것이 사람을 낸 창조의 원리이다.
21. 아담과 하와의 관계 (창 1:27-28, 2:18)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할 때 조물주 하나님의 신의 형상을 따라서 왕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웅장하고도 씩씩하고 용맹 있는 사람을 냈던 것이다. 그러나 치리권을 가진 용사로 창조를 받았으나 홀로 있는 것이 합당치 않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다스릴 권리를 가진 용사의 할 일을 돕는 배필을 지은 것이 여자 하와이다. 하나님의 남녀 창조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① 사람은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 아담이 받은 사명인데 남자 홀로 땅에 충만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씨를 전하기 위하여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② 용사다운 장부로서 땅을 정복하고 건설적인 옳은 사업을 진행할 의무가 있으며 세밀한 부분을 살펴서 돕는 일을 맡긴 것이 여자를 창조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크게 하는 일을 도와주는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③ 가정의 미와 또는 인격의 미를 이루기 위하여 여자를 창조한 것이니 아름다운 미를 이루는 것을 돕는 배필을 통하여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위하여 돕는 배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회 건설에 기본적인 인생생활 체계를 이루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22. 선악과에 대하여 (창 2:17)
이것은 선과 악이 함께 되는 뜻인데 이것을 먹음으로 사람의 몸에 두 가지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선을 행할 줄도 알게 하고 악을 행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먹기 전에는 사람이 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을 먹은 후에 핏속에는 악이라는 세력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니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자유로 다스릴 수 있으나 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을 재능이 있게 되었고 선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23. 가장 간교한 뱀 (창 3:1)
이것은 가장 지혜로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대항할 수 있는 간교한 재능을 주어서 냈는데 뱀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① 얼마든지 꾈 수 있는 분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뱀에게는 홀리게 할 수 있는 세력을 주어서 사람을 대항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② 뱀은 말할 수 있는 재능까지 주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간교하게 재능 있게 말할 수 있게 했다.
③ 이 뱀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질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질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뱀을 창조한 것은 사람에게 이것을 이김으로서 너는 영원히 세세의 영광을 누리는 인격을 가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은 가장 간교한 뱀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공의라 한다. 그러나 이제 간교한 뱀은 사람에게 공의로운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것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24. 선악과를 먹은 죗값은 무엇인가? (창 3:17-24)
이것은 죄가 없는 동산이고 죄가 없는 몸에 죄가 들어오고 원수가 생기고 저주가 들어오고 사망이 온 죄악이니 죄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① 피조물은 법을 지키면 완전이요, 법을 못 지키면 타락이라는 것이 피조물이다. 만물은 사람을 위한 피조물이니 사람이 법을 지켜서 완전하게 되면 만물도 다시 새로워질 것이요, 사람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하면 만물도 저주받은 것이 인류에게 준법이다.
② 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되 진실이라는 불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다. 법이 없이는 친밀한 교제의 완전한 것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인간을 향하여 진실한 것이 법을 통하여 성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범하므로 진실한 하나님은 말씀대로 그들을 죽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요, 절대적인 법이 용서 없다는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③ 법은 절개를 지키되 아무런 방해물이 있어도 나를 위하여 변치 말고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고 마귀 말을 참으로 알았다는 것이 인류타락의 근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의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 마귀요, 죄다. 죄의 근본은 참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한 것이 죄의 근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약속의 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축복을 빼앗고 저주를 준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자기를 참으로 믿나 시험키 위해 마귀를 쓰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는 사람은 절대적인 마귀시험이 있어도 하나님은 참이라는 것을 믿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25.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하여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은 아벨의 씨의 계통인 씨를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인의 피가 이 땅을 적신 대신에 하나님이 의인의 씨를 준 것이니 의인의 아들이라 했던 것이다. 사람의 딸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저주받은 사람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의 계통인 씨가 사람의 딸들과 합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진노했던 것이다.
26. 하나님은 육체와 같이 할 수 없다 (창 6:3)
하나님은 육체의 정욕에 따라 행하는 자에게 돕는 역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신이시니 육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는 자만을 같이 하는 것이다.
27. 사람을 지으신 데 대해 한탄 한 것 (창 6:6)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탄식한 것은 복을 주고 싶은 맘이 상하여져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복받는 것을 원하지만 사람이 악해질 때 하나님은 슬퍼서 탄식하며 진노한다는 것이다.
28. 노아가 당시 완전한 자라는데 대하여 (창 6:9)
이것은 양심시대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볼 때 완전하다는 것이다. 양심시대에는 절대 하나님을 양심으로 순종하는 자를 완전하다고 취급했다는 것이다.
29. 인류 언어 혼잡에 대하여 (창 11:7)
하나님은 당신의 쓰시던 방언을 아담으로 쓰게 했으니 이것을 여호와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언어 혼잡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은 지면에 사람을 충만케 하라는 것이 목적인데 그들이 한데로 뭉쳐 해치지 않고 단결된 힘으로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강권으로 방언을 주어서 동거동락할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이 방언이라는 것은 자기만 알도록 하는 것이니 각 국경을 정하고 그들로 각 나라의 조상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② 방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특수한 것으로 준 것이니 하나님이 방언을 주신 것이므로 어느 나라 방언이든지 하나같이 들으시고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방언을 하나님의 신으로 사용하는 일도 있다. 언제나 그 나라의 사람에게 나타날 때는 그 나랏말로 알려 주는 일이 있다.
③ 하나님은 축복된 시대가 올 때 다시 언어 통일의 역사를 할 것이니 환난 중에 남은자라는 것은 다 하나같이 언어가 통일되게 되는 것을 새시대라 하는 것이다.
30.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받는 일 (창 12:3)
하나님은 인생에게 언약을 세울 적에 일개 어느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고 천하만국을 구원시킨다는 목적에서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나타났다. 이것은 셈의 장막에서 완전한 진리가 이룰 것을 뜻한 것이니 아브라함의 정통적인 신앙을 기대하고 그 자손 가운데서 세계인류를 구원할 기독교가 탄생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계인류가 하나같이 새땅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31.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는데 대하여
(창 22:17)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극도로 시험해 보고 끝까지 참고 원망치 않고 아들을 바치기까지 순종할 때 아브라함의 신앙을 대적하는 원수는 반드시 심판해서 없이하고 그 신앙을 기본 하여 세계 평화 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끝까지 낙심치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가 세계를 다스릴 왕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32.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다 (출 3:14)
스스로라는 것은 절대 자유로운 권세의 인격을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를 지배할 자는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있다.
① 활동의 근본이 되는 동시에 생명의 자체를 말한 것이다.
②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지배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③ 그는 어떤 자에게 피해를 당치 않는 완전한 실체와 자격을 가진 자다.
33. 지혜의 시로 찬양하라 (시 47)
하나님은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로 세계를 통치하게 하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만이 남아서 여호와를 찬양할 일이 올 때는 세계가 다 하나가 되는 종말의 역사를 통하여 될 것을 가르쳤다. 지혜의 시란 것은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① 하나님의 지혜의 신이 간단하고도 명랑하게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인간으로서 하늘의 비밀을 알 수도 없고 시대적인 비밀을 알 수가 없으므로 종말에 하나님의 신이 남은 종들에게 지혜의 시로 찬양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② 이날까지는 어린양 주님의 속죄를 중심한 노래를 불렀지만 새시대가 이루어질 때는 새일의 역사를 노래하게 될 것이니 이것을 지혜의 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속죄함을 받은 사람이 감사 찬송하는 일과 지혜를 받은 자들이 천만인이 쓰러질 때에 남은자가 되어 노래하는 일과 차별이 있는 것이다.
③ 지혜의 시로 여호와를 찬양할 일은 거짓선지에게 미혹 받지 않고 심판의 다림줄을 쥐고 싸우는 용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가르쳤다. 이 노래를 부르므로 미혹의 영은 다 물러가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비밀이 폭로가 되기 때문이다. 미혹의 영이란 것은 비밀을 폭로시켜서 노래만 불러도 물러가는 역사가 있을 것이니 앞으로 지혜의 시로 찬양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압력을 뚫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34. 동무와 가까운 친구가 원수가 되는 일에
(시 55:11-16)
하나님은 심판기에 택한 사람에게 모략적인 시험이 오게 하는 일은, 함께 상의하고 처리를 하고 함께 다니던 자 가운데서 원수가 일어날 것을 말했으니 다음과 같이 3 가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① 나 자체가 완전히 분별할 수 있는 신령한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② 세상 영웅심이나 오락적인 기분을 따르지 말고 언제나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만을 교통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지혜와 지식과 새힘을 받아서 일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③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상 정신이 철두철미한 동시에 사람에게 종이 될 수 없다는 여기에서 아무리 가까운 친구의 사정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절대 거절하고 의논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어떤 친구를 중심하여 의논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큰 마귀를 들어오게 한다는 것이다.
결론 : 사적생활에서 말조심하고 사적 일에 주의하여야 되는 일이니 사람과 사상을 통하여 가까운 친구를 끼고 마귀는 역사한다는 것이다. 필요 없는 농담, 필요 없는 시간을 보내지 말고 말세의 종은 언제나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말조심하고 시간을 아껴 가면서 모든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말세에는 마귀가 허락을 받을 때이니 얼마든지 가까운 친구를 끼고 마귀로 역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5. 선지서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공의와 사랑이 겸전한 신이다. 그러므로 세계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루고자 하는 참된 이스라엘을 영적 교회가 이루어지려 할 때에 먼저 완전한 여호와의 책을 세상에 나타낸 것이니 이것이 완전구비한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서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영자적인 교회를 법으로 가르쳤고 모든 선지를 통하여서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와 심판기에 역사할 일과 새시대를 빠짐없이 기록한 것이 선지서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탄생과 십자가의 부활, 승천, 성신강림을 세계인류가 완전한 신앙종교를 이루도록 신앙의 법을 완성시킨 것이다. 믿음이란 것은 삼대 요소가 있는 것이다.
① 오실 메시야를 믿는 율법시대
② 오신 메시야를 믿는 은혜시대
③ 메시야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심판기
그러므로 오실 메시야를 믿는 신앙도 피의 제사를 중심했고, 오신 메시야를 믿는 신앙도 피의 제사를 중심한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의 왕국을 이루는 심판기에는 공의의 심판의 법칙을 따라 예언의 말씀을 자세히 읽고 듣고 지키는 데서만이 세계인류가 전멸되는 진노의 날에 남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에는 살아서 새시대에 갈자는 선지서의 전체의 글이 다 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36. 예언서의 삼대 의의
하나님께서는 완전예언을 인간에게 나타내실 적에 삼대의의가 있는 것이다.
① 하나님의 실천적인 예언이 있는 것이다. 실천적인 예언이라는 것은 직접 선지시대에 표적을 나타내시면서 종말에도 이와 같이 행하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② 약속의 예언이 있다. 이것은 은혜시대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다.
③ 묵시적인 예언이 있다. 이것은 모양을 보여주면서 종말을 말씀하신 것이다. 더 정확히 알게 하기 위하여 종말의 될 일을 직접 신의 묵시로 나타내 보인 사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을 신앙하는 자로서 과거에 나타난 여호와의 역사를 믿는 동시에 종말에 될 일을 정확히 믿게 되고 은혜시대에 되어진 일을 믿는 동시에 종말을 정확히 믿고 묵시를 나타낸 것이 이루어지는 말세의 징조를 볼 때 정확히 종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신자의 3대 시험
1. 기도 못하게 하는 시험.
2. 하나님의 모략을 모르게 하는 시험.
3. 교만의 시험.
37. 야곱의 도를 가르친 데 대하여 (사 2:3)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된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말씀은 당신의 자녀로서 어떠한 신앙노선을 걸어야만 새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예언서라 하는 것이다. 예언서라는 것은 목적이 새시대를 두고 가르친 것이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에 들어갈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판 받을 일, 보호받을 일, 두 가지를 가르친 것이니 전체 대지가 되는 것이다.
은혜시대의 역사라는 것은 이방 족이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고 이방과 유대에 차별없이 하나같이 교회가 서서 거룩한 이스라엘을 이루는 것을 뜻했고, 예언의 말씀에 심판과 새시대는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라도 다림줄의 진리를 순종치 않으면 망하고 순종하면 새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야곱의 도라는 것이다.
38. 인도자가 다닐 길을 훼파하는데 대하여 (사 3:17)
이것은 심판기에 되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니 교회의 지도자들이 극도로 부패해서 양떼들로 마땅히 야곱의 도의 길을 바로 가지 못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이사야가 본 이상을 그들에게 증거할 때 아무리 해석해 줘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이다. 그러니까 남은자만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짓선지들이 신앙의 바른 노선을 가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일어나서 변론하고 심판한다는 것이다.
39.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자녀를 깨끗하게 한다 (사 4:4)
이것은 종말의 심판 날에 남을 자에게 임하는 완전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과 육이 아울러 완전성결을 받아서 새시대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종말의 강권역사라 하는 것이다.
40. 시온 산과 모든 집회에 대하여 (사 4:5)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 시온 산과 집회란 것은 살아서 시온산 운동에 들어가는 시기를 가르친 것이다. 계14장에 시온 산에 14만 4천이 섰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니 시온 산 운동의 종들이 인도하는 집회를 가르친 것이다. 집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삼갈 일을 알아야 할 것이다.
① 하나님은 앞으로 택한자를 한데로 모으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시기에는 하나님께서 집회를 따라서 구별한다는 것이다. 참된 종이 강단에 서는 집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악령의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구출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② 재앙기에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되 현재 상태에 두는 것이 아니고 택한자를 한데 모이도록 강권역사를 하되 그 집회를 통하여 천사의 보호가 같이 하고 하나님의 특별 축복이 집회 위에 내린다는 것이다.
