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설교

   

 

     목  차

종교 지도자의 탈선은 무엇인가 (미 3:1-5)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미 3:11-12, 7:7-13)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 (미 4:1-3) 

심판과 평화 (미 4:1-5) 

강국을 이루는 비결 (미 4:1-8) 

부르짖는 시온의 승리 (미 4:9-13) 

지극히 작은데서 이루는 완전 역사 (미 5:2-4)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 (미 5:2-8)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미 5:7-9)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자 (미 5;7-9, 7:7-10) 

재앙 중에 여호와를 앙망하자 (미7:1-12)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의 인격 (미 7:4-10)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의 승리 (미 7:4-13) 

인간 세력이 부끄러워할 종말의 역사 (미 7:7-17) 

기독교 종말에 나타나야 할 기사 (미 7:14-20) 

 

종교 지도자의 탈선은 무엇인가 

( 미 3 : 1 - 5 ) 

 

서 론 

종교라는 것은 아무리 시작이 바로 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도자가 탈선할 때에 그 종교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가끔 변동할 수 있으나 종교라는 것은 도저히 변동할 수 없는 정확 무오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육적을 위해서 있으니만큼 육적 생활에 대한 일을 잘 발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잘 지도하는 것으로 목적을 두지만 종교는 신령한 방면에 큰 변화를 주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종교 지도자의 탈선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 수 있다. 

 

1. 사랑이 없는 기도 (1-4) 

종교 지도자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다면 아무런 필요없는 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선한 일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우지 않고 오히려 선한 일을 미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선하신 신이시니 지도자로서 그 뜻에 순종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을 목적한 것 외에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다 쓸데없는 우상적인 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금일에 어떤 종이 기도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종이라면 반성하여야 할 일이다.

공연히 이유없이 다른 종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니 도저히 그 기도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은 두 사람의 기도를 받을 수 없는 조건이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기도하는 종의 기도가 상달이 되었다면 그 종을 누명을 씌우는 종의 기도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교인의 기도라는 것은 아무런 응답이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지만 사도들의 기도에는 응답의 역사가 있을 때 기도에는 응답의 역사가 있을 때 응답을 받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사도들의 역사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2. 자기를 중심하여 싸우는 일이다 (5-7) 

우리가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종교 지도자로서 마땅히 싸워야 할 의무라고 보지만 자기에게 이익이 있다고 싸운다는 것은 자기를 위한 거짓선지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에게는 흑암에 빠지는 일이 있으므로 아무 것도 분별할 수 없는 자리에 있으므로 자기도 미혹을 받은 자로서 따라가는 자도 같이 미혹을 받게 된다. 지도자라는 것은 대중을 살린다는 공적 사랑에서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제일 큰 죄는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죄요, 지도자의 큰 의는 대중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3. 삯을 위하여 교훈 하는 일이다 (11-12) 

교훈이라는 것은 사회에는 직업적 교훈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가 삯을 따라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행자이니 아무리 원수의 피해가 있다 하여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증거하는 자 외에는 자동적으로 삯군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말씀을 전할 때에 하나님은 그 종에게 모든 것을 만족히 주는 것이니 삯을 위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이 되려면 삯을 위하여 움직이지 말고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모든 전부를 바치고 싸울 때에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실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요. 진노의 날에 큰 축복은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에게 올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을 들어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는 기도가 상달된 자, 친히 갚아줄 것이 있도록 일한 자, 진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는 자를 들어 쓰되 수풀 속에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 쓰므로써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진노라는 것은 참된 종을 강하게 들어서 대적을 치는 날을 가르친 것이다(미5:7-9).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어느 때나 처음에는 망할 자를 들어서 복 받을 자를 괴롭게 하고 다음에는 복 있는 자에게 강한 권세를 주어서 원수를 갚게 한다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것이 선지서란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 미 3 : 11 - 12, 7 : 7 - 13 ) 

 

서 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심이 있다 하여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화를 받을 일 (3:11-12)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진노의 날에 화를 받을 자는 소위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라 하면서 돈을 위하여 점을 치는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를 의지하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신념을 가진 자이다. 이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 성직을 직업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성직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것보다도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 생활의 무대를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는 사람에게 삯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목적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마6:1 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벌써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되므로 이러한 자의 기도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을 수 없고 사단의 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지 못하고 삯군을 위하여 한 직업화되는 단체가 될 때에 거기에 있는 양떼들은 오히려 이용을 당하는 일밖에는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다면 그 교훈은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는 일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자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되니 그 교회는 진노의 날에 황폐화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될 수도 있고 삯군을 위한 한 단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삯군을 위한 단체라는 것은 거기에 따라가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경외하여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물을 섬기고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한 학과에 불과한 것으로 말씀의 아무런 역사를 체험치 못하고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그 신앙이 의식화되고 한 고질화된 형편에서 그것을 신앙 정로로 아는 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단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교권과 물권과 인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둘째 : 이러한 자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영적 문제보다 육적 생활의 한 방편으로 이모저모로 유익을 보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과거의 발람이 하나님을 찾았지만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보다도 자기의 명예와 안락을 따라가는 교훈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이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서도 이것을 오히려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종을 받드는 것보다도 그 종의 역사를 시기하여 막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을 바라보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은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일 (7:7-13)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할 사람은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나가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가지 난관을 당해도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의지하고 싸워 나가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첫째 : 엎드려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일이요 

둘째 : 흑암이 온 땅을 덮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빛을 찾는 일이요 

셋째 : 범죄가 있다 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자는 대적을 진흙같이 밟고 나가는 용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많은 대중을 구원하는 일이 있게 된다. 이러한 용사의 영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넘어졌다는 것은 용기 있게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돌진의 걸음을 걸어 가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어떤 군대는 자기가 위험하다고 도망을 가서 숨은 자도 있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 나갈 때에 부상을 당한 자도 있을 것이다. 이때에 용사는 부상을 당했다 하여도 용기 있게 싸운 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삯을 받아먹고 평안히 지내는 자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라면 강한 원수에게 쓰러지는 일이 있다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흑암을 뚫고 나가는 종으로서 흑암의 세력이 그 종을 덮고 나온다 하여도 그 자체가 흑암에 빠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종에게 흑암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의 역사를 주시는 것이요, 사람이 볼 때에 실수하는 범죄가 있다하여도 중심과 사상이 바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버리지 않고 더 강하게 들어 쓰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시는 당신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되 조금이라도 자기의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라면 중심을 보시고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무리 베드로가 원수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모든 성직자보다도 더 강하게 들어 쓴 것이다. 

