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설교

   

 

     목  차

하나님을 경외하는 입술 (말 2:5-9)

연단과 의로운 제사 (말 3:1-12)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자 (말 3:16-18) 

진노의 날에 아끼는 백성(말 3:16-4: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입술 

( 말 2 : 5 - 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입술을 가진 자를 대행자로 쓰고자 하시는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는 말을 주지 않았지만 사람의 입술에 말씀을 준 것은 그 말대로 갚아 주시기 위한 목적이다(마12:36-37).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어떠한 입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진리의 법이 있어야 됨 (5-6상)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통일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책에 기록하도록 하시고 그 밖의 사람은 입술에 그 법을 따라서 증거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 입술에 진리의 법을 떠나서 말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강단에 응답의 역사를 나리시지 않는 것이다.

강단에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리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라는 것은 강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 바로 가르쳐서 모든 사람이 그 법대로 믿고 순종하며 그 법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복을 받게 하는 곳이니 언제나 강단에 선 종은 그 입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을 책에 기록하게 하시고 그 법을 따라서 인생에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장 복 있는 자는 입술에 진리의 법이 있는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사는 것도 여기에 있고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진리를 증거할 때에 처음부터 그 법을 따라서 입을 열고자하여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입술을 당신의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증거하는 자가 그 법을 한 번, 두 번 어기기 시작할 때에는 그 입은 사단의 도구가 된다.

하와가 간교한 뱀을 상대하여 말할 때에 하나님의 법을 떠나 가감하므로 간교한 뱀은 하와에게 침투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마귀와 싸울 때에 입술에 진리의 법을 가지고 마귀를 물리치셨다. 언제나 공중 세력을 가진 마귀는 입술에 진리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를 침투하려고 노리고 있는 것이다. 

 

2. 불의함이 없어야 됨 (6하) 

입술에 불의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듣는 자에게 피해를 주는 말이다.

우리말이라는 것은 한 번 말하면 그것이 전파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들어갈 적에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유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보다도 듣는 자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듣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말은 불의가 된다. 

둘째 : 듣는 자에게 필요가 없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물건을 파는 사람이 상대편에게 필요가 없는 것을 만들어 강제로 판다면 이것이 국가에 손해가 되는 일이므로 국가에서도 막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필요없는 말을 남에게 한다는 것은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며 인격을 잃는 일이며 자동적으로 방랑심이 들어가는 일이다. 방랑이라는 것은 필요없는 말을 할 때에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이 필요없는 말을 하면서 웃고 떠든다는 것은 한 오락이 되는 것이니 오락이라는 것은 사람을 방랑에 들어가게 하는 문이 되는 것이다. 

셋째 : 듣는 자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유혹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에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했다면 불의가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 위하여 하는 말이니 그 말하는 자체가 불의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종이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심리학적으로 말을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거짓 선지일 것이다. 

 

3. 지식을 지켜야 됨 (7-8) 

사람이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인격 부족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입술에 지식의 말이 있어야 한다. 지식의 말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도 듣는 사람에게 깨달아지도록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깨닫도록 말을 하고 아무리 오해를 가진 자라도 오해가 풀어지도록 말을 하고 아무리 괴로워하던 마음이라도 만족해지도록 말을 하는 것이 입술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식도 있고 하나님의 지식도 있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인간의 지식에 국한된 범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진리를 말할 적에 완전한 지식을 말하지 못하고 혼선이 있게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이니 모든 사람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따라가게 되는데 분명히 지식을 지켜 말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은 입술의 지식을 지켜야만 된다. 입술에 지식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두 가지의 구분을 지켜야 한다. 

첫째 : 그 사람의 수준을 따라서 말해야 되며, 

둘째 : 그 사람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분명히 말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결 론  

입술이라는 것은 인생에게 준 사명이니 그 입술 하나를 바로 움직이므로 향상될 수 있고 입술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므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 입술에 진리의 법이 있어야 하는데 있어서는 불의가 없고 지식을 지켜야 되는 것이다. 

 

 

연단과 의로운 제사 

( 말 3 : 1 - 12 ) 

 

서 론  

축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그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마귀를 들어서 연단을 시켜보고 연단 중에서라도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영원한 축복을 주신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제사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연단 중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렸으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연단과 의로운 제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진노의 날에 설 자를 연단 시키심 (1-2)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이 임박할 때 그날에 복 받을 자에게는 금을 불에 연단 시키듯이 더러운 옷을 잿물에 빨 듯이 미리 연단 시켜 재림의 주를 영접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놓는 것을 목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재림의 주를 영접할 자는 남보다도 더 연단을 받게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여러 가지 시험으로 연단 시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인격을 이루어 놓고자 하시는 것이니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거기서 더 성결하게 된다면 이것은 진노의 날에 복 받을 증거라고 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련이 올 때에 범죄를 한다면 그 인격은 가장 불행스러운 일이지만 시련이 올 때에 더 거룩한 인격을 얻게 된다면 이것은 축복 중에서 큰 축복을 받을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때에 무엇보다도 시련 중에 거룩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 하나를 목적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2.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를 남게 하심 (3-6) 

제사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회개하는 제사

둘째 : 감사하는 제사

셋째 : 의로운 제사가 있다. 

