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사단의 대적과 종 된 자의 왕권 (슥 3:1-7)
강권 역사의 필요성 (슥 3:1-10)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슥 3:6-10)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의 위력 (슥 6:9-15)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 (슥 8:1-8)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 (슥 9:9-17)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 (슥 9:9-17)
조물주 하나님의 모략적인 역사 (슥 12:1-9)
인간 종말의 큰 환난과 회개 운동 (슥 12:1-14)
시련 가운데 남은 종의 역사 (슥 13:1-9)
사단의 대적과 종된 자의 왕권
( 슥 3 : 1 - 7 )
서 론
하나님께서 종 된 자에게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주고자 하실 때에 사단을 허락해서 그 종을 대적케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진실성을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담대한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요
셋째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단의 대적이 있으므로 완전한 것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본문에서 사단의 대적과 종 된 자의 왕권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단의 대적을 받을 종의 자격 (1)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당신의 종을 대적케 하시되 다음과 같은 자격이 있는 자를 대적하게 하신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믿는 자이다.
둘째 : 용기 있게 나가는 자이다.
셋째 : 대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자이다.
이러한 종에게만 사단의 대적이 있게 하신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를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벌써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니 사단이 대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이 용기 있게 나가지 못하고 후퇴한다면 사단에게 벌써 눌린 것이니 사단이 더 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는 어떠한 종이 대중을 위하지 않고 자기 명예나 권리를 위하여 일을 한다면 벌써 사단의 종이 된 자이니 사단이 대적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그러나 말씀을 가감 없이 믿으며 용기 있게 나가며 대중을 위하여 일해 보려고 하는 자는 사단이 대적하게 된다. 여기에서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고 용기 있게 끝까지 나가면서 대중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 자라고 인정을 받게 된다.
2. 그슬린 나무같이 된 자의 인격 (2-3)
인간이 볼 때에는 비방을 받고 악평을 받을만한 자리에 있다하여도 이러한 환경에서 마음에 타격을 받지 않고 사단의 압력이 침투하지 못하는 자라면 이 인격은 왕권을 받을 인격이 된다. 이러한 피해를 당하고도 인격에 질적 타락을 받지 않고 더러운 옷만 입었으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에 아름다운 옷을 입었으나 중심 속에 성결함이 없이 되었다면 중심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과 싸우는 사람은 외면적 보다도 중심적으로 모든 일을 주 앞에 인정받게 해 나가야 왕관을 쓸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게 된다.
3.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자의 자격 (4)
아무리 사람에게 누명을 쓰고 악평을 받더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환영을 받지만 하나님이 중심을 보실 때에 회개할 것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단에게 피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중심에 회개할 것이 없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을 책망하시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다.
4. 천사가 함께 할 자의 자격 (5)
언제나 주의 천사가 같이 하는 종의 자격을 가진 자는 먼저 사단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사단으로 시험을 해 보고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인정될 때에 주의 천사는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긴 다음에 주의 천사가 같이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왕권을 주어서 천사가 같이 하므로 자기 사명을 감당하게 해 주기 위한 방법이다.
5. 다스리는 권세를 가질 자의 자격 (6-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에게 권리를 맡기려고 하실 때에 먼저 사단을 들어서 대적케 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단의 대적을 받고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중심과 사상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예루살렘을 복구할 때에 여호수아에게 되어진 일은 말세에 촛대 교회를 일으킬 사명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큰 사명을 맡기실 때에는 그 종을 먼저 사단을 허락해서 대적케 하신 후에 인정을 받는 자격을 이루게 하여 모든 권리를 맡겨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꼭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종이 되는 것이 큰 문제다. 누구든지 사단의 대적을 피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 나갈 때에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질 것이다.
