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 1장-39장 )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사 40:9-10)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받는 새힘 (사 40:12-31)
선과 악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사 40:29-31, 계 8:13)
기독교 종말의 변론 (사 41:1-7)
땅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 (사 41:8-13)
여호와만 자랑할 일 (사 41:8-20, 46:16)
여호와의 응답과 새시대 (사 41:14-20)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송할 일 (사 42:5-17)
새일을 고하고 행하시는 하나님 (사 42:9, 43:19-21)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기쁨 (사 43:1-7, 65:17-23)
여호와 새일을 행하려 나타날 일 (사 43:19-21)
이스라엘 왕인 여호와의 역사 (사 44:1-8)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성 (사 45:18-25)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 (사 45:21-22)
하나님의 선택과 영광 (사 48:9-11)
유익하도록 가르친 하나님의 교훈 (사 48:12-22)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사 49:1-7, 요절 3절)
여호와의 응답과 새 땅 축복 (사 49:7-13)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의 영광 (사 49:14-23)
주님이 잊을 수 없는 종의 역사 (사 49:14-15)
여호와께 학자의 혀를 받은 종 (사 50:4-11)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사 51:1-3)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 생활 (사 54:9-10)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사 56:7-8, 66:5-6, 습 3:19-20, 미 4:6-8)
축복 받는 비결 (사 58:9-12)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인격 (사 58:10-12)
안식일과 즐거움 (사 58:13-14)
기독교 흑암과 강권 역사 (사 59:9-18)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사 59:14-21)
해 돋는 편에 두려워 할 영광 (사 59:18-21, 60:1-3)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 (사 60:4-14)
인간 최고의 영화 (사 60:4-14)
성산 축복을 목적하고 나갈 신앙 노선 (사 65:1-25)
종 된 자의 받을 축복과 재앙 (사 65:8-16)
참된 기도와 맹세 (사 65:13-16)
성산에서 복 받는 가정 (사 65:21-25)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 (사 66:1-4)
말씀에 떠는 자의 시련과 축복 (사 66:5-14)
소위와 사상을 아시는 하나님의 역사 (사 66:18-24)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할 일
( 사 40 : 9 - 10 )
서 론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에 들어가는 비밀의 진리를 말한다.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전한 비밀은 누구든지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므로 죄를 사한다는 비밀이다.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예수 한 분이 죽으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가 사하여지고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민권을 받는다는 비밀도 인간의 지혜로서는 알 자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사40:1-5까지의 예언이 자기에게 응하였다고 하면서 외치는 증거를 오히려 유대인들은 반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사렛 목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거하기 때문이었다(요1:19-34). 이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시온이 되고 예루살렘이 된 교회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때는 어느 때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1. 강한 자로 임하실 때다 (9-10)
하나님께서 어린 양 예수의 보혈을 통하여 죄인을 부를 때는 잠잠히 계셨고 모든 종들을 들어 쓸 때 아무리 핍박이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일이 있다고 해도 때가 올 때까지 잠잠히 계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아들을 보내서 죽기까지 순종케 한 하나님의 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때이니 만큼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를 보시고 모든 죄인을 부르시는 역사이므로 아들을 보내서 털 깎는 자 앞의 소리 없는 양 같이 아무런 입을 열지 않고 죄인들에게 악행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무리를 위하여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로 죄인을 용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둘째 :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해방 운동이니 이 해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이 죽기까지 순종했으므로 이루어지는 해방이다. 이 해방은 단체적인 해방이 아니고 개인 개인의 영혼이 해방을 받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방 세력이 억압을 하고 압박을 해도 그 사람의 영혼을 죄에서 해방을 주면 아버지의 뜻은 다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영적 해방이 아니고 시온의 자녀를 압박하고 죽이고 쫓아내던 그 세력을 모두 지상에서 없애 버리는 역사를 하러 오시는 주님은 강한 자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어째서 아름다운 소식이 되느냐면 시온을 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한 운동이므로 악한 세상이 악한 자의 정권 아래에서 아름답지 못한 더럽고도 누추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강한 자로 오시는 주님은 아름답지 못한 정치나 종교나 또는 어떠한 단체든지 침략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해코자 하는 마음에서 자기의 복리를 도모하는 자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한 아름다운 시대를 목적하지 않고 현실주의로 흐르는 사람들을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으로만이 아름다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정확히 가르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란 것이다.
2. 친히 그 팔로 다스리는 일이다 (10중)
이날까지는 이 세상을 악한 자에게 맡겨서 다스리게 했으므로 의인이 악인에게 억압을 당하고 진리가 비진리에게 피해를 당하고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에게 축출을 받고 거짓된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을 모함해서 죽이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정직한 자가 거짓된 자를 거룩한 단체가 속화된 단체를 진리의 역사가 이단적인 세력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시온이라도 하나님과 의합된 시온만이 남아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은 각 사람의 인격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목적하고 잠잠히 역사하지만 친히 팔로 다스릴 때는 잠잠히 개인에게 역사해서 아름답게 할 때에 아름다워진 자라야 아름다운 시대의 왕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종이라도 아름다워진 자라야 남은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아름다워진 자가 새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3. 상급과 보응이 있음 (10하)
이날까지의 거룩하고 지혜롭고 정직하고 사랑의 심정을 가진 자들이 억울하게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상급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아무리 악한 자라도 권세를 그냥 주어서 역사하게 한 것은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왜냐하면 악한 자가 강하게 일어나도 정직하게 나가고 담대히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자가 왕권을 받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자기네가 영원히 주권을 쥐고 지상을 지배할 것 같았으나 보응의 날에는 악하고 강한 세력은 모두 없이하고 아무리 미약해도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을 겸손히 받는 자만 말씀에 의하여 보호하고 그 밖의 세력은 다 없애는 것을 하나님의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4. 택한자를 안아 주고 인도하는 일 (11)
지금은 하나님께서 택한자를 악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고 멸시를 받기를 애굽이 이스라엘을 압박할 때에 잠잠히 있듯이 때가 찰 때까지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안아 주고 인도해 주는 일이 없는 것 같이 쓴잔을 맛보게 하고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큰 역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과연 안아 주고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목적이다.
이날까지의 인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죄를 범하는 사람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인도이지만 여기에 인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재앙을 받고 환난 중에 쓰러져 죽는 날이라도 당신의 시온은 안아주고 인도하는 것은 환란과 재앙을 받지 않고 아름답게 보호하고, 아름답게 인도해서 아름다운 소식의 요지를 간단히 말한 것이요, 40:30 이하와 이사야 전체는 아름다운 소식을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이니 동방 역사가 41장 같이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결 론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올라간다는 것은 성산을 가르친 것이니 이 성산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의 말씀이 임한 산을 말한다. 사25:6에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푼다고 하였고, 7절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어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라고 하였고, 10절에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난다고 했으니 말세에 맑은 포도주와 같은 아름다운 소식이 나타난 산이라고 보게 된다.
앞으로 기독교는 개포도주를 먹고 취하는 자가 사28:7과 같이 있고 맑은 포도주를 먹고 심령 소성을 받은 자가 사55:1-3같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가 높은 산에 오른다는 것은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함으로서 완전히 이 소식을 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40:3에 광야라고 말씀한 그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다면 기독교 종말에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한 것도 실지에 높은 산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한 이 뢰자 목사는 새일 수도원이 자리잡은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굴속에 자리잡고 기도하다가 새힘을 받고, 입에 말씀을 받아서 얼마든지 각종 서적이 그 입에서 말하는 대로 받아쓰면 성경을 보지 않고도 환하여지는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서 새일 수도원의 학과인 성경해석법, 요한일서 강의, 선지서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새일성가집, 또는 말씀의 칼과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달마다 70페이지를 발간하였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받는 새힘
( 사 40 : 12 -31 )
서 론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조물주 여호와를 바라보고 새힘을 받는데 있다는 것을 본문에 말씀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요,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당신이 쓸 만한 사람이 되도록 새힘을 주는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위대성을 알아야 한다 (12-26)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에게 표준 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뚝배기가 토기장이를 자기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 우리 사람으로서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려면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바로 알아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가 완전한 장부가 되기 전에 자기를 기르는 부모나 가르치는 선생의 그 인격을 바로 알 수 없고 또는 기술자가 기계를 제작한 사람의 그 기술을 알려면 그 기계의 내용을 아는 자라야 아는 것 같이 사람으로서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아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광대한 섭리를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받은 자밖에는 조물주의 위대성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식은 조물주 하나님의 위대성을 아는 데서부터라야 바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두뇌로서 하나님을 알아보려는 것은 작은 조갑지로 바닷물을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요, 작은저울로 산을 달아보려는 사람과 일반이요, 자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려는 사람과 일반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사40:12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위대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나 말로써 감히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신이시며, 무소불능의 신이시며, 진실 무위하시고 영원 존재하신 완전 무결의 신이라는 것을 신앙함으로만이 그의 완전성을 신앙할 수 있는 증거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입장 (27)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입장은 하나님만이 알고 사람은 모르는 사정을 당할 때, 하나님만이 책임지고 해결해 주어야 할 원통한 일을 당할 때 여기에서 자기가 방법을 취하여 보려고 하지도 말고 나의 사정을 나보다 더 아시는 하나님이여, 내가 사람에게 원통한 일을 당하였으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해 줄 것을 믿는 신앙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종에게 이런 일을 당하도록 모략적인 방법으로 까불어 보는 것은 당신의 사람으로 더 완전한 영계로 올려놓기 위한 방법이다. 어느 종이든지 딱한 사정과 원통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 줄만큼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완전한 형체가 사람에게 새힘으로 온다 (28-29)
하나님은 뼈와 살이 있는 실체를 가진 것보다도 영이신 동시에 얼마든지 사람을 완전케 할 힘을 가진 것이니 우리는 그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보다도 또는 만진다는 것보다도 그 신의 완전한 새힘이 오는 것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무능한 지렁이 같은 몸이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새힘이 옴으로만이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몸으로서 남은 종이 될 수 있다.
이 새힘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변화성도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될 자에게는 여러 가지 시련을 주어서 시련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새힘을 받음으로만이 완전한 역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4.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일 (30-3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을 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가 중생을 받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했고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영계가 발전해서 올라가는 것을 목적했고 새힘을 받는다는 것은 그 몸이 완전해지는 것을 뜻한 것이다.
중생도, 은사도, 새힘도, 받은 자밖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자가 없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 작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적 활동 아래에서 영적으로 중생을 받고, 영적으로 은사를 받고, 영적으로 오는 영체를 받음으로만이 종말에 변화성도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새힘을 주는 이유는 진노의 날에 역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이니 은혜 시대의 종으로서는 모든 육체가 풀같이 쓰러지는 때이므로 새힘이라는 것을 무엇인지 체험할 수 없으나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는 대표적인 사람이 먼저 새힘을 받음으로써 심판의 다림줄의 변론을 바로 증거하게 되고, 바로 증거하게 됨으로만이 일반이 다 같이 새힘을 받고 남은 종이 될 것을 사41장에 가르친 것이다.
선과 악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 사 40 : 29 - 31, 계 8 : 13 )
서 론
모든 선지는 인간 종말에 가서 선과 악이 대립되는데 있어서는 선한 자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얻고 악한 자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얻게 되어 최후의 결전을 이루므로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말했다. 선과 악이 독수리같이 올라갈 일은 다음과 같다.
