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5-16)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주전(B.C) 약 1500년경부터 주후(A.D)
약 100년경까지 약1600여년간에 걸쳐서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35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감(축자영감, 목적영감)에 의해 기록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통일성을 띄고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구약 얌미아 종교회의(A.D 90) 신약 카르타고
종교회의(A,D 397)에서 였으며 각 장의 구분은 A.D 1228년에 스테반 랭톤(총 1189장
구약 929, 신약 260)에 의해 되었으며 각 절의 구분은 구약 A.D 1448년에 나단(23214절),
신약 A.D 1551년에 로버트 스테파노스(7959절)에 의해 되었다.
한국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 사건은 1816년 9월 영국의 두 함선(알세스트호,
리라호)이 서해안에 도착하여 2일간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 때 두 배의 문정을 위해
갔던 조대복과 이승열 두 사람이 두 권의 성경(The Holy Bible)을 선물로 받게 된다.
최초의 한글 성경은 만주에서 서상륜 등에 의한 1882년 누가, 요한복음이며
1883년 사도행전이 번역되었고 1887년 신약이 완간 되고 1910년에 신, 구약성경이
완간되었다.
일본에 유학생으로 가 있던 이수정의 요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선교사가
파송될 때 최초의 선교사가 선교지 방언으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오기는 우리 나라가
최초였다.
전세계 7,105개 언어 중 일부 또는 전부 성경이 번역된 것은 2,551개,성경 번역이 진행중인 언어는 1500개에 그쳐 아직도 성경 번역이
필요한 언어가 3000개가 넘는다.
실제로 구약과 신약이 모두 번역된 언어는 511개 이다.
성경이 없는 것은 물론 번역도 시작되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인구가 2억5000만명에 달한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는 2013년 12월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2551개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됐다고 밝혔다.
대륙별로는 아시아·태평양 1067개, 아프리카 748개, 유럽·중동 214개, 아메리카 519개 순이다.
<2013년 12월말 현재>
☆ 성경 관련 신앙문답
[문1]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문2] 기독교가
지금 와서 새로운 번역이 나와야 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문3] 성경을
분명히 바로 알 수 있는데 대하여 분명한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문4]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5]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문6] 성경을 기록한
목적과 성도의 할 일에 대하여
[문7] 성경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해야 완전한 다림줄을 잡을 수 있는지요?
☆ 성경 관련 설교말씀
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의 차이점
2. 성경과 신앙 문제
3. 성경을 깨닫는 시기
☆ 성경 관련 신앙문답
[문1] 성경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답] 성경은 한가지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따라
역사했고 말씀을 나타냈는데 이루어진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이므로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역사를 대강 쓰고 세밀히 쓴
것뿐이라고 믿으며 또는 그 시대에 법을 말씀한 성경은 직접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 글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법도 있고 이루어질 법도
있으니 이루어진 법은 십자가의 법이요 이루어지는 현실의 법은 성신의 법인 동시에
이루어질 법은 심판의 다림줄인 예언의 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은 사람이 저술했으므로 약간의 빠진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으로
말씀한 법은 하나도 빠짐이 없고 정확 무오한 법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2]. 기독교가 지금 와서 새로운 번역이 나와야 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답] 기독교는 번역을 따라 가는 종교는 아닙니다.
만일 기독교가
금일에 부패되는 것이 성경 번역이 잘못 되어 부패해졌다고 볼 수 없고 성경 본위를
떠난 신학설이 교회를 망치는 것은 그 신학을 받은 자들이 성경에 무지하고 영계가
밝지 못하므로 잘못된 신학설을 가지고 강단에 설 때에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진리를 잘못 증거하는 강단에 역사가 나리지 않으므로 부패한 것입니다.