③ 집회는 단결된 집회를 가르친 것이다. 사상중심, 진리중심으로 뭉쳐진 집회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것만큼 단결된 집회를 하도록 역사할 것이니 환난시대에 남은자는 단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환난 중에 구원은 단체적인 구원을 뜻한 것이니 은혜시대에 영혼의 구원받는 일과는 다른 방법이 즉 집회운동이다.
41. 북방 앗수르를 들어서 진노의 날에 막대기로 쓰는 일 (사 10:5)
하나님은 심판과 새시대를 목적하고 말씀할 때에 아시아를 중심해서 환난도 말했고 또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니 환난을 일으키는 것도 셈의 장막에서 일으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북방을 들어서 환난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하여 사정없이 막대기로 곡식을 때림같이 종말에 새시대에 들어갈 참된 종과 알곡된 백성을 골라 세우기 위하여 북방을 잠깐동안 막대기로 쓴 다음에 북방을 심판하기 위한 세계적인 인류전멸의 심판과 새시대의 일을 가르치는데 대지가 되는 것이다.
42. 앗수르와 바벨론에 대하여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 있는 동시에 그 사랑의 법도를 이루기 위하여는 공의의 채찍을 쓰는 것은 완전한 사랑의 약속을 믿는 자만이 남은 백성이 되고 남은 종이 되어서 그들로 사랑의 동산인 안식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해질 때는 북방 앗수르를 들어서 막대기로 친다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품에 깊이 들어오라는 교훈이다.
그러나 그들이 앗수르의 막대기를 맞으면서 짐짓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떠날 때 바벨을 들어서 멸망을 시킨 사실은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회개치 않는 자를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망한 중에서도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성도들로 예루살렘을 복구케 한 것은 말세에 주는 교훈이 되었다. 말세에도 먼저 북방의 막대기를 들었어도(사26:11) 짐짓 교회가 부패할 때 바벨로서 교회를 황폐시킬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예언이다.
앗수르는 예루살렘성전을 파괴하지는 못하였으나 바벨론은 성전을 파괴시킨 것은 말세에 앗수르적인 북방의 강한 정책이 교회를 망치는 것이 아니고 바벨적인 세력이 교회를 망친다는 것이다. 바벨은 무엇이냐 하는 것은 계17장은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동방의 역사를 들어서 바벨을 때린 사실은 영적 교회가 바벨화 되는 시대에 동방에서 일어나는 십사만 사천의 역사로 바벨의 세력을 없이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43. 한 가지에 대하여 (사 11:1~)
하나님은 이날까지의 역사는 온 세계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시키는 역사를 하되 생명의 원천 되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완전한 나무가 이루기까지 진보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역사를 한 것뿐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지에 결실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모든 사도와 성도들의 역사는 온 세계 인류에게 싹되시는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 주는데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말세에 가지 된 사명자의 역사는 완전히 남은자가 될 결실을 맺어서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다. 그러므로 가지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것은 종말에 세계통일의 완전 결실에 권세역사를 뜻한 것이다. 이 신이 임하므로 모든 진리는 끝을 맺는 열매가 된다. 사59:19에 여호와께서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이라는 것은 종말에 동방역사를 두고 가르친 말씀인 것이다.
신앙의 3대 혁신
1. 근본과 종말, 정확성 확실.
2. 인격의 완전성.
3. 실천적 생활과 체험.
44. 깃발에 대하여 (사 11:10)
싹이 깃발이 된다는 것은 사11:10에 한 아이가 나서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운다는 뜻이 결부되는 것이니 세계통일의 깃발은 어린아이로 나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세계인류를 다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십자가의 승리의 깃발을 가르친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세계 인류를 십자가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였지만 심판기의 역사는 승리의 깃발이 서고 동시에 천하에 알곡을 한데 모으는 추수기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군을 무찌르고 세계적인 통일의 새로운 시온산 정부가 이루어지는 깃발이다. 깃발이라는 것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니 깃발아래 쫓겨난 자가 모인다는 것은 참된 종을 대적하는 원수가 강할 때 참으로 남을 자가 될 자는 다 한데로 집결시키되 기호를 들고 나오는 권세 역사아래 통일된다는 것이다. 깃발이라는 것은 완전승리의 용사가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주의 종들이 할 일
1. 손가락질하지 말 것.
2. 허망한 말을 하지 말 것(사58:9).
3. 멍에를 지우지 말 것.
45. 군대 검열에 대하여 (사 13:4)
하나님께서 용사를 들어서 바벨을 칠 것을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이 용사라는 것은 종말에 심판권을 부여받는 변화성도의 완전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바벨을 칠적에 동방 메데바사를 들어서 한 것같이 종말에 동방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권을 받고 나오는 종들로 종말에 바벨론이 된 음녀의 세력을 칠 것을 가르친 것이니 검열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의가 있다.
① 사상문제이다. 이 사상이라는 것은 조금도 타협이 없는 충성과 진실이 내포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변함이 있는 자라면 심판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② 완전무장을 말한 것이니 무장이라는 것은 조금도 실수가 없는 용사가 되도록 검열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과 무기를 쓰는 방법에 대한 진리 투쟁의 역사를 말한 것이다.
③ 완전 단결된 결합체를 이루기 위한 검열이다. 종말적인 동방역사에 용사라는 것은 푸른 나무와 같이 뭉쳐진 역사를 가르쳐서 십사만 사천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동방역사의 용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완전승리의 평화 왕국을 이루는 종말적인 역사이므로 완전 검열이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46. 안정처에 대하여 (사 33:20)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 있는 동시에 완전한 보호양육이 있는 것이니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원리가 있는 것이다.
① 하나님은 택한 종과 택한 백성을 위해서 역사하시되 성령을 강하게 부어 주는 역사로서 경건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안정처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삼기 위한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강권역사라 하는 것이다. 종말에 환난 가운데서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역사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또는 강권으로 대중을 안정처로 인도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안정처를 위해서 예정이 있는 지대를 택하고 많은 대중이 가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역사를 하는 것이니 그 안정처 안에 불의의 세력이 없어지도록 재앙을 내리되 거룩한 자가 될 자만이 생명을 보존하도록 위엄 중에 그 땅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말세의 종을 통하여 인도를 받는 자 외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위엄한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는 것이다.
③ 그곳에 경계를 정하되 하나님께서 그 나라와 그 민족에 의하여 경계를 넓게 정하는데도 있고, 좁게 정하는데도 있는 것이다. 그 경계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서 호위하고 지키는 것이니 악당의 피해와 전란의 피해가 절대로 침범을 못하는 것이다(단12:1). 이렇게 되므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말씀을 순종하는 자만이 들어갈 특권을 가지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만이 보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모든 권세를 다림줄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기 때문이다.
47. 여호와의 책에 대하여 (사 34:16)
여호와의 신은 입법자의 신이신 동시에 모세를 통하여서는 율법에 관한 것을 세밀히 말씀하셨고 모든 선지를 통하여는 심판과 새시대의 일을 세밀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은 율법과 선지서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분명히 알려면 율법을 볼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과 새시대의 진리를 분명히 알려면 선지서를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메시야 탄생은 율법적인 공의의 법칙에 죄과를 지불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하셨고, 다시 만 왕의 왕으로 지상통치 하러 오시는 것은 선지서의 예언의 말씀대로 세상을 심판하고 말씀대로 세상을 새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세밀히 말하면 메시야 탄생은 새 언약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평을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다시 재림하는 것은 세계 평화왕국을 목적하고 오시는 것이다.
48. 성경의 짝을 맞추는 일에 대하여 (사 34:16)
하나님은 완전 계약의 말씀을 하시되 인간의 지식으로 도저히 그 말씀에 가감할 수 없도록 정확 무오하게 기록한 것을 하나님의 예언이라 하는 것이다. 성경의 짝을 맞추는데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친 것이니 섭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도록 말한 것이니 말씀으로 말씀을 대조할 적에 명확한 섭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2). 성경의 원리는 글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데 국한된 것이니 짝이 있다는 것은 목적이 하나같이 연관성을 가지고 누구든지 헛되이 믿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가르쳤다.
(3). 말씀이라는 것은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사람으로서 순종하여 복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니 은혜시대에는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알아서 순종하게 하는 목적으로서 하나님을 인간이 알게 하는 것이요, 환난과 재앙의 시기에는 그때의 사람으로서 진노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하는 동시에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도록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시대에 따라 맞추는 것이 말씀으로 짝을 맞춘다고 하는 것이다. 마귀는 성경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하되 시대가 맞지 않는 일을 하므로 사람이 헛되이 주를 찾도록 하는 일이 마귀의 미혹이라고 하는 것이다.
49. 타작기에 대하여 (사 41:15)
동방역사의 타작기라는 진리는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1). 타작기라는 것은 마지막에 끝을 맺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예를 들면 1년간 계획이 타작기에서 끝을 맺는 것이니 농촌의 농부와 같은 의의를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기독교에 2천년간 내려오는 모든 역사가 동방역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 내포된 것이다.
(2). 타작기는 용서없이 심판권의 역사인 의의를 가졌다. 사정없는 날카로운 쇠와 같이 강한 역사가 알곡만을 모으기 위한 강한 바람의 힘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이 타작기의 힘 앞에는 아무리 태산같은 세력도 쭉정이가 될 망할 자들은 다 부스러져서 없어지는 뜻이다.
(3). 완전결합체를 이루어 놓는 최종적인 완전교회를 이루어 놓는 역사이다. 이날까지 교회라는 것은 완전한 알곡으로서 결합을 이루는 교회가 아니요, 씨를 뿌려 가꾸는 농장에 불과한 교회였다. 그러나 동방의 타작기 역사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서 이루어진 교회이니 그 교회는 하나도 누락됨이 없이 전체적으로 남은 교회로서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여 안식을 이루는 역사이다.
50. 새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창조주의 무소불능의 역사가 계신 신이시니 인간이 타락해서 잃어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다시 받도록 역사하여 새시대를 이루는 일을 새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로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신 것을 기독교의 은혜시대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 역사는 하나님이 행할 일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한 보혈로만이 이루어진 역사이다. 그러나 새일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저주받은 이 땅을 다시 복된 땅으로, 거룩한 땅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어 놓는 동시에 사람의 몸까지 완전히 새로 지어서 죽음없고 눈물없는 시대를 이루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새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자를 위하여서 하나님이 행해주는 일을 여호와 새일이라 하는 것이다.
51. 주님 가신 길에 대하여 (사 53장)
하나님은 참된 진리를 인간에게 나타내려 할 때에 누구든지 어떤 풍채나 또는 영웅적인 기대나 또는 인간의 쾌락을 따르지 않고 오직 진리의 생명을 중심하여 가는 일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의 시발점이 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은 극히 낮은 자리에서부터 극히 빈곤하고 괴로운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생애를 거치게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걸어간 생애는 참된 신앙의 정로를 보여준 표준된 생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가신 길에 3대 원리가 있으니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① 30년간 사적생활
이 생활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인간의 사생활을 그리스도께서는 나타내셨던 것이다.
② 3년간 전도생활
그리스도의 전도방법은 참된 종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실천으로 보여준 생활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더러운 죄인 하나도 멸시치 않고 다 환영해 주는 걸음을 걸어간 것은 하나님의 종은 한 사람도 멸시하지 않고 남을 존중히 알고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같이 알라는 사랑의 표준적인 생활을 전도의 생활로 나타내 주신 것이다.
③ 십자가 승리생활
십자가라는 것은 남을 살리겠다는 목적에서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십자가의 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살리고자 하는 뜻을 순종하는 희생의 걸음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바친 생활이 십자가의 길이요, 모든 순교자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뜻을 순종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리스도를 믿도록 증거하는 것이 순교자의 생활이다.
참이라는 것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데 있지 않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데만 있는 것이니 이것은 진정한 양심적인 불타는 사랑의 심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순교의 생활이다.
52. 십자가의 원리에 대하여 (사 53장)
① 하나님은 실천적인 사랑의 열매를 인간에게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조물주인 동시에 피조물된 인간을 당신이 목적한 영원한 영광을 주고 싶은 사랑의 심정이 완전히 인간에게 열매로 이루어진 것을 십자가의 원리라 한다.
② 십자가는 하나님의 법을 사람된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순종의 열매를 이룬 것을 십자가의 원리라 하는 것이다. 첫째아담은 조물주의 뜻을 순종치 않으므로 전세계 인류에게 사망이 왔고 둘째아담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순종으로 전세계 인류에게 생명이 온 것을 십자가의 원리라 하는 것이다.
③ 십자가는 피조물에게 완전한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을 십자가의 원리가 된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통하여 소망이 없던 인간이 소망의 싹이 트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인 동시에 소망 없던 이 천지에 만물들은 다시 축복된 동산인 새시대를 이룰 수 있는 만물이 되는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주권과 만물의 주권이 다시 회복되는 삼대 완성의 진리가 있는 것을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
53. 그리스도의 부활의 삼대의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3대 의의가 있는 것이니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① 부활은 잃었던 안식을 다시 찾아 주는 승리의 열매를 이룬 날이다.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빼앗겼고 인생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잃었던 축복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된 처음 열매가 되는 것이다.
② 부활은 완전한 승리의 인격을 완성시키는 날이다. 땅에 속한 몸이 하늘에 속한 영체가 이루어지는 열매가 맺어진 날이다. 첫째아담이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므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고 둘째아담이 되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함으로써 인생은 영생할 수 있는 영체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소망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하기 전의 몸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어린양의 몸이요, 부활한 몸은 우리에게 영체를 줄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영체의 몸이 있을 수 없다.