강권 역사의 필요성
( 슥 3 : 1 - 10 )
서 론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되 일반적인 구원을 주기 위한 역사도 있고 특히 종을 완전히 들어 쓰기 위한 역사도 있으니 종말의 종을 어떻게 들어 쓸 것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강권 역사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은혜로 되지만 종말의 종은 싸워야 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종을 만들기 위한 역사를 강권 역사라 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십자가의 피를 믿으면 되는 것이니 강권이라는 것이 결부되지 않는다. 강권이란 도저히 해보다 일이 안될 때 특별조치로 세우는 것을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강권역사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대표적인 사람을 세우기 위한 필요성 (1-5)
이것은 사단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단으로 더불어 대표적인 종을 마음대로 대적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말세에 적군을 때리는 역사의 대표라는 것은 자기 자체가 원수가 되는 사단에게 그만큼 시련을 받아 보아야 되겠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단의 세력이 무엇인지 체험의 과정이 없다면 사단에게 피해 당하는 사람을 바로 서도록 지도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군대를 지휘하는 총 책임자가 되려면 자기가 직접 적군과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투란 이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 본 사실이 있어야 된다. 대표적인 책임자에게 강권 역사가 임해야 될 것은 사람은 사단과 싸워 승리할만한 인격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신이시니 사단을 대적시키는 시험이 올 때 문제없이 물리쳤지만 신성이 없는 사람은 마귀의 신인 사단을 이길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슬린 나무 같이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슬린 나무란 뜻은 그 종이 사단과 싸웠다는 뜻이다. 그러면 군대가 싸우다가 부상당했다면 싸움을 붙힌 편에서 고쳐줄 의무가 있다.
사단의 편에 가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편에서 사단과 싸웠다는 뜻이 그슬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종이 정욕에 끌리는 생활이 아니고 사단을 대항하는 싸움에서 자기의 힘으로 완전 승리를 이루지 못할 때 그대로 둔다면 대표적인 사명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강권으로 옷을 벗기라고 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옷과 정한 관을 하나님 편에서 책임지고 입혀주는 일을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2. 역사의 강권 (6-8)
하나님은 강권으로 대표적인 종에게 천사가 돕도록 같이해 주는 것이다. 대표자가 도를 준행하며 율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강권의 힘이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며 지키는 것도 강권으로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과를 제했기 때문에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단과 대립을 시킬 때 첫 번에는 대표자를 세우기 위해서 시켰고 다음에는 강권으로 순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순이란 자기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순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의 힘인 자기 자체의 힘과 능이 가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루터기로부터 진액이 오므로 하루아침에 순이 되는 것이다. 사단과 싸우는 대표자와 함께 동료들도 강권 역사의 힘을 다시 받아야 된다는 뜻으로 예표라고 했던 것이다. 예표라는 것은 앞으로 될 표적이 된다는 것뿐이다는 것이다.
3. 세계적 강권 역사 (9-10)
하나님은 역사의 순서가 있는 것이니 종도 대표자를 들어 쓰는 역사도 있고 일반을 들어 쓰는 역사도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싸움도 있고 일반적인 싸움도 있다는 뜻과 같다. 일반적 대중의 역사라는 것은 새길 것을 새기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긴다는 것은 세계적인 역사가 될 만한 확실한 말씀의 칼로 새겨지는 일이요, 땅의 죄악을 제한다는 것은 개인의 죄가 아니라 이 땅 모든 종들에게 해당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그때는 각각 서로 초대를 하게 되는 대중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일반적인 역사라 해도 강권이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심판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버림 돌의 진리를 바로 전하는 역사이었으나 종말의 순의 역사는 세운 돌의 심판권세의 강권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은 사단에게 권세를 주는 말기에 하나님 편에서도 강권으로 역사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 남은 교회와 종을 위한 역사이니 하나님 편에서도 강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학2:18절 이하를 보면 심판이 오는 말기의 역사는 스룹바벨로 인을 삼는다고 한 것은 그만한 권세를 맡긴다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 슥 3 : 6 - 10 )
서 론
인류 역사의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일은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라는 것을 가르칠 때에 구약 교회에 종말을 들어서 신약 교회의 종말을 가르쳤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요, 교회라 하더라도 말씀에 순종치 않을 때에는 망하는 것이요,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승리를 이룬다는 것을 구약 교회의 종말에 된 일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심판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고 안 하는데 의하여 나리는 심판도 있고 그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는 심판도 있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로서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로 말미암아 완전한 촛대 교회가 이루어지므로 그 교회가 성도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들에게 나타나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말씀을 순종하는 대표의 사람이 권리를 받음(6-7)
세상 죄를 짊어진 어린 양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여 인류적인 종교가 이루어지게 되어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므로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는 구원을 받아서 천국으로 들어갔고, 기독교 종말에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므로 승리한 대표적인 종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 종이 전하는 말씀으로 새 시대를 이루는 한 단체가 나오는 것이다. 구약 교회가 바로의 정권 아래서 해방을 받을 때에는 유월절의 양의 피로 말미암아 받게 되었고 말씀에 순종치 않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망했다가 복구될 때에는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 몇 사람을 통하여 복구된 것이다.