오늘에 성신의 역사가 없이 성경을 번역하다가 오히려 마귀의 세력이 번역을
끼고 들어올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신.구약 성경만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금일에 구교와 신교가 합해서 다시 성경을 번역해야 될 기독교라면 루터 종교개혁에
대하여 큰 의문이 될 일입니다. 만일 루터가 성경을 잘못 번역했다면 루터 종교개혁은
오히려 교회를 망쳐 버린 것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제 와서 구교와 신교가 합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고 이미
들고 있는 성경을 바로 알아서 완전 무장을 하는 일에 종들은 전력을 둘 때라고 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신 떠난 사람이 기록한 신학설, 성신
떠난 사람이 번역하는 성경책, 성신 떠난 사람들의 다수 가결된 일입니다. 신학도
번역도 가결도 성신이 떠난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마귀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금 등대 교회는 인간의 힘이나 능으로 되지 않고 여호와의 신으로 되어야 합니다.
금일에 와서 우리 기독교가 필요 없는 일에 성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문3] 성경을 분명히 바로 알 수 있는데 대하여 분명한 말씀이 있기를
바랍니다.
[답] 성경은 사람이 스스로 안다는 것은 오히려 큰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있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누구나 다 성경을 들고 자기가 바로 안다는
것이 큰 병적이라고 보게 됩니다. 이제 성경을 바로 아는데 대하여 간단한 시간에
다 말할 수 없으나 요점을 들어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할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목적으로 말씀한 것이
성경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기록한 것은 그 시대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에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갈 때에
이스라엘 나라라는 신정 국가가 시작될 때에 그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 모세
5경이란 글입니다. 이 글은 그 민족이 신정 국가를 이루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법을
세운 것인데 이것으로서 그 민족에게 몽학적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첫째 :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일
둘째 :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짓는 일
셋째 :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 일, 등
모든 의식의 절차를 가르친 일인데 국민의
모든 행정법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그 법은 그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그 법을 순종하면은 나라가 잘되고 순종치 않으면 그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 중에서 예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그 나라가 신정적인
국가로서, 타락하여 세속화되고 심지어 이방신과 타협하는 일이 있게 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책망을 내리므로 타락한 정치인과 종교인과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므로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는 과정에까지 처할 때에 그
선지들에게 묵시가 나타나기를 심판과 새 시대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지만 참된 종을 대적하는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인간들은 다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말을 순종하는 자라야 남아서 새 시대 가는 이치를
하나님이 묵시로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들에게 나타난 말씀은 그 시대 사람을 책망하는 말씀 같으나 그
말씀이 인간 종말의 경고가 됩니다.
왜냐하면 선지의 묵시의 말씀에 그리스도 탄생을
말했고, 십자가를 말했고, 부활, 승천, 성령 강림, 세계적인 복음 확장을 말하면서
심판이 오되 아무리 시온이며 이스라엘이라도 참된 선지의 말을 듣지 않고 대적하는
자는 다 없이하고 속화된 시온이 망하는 동시에 이방적인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북방으로부터 환란이 오게 되므로 부패한 이스라엘과 시온이 망하게 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온과 이스라엘은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 간다는 것을 가르쳤으니 이
시온과 이스라엘은 금일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 된 우리 기독교인을
가르친 말씀이라고 보며 북방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황폐화시키고 동방 고레스가 바벨론을
칠적에 바벨론의 세력 아래서 서로 개인 신앙을 지키던 자들이 소수이지만 동방 고레스의
명령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을 들어서 인간 종말에 바벨화되는 세상이 될
때에 참된 성도는 심히 적은 수로되 남은 자가 되어 동방에서 일어나는 권세 역사에서
새로운 촛대교회가 나타나는 동시에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세 5경으로 섰던 교회도 완전히
폐지가 되고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민족에게 말기에 경고를 준 선지서는
전부가 말기를 당한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며 우리가 전할 복음이 됩니다[계10:7].
지금 이때는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이 시대 사람에게 전할 복음이 됩니다.