 

결 론 

어떤 종이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여도 자기의 안락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기 위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 

( 미 4 : 1 - 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종말의 진리 운동을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로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께서 생령된 사람에게 지상 축복을 가르치는 것을 야곱의 도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한 것은 이 세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창12:3, 22:18, 26:24, 28:14).

야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의 모든 선지에게 묵시의 글을 예언으로 쓰게 하실 때에 소위 이스라엘이라 하면서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 사람과 혼인을 하는 일과 속화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선지들을 박해할 때에 하나님은 핍박을 당하는 선지들에게 왕권을 주는 동시에 그 왕권이 세계를 통일하는 승리가 있는 것을 언약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될 것이 아니고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 나게 되므로 임마누엘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데 있어서는 어느 때에 복을 받느냐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미가4장에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므로 야곱에게 나타나서 언약을 세운 말씀을 중심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는 것이다. 이제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에 대하여 본 성경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적인 교회 확장이 될 때에 가르치게 됨 (1) 

미가가 이 묵시를 기록할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만 있었지만 미가가 받은 야곱의 도를 만민에게 가르칠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 작은 산 위에 굳게 서는 일이 있으므로 민족들이 그 성전으로 들어올 것을 말했다. 사2:2를 보면 "성전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며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든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 확장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대 확장을 보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까지는 모든 족속 중에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로 드리는 역사로 교회가 선 것이다(계5:9-10).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 피로 산 백성이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다고 하였으니 지금은 누구든지 피로 산 백성은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으므로 기도할 수 있는 야곱이 되는 것이다. 야곱이라는 것은 모태로부터 택한 자인데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졌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엡3:6, 갈3:29).

오늘날까지는 천국 복음을 전하므로 모든 사람이 영혼 구원을 받았지만 야곱의 도라는 것은 야곱의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동시에 야곱의 씨가 세상에 편만해지는 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니 지상에서 야곱의 자손이 복을 누리는 것을 야곱의 도라는 것이다. 이 야곱의 왕국이라는 것은 육적 이스라엘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고 어느 나라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새 시대에 들어가는 야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미5:7). 

 

2. 여호와의 산이 나타남 (2) 

이 여호와의 산이라는 것은 종말의 진리가 나타난 산을 가르쳤다. 이날까지 야곱의 도를 가르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호와의 산이 나타나는 동시에 성전에서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사명자가 나타날 것을 가르쳤다. 이 산이라는 것은 어떠한 곳에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성경을 들어서 말할 수 있다.

사40:9을 보면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고 하였고, 사24:15를 보면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고 16절에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한다고 하였다.

사25:6-7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이 그 가리웠던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임이라"고 하였고 10절에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서 나타나리니 원수의 세력이 다 망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26장을 보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들을 가르쳤다.

그러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산은 동방 바다 옆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불이 우리나라 새일 수도원이 깃들인 계룡산에 나타나서 불로 산을 덮고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이 1964년 9월 24일에 임하여 그날부터 성전을 짓고 모든 서책을 기록할 수 있도록 수도원 원장에게 말씀이 임한 것은 분명히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학과가 되었다.

지금도 얼마든지 종말관의 진리가 서책으로 나오고 있으니 일점일획도 사람의 생각으로 기록하지 않고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은 세계를 정복할 진리 운동이 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지금은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비방을 하고 있지만 누구든지 새일 수도원 강단에 임한 서책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깨닫게 될 줄 믿는다. 분명히 이 진리 운동이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3. 강한 이방을 판결하고 평화 왕국이 옴 (3) 

계시록의 붉은 용, 붉은 짐승의 세력이 심판의 대상자인데 누구든지 그 짐승의 표를 받으면 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나 여기에 강한 이방을 판결한다는 말씀이 동일한 뜻이다. 역사적인 강대국은 다 강한 이방이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오늘에 와서 기독교를 대적하고 나오는 공산 국가 소련이다. 강한 이방이 역사적으로 내려왔지만 심판기의 강한 이방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고 심판으로만 없어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강한 북방이 망하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이 모든 선지서에 하나같이 말한 종말의 경고이다. 우리가 이방 세력이 강해진다고 해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이방과 같이 망할 행동이 된다. 완전 평화라는 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이방세력이 다 없어짐으로만 전쟁이 없는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전쟁은 영토를 다투는 전쟁이므로 이방이 이방과 싸울 때에 역사적인 강국이라는 명칭이 내려왔지만 인류 종말의 전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계를 통일하는데 있어서는 이방적인 세력이 전멸되는 재앙 심판이 오므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는 것이다. 

 

결 론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는 변화성도가 전하는 심판의 경고의 다림줄이 된다. 모든 선지는 야곱의 왕국이 세계 통일할 것을 묵시로 보았지만 변화성도는 이것을 나가 전하는 역사를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역사라고 한 것이다. 천국 복음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전한 복음이요,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들에게 전하신 복음이라고 계10:7, 11:15에 말했다. 

 

 

심판과 평화 

( 미 4 : 1 - 5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할 때에 무조건 타협적인 평화를 가지고 평화왕국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심판이 있고야 영원한 평화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화왕국에 들어갈 인격은 어떠한 것이며 어떠한 심판이 있고 어떠한 평화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인격을 이루는 일이 있고 심판이 옴 (1-2) 

하나님께서 말일에 하나님의 성전을 어느 나라나 곳곳마다 견고히 건축케 하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인격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한 성전이다.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제사하던 성전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보다도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영자적인 역사이었다. 그러나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산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기 위하여 곳곳마다 세워진 성전은 민족적 국경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그 성전에 들어가서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까지의 역사는 영혼을 완전케 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여호와의 산에 가서 야곱의 도를 배우는 역사는 야곱의 길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몸까지 구원을 받는 완전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미5:7-9, 사43:1-4). 야곱의 도라는 것은 중생 받은 사람이 지상 축복을 받는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그 길을 가는 자는 물과 불이 당치 못하는 인격을 받아 남은 자가 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2. 강한 이방을 심판하고 평화가 옴 (3) 

하나님께서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굳게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교회를 대적하는 강한 이방의 세력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으므로 심판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시는 전쟁이 없는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지금 공산당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시키는 정책을 하면서 소위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을 합법적인 진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잠깐동안 들어 쓰는 것뿐이다.