아무리 회개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있다하여도 시련이 올 때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원망하든지 낙심하든지 한다면 그 사람은 진노의 날에 남을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생을 받고 한때는 기쁨으로 감사를 드렸지만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약해지고 넘어지고 용기 있게 나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러므로 영혼이 구원받는 신앙 정도와 진노의 날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신앙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에 술수 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서하는 자와 품꾼의 삯을 억울케 하는 자와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와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는 다 망할 것이로되 오직 야곱의 자손만이 남으리라고 한 것은 야곱이 시련 가운데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것과 같이 끝까지 참고 나가서 승리한 자라야 남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3. 완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를 복을 주심 (7-12) 

십일조라는 것은 이미도 있던 일이지만 특히 본문을 보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땅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되는 법이다. 십일조에 대하여 완전히 축복을 받는 제사가 되게 하려면 먼저 성결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다음에는 아무런 시련이 와도 의로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인내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십일조를 바치되 하나님의 집에 바쳐야 할 것이며 현물에서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의 현물을 받아도 먼저 그 중심을 보시는 것이다. 중심에 성결이 없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교회에 바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현물에서 바치되 현 수입에 따라서 바치지 아니하면 기뻐하지 않으신다. 현물이라는 것은 농업에는 그 해 열매가 현물이요 상업에는 이익을 얻은 것이 현물이요 직장 생활에는 봉급이 현물이요 노동자에게는 품값이 현물이 된다.

누구든지 이 세 가지가 완비된 십일조를 드린다면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이 본문에 황충을 금하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포도나무의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를 복되다 하리라 한 것은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서에 가르친 말씀은 4장과 같이 온 세계가 불탈 때에 남은 자가 될 사람에게 대하여 가르친 교훈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에게 연단을 시키시는 동시에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영원한 축복을 택한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이것을 분명히 알고 성결한 사람이 되어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오더라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제사를 드리게 될 때에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자  

( 말 3 : 16 - 18 ) 

 

서 론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특별한 소유가 된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된다고 가르친 것이 말3장과 4장의 말씀이다. 예를 든다면 타작 마당에서 짚이나 쭉정이도 다 농부의 소유이지만 알곡만이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다음과 같은 자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시련 중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 (2-4) 

하나님은 진노의 날에 특별한 소유를 삼으려고 할 때에 은과 금을 풀무 불에다 연단 시키듯이 당신의 백성을 연단을 주어서 그 시련 속에서도 의로운 제사를 드릴 적에 그 제사를 기꺼이 받으시고 그들로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우리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므로 구원해 주는 일이요 성도의 의라는 것은 아무런 시련이 와도 원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일이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이다 (7-12) 

십일조라는 것은 특별한 소유가 되는 백성이 지상의 축복을 받게 하는 한 계명이 되는 것이다. 영혼이 천당을 가는 일에는 지상 축복이 필요가 없지만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지상 왕국의 새 땅 축복을 받는 일에는 다음과 같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집에 바쳐야 한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특별한 소유가 되는 자들이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교회를 가르쳤다. 만일 의로운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단의 회가 되는 교회에 바치면 안될 것이다. 

2) 농민은 토지에서 나는 현물에서 드려야 하고 상인은 상품에서 그 날에 본전에서 남는 돈을 드려야 하고 노동자는 월급에서 드려야 할 것이다. 

3) 십일조를 드리되 새 시대의 축복을 받는 진리를 굳게 믿는 신앙에서 드려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지상에서 차고 넘치는 새 땅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이다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택한 것은 영광을 받고자하여 택한 것이니 언제나 말이나 행동에나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더럽힐까봐 조심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될까봐 조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의 입술에 열매를 주고, 머리에 완전한 영감을 주므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 신자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고 함부로 행동에 주의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기에 어려운 자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천하에 가장 복 있는 자는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자로서 온 세계가 풀무불 같이 타지는 날에 남은 자가 되어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듯이 악인이 타져버린 재를 밟고 하나님의 성호를 찬송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4:1-3). 우리는 시련 중에 의로운 제사를 드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항상 조심하는 생활이 있는 자는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진노의 날에 아끼는 백성 

( 말 3 : 16 - 4 : 3 ) 

 

서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이 올 때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은 특히 더 아껴주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무서운 시험이 올 때 부모가 자녀를 더 보호하고 아끼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노아 홍수 때에도 진노의 날에 그 가정을 더 아꼈고 소돔 고모라 성이 불탈 때에도 롯의 가정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제 어떠한 자가 아끼는 백성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시련 중에도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 (3:3)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는 시련을 시키면서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시련을 시키면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기분이 좋으면 연보도 하고 기도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그만 둔다면 아끼는 백성 될 자격이 없다. 예를 든다면 친구에게도 기분 좋으면 가까이 하고 기분이 나쁘면 박차버린다면 그 친구는 사귀는 것이 불리할 것이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아낄 사람을 아무나 그대로 두고 아낄 수 없다는 것이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 (3:8-12) 

십일조라는 것은 축복 받은 백성의 해야할 의무적인 한 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할 문제가 아니고 첫째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것. 둘째로는 하나님의 집에 드릴 것. 셋째는 순수한 수입에서 드릴 것. 이것을 온전한 십일조라 하는 것이다. 만일 마지못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있고 어떤 교회의 체면으로 드린다든지 또는 이단적인 사단의 회가 되는데 드린다든지 또는 십일조를 순수한 소득이 아니고 자기의 어떤 이익을 부쳐놓고 드린다는 것은 온전한 십일조가 못된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이다(16) 

이것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되 이름을 더럽힐까봐 조심하고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존중이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말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 한다(시34:11-13).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훼방하고 모략한다면 이 사람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존중히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라 할 것이다(마6:14, 마5:24). 

 

결 론  

심판의 목적은 아낄 자는 아끼고 없앨 자는 없애는 것이 심판인 것이다(4:1-3).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불탈 때 초개같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뛴다는 것이다. 모든 악인은 불에 살라져 재가 되고 의인은 땅에서 새나라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