1.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계 8:13)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볼 때에 먼저는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을 보았다. 계8장은 악의 세력이 극도로 올라가는 순서를 보여 주었다. 첫째나팔은 혁명적인 투쟁을 하는 악의 세력을 피섞인 우박과 불로 보여 주었고, 둘째나팔은 악의 세력이 세계를 멸망케 할 징조를 보여 주었고, 셋째나팔은 교회를 망칠 거짓 선지의 행동을 보여 주었고, 넷째나팔은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독수리 같이 올라가게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오바댜 선지가 묵시를 볼 때에도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 별사이에 깃들일 때는 의의 세력이 불이 되고 악의 세력은 초개 같이 탄다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세상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신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우는 자를 옳다고 인정하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선한 자에게 상급을 주신다면 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씨름을 시켜 이기는 자에게 상을 주고자 할 때에 동등하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면 상 받을 사람을 골라 세울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악의 세력을 강하게 들어 쓰는 것은 선한 자로 이기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아무리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가도 악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자에게 악을 이기도록 역사하시는 동시에 선한 자를 세상이 알도록 높이 들어서 쓰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2. 의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갈 일 (사 40:29-3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랑하는 자를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힘을 줄 때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동시에 완전 승리를 이루도록 하시어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도록 하시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사40장에 말씀하신 것은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첫 번에는 예언적으로 역사하시고 다음에는 완전한 열매가 되도록 역사하신다.
구약 말기에 아무리 북방 바벨론이 강하게 일어나서 예루살렘을 황폐케 하였지만 동방 고레스를 들어서 바벨론을 치는 동시에 예루살렘을 복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동방에서 일어나는 의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일어나게 되므로 북방을 이기고, 새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예언적인 역사이다(사46:10-11).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의 신이시니, 에덴동산을 동방에 창설하고 간교한 뱀을 들어 꾀어 볼 때에 동방 사람으로서 뱀을 이기지 못하여 저주받게 된 이 땅을 동방 사람으로 하여금 이기게 하여 새 땅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붉은 용의 세력이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게 된 것은 그 세력을 없이할 자를 동방에서 일으키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볼 때에 가장 불행스러운 사람이 동방 사람 같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동방에서 나타날 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북방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갔으므로 그 세력이 승리할 것 같이 보이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동방 사람이 승리하여 동방에서 하나님을 자랑하며 영화롭게 할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기독교가 아무리 서방에 자리잡고 세계를 움직이는 일이 있지만, 종말의 강한 역사는 동방 사람에게 임하여 세계를 정복하게 되므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결 론
악의 본부는 북방에 자리잡고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 종말이다. 그리고 선한 자의 세력은 동방 땅끝을 자리잡고 일어나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악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일어날 때는 의의 세력도 독수리 같이 올라가게 되는 역사가 있으므로 의의 세력이 승리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라면 지금 악의 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의의 세력이 독수리 같이 올라가는 역사가 동방에서 일어날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는 바이다.
기독교 종말의 변론
( 사 41 : 1 - 7 )
서 론
하나님께서 완전한 변론이 없이 완전한 역사를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니 완전 변론이 어디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날까지 기독교 역사라는 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을 증거하는 데는 온 세계 인류가 다 육체는 풀같이 쓰러지지만 그 영을 구원해 준다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벧전1:5-9). 모든 사도들은 말세에 나타난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증거한 것이 기독교 중생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면 다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눅24:44-49).
그러므로 선지서의 변론은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이요, 야곱이요, 시온이지만 어떠한 자가 되어야 재앙의 날에 남은자가 되어서 지상에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목적 두고 가르친 것이다. 어느 선지나 동일하게 영혼 구원을 목적 두고 묵시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요, 진노의 재앙이 오는 날에 남은 종, 남은 백성이 지상에 평화 왕국이 올 때에 축복 받을 것을 목적하고 말씀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세계 통일의 나라가 올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리를 이날까지 전한 것은 온 세계 인류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이기 때문이다(계5:9). 이제 기독교 종말의 변론에 대해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세계적인 변론 (1)
하나님께서 이날까지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하도록 하는 동시에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와서 세계를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세계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만일 기독교가 세계에 확장되지 않았다면 섬들아 내 앞에 잠잠 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며, 만일 과학이 발전되어서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면 기독교 종말의 변론자가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와서 세계 인류적인 큰 변론의 역사는 반드시 있어야 될 때가 왔다고 본다. 어느 선지나 묵시를 볼 때에 세계적인 인류가 다 들으라고 하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사1:2, 34:1, 미1:2, 욜2:1, 옵1:1, 합2:2, 습1:2-3, 슥12:3-4을 보면 전부가 세계적인 변론을 목적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인류적인 심판과 세계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목적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변론 앞에서는 세계 사람이 다 그 변론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40장은 세례요한의 증거와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종말의 사명자를 구분하여 말씀하셨고 41장은 기독교 종말에 변론의 역사가 나오므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말씀이다.
2. 동방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일으킨다 (2)
세계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하기 위하여 유대 광야에서부터 외치고, 세계 인류를 다 통일시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일으키되 세계 통치권을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일어나는 심판 변론의 역사로써 세계를 심판하고 구원하기 때문에 인간 죄악의 정권이 다 그 앞에서 굴복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세계 열왕을 다 기다리고 참으시면서 용납했지만, 심판의 변론이 동방에서 나올 때부터는 세상의 죄악의 정권을 다 없애 버리는 때이므로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 앞에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사24:14이나 다 동일한 뜻이라고 보게 된다. 이 동방이라는 것은, 서아시아를 뜻한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서아시아에서 동방이라고 가르치되 사59:19에는 해 돋는 편이라고 했고 41:25에는 해 돋는 곳이라고 했고 단11:44에는 동북이라고 했고, 사24:16에는 땅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사41:8에는 땅끝에서부터 종을 붙든다고 했고 42:10에는 땅끝에서부터 노래한다고 했고 43:6에는 내 딸들을 땅끝에서부터 오게 하라고 했고 사60장에는 열방의 재물이 동방으로 들어올 것을 가르쳤다.
이것을 보면 동방 땅끝이 즉 대한 민국으로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극동 아시아에 교회가 남아서 발전하는 것은 남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힘 받은 종의 입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월간지로 완전한 변론이 나오게 되는 것은 작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지금 이 일이 작은 일 같으나 앞으로 세계 열방을 깨우칠 진리 운동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신학자의 변론이 있지만 그것은 바울 서신에 의하여 부분적인 변론을 말한 것뿐이다. 이제 기독교가 새로운 종말의 변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사40:9과 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새힘을 받되 30절과 같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현저히 받고 있다.
이뢰자 목사가 매일 10시간씩 강의하고 남은 시간은 월간지를 쓰게 하고 밤마다 밤을 새워 기도하고 음식은 아무런 영양이 있는 것은 먹지 않고 단지 채소와 한 홉에 불과한 음식으로 하루를 지내면서 사자같이 외친다는 것은 기독교 역사상 없었던 새힘이라고 보며 얼마든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입으로 불러서 책자를 쓰고 있는 것도 새로운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누구든지 이 변론을 듣지도 않고, 그 책자를 읽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은 멸망 받을 일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서로 변론해 보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켰느냐 하는 것은 오늘의 이 역사라고 본다. 지금 이 뢰자 목사의 입에 완전한 변론이 임한 증거는 현재의 서책으로 증명된다. 언제나 대중 앞에서 강단에서 입으로 불러 변론의 서책을 내고 있다. 이 목사는 세상 학적으로 학교에 다닌 일도 없고 고려 신학에 2년밖에는 거친 일이 없다.
순수한 노동자요, 농민이요,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로 세상에 나서 서글픈 곡산이란 대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난민의 한 사람으로 지나는 부산 영도 빈민굴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빈민을 봉사하던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그 종을 통하여 어느 종이나 다 만족한 수도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일으킨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경솔히 생각지 말고 그 입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소식을 자세히 읽어 보라.
3. 자유로운 권세를 준다 (3-4)
동방에서 일으킨 사람은 어느 곳에나 원수의 나라라도 마음대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종 앞에는 누구나 다 떨 수밖에 없는 일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진노의 날에 원수를 무찌르고 나가서 원수의 손에 사로잡힌 양을 해방시키는 역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을 고레스를 통하여 해방을 주듯이 앞으로 동방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바벨론은 완전히 망하게 되고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심판의 다림줄의 변론을 받은 종이니만큼, 그 말씀대로 권세 있게 들어 쓰기 때문에 모든 인간 세력이 그 앞에서 굴복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멸시받고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하던 사람에게 묵시를 보여준 것은 종말에 동방 땅끝 가련하고 빈핍한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켜 원수를 승리하게 하므로 새로운 시대를 가르친 것이다. 아무리 우상적인 세력이 합심 단결해서 일어난다 하여도 동방 역사는 반드시 원수를 이기고 새시대를 이룰 것을 가르쳤다(6-7)
결 론
하나님께서 마지막의 변론을 할 사람을 동방에서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니 묵시를 보여 줄 적에도 셈의 장막에 보여 주었고 그 묵시의 말씀을 완전히 세계적인 심판의 변론으로 말해서 열왕이 굴복케 하는 것도 셈의 장막에서 나오되 동방 땅끝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땅 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
( 사 41 : 8 - 13 )
서 론
땅 끝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 나라를 뜻했다고 보아야 된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적에 너희는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었다. 그런데 성신의 역사가 임하여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마게도니아로 건너가도록 지시하여 빌립보 교회를 비롯하여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고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로 모든 사도는 다 순교를 당하고 남은자는 사도 요한이었다.
요한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계시로 받아 쓸 적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동방 땅끝인 해 돋는 편에서 나오는 것을 계시로 보고 기록할 때에 이스라엘 중에 종된 자가 14만4천이 인을 맞는 광경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 이 본문에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요, 기독교 종말에 승리의 이스라엘이 될 종들을 가르쳤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록까지의 성경 전서가 되어 그 책이 외국어로 번역될 때에 서양의 문명을 따라서 되되 루-터 종교 개혁을 중심하여 번역이 되어 어느 누구나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해방 운동이 일어나서 이 말씀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들은 새로운 문명을 가져오게 된 것은 아시아가 아니요, 유럽의 지중해를 비롯하여 대서양 바다 해변으로 발전되어 세계적인 문명을 자랑할 수 있는 발전을 보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기독교인을 통하여 가져 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시아보다도 유럽의 과학 발전은 세계를 정복할 강대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얻은 자도 기독교인이고, 그 땅의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개척한 자도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아시아에서 서쪽으로 발전되어 아메리카에 합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루어 그곳에서 극동의 복음을 전하는데 큰 승리를 이루게 된 것이니 동양 삼국에 일본도 2~3백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중국도 3.4백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 나라는 기독교 역사가 80년에 이르는 금일에 세계적으로 으뜸이 될 만한 교회 확장을 가져 온 것은 동방 땅끝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될 일이라고 본다.
만일 어떤 종이 이스라엘을 팔레스틴의 유대 족으로 본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십자가를 무시하는 망령된 말이니 동방 땅끝의 이스라엘을 우리 나라로 보는 것이 합법적인 진리라고 본다. 이제 동방 땅끝에서 붙든 종의 승리를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싫어 버리지 아니하심 (8-9)
이 붙들었다는 뜻은 죄인을 불렀다는 뜻과는 다르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버림을 당할 수도 있다(사65:1-5). 그러나 붙들었다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인정하고 완전히 쓰려고 붙들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종 될 자로서 특별히 뽑아 낸 자라고 보게 된다. 죄인을 부르는 은혜 시기가 아니고 동방 땅끝의 종을 붙들어 쓸 때는 진노의 날에 원수를 갚는 역사를 하기 위하여 붙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버림을 당하지 않는 완전 역사를 하게 된 것을 뜻했다.