2. 신약 성경을 말하자면 4복음은 예수 행적인데 메시야가 성경대로 출생하고
성경대로 자라나서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했다는
것을 증거해서 예수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 구주시라는 것을 전도하는 복음인데
이것은 사람이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저술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복음을 전한 행적이며 편지서는 복음을 전한 자들이 교회를
세운 다음에 신자들에게 이단에게 속지 않고 옳은 신앙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기록한
편지인데 이 글은 그 시대 사람에게 썼지만 그때나 금일이나 한 은혜시대이니 만큼
어느 곳에서나 교회를 세울 때에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바로 믿어서 그 영혼이 구원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사도적인 신앙을 보존하여 내려오던 교회가 세속으로 흘러갈
때에는 하나님은 구약 말기에 경고한 선지서가 필요한 동시에 계시록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일에 모든 정치, 사상, 인심 악화, 정치 부패, 모든 되어지는 일은 선지서와
계시록을 맞춰 볼 때에 분명히 진노의 날이 가까운 환란, 재앙기에 접어든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계시록은 주석이 필요 없고 그대로 읽어서 바로 깨달아 듣게 말할
수 있고 선지서를 그대로 읽어서 이 시대 사람이 깨닫도록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불가피로
오는 환란 재앙 속에서 어떠한 신앙 노선을 가야 남은 자가 되며 새로운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을 햇빛같이 밝히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선지는 북방 세력이 종말에 환란을 일으키고 내려오지만 그 세력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오는 것과 계시록에는 붉은 짐승이 환란을 일으키고 나오지만 이것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고 가르친 것이니 북방 세력이 망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짝을 맞추어 읽어볼 때 분명히 이때를 주 재림기로 봅니다.
언제나 성경은 그 시대를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본문을 읽어서 깨닫게 한 것이니
은혜시대는 4복음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읽어서 깨닫되 선지서의 은혜시대를 가르친
말씀만 깨달았고 지금 이때는 선지서와 계시록을 맞추어 읽어서 충분히 신자들이
깨닫게 되는 시대입니다. 금일에 기독교가 계시록과 선지서를 읽어서 만족하게 받는
진리 운동이 아니라면 거짓 선지의 미혹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마귀 미혹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본문대로 읽어서 이기는 것이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시대에는 모세 5경을 읽어서 모든 것을 밝혀 나갔고 은혜 시대는 신약
전서를 읽어서 깨달아 나갔고 환란시대가 올 때는 계시록과 선지서를 읽어서 깨닫게
되므로 마귀의 미혹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4]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 구약은 약속을 세운 것이라면 신약은 약속이 이루어는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구약의 약속을 세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5경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에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고생하다가 그 민족을 하나님이 징벌하여 해방을 시켜 가나안 땅으로 온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 하나를 목적 둔
글이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릴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증거는
모세5경으로 섰던 교회는 십자가로 끝을 맺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사기,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금일에 새 시대를 이루는 말기에 우리에게 경고가 되는 글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46:10에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민족의 역사에서 나타난
일은 말세 성도에게 영자적인 교훈이 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그 시대의 묵시를 본 것은 전부가 말세의 새 시대를 이룰 시기를 당하여 지상에 왕국을
이룰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된다고 봅니다(계10:7).
이제 구약과 신약을 연결지어 말하자면 모세5경은 십자가의 화목제로 폐지하고
은혜 시대의 교회는 구약을 이용하되 사도들이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이용한 것 외에는 신약에다가 더 첨부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성신이
역사해서 은혜 시대에 천국을 목적한 성도로서 조금도 혼선된 신앙에 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 놓은 것이니 우리는 예수 행적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가지고 교회를 인도하되 그밖에 구약 성경을 더 가감시키면 순수한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가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게 할 때에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더 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던 것이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딤전1:5에 우리의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는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시대의 순복음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세밀히 뽑아놓은 성경 절수 외에 다른 성경을 더 가입시키면 신앙의 혼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맞이할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는 변화 성도는 모세5경은
필요 없지만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본 묵시는 목적이 심판과 새 시대이니 만큼 전체를
우리가 그대로 읽어서 전할 복음이 되는데는 계시록 10장과 11장과 같이 다시 예언하는
사명자들이 그대로 읽어서 진노의 날에 남는 백성이 될 자들에게 전할 복음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되 자기 사명에 따라서 해석하여야 되는 것이니 사도들이
기록하지 않은 주석 책을 사람이 썼다는 것은 완전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4복음서와 편지서 외에 선지서와 계시록 주석이라는 것은 은혜시대 종이 감히
알 수도 없고 전할 사명도 아닌 것이니 이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들이 전할 말씀인데
지금 기독교에서 어떤 박사들이 쓴 계시록 주석이나 선지서 주석을 가지고는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고 오직 특별한 사명자가 나와서 하나님께로 분명히 가르쳐 주는 일을
받음으로만이 전하게 된다는 것을 모든 선지는 미리 말한 것입니다. 사28:11과 59:21을
보면 환란 가운데 역사할 종에게 입에 말씀을 주어서 모든 비밀을 알도록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은 초림의 주를 증거하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의
복음서와 편지서가 연결되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변화 성도가 구약 선지서와 계시록을
연결시켜서 전할 때에 성경은 전체가 다 이루어지며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문5] 기독교 종말론의 변론을 바로 하는 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 성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법으로 쓴 글도 있고 완전한
변론으로 쓴 글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란 것은 모세5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요,
역사라는 것은 모세5경을 그대로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은 역사가
구약 역사입니다. 그 밖의 말씀은 전부가 변론적이라고 보게 됩니다.