③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귀를 멸할 수 있는 권세를 받은 만 왕의 왕으로서 일어난 날이다. 완전한 심판 권세라는 것은 부활체가 되는 영체의 사람이 되어야 마귀를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권세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영체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음부의 열쇠를 잡으시고 역사하기 때문에 마귀의 권세는 감히 다시는 승리를 이루지 못한 백전백패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 마귀가 아무리 발동을 해도 그리스도의 장중에서 모략적인 방법으로 마귀는 이용을 당하는 것뿐이다. 앞으로 다시 올 때에 부활체가 된 부활성도와 변화체가 된 생존성도와 아울러 왕국을 완전히 이루어 마귀권세를 때려부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체로 이루어진 열매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마귀는 완전히 멸할 권세가 성립된 것이다.
54.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 (사 58:10)
심령의 괴로움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은 있으나 그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자를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괴로워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역사는 다음과 같은 3대 원칙이 있다.
① 괴로워하는 그 심정이 소망에서 만족을 얻도록 가르치는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라는 것은 소망의 확실성을 중심한 설교라야 괴로운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이다.
② 설교자의 마음에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있을 적에 같은 말씀을 전해도 괴로움을 느끼던 마음들이 새힘을 얻고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는 변동이 있게 된다.
③ 확실성이 있는 설교이다. 설교라는 자체는 듣는 사람이 확실하다는 신념이 마음에서 생기는 시간에 흑암을 끼고 들어오던 괴로움은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설교자가 소망을 말하고 열심 있게 말한다 하여도 듣는 사람이 정확하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오히려 흑암이 들어간다. 만일 말세종이 정확한 종말관을 바로 말하지 못한다면 환난 중에 고통을 당하는 심령에 만족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55. 안식일과 예배 (사 58:13-14)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되 시대적인 진리에 따라 예배를 받으신다. 율법시대에는 율법에 따라 중심을 바치는 제사를 받으셨고 은혜시대에는 은혜시대의 복음에 의하여 중심으로 바치는 예배를 받으셨다. 그래서 살아서 새시대에 들어가는 자로서는 다음과 같은 예배와 성일의 의의를 가져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일을 주신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축복을 주자는 목적이다.
그러므로 사58:13-14은 환난시대에 남은자로서 받는 축복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이다. 모세의 율법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말세에 새시대를 이루는 성남성녀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우리가 지키는 성일은 모세의 율법에 해당되는 성일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축복을 받아야 할 첫날이 이레 중 첫날이다.
율법의 저주에서 사망을 맛보시고 음부에까지 내려간 날이 토요일이요, 사망을 뚫고 다시 올라온 날이 이레 중 첫날이다. 그러므로 아담에 축복한 토요일이 둘째아담을 통하여 받는 축복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식일에 축복을 받는 날이니 이레중 첫날이다.
56. 동방에서 영광을 두려워하는 일 (사 59:19)
하나님은 흑암이 온 땅을 덮고 있는 시대에 동방에서 영광이 나타날 때는 진노의 날에 보수적인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니 모든 선지가 셈의 장막에서 예언한 심판과 새시대의 비밀이 동방 셈의 장막에서 끝을 맺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기독교의 끝을 맺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쳤다. 이 영광은 세세왕권의 영광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방에 나타난 역사는 흑암시대에 세계 인류를 각성시키는 역사이다. 이날까지는 주님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되는 역사였지만 동방의 역사는 응답으로 나리는 것을 가르쳐서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신의 역사가 강하게 임할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 통일의 완전승리의 왕국을 이루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주재림을 맞이하는 역사이다.
57. 첫째아담과 둘째아담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그 몸을 창조하신 것은, 완전한 인격이란 것은 물체에서 나온 몸이 하나님께로 받은 영원한 생명인 영이 결합되는 것이니 유형적인 인격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과 육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사람으로서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법을 세운 것이니 완전이란 것은 간교한 마귀의 미혹을 이긴자라야 주는 것이 공의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 피는 영생과를 먹을 수 없는 질로 변질된 것이다. 죄가 그 몸에서 생길 수 있는 질이 마귀의 미혹을 통하여 들어온 것이니 그 혈손이 자동적인 죄의 본질을 받아 나게 된 것이 첫째 열매인 가인이었다. 사람이란 것은 본죄의 질을 가지게 된 것은 선악과를 먹은 일이 있은 후이다. 선악과라는 것은 그 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질이 생기게 되는 과실이다. 그 피를 받아 낳은 몸은 누구든지 죄에 속한 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이기고 나간 영은 살았고, 그 몸에서 발생하는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된 사람은 그 영까지 죽게 된 것이 인류타락이다. 둘째아담 예수가 탄생한 일은 영적에만 관한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이 아울러 완전한 인격으로 생명과를 따먹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선악과를 먹은 그 피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몸에 역사해서 첫째아담과는 관계없는 몸을 가지고 탄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완전히 마귀를 이겼음으로 그 피를 신앙하는 자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의 씨를 받게 되어 그 인격은 다시는 아담과는 관계없는 인격을 소유하게 된 것을 그리스도의 중생의 도리라 하는 것이다.
중생을 받은 자는 반드시 물에 잠겨야 하는 것은 첫째아담의 피를 받은 그 몸이 물에 잠겨 올라옴으로 둘째아담 그리스도의 생명체에 접붙는 완전한 영체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받는 뜻으로 그리스도는 완전한 부활체로서 지금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 줌으로 죽은 자는 부활하고 살아서 그리스도를 영접할 자는 죽지 않고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수 있도록 역사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종말역사라 하는 것이다.
58. 성령의 역사
성령은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 신이시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성령을 보낸 것은 맏아들 되시는 그리스도와 일체 되는 자격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법에 다스림을 받고 순종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같이 받을 수 있는 후사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어떠한 사람에게 역사하기를 기뻐하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
이것은 그리스도처럼 남을 살려 보려는 봉사적인 심정이 있는 사람이다.
②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자에게
이것은 순교적인 생활이니 조금도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는 담력이 있는 자이다.
③ 마음의 변동이 없는 자이다.
한번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은 변함없이 나가려는 자에게 성령은 역사한다.
59. 재앙의 날에 남은 종에게 대하여
① 여호와의 예언인 비밀이 전부 알려지고 이루어지는 역사가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의 역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예언은 새시대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니 살아서 재앙을 피하고 새시대에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예언의 비밀을 다 알게 되고 다 이루어지는 역사에 씌워지게 된다.
② 모든 역사적인 피흘린 종들의 소원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가 남은 종의 역사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들은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에 완전히 끝을 맺지 못하고 그들의 몸은 쓰러졌기 때문에 그들이 기도하던 목적, 전하던 목적 이것이 남은 종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소원의 기도가 남은 종에게 내린다.
③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의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영과 육이 아울러서 새땅 축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니 재앙 중의 남은 종들이 그 말씀의 목적에 끝을 맺는 구원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몸이 구원받도록 역사하겠다는 말씀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거시대보다 역사가 칠 배나 강하다는 것이다.
60. 지상왕국에 대하여
① 하나님께서는 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인간으로서 참된 미의 세계에서 미의 생활을 하라는 창조의 첫째 원리이다. 그런데 인간이 마귀에게 미혹 받음으로 지상에서 행복을 누릴 축복을 잃어버린 인생에게 이것을 다시 찾아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구속의 첫째 조건이 되는 것이다.
② 이날까지는 기독교의 복음 운동은 전 세계에 왕국건설운동을 하여 이 소식을 만민에게 알려 주는 역사에 불과하다.
③ 그러나 말세에 살아서 새시대 간다는 것을 말한 것이 종말적인 역사이다. 새시대를 이루는 인종전멸의 진노심판이라는 것은 이 땅에 아름다운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아름답지 못한 것을 몽땅 없애는 것이 진노심판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순종치 않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을 둔 심판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모든 것을 다시 복구하려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목적이 지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서 어떻게 복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선지서에 천당에 가서 영혼이 어떻게 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지상에서 어떻게 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을 근본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목적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61. 징벌이 오는데 대하여 (욜 2:1-17)
징벌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징계이니 개인으로 오는 징계도 있고 민족적으로 오는 징계도 있으니 본문에 가르친 징계는 민족적으로 오는 징계를 가르친 것이다. 민족적으로 오는 징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3 가지 원칙이 있다.
① 사명적인 국가가 그 사명에 충성을 하지 않을 적에 그 사명을 하게 하기 위하여 징계하는 것도 있으니 이것이 민족으로 오는 징계인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은 선지국가인 민족적 사명이 있으므로 심판과 새시대의 진리를, 그 민족에게 되는 일을 들어 가지고 종말의 예언을 한 것이다. 그 민족은 선지적인 국가의 사명을 인하여 북방 앗수르를 들어 친 사실이 있으니 종말에도 사명적인 민족에게 사명을 감당하도록 징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② 동방의 셈의 장막은 종말의 선지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왜냐할 때 동방의 셈의 장막은 모든 선지가 나타나서 성서를 기록한 셈의 족속이니 기록한 족속이 종말의 이 예언의 말씀을 들고 나가서 다시 증거할 때를 가르쳐서 사24장에 세계인류가 전멸되는 재앙이 올 때 동방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금일에 동방 셈의 장막은 종교가 황폐한 현실에 동방 땅끝의 대한민국에 선지적인 국가의 사명이 있는 것이니 이 사명을 충실히 하므로 축복이 오고 충실히 하지 않으므로 재앙이 올 수 있는 것이다.
③ 대한민국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종말적인 역사가 있어야 할 때가 왔다. 만일 우리가 사명을 감당 못할 경우라면 재앙이 올 우려를 갖게 된다. 재앙이라는 것은 민족을 죽이기 위한 재앙이 아니고 이 민족이 바로 깨닫고 단결하여 세계적인 선지국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재앙이 와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재앙이 올 위기에 있으니 재앙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합심 단결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세계적인 종말에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들고 열국을 열방을 깨우쳐야 할 단계에 왔다고 보게 된다. 위기에는 좀 더 단결해서 하나님을 찾을 적에 모든 재앙은 물러갈 수 있는 것이요, 만일 하나님의 뜻을 순종치 않을 적에 징계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62. 피와 불과 연기기둥 (욜 2:30)
하나님은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요, 남종과 여종에게 신을 부어 준다는 것은 환난 가운데 양떼를 살리며 남은 종으로서 역사하기 위한 무장이다.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역사는 은혜시대라면 남종과 여종에게 다시 신을 부어 주는 것을 환난시대에 남은 종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와 불과 연기기둥에는 삼대 의의가 있는 것이니 다음과 같이 되는 역사이다.
①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피를 정결케 해서 환난 가운데 남은 종이 되게 하는 완전 성결의 변화체를 이루는 것을 뜻한 것이다.
② 불이라는 것은 소멸의 불을 말한 것이니 악마를 소탕시키는 종말의 증인권세 역사이다.
③ 연기기둥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보호역사를 뜻한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보호가 있으므로 누구든지 절대적으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삼대 역사를 기독교 종말의 완전역사라 한다.
63.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 심판하는 일 (욜 3)
① 기독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이니 이 교회는 구약 때의 어린양을 잡아 제사하던 그 교회가 완성된 열매의 영적 교회이다. 그렇다면 양의 피로 제사하던 구약교회가 부패하므로 바벨에게 먹힘을 당한 것같이 영적 교회가 부패하므로 북방세력에게 먹힘을 당할 적에 동방역사가 일어나서 북방세력 안에서 교회를 해방시키는 역사가 있고서 심판이 온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이날까지는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지 않았지만 심판기에는 알곡 되는 사람을 한데로 모아 놓는 것을 가르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한다는 것을 뜻하여 말한 것이다.
③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루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영계가 황폐된 바벨에서 심판 날에 남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을 사로잡힌 자들이 돌아올 때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하나라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디 있는 자든지 원수의 손에서 해방을 시켜 놓고야 심판한다는 것이다.
64.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는 일에 대하여 (암 3:7)
하나님은 모든 일을 진행하시되 당신의 택한 사람을 위하여 진행하시기 때문에 비밀을 알려 주는데는 다음과 같이 3대 요소가 있다.
① 당신의 하실 일을 조금도 탈선되지 않고 바로 믿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책임이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 복음이니 확실히 알려준 후에 믿지 않는 자를 처벌하고 믿는 자를 구원한다는 것이 심판 날에 공의가 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진리의 법을 따라서만이 행하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그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절대적인 보호와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은 참된 근본이시니 조금도 거짓이 없이 실행하시기 위해서는 숨김없이 알려주고야 당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참이라는 것은 일을 행하기 전에 알려주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참이라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고 행하신다면 참되신 신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것은 그 신의 비밀을 거짓없이 알려 주는 것이 교훈이요, 가르친대로 신이 행하는 것을 역사라 하는 것이다.
65. 쫓겨난 자에 대하여 (미 4:6-7)
하나님의 완전 축복을 받는 자는 완전히 멸망할 인간들에게 쫓겨남을 당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삼대 요소가 있다.
① 하나님은 악한 자를 재앙으로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악한 자의 마음을 격동시켜 의로운 자를 공연히 미워하고 쫓겨나도록 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② 쫓겨남을 당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모략적인 방법이다.
③ 완전한 거룩하고 빛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나는 교회는 흠이 없어야 될 것이니 속화된 사람이 섞인 예배는 합심이 없으므로 재앙의 날에 강한 역사를 받을 성회가 못되므로 속화된 사람들을 악화시켜 성남성녀를 한데 모아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누구든지 말세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에 갈 사람을 한데 모으는 것은 자동적인 거룩한 성회가 이루어지는 일이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66.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데 대하여 (미 5:7)
하나님은 종말의 완전역사를 일으키려 할 때에 사람을 기다리지 않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종말의 환난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자가 없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승리가 있게 하려는 방법이다. 완전한 승리의 단결이라는 것은 인생을 기다리는 것으로는 도저히 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께서 강한 역사를 하시되 인간의 힘을 초월한 새힘의 역사를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을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적이 되는 사상이니 누구든지 인본적인 사상이라는 것은 심판 날에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완전 세계통일의 인격을 주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인간의 방법과 기대를 초월한 역사가 있어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인간의 어떤 정권이나 경제권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가는 자라야 하나님은 강하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은 완전이라는 것으로서 새시대를 이루는데는 완전승리를 이룰 수 있는 용사를 이루기 위한 법이니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리는 역사로만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67. 매를 순히 맞고 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미6:8)
하나님은 왕권의 영광을 주고자 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택한 종을 다스리는 것이다.