십자가의 도는 중생 받은 자가 즉시에 전하는 것이요, 기독교 종말에 승리의 역사라는 것은 은혜 시대의 종 중에서 붙들어 완전한 무장을 주어 쓰는 것을 뜻했다. 아무리 원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이 종을 해칠 자는 없다는 것이다. 동방 땅끝에 붙든 종은 사40:9과, 27절과에 연결되는 말씀이다. 가장 원통하고도 딱한 사정을 만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는 종이다.
2. 참으로 도와주시므로 (10)
아무리 두려운 일이 오고 놀랄 일이 동방 땅끝에 온다 해도 하나님은 그 종을 굳세게 들어 쓰시는 동시에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가장 두렵고 놀랄 일이 앞으로 동방 땅끝 종에게 올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언제나 큰 역사를 일으킬 때에 인간으로서 두려워하고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을 만나게 하고 거기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초인간적인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모세를 들어 쓸 때도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해서 이스라엘이 두렵고 놀라게 만들었고 엘리야를 들어 쓸 때도 아합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이세벨을 들어서 종들을 해치게 만들면서 엘리야를 들어 역사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 민국은 산 같이 강한 원수가 아시아를 다 집어먹고 작은 반도의 남쪽 땅끝에 자리잡은 우리로서 반공 투쟁의 일선에 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남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용공주의 사상이 대대적으로 활동을 하고 미군은 후퇴 작전을 하고 날마다 경제 혼란이 극심한 이 땅에, 인심 악화를 수습할 길이 없고, 경제 혼란에 쓰러지는 이 민족을 구출하는 일은 막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 때에, 아무리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애국가를 부르면서도 실지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일을 하는 정부가 되며 민족이 되었느냐에 대하여 두렵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에 동방 땅끝, 이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두렵고 떠는 심정으로 밤을 새워 기도하여야만 될 것이니 이러한 자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하는 음성이 하나님께로 오게 될 것이고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는 음성이 오는 동시에 완전 승리의 역사가 오게 된 것이다.
3. 대적을 멸망시킴 (11-13)
말세에 하나님이 붙들어 쓰는 종은 대적을 멸망케 하기 위한 목적에서 들어 쓰는 것이니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엘리야를 들어서 바알 선지를 치듯이, 기드온을 들어서 미디안을 치듯이,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완전 승리의 역사를 하기 위하여 들어 쓰는 종이니, 그 종을 대적하는 자는 전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수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려서 쓰러지는 자리에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뿐이었으나, 동방 땅 끝의 종으로 붙들어 쓸 때는 용서없이 멸망시킬 마지막 심판의 변론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동방 땅끝에 종을 붙드는 때는 부활성도의 역사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부활성도는 은혜 시대 역사라면 변화성도는 진노의 날에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는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역사를 하다가 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노의 날에 주님을 맞이할 남은 종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만 자랑할 일
( 사 41 : 8 - 20, 46 : 16 )
서 론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여호와만 자랑할 일이 온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를 지배할 인격은 여호와만을 자랑하게 되는 자일 것이다. 황금만능을 자랑하는 것이나 모든 인간의 자랑이 다 없어지는 날에 여호와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은 동방 땅끝에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게 역사하실 것이다.
지금 동방 아시아에 하나님의 제단이 다 황폐된 금일에 극도로 민생고가 심한 것은 동방이며, 종교 위기가 온 것도 동방이요, 인심이 악화된 곳도 동방이다. 무엇으로 보든지 동방의 극동은 불행스러운 정부, 불행스러운 국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은 동방 땅끝에서 여호와를 자랑하리라고 말씀한 이것은 하나님은 끝날 에도 셈의 장막에서 역사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자랑하게 될 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본 성경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1. 하나님이 붙드는 종이다 (8-9)
우리는 어떤 자가 나를 붙들어 주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큰 문제일 것이다. 사람이란 고립적 생활을 할 수 없다. 누구든지 누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생활은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들어 주는 사람이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니 이것은 한번 하나님께서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붙들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복된 생활이다.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나는 일을 벌여 놓았는데 아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처지라면 이것은 그 일에 붙들린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이 되어지는 일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붙든 다음에는 당신의 영광을 받고야 만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이다 (10)
아무리 두렵고 놀라운 일이 오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는 그 종을 굳세게 하는 동시에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을 존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는 것이니 아무리 동방이 위기에 처해 있고 절망 낙망할 일이 온다 해도 우리는 여호와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사람이다 (11-13)
과거 은혜 시대의 종들을 쓰실 때와는 다른 방법을 취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하는 때 쓰는 종은, 그 종을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멸망시킨다는 것이 하나님의 종에게 맡긴 특권이다. 종들의 억울한 피값을 갚는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싸워 주는 것이다(25).
4. 알곡을 모으는 역사를 맡긴 자 (15-16)
타작기라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사명을 가르친 것이다. 이날까지는 씨를 뿌리는 역사라면 동방에서 역사하는 종말의 역사는 쭉정이와 알곡을 갈라놓는 역사라는 것이다. 씨를 뿌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난 일이 없지만 알곡을 모으는 추수 심판기의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이다.
결 론
여호와를 자랑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극도로 애타는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을 해주는 것이므로 끝을 맺는 종말의 역사이니 이 역사로 말미암아 새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17-20). 셈의 장막인 서쪽에서 일어난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의 일은 세계 만방의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열매를 맺었고, 동방 땅끝에서 일어나는 역사는 완전한 새시대를 이루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자세히 말하자면 씨뿌리는 시대는 교회가 은밀한 가운데서 각자 각자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이었으나 새시대가 오는 종말기의 역사는 만민 앞에 여호와를 높이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일이 다 세상이 알도록 끝을 맺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응답과 새시대
( 사 41 : 14 - 20 )
서 론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가 올 때는 홀연히 응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목적이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니 언제나 시련 가운데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서 원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는 자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세상에 기록되어질 때도 시련 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이 오면서 묵시의 말씀이 나타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도 시련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시련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압박을 당하다가 내가 그 압박 속에서 그들을 징벌하고 네 자손을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새로운 왕국을 이루겠다고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에게 압박을 당하는 자리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내리어 그 민족을 강권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다윗 왕국을 이루었다.
다윗 왕국 말기에 극도로 부패할 때 시련을 받던 종들이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묵시의 말씀이 임하여 기록된 말씀이 구약 말기에도 예언대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고 그 압박 속에서 낙심치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응답이 내리어 새로운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의 말기에도 시련 가운데 부르짖는 종들에게 응답이 내리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이제 어떤 자에게 응답이 오느냐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말한다.
1. 지렁이 같이 된 야곱에게 강한 역사가 임한다 (14-16)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 쓸 때는 극도로 미약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소망 없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부르짖는 종에게 강한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인격이 극도로 무가치하게 되는 환경에 떨어뜨리는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는 방법이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전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요, 그 능력도 하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에 신과 같은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지렁이 같이 무능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받음으로만이 승리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원수의 세력은 강하게 하고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그 원수를 당할 수 없게 하신 후에 홀연히 나타나서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약한 종을 쓰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과 진실이다.
2. 가련하고 빈핍한 자의 기도를 응답하심 (17)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풍성한 것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이 극도로 아름답게 사는 것을 원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나 어떠한 것을 아무에게나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므로 언제나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시험해 보는 것이니 지상의 축복을 받아서 새시대의 영광을 누릴 종의 장막에 가련과 빈핍을 거치게 하는 것은 무한한 축복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아무리 궁핍하고 가련해도 물질에 끌려서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자에게 새땅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말씀을 믿나, 믿지 않나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어느 선지나 다 하나같이 남은자가 되어서 새시대에 가는 사람은 가난한 자라고 한 것은 인심이 악화된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은 악당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시련 가운데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난제가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하는 것은 강한 기도의 힘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 나라의 성도들은 남의 나라보다도 경제 시련이 많은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높은 영계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가장 빈핍한 민족이 백의 민족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양심의 사람이다. 우리는 물질에 국한된 인격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인격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3. 새땅의 축복 (18-20)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축복은 무조건 주었으므로 그것을 길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대하여 시험을 해 본 것이 마귀의 시험이다. 둘째아담 예수를 통하여 중생 받은 이스라엘이 새시대를 축복으로 받는 것은 미리 시련을 통과시키고 시험을 해 본 다음에 주는 축복이니 완전한 왕국이 된다. 만일 지금도 시험을 해보지 않고 준다면 또다시 부패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해보고 응답 받는 자로써 이루어지는 새땅은 에덴동산보다도 더 완전한 왕국이 된다.
완전이라는 것은 응답으로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응답은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을 받은 이스라엘이 됨으로가 완전이 아니요, 이스라엘이 된 백성으로 시련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응답의 열매가 즉 새로운 시대를 성도의 나라로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창조를 받은 사람만이 아니요,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루어지는 새시대니 하늘과 땅과 산천 초목이 다 같이 기뻐할 일이다.
결 론
응답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본문에서 깨달은 자가 조금도 이 본문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영원히 지렁이 같은 인간이 될 것이로되 이 본문을 통하여 새힘을 얻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면 새 타작기같이 강하게 쓰여질 것이다.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송할 일
( 사 42 : 5 - 17 )
서 론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이 시대를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힘입어 구원을 받고 복 받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따라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이다. 여기에 새 노래란 심판 날에 살아서 새시대에 들어갈 종들과 백성이 부르는 노래를 가르친 것이다. 왜냐하면 재앙의 날에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은 사후 천당을 목적하고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 자기들이 받을 구원과 축복에 대한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이제 새 노래를 불러야 할 조건을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새일의 소식을 듣기 때문이다 (9)
이날까지 백성들은 살아서 새시대에 가는 새일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새 노래를 부를 진리조차 모르기 때문에 부를 수가 없었으나 종말의 새일의 진리를 고할 때 그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새일의 진리에 따라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2. 새 노래가 시작된 위치 (10)
새 노래를 부르는 위치는 땅끝이라 했다. 섬들과 땅끝이라 했으니 이 땅끝은 섬들이 있는 땅끝인데 동방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동방 땅끝에서부터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종이 나온다고 사41장에 말했기 때문이다. 새노래는 복음을 따라 부르는 것이니 복음을 듣고 나오는 데서부터 새노래가 시작될 것은 사실이다.
3. 새 노래가 선전될 일 (11-12)
세계 열방이 아름다운 소식을 받는 동시에 그 복을 통해서 새 노래도 같이 불러야 할 것이니 새 노래가 선전될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새노래를 부를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다.
4. 대적을 치기 때문이다 (13)
은혜 시대는 죄인을 부르는 시대이니 대적을 친다는 노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사같이 전사같이 분발하며 강하게 일으키는 역사이니 그만큼 강한 새 노래가 나와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투하는 군대가 전투에 대한 군가를 부르지 않는다면 사기가 저하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제사로 받는 것이니 그 때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찬송은 제사이기 때문이다(히13:15). 그러므로 아모스 선지도 횡설수설하는 노래를 부르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쓸데없는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암6:5).