신약 전서에 4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을 대하여 말씀한 변론이 기록되어
있고 편지서는 성령을 받은 종들이 성령으로 변론한 것이 기록되어 있고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직접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변론한 글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이란 것은 4복음과 편지서에 있지 않고 선지서와
계시록에 있는데 계시록은 하나님의 변론을 혼선되지 않게 증거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보여준 글입니다. 계시록은 선지서에 심판의 변론을 열어주는 책입니다 계시록을
바로 알므로 얼마든지 여호와의 책에 세밀한 변론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론은 계시록에서 완전히 조직을 알아 가지고 선지서를 다음과 같이 변론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데 일곱 교회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 성도의 신앙 지침이요, 일곱 인은 재림의 주가 올 시기를 알려준
것이요, 일곱 나팔은 재림 시기에 올 환란의 순서를 보여준 것이요, 일곱 대접은
재림 후 이 땅에 재앙 심판이 올 때 될 일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것이 선지서 전체의 이스라엘의
종교 부패성을 책망한 변론 전체의 요지가 됩니다. 일곱 인의 시기는 신약 시기에
붉은 말이 허락 받고 나온다는 것은 구약 세계에 앗수르의 세력을 말한 것으로 변론이
되고 검은 말은 경제권의 세력이 빈민을 압박한다는 선지서의 말이 결부가 되고 얼룩말은
선지서에 음녀적인 거짓 선지에 대한 변론이 결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4대 병마는 구약 선지서에 심판기에 올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북방
세력이 강하게 올 것을 붉은 말로, 극도로 부패한 정치를 검은 말로, 극도로 미혹을
시키는 거짓선지를 얼룩말로 하며 계시록의 내용이 전부 결부되고 구약 선지서도
전부의 내용이 4대 병마에 결부됩니다. 인간 종말에 불가피한 진노의 심판이 오는
것은 이 세 가지가 심판의 대상자가 됩니다.
언제나 변론이란 것은 알파와 오메가를 바로 말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작했던 일을 폐하지 않고 그대로 끝을 맺습니다. 만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시작을
했다가 누가 방해한다고 그대로 끝을 못 맺는다면 그대로 끝을 못 맺게 하는 자가
하나님보다 높은 자가 될 것이니 하나님은 시작을 하면 아무리 방해자가 있어도 그
법에 의해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시작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얼마든지 아름답고 평화롭고 거룩한 영광의 나라를 목적을
둔 것인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런 법이 없이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말씀의 법을 세워서 그 법을 순종하면 목적을 둔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을 받아서 떨어졌다 하여도 그 목적을 달성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둘째아담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아담을 창조할 때의 목적이었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째아담에게 주었던 그 에덴 동산을 다시 둘째아담으로
이루어 준다는 것이 목적이니 그 둘째아담 예수의 보혈은 사람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생령의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을 중생이라는 것이요, 중생 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것은 첫째아담은 성령을 받지 못함으로써 이기지 못한 것을 아시고
둘째아담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 성령으로 역사하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다시 부활해서 승천하시어 성령을 부어 주므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승리하는 자로 평화 왕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로되 타락할 것도 아시고
타락하면 이런 법으로 근본 창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말씀한 것이 여호와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을 믿는 것은 구약에 행하겠다는 방침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에 심판이라는 것은 인종 전멸의 심판인데 이날까지 꾀어보기
위하여 사용한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마귀를 순종하던
자를 마귀와 같이 없애 버리는 것을 인종 전멸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귀 역사를 들어서 당신의 자녀를 괴롭히면서 괴로운 가운데서도 이기는
자에게 묵시를 주기를 지금 너를 괴롭히는 마귀를 내가 없애는데는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귀 편에 서서 너를 대적하던 무리는 마귀를 없앨 적에 다 없애고 너같이
내 말만 순종하는 자로 지상 왕국을 이루겠다고 말씀한 것이 선지서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마귀 세력을 없애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만민을 그 피로 구원하는 동시에 끝까지 순종치 않는
자를 마귀와 함께 없애 버리고 너와 같이 순종하던 사람들로 남은 자가 되게 하며
새 시대를 이루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묵시를 받은 사람이 받던 고난이 심판 날에 환란이 되고 묵시를
받던 종들이 받은 왕권이 종말에 환란 가운데 남은 종들에게 같이 오므로 그 날에
가서 묵시를 받은 자나 그 말씀대로 싸운 자나 같이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오메가
역사라는 것입니다.