오늘에 평화주의라는 자들은 강한 이방을 심판하는 것을 구약시대로 보고 지금은 누구나 다 하나같이 평화를 하여야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거짓선지의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강한 이방의 세력을 심판하는 것이 인간 종말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강한 이방의 세력을 들어서 당신의 백성을 시험해 보고 끝까지 절개 있게 나가는 사람을 보호하고 강한 이방을 쳐서 없이했다는 것이 구약 말기에 있었던 역사이었다.

그러나 구약 말기에 된 일은 그때에 평화왕국이 온 것이 아니고, 인간 종말에 심판의 경고를 주는 교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한 이방을 들어 쓸 때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간다면 원수를 없이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평화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완전 평화를 이루고 아무런 난관이 와도 마귀의 세력과 끝까지 싸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다고 인정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이루시게 된다. 

 

3.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자들을 통하여 영원한 평화가 옴 (4-5) 

하나님께서는 싸워 주시되 당신의 이름을 불러 호소하는 사람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신다(욜2:32). 사람 자체는 무능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부르짖는 자를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떠한 어려운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입으로 부르게 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찾는 용기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은 당신의 이름을 불러서 호소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승리하는 일이라고 본다. 인간이 볼 때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가장 미약한 것 같지만 승리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완전 승리는 인간 종말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있으므로 평화왕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결 론 

완전한 평화라는 것은 악의 세력이 없어지는 심판이 있고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산주의의 평화라는 거짓선전에 속지 말고 성경 본문 그대로 악의 세력을 완전히 없이하는 심판이 있고야 완전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가야 된다. 

 

 

강국을 이루는 비결 

( 미 4 : 1 - 8 ) 

 

서 론 

인류 역사의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는 다 자기의 세력을 믿고 남의 국토를 침략하다가 결국은 망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제 영원히 망하지 않는 강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인간들은 남을 압박하고 쫓아내는 세력이 강하다고 인정하지만 영원한 강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쫓겨난 자로 이루어진다고 7절에 말했다. 이렇게 되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 교회 확장 (1) 

세계 인류 역사상 남의 나라에게 압박을 제일 많이 받은 나라는 예루살렘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침략하던 강대국들은 다 망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된 복음 운동은 대승리를 보아 금일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계 열방에 작은 산에 굳게 선 것을 보면 인간의 권력이라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예를든다면 만경창파에 웅장한 기선은 물에 침몰 당할 수 있어도 그 밑의 작은 고기 한 마리는 그 굳센 물결을 이용하여 자기의 활동 무대를 삼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강국은 파도같이 일어나는 환난을 이기지 못하고 그 나라에 모형조차 찾아볼 수 없는 존재를 이루고 말았지만 생명이 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는 그 환난을 무대로 삼고 역사하므로 결국은 기독교를 반대하던 나라까지도 그 신앙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죽어 천당을 목적한 신앙도 지상에서 승리하였거든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진리를 믿는 신앙 운동이 필연코 승리하고 새 시대를 이룰 것은 확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일 (2) 

세상에 많은 교육이 있지만 그 교육이 세계 통일의 강한 나라를 이룬 교육은 없었던 것이다. 한 때는 그 교육이 그 시대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일도 있었지만 이것은 완전한 교육이 아니므로 부분적인 지식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움직여 온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도를 가르치는 일은 완전히 세계 통일의 강국을 이루는 교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약속을 세운 그 말씀을 믿는 자에게만 복을 주고 역사하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야곱의 도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교훈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하나님 말씀은 율법과 선지서인데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동시에 그 죄를 범하면 용서 없이 죽이라는 교훈이요, 선지서는 택한 백성을 새 시대로 인도하되 누구든지 그들에게 피해를 못 주도록 한다는 것과 또는 억울하게 압박을 받고 쫓겨나면서도 말씀을 믿는 자는 필연코 승리하도록 해주시겠다는 말씀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복을 받기 위하여 괴로움을 극복하고 나가는 자는 초인간적인 강한 역사가 일어나되 필연코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 교훈은 하나님의 완전 승리의 역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이며 새땅 축복을 야곱에게 주겠다는 교훈이 야곱의 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야곱이라는 것은 말세의 성도를 뜻한 것이니 성도가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것과 하나님은 성도에 대하여 어떻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 야곱의 도가 되는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날까지 십자가의 도는 누구든지 그 보혈을 믿으므로 성도의 자격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는 성도가 된 야곱이 지상에 축복을 받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니 이 복음이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3. 강한 이방을 판결하고 평화의 나라가 옴 (3) 

아무리 강대국의 세력이 북방으로부터 온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강한 이방인 북방 세력을 없이하고 평화로운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을 본 이때에 북방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필연코 승리는 미약한 야곱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데는 이방의 강한 세력은 그 앞에 굴복을 당하고 영원한 시온산 통치에 강한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4. 미약한 야곱을 두렵게 할 자가 없음 (4-5) 

아무리 인간이 볼 때는 저는 자 같고 환난을 받고 쫓겨나는 것 같이 보이나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는 백성이므로 누구든지 그들을 해칠 자는 전혀 없다. 인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한 자 같으나 반드시 두렵게 할 자가 있지만 하나님이 같이 하는 백성은 두렵게 할 자가 전혀 없으므로 약한 것 같으나 실지는 강한 자요 환난을 당하는 것 같으나 실지는 평강의 나라를 얻게 되는 한 과정에 하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간 종말의 환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는 환난이 아니고 악자를 들어서 악한 세상을 망하게 하는 환난이요, 강한 세력을 심판하여 없이하는 것을 인간 종말에 환난과 재앙이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하여 교회를 세웠지만 앞으로는 찾은 백성을 한 번 시험을 통과시켜 남은 자로 강국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모략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를든다면 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하여 학과를 가르치고 한번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서 끝을 맺는 거와 같이 천하에 교회를 세운 것은 야곱의 도를 가르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시험을 통과시킨 후에 완전히 끝을 맺는 평화 왕국이 온다는 것이 강국을 이루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부르짖는 시온의 승리 