① 겸손한 자가 되기까지 다스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낮고 천한 자를 구원코자 하는 것이 말세의 역사이니 한 사람도 자기보다 못하게 여기지 않고 존중히 볼 때까지 택한 종을 징계로 다스린다.
② 하나님의 뜻이라면 추호도 어김없이 순종하되 자기의 사적을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다스리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사랑을 좀더 깊이 깨달아서 무슨 일이든지 불평이 없는 감사의 생활이 있는 데까지 들어가도록 다스린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종말적인 역사에 완전히 씌어질 수 있는 인격을 기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68.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미 7:7)
하나님은 시대적인 교훈을 조금도 빠짐없이 가르치신 진리의 신이시니 진리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① 시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깨닫고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혼란한 사회가 온다 해도 그 때를 바로 알고 세상에 속화되지 않는 사람을 가르친 것이다.
② 하나님은 진리대로 조금도 거짓없이 역사한다는 것을 믿고 아무리 외롭고 딱한 일을 당해도 원수 앞에서 굴복치 않고 변치 않는 사상과 양심과 정신을 가다듬고 나가는 사람을 가르친 것이다.
③ 아무리 자기가 부족한 것이 많아도 하나님의 무한광대한 사랑을 믿고 용기 있게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사람을 가르쳤다. 아무리 잠이 들었다 해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일, 아무리 속화가 되었다 해도 용기 있게 떨쳐 버리고 바로 서서 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강권역사로서 주의 일군으로 삼아 쓰신다는 것이 내포된 것이다.
69. 수년 내에 부흥케 하는데 대하여 (합 3:2)
하나님은 악의 세력을 먼저 높여 놓는 것은 악의 세력을 멸망하도록 하는 역사의 징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부흥이라는 것은 어떤 개인적이나 교회적인 심령부흥을 말한 것이 아니고 진노의 날에 남은자가 되도록 각성시키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이제 부흥운동의 3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① 시대적인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될 뜻이 있는 것이니 만일 시대적인 나팔불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순교자의 동무가 될 수 없고 진노의 날에 긍휼 함을 받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아모스와 같은 용사가 된 자라야 긍휼 함을 받게 된다.
② 자기를 하나님께 완전히 제물로 바치고 나서는 자라야 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니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 때에 자기의 사적 행동을 취하는 자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없다는 뜻으로 가르친 말씀이다.
③ 급한 사정을 만난 주인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년내라는 것은 어떤 연월일시에 정한 뜻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급한 때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계6장에 잠깐이란 말이나 7장에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 치기까지라는 말이 동일한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히 급했다는 경고의 나팔을 들고 나가서 모든 사람을 깨우치라는 뜻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하는 말이다.
70. 하나님께서 잠잠히 사랑하는 일 (습 3:17)
하나님은 참된 양심적인 정직한 사람을 찾고 계신 신이다. 하나님께서 심판기에 잠잠히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는 것이다.
① 사랑하는 자에게 심판기에 나타나게 사랑치 않고 은밀히 그에게 위로를 주고 비밀을 알려 주는 것을 뜻하였다. 다시 말하면 노아의 가정에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난 것같이 참으로 거짓없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에게 외형적으로는 빈한하고 곤고를 당하는 것 같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에게 같이 하시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롯의 가정에 비밀을 알려주고 천사를 보낸 일 같이 또한 아브라함의 가정에 비밀을 알려 준 것같이 그 비밀을 알려주는 동시에 피할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고요히 인도하는 일이 있다.
③ 하나님은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있던 일과 같이 그 집에 기근이 없도록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는 신비한 일이 같이한다. 자기도 모르게 웬일인지 먹을 것이 생기는 일도 있고, 아무리 질병이 돌아도 그 집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일도 있을 것이고 또는 아무런 악당이라도 그 집에 피해를 못 주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은 재앙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이다. 잠잠히 소리없이 모든 일에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71. 스가랴서의 서론
본서는 완전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이다. 완전이라는 것은 기독교 종말에 종국을 이루는 역사를 말한다. 예언적인 율법적인 교회종말에 된 일은 영적 완전열매가 되는 교회에 종말에 되어질 일을 보여준 묵시다.
왜냐하면 모세율법이 완성된 십자가의 도를 전하여 세운 교회가 종말에 바벨세력에게 구속을 받아 자유를 박탈당한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순의 역사가 나타나서 완전한 교회를 이루는 동시에 그 교회를 통하여 새시대가 올 것을 보여준 묵시이다. 다시 말하면 이 본서는 종말에 완전촛대교회 역사를 중심하는 것과 그 교회로서의 세계적인 평화의 왕국을 이룰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72. 예루살렘을 척량하는 일에 대하여 (슥 2:1-2)
황폐한 예루살렘을 다시 지대를 놓기 위하여 척량하는 일이 보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삼대 원리가 있다.
① 황폐한 곳에 다시 척량이 있는 것과 같이 종말의 교회가 극도로 진리가 혼선되고 영계가 혼선된 교계를 다시 지대를 놓듯이, 예언의 말씀인 다림줄로 완전히 새로운 터를 닦아야 된다는 것이다.
② 지대란 것은 척량한 것이 있음으로 완전한 건축이 설립된 것과 같이 촛대교회는 진리가 조금도 가감 없는 정확한 다림줄의 역사가 있음으로야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③ 척량이라는 것은 권리행사에 시발점을 가르친 것이다. 건축에 대한 모든 권리행사가 척량의 행사다. 그러므로 부패된 예루살렘을 복구하라는 권리를 고레스의 왕권 명령에 의해 시작된 것같이 종말의 역사가 즉 권리행사의 역사로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73.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하여 (슥 3:1-2)
하나님께서 구약 때에 대제사장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완전히 이루어짐으로서 율법적인 종교는 완전히 폐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피로써 예배하는 자는 천국 지성소에 들어가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으로서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에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피의 제사에 대제사장인 주님에게 모든 권세를 맡기고 세계 만민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는 중보적인 역사를 하시었다.
그러나 피로 산 교회가 모든 세계에 전파된 종말에 바벨적인 세력아래 극도로 영적 부패 또는 종말에 진리혼선에 떨어질 적에 다시 촛대교회를 일으키는 심판의 다림줄의 비밀을 하나님께 받아 완전한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는 일에는 증인권세 역사로 이미 선 교회를 다시 예언적인 촛대교회로 이루어지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영적 교회의 대표적인 사람을 세운 것은 종말에 혼선된 진리를 바로 잡고 또는 붉은 마귀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는 일에 권리행사의 역사에 대표를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를 들어서 묵시를 보인 것은 종말에 사명자의 대표적인 사람을 가르쳐 보여준 묵시다. 이것은 세밀히 말하자면 이미 피로 산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 교회가 종말에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로서 끝을 맺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운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선 것이요, 알곡을 모아서 촛대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74.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는데 대하여 (슥 3:3-5)
하나님께서 사단을 들어서 종을 대적시켜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① 말세에 권세역사의 선구자로 삼으려 할 때에 사단으로 그를 까불어 보는 일을 통과시킨다. 베드로도 은혜시대에 대표적인 종이니만큼 사단으로 까불어(눅22:31) 본 후에 주께서 친히 내 양을 먹이라고 한 것같이 말세에 사명적인 대표자도 사단으로 대적을 시켜 보고 다음에 다시 들어서 쓰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② 이 더러운 옷이라는 것은 사람이 볼 때에 사람 앞에 비소, 조롱,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 종을 모략적으로 까불어 보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정하고 다시 들어 쓴다는 것이다.
③ 주 앞에 선 자들로 그 옷을 벗기라고 한 것은 사람 앞에 비소, 조롱을 받게 된 일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종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합심협력해서 새로운 출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될 적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왕관을 쓸 적에 완전역사가 하나님께로 내린다는 것이다.
75. 면류관을 여호수아 머리에 씌우는 일 (슥 3:4, 6:7-11)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는 일에 대하여 여기에 면류관이라는 것은 완전승리의 권세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승리역사라는 것은 종들이 결합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결합이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사명을 존중히 아는 마음에서 결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면류관을 씌운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자의 사명을 중대시하고 받들어 주는 것을 가르쳤다.
②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합치가 되는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세운 종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합심 협력되는 단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역사는 두세 사람이라도 합심하는 장소에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요시야 집에 불과 3, 4명이 면류관을 씌워 준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 희미한 단체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말의 역사가 대중적인 역사가 아니고 참된 종들이 결합된 적은 단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76.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는 일에 대하여 (슥 3:9)
죄악을 하루에 제하는데 대하여는 다음과 같다.
①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고 물러가는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시련기에는 사단이 떠나지 않고 계속으로 주의 종을 괴롭히고 하루아침에 다 일소되고 물러가는 일을 가르친 것이다.
② 사단이 세력이 완전히 꺾이고 보니 사람마다 인간성에 관한 죄악성이 없어지고 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사람의 죄악성이라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요, 사단이 떠날 때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③ 종말의 역사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모든 종들이 하나같이 압력 받고 하나같이 사단과 대항하고 하나같이 성결하게 되고 승리의 용사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 종말의 역사란 것은 푸른 나무와 같이 변화성도들이 완전결합체 역사이므로 정한 때에 하나같이 승리역사가 되도록 이루어 주신 것이다.
77. 하나님의 신으로 되어지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되 사람의 할 일과 하나님의 할 일이 법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을 하나님이 해도 위법이요, 하나님의 할 일을 사람이 해도 위법이다. 그러므로 신으로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3대 요소가 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입법자 되는 주의 신 외는 그 말씀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도 없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만일에 어떤 종이 자기 맘대로 해석한다 해도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고 그 말씀을 어떤 자기의 목적을 두고 이용한데도 대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리를 침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②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세운 것이니 타락이 된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신께서 실천하실 일이요, 인생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에 씌워지는 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완성하는 것도 신께서 독생자의 피로써 완성하는 것이니 이것을 증거하는 종은 십자가 외에 딴 것을 증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증거는 신이 인간의 죄를 담당한 그 일을 만민에게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러나 말세에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는 하나님이 정확히 인간에게 알도록 해 주는 것이다.
③ 하나님은 완전 종결의 끝을 맺는 것도 책임이 있으니 말씀이 일점일획도 다 폐하지 않고 다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인생이 진노의 날에 죽는 것도 말씀대로, 사는 것도 말씀대로 될 것이니 이것을 정확히 전해 줄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신께 있다는 것이다.
78.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는데 대하여 (슥 4:14)
하나님께서 언제나 권세를 맡긴 자에게는 기름을 부어 준 것이다. 왕권을 맡기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기름을 붓고 말세에 종들을 왕권을 주어서 쓰는 일도 기름을 붓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름을 붓는다는 뜻이니 이날까지의 모든 종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의 기름부음을 받는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요일2:27). 그러나 여기에 감람나무에 기름부음이란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종말적인 심판의 다림줄에 의해 받는 권리를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하나님 심판에 대한 모든 권리 행사에 다림줄의 역사에 책임을 세우는 대표를 뜻한 것이다.
② 이 둘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하나님의 역사에 총책임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그 종이 받은 역사로 온 세계가 통일될 것을 말한 것이다.
③ 이 둘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대표의 사람을 가르친 동시에 그 역사를 힘입어서만이 세계인류를 환난에서 구출시키는 일이 될 것이니 누구든지 이 역사에 씌워지는 종은 한 감람나무가 되는 것이다. 슥6:12에 자기 곳에서 난다 : 측량 받는 자니 새길 것을 새기고 제할 것을 제한 자리가 자기 곳인데 계11:1~이하와 같다.
79. 평화의 의논이 있다는데 대해 (슥 6:13)
평화의 의논이라는 것은 성전을 짓는 일에 하나가 못되고 서로 대립되는데서 중단상태에 있었지만 강권역사 권리행사로 성전을 이루게 될 적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음으로만이 모든 종들 사이에 완전 평화적인 통일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 것이다. 일이 완전히 이루어짐으로만이 분명히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 것을 증거로 나타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80.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이방을 치는 일 (슥 9:13)
시온의 자녀가 이방을 치는데 대하여 하나님은 원수를 용서하는 때도 있고 원수를 갚는 때도 있다. 온 세계 만방에 화평을 전할 때는 원수를 사랑하는 화평의 복음이다. 이것은 왜냐할 때에 죄인을 불러서 천국의 자녀를 채우는 일이니만큼 누구든지 한 사람도 원수를 갚는 일은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수가 찬 후인 즉, 화평을 믿지 않는 이방을 몽땅 없애 버리는 것을 진노의 날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킨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①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은 모든 선지시대와 같이 육적 이스라엘이 이방을 치듯이 말세에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서 마귀의 이방세력을 치게 되는 것이다.
② 이방을 없이하는 것은 지상왕국 평화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때요, 종말의 진노의 날에 세계적인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는 목적이니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도 남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③ 진노의 날이라는 것은 사랑을 베풀어도 받지 않는 것을 없이하는 것은 진노가 임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81. 십일조에 대해 (말 3:10)
하나님은 주고 싶은 사랑 속에서 법을 세운 것이니 말세에 눈물 없고, 죽음 없고, 질병 없는 새땅의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리도록 하고자 할 때에 먼저 물질에 대한 법을 세웠으니 이것은 십일조란 것이다. 십일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①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을 만한 희생과 봉사의 믿음이 있는 자로 열에 하나를 하나님 집에 바치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은 인생을 세상에 살게 한 목적은 영원한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니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집에 바쳐서 하나님의 집을 움직여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피조물된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물질을 사용해 하나님의 원하는 뜻을 따라 사용하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은 새땅의 축복을 받도록 재앙의 날에 보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③ 십일조라는 것은 이 땅에서 축복 받을 성남성녀에게 주는 교훈이니 이것을 가지고 네가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의 그 생활을 보고 그 가정에 약속대로 기근이 오고 재앙이 오는 날에도 물과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함으로서 새땅에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겠다는 뜻이다.