[문6] 성경을 기록한 목적과 성도의 할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 성경이 있기 전에도 성도적인 생활이 있었지만 성경을 쓴 목적은
단체적인 행동을 할 때부터 기록했다고 봅니다.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때까지도 완전한 성경이 없이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단체적인 나라를 이루기 시작할 때에 신정적인 국가가 시작된 것이
성민의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민의 나라에 모든 법을 직접 모세에게
명령하여 기록한 것이 모세5경이라고 합니다. 이 성민에게 확실한 역사를 기록하도록
하는 동시에 확실한 법을 세워서 신정 정치의 나라를 세운 것이 다윗 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제사를 드려도 법대로, 성전을 지어도 법대로, 모든 정치를
하나님이 가르친 법대로 해나갔으므로 성민이라, 성산이라, 성전이라 하는 말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이 종교는 성민적인 종교로 세웠던 것입니다. 성민 외에는
이 종교를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장벽이 이방과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네 성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사사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등의 역사책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운 법을 절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남의 나라보다도 용서 없이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정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법은 한 몽학적 교훈에 지나지 않았고 그 나라에
거룩한 성도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하는 일이 있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자들이 성민에게 박해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들은 목숨을 바치고
자기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이러한 종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앞으로 될 일을
묵시로 받아서 책을 기록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책은 그 민족만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적인 예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그 시대 사람들은 인정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째가 예루살렘이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한다는 말이 있고 또는 동방 바사 왕 고레스가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한다고 했으니
하나님을 공경하는 나라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한다는
일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일을 생각할 때에 그 하나님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으랴 하는 것이요 또는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나라 사람이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한다는 말도 그 시대 사람이 다 반대했던 것입니다.
또는 선지들이 기록한 글은 메시야가 탄생할 것과 천하 모든 족속이 다 그를
믿게 될 것과 인간 종말에 가서 이스라엘 말기와 같이 되는 일이 있는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천하 사람이 다 복을 받아 새 시대로 가는데는 아무리
이스라엘이요, 야곱이요, 시온이라도 부패한 자는 다 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패한 이스라엘이 공연히 자기네만 복을 받는다는 교만한 사람들로
선지들이 받은 묵시를 오히려 자기네를 무시하는 글이라고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의 글대로 예루살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될 때에 선지서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남은 자들이 선지들의 예언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고 조상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기도할 때에 몇 사람의 간곡한 기도로 예루살렘이
회복될 때에 권리를 잡고 다시 다윗 왕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세계적인 대 종교가 이루어질 예언의 역사가 되고 완전한 구약
성서가 기록된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데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서 너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다고 창12:1-3에
말씀했고, 이삭에게도 나타나서 창26:4에 말씀했고, 야곱에게도 창28:13-14에 너로
말미암아 천하에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했으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 된 사람들에게 선지를 통하여 언약의 말씀을 세울 때에 모든 나타난 증거까지라도
다 앞으로 세계적인 구원과 심판에 관한 표적과 증거로 세우는 동시에 모든 민족이
다 그 성경을 보고 복을 받도록 기록한 책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날까지의 기독교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여 교회를 세운 것 뿐이요, 이제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가 전체로 이루어지는 환란과 재앙과 심판 속에서 교회로서 남게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기독교의 완전 구원, 완전 축복,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 전서는 왜 있느냐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4복음을 쓴 목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인 줄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요20:30-31),
사도 행전을 쓴 것은 사도의 역사를 전해준 것이요, 편지를 쓴 목적은 십자가를 믿으므로
다 하나같이 한 지체가 되고 후사가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신앙의
도리를 바로 지키고 생활 도리를 바로 지키면서 성신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선지서에 기록한 말씀대로 인간 종말에 환란, 재앙이 올 때
미혹 받지 말고 심판을 받지 말고 재림의 주를 영접하여 새 시대의 지상 축복을 받을