결 론
하나님은 시대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동시에 당신의 역사를 따르는 종들이 기쁘게 노래할 때 그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도 찬송 부르는데 힘쓴 것은 뜻이 있고, 말세에 동방 땅끝에서부터 새 노래를 부르는 것도 큰 뜻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올라가실 때 어린아이들이 찬송을 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고 했던 것이다(눅19:39-40). 우리는 우렁찬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나아갈 때 승리의 역사는 천사가 하는 것이다.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하는 백의의 무리는 나팔을 불고 우렁찬
새노래를 부르면서 새땅을 정복할 것이다(계14:3).
새일을 고하고 행하시는 하나님
( 사 42 : 9, 43 : 19 - 21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새일을 고할 책임도 있고, 행하실 책임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새일이라는 것은 인생이 행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을 타락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새일을 행하시는 일이 없다면 이 세상은 영원히 죄악의 세상이요 사망의 골짜기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1900여년이 되는 금일에 이 세상은 더 악해지고 오히려 더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새일을 고하고 행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이제 새일을 고하고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로 증거한다.
1. 새일을 고하시는 하나님 (42:9)
하나님은 당신이 행하실 일은 당신이 빠짐없이 고하는 것이다. 사42:1-4를 보면 아드님을 보내서 교훈할 것을 말씀하고 그 교훈을 온 세계가 앙망하게 되는데는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고 6절에 말씀했다. 그러면 예수님의 교훈은 이방의 빛이 되는 교훈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아무런 진리도 모르는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독생자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해서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그 영들이 빛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한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교훈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가르칠 교훈을 선지서에는 분명히 다 말하지 않고 교훈이 있다는 것만 말하고 간단히 독생자가 처녀 몸에 난다는 것을 사7:14에 말했고 베들레헴에 난다는 말을 미5:2에 말했다. 갈릴리에서부터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가 나온다고 사9:1-3에 말했고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을 슥9:9에 말했고 은 삼십에 팔릴 것을 슥11:12과 13절에 말했고 십자가에 죽을 것을 시22:16, 사53:5에 말했고 부자 무덤에 장례할 것을 53:9에 말했고 부활할 것을 시16:10-11에 말했으며 그밖에는 하나님께서 새일을 행하실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고 본다.
선지서는 목적이 심판과 새시대이니 새일의 역사를 하나님이 미리 빠짐이 없이 말씀한 것이다. 독생자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피를 이루어 그 피로 모든 만민을 피로 사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셨지만 새일을 말씀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훈은 천국 복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나타난 것은 새시대를 이루는 영원한 복음이 된 것이다(계10:7, 14:6).
그러므로 새일에 대한 교훈은 은혜 시대의 종들이 전할 복음이 아니요,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변화성도들이 전할 복음이니 새일을 가르친 말씀인 선지서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사48:6). 천국 복음은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을 목적한 것이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요, 종말에 전하는 복음은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보호를 받고 새시대 가도록 전하는 복음이다. 이것이 선지서와 계시록이다.
2.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43:19-21)
새일을 행하시는 일은 원수를 갚아 주는 역사인데 이날까지는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하나님은 기다렸지만 새일을 행하는 날에는 더 기다릴 것이 없고 원수의 나라를 다 없이 하고 죄인의 세력을 세상에서 없이하고 오직 하나님의 친 백성만이 남아서 지상 축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시켜 주는 일이다. 새일을 행하시는 일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 : 주 재림 후에 행하시는 일이다.
주 재림까지는 성신이 역사해서 신부 단장시켜 왕국 부서를 완전히 이루는 기간이요, 재림 후에는 새시대에 들어갈 백성들을 하나님이 보호하고 양육해서 새시대의 축복을 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변화성도가 새일 진리를 증거하는 것은 재림 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신다는 것을 전해 주는 것을 다시 예언이라는 것이다.
둘째 : 이 천지를 새롭게 한 일이다.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저주받았던 우주 세계를 다시 새롭게 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 사람을 만드는 것은 영혼이 새로워지므로 천국으로 가게 한 것이 이날까지의 역사이지만 말세에는 당신의 자녀를 그 몸을 새롭게 해서 새땅의 축복을 받게 하는 일이다(사43:7). 이날까지는 신,불신을 막론하고 그 몸은 하나같이 쓰러졌다(사40:6-7).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이루고 당신의 백성을 들어가게 하는데는 모든 사람이 다 불에 사름을 당해도 당신의 백성만은 남은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것이 모든 선지의 전한 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첫째아담은 감히 왕권을 받을 자격이 없게 창조했지만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서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일의 역사가 된다.
결 론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지만 첫번 창조로써 당신의 할 일을 완성한 것이 아니고 새일을 행하심으로만이 당신의 행하실 일을 완전히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도 새일을 행치 못하신다면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가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일을 시작하였다가 그 일이 성공이 못된다고 중지하고 만다는 것은 완전한 인격이 못된 증거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생이 타락했지만 이 세상을 버리고 만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의 역사가 못되는 것이니 새일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은 완전한 역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의 기쁨
( 사 43 : 1 - 7, 65 : 17 - 23 )
서 론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은 당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실 때에 사람으로서 가장 기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함을 받은 자가 기뻐하는 것을 가장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때에 그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안다면 하나님과 같이 기뻐할 수 있는 인격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괴롭히지 않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다.
1. 몸의 창조와 기쁨 (43:1-7)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흙으로 사람의 몸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이루어 놓으셨다. 사람의 몸이라는 얼마든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창조된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이 어떤 동물의 모양으로 창조를 받았다면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볼 때에 아무리 아름다운 동물이라도 사람의 몸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만일 사람의 몸이 그 아름다운 동물 같이 생겼다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창조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하므로 그 몸으로는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의 의로 말미암아 타락한 사람의 몸까지도 다시 신 창조를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사43:1 이하에 기록된 말씀은 살아서 새시대를 영광으로 받을 사람의 몸을 다시 창조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천국 복음 운동의 역사는 그 영혼을 중생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기독교 종말의 새일의 역사는 몸을 다시 창조해서 그 몸으로 괴로움 없이 영원히 기뻐하는 영광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이제 몸의 창조에 대한 나의 체험을 말한다. 이것은 받은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체험이지만 성경을 증거하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1958년 3월 19일에 계시록을 해석해 주는 음성을 듣고 받아 기록하게 되었던 것이 지금 이 사람이 문서 운동을 하게 된 시발점이다.
이 체험을 받은 후에 15년간 조금도 몸에 피곤이 없으며, 괴로움도 없이 점점 소성하여 지금은 58세의 사람으로 청년 때보다 더 씩씩한 몸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통하여 기분이 좋아서 기뻐한다든지, 몸을 평안하고 호화롭게 해서 기뻐하는 것보다도 하루에 10시간씩 강단에 서고, 남은 시간은 월간지를 쓰게 되고, 밤에는 묵상 기도를 해도 몸이 점점 상쾌해지는 것을 체험할 때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완전한 기쁨이라는 것은 몸에 신 창조를 받음으로만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받은 체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역사는 누구든지 앞으로 받게 될 때에 깨닫게 될 것으로 본다. 내가 몸의 구속의 은총을 먼저 받게 된 것은 이 말씀을 담대히 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천지 창조와 기쁨 (65:17-23)
하나님께서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는 역사는 다음과 같다. 아담이 범죄하므로 저주받았던 이 땅을 다시 새롭게 하는데 있어서는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되 큰 효과를 주지 않으므로 사람이 살기에 괴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새시대의 하늘과 땅은 조금이라도 사람에게 괴로움이 되지 않도록 이슬과 단비를 흡족히 내리고 효과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자들이 영과 육이 아울러 기쁨을 누리는데 있어서는 자손 만대에까지 축복의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은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하여 창조한 것은 전혀 없는데, 사람이 범죄하였으므로 모든 것이 다 괴로움을 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끝까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가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신천 신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신천 신지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이 땅에서 기쁨을 누리던 성도들이 대 심판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신천 신지는 하늘 위에 새 도성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사65:17이하는 지상에 이루어지는 신천 신지요, 계21:1이하는 하늘에 이루어지는 신천 신지인데 우리 주님께서 요14:1이하와 같이 있을 곳을 예비한 것을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몸의 소생들이 복을 누리는 신천 신지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영체의 사람으로 복을 누리는 신천 신지는 지금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 기독교가 이날까지는 중생과 천국을 목적하였지만, 인간 종말에는 몸의 신창조와 신천 신지의 역사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가르친 말씀은 이 땅에서 축복을 받게 되는 기쁨이다. 인간 전멸의 심판이 있은 후에 이 땅에 신천 신지가 이루어지게 되고, 행함 따라 갚아 주는 심판이 있은 후에 영원한 신천 신지가 하늘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와 새일을 행하려 나타날 일
( 사 43 : 19 - 21 )
서 론
하나님은 이날까지 잠잠히 숨어서 계시므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느냐 하면 약속의 말씀을 가감없이 바로 믿고 끝까지 참는 자를 뽑아 내는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종말에 가서는 새일을 행하려 세상에 나타나시겠다는 것이다.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종말의 역사다. 이제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1. 물과 불이 못 당하게 역사한다 (2-3)
하나님은 이날까지 잠잠히 계시므로 원수들이, 사랑하는 자기 자녀를 물과 불에 죽인 일도 있다. 이것은 때가 안된 원인이다. 죽어서 구원받을 그 시대에는 순교를 허락했고 또는 죽는 일은 마땅히 통과할 일이 되었기 때문에 역사를 아니한 것이다. 혹은 당신의 자녀들이 물에 침몰되어 죽고, 불에 타서 죽는 것도 하나님은 허락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일을 행하는 때에는 물에도 불에도 피해 당하지 않도록 역사해 준다는 것이다.
2. 동방과 서방을 중심한 역사 (5-7)
하나님의 종말의 역사는 동방을 중심하는 동시에 서방으로 건너간다고 말씀하셨다. 북방과 남방은 종말의 역사의 대적이 될 것을 말했다. 여기에 지역적 중심은 예루살렘을 중심한 예언이니 북방 소련과 남방 아프리카는 종말의 역사의 대적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오직 영광을 위하여 택한자들은 서방과 동방 땅끝에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3. 인력이 당할 수 없는 역사 (12-14)
이날까지는 바벨적인 이방 북방 세력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혔으나 종말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전부 도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원수를 갚아 주려고 일어나는 역사이니 원수가 말세 증인 앞에서 다 굴복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4. 과거 모세의 역사에 비할 수 없다 (15-18)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는 예언적인 한 표적이라면 종말의 역사는 완전히 끝을 맺는 새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은 다 광야에서 쓰러졌지만 이때의 역사는 완전한 새시대를 건설하는 새일의 역사이다.
결 론
하나님은 새일을 고하는 일이 있고(사42:9), 새일을 행하는 때도 있으니(사43:19), 새일을 고하는 역사는 예언적인 역사요, 새일을 행하는 역사는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자는 새일을 고하는 예언을 믿고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성실과 진실로 택한 백성의 하나님이니 예언을 따라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새일의 역사를 믿지 않고 부인한다면 이 사람은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날 때 부끄러움을 당하는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어른들이 욕을 보고 야곱으로 저주 비방거리가 된다는 것은 새일의 역사를 순종치 않는 무리들을 가르쳤다(사43:28).