십일조에 대한 법은 다음과 같다.
ㄱ) 현재의 얻은 현물에서 열에 하나를 바치는 일.
ㄴ) 하나님의 집에다 바치는 것은 십일조를 사용하는 법은 어떤 개인적인 사적생활에 쓸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만 쓴다는 것이다.
82. 계시록의 서론
하나님은 언제나 시대를 따라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로 탈선된 신앙노선에 서지 않고 완전한 진리체계를 바로 알고 증거하는 것을 원하는 동시에 시대적인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이 계시록은 세계만방에 교회가 선 다음에 전세계 인류가 무서운 환난과 재앙으로 전멸 당하게 될 때에 환난에 떨어지지 않고 다 구원코자 한 목적의 글이니 이것은 영과 육이 아울러서 완전 구원코자 하는 것이니 심판기에 읽고 듣고 지켜야 할 말씀이다.
이제 계시록의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일곱 교회에 대한 편지는 주님이 교회를 심판할 때에 심판 받을 행위와 심판을 받지 않고 남은 교회가 될 신앙노선을 가르친 것이다.
② 일곱 인의 비밀은 시대를 확실히 분별하여 때를 알고 각성하라는 뜻으로 보여준 것이다.
③ 일곱 나팔, 이것은 종말의 환난이 어떻게 온다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환난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환난을 피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④ 일곱 대접 재앙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어떠한 화를 받는 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세계 인류가 어떻게 되어서 전멸을 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세밀히 말하면 마지막 재앙이 올 때에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살아서 새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83.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주님에 대하여 (계 1:5)
하나님은 시대적인 비밀을 먼저 충성되이 증거하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악당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미움을 받게 하시고 무서운 쓰라린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을 준 것은 첫째는 충성된 증인이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에게 어려운 박해를 준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는 시간만이 고통이 아니요, 말구유에서부터 겟세마네의 길 전부가 인간이 당할 고통을 당하는 동시에 충성된 증인으로 당할 일을 모범적으로 걸어가신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겟세마네까지 참고 나간 증인으로서의 승리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으로서의 삼대요소가 있다.
① 숨김이 없는 확실한 진리를 세상에 증거했다.
② 친히 실천의 생활에서 표적을 나타냈다.
③ 죽기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다한 것이다.
84.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는 일에 대해 (계 1:6)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의 말씀대로 역사하시되 진리에 적합한 합법적인 기도가 있어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법이 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다락방의 성령이 임할 때도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 임했던 것이다. 하늘에서 땅위에 역사하는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① 하나님은 인생의 주권을 주는 동시에 인생의 할 일을 해야만 준다는 것이 인격적인 사람을 존중히 대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것은 기도할 수 있는 공로를 완전히 이룬 것뿐 이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그 공로를 믿고 기도하는데 따라서 이 땅에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② 보좌에 둘러앉은 24장로는 기도의 분량에 따라서 결재를 내는 기관이니 기도가 많이 상달된 자는 그 분량에 따라서 계급의 결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애쓰는 마음으로 기도한데 따라 그 사람의 세세왕권의 계급이 올라가는 것은 그 사람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할 때마다 그 보상이 올라가는 것이다.
③ 기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가져오는 조건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말씀한대로 사람에게 행하되 말씀대로 믿고 기도하는데 따라서 역사한다. 기도하는 말씀대로 될 줄 믿고 끝까지 참는 기도에 큰 역사가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왜냐하면 큰 역사라는 것은 분량에 따라 있기 때문이다.
85. 주의 날에 계시를 보여준 일에 대하여 (계 1:10)
하나님은 머릿돌 되시는 주님을 통하여 완전계시를 인간에게 나타낼 적에 승리하신 부활주일에 주님은 다시 요한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여기에 주의 날이라는 것은 주님의 부활하신 날을 말한 것이니 어떻게 해서 계시가 부활주일에 나타났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참된 평화와 안식을 이루어 준 것이니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잃었던 안식을 둘째아담 예수가 완전히 승리의 부활을 한 날이니 인간에게 새로운 안식이 온 날이니 살아서 안식에 들어갈 비밀을 부활하신 날에 나타나 보였던 것이다.
② 부활절은 유월절기에 이루어진 날이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온 절기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과 동일하다. 앞으로 재앙의 날에 구원받는 일은 유월절과 같은 것이니 유월절에 계시록을 보여준 것은 재앙의 날에 받는 구원을 보여준 것이다.
③ 승리의 부활하신 예수님은 몸이 온유한 주님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두려운 주님이 나타나서 계시를 보여준 것은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구원받는 때는 두려운 주님으로 나타날 때 받는 구원이니 머릿돌 되신 심판주로서 그 날에 요한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86. 주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일 (계 1:18)
주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는 원수에게 박해를 당했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고, 심지어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것은 완전한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는 승리를 본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으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완전히 세계를 통치할 권세를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다.
첫째아담은 마귀에게 지므로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둘째아담 주님은 완전히 승리하셨으므로 마귀를 완전히 때려 없이할 권세를 가지고 죄로 말미암아 마귀 권세아래 있는 영들을 해방시키는 것과 마귀를 심판해서 마귀를 없애는 권세를 잡으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역사는 죄로 말미암아 마귀권세아래서 마귀의 종이 되었던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역사요, 다시 올 때 역사는 마귀의 권세를 세상에서 없애려고 오는 것이니 마귀의 세력을 없애는 날에는 조금이라도 마귀의 세력과 타협이 있는 자는 몽땅 용서없이 죽인다는 것이 계시록의 대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없애려고 세상에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곱 교회 편지로 알 수 있다.
87. 처음 사랑을 버린 일에 대하여 (계 2:4)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요,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죄에서 구원하고 환난에서 구원코자 하는 목적이니 모든 것을 다 잘했다 하더라도 남을 구원해 보려는 열심이 식어지면 하나님은 역사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고 남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날마다 사랑을 받는 양심에서 움직이는 회개와 활동이 있어야만 된다.
88.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는데 대하여 (계 2:17)
흰 돌이라는 것은 완전성결을 받은 자로서 승리하는 자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올 때에 남은자가 되려면 흰 돌 같이 성결하고 강해야 된다는 것이다. 새 이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삼대 의의가 있다.
① 세세왕권에 씌워질 이름을 가르친 것이다. 이름이란 속된 이름도 있고 거룩한 이름도 있으니 새 이름이란 것은 거룩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이름이다. 이것은 사람이 지을 수 없고 하나님이 주는 이름이다.
② 이름은 승리의 이름으로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새 이름을 줄 때에 새 이름으로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축복을 받는다.
③ 이름을 부르고 이름의 뜻에 따라서 싸울 때에 하나님은 절대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할 때에 축복하여 세세왕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89. 이세벨적인 사상에 대하여 (계 2:20)
이세벨이라는 것은 정치적인 야욕을 가지고 종교를 이용하되 자기 정권을 숭배하도록 만들어 본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정치란 것은 종교아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치는 종교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종교를 자기의 도구로 쓰려는 정치를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된 교회의 참된 진리를 파괴시키고 자기의 야욕적인 정치를 만족하게 채우겠다는 야만적인 정치다. 세밀히 말하면 하나님교회를 마귀의 세력에 굴복시키려고 하는 간교한 정책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를 용납한다면 환난에서 망한다는 것을 말했다.
90.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는데 대하여 (계 2:25)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말한 것이니 예언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종말의 다림줄을 붙들고 싸우는 자에게 철장 권세를 준다. 철장권세라는 것은 강한 정책을 말한 것이니 세상의 정권이 다 파멸되고 세계 통일의 권세로 새로운 새시대를 이루는 것을 가르쳤다. 누구든지 철장같이 강한 사상과 무기를 가진 자라면 세계를 통일할 것을 말한 것이다.
91. 새벽별을 주는 일에 대하여 (계 2:28)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새일의 역사를 통하여 왕권을 받게 되는 뜻을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서 통치할 것을 새벽별이라고 하였으니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계22:16).
92. 살았다는 이름만 가진 것에 대하여 (계 3:1)
사람 앞에 보이려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활동하는 교회를 가르쳤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영계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 있게 일한대도 하나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고 버린다는 것이다.
93.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린다는 일에 대하여 (계 3:5)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는 아무리 생명책에 기록한 자도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가감할 때에 버린다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94.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일 (계 3:8)
하나님께서는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작은 역사라도 말씀을 바로 지켜 나가는 데에 충성을 두는 자를 들어서 환난 가운데서 역사할 것을 가르쳤다.
95. 발 앞에 절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9)
이것은 말씀 중심으로 나가는 사람이 왕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96.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10)
하나님은 환난에서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받을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듯이 마귀를 들어서 시험해 보고 새시대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97. 성전 기둥이 되게 하는데 대하여 (계 3:12)
기둥이 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주도권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인도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 것이다.
98. 차지도 덥지도 않는데 대하여 (계 3:15)
이것은 영계운동은 아무런 관심조차 없고 잠자는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아무런 영적 활동이 없는 뜻이다.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말은 교회 같으나 세상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에 떨어진 것을 말한 것이다.
99. 나는 부자라는데 대하여 (계 3:17)
인간의 육안으로 볼 때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계는 다 황폐된 교회를 가르쳤다.
100.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는 일에 대하여 (계 3:19)
하나님께서 아무리 세속에 빠졌다 하더라도 중심신앙사상이 바로선 사람은 강권으로 징계하시어서 깨닫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101. 24 장로회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계 4:4)
하나님 앞에 3 가지 부서가 있으니 다음가 같은 3 가지 요소가 있다.
① 24 장로회가 있으니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께로 축복의 상급을 받음에 대하여 총결산을 맺어서 왕국건설에 그 권리에 대한 결재기관이다.
② 네 생물이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지령에 따라서 사람의 생명 호흡과 또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또는 모든 자연계의 움직이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기관이다.
③ 일곱 영이 있으니 일곱 영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놓는 일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다. 사람이란 것은 일곱 영의 역사를 받지 않고는 완전한 승리의 인격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102. 사대병마에 대하여 (계 6:1-8)
완전계시에 대한 사대병마에 대한 진리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백마의 승리는 왕국 건설 운동에 승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백마의 승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계시록의 총대지가 된다. 기독교는 지상 왕국 건설을 목적한 것이니 기독교 복음운동에 근본적인 대승리를 이룬 것은 잃었던 백성을 찾는 동시에 왕국건설의 기반을 닦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일차승리라는 것은 알파적인 역사가 된다면 이차승리는 오메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차승리는 완전 지상왕국을 이루기 위한 절대적인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백마가 완전세계 평화왕국을 건설하는 종말에 싸움의 대상자는 적마, 흑마, 청황색 말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적마와 흑마의 세력을 보내는 것은 백마가 완전한 평화왕국을 건설할 종들이니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인류 전멸을 가져오도록 하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청황색마는 적마와 흑마의 어간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다 하나가 된다는 허울좋은 간판에서 궤휼적인 정책을 가지고 백마를 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으로서 준비하는 것보다도 교회를 침투하여 종말에 멸망의 길로 떨어지도록 하자는 간교한 마귀의 술책이 나오는 것이다. 교회를 삼키는 궤휼적인 정책이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 인류에게 전란이 오게 하는 것은 적마와 흑마로 오게 되는 것이요, 교회에 큰 재앙이 오는 것은 청황색마로 오는 것이니 청황색마는 영적으로 침투해 오는 음부의 세력이다. 이와 같이 음부의 세력이 전 세계 인류를 먹어 나올 적에 교회가 버림을 당한 교회도 있고, 청황색마를 대항해서 싸우는 교회도 나올 것이니 이 때에 순교자의 동무가 나타나게 된다.
103. 잠시동안 쉬라는데 대하여 (계 6:11)
이것은 순교자의 영들이 안타까워 호소할 때에 잠깐동안만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 잠간이라는 것은 때가 됐다는 뜻이니 잠시라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하나님께서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뜻이 내포되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강한 발동을 시키겠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②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시기라는 것이다. 다림줄의 줄을 띄우는 순교자 동무가 나타날 때부터는 마지막 경고이니 수에 들지 못한 자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③ 이 때는 잠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롯의 처와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태만히 가지면 다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돌진의 용사가 되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104. 다른 천사의 역사에 대하여 (계 7:2)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계시를 보여줄 적에 세상 권리를 가지고 나오는 대표적인 역사를 보이는 동시에 하늘 권세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인 것이 다른 천사라 하는 것이다. 다른 천사에 대하여 3대 원리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쥐고서 세계를 움직이되 하나님의 종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0장에는 다른 천사가 작은 책을 들었다고 한 것이다. 이 작은 책이라는 것은 종말의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들고 나오는 역사이다.
② 하늘과 땅의 권세를 아울러 가지고 나오는 역사이다. 하나님의 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를 뜻한 것이니 성신의 인과는 다르다. 성신의 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마음에 확신이 있도록 하는 것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자유로운 권세를 뜻한 것이다. 왜냐할 때에 조물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기 때문에 그를 지배할 자는 전혀 없는 것이다.