( 미 4 : 9 - 1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들어서 완전 승리를 이룰 때에 부르짖지 않고는 어찌할 수가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여 난관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자라면 진실한 자로 인정하고 그로 하여금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므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더 큰 영광을 누리게 한다. 부르짖는 시온이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부르짖으므로 열매가 있게 하심 (9-10)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택한 자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택한 자가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을 때에 역사하시는데 있어서는 부르짖는 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난제를 놓고 합심하여 부르짖는 것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탕자를 두고 비유할 때도 아들이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아버지를 찾아와서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는 요청을 할 때에 그것을 만족으로 여겼다는 것으로 말씀하신 이것은 영계에 가장 깊은 비밀이 있는 비유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은 원수로 알지만 아무리 미약하고 어리석은 자라도 당신 앞에 부르짖는 자를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10절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이스라엘이 부패하여 세상과 타협을 할 때에 용서 없이 바벨론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이 부르짖고 기도할 때에 강권 역사로 부패한 예루살렘을 복구하신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도 교만한 자들은 다 망하고 인간이 볼 때 가장 미약하고 어리석은 자 같으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을 들어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한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해산하는 여인같이 힘을 다해 부르짖는 데까지이고 그 밖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심 (11-12) 

하나님은 언제나 원수들을 강하게 들어서 쓸 때에 그들이 당신의 자녀를 업신여기고 무시를 하게 하였다가 참된 자녀로 승리하게 하며 원수들을 홀연히 망하게 한다. 모세를 쓸 때에도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하여 깨닫지 못하게 했고, 엘리야가 승리할 때에도 원수들을 깨닫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죽는 시간까지도 엘리야를 무시하고 대적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도 공산당들이 참된 교회를 어리석게 보고 오히려 기독교는 아편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내일의 멸망을 모르는 그들은 타작 마당에 겨같이 날아가고 마는 것이다. 

 

3. 강하게 하여 대적을 치심 (13) 

우리가 부르짖을 때는 극도로 원수에게 멸시를 받을 때요, 우리가 강하게 일어나서 대적을 칠 때는 부르짖던 호소의 응답이 나릴 때이다. 부르짖지도 못하고 원수에게 타협을 하고 만다는 것은 벌써 싸울만한 능력이 떠난 증거이며 아무리 원수 세력이 강해도 부르짖는 사람은 원수를 이길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증거이다. 가장 위대한 일은 인간의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교만한 인간들은 부르짖는 호소를 올리는 자를 어리석게 보고 원수들과 협상하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부르짖는 자들에게 원수를 쳐서 없이할 철장 권세의 역사를 나리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성경 글자대로 믿고 부르짖는 자라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성경이나 인간의 어떤 방법을 중심해서 역사할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볼 때에 믿을 수 없고 어리석게 보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말씀했다. 

 

결 론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자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 항상 부르짖는 자이다. 지금 부르짖는 호소 성가를 주시는 것은 환난 가운데 남은 자가 될 주의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가 온 증거이다. 우리는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되면 대 승리를 보는 열매가 있게 되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데서 이루는 완전 역사 

( 미 5 : 2 - 4 ) 

 

서 론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가장 큰 나라를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데서 일을 시작하여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일을 시작할 때에 가장 작은 자리에서 시작을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베들레헴 여관 말구유에서 시작한 일 (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언적인 역사가 있고야 그 역사대로 실천을 하시는 것이다. 가장 중대한 목적을 둔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질 적에 키가 가장 크고 준수한 사울을 택하여 왕을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시면서 그를 버리신 것이다(삼상15:11). 왜냐하면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왕을 택할 적에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집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택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무엘은 가장 작은 목동을 택하였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목동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아서 세계적인 왕국 건설의 왕조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만 왕의 왕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한 것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여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사9:6-7).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작은데서 시작된 일 같으나 이 일이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시작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들어 쓴다는 것이요,

둘째는 가장 낮은 데서부터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요,

셋째는 지극히 낮은 자리에 떨어진 인간을 구원해 낸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일도 작은 데서 시작하였고 이루어지는 일도 작은 데서 시작한 것은 어느 사람이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도록 하신 것이다. 미혹의 역사라는 것은 처음에는 크게 역사하고 마지막은 아무 것도 없는 허망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요, 참된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에는 작은 것 같으나 결말에는 가장 큰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으로 인간을 대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믿고 지극히 작은 데서 부터 큰 것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만 된다는 것을 뜻했다. 

 

2. 해산의 수고를 하게 하는 일 (3) 

하나님께서 왕국을 이루는 인격을 이루는 일에는 반드시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된다는 것이 작은데서 완전을 이루는 공의의 법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은 그때 그때에 평안히 지내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알고 이 땅의 평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 충성을 보기 위한 것이다. 

둘째 : 진실성을 보기 위한 것이다. 

셋째 : 강한 인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종이나 진실한 종들은 다 해산의 수고를 다 하도록끔 원수의 세력을 들어서 그를 대적하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마귀를 들어 쓸 때에 강한 나라를 마귀의 도구로 썼고 강한 용사를 마귀의 도구로 들어 쓰면서 당신의 종은 그 세력 앞에서 압박을 받고 심지어 악한 사형을 받게 한 것이 이날까지에 있었던 왕국 건설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주님의 십자가가 어리석은 일이요, 저주를 받은 일이요, 큰 실패를 당하는 일같이 보였지만 이것이 가장 큰 승리를 이루는 역사라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다. 소위 강한 나라라고 불리던 나라도 마귀 세력이 성도를 괴롭힐 때에 자기네가 대 승리를 보는 것 같이 의기가 양양했지만 결국은 바람 앞에 등불같이 꺼지고 만 것이다.

지금 아무리 붉은 용의 세력이 큰 권세를 가지고 세계 인류에게 압력을 주고 있지만 골방 속에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성도에게 분명히 거꾸러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앗수르가 강하였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기도하는 히스기야 한 사람 앞에 멸망을 당하였고 아무리 바벨론이 강하였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기도하는 청소년 앞에 느부갓네살왕이 절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작은 일 같지만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 부르짖는 작은 성도의 위력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까지는 시온이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간이므로 우리는 각자 각자가 원수를 무서워말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기도 생활이 있어야만 완전한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일 (4) 

오늘날 교만한 인간들은 정권이나 물권이나 병력을 의지하고 이것을 자기의 세력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완전한 역사는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자를 통하여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는 자를 가장 어리석고 약한 자로 보지만 최후의 승리는 이러한 자로 말미암아 세계를 정복하게 된다. 