이스라엘 왕인 여호와의 역사
( 사 44 : 1 - 8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니고는 역사하지 않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조성하고 도와주는 역사 (1-2)
하나님께서는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조성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조성한 자가 아니고는 돕지도 않으시고 도움을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인생이 원하므로 되는 것보다도 우리가 세상에 날 때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지음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삭을 통하여 증거를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모태로부터 택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런 사람이나 불러서 종으로 삼은 것도 아니요, 예지와 예정 아래서 종 될 자를 택하시고 그가 행함이 있던지 없던지 도와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행함으로 도와주고 행치 못함으로 돕지 않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택한자는 부족이 있다 하여도 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독교를 박해하고 훼방했다 하여도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서 그를 부르신 것은 택한 그릇이기 때문이다(행9:1-9).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의 옳은 행위를 보고 택하신다면 택함 받을 자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택한자를 조성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것이다.
2. 자녀를 축복하는 역사 (3-5)
하나님은 택한 종에게 자녀의 축복을 주시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혈통적인 자녀의 축복도 있고 영적인 자녀의 축복도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을 통하여 많은 자녀가 축복을 받도록 하시는 것은 그 종의 힘으로가 아니요, 그 종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가장 복 있는 종은 복 있는 자녀를 많이 열매를 맺게 된 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 역사하지 아니하시고 그 종을 들어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참된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옛적에 야곱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이루게 하시는 것은 앞으로 택한 종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복 있는 종은 변화성도라고 볼 수 있다.
3. 처음과 마지막의 역사 (6-7)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처음의 역사는 종말의 역사를 뜻한 예언적인 역사로 나타내고 마지막 역사도 그대로 끝을 맺는 것은 택한자에게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 담대히 나가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언제나 완전한 역사라는 것은 시작과 마지막이 똑 같은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역사를 그 시대에 목적을 두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구약 시대의 역사는 전부가 이스라엘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정로로 보여 준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해서는 처음에 주는 것이 아니요, 마지막에 주시는 것은 처음에는 완전한 것을 주겠다는 증거를 보여 믿게 한 것이요, 마지막 역사는 믿게 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는 역사이다. 증거를 보여 주면서 말씀한 것을 믿지 않은 자를 악한 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 택한자를 증인으로 쓰는 역사 (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자를 중인으로 쓸 때에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고 증거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옛적부터 말씀한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증거라는 것은 아무런 증거없이 담대히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옛적부터 이루어진 일이 증거가 되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인간 종말에도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담대히 전할 의무가 있다. 기독교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가 옛적부터 정확히 기록된 동시에 정확히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처음에는 증거로 이루어졌고 현재는 축복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미래에도 영원한
축복이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택한 이스라엘에게 왕이 되는 동시에 예지와 예정 아래서 말씀한 대로 역사하시되 조성하시고 도와주시고 축복하는데 있어서는 종이 일하게 역사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증거하는 일인 동시에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줄 것은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확실성
( 사 45 : 18 - 25 )
서 론
하나님께서는 택한자를 구원하시되 확실성이 있는 말씀을 세우시고 말씀에 따라서 하시는 것이다. 구원에는 영적 구원도 있고 몸의 구원도 있는데,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은 영육이 아울러 받는 것을 가르쳤다. 이제 구원의 확실성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증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심 (19)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어 쓰러져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그대로 지나간다면 그 힘이 있는 것이 오히려 불의한 것이 될 것이다. 힘이 없어서 구원하지를 못했다는 것을 불의라고 할 수 없지만,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을 구원해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불의가 된다.
그러나 그 힘을 가지고 쓰러져 죽게 된 사람을 구원해 준다면 이것은 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역사를 가지셨으므로 택한자를 구원하시되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면 구원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의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정직을 고한다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하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바벨론에서 먹힘을 당한 예루살렘을 고레스를 통하여 복구하도록 하신 것과 같이 인류 종말에도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국을 당한 백성들을 동방 사람을 들어서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 때에는 말씀대로 동방 사람을 들어서 예루살렘을 복구했고, 인간 종말에도 동방 사람을 들어서 당신의 백성을 환난에서 구원해 줄 것을 말씀한 것이 정직을 고한 것이 즉 언약의 말씀이다.
2.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심 (21)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먼저 말씀하시고 다음에 사랑을 말씀하셨다. 공의를 사람이 행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행하시므로 구원해 준다는 것이 구원의 확실성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를 말씀했다 하여도 친히 행하시는 일이 없다면 공의를 행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하등 필요가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구렁텅이에 떨어진 사람보고 빨리 올라오라고 말만 해 놓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물에 빠진 사람에게 네가 정신을 차려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는 것도 아무런 필요가 없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들이 죄의 구렁텅이에 떨어졌고, 죄악의 물결에 빠져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말씀만 하시고 죄를 사해 주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면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어려운 환난이 왔는데 네 힘으로 이겨 보라고 하는 말은 하등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라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그대로 구원해 주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영이나 육이나 다 인생 자력에서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므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하겠다고 친히 말씀해 놓은 것이 즉 언약의 말씀이니,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할 것뿐이다. 인간의 죄악을 걺어지시고 친히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께서 공의를 완성하셨으므로 모든 영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재림의 주가 오실 때에는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환란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3. 맹세를 세우시고 행하심 (22-25)
하나님께서 누구를 두고 맹세할 수가 없으므로 자기를 두고 맹세를 하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맹세를 했다 하여도 행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무효가 되고 만다. 만일 하나님께서 맹세를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지를 않는다면 그 말씀은 전부가 거짓이 되므로 아무런 권리를 행하실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맹세대로 행하면 권세가 있는 것이고 맹세대로 행하지 못하면 권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권세 아래서 여호와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아버지가 맹세를 세우고 그대로 행하지를 못한다면 그 자녀들 앞에서 주권이 상실되므로 권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맹세대로 행하시는 무소불능의 역사를 가지신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고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세상에 확실한 것이 많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같은 확실성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원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대자연을 창조하실 때에 무엇이나 사람들이 스스로 행할 수 있게끔 하신 것이 아니요, 전부가 다 당신이 행함으로만 되게 하시고 사람은 그 역사에 따라서 순종함으로만 모든 일을 완성하도록 하신 것이다.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
( 사 45 : 21 - 22 )
서 론
하나님은 온전한 공의와 사랑이 계신 동시에 공의도 당신이 행하시고 구원도 당신이 베풀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니 공의도 행할 수 있고 구원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완전한 신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함이 없다면 인간 자체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 은혜 시대의 역사 (사 40:1-2)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여 구원을 베푸는데 있어서 그 죗값을 당신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의 죄의 대가로 받는 사람의 형벌을 친히 당신의 아들로 받은 것이 공의를 행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라는 것은 죄를 범하면 그 대가를 받는다는 것이 공의인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공의에서 대가를 아들을 통하여 다 행하는 제사로 끝을 맺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공의의 법칙을 범한 것을 친히 행하는 십자가의 피의 속죄가 없다면 구원을 베풀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공의의 대가를 지불함이 없이 덮어놓고 구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나 받았다는 것은 십자가의 피가 인간의 죄의 대가를 배나 지불한 것과 같은 의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피조물된 인간을 위하여 창조주의 신이 행하심이 더 큰 값이 된다는 것이다. 넉넉히 공의를 행했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2. 재앙과 심판에 대한 일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대하여 십자가에서 공의로운 죄의 대가를 갑절이나 지불한 것이 은혜 시대에 전하는 복음이라면 심판기에는 공의의 형벌을 배나 인간에게 베푸는 것이 있는 동시에 남은자를 구원하는 것이다(계18:6-7).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에게 진노를 베풀되 갑절이나 더 사랑해 주는 일이다. 이것은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해 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성도의 피값을 갚기 위해서 갑절이나 갚아 주는 동시에 남은자를 갑절이나 더 사랑해 준다는 것이다(계18:6, 사40:10-11).
3. 심판기에 대하여 (계 20:12-15)
하나님의 행위 심판이란 것은 시대 시대의 공의의 법을 따라서 친히 갚아 주는 것이니 이것을 공의를 행하는 심판이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시되 시대적인 공의의 법칙을 따라서 갚아 주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해 준다는 것이다. 이때에 심판권은 생명책과 심판록을 아울러 가진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하는 권세를 다 공의를 행한 아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공의를 행하신 일이 없다면 심판도 베풀 수 없고 구원도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이 시대를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니 시대적인 공의의 법칙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사랑을 베풀고 순종치 않으면 공의의 법대로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 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순종하는 동시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때나 하나님은 시대적인 공의의 법을 순종만 하면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는 역사이다. 양심시대에는 양심을 따라, 언약 신앙시대에는 언약의 신앙을 따라, 율법시대는 율법에 따라, 은혜시대는 십자가 법을 따라, 환난시대에는 예언의 말씀을 따라, 대심판기엔 행위를 따라서 공의를 베풀며 구원해 주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선택과 영광
( 사 48 : 9 - 11 )
서 론
하나님께서 택한자에게 영광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모태로부터 택하는 일도 있고 시련 가운데서 택하는 일도 있다. 첫째는 구원하기로 택한 것이니 모태로 택한 것이요, 둘째는 영광을 주기로 택한 것이니 이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종말의 영광을 누리도록 쓰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선택과 영광에 대하여 증거한다.
1. 이름을 위하여 참으심 (9)
하나님께서는 종을 들어 쓰고자 할 때에 여러 가지 실수가 있다 하여도 중심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당신의 영예를 위하여 참고 멸절하지 않으시면서 종을 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라도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르는 기간을 두신 것이다.
2. 연단을 시켜 보고 택하심 (10)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 다음에 여러 가지 연단을 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나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만 의지하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완전한 인격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단을 준 후에 하나님은 맹세를 세워 그를 축복하시고 그에게 준 언약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므로 그 약속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연단 시킨 것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을 종들도 연단을 주고 연단 속에서 다시 택해서 왕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사명을 맡은 자는 많으나 연단 속에서 완전히 인정을 받고 왕권의 영광을 받는 자로 택해지는 사람은 적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연단을 받고 거기서 완전히 택함을 받아 영광의 반열에 드는 자이다.
3. 연단 받은 자에게 영광을 주심 (11)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시켜 보시고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연단을 시키는 목적은 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니 연단을 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영광을 주는 것도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 중에서 말세에 귀하게 쓸려고 택한 사람은 더 연단을 주어서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한 나무 가운데서 귀하게 쓰기로 택한 나무는 찍어서 깎고 아름답게 다듬어서 귀한 위치에 쓰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자일수록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연단을 시키는 것은 사랑의 징계이다(계3:19).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나를 세운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골1:24). 주님께서 이날까지 왕권의 영광을 준비한 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종들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도 그 영광을 받을 사람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은 길이 참고 계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자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은 종들로 지상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이것은 내게 영광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인 줄 알고 오히려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가는 것을 신앙 정로라는 것이다.
유익하도록 가르친 하나님의 교훈
( 사 48 : 12 - 22 )
서 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에게 가르친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표하는 동시에 약속을 세운 것이니 약속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면 주겠다는 교훈보다도 내가 행하겠으니 너는 순종하라는 교훈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라는 것도 아니요. 또는 사람이 하나님의 행하실 일을 믿지 않아도 주겠다는 교훈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순종하면 아무런 사람이라도 다 새시대의 축복을 받게 해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교훈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택한 사람에게 유익하도록만 하겠다는 방침을 말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자에게 유익을 준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것이다 (12-14)
하나님은 무소 불능하신 신이시니 누구든지 귀를 기울여 들을 때에 역사하는 신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뻐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열중하여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에게 심령을 소성케 한다(사55:3).