③ 완전히 오메가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니 이 인을 맞으므로 만이 남은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역사는 재앙의 날에 남은자가 되게 하는 역사이니 살아서 새시대를 왕권으로 정복하는 것을 가르쳤다. 이 역사는 셈의 장막에서 일어나되 해 돋는 동방을 가르친 것이다. 모든 역사는 성서에 기록된 일이 셈의 장막에서 된 것이니 끝도 셈의 장막에서 맺어지는 역사인데 셈의 장막 중에서도 해 돋는 동방이라는 것이다.
105.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친다는데 대하여 (계 7:3)
우리라는 것은 권세 역사에 한 단체를 말한 것이다. 종말의 역사는 한 결합체가 이루는 완전무장, 완전단결, 완전승리의 클럽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하시되 합심 결합체를 들어서 역사하심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시대에 역사하는 것과 종말의 역사의 차별 점은 다음과 같다.
은혜시대는 개인적 신앙, 개인적 구원문제를 완전단결된 단체 행동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역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말에는 개인적인 구원이 아니고 전 세계적 국민이 전멸되는 그날에 14만 4천명이란 단체가 권세 아래서 승리할 것이니 시작할 때부터 단결된 역사가 나올 것이다.
106. 인 친다는데 대하여 (계 7:3)
이것은 권세 역사의 강권을 뜻한 것이다. 인치는 권리 행사를 뜻한 것이니 완전히 단결된 역사가 나타날 적에 누구든지 참된 종이라면 강권 역사의 권리 행사로 한데 모아 한 단체를 이루도록 끔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권세 역사를 통하여 하나같이 되도록 다스리는 것을 뜻하였다. 예를 들면 군대를 모집할 적에 강권으로 군대의 책임자가 다스리듯이 하나님께서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되 하나님의 사람을 한데 모으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107.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에 대하여 (계 7:9)
이것은 누구든지 종말에 환난 중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무리다. 이 환난이라는 것은 참된 종을 들어 쓰는 동시에 참된 하나님의 자녀를 구출시키는 역사가 있을 때니 심판과는 다르다. 환난이 올 때에 권세 역사를 하는 종도 있고, 그 때에 가서 회개하고 따라오는 자도 있으니 이 무리는 예정된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면 환난에서 보호받는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아무리 이방사람이라도 종말의 역사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보호를 하신다는 것이다.
108. 쑥물에 대하여 (계 8:11)
물이라는 것은 단물도 있고 쑥물도 있으니 단물은 생명의 원천인 진리가 충만한 교회를 가르쳤고 쑥물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마귀로부터 오는 교훈을 가르쳤다. 쑥물과 같은 교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마귀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참이라는 것을 부인하도록 만들어 놓는 교훈이니 이것이 영을 죽이는 쑥물이다.
② 마귀는 잘못된 교훈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피해를 주자는 것이 목적이니 참된 진리의 사상을 없애는 방법을 쑥물이라 하는 것이다. 방법은 자기 앞에 머리를 숙이도록만 만들면 된다는 방법을 쑥물이라 하는 것이다.
③ 마귀의 교훈이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에게 심리를 맞추어서 심리학적 교훈을 쓰는 것을 마귀의 교훈이라 하는 것이다. 종말의 시험은 이 요소를 끼고 기독교에 들어오는 것이다.
109. 독수리가 큰 소리로 화가 온다는데 대하여 (계 8:13)
세계적인 화가 올 때는 악의 세력이 세계 사람에게 위협을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 계시를 보일 적에 첫째로 악의 세력은 어떻게 쓴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 것이니 악의 세력이 극도로 강하게 올라갈 때는 세계적으로 화가 올 때라는 것이다.
110. 무저갱을 여니 연기가 올라온다는데 대하여 (계 9:2)
이것은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흑암의 세력이 마음대로 빛의 세계를 침범 못하도록 했었지만 세계적인 재앙이 올 때는 흑암의 세력이 빛의 세계를 침투할 수 있게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시험해 볼 때가 왔기 때문이다. 무저갱을 열었다는 것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개방을 하여 준다는 것이요, 검은 연기는 마귀의 권세를 가르친 것이니 흑암의 권세가 빛의 세계를 침투하여 들어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111. 황충이가 받은 권세 (계 9:3)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이 버림을 당하고 황충이같이 악해질 적에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니 마귀의 권세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귀도 자기가 쓰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어서 역사한다는 것이다.
112. 인 맞지 아니한 사람만 해하라는데 대하여 (계 9;4)
이것은 인권 역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다 거짓 영의 피해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이 권세 역사를 받은 자 만이 남은 종이 될 것이요, 그 밖의 사람은 다 마귀 권세아래서 눌림을 당하고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것이다.
113. 꼬리에 해하는 권세가 있다는데 대하여 (계 9:10)
이것은 사람의 눈으로 잘 알지 못할 만큼 비밀적인 세포 활동을 하고 있는 세력을 말한 것이다. 나무뿌리가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뻗어 나가듯이 세계적으로 그 세력이 침투해 오되 교회의 강단에까지 들어온다. 그러므로 5개월 환난이란 것은 비밀 속에 숨어 있던 말단 계급에서 행동을 개시하고 참된 하나님의 종들을 대적하고 일어나는 역사이다.
114. 5개월 환난에 대하여 (계 9:10)
이것은 하나님께서 쭉정과 알곡을 가르기 위해서 주는 환난이니 예를 들면 타작기를 쓸 적에 쭉정이와 알곡이 갈라지듯이 종말의 권세역사가 나오는 동시에 마귀에게도 권세를 주어서 교회가 둘로 갈라지도록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증인권세의 역사를 통하지 않고는 다 황충이 같은 마귀의 앞잡이 그 세력에게 먹힘을 당하게 하는 것은 동방에 인의 역사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115. 배에서 쓰게 될 때에 명령을 받는 일 (계 10:10-11)
이것은 대표적인 사도 요한이 받아먹고 쓴 것을 체험한 묵시는 말세에 대표적인 사람이 될 일을 보여준 것이다. 배에서 쓰다는 것은 쓴 고통이 내부에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대표의 사람에게 이런 내부적인 쓴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종으로 하여금 좀 더 겸손하고 강한 새힘을 받게 하는 모략적인 방법이다.
내부적인 쓴 고통이 올 적에 세계적인 진출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12제자 중에서 내부적인 사람으로 말미암아 쓴 것을 맛보았고 말세의 종은 그와 같은 쓴 고통을 지나서야 큰 사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예언이란 세계적인 국제 정세가 예언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는 살수 없는 때가 닥쳐올 때에 홀연히 되어질 일을 말한 것이다.
116. 성전과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 척량 하는 일 (계 11:1)
이것은 완전한 신앙 단계에 들어간 사람을 가르친 것이다. 완전한 신앙이라는 것은 성전 안도 아니고 제단 안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다.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것을 제단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통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큰 사명의 역사가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단결되는 것을 뜻한 것이다. 척량이란 것은 완전한 집을 이루는 결합체를 뜻한 것이다.
117.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 (계 11:2)
이것은 도저히 다시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이니 진주를 개에게 주지 말라는 말과 같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받아들인다는 것을 원치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말세에 하나님이 척량 하는 것은 완전히 인정을 받는 사람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은혜시대에는 누구든지 다 듣도록 전해서 교회를 이루었지만 말세에 촛대교회는 함부로 아무에게나 그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가장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참종에게는 말세의 역사를 받도록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촛대 제단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권세의 역사이기 때문에 은사와는 다르다. 은사는 일반적인 것이나 종말의 권세 역사는 일반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118. 1260일 예언에 대하여 (계 11:3)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인데 사람이 알 바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권세로 역사하는 기간이다. 예언에 대하여 3대 원리가 있는 것이다.
① 권세 역사는 증인들에게 나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법을 예언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기간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 예언에 따라 권리를 행하는 것은 아니고 예언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다스리는 역사에 불과하다.
② 이 기간은 종말적인 경고의 기간이니 이것은 한 사람만 들어서 쓰는 기간이 아니고 완전한 촛대교회의 단체를 일으키는 때이다. 이 때는 그 법을 완전히 시행하는 때이니만큼 그 단체적인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엄중한 법에 처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이다.
③ 이 때는 본격적으로 마귀의 권세를 짓밟고 나가는 기간이니 마귀는 완전히 그 앞에서 소멸되는 역사이니 백전 백승의 권세역사가 진행되는 기간이다.
119. 두 증인에 대하여 (계 11:3)
둘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대표자에 대한 말이 되는 동시에 전체의 역사가 다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보증적인 역사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두 대표를 세운 의의는 다음과 같다. 시대적인 완전한 역사에 대하여 율법시대에는 모세와 아론을 두었고 은혜시대에는 베드로와 바울을 두었고 환난시대에도 두 사람을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명은 동일한 사명인데 이것은 시대적 말씀을 더 밝히 증거하는 일과 완전역사의 완전 결합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120. 감람나무와 촛대에 대하여 (계 11:4)
이 감람나무라는 것은 종말에 왕권을 받는 생존성도의 역사를 가르쳤다. 다윗 왕이 자기를 푸른 감람나무라 하는 것 같이 종말에 시온산 세계통일 왕권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피해를 줄 자가 없다는 것은 3대 화가 오는 것이니 시온 산에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오는 화이기 때문에 종말의 왕권의 역사에 씌어질 종들에게는 절대적인 원수의 피해가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승리의 용사들의 결합된 촛대교회 역사라는 것은 흑암을 뚫고 나가는 완전한 끝을 맺는 기독교 종말의 역사이다.
121.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한다는데 대하여 (계 11:6)
이것은 모든 권세를 예언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은 행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힘을 주는 단비와 같은 역사는 일반에게 내리지 않고 말씀을 통일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권세 역사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서 완전히 결실 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은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권세로 역사한다는 뜻이다.
122. 원하는 대로 재앙이 내리는데 대하여 (계 11:6)
하나님께서 자유로운 권세를 맡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하늘에서 인정을 받은 종으로서 신과 같이 쓰여지되 다림줄의 권세로 싸우는 용사이니만큼 하나님께서 세계통일의 권세를 맡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표자에게 주는 특권이니 완전 승리를 이루는 역사의 열매이다. 이와 같이 할 필요는 마귀의 권세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동시에 그 환난에서 택한 종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123. 짐승의 세력이 증인을 죽인다는 것에 대하여 (계 11:8)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그리스도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 같이 말세의 증인도 3일반동안 아무런 역사를 못하고 쓰러져 있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완전히 짐승에게 죽었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으로 짐승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권세를 걷는 동시에 죽은 시체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②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이 되는 이유는 짐승의 세력이 그 몸에 더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세상에 모든 일을 짐승에게 맡겨 이 땅에 둘째화가 오는 기간이다. 왜냐할 때에 택한자를 다 한데로 모았기 때문에 다시는 전도할 필요가 없고 세상을 버리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소돔이라, 애굽이라 하는 것이다.
124. 모든 백성이 3일반 목도하는 일에 대하여 (계 11:9)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그들로 하여금 그 시체를 장사하지 못하게 한 것이니 만일 장사한다면 안될 이유는 완전히 죽은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수가 그 몸을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데서 그들은 그 몸을 해칠 마음이 없이 보고만 있다는 것이다.
125. 땅에 거하는 자를 괴롭게 한다는데 대하여 (계 11:10)
이것은 재앙으로 땅을 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종으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사람을 가르친 것이니 손을 들어서 말하는 대로 재앙이 내려서 모든 사람들이 어찌할 줄을 모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고 나가는 일이 있으며 모든 원수가 무서워 떠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사람을 보여준 것은 변화성도 전체에 대하여 될 일을 보여준 것이니 1차 부활에 대한 일을 보여준 것이다.
126. 하늘에 큰 이적에 대하여 (계 12:1)
이것은 기독교 종말에 완전 구원을 가르친 것이니 하늘에서 정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 열매는 이적으로 이루어지되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로만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까지 역사라는 것은 부분적인 역사였으나 종말의 역사는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해 주는 역사를 큰 이적이라 하는 것이다.
127. 여자가 광야로 도망한 일에 대하여 (계 12:6)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원수를 대항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라고 할 때는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자라야 하나님이 역사했고 증거하는 역사를 마친 다음에는 피해가야만 보호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할 필요없이 역사를 걷어 갔기 때문에 이 때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언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해서 따라가기만 하면 살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세 역사는 피해가지 않고 담대히 싸워가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요, 예비처의 양육은 짐승의 표를 안 받으려고 피해 가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예언을 믿지 않고 피해가지 않으면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보호를 믿지 않고 순종치 않은 죄로 환난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
128. 마귀참소 이기는 일에 대하여 (계 12:11)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마귀 참소라는 것은 사명자에게 대하여 있는 것이니 사명자로서 순교적인 사상을 가진 자 외에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마귀 참소를 허락한 것은 충성을 다 하나 안하나 하는 것을 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왕국 건설을 위하여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이니 이것은 왕권의 권세를 주기 위한 시험이다.
③ 마귀는 얼마든지 참소할 권세를 가졌으니 왕권의 수가 찰 때까지 하나님은 마귀 참소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마귀 참소를 물리치도록 역사한다는 것이다.
129.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계 12:17)
이것은 예비처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자라는 것인데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이 사람들은 은혜시대의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증인권세 역사를 따르지 않고 그 단체를 등한히 알고 자기 개인적인 사적 행동에서 숨어 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예비처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권세 역사에 순종치 않은 까닭으로 환난에 떨어지게 된 것이니 붉은 짐승의 사상을 지지하지도 않고 협상주의에 세력에 가담하지 않고 권세역사에 따르지도 않고 자기는 자기신앙을 지킨다는 생각에서 남은자들이다. 그러므로 환난에 보호를 받는 일에 들지 못하고 무서운 박해와 환난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130. 머리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은 상처가 나았다는 것에 대하여 (계 13:3)
이것은 육안으로 볼 때에 비참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가르쳤다. 왜냐할 때에 머리가 상한 것은 비참 중에서도 비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나라에 모든 주권이 박탈을 당한 뜻을 가르쳤다. 나았다는 것은 주권이 다시 회복되되 세계를 침투할 수 있는 주권으로 회복된 것을 가르쳤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주권이 되었다. 왜냐하면 마귀권세가 정권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이 권세라는 것은 마귀의 종말에 허락 받은 권세를 말한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권세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131.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에 대하여 (계 13:6)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락하되 진리를 대적하고 성전을 없이하는 행동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 때는 세상을 마귀에게 맡겨서 재앙을 내리는 때니 성도의 권세는 걷어 가고 마귀의 세력이 예비처 밖을 통치하도록 맡기는 것을 말한 것이다.