 

결 론  

우리는 지극히 작은데서 완전한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어떤 강한 나라나 어떤 병력이나 정권의 세력을 무서워할 것 없이 담대히 싸워 나갈 때에 홀연히 완전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 

(미 5 : 2 - 8 ) 

 

서 론 

인류 역사의 많은 정치인이나 문화인이나 종교인이 하나같이 찾고 있는 것은 참된 평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에 무엇으로서 인류의 참된 평강을 가져올 것이냐에 대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 본문에 있는 미5:5을 보면 베들레헴에 나신 그리스도는 인류 종말에 북방 환난이 올 때에 평강이 된다는 것을 두고 미가 선지는 묵시를 보았던 것이다.

평강이라는 것은 아무런 환난이나 어려움이 없이 평강이 온다는 것이 아니요, 아무런 무서운 환난이 온다해도 그 중에서 그 일을 통하여 완전한 평강이 있다는 것을 본문에 분명히 가르쳤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평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하여 말한다. 

 

1.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있으므로 (2-3) 

지금으로부터 2700여 년 전 미가 선지는 묵시로 인간 종말을 받아 기록할 적에 아무리 세상이 악해지고 반 기독적인 사회가 온다하여도 반드시 진리의 대적이 되는 원수는 분명히 망할 것을 말할 때에 베들레헴 작은 동네이지만 거기서 참된 치리자인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말할 때에 그는 신성을 가진 자라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근본은 태초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 통일의 영원한 왕국을 위해서는 자기를 신앙하는 자로 시련을 통과시켜 남은 자로 이룰 것을 말했다. 그리스도는 신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는 도저히 승리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과는 대적이 되는 진리 운동이기 때문이다. 대적이라는 것은 악한 자의 대적이라는 것이니 악한 자의 세력이 회개하고 돌아오기 전에는 악자를 용납치 않고 없이하므로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자라야 남은 자가 되게 하고 그밖에 타협적인 노선이나 또는 반 기독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절대로 이 땅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위험을 당치 않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2. 세계 통일의 역사이다 (4) 

참된 평강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상대해서는 있을 수가 없고 초인간적인 세력의 힘이 아니고는 악한 세상을 참된 평강의 나라로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라면 아무런 악의 세력이 대항한다 하여도 안연히 거하게 하는 보호가 있으므로 세계를 통일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에 완전한 세계 통일을 가져올 자는 전혀 없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한때는 기세를 올리며 세계 통일을 꿈꾸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망했다는 것이 인류 역사가 분명히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강대국은 다 망하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계 통일을 하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악자를 들어서 한 때 쓰시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때는 악의 세력이 강한 것 같으나 결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한 한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강한 자를 들어서 세상을 치면서 당신의 종을 들어서 강한 자를 치겠다는 것이 말세의 비밀 요지가 된다(5-6).  

 

3.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인생을 기다리지 않게 하신다 (7)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볼 때는 약해 보이나 실지는 강하게 해서 필연코 승리는 당신을 따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땅에서 남을 자는 이슬과 단비 같이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나리므로 그 역사를 받는 자는 수풀 속에 사자같이 강해지는 용사가 되고 대적을 없이한다고 하였다(8-9).

이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리스도께서 이날까지는 진실한 자를 찾기 위하여 이방 세력에게 교회가 짓밟혀도 잠잠히 계셨지만 다시 나타날 때에 원수를 갚아주는 역사가 있으므로 참된 평강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은 남은 자로서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이 남은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따라가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가던 자라고 보게 된다. 

2) 이날까지는 순교자를 나게 했지만 마지막 때에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북방 세력을 쳐부수는 일을 한다고 분명히 가르쳤으니 금일에 아무리 북방이 강하지만 반드시 사자같이 강한 용사를 들어서 북방을 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당을 위한 반공이 아니요, 진리를 위한 반공이다.

어느 선지나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 종말에 북방 세력을 쳐 없이하고 새 시대를 이룬다고 했으니 금일에 북방의 반 기독적인 공산 정치가 아무리 교회를 짓밟고 나온다고 해도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났고 예언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세계를 정복했으니 예언대로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때에 예언대로 남은 자를 들어서 북방을 때릴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고 믿어진다. 

3) 말세의 역사는 원수를 없이하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극도로 강하게 하는 것은 없애버릴 심판기가 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니 과거에도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하여 인력으로서 당할 수 없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종을 들어서 원수를 물리친 것이 선지시대의 역사이다.

이것은 종말에 될 일을 묵시로 보여준 동시에 실천적인 증거를 그 시대에 보여준 것이다. 아무리 앗수르가 강했으나 히스기야의 하룻밤 기도에 북방 앗수르가 망하듯이 종말에도 이슬과 단비같이 내리는 초인간적인 큰 힘을 사자같이 받아 가지고 북방을 짓밟아버릴 것을 가르친 것이다. 참된 평강은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날 때에 그 원수를 없이하면서 평강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 미 5 : 7 - 8 ) 

 

서 론 

완전 승리의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본문에 가르쳤다. 앞으로 짐승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될려면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영계에 들어가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며 완전 승리의 왕국을 이루는 자가 될 것이다. 

 

1. 여호와께로서 내리는 역사를 계속해서 받는 자 (7) 

아무리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이슬같이 단비같이 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남은 자가 될 수가 없다. 어느 때보다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때에는 여호와께서도 강하게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지금은 분명히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본문을 보면 심판기에 북방 세력이 교회를 짓밟고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남은 자가 될 종들에게 역사를 강하게 나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람도 40년간 기도 생활에 여러 가지 체험이 있지만 금년 71년도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호소 성가를 보내시사 이 성가를 부를 때에 이슬같이 단비같이 쏟아져 내리는 역사를 점점 강하게 받고 있다. 만일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이 위기를 만난 종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역사를 받을 적에 자기도 모르게 인격이 점점 강해지는 증거를 보게 된다. 지금 내리는 역사는 은사가 아니고 권세 새힘의 역사이다. 

 

2. 사자같이 강하게 되므로 (8) 

우리가 인생을 기다린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인격을 가지지 못한 증거이다.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게 되는 것은 초인간적인 인격이 이루어질 적에 조금도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세계에서 유물적인 짐승의 사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만일 유물론 사상이 세계를 검은 연기같이 덮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받지 못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짐승의 세력 앞에 짓밟히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물론 공산당을 완전히 이길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강하게 나리는 역사를 받아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기 전에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요, 산 체험인 동시에 하나님 말씀은 목적이 심판기에 북방을 없이하고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은 조금도 폐할 수 없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방이 가하게 일어나는 것도 말씀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라면 말세의 남은 자가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북방의 세력을 없이하게 된다는 것도 분명히 응하게 될 것은 사실이다. 