이와 같이 어린 양 예수의 피로 해방 받은 교회는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로서 바벨론이 망할 때에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하여도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망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요,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한다는 것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단체가 나오려면 대표적인 사람이 나타나야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너무나 말씀이 혼선된 이 때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나오는 종이 있음으로만 한 단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순종했으므로 만 왕의 왕이 되어 세계적인 구원을 베풀게 되었고, 말세의 종은 말씀 하나를 바로 순종하되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말씀 권세의 역사를 받게 되어 그 말씀으로 새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구약 교회의 종말에 선지 예언을 반대하던 예루살렘이 망할 때에 선지 예언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로 새로운 시대를 이룬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 대표적인 사람을 사단으로 대적하게 하여 아무리 피해를 당했지만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릴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순종하므로 교회가 서게 되었고 말세의 종은 순종하므로 교회를 바로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2. 순종하던 동료들로 열매가 나타남 (8)
아무리 말씀의 대표가 되는 종이 있다 하여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동료가 없다면 아무런 열매도 나타날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큰 나무 가지가 있다하여도 순이 나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표적인 종이라도 동료들의 순종이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구약때에 선지의 예언을 그대로 믿는 여호수아가 고레스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을 회복하려고 돌아왔지만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가 없을 때에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짓다가 중지되고 말았다.
그리고 예언의 말씀을 순종하는 단체가 일어날 때에 가서야 권리 행사가 나타나므로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촛대 교회 역사가 일어나려면 예언의 말씀을 믿고 싸우는 단체가 있어야만 한다.
3. 세계적인 역사가 일어남 (9-10)
기독교가 이날까지 나라마다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은 버림돌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므로 된 것이요, 기독교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는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다. 머릿돌 예수를 통하여 일어나는 역사는 진리를 확실히 증거하되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 단체가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단체적인 성결의 역사가 오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서로 초대하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죄악을 제하는 역사가 있음으로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죄를 사함 받는데 있는 것이요, 이 몸이 죽지 않고 새 시대에 가는 것은 몸에까지 죄악성을 제해 버리는 역사가 있으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완전한 대표적인 사람에게 죄과를 제하는 일이 있게 되고(슥3:4) 다음에는 단체적으로 죄악을 제하는 일이 있으므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말씀을 순종하는 동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다. 구약 종말에 예루살렘을 복구하는 일이 있을 때에 영광이 나타난 것과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촛대 교회를 이루게 되므로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의 위력
( 슥 6 : 9 - 15 )
서 론
아무리 택한 예루살렘이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적에 이방 바벨론에게 망하여 황폐화되었고 말씀을 청종할 때에 예루살렘은 권세 있게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종말에 이러한 증거를 보여준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 된다. 이제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위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면류관을 쓰게 됨 (9-11)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들은 면류관을 빼앗겼고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면류관을 복구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 면류관을 쓰고 제사하던 대제사장들이 선지의 말을 청종치 않다가 성전이 다 없어지고 그들도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이 아무리 성전 복구를 목적하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가서야 복구가 되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 대표적인 종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이 합심 단결할 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면류관을 쓰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왕권의 면류관은 절대로 원수를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만 청종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나타나서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명령할 때에 여러 사람들은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다가 방해하는 원수들의 압력을 받고 성전 건축을 중지했으므로 많은 재앙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학개 선지에게 다시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청종하는 3,4인이 단결할 때에 아무리 원수들이 방해를 하여도 다리오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강권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는 열매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역사가 일어나고 청종치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주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청종하면 일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시고 난국이 와도 돌파하고 나가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역사하시어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하셨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복구될 때에 된 일은 오늘날 촛대 교회를 일으킬 종들에게 주는 교훈이 되는 것이다.