성도들에게 주신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서와 계시록과의 목적이 같고 신약 전서의
4복음과 편지서는 심판과 새 시대가 오기 전에 세계적으로 교회를 세울 때에 예수
믿고 성신 받고 일하다가 영혼이 구원받는 범위하에서 전하는 천국 복음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는 말씀이 4복음이요, 사도들이 성신의 감화로 쓴 것이 편지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은 예수 믿고 성신 받은 자로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가지고
교회에 끝을 맺는 역사를 해야 할 때가 즉 이때라고 봅니다.
[문7] 성경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완전한 다림줄을
잡을 수가 있습니까?
[답] 다림줄이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될 일을 가르친 것인데 선지서를
다림줄이라고 합니다. 다림줄을 말하자면 선지서에 기록된 말씀이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것이므로 어느 선지서나 1장에 목적을 말하고 그 다음 장부터는 그 목적을
순서 있게 변론적으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정확한
변론으로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하고 가르칠 때에 어떠한 노선을 걸어가면 새 시대에
들어가고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라도 어떠한 노선으로 가면 새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환란과 재앙에서 죽는다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입니다. 재앙의
날에 큰 화를 받을 사람에 대해서도 그 획선을 분명히 선지서에서 알 수 있고 환란
재앙 가운데서 남은 자가되어서 성산의 축복을 받고 길이길이 복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획선을 분명히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시대에 관한 획선을 말씀하시지 않고 독생자를 보내서 세계
민족을 다 하나 같이 당신께로 돌아오게 한다고 말한 것뿐이고 그 밖의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으로써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새 시대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할 적에 다림줄의
진리를 굳게 잡고 타협하지 않고 나가야만 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다림줄의 진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를 믿고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여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고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만 말씀대로 보호를 받고 말씀대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천국에
대한 말씀은 가르치지 않고 지상 왕국을 목적하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개인 개인이
죽어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큰 환란과 시험이 없지만 우리 몸이 살아서 지상 왕국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란과 시험을 통과해서 남은자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밝히 가르치기 위해서 구약 말기에 부패한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들을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쳐 없이하고 남은 자로써 예루살렘을
다시 복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부패한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는 다 없이 하는데 있어서는
북방 환란으로 그를 쳐서 없이하고 남은 자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종말에 될 일을 구약 선지 시대에 묵시로
말씀을 주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증거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 성경관련 설교 말씀
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의 차이점
- 요 20:30∼31, 계 22:6, 16 -
서 론
우리는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의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쓴 목적의 차이점을 알지 못한다면 혼선을 가져올 염려가
있을 것이다.
즉 성서는 한 시대를 목적한 것은 아니나 그 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목적 하나를 가르친 것이다. 성경 자체가 영생인 것은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시대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순종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일의 기독교의 혼선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의 차이점이 분명치 못한 데서 혼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금일의 기독교 종말의 말기를 당한 이 때 성서의 목적을 바로
아는 데서부터 완전한 역사의 시발점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를 믿게 하자는 목적을 둔 성경 (20:30)
복음서는 조금도 가해도 감해도 안 된다는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 한
분을 바로 믿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약간의 4복음서의 차이점이 있어도 여기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의 복음 운동은 성경 해석이 서로 같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만을 믿게 하려는 목적이니 종말관이
혼선이 되었어도 하나님은 묵인하였던 것이다. 이 날까지 강단 생활에서 종말관을
말하는 것이 각각 혼선이 있고 또는 성경 주석이 혼선이 있다 하여도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도록 하는 목적만 이루었다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진 것은 이와 같은
뜻이 있는 것이다. 베드로도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 너희 마음에 새벽 별이 떠오르기까지
주의하는 것이 가하다고 했던 것이다(벧후1:19). 그러므로 사도들은 여호와의 책을
읽고 증거하되 부분적인 말씀을 이용한 것뿐이다. 그 목적은 예언서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자는 목적에서 성경은 해석한 것뿐이다.