 

3.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9) 

완전 승리라는 것은 인생을 기다리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슬같이 단비같이 받은 종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기독교는 이날까지 피 흘리는 박해의 종교라고 말하리만큼 억울함을 당하였지만 최후의 승리는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역사가 임함으로써 이루게 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나리는 역사를 계속적으로 받고 있는 자가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편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북방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진멸시킬 때가 온 증거이다. 과거 예언적인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원수를 강하게 들어 쓰신 후에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증거로 보여 준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역사이다. 우리가 원수와 타협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요, 원수를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니만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로서 반드시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위대한 힘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었고 성경대로 기독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미5:2-4) 성경대로 북방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성경대로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 승리를 이룰 것은 미5장을 읽어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자 

( 미 5 : 7 - 9 , 7 : 7 - 10 ) 

 

서 론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 쓰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에게 묵시로 모일 때에 북방 앗수르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북방을 치는데 있어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사자같이 강하게 해서 북방을 친다고 하셨다. 미가서를 보면 어떠한 자가 사자같이 강하게 되어 원수의 세력을 짓밟고 나간다는 것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역사를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이슬 단비 같은 역사를 받으므로(5:7)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종을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이루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하루아침에 인격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요, 정상적으로 이슬 단비같이 역사를 나리시어 날마다 소성함을 받게 하셔서 조금도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초인간적인 인격을 이루어 놓으시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단계가 없이는 사자같이 강한 인격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길러서 강하게 들어 쓰시는데 있어서는 정상적인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는 것은 마른나무 같이 되어지는 인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슬과 단비를 맞고 자라나는 푸른 새순 같이 새로워지는 역사를 날마다 이슬 단비 같이 받아야 한다. 만일 어떤 신자가 이슬 단비 같이 나리는 역사를 받는 체험이 없다든지,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아 보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사자 같이 강한 인격이라는 것은 초인간적인 역사를 받음으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2. 진노의 날에 남을 종이 될 자는 원수를 물리칠 수 있는 권세를 받아서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은혜시대의 종들은 강한 원수 앞에 풀같이 쓰러졌지만, 진노의 날에 남을 종이 될 자는 모든 원수를 진멸시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원수를 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 씌워지는 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쓰러지던 종들이 당했던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께서는 원한을 풀어주시되 사자같이 강하게 역사하도록 하심으로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3. 응답의 역사를 받으므로 (7:7-10)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리실 때에 완전한 사람에게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를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넘어져도 일으켜 주시고 어두움에도 빛이 있게 하시고 범죄한 일이 있다 하여도 깨닫도록 하셔서 원수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약해서 부족함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나려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먼저 언약의 말씀을 세웠기 때문이요 

둘째: 악한 세상에서 역사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적의 세력이 당신의 사람을 해코자 할 때에는 당신의 사람이 부족이 있다 하여도 강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머니가 위험한 자리에 나서는 어린이를 더 붙들어 주고 안아서 보호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난국을 당할 때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되 너그러이 용서하시면서 그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결 론  

사자같이 강한 인격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악한 사상을 가지고 사자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자도 있고, 선한 사상을 가지고 사자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 승리는 의의 사상으로 사자같이 강한 사람이 통치권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재앙 중에 여호와를 앙망하자 

( 미 7 : 1 - 12 ) 

 

서 론 

인류 종말의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세상에 재앙이 오는 순서는 먼저 선한 사람이 세상에서 끊쳐지고 정직한 자가 인간 중에 없으므로 도저히 정치인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며 이웃이나 친구나 집안 사람까지 믿을 수가 없는 인심 악화의 혼란기가 오는 것이다. 도저히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심 악화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오는 과정이니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다음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된다(1-6). 

 

1. 응답을 받게 된다 (7)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나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낙심하지 않고 당신을 바라보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신다. 예를 든다면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이 쓰러진 사람이 나를 일으켜 달라고 할 때에 일으켜 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없는데 도와 달라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그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무소불능의 하나님의 역사는 난국을 당하는 자에게 그 능력을 베풀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난국을 당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강하게 임할 필요가 없을 것이로되 난국을 당한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호소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역사를 나릴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극도로 악화되고 도저히 믿을 사람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2.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된다 (8) 

하나님께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킨 것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특별한 역사를 나려 넘어져도 일어나게 하시고 아무리 흑암이 덮힌 곳이라도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도저히 난국을 돌파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돌파할 수 있게 응답을 내리므로 재앙의 날에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으로 새 시대를 이룰 작정이므로 흑암의 세력을 개방시켜 택한 자를 시련 시켜 보는 것이다. 

 

3. 광명에 이르도록 인도하게 된다 (9) 

아무리 범죄를 하였다 하여도 재앙의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께서 광명한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인도하는 일이 있게 된다. 

 

4.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된다 (10)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들어서 강한 대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쓰러지고 넘어지는 자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를 강하게 들어 쓰시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게 하신다. 아무리 모세가 원수에게 죽을까 무서워서 미디안으로 도망을 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이 변치 않을 적에 그를 들어서 원수를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리고 원수가 무서워서 도망을 가는 일이 있었던 엘리야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원수를 이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앙의 날에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백전백승의 용사가 되도록 들어 쓰신다는 것이다. 

 

5.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루게 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왕국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라면 그 사람으로 원수를 이기게 하므로 원수의 나라까지라도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 앞에 굴복을 당하게 하여서 모든 사람들이 다 굴복하고 돌아오므로 세계 통일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의로운 통치라는 것은 억지로 사람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이 따라 오도록 역사하시므로 평화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게 한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 역사는 악한 세상에서 의로운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서 대적을 이기게 하므로 하나님만을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을 들어 쓰는 역사라는 것이다.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의 인격 

( 미 7 : 4 - 10 )  

 

서 론 

인류 역사를 비추어 볼 때에 극도로 정치가들이 부패되고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되었을 때는 형벌이 왔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부패한 지도자들을 없애지 않고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아끼기 위하여 부패한 지도자들을 없앴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인류 종말에 지도자들이 극도로 부패되어 하나같이 서로 뭉쳐지므로 옳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그 아래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게 될 때에 형벌의 날이 오게 되며, 이 때에 어떠한 자가 남아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제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의 인격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가까운 사람이라고 무조건 믿지 않아야 된다 (5상) 

앞으로 우리가 완전한 인격을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요, 친구라 하여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는 너무나 악한 시대가 닥쳐오기 때문이다.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이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하여도 함부로 무엇을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인격을 검열해 보고 모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친척과 친구를 바른 길로 지도를 할지언정 그들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하나님의 역사를 받은 양심으로써 친척이나 친구를 바로 이끌어 나가는 인격이 있어야만 형벌의 날에 남을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입을 지켜야 된다 (5하)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가 되려면 어떤 사람에게든지 입을 지키는 인격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상적인 싸움을 하게 되는 종말의 환난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을 지키지 못한 일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이 망할 때에 입을 지키는 사람이 되므로 자기 가족을 구원했던 것이다.