2.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순이 됨 (12)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마른나무같이 되는 것이요 말씀을 청종하면 푸른 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에 열매를 맺는 인격을 이루게 된다. 아무리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였지만 말씀을 청종할 때에 가서야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그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난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복구하는 일은 몇 사람이 합심 단결하여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권리 행사가 나타나므로 이루어졌다.
3.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영광을 얻게 됨 (13)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있다. 70년간 황폐화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아무 것도 아닌 가난하고도 약한 3,4인이 합심하여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화려한 성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큰 영광이 되는 일이다. 아무리 고레스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전력을 기우려 주겠다고 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았으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말씀을 청종할 때에 고레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다리오 왕에게 하나님이 역사해서 성전이 완축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순금 등대 교회를 완전히 이루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이루어져야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해주시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청종할 때에 영광이요 청종치 않을 적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4. 말씀을 청종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됨 (14-15)
하나님의 종이 말씀에 청종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것을 대중이 알도록 열매가 나타나서 그 일을 후세에도 기념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종에게 역사가 나타나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도 그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만일 과거에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역사가 없었다면 인간 종말에도 없겠지만 과거 말씀을 청종한 자에게 역사가 있었으므로 종말에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나가야 될 것이다.
결 론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일은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있게 되는 것이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은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아니고는 앞으로 남을 단체가 없을 것이니 우리는 말씀을 청종하는 단체가 되자.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
( 슥 8 : 1 - 8 )
서 론
하나님은 아무리 예루살렘을 택했고 또는 자기를 공경하는 성전이 있지만 그들이 진리를 바로 증거하는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을 적에 말씀대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황폐화 시켰고 심지어 성전까지라도 다 없애버리는 환난을 통과하게 했고, 그 환난에서 남은 자가 되어서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들어서 예루살렘을 회복할 때에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보여준 것이 스가랴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 고 8절에 말했다. 이 본문은 과거 예루살렘 복구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새 시대를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윗 왕국에 이루어진 일은 전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성도의 나라에 대한 예언적인 역사라고 보게 된다. 이제 하나님은 육적 이스라엘에 대하여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이 되신 것 같이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도 성실과 정의로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1. 질투의 하나님 (1-2)
하나님은 시온을 택한 것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택한 것이니 아무리 시온이 부족하다 하여도 아주 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징벌을 하시고 회개하고 순종할 때에 시온을 위하여 싸워 주시되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한 때는 시온을 징계해서 깨닫도록 하였으나 남은 자의 원한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싸워 주신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부패한 교회를 없이하는 환난이 오지만, 남은 자의 간곡한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하여 싸우듯이 택한 교회를 위하여 싸워 주시므로 그 교회가 새로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환난이 와도 말씀대로 오고 다시 평화로운 왕국이 오는 것도 말씀대로 오게 하는 것은 한 번 약속한 말씀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용서 없이 환난과 재앙이 오기도 하고 또는 다시 불쌍히 보고 택한 자로써 승리하도록 해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2. 함께 하시는 하나님 (3)
하나님은 언제나 택한 자와 함께 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는 것은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성실치 아니한 자나 불의한 자는 함께 하실 수 없고 비록 적은 무리라도 성실하게 행하며 의롭게 나갈 때에 하나님의 신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할 때에 진리의 성읍이라, 성산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있음으로만 완전한 것을 소유할 수 있다.
3. 사망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 (4-5)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사망이 없도록 하는 것을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는 완전한 것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하여 이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그 몸이 죽게 되었지만 다시 그 몸이 죽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말씀대로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시는 진리의 신이시니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사망이 왔다면 말씀을 순종하는 자로 하여금 사망이 없는 왕국을 이루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과 정의라는 것이다.