132. 다른 짐승에 대하여 (계 13:14)
이것은 다른 방침을 쓰고 나오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세상적 권세를 쓰지 않고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미혹적인 방법을 쓰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 목적은 어떻게 하든지 세계 통일을 목적하되 짐승의 정권아래 굴복하도록 하는 술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무력전이 아니고 사상전의 큰 세력을 가지고 종교를 침투하는 것이다.
133. 우상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계 13:14)
이것은 하나님 대신으로 숭배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니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고 짐승의 사상과 그의 세력을 숭배하게 만드는 일을 가르친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세계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일은 이 짐승에게 있다는 것이다.
134. 우상에게 생기를 준다는데 대하여 (계 13:14)
이것은 마귀의 세력으로서 짐승의 사상과 정치를 신과 같이 숭배하게끔 만드는 마귀의 역사이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로 살길은 여기에 있다고 미혹을 받도록 만드는 역사이다.
135. 손과 이마에 표를 받는 일에 대하여 (계 13:16)
이것은 누구든지 다 그 앞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니 손으로 하는 일이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나 다 거기에 쏠리도록 미혹을 시키는 것이다. 미혹이라는 것은 사상적인 문제가 들어가는 것이니 사상은 머리요, 손으로 하는 것은 행동을 가르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사상이 들어가고 하나같이 수종들도록 만드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온 세계인류가 다 하나같이 되도록 하는 것은 심판의 대상자를 완전히 만들어 놓는 모략이다. 왜냐할 때에 심판의 대지는 짐승 앞에 그 사상과 정책을 따르는 자를 없앤다는 것이 그 대지가 되기 때문이다.
136. 14만 4천이 시온 산에 선 것에 대하여 (계 14:1)
이것은 세계통일의 승리 개가를 부르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계시록은 성도가 세계를 완전히 정복하여 평화왕국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니 모든 선지의 예언은 다 시온 산의 통치가 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시온 산 통치라는 것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새시대를 말한 것이다. 14만 4천은 동방역사에 한 무리를 이루는 것이니 어느 나라나 붉은 짐승을 대항하여 싸우는 용사들 전부가 동방역사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에 붉은 군대와 싸우는 승리의 용사들이다.
137. 흠이 없는 자들에 대하여 (계 14:5)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뜻이 있다. 이 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시련 시켜서 검열해 보고 완전히 이마에 인을 쳐서 변화성도의 자격을 이룬 자들이다.
138. 누구든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는 자가 화를 받는 이유에 대하여 (계 14:9-11)
만 왕의 왕이 세계 통치할 시기가 오는 심판기에 만 왕의 왕을 대적하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 왕국에 조금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조건이다. 왜냐할 때에 왕국이라는 것은 완전 평화왕국이니 사상이 통일되지 않고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것은 통일 평화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잠깐동안 붉은 짐승을 들어서 모든 사람을 검열해 보는 것이니 짐승의 난리를 거치게 하는 것은 진실과 충성이 있는 사람만을 고르기 위한 방법이다.
139. 주안에서 죽은 자가 복이 있다는데 대하여 (계 14:3)
이것은 완전히 성도의 억울한 피값을 갚아 주는 심판이 있으므로 주안에서 충성을 다하다가 죽은 종들은 다 함께 왕국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순교자의 영들이 이날까지 호소하던 호소가 다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이 평화로운 왕국에 복을 누릴 것을 말함이다.
140. 주의 백성이 바닷가에서 하나님을 찬송한 일에 대하여 (계 15:3)
이것은 구원을 찬송한 노래이다. 말세증인의 예언을 하는 말씀을 듣고 순종했으니 크고도 기이하고 의롭고도 참되게 그대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뻐서 노래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되 예언대로 내리고 보호를 하되 예언대로 보호를 하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믿고 거짓선지에게 미혹을 받지 않는 자는 재앙의 날에 남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새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러워진 땅을 다 소탕시키고 새로운 땅으로 변질시키고 모든 식물로 새롭게 하는 동시에 택한 백성을 해변 신 육지로 집결시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141. 도적같이 오신다는 데 대하여 (계 16:15)
이것은 멸망 받을 인간들이 전멸을 당한 것을 가르치는데 멸망하는 시간까지 마귀에게 미혹 받은 심령에서 또는 취한 자같이 어찌할 줄 모르고 대접 재앙을 피해 보려고 애를 쓰는 자리에서 갑자기 전멸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말세 증인은 마치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들림을 받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믿고 순종하므로 보호를 받고 구원을 받되 마귀의 흑암에 빠진 자와 온 세계 인류는 불에 사름을 당하고 남은자로서 새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아마겟돈이란 악과 선의 대립된 전쟁이 끝을 맺는다는 뜻이다.
142. 전에 있다가 없어졌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계 17:8)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전멸시키던 악한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으므로 흑암시대가 이루어졌던 것 같이 종말에 열뿔가진 짐승이 만 왕의 왕을 대적하고 나오므로 흑암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네로 황제 박해는 알파적이라면 종말에 나오는 열뿔 짐승은 오메가라는 것이다.
143. 짐승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운다는 것에 대하여 (계 17:14)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의 사상을 없애자는 것이다.
② 그 진리를 변경시키려는 정책이다.
③ 그리스도의 권세를 대적하고 자기네 정권으로서 통일하려는 것을 뜻했다.
144. 짐승이 음녀를 망케한다는 것에 대하여 (계 17:6)
음녀라는 것은 짐승의 정권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부패한 교회이다. 부패한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세계통일 야욕을 채우려고 했지만 도적같이 오는 만 왕의 왕의 심판이 올 때에 그 짐승은 발악적인 행동으로 자기의 기대가 어긋난 것을 알고 음녀적인 세상에 불을 떨어뜨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인류를 전멸시키자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기 때문이다.
145.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데 대하여 (계 19:10)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되는 일은 성경의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신의 역사는 전부가 성경에 있는 말씀과 대언 증거의 역사라는 것이다.
146.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계 20:5)
이것은 구원을 받은 자라도 순교적인 생활을 하지 않은 자들은 1차 부활에 참예하지 못하는 것은 1차 부활은 왕권 가진 자들만 참예하기 때문이다.
147. 하나님께서 마귀를 사용하는 이유 (계 20:7-8)
하나님은 참되신 진리를 가신 신이시니 참된 진리라는 것은 마귀를 사용하는 법과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아울러 쓰는 것을 진리라 하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참 진리라는 것은 거짓된 마귀가 따라가야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거짓 영을 사용하는 것은 당신만이 참되신 신이라는 것을 믿는 자로서 하나님과 동거동락할 수 있는 세세왕권을 건설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참신이라 하는 것은 믿는 자를 들어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공의이기 때문이다. 마귀를 들어 쓰는 법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니 언제나 사람에게 진보 향상케 완전을 주는데는 마귀를 사용하고 다음에 준다는 것이 진리의 합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흙에서 난 몸이 영원히 죽지 않고 생명과를 따먹고 생명수를 마시고 영생할 수 있는 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마귀를 들어 쓰는 과정이 된다.
그러므로 이 몸이 살아서 죽지 않고 새시대 갈 사람은 마귀를 들어서 미혹해 보고 미혹 받지 않는 사람만 그 몸에 영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첫째아담이 미혹 받으므로 사망이 왔고 둘째아담 예수가 이기므로 영생이 왔는데 종말에 살아서 영생을 얻는 심판기에 마귀를 들어서 미혹을 시켜 보는 것은 종말이다.
미혹이 없는 천년시대 종말에 갇혔던 마귀를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종말에도 마귀 미혹을 이긴자만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보게 되는 것이요, 천년시대 종말에도 미혹을 받지 않은 자만이 그 몸이 영생한다는 것이다.
148. 행위심판에 대하여 (계 20:12-15)
이것은 하나님의 상선벌악이라 하는 것이다.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이냐 마귀에게 속한 영이냐를 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라는 것은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한 일을 힘써 하는 일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천지 창조 후에 인류 역사상 모든 사람이 국경을 초월하여 어느 민족이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행하기 위하여 노력하던 자의 행위심판은 다음과 같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인정하던 사람인 것이니 인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던 사람은 다 하나같이 생명의 부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자라는 것은 양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 영으로 자범죄를 짓는 악행한 자들이다. 이 영은 악한 영에 속한 영이니 악자의 심판의 부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부활을 받는 사람은 행위에 따라서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하나님께 속한 영들에게는 다 해당되는 공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십자가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된 것이니 어느 시대 사람이나 하나님께 속한 영에게는 다 해당된다는 것이다.
149. 어린양의 아내를 보인다는 것에 대하여 (계 21:9)
만 왕의 왕을 위하여 신부 단장을 하고 신랑인 왕을 맞이한 자들의 받을 화려한 새도성을 보인 것이다. 이 도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부적인 생활에서 충성을 다하던 종들로 상급으로 이루어지는 새도성이다. 이 도성에 3 가지로 나뉘어지는 것이니
① 도성의 왕권을 가지는 자도 있고
② 왕권에 같이 동여 하여 시위하는 자도 있고
③ 또는 시민권의 자격으로 섬기는 백성된 자도 있다.
그러므로 이 도성의 권리는 어린양의 아내 된 자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아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르쳤다.
150. 12 지파의 이름과 12 사도의 이름이 있다는데 대하여 (계 21:12-14)
이것은 12 지파로 이루어진 구약 교회에서 충성을 다한 자나 12 사도로 이루어진 신약교회에서 충성을 다한 자나 다 같은 화려한 도성을 받되 행함 따라 왕권의 보상을 받는 것을 가르쳤다.
151. 성곽을 척량 하니 일백 사십 사 규빗이라는 것에 대하여 (계 21:17)
이것은 천국 전체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왕권 받을 사람이 차지할 한 도성을 가르친 것이니 세세 왕국 건설의 각 도성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든지 왕권 받은 사람에게 이 도성을 차지하게 하는 동시에 거기에 시위자와 수종자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52. 우리 수도생으로서 긴급히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① 나와 같이 생사를 같이하여 싸울 참된 사상적인 진리 운동에 동역자를 얻기 위하여 활동하여야 할 일.
② 참된 예배를 상달시키는 거룩한 제단이 생겨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
③ 완전 무장을 갖추는 용사를 내세우기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되 금년에 많은 용사가 일어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자각하여야 할 일. 이와 같은 것을 목적 두고 역사하는 자를 이제부터 하나님은 강한 역사의 축복을 내릴 것이다.
153.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대하여 (마 24:50-51)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동시에 죄를 사하시며 은혜를 내리시고 능력으로 역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외식이라는 것은 최고의 악이 되는 것이니 사람이 볼 때에 실수가 있어도 중심이 바른 사람은 고쳐 주고 은혜를 받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는 자는 정죄가 있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으시되 외형적인 형식에 관한 제사는 예물을 오히려 노여워하는 신이시니 중심으로 하지 않고 형식으로서 예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동시에 그 예배를 우상을 정죄하는 것같이 정죄하는 것이다.
③ 열심 있게 자기의 어떤 이문을 보겠다는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열심히 할수록 하나님은 그 사람을 미운 물건으로 보게 된다. 미운 물건이란 것은 교회에 들어와서 자기의 어떤 권리와 이익을 취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주권쟁탈을 하는 자를 말세에 미운 물건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된 자의 심판을 총 제목이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심에 진실을 보고 종에게 역사하고 또는 중심에 진실이 없는 자에게 사단의 유혹을 부어 주기 때문에 영적 심판이나 육적심판이나 종된 자에게 진실과 외식에 표준하기 때문이다.
154. 도성인신에 대하여 (요 1:14)
이것은 신이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체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교제할 수 있는 인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온 처음 열매가 되는 것이다.
155.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요 1;17)
율법이라는 것은 몽학적인 교훈이다. 몽학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법을 가르쳐 주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죄를 밝히 알도록 인간에게 알려준 데 불과 하다. 죄를 알려 주는데 죗값은 대신 죽는 속죄 물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친 것이 어린양의 피로 제사 드리는 것을 가르친 것은 죗값은 피가 없이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 데 불과하다.
은혜시대라는 것은 도저히 죄를 깨닫는 사람으로 선을 행할래야 행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율법의 공의의 법의 대가로 어린양 예수의 피로 화목제물되어 누구든지 율법아래 저주받은 죄인이지만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하나같이 하나님 자녀 되는 속죄와 중생이 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는 인간의 힘으로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을 아시고 거룩한 성령을 부어 주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은혜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 은혜라 하는 것이다.
156. 신앙 역사에 대하여 (요14:12)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을 다시 완전한 사람으로, 완전한 생활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신앙의 대상이 되는 완전한 인도를 이룬 것뿐이다. 다시 분산해서 해석하면 성령을 믿는 자에게 부어 주는 것은 당신의 공로를 믿는 자를 통해서 천국건설을 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당신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할 일을 다하도록 하는 것을 신앙역사라 한다.
① 죽을 인생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올라오게 하는 역사로 당신을 믿는 사람을 들어서 다 역사하게 하는 것이다.
② 완전한 교회를 이루어서 교회를 확장시키는 일로 믿는 자를 들어서 역사하므로 되게 한다.