앞으로 무서운 환난은 무력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가장 간교한 악당들이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는 입을 지키지 못하면 억울한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은 큰 상급이 된다. 그러나 입을 지키지 못하고 실수하게 되므로 핍박을 받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고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없는 일에 간섭하지도 말고 항상 입을 지켜야만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가 될 수 있다. 

 

3.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된다 (6-7) 

어려운 난관이 올 때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인격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부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있다. 모세가 60만 대중을 이끌고 나갈 때에 어렵고 두려운 일들이 많이 닥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당할 때마다 모세가 용기 있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므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되었고, 사막을 통과할 때에도 만나와 생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어떠한 난관이 와도 당신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에게 응답으로 내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낙심치 않고 당신만 바라보는 자에게 무조건 응답을 내리시는 것이다. 

 

4. 실패가 있어도 용기 있게 나가야 된다 (8-10) 

사람이 실패를 당할 때에 쓰러지고 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실패를 당해서 넘어지는 일이 있고, 흑암에 빠지는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앞으로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사람이 되려면 실패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보는 자라야 한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잠자는 자는 형벌의 날에 망할 것이로되 아무리 넘어지고 실수가 있다 하여도 용기 있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자는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같이 하므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흠을 잡을만한 일이 없다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불쌍히 여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의 날이 올 때에 남을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보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 

 

결 론  

우리는 형벌의 날이 올 수밖에 없는 시기를 만났다고 본다. 무서운 재앙이 올 수밖에 없는 위기에 우리가 처해 있지만 자아의 인격 하나를 바로 세워 나갈 때에 완전 승리를 이루는 열매가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의 승리  

( 미 7 : 4 - 13 ) 

 

서 론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용기를 낼 때에 응답을 내리어 승리하게 한다는 것을 목적 두고 미가 7장에 묵시를 보여준 것이다. 

 

1.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의 환경 (4-6) 

사람이라는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환경을 초월해서 나가는 것을 용사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환경을 따라서 흔들리고 있다면 이 사람은 흔들리는 시간에 영적으로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는 것이니 도저히 승리를 이룰 신앙을 이루지 못한 자라고 보게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감히 지배할 수 없는 것을 가르쳐서 산 믿음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믿음이 강한 자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극도로 부패한 사회를 이루어 놓고 악화된 환경을 당하게 한 다음에 그 환경 속에서도 당신의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엘리야 때에도 엘리야 한 사람만 내놓고 다 바알 신 앞에 정복을 당했고 그 밖의 사람들은 숨어 있는 상태에서 떨고 있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많이 있었지만 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원망할 때에 모세가 용기 있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에 대승리를 이루는 역사는 홀연히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한 환경은 미7:1-6절의 환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환경을 당한 우리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큰 힘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가 선지를 위하여 기록된 묵시가 아니고 말세에 남은 종이 될 변화 성도에 대하여 보여준 묵시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믿을 사람이 없게 될 때에 하나님 당신만을 바라보고 나가라는 것인 줄 알고 용기 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2. 부족한 자라도 승리하도록 역사하신다 (7-10) 

우리의 승리라는 것은 우리가 완전함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응답하는 목적은 약해도 넘어져도 일으켜주는 응답이요, 아무리 흑암이 와도 빛을 비춰주는 동시에 실수가 있어도 깨닫도록 책망을 하면서 인도해 주시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응답이니, 하나님은 완전치 못한 인간의 본질을 아시기 때문에 응답을 나리시되 미리 아시고 본문에 묵시로 보여준 말씀이니 베드로가 아무리 장담을 해도 실수할 것을 먼저 아시고 또 그를 향하여 위로의 말을 하셨던 것이다.

오늘 본문도 말세의 환난 날에 약한 우리들에게 위로의 말로 미리 말씀한 것이니 우리들은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 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에 나갈 군대가 엎어지고 쓰러진 부상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속히 고쳐줄 책임이 상부의 책임인 것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내세워서 싸울 때에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있다하여도 필연코 승리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어떤 사람이 넘어질 때에 낙심을 하고 만다는 것도 이 진리를 믿지 않는 죄요, 캄캄한 흑암이 올 때에 겁을 내고 나서지 못한다는 것도 이 진리를 믿지 않는 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를 담대히 믿고 나갈 때에 하나님은 책임지고 역사해서 승리하도록 할 것이다. 

 

3. 세계적인 대 승리를 보게 된다 (11-13)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때에 속화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그 신앙을 의로 보시는 하나님께서 세계 통일의 새 시대를 그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종에게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뜨려 놓는 것은 새 시대에 들어갈 인격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무서운 환난이 올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낙심한다는 것도 죄가 될 것이고 또는 자기는 자신이 없다고 숨어서 자기 개인의 안락을 찾아보려는 것도 큰 죄가 된다.

그러므로 넘어져도 뛰는 자가 있고 어두움이 와도 뚫고 나가는 자가 되고 실수가 있다해도 즉시 고쳐 바로 서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 시대를 완전히 이루는 역사를 하시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감당 못할 환경을 이루어 놓는 것이니 우리는 언제나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이 올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때가 온 것을 알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면 누구든지 다 새 시대를 승리의 왕권으로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시대로 인도하는데는 여러 가지 모략이 있으니 가정으로 오는 시험, 이웃으로 오는 시험, 정치인을 통하여 오는 시험, 가장 가까운 친구를 통하여 오는 시험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이 많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도록 해서 새 시대를 이루겠다고 말씀한 것이니 우리는 조금도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될 것이다. 