4. 인도하시는 하나님 (6-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되 반드시 성실과 정의로 말씀대로 행하시어 여호와의 성산의 축복을 받게 하시되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대할 때에 성실과 정의로 대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를 남은 자라고 한 것은 아무런 어려운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절대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고 마음이 변치 않는 자를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누구든지 다 하나같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완전한 왕국의 완전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성실과 정의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환난과 재앙에서 남은 자라고 보게 된다. 모든 일에 완전한 것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모저모로 시련을 시켜보는 것은 합당한 사람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루살렘이요, 친 백성일지라도 합당치 않은 자는 다 없애기 위하여 무서운 환난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환난을 만났지만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황폐화시킨 때와 같은 환난은 없었던 것이요, 기독교가 아무리 환난이 역사적으로 있었다 하여도 계13장과 같이 오는 환난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환난을 들어서 택한 백성을 치는 것은 성실과 정의의 하나님의 백성만으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화평을 전할 때와 싸울 때
( 슥 9 : 9 - 17 )
서 론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는 종이다. 하나님이 화평 하라고 할 때에 화평하고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는 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이다. 화평 하라고 할 때에 화평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싸우라고 할 때에 싸우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화평을 전할 일과 싸울 일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1. 화평을 전할 때 (9-12)
첫째 : 겸손하게 나귀를 타심(9)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나사렛 동네의 목수 생활을 거쳐 불쌍한 양떼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일하는 길을 거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힐 적에 그들은 훼방을 하고 조롱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네가 왕이라면 너를 때리는 우리는 누구냐” 하면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일언반구에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말씀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리는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둘째 :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함
십자가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데 있어서 아무리 과거에는 이방과 유대가 원수였지만 이방인을 압박하던 유대인들이 사도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방 사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율법 시대에는 유대인이 이방 사람은 대하지도 않고 좌담을 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은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베드로가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묵시를 보았다.
이 묵시는 기도 중 하늘로부터 둥근 보자기가 내려 왔는데 보자기 속에 더러운 짐승들이 있었다.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2. 3차 들려왔다. 그때에 문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이방 사람 고넬료가 보낸 하인이었다.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 말고 따라가라는 지시를 하였다. 베드로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놓게 되었다. 고넬료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 기도를 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데려다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시니 감사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에 베드로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했으니 이 복음을 들어라”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을 때에 그 말을 듣던 이방인들이 즉시 성신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신을 부어주니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이로서 이방에 화평을 전한다는 말씀이 오늘날 응한 것이다.
셋째 : 언약의 피로 구원함 (11:12)
화평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는 다 구원한다는 언약의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화평을 전하여도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언약을 믿지 않는 자는 용서 없이 없앤다는 것이 곧 심판이 되는 것이다.
2. 싸워야 할 때 (13-17)
첫째 : 진노의 날이다 (13-14)
아무리 화평을 전해도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고 심지어 무신론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이방을 치게 하되 하나님은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시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북방을 때려부수는 일을 뜻했다. 어느 선지나 종말에 기독교의 원수는 북방이라고 했으니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북방을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요 북방과 타협하는 것을 말하고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를 없애는 일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북방 세력을 치는 일이 진노의 날에 올 일이다.
둘째 : 원수를 진멸함 (15)
이날까지는 화평을 전하는 때이므로 원수를 사랑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원수를 몽땅 없애는 날이므로 피로 이 땅을 적시는 일이 있게 된다.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세상을 모두 없이할 때에는 피가 흐르되 비참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셋째 : 주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새 땅 축복을 받게 됨 (16-17)
원수를 없이하므로 이 땅은 복된 땅이 되어서 모든 생산의 큰 축복을 받아 즐거움을 누리는 새 시대가 온다.