2. 인도를 따르는 자 (15-16)
주님의 교훈이라는 것은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날 그날에 그 말씀을 따를 적에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불리한 것 같고 심지어 큰 실패를 당하는 것 같으나 그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는 형통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그 말씀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호할 것을 말씀했으므로 따라가는 자가 넘어져도 일어나도록 하실 것이요, 아무리 마귀에게 피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필경은 승리하도록 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3.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 (17-19)
하나님은 언제나 기록한 말씀대로 재앙을 내리기도 하고 복을 주기도 할 것이니 교훈을 듣고 따르는 자에게 평강을 강같이, 의가 바다 물결 같이 되게 하시며, 그 자손이 모래 같이 많게 하시며, 그 이름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자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언약하신 말씀이니 언약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택한자를 강권으로 인도하는 일도 있고 강권으로 열매가 많도록 해주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교훈을 전하는 사명이니 만큼 그 교훈이 전부 나에게 복을 주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먼저 그 사람에게 교훈대로 복을 주면서, 나가서 이것을 남에게 알려주라는 것이니 이것은 완전한 지상 축복에 대한 말씀이니만큼 하나님은 종을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하되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을 치듯이 이와 같은 난관도 있지만 필연코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 있게 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내고 그 사람에게 시대적인 법을 주고, 그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고자 할 적에 하나님은 그 법대로 종을 들어 쓰기도 하고, 그 법대로 종을 보호하기도 하고, 그 법대로 자손 만대에 축복을 하시는 것이니 가장 복 있는 자는 유익하도록 가르치는 말씀을 믿고 순종할 것뿐이다.
그러므로 신앙자는 내게 유익이라는 것은 책에 기록한 말씀밖엔 없다는 것을 알고 이말 저말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법인 말씀에 대하여 기록한대로 나가는데 전력을 두어야 될 것이다. 금일에 하나님 말씀은 ‘해석할 탓’이라 하는 자들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나무 같이 될 것이니 자손 만대에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말씀에 기록한대로 될 것을 굳게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야만 될 것이다.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자
( 사 49 : 1 - 7, 요절 3절 )
서 론
하나님께서 승리의 용사로서 환난 가운데 남은 종이 될 자를 이스라엘이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하나님은 모략적인 방법으로 택한자에게 억울함을 당하게 하고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니 말세에 남은 종이 될 자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에 인정을 받은 자라야 될 것이다.
2)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은 자는 환난 가운데 남은 종이라야 될 것이니 누구든지 살아서 새시대를 보는 자는 다 이스라엘이 된다.
3) 잃었던 지상 축복을 다시 찾는 것은 간교한 뱀인 마귀의 세력을 이겨야 할 것이니 누구든지 붉은 용과 싸워서 이기는 자라면 다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제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일에 대하여 그 인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사람이 되어야 한다 (1-4)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증을 설 조건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택한 종을 통하여 큰 영광을 나타내려고 할 때에 그 종을 시련 시키되 사람으로서는 감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많이 당하게 한다. 이스라엘이 일곱 해 큰 흉년이 질 때에, 애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요셉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고 애굽에 무서운 바로의 압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출시키는 모세도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는 길을 갔다.
우리는 사람이 인정하는 정도의 일만을 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일이 없다면 금시는 영광스러워 보이나 결말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금시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증 설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일이라고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적인 구원을 전하는 자이다 (5-6)
인생이 세상에 났다가 자기 하나를 위하여 살았다는 것은 영광될 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가 될 것이로되 전 세계 인류를 환난에서 구해 내는 복음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볼 때에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 같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세세 영광을 줄 것이다.
영광이라는 것은 잠깐의 영광도 있고, 영원한 영광도 있는 것이니,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했다는 것이 아니고는 영원한 영광을 소유할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갈릴리 어촌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던 베드로의 사명을 비롯하여 세계 인류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며 동방 땅끝 지렁이 같은 야곱이 새 타작기같이 씌워져서 태산같이 교만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새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우리는 새시대의 구원의 방주를 이루는 촛대교회의 운동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영광이 아닌 영광을 좋아하고 심지어 영광이 되는 진리 운동을 어리석게 본다는 것은 이방적인 세력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시대 영광을 목적하고 싸우는 사람은 다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3.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일 (7)
이날까지에 소위 강대국이라는 이름 하에서 한 때는 약소 국가를 짓밟아 버리는 침략적 행동을 한 일이 있지만 세계 열왕을 모두 굴복시키는 자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종 앞에 세계 열왕이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은 그를 택한 진실한 여호와 하나님을 인함이라고 가르쳤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책임지고 원수를 갚아 줄 조건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세계 열왕을 굴복시키는 승리를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세계의 국가 운영이나 개인의 생명이나 대 자연계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는 종만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가장 복된 자는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성도라고 보게 된다.
결 론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훌륭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그 사람 같이 어리석은 자가 없다. 이날까지 메시야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흑암 중에 흑암이다. 그러므로 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은 동방 땅끝이라는 것을 사41:8에 말한 것이다.
여호와의 응답과 새땅 축복
( 사 49 : 7 - 13 )
서 론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땅 위의 축복을 주셨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가장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범죄했으므로 땅 위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눈물, 고통, 죽음의 세상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리므로 새땅의 축복을 줄 것을 언약하신 것이 본문 말씀이다. 이제 하나님의 응답과 새땅 축복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응답 받는 사람 (7)
하나님께서 이 땅의 어떠한 사람에게 응답을 내리느냐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언제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사람이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압제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아벨이 멸시와 미움을 받고 피를 흘리는 일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억울한 피는 이 땅을 적시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있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나님께서 응답 받는 사람에게 멸시와 미움을 받게 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였을까 하는 것은 인간들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가장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이 병들어 죽는 것은 죄의 사망이지만, 응답을 받는 사람이 억울하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게 되어 죽는 것은 의의 사망이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응답을 받는 사람이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큰 피해를 당해 온 것이 인류 역사에 선과 악의 싸움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사람은 멸시와 미움을 당하는 동시에 가장 부자유스러운 자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리시므로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 말씀이다.
2. 응답을 받는 때 (8상)
지금은 은혜의 때이다. 그러나 응답을 받는 자가 심히 적은 것은 응답을 받는 때에 응답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의합되지 못한 원인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만 될 때에 이것은 등한시하고 사람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므로 응답을 내리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사상을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셔서 가장 진실하고 겸손한 자에게만 응답을 내리시므로 거짓되고 교만한 인간들은 자기가 응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사상인 마귀 흑암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까지도 인본주의 사상에 치우치게 되어 응답을 받지 못하므로 응답 받는 일을 이단시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3. 새 땅을 이루는 역사 (8하)
이날까지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응답 받는 사람을 억울하게 피해를 주어도 여호와 잠잠히 계셨지만, 새땅을 이루는 역사는 절대적인 보호가 있게 된다. 그리고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땅이 황폐화 될 때에 전멸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황폐화 될 때에 응답 받는 자를 보호하시되 새로운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하신다. 보호라는 것은 영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있고 육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새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는 영과 육이 아울러 보호를 받는 것이다.
4. 새 땅의 축복 (9-13)
사람이 순종치 않으므로 저주를 받았던 땅은 끝까지 말씀을 순종하고 보호를 받는 자로서 새로운 축복을 받게 된다. 새땅이라는 것은 다시 축복을 받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첫째아담으로 저주받았던 땅을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응답 받는 성도에게 축복으로 주신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것을 가지신 동시에 완전한 사람에게 그것을 주고 싶어하신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응답을 내리어 사람을 완전하게 만드는 동시에 완전한 새땅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의 영광
( 사 49 : 14 - 23 )
서 론
주님께서 가장 잊지 못할 종은 어떠한 종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금일에 많은 종이 있지만 잊지 못할 종은, 첫째로 아무리 시련이 와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이며, 아무리 어려운 환난이 와도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싸워 나가는 종이며, 아무리 주님께서 모략적으로 시험해 보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종일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적에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와도 남편을 도와서 절개 있게 나가는 아내를 통하여 가정의 모든 일이 바로 되어 나갈 때에,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모든 일을 활발스럽게 해 나감으로서 성공적으로 된다면, 처음보다도 더 그 아내를 잊을 수 없는 것 같이 주님께서도 당신의 종을 들어 쓸 적에 처음보다도 모든 일을 해 나갈 때, 주님을 위하여 여러 가지 풍파가 닥쳐오고 자기 자신이 크게 손상을 보고 피해를 당한다 하여도, 주님의 일만을 부흥케 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는 종이라면 그 종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이 될 적에 그 종이 받는 영광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1. 영원한 도성을 받게 됨 (16)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면서 충성을 다하는 종에게는 영원한 왕궁 도성을 맡기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 자연을 창조한 목적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신이신 동시에 홀로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도성을 이루어 충성을 다하던 종들에게 주는 동시에 그 종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조물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사업을 성취시키는 일을 종을 통하여 이루었기 때문이다. 신의 영광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있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이 있음으로만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2. 모든 나라 사람으로 영광이 되게 함 (17-18)
종을 대적하던 무리를 다 없애는 것이 심판인 동시에 종을 따라 오던 무리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되니 모든 백성은 다 그 종을 통하여 새시대에 축복을 받게 될 때 축복을 받는 백성은 그 종의 영광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간들은 어떤 주권을 잠깐이라도 쥐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이 주권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새시대로 인도하는 종은 세세토록 그 백성을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지면에 충만해지므로 (19-21)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적은 돈을 가지고 많은 재산이 이루어질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적은 씨를 뿌려 가지고 많은 열매를 거둘 적에도 기뻐하는 것이요, 시련을 당하다가 그 일이 바로 될 때에 기뻐하는 것이 사람의 성품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극복하고 나가면서 복음을 전하므로 진리를 통하여 새시대를 이루게 되어 지면에 충만한 강국을 이룰 때에 복음을 전하던 종이 자동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4. 숭배를 받음 (22-23)
지금은 숭배를 받는 것이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나님 외에 어떤 종을 숭배한다는 것은 숭배하는 사람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요, 숭배를 받는 자도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왕국에 들어가서 종이 숭배를 받게 하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 주는 때이므로 이것은 영광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숭배를 받으라고 세운 종이 아니요,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으면서라도 복음을 전하라는 때이므로 하나님의 종이 숭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큰 손해를 보는 일이 될 것이로되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그날에는 숭배를 받고 영광을 받아야만
된다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 인간을 잊을 수 없는 일로 혹은 기념비로 동상으로 또는 큰 기념탑이 서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되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큰 영광이 될 것인가!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을 수 없는 종이 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억압을 받게 하는 것은 이런 가운데서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자라면 그 종을 진실한 자라고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 종에게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인 동시에 사랑의 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주께서 잊지 못할 종이 받는 영광이라고 보게 된다.
주님이 잊을 수 없는 종의 역사
( 사 49 : 14 - 15 )
서 론
주님은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동시에 역사한 일을 조금도 잊지 아니하신다. 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것을 당신이 한 일과 같이 인정하는 것이다. 혹 종은 잊을 일이 있어도 주님은 잊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어떠한 종의 역사를 잊지 못하느냐에 대하여 본문은 증거하고 있다.