③ 악한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이루어 놓는 종말의 새일의 역사로 믿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할 것을 믿는 것이니 이 신앙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어 놓는 것을 기독교의 승리의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3대 완성
① 개인의 인격완성
② 교회를 완전히 이룸
③ 세상을 완전히 새시대로 이룸
157. 종된 생활의 삼대 의의 (요 17:3-5)
① 종은 주인의 경륜과 작정을 다 알지는 못해도 주인이 자기의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시키는 일에 순종할 것뿐이다. 천지의 주인공이 되시는 하나님은 위대한 목적을 두고 종에게 시키는 것이니 지렁이 같은 사람으로서 그 경륜은 다 알 수 없되 겸손히 순종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나타나게 된다.
② 주인의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 종이니, 종이 자기의 어떤 주관이 있다는 것은 교만의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위대한 주인의 대행자가 되는 종이 자기의 주관을 두는 것은 주인의 대적이 되기 때문이다.
③ 종은 주인에게 팔린 몸이니 전부가 자기의 것이 아니요, 몸까지도 주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종은 조금이라도 자행자지라는 것은 범죄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주인의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행동이 되는 것이니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사랑의 자체인 동시에 사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데서 종을 사용하는 것이니 조금도 하나님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은 없으시다. 전부가 인간에게 주고 싶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목적뿐이니 억지로 순종하는 종은 사랑의 적이 되는 것이다.
158.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심 (요 17:24)
주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장망성 같은 이 세상에의 멸망할 인간들을 당신이 계신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세상에 오신 것이니 이 소원을 두고 역사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삼대 요소가 있다.
① 인간을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방침을 세운 것이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 그곳은 죄가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거룩한 영광의 나라니 인간의 죄를 완전히 없애는 방침을 세우는 것이니 십자가의 보혈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② 그곳에 가서 살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에게 있는 성령을 부어서 주와 같이 동거동락할 수 있는 사람을 이루어 놓는 것을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완전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완전승리를 통하여 인간도 승리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③ 그 나라의 위치를 각자에게 택하고 일한 데 따라서 공평한 보상적인 위치에 설비를 하되 영원히 누릴 영광을 위하여 준비한 것을 하늘에 있는 천국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같이 각 사람의 일한 데 따라서 그 사람이 누릴 영광의 도성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도 역사하는 일이다.
결론 : 이와 같이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소원을 다 만족히 이루어 놓은 역사이다.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니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놓은 것을 당신이 받는 영광이라고 한다.
159.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에 대하여 (롬 8:2)
하나님은 살리는 법도 있고, 죽이는 법도 있으니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법이 모세의 율법이요, 회개하는 자를 살린다는 것이 생명의 법이다. 사망의 법이라는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의 법은 생명의 지배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하는 것도 마귀에게 있고 죄 짓는 자를 지배하는 것도 마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신 죗값을 탕감하는 십자가의 공로가 없이는 마귀의 사망의 법을 없이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인간의 멸망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법은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 해당되는 법이요, 사망의 법은 믿지 않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법에서 생활하는 것을 은혜생활이라는 것이다.
160. 성령이 하는 기도 (롬 8:26-27)
이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을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역사한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성령이니 성령의 역사란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를 하도록 하는 동시에 모든 일에 합동하여 유익하도록 하되 선한 열매가 있도록 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161.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성령은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 신이시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은 맏아들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일체되는 자격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법에 다스림을 받고 순종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동시에 세세 왕권을 그리스도와 같이 받을 수가 있다.
(1)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
이것은 그리스도가 남을 살려보려는 봉사적인 심정이 있는 그 사람이다.
(2) 희생적인 생활을 하는 자에게
이것은 순교적인 생활이니 조금도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는 담력이 있는 것이다.
(3) 마음에 변동이 없는 자이다.
한 번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변함없이 나가려는 자에게 성령은 역사한다.
16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른다 (엡 4:1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완전한 사람으로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생활에서 완전한 영체가 이루어진 것 같이 성신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완전한 승리의 생활이 있게 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같이 영체가 되게 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163. 연단 중에서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종이 되자 (빌 2:19)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택한자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말씀으로 언약하시고 능력으로서 실천하는 것을 복음이라 하는 것이다.
① 사상이 동일한 것으로 되는 것이니 이 사상이라는 것은 복음의 본질이 하나같이 되는 사상이니 그리스도께서 택한자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것이니 복음자체의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으로서 뭉쳐진 것을 사상 통일이라 하는 것이다.
② 복음은 하나님 말씀인 동시에 능력이니 겸손으로 하나가 된 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해 주는 것이다.
③ 역사란 것은 완전한 열매를 이루는 것이니 열매라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니요, 하나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참된 교회를 이루어 놓는 것과 참된 종들을 많이 나오게 하는 것이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다. 기독교는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단체이며 만일 복음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자는 것이 없는 교회는 사단의 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되는 것이니 이것이 없이는 교회는 아무런 열매를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164. 그리스도 구원 완성에 대하여 (골 3:13)
구원이라는 것은 도저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을 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세력을 도말 하는 것과 죄의 근본인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성립된 것이니 누구든지 십자가의 승리를 통하여 과거에 지은 죄의 세력도 도말 되고 앞으로 오는 죄악의 세력인 마귀를 승리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면 십자가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공의의 죄의 대가를 지불한 어린양의 제물이요, 또는 죄의 세력을 잡고 역사하는 마귀를 완전히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십자가의 승리다.
165. 소망의 담대함에 대하여 (히 3:6)
하나님은 빛이신 동시에 완전히 진리의 자체가 되는 능력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승리의 담대함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보는 자에게만 역사하는 신이시다. 소망의 담대함을 가져야 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① 소망에 담대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니 하나님은 역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신 동시에 참되신 신이신 것을 믿는 사상에서 담대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시대적인 역사를 일으키되 그 시대의 비밀을 똑똑히 알고 원수를 두려워 안하고 담대히 나가는 자에게 승리의 왕권의 축복을 주는 것이다. 순교자라는 것은 소망에 담대함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서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③ 소망의 담대함이 아니고는 마귀의 세력은 물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귀에게 허락하기를 당신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하라는 허락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정확한 소망을 담대히 믿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라면 마귀는 그 이상 더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이상 못하도록 마귀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마귀사이에 일하는 관계가 있으니 하나님 말씀을 믿고 소망에 담대한 사람에게 마귀가 피해를 못 주도록 보호할 책임이 있고, 마귀는 말씀에 담대치 못한 자를 정복할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166. 담대한데 대하여 (히 10:35)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담대히 믿고 나가는 자가 죄에서 해방 받고 또는 담대히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게 되므로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담대한 자가 될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의 승리의 십자가를 믿기 때문에 담대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마귀는 그리스도에게 패전하고, 쫓겨가는 마귀는 담대히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마귀는 물러간다.
② 그리스도는 담대히 싸우는 사람을 위하여 천사를 부리고 있으니 누구든지 담대한 자로 승리한 자는 그리스도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③ 완전한 왕권은 담대한 자가 아니고는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니 왕권이라는 것은 담대히 싸워 승리한자만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할 일은 그리스도가 완전한 십자가의 승리와 또는 완전히 평화왕국을 이루기 위한 최후의 승리의 결전을 믿고 담대히 앞을 향하여 전진한 자가 남은자가 될 것이니 종말의 하나님의 강권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완전승리를 믿는 십자가가 담대하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자에 불과한 것이니 담대한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믿는 자는 그의 정병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167. 영계문제 요일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요일서 1:1) 이것은 하나님은 자체가 생명이신 동시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신이시니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낸 동시에 말씀으로 사람을 완전케 하시니 즉 진리의 신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나타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① 완전한 신성으로 나타난 것이니 이것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신의 자격으로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② 완전한 신으로서 완전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인간에 나타난 것이니 즉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알파적인 역사이다. 역사적인 모든 사실이나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를 가르친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나타날 때부터 하나님의 예언적인 역사, 언약의 말씀이 완전히 인간이 신앙할 수 있는 빛으로 나타난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168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 (요일서 1:3)
신께서 함께 하는 생활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말씀하신 신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 와서 함께 했다는 것이 말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신이 말씀대로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겸손히 말씀에 순종할 때 신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양이라고 한 것은 양은 언제나 목자와 함께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양이라는 것은 너무 약하고 순한 동물이므로 목자가 함께 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명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도,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생활이 즉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활이다.
169.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데 대하여 (요일서 5:4-5)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 물질 문명을 초월한데서 있는 것을 믿는 것이니 이 믿음을 통하여 인간이 무엇으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화와 힘과 존귀한 영광을 받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세상 무엇이 그 믿음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믿는 자에게 친히 행하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난 믿음을 가진 자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초월한 하나님의 것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제 참된 믿음이 하나님께로 온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①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한자에게 주는 선물이니 이것은 어떤 행위에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자에게 친히 믿도록 역사하는데서 되는 것이다.
②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소유할 수 있는 표가 되는 것이다.
③ 믿음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요소니 믿음을 보아서 하나님은 그 사람이 완전하게 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이다.
170. 주님이 물과 피로 임하신 일에 대하여 (요일서 5:6)
이것은 완전한 사람된 몸으로서 임했다는 뜻이니 신이 물과 피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몸이라 하는 것이다. 이제 주님의 몸에 물과 피로 임한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다.
물과 피로 임했다는 것은 물은 영생을 뜻했고 피는 속죄의 뜻을 말한 것이니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임했으므로 사람에게 영생의 물을 주고 완전한 속죄를 줄 수 있는 인격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구든지 완전한 영체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을 물과 피로 영생할 수 있는 몸으로 이룬 것이다.
17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에 대하여 (요일서 5:14)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일 원하는 것은 죄를 없이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사랑일 때 죄를 두고 무엇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뜻이니 조금도 부정한 죄를 묵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뜻이니 잠깐의 기쁨이나 평안이나 쾌락을 주기 원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하고도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니 사람이 잠깐의 세상의 것을 구한다는 것은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는 것을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사람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뜻이 없다면 절대로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신 동시에 사랑을 베푸는 것이니 공의의 법칙에 의하여 바로 된 기도를 받으시고 사랑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을 거져주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172.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에 대하여 (요일서 5:17)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마음이 있는 자로서 자기의 힘으로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① 마음은 하늘을 향했으나 육으로 따라오는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한 자
② 남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받들고자 하였으나 사람에게 부지중에 손해를 끼치는 자
③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따라갔으나 깨닫지 못해서 잘못된 일을 하는 자
173.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하여 (요일서 5:10)
① 이것은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해서 자기의 영예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일
② 성신의 역사하는 종을 공연히 흠을 잡고 해치려는 죄
③ 시대적인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짐짓 대적하는 죄
174. 도둑의 집에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가는 일 (슥 5:4)
이 도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자기 사욕을 따르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중심과 사상을 보시되 희생적인 봉사가 없고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도저히 책임지고 보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앙이라는 것은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누구든지 전심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집마다 재앙이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도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사욕을 따라 행하는 것은 전부가 도둑이 되는 것이다.
175. 망령된 맹세에 대하여 (슥 5:4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기의 어떤 의견에 따라서 결정짓는 일을 가르친 것이니 하나님의 축복은 말씀대로 오는 것이니 언약의 말씀을 떠난 맹세라는 것은 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맹세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세운 언약의 말씀 외에는 사람이 함부로 맹세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행자지의 행동을 하는 자는 다 버림을 당한다는 뜻이다.
176. 침례에 대한 의의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 몸이 생명과를 먹고 영생할 수 있는 몸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범죄하므로 생명과를 먹지 못할 인격을 가지게 된 것은 사망이 몸에 왔기 때문이다.
① 물에서 지구성이 나왔고 흙에서 사람 몸이 나왔으니 범죄로 흙으로 돌아가게 된 그 몸이 둘째아담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 영이 중생하는 동시에 그 몸은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물에 잠겨서 올라옴으로서 생명과를 따먹을 수 있는 몸으로 다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② 물에 잠기는 시간은 완전히 장례가 되는 뜻이요, 올라오는 것은 다시 살아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죄로 말미암아 흙으로 돌아갈 그 몸이 완전히 없어지고 영생하신 주님과 같은 몸이 된다는 뜻이다.
③ 침례라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할례의 법과 같은 법이니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운 법이요, 세례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직접으로 분부하고 명령한 법이다. 할례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세례의 법을 지키지 않고는 살아서 진노의 날에 주님을 맞이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177. 성찬의 의의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는 인간이 당할 저주를 친히 당한 것이요, 인간이 받을 사망을 친히 받았으니 누구든지 중생을 받고 그 몸이 물에서 올라온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지체이니 성찬을 받을 적에 다음과 같은 열매를 보게 된다.
① 참된 성남 성녀가 모인 곳에 주님의 신이 같이하는 자리니 떡과 즙을 받을 적에 직접 주의 신이 강림하여 역사하므로 이것을 받는 자는 주님의 몸과 같이 영체를 주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언제나 물체에 속한 몸을 가진 사람에게 식물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믿음으로 성찬을 받는 자에게 떡과 즙을 통하여 새로 지음을 받는 새로운 열매가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③ 성찬을 받는 자는 완전히 중생을 받고 그 몸이 물에 잠겨 올라온 몸을 위하여 성찬을 주는 것이니 예수의 살과 피를 받는 정신에서 성찬을 받을 적에 주의 신은 그 몸에 성결하도록 해주는 열매가 있다.
* 주의할 일*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청산하지 않고 받는 자는 오히려 주의 신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이 되므로 축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영적 손상을 보는 일이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성찬을 속화시킬 적에 성령은 근심하고 또는 떠나갈 염려가 있는 것이니 성찬을 받는 시간은 세상의 잡념을 버리고 정성을 모아 마음과 뜻과 힘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리에서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