결 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일은 화평을 전하는 일이며 싸우는 일이다. 인간이 볼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자를 어리석게 보았고 새 시대에 들어가는 역사를 비방하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는 전멸을 시키고 새 땅의 축복이 옴으로서만 성도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
( 슥 9 : 9 - 17 )
서 론
하나님은 당신의 땅에서 빛나게 살 수 있는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한다는 것을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목적한다는 이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죽어 천당만을 목적하고 이 땅에서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스가랴 선지는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을 받고 돌아올 때 묵시로 본 것은 전부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보여준 묵시다.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해서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오심으로 되는 일 (슥9:9)
만일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이 되었다면 성경이 그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왕으로서 상경했던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그때 단번에 예수님이 왕이 되는 줄 알고 기뻐했던 것이다. 모든 대중은 예수가 왕이라고 호산나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어긋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 절망 낙심해서 원망하고 욕하며 침을 뱉고 비웃었던 것이다. 이것은 즉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호기심 명예심에서 날뛴 것뿐이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기네 나라에서 왕이 되고 세계를 다스린다는 신앙관이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본문 성경인 슥9장 9절 이하를 똑똑히 알았던들 그렇게도 낙심해서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어기지 못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성경을 자기 욕망에 채우는 허영심에서 날뛰었던 것은 사실이다. 스가랴9:9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만 보고 그 아래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금일도 성경을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 주관에 붙이는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올 때 넘어지고 말 것이다.
2. 이방에 화평을 전하는 역사 (슥9: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먼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후에 그 정권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같이 보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흑암에 빠져 있던 것이다. 만일 바리새교인들이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았던들 바울은 그다지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위 전통을 찾는 바리새교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하여 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다. 금일도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3. 언약의 피로 구원하는 역사 (슥9:11-12)
하나님이 이 세계의 땅을 빛나게 하는 역사는 언약의 피를 인하여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이러한 성경을 모르는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 피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 있고야 예수가 왕이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대로 살아서 왕이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금일까지 이루어진 역사는 9절-12절까지 해당된 역사라고 본다.
4.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이방을 치는 역사 (슥9:13-14)
이것은 종말의 사명을 가르쳐 말한 것이다. 이날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는 원수를 치는 역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원수의 세력을 치되 용사의 칼같이 역사해서 치는 것이다. 만일 금일에 종말적인 역사가 있어야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헬라적인 문명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협상적인 기독교 사상 운동을 한다면 이 말씀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역사하기 때문이다.
5. 여호와께서 백성을 호위하는 역사 (슥9:15)
하나님은 이방의 세력을 용납치 않고 치는 역사를 할 때 당신의 백성이 절대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호위를 한다는 것이다(단12:1). 다니엘 선지도 북방의 세력이 남방을 침노하는 때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호위하기 위하여 미가엘 천사를 동원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호위해 주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원수를 무서워하고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6. 양떼같이 구원하는 역사 (슥9:16)
이것은 영적 구원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적군인 원수의 피가 강같이 흐를 때 자기의 사람을 목자가 양을 보호함 같이 구원해 준다는 것이다. 이때 구원을 받는 자는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고 형통하며 아름다움이 크게 이루어지므로 소년과 처녀들이 건강을 얻어 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시대와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와 하나님의 역사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되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기록할 때 어떻게 여호와께서 역사하므로 여호와의 땅에 빛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순서 있게 말한 것이니 우리는 빛나는 일의 축복을 받으려면 절대 이방의 헬라적인 사상과 맹렬히 싸우는 용사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헬라라 하는 것은 속화된 문명을 가르친 것이니 다니엘 8장에 바사의 문명을 수양으로 말했고 헬라의 문명을 염소로 말한 것은 사상을 보여준 묵시라고 본다. 바사는 스룹바벨의 역사를 적극 후원하고 승리하도록 스룹바벨에게 권리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를 친다고 한 것은 종말의 기독교의 헬라적인 사상이 교회를 망친 것이니 이것을 용납치 말고 쳐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금일의 종교 위기는 헬라적인 사상이 강단에 서게 되는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의 모략적인 역사
( 슥 12 : 1 - 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의 영혼을 지으신 조물주의 능력을 가지셨지만 언제나 모략적인 방법으로서 역사하시므로 참된 신앙을 가진 자 외에는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하시니만큼 잠잠히 계셔서 당신을 의심 없이 믿고 끝까지 순종하는 자를 들어 쓰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모략적인 역사가 있다.
1. 천하 만국으로 사랑하는 자를 치게 하심 (2-3)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고자 하실 때에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일어나도록 하셔서 사랑하는 자를 치게 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누구든지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 없이 될 때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싸우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시고 통치권을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모아서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작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믿고 의지할 때에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모략을 알고 원수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진노의 날에 다 함께 보호를 받도록 해 주신다.