1.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다 (3-4)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하지 말라고 마6:1에 말씀하셨다. 주님이 잊지 않는 일은 인간이 볼 때 헛된 수고 같고 아무런 유익 없는 일에 내 힘을 다했다는 일이다. 인간들에게 칭찬 받고 대접받고 환영받는 일이 아니다. 만일 어떤 종이 헛된 수고같이 보이고 억울한 것 같다 하여 불만을 두고 원망하고 낙심한다면 그 종은 주님이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 (6)
주님은 인간을 구원하되 종을 들어서 이방에 빛이 되게 하시고 구원받은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동시에 종의 일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에 있는 형제들은 자기의 면류관이라고 했다(빌4:1).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는 일이다. 어떤 종이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옳게 증거해서 많은 사람이 그 설교로 구원을 받게 된다면 그 많은 사람은 그 종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목적이 인류를 구원하라는 목적이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는
일이니 주님이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주님을 위하여 멸시와 미움을 받는 일 (7)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미움을 받고 멸시 당하면서 끝까지 참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백골난망이라는 문자를 쓰게 된다. 하물며 주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미움 받고 멸시 당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는 동시에 큰 상급이 되는 것이다(마5:11-12).
4. 기도가 상달되는 일 (8)
주님은 택한 종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하며 영광이 되어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잊을 수 없어 응답해 준다는 것이다. 당신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요청을 이루고 싶은 주님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잊을 수 없는 종의 기도를 응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친구가 잊을 수 없는 친분이 있는 자라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요청을 아니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눅11:5-8).
5. 고난을 당하는 일 (13)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달게 받는 자라면 주님은 잊지 아니하시고 불쌍히 보시는 동시에 그를 위하여 세세의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롬8:17-18).
결 론
주님은 잊을 수 없는 종을 통하여 새시대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새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그 종의 자녀로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하신다는 것이다(사59:18-21). 새로운 시대의 완전한 기업과 영광은 일한 종의 열매이니 그 영광을 잊을 수 없이 일한 종에게 준다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인간이라도 은인을 잊을 수가 없다면 하물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종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것은 사실이다.
여호와께 학자의 혀를 받은 종
( 사 50 : 4 - 11 )
서 론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선지들에게 묵시를 받게 하고 말씀을 받아 기록하도록 한 것이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묵시의 뜻이 무엇이며 자기가 기록한 글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에는 학자같이 말하는 혀를 주어 모든 사람들이 다 무슨 뜻인지를 알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혼란기에 미혹을 받게 되겠으므로 이제 학자의 혀를 받게 하는 종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곤핍한 자를 도와주는 역사 (4)
지금 모든 영들은 다 곤핍을 느끼고 있다. 중생의 역사가 임할 때에 중생을 받고 은사를 받고 자라났지만, 지금 곤핍을 느끼는 원인은 학자의 혀를 받은 종이 나타나야 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남은 종이 될 자에게 학자의 혀를 주어서 곤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소성을 받게 하는 역사가 있을 것을 본문에 말했다. 학자 같이 깨달아 듣게도 하는 역사가 학자의 혀를 받은 종을 통하여 있게 되는 것이다.
2. 순종하게 하는 역사 (5)
누구든지 학자 같이 말하는 종을 통하여 학자 같이 깨닫게 될 때에 용기 있게 걸어나가는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억지로 지배할 것이 아니고 종말의 진리를 바로 증거할 때에 듣는 자들이 완전히 깨닫게 되므로 용기 있게 따라가게 한 것이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종교는 맹목적으로 남을 따른다는 것이 있다면 그야말로 가련한 일이라고 본다. 그 진리를 완전히 깨달을 적에 절대 거역할 수가 없고 자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신앙 자유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역사 (6-9)
하나님은 덮어놓고 돕는다는 것이 아니요, 진리의 법에 따라서 돕는 것이니 학자 같이 깨달아 듣는 자라면 그 진리대로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도와주시므로 절대로 수치를 당치 않고 승리를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분명히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도와 줄줄 믿는다면 이것은 미신에 불과한 신앙이다. 이러한 자들은 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4. 흑암을 뚫고 나가는 역사 (10-11)
흑암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자 같이 깨달아 듣는 종은 아무리 흑암 중에서라도 진리의 봉홧불을 들고 용기 있게 나가서 안식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오는 흑암을 뚫고 나가려면 덮어놓고 따라갈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주어서 바로 증거하는 종의 말을 듣고 따라가야만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금일에 많은 종들이 진리를 가르치지만 직접 하나님의 신이 그 혀를 학자 같이 말하도록 사용하는 종이 아니고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28:11에는 종의 입술을 하나님께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증거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학자 같이 말하는 혀를 주어서 증거하므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깨닫고 흑암을 뚫고 나가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종의 입을 통하여 시대를 따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큰 역사는 이적이 아니요, 학자같이 진리를 바로 증거하도록 그 입을 열어지게 하는 역사라고 본다. 이 학자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종말의 비밀을 바로 증거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하늘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학자같이 말하게 함으로만이 바로 증거할 수가 있고 그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함으로써 완전한 새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 사 51 : 1 - 3 )
서 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행하신 일은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대로 복을 받을 종들에게 준 교훈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복을 받을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사람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노라"고 말씀하시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볼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종하는 생활을 함 (창 12:1-4)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사람을 세울 때에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큰 사명을 맡은 사람이 철저히 순종하는 일이 없다면 대중을 지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용기 있게 말씀을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만일 세계적인 사명을 걸어진 아브라함이 용기 있게 걸어 나가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대사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로되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을 할 때부터 하나님은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개척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말씀대로 시행하시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브라함은 어리석은 자 같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와 같이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2. 순종의 제사를 드림 (창 22:9-12)
아브라함은 순종이 제물보다 낫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로 번제를 드리라고 할 때에 용기 있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아들을 제단에 놓을 적에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한 제사로 인정을 하고 그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금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인정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하셨다. 우리의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치기 전에 순종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맡은 자는 조금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해 나갈 때에 우리가 죽지 않았어도 주를 위하여 죽은 것과 같이 인정하는 것이요, 우리가 바친 것이 없다 하여도 바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물을 바쳤다 하여도 중심에 순종이 없다면 받지 않는 것이요, 완전히 바치지를 못했더라도 끝까지 순종할 때에 바치고도 외식하는 자 보다 더 인정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일을 받들 때에 주인은 그 종에게 물질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시키는 일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순종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당신에게 바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도 몸을 하나님께 바칠 적에 죽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죽지 않고 순종의 제물로 많은 열매가 있기를 원하신다. 과거의 순교자들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므로 축복의 죽음을 준 것이요, 살아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변화성도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것과 같이 몸을 완전히 바칠 적에 이삭의 몸을 아껴서 죽이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인정을 하시고 우리의 몸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신 말씀대로 거룩한 씨가 새시대에 번창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게 됨 (창 22:18)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은 네가 내 말을 준행했으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대표적인 아브라함의 순종이 우리에게까지 응답이 미쳐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명적인 일체가 되므로 앞서간 종들의 순종한 열매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는 것이니 그들이 간 신앙 노선을 우리가 생각하고 아무런 시련이 와도 순종할 때에 그에게 약속한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고 아무런 어려운 환난이 우리 앞에 온다 하여도 큰 축복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 끝에 인정하고 세우신 언약은 우리 변화성도로서 환난과 재앙을 만나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사람에게 에덴 축복이 올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되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받으므로 잠간의 시련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 생활
( 사 54 : 9 - 10 )
서 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말씀없이 움직이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약속의 말씀을 세우시고 말씀에서 부자의 관계를 맺고 화평한 중에서 당신의 가지신 영광을 같이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주신 약속의 말씀이다. 이제 약속의 말씀과 인간 생활을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약속과 땅위의 생활 (9)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에 노아의 성결한 성물을 향기롭게 받으시고 하나님의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판과 어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약속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 땅이 있는 날 동안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동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약속을 세우셨으므로 책임을 가지고 지구가 도는 괘도가 어기지 않도록 움직여 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말씀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세계를 심판할 권리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떤 과학자가 아무런 이상한 말을 해도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쓸데없는 말이 될 것이다. 사람이 만든 시계는 혹 고장이 있을 수 있으나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움직이는 별세계에 질서 있게 돌고 있는 괘도는 조금도 탈선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춘하추동 사시에 변동이 있을까 염려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혹은 흉년이 와서 혹은 기후가 바뀌어서 살지 못하게 될
염려를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과 영원한 세계에서 생활 (사 54:10)
하나님께서는 세상 인류 전체를 두고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인류 역사적인 지상 생활이라면 영원한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영원한 천국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산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않으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겨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원한 세계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21:4-7절과 같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대로 책임지고 역사하는 신이시므로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다’. ‘참되신 신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말씀의 언약이 아닌 말씀은 성경에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해주신다는 약속이니 우리가 지상에서 사는 생활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역사해 줌으로써 기거동작, 사업, 경제 체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죽지 않을 몸으로 저주, 사망, 고통, 눈물이 없는 세계를 얻도록 해주시겠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현 생활을 하도록 해주심 같이 이루어 줄 것을 우리는 믿고 나가는 것을 신앙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이 인류 6천년 역사라 하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천년시대가 오고 무궁시대가 온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문제없는 합법적인 진리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생활을 약속의 말씀대로 움직여 주는 것은 이 땅을 없이하고 신천신지가 이루어 주는 때에 그 땅에서 영광을 누릴 사람의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그 수를 채우고자 하는 것이 땅에서 약속대로 움직여 주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목적없이 자연계나 시대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나 말못하는 동물도 조직적으로 되어 있거든 하물며 최고의 인간이란 세계에 움직이는 시대의 변천이 무질서한 변천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비밀을 아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지혜와 지식이며 그 약속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인간의 최고의 의요, 행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신이시요, 복의 근원이시니 그 약속을 따르는 생활이 축복이 될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 사 56 : 7 - 8, 66 : 5 - 6, 습 3 : 19 - 20, 미 4 : 6 - 8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처음에는 쫓겨나게 하시고, 다음에는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과거의 역사요, 현재의 역사요,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다. 어찌해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쫓겨남을 당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택한자의 진실성을 알아보자는 목적이요, 둘째는 당신의 능력을 세상이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셋째는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쫓겨남을 받은 자가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단체를 이루게 하심 (56:7-8)
완전한 단체라는 것은 평안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단체가 아니요, 어려운 일을 당하는데서 사상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단체를 완전한 단체라는 것이다. 쫓겨남을 받은 사람들이 한 단체를 이룰 때에 사상과 정신과 마음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뭉쳐지게 된다. 이 단체는 사상 통일, 정신 통일, 마음 통일을 이룬 단체로서 이상적인 나라를 이룰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당신의 성산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2. 쫓겨난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심 (사 66:5-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난 사람을 위하여 원수를 갚되 아무리 당신의 성전이라도 황폐화시키기도 하시고 당신의 자녀라도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낼 때에는 원수로 알고 싸워 주시되 그들을 전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 감정으로 남을 쫓아내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심판의 다림줄의 문제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쫓아내었다면 그 사람은 용서없이 그 말씀대로 오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 쫓겨난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심 (습 3:19-20)
가장 칭찬과 명성이 높은 자는 진리를 위하여 쫓겨나면서도 싸워 나가던 자들이라고 본다. 우리 나라의 서울에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나라를 위하여 싸운 사람들의 동상을 많이 세운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의 나라를 위하여 진리를 전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운 자라면 얼마나 그 칭찬과 명성이 높을 것인가!. 그러므로 시온 대회를 위하여 근심을 하며 괴로움을 당해도 거기에 굴복치 않고 나간 자들이 천하에서 제일 명성이 높아질 것이다.