2. 종으로 바로 역사하기 위한 목적 (계22:6)
이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종으로서 시대적인 분별과 시대적으로
오는 환난과 재앙 속에서 진리를 바로 증거하도록 하자는 것을 목적한 것이 계시록이다.
만일 계시록이 아니었던들 그리스도를 믿는 종으로서 시대를 바로 증거하고 재앙
속에서 백성을 살리는 역사를 할 수 없을 것은 사실이다.
만일 어떤 종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하면서 종말관을 똑똑히 증거 못한다면 주님 다시 오실 때 도저히 주 앞에
설 수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 있다고 했다. 은혜 시대에는 그리스도 한 분을 바로 믿기만 하면 되었으나
기독교 종말인 환난 재앙이 나릴 때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여도 재앙이니 이 말씀을
바로 증거 못한다면 대중을 죽이는 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은 계시록을
분명히 깨달아 꿀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종이 아니고는 권세 역사를 행할 수 없을
것이다(계 10:10, 계2:3).
3. 교회로 환난에서 구원받게 하기 위한 목적 (계22:16)
그리스도를 바로 믿게 하는 전도를 받아 선 교회로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 남은 교회가 되게 하는 목적을 둔 것이 계시록이다. 아무리 교회라 하여도
미혹을 받고 거짓 선지에게 표를 받으면 누구든지 영원히 멸망한다는 것이 계14:9∼10에
있는 것이다.
기독교 종말의 구원은 육이 죽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살아서 새 시대를 들어가는 것으로 목적한 것이 선지서인
동시에 계시록이다. 지금 교파의 활동으로써 교회가 섰으나 남은 교회가 되는 것은
교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밀히 말하자면 율법적인 교회에서 복음적인 교회로
설 때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사도들의 역사로 토대를 닦은 것이다.
그러나 말세의
교회는 예언의 말씀을 바로 들어서 지키게 하는 목적을 둔 종들의 역사가 없다면
옳은 교회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증인 감람나무 촛대라고 한 것이다.
이
날까지는 그리스도 한 분만을 믿게 하자는 목적에서 교회를 세웠으나 종말에 환난
중 재앙의 날에 미혹 받지 않고 새 시대로 들어갈 사람을 위하여 예언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기도 하는 것이 촛대교회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도 교회통합이라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예언의 말씀으로 통합을 이루는 것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교회가 시대를 따르는 것보다 교회가 시대를 가르쳐 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교회 없이 믿을 수 없고 교회 없이 싸울 수 없고 교회 없이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를 중심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환난
중에 예비처의 양육을 받을 교회로서 계시록 12장에 해를 입은 여자라 했다. 은혜
시대는 개인적 구원을 목적했고 종말적인 심판에는 교회적인 구원이 온다.
교회적으로
망하는 교회도 있고 교회적으로 남는 교회도 있다. 그러므로 해를 입은 여자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성경 전체를 논하면 메시야가 온다는 교훈도 있고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믿게 하는 교훈도 있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교훈도 있다.
2.
성경과 신앙 문제
- 요 5:39∼47 -
서 론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자체에 영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 믿도록 가르친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경과
신앙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1.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중심에 영생 얻기를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효과를 성서에서 찾지는 못하는 것이다(40)
왜냐하면 성경은 영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혼인잔치에 오라는 편지를 받은 자가 편지를 읽기만 했다고 잔치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니 영생을 얻기 위한 사람에게만 양식이
되는 것이다(42).