 

 

인간 세력이 부끄러워할 종말의 역사 

( 미 7 : 7 - 17 ) 

 

서 론  

하나님은 인간의 세력이 현재 아무리 팽창하게 올라가도 하늘에서 웃으시면서 인간 세력을 부끄럽게 할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은 숨어 계셔서 각 사람의 마음을 검토하고 중심을 살피시면서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하는 일에 쓰여질 인격을 달아보는 심판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인간 세력을 부끄럽게 할 역사에 쓰여질 종은 고립적인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본장 1~3절까지 말했다.

지금 크게 쓰여질 종은 어느 사람에게 가서 영적으로 무엇을 얻어 가질 만한 것이 없으리만큼 부패해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도자들이 정직한 자가 없고 사랑이 없고 서로 잡아주며 악을 행하되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고 대인이라는 지도자도 그들끼리 연락하여 자기 사욕을 채우고 있다. 외모로는 선하고 정직한 자 같으나 찔레 울타리 같이 사람을 찌른다는 것이다.

이웃도 친구도 심지어 품에 누운 여인이라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정이다(4~6). 이러한 가운데 여호와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간 세력이 부끄러워할 만한 역사를 일으키도록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강권 역사를 행하겠다는 것이 본문이다. 이제 이러한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할 것이냐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엎드러져도 일으켜준다 (8상반절) 

말세에는 도저히 사람이 없으니 그 가운데 나은 사람이 여호와를 바라보는 사람을 말한 것이니 엎드러져도 일으켜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으키려는 사람을 엎드려뜨리려는 무리는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2. 어두움에 앉아도 빛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8하반절) 

아무리 흑암의 세력이 운무같이 택한 종을 싸고 있더라도 하나님이 직접 빛이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3. 범죄가 있다하여도 용서해서 쓰겠다는 것이다 (9~10) 

하나님을 바라보고 옳게 살아 보려고 싸우던 종이 약해서 혹은 속아서 혹은 모략적인 억압에 눌려서 실수가 있다해도 그를 인도하여 광명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하는 것을 강권 역사라 하는 것이다. 즉 대적을 진흙같이 밟고 나가는 역사이다. 
 

4. 모든 사람이 굴복하고 돌아오게 한다 (11~12) 

아무리 실수가 많고 부족하리만큼 되었더라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다 사람들이 그 종 앞에 굴복하도록 하나님은 역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화된 사회 부패한 교계에서도 자기 사명을 감당해 보려고 노력하는 종이니만큼 강권 역사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5. 모세같이 들어 쓴다 (15~17)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서 애굽의 세력을 부끄럽게 함 같이 말세의 종을 들어서 열방 세력이 부끄러워서 자기 입을 막고 귀가 막히고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도록 역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양떼를 회개시켜서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가 된다. 
 

결 론 

은혜 시대에는 모든 종들이 인간 세력에게 순교를 당하고 축출을 당하고 비방 받고 압박 받은 데서 세계적인 복음 선교가 되었지만 종말의 역사는 원수를 갚는 역사니 인간의 모든 세력이 그날에 부끄러워서 떨다가 망하고 만다는 것을 본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독교 종말에 나타나야 할 기사 

( 미 7 : 14 - 20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마귀에게 미혹을 받고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고자 할 때에 과거에 언약을 세우는 시대에는 아무런 기사가 없이 세운 것이 아니고 성경이 언약의 말씀으로 세상에 나타날 때에 앞으로 기독교 종말에 크게 나타날 일을 믿게 하기 위하여 나타났다고 본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이 시작될 때에 나타난 출애굽기의 역사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룰 때에 행하실 일을 보여준 것이라고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를 통하여 묵시를 보여줄 적에 1장-3장까지는 진노의 날에 망할 자의 형편을 보여주었고, 4장-7장까지는 진노의 날에 남을 자의 형편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쫓겨나듯이 심판기에도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룬다고 하였고(미4:6-7) 또는 7장에는 의지할 곳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던 자가 넘어져도 일어나고 아무리 흑암 세력이 와도 빛을 발하게 되고 아무리 죄를 범한 일이 있다하여도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종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들어 쓸 것을 말했다(7-10).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라면 무조건 들어 쓴다는 것이다. 모세가 아무리 부족하지만 그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기사를 나타내 보인 것은 말세에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타날 예언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종말에 나타날 기사는 다음과 같다. 

 

1. 주의 기업이 된 백성을 위하여(14) 

주께서 가장 기뻐하는 백성은 아무리 악화된 세상에서라도 물들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되 징계를 받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라고 본다(미6:9). 아무리 천천마리의 양을 드리고 하수같이 많은 기름을 하나님께 바쳤다 하더라도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오히려 가증히 여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은 선한 목자요, 참된 백성을 양이라고 한 것은 순종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기업이 된다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백성이 없다면 아무런 역사도 할 수가 없을 것이로되 비록 약하고 작은 무리라도 순종하는 자라면 그들을 통하여 큰 기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의 기업이 되는 백성을 인간이 볼 때는 약하게 하고 어리석게 보이게 하시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사상과 양심을 가진 자라면 중심보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2. 원수 세력이 부끄러워 떨게 하심 (15-17) 

하나님께서는 먼저는 악의 세력이 강하게 되어 당신의 백성을 압박하고 훼방하게 하다가 압박과 훼방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백성으로 하여금 수풀 속의 사자같이 강하게 들어 원수 세력을 부끄럽게 하고 떨게 하므로 원수 세력 아래 있던 백성들도 다 굴복을 시키는 동시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게도 하고 또는 돌아오지 않는 무리를 다 없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과 종들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3. 아브라함에게 맹세한대로 축복을 주심 (18-2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서 맹세를 세울 때에 내가 너로 대적의 문을 얻게 하리라고 말씀을 했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고 창22:17-18에 말한 것과 같이 응해지는 지상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데는 영혼 구원으로써 구원 완성이 아니요, 완전히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로써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날 때에 죽은 자는 부활하고 남은 자는 변화 받아 주님을 맞이하므로 대 구원의 사업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십자가로 세계 민족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역사가 있고(갈3:27-29) 또는 아브라함 자손 된 자들이 살아서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기독교 종말에 나타날 기사로 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모든 족속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과 또는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하는 일로 구원은 완성되는 것이다(계5:9-10). 

 

결 론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부활 승천하셔서 역사하는 일은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하여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으로 기독교 신앙의 대상을 완전히 이루었고 둘째는 성신을 받은 종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일이고 셋째는 큰 기사가 나타나서 원수의 세력을 복종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마지막 환난에서 택한 자를 구원하여 새 시대를 이루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