2. 원수들의 눈이 멀도록 하심 (4)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처음에는 당신의 사람을 아무런 소망이 없게 보이도록 하시지만 홀연히 역사하시되 원수의 세력을 다 눈먼 사람같이 되게 하셔서 원수들이 스스로 망하도록 하신 것이다. 지금 과학적 유물론 사상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있지만 유물론 사상이라는 그 자체가 눈이먼 자들과 같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눈먼 소경과 같은 사람들이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3. 사랑하는 자로 승리케 하심 (5-6)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승리케 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매우 쉬운 일이다. 예를 든다면 불이 섶을 사를 때에 섶이 많을수록 불은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사람이 역사하는 일은 원수의 세력이 많을수록 강하게 일어나므로 많은 원수를 이기는 것은 불이 섶을 사르는 것과 같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4. 구원을 베푸심 (7)
이 구원이라는 것은 영. 육이 아울러 받는 구원을 말한다. 이것은 한 사람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구원을 하나님께서 베풀되 공평한 구원을 베풀어 하나같이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5. 종을 하나님같이 들어 쓰심 (8-9)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는 난국을 당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신과 같이 들어 쓰고자 하시는 모략적인 방법이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면서 모세를 신과 같이 썼고, 아합의 마음을 강퍅케 하면서 엘리야를 신과 같이 썼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천하 만국을 악하게 하시면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신과 같이 역사하게 하시므로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게 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결 론
우리가 가장 억울하고도 두려운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은 가장 영화롭고도 아름다운 일을 가져오게 하실 하나님의 모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국제적으로 오는 유물론 공산 정책을 무서워 말고 담대히 나갈 때에 하루아침에 승리하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의 큰 환난과 회개 운동
( 슥 12 : 1 - 14 )
서 론
인간 종말에 천하 사람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없이하려고 하는 환난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신과 같이 쓰되 큰 회개 운동이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다. 이제 인간 종말에 있을 큰 환난과 회개 운동에 대하여 증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큰 환난 (1-5)
환난이라는 것은 악의 세력을 통하여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의의 세력이 악의 세력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때를 환난시대라고 한다. 어느 선지나 하나같이 인간 종말에는 의의 세력은 극도로 약한 가운데 있고, 악의 세력은 극도로 강하게 될 것을 말했다. 환난이라는 것은 마귀 세력을 강하게 들어서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요 심판이라는 것은 마귀의 세력을 없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환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타날 때가 온 증거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환난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에게 나타나므로 돌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올 환난에서 구원받을 주의 백성들에게 큰 힘을 주기 위하여 나타난 표적이다.
본문을 보면 인간 종말에 천하 만국이 전부 일어나서 예루살렘을 치게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없이하고자 하는 환난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말하기를 생명책에 기록된 자 외에는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것은 만 왕의 왕을 대적하고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정권 아래 하나가 되고 말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인간 종말에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심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얼마든지 사람을 악화시킬 수 있는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이 극도로 강하게 일어나게 되어 환난시대가 오는 것이다.