2.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극진히 사랑하므로 주신 말씀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아무리 읽어도 필요가 없게 된다(43)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어떻게 죄를 용서하며 어떻게
성령을 부어 주며 어떻게 구원하되 어떠한 축복을 주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인생이 같이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에 보낸 말씀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읽어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4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영광보다 더 크고 완전한 나라의 영광을
주고자 하는 것을 무시하고 썩어질 세상 영광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결 론
바리새교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가르치고 숭배하지마는
실지는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한 직업적 삯꾼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을 것이라. 그도 믿지 않거든 내
말을 믿겠느냐고 탄식했다.
금일에 성경을 들고 가르치는 목사나 장로가 되었다 하더라도 중심에 간절히 원치
아니하던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치 않는다든지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자동적으로
바리새교인의 행동이 될 것이다
3. 성경을
깨닫는 시기
- 눅 24:44∼49 -
서 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때가 되기 전에 필요 없이 깨닫게 하는 일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제자들이 3년 동안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이적을 보고 교훈을
받고 심지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하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예수님의
본체의 영광을 본 사실까지 있지만 시기가 되기 전에는 절대 그 말씀을 깨닫지를
못했던 것이다.
만일 성경을 아무 때나 누구든지 마음대로 깨달을 수 있는데 국한된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기가 되기 전에 성경을
억지로 풀려는 것도 실패의 근본이요 시기가 되었는데도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성경을 깨닫게 해 주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을 해 보는 사람에게 (마1:19∼23)
아무리 때가 온대도 어떤 학자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목수의 한 사람인 요셉은 어려운 난제를 앞에 놓고 경솔히 말하지 않고 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기다릴 때 천사가 나타나서 성경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성경을 깨닫게 아니하였더면 마리아는 큰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때가 될 때 하나님은 가장 의로운 사람에게 당신의 비밀을
깨닫게 해 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요셉같이 의로운 사람, 인내력이 있고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시대적인 비밀을 알게 할 것이다.
2. 구속을 기다리는 자에게 (눅24:21∼27)
아무리 낙심될 일이 와도 낙심치 않고 구속을 기다리는 심정에서 염려하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참된 메시야로 믿었던 그들이 슬픔에
잠겨서 염려하며 길을 갈 때 홀연히 주님 나타나시어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다. 누구든지
낙심될 일, 슬픈 일을 당해도 타락하지 않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비밀을 알게 해 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뜻대로 안 된다고 낙심, 원망하면 안될 것이로되
자기가 도저히 깨닫지 못하는 심정에서 안타까워하는 자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3. 공포 속에서 마음이 변치 않은 자에게 (눅24:36)
우리는 낙심될 일을 당할 때 떠는 것이 약점이다.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걸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을 배척하는 마음이 아니요,
비겁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를 모르고 떠는 자에게 진리를
알게 해 줄 책임은 주께 있는 것이다. 이때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안될 경우에 처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사명을 맡겼던 것이다. 세계적인 사명은 내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전하는 동시에 회개를 만방에 알리라고 했던 것이다.
4. 성경 읽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행8:29∼34)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빌립을
친히 인도해서 성경을 깨닫고 믿도록 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성경을 누구를 통해서든 지 깨닫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다.
5. 항상 기도를 힘쓰는 자에게 (행10:30∼38)
고넬료는 성경을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힘쓸 때 하나님은 강권으로 베드로를 인도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그 가정을
구원했던 것이다. 그때 베드로까지도 고넬료의 가정을 통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성령이 나리는 것을 볼 때 이방인의 집을
가기를 꺼리던 사도들은 완전히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상달하는 기도를 통해서 시대적인 말씀을 분명히 알도록 지시할 것이다.
계11:1을 보면 성전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하나같이 시대적인 비밀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화를 가져오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벧후1:20, 3:15∼18). 종이란 주인이 알려주면 주인의 말대로
전해줄 것뿐이다. 만일 어떤 종이 내막을 알려주지 않는데 자기 멋대로 가서 전한다면
이것은 망령된 행동일 것이다.
증인은 시대적인 비밀을 주님이 깨닫게 하는 그대로 증거할 것 뿐이다.
모든 사도와 성도는 십자가의 부활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피를 흘렸고 말세 증인은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배에서 써도 만방에 예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새일교회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