2. 택한 종으로 승리 (6-8)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승리하도록 역사하실 때에는 원수의 세력을 얼마든지 강하게 일어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택한 종으로 하여금 그 원수를 이기게 함으로써 오히려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적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 때에 말씀대로 바로를 강퍅케 하고 말씀대로 천하 사람을 강퍅하게 하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을 신과 같이 역사하도록 하시어 큰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과거 역사를 본다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실 때에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이 있게 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종을 신과 같이 들어 쓰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도 당신의 종을 신과 같이 쓰실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3. 큰 회개 운동 (10-14)
회개 운동이라는 것은 은혜 시대에 개인 개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도 있고, 인간 종말에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이나 할 것 없이 택한 사람이라면 전부 다 회개를 하게 되는 역사도 있다. 인간 종말에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에 회개치 않는 사람은 영원히 기회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종말에 누구든지 회개할 수 있는 큰 회개 운동이 있고는 악인을 없애버리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큰 회개운동이 있음으로써 새 시대에 들어갈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는 아무리 예수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에서도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 공산 진영 안에서는 30세 청년들까지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자들이니, 이 사람들을 그냥 두고 심판한다는 것은 공평한 하나님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신론 공산 정치 안에서도 택한 자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심지어 이때에는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까지라도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택한 자라면 다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택한 자라면 다 회개하게 되는 것을 큰 회개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우리 앞에는 불가피한 큰 환난이 오게 된다. 그러나 이 환난은 무서워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고 자신이 완전히 회개를 하느냐 회개를 하지 못하느냐와 무장을 갖추느냐, 무장을 못 갖추느냐 하는 것으로써 모든 문제는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시련가운데 남은 종의 역사
( 슥 13 : 1 - 9 )
서 론
주님은 언제나 시대가 바뀌는 시기에는 종들을 시련 시켜서 남은 종으로 새 시대를 정복하는 것이 역사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는 그때는 이미 역사하던 역사가 바뀌는 동시에 환난기가 온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라의 정권이 바뀔 때 혼란해지는 것과 같다. 시대적인 남은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라야 남기 때문이다. 새 시대를 건설하는 것은 새로운 순과 같은 종이 아니고는 새 시대를 건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율법적인 종교가 복음적인 사도들을 죽이는 권리를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그와 같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은혜 시대 역사가 바뀌고 예언시대로 접어들어 예언자들이 당할 시련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은혜시대에도 시련 중에 남은 종으로 큰 역사를 일으켜서 세계적인 대종교를 이루었고 환난 시대에도 시련 중에 남은 종으로서 세계를 정복하는 새 시대를 건설하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시련 중에 남은 종의 자격은 성서를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1. 가정의 박해를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은 어느 종이나 가정에서부터 시련을 통과시키신다. 만일 어떤 사명 가진 종이 가정 박해가 무서워서 굴복하는 정도라면 남은 종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니 하나님은 언제나 네가 부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나가는 가운데 축복을 받도록 하는 시련이 있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부모나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해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다(마10:34-37). 종말의 예언이란 사상문제가 결부되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육적인 혈통 관계가 아니고 시대적인 각오를 가진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언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부모의 말보다도 더 존중히 여기는 자라야 될 것이다.
2. 극도로 피하기 어려운 환경의 시련이 있다(4-6)
그때는 종말의 예언을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끄러운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당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이 변명하는 자가 많은 것이다. 마음으로 예언의 말씀이 옳은 줄 알면서 겉으로는 나는 그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고 농부라고 하며 또는 수고를 한 일이 없다고 변명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남은 종이 되는 자는 위신을 떠나고 그 사회의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예레미야 선지와 같이 임박한 환난을 당하여 눈물겨운 심정을 가지고 나오는 종이 아니라면 남은 종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3. 인간이 볼 때 적게 보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7)
인간이 볼 때 무식하고 가난하고 무가치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말세 종은 어떤 인간의 교권이나 어떤 명예나 어떤 지위를 떠나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나타나서 자기라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은 주님께서 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당한 종을 들어서 세계 열 왕이 절하게 만든다는 것을 사49:7에 말했다.
4. 연단한 금같이 빛나는 자이다(8-9, 단11:35, 단12:10)
금과 은은 연단이 있으므로 빛을 내는 것과 같이 금은 같은 불변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때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오게 될 때 더 빛을 내게 되는 것을 가르쳐서 금 같은 믿음이라 했다. 하나님은 아무리 시험을 해보아도 택한 종에게는 더욱 영광이 되고 축복이 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시련이란 쓰지 못할 사람을 다 떨어지게 만드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만일 말세에 사명자에게 시련이 없이 새 시대에 간다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시련의 몽둥이로 치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한 타작기의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은 종을 들어서 신과 같이 쓰는 것이다(슥12:8). 하나님의 종이 신과 같이 되는 것은 시련 중이라야 이루어지는 것이니 극도로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동시에 당신의 종은 신과 같이 만들어 쓰는 것을 남은 종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남은 종은 신과 같이 쓰여지는 동시에 심판권을 가지고 주와 함께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