4. 쫓겨난 자로 영원한 나라를 이루심 (미 4:6-8)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장 진실한 자로써 영원한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쫓겨난 자로 강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아무리 그 세력을 자랑하던 강대국이라 하여도 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그 자체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하고 남을 압박하고 쫓아내던 나라들이므로 자기 자체가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쫓겨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싸워 나간 자라면 하나님께서 볼 때에 제일 강한 자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악의 세력을 강하게 해서 당신의 사람을 대적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으로는 원수의 세력을 이길 수 없으므로 쫓겨나게 되지만 끝까지 싸워 나갈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쫓겨난 자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축복 받는 비결
( 사 58 : 9 - 12 )
서 론
하나님은 복의 근원인 동시에 복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없이 복을 준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어떤 자가 되어야 말세에 큰 축복을 받는다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1.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9)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해 버려야 한다. 이것은 무거운 멍에를 자기가 벗고 남에게 메우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볼 때에 고치려는 마음이 없고 손가락질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망한 말로 남을 해치려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이 세 가지가 있는 자는 도저히 응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을 받으려는 것도 마땅한 일이지만 버릴 것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2. 주린 자에게 심정을 동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10)
만일 남의 주린 사정을 보고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양심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남의 딱한 일을 볼 때에 마음이 동하여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은 그 심정을 보고 움직여 주시는 것이다.
3.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일이다 (10)
우리는 타인의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 첫째 할 일이다. 아무리 남에게 육적으로 도움이 있다 하여도 그 마음을 만족케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를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의 종이 양떼의 마음을 만족케 못하고 괴롭게 한다면 자동적으로 흑암이 올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첫째 항상 인도하되 심령의 만족을 받게 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이 잘되는 것 같으나 영혼이 만족치 못하는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축복일 수 없다.
둘째 뼈가 견고케 되는 것이니 이것은 소성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11).
하나님의 축복은 피곤에 잠긴 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샘물같이 솟아오르는 일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새시대를 가르친 것이니 완전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 받는 종을 통하여 아름다운 새시대를 건설할 자를 일으키게 된 것을 완전한 축복이라 한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생활이 있다 하여도 이것은 황폐될 날이 있을 것이다.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인격
( 사 58 : 10 - 12 )
서 론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종이라는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이날까지에 우리 기독교는 몽학적 교훈의 역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도 몽학적 교훈을 하는 때가 있었고, 경고의 나팔을 부는 선지 시대가 있었다.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은 모세 오경이니, 없던 성전을 세웠고 없던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그대로 그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제사하는 법을 가르쳤고, 성전 짓는 법을 가르쳐서 그 말씀대로 나라 헌법이 되었고, 그 말씀대로 성전이 이루어졌고, 그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지나서 선지 예언 시대라는 것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운다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예언한 때를 말한다. 부패한 정부와 부패한 선지와 부패한 성전의 모든 것은 다 황폐화되고 말 것을 가르쳤으며, 거기에서 새로운 순의 종이 나와 예루살렘이 다시 복구될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 예언이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중생을 받아 뭉쳐지는 단체를 교회 단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이 되는 모세 오경에 가르친 말씀대로 이루어진 교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몽학적 교훈이 완성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기독교는 이스라엘 왕국의 몽학적 교훈이 신약 교회에 완전한 열매가 되는 교회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경고의 예언의 말씀이 구약 말기에 증거가 나타난 것은 신약 종말에 완전한 열매가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종의 인격은 어떠한 것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인격 (10)
오늘날 참된 종이라는 것은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를 만족케 해 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몽학적 교훈이 필요치 않고, 완전 변론의 역사가 있어야만 될 것이다. 은혜 시대의 역사는 젖을 주는 것이라면, 괴로워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교훈은 감추었던 만나가 될 것이다. 이 시국에는 사상과 양심이 바른 성도들에게 괴로움이 되는 일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남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동.서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로운 형편에 있는 것이 이 때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사상으로, 정치로, 교회로, 가정으로 변해진다는 것은 극상 포도를 심은 농부가 들 포도가 된 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이 사상, 양심이 바른 참된 하나님의 종이 괴롭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말해서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요, 심판과 새시대에 대한 진리를 완전 변론으로 증거해서 괴로워하던 종의 마음에 의문을 풀어 줄 때에 자동적으로 만족을 가지게 된다. 피곤한 그 마음이 각성을 받고, 분명히 이 때는 우리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괴롭던 모든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 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므로 해결될 것을 확신하게 되므로 마음에 만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 죄를 사함 받으므로 기뻐하게 되었다. 지금은 시국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마음에 괴로움이 된 사람에게 완전 변론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면 모든 어려운 난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이것은 말씀대로 시국이 이렇게 되었으니 말씀대로 어떠한 노선을 가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 마음이 괴롭던 자들이 만족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었던 영들이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종들을 통하여 중생을 받았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난과 재앙을 만난 사람들이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게 될 때에 마음에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어디서든지 항상 만족을 누리는 인격 (11)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인격이 되려면 아무리 메마르고 적막한 자리에 간다 하여도 항상 만족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조금도 피곤이 없는 인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괴로운 것이 남아 있다면 자신부터 고쳐야 될 것이 있는 인격이니,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역사를 일으킬 종은 은혜 시대보다도 더 만족한 것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인 바울은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하나 속사람은 새롭다고 하였지만, 인간 종말에 남을 종이 될 사람은 영이 소성함같이 몸도 아울러 소성함을 받는 역사가 있으므로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3. 많은 열매를 맺는 인격 (12)
이 땅에서 가장 열매가 많은 인격을 가진 자는 새시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명자라고 본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진 자는 대중적인 구원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종은 순식간에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게 된다(사66:7-9). 천국은 단체적으로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죽어서 그 영혼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역사는 전 세계 인류가 전멸을 당하는 날에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복 있는 자는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사람이 무너뜨리는 일은 하기 쉬워도,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귀한 일이라고 본다. 오늘날 심령 부흥회가 각 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역사라고 본다.
안식일과 즐거움
( 사 58 : 13 - 14 )
서 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즐거운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에 즐거워하신 것은 없었던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천지 창조가 없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일이 있을 수 없다. 세상에서 어떤 부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가만히 있다면 즐거움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시지 않으시고 영원히 홀로 계신다면 아무런 영광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마다 크게 즐거워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대 사업을 마치시고 축복하신 날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아무리 타락한 인생이라도 다시 그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거룩하신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거룩한 뜻을 알게도 하시고, 그 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율법시대와 신약시대의 안식일에 대해서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율법시대의 안식일은 몽학적이라면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완전히 이루어지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언적인 성전에서 지켰던 안식일은 열매가 될 교회가 누릴 안식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따라 행하시는 날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행하시는 날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신 이레 중 첫날이 되는 그날에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기도 하시고, 은혜를 내리기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의 법에 의한 안식이므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본다. 이제 안식일과 즐거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즐겁고 존귀한 날 (13상)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날은 땅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이 아니요, 하늘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이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하늘의 것을 받는 체험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날은 외식이 되고 말 것이다. 엿새 동안에 마음이 상처를 받고, 피곤해지고, 복잡해졌다 하더라도 안식일에 교회로 와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될 때에 극도로 즐거워진다. 그리고 가장 존귀한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대 사업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아는 사람이 일을 중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가장 존귀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안식일에 즐거워하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도록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생활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기 때문이다. 안식의 축복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일에 모여서 우렁차게 호소 성가를 올려야 할 것이다.
집에서 기도의 힘을 잃었던 사람도 성전에 나와서 호소 성가를 올리게 될 때에 새로 나리는 역사를 받게 되므로 메마른 땅에서 시들은 풀이 단비를 맞고 소성하듯이 소성함을 받게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목적한 진리를 중심하여 새일 성가를 내려보내신 것은 그 기도 호소문을 통하여 안식일마다 무한한 축복을 내리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 새일 수도원에서는 새일 성가를 부를 때마다 이슬과 단비 같이 역사가 내리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만 부르게 되면 산 체험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피곤하던 사람이라도 이 성가를 부르게 될 때에 분명히 소성함을 받게 되는 모양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안식일에 이 성가를 통하여 나리는 흡족한 은혜를 항상 받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오락을 한다는 것은 은혜가 나리지 않는 교회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락보다도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가지고 그날을 지켜야 할 것이다.
2. 사적을 떠난 공적의 날 (13하)
안식일에는 단체적인 행동을 해야 된다. 사사로운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고, 공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과 대중을 복 받게 하는 일을 중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교인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예배한다는 것은 벌써 공적 교회를 무시하는 일이니, 죄를 범하고 있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사적 생활에 대한 일이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한 단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 하나를 위한 것보다도 대중을 위해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자동적으로 거룩한 단체가 되어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예배를 드리게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강단에 서는 종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하실 말씀을 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제물로 올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렁찬 호소를 올려야 한다.
제물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 제사를 완성한 것이니, 우리는 이 몸을 바쳐 예배할 때에 지성소에 있는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응답이 내리는 것이다. 강단에 선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입을 열어 설교할 때에 그 말을 통하여 대중이 만족함을 받는 일이 있게 되므로 교회는 날마다 신령한 은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예배를 인도하는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지 못하고 강단에 선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그 교회는 속화되고 말 것이다.
3.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 (14)
우리는 안식일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얻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극장을 가고, 야외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하고, 오락회를 열고, 파티를 연다면 벌써 여호와 안에서 떠난 행동이다.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교회가 될 때에 세상 오락이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보다도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하고도 즐거운 날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날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예배의 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에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만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독교 흑암과 강권 역사
( 사 59 : 9 - 18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에게 기독교 종말의 흑암이 무엇이며 강권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교회가 부패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갔다 하여도 강권 역사를 행하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흑암
첫째 : 빛을 바라나 어두운 일(9-10)
교회가 아무리 애를 써도 흑암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사랑이 떠나고 공평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자를 사랑하되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무시하게 될 때에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나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눈이 있어도 소경이 되고 빛이 있어도 그 빛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흑암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 어두운데 있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요일서2:9-11). 기독교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사랑의 본질을 떠나고 공평을 떠나게 될 때에 십자가의 원수가 되므로 자동적으로 흑암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 구원을 바라나 멀어지는 일(11-13)
구원이라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죄인을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바라보면서도 죄악을 떠나는 생활이 없다면 그 생활은 구원과 멀어지는 생활이다.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구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죄를 용납할 수 없어서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거짓이 있는 자를 용납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교회 흑암이라는 것은 구원을 바라보면서 성결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셋째 :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는 일(14-15)
교회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니로되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게 되면 정직한 사람이 일할 수가 없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교회는 흑암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사도 앞에 불의한 자들이 있다 하여도 다 쓰러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령한 교회로 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교회는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 도다” 라고 한 것은 불의한 자가 권리를 쥐고 있으므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될 때에 이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새시대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강권 역사를 행하고야 심판을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강권 역사
첫째 : 쓸 사람이 없으므로 강권 역사를 행하시는 일(16)
교회의 지도자 부패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질 때는 하나님은 강권 역사로써 새로운 종이 나오도록 하셔야만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스라엘 말기에도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은 지도자 부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지도자들에게 임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복구된 것은 새로운 순의 종이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나오게 하므로 된 것 같이 심판기에도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고 역사한다고 하신 것은 강권 역사를 뜻한 것이다. 가장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은 지도자 부패라고 본다.
둘째 : 구원을 베푸시며 원수를 갚는 일(17-1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 강권 역사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구원을 베푸는 일도 강하게 역사하시고 심판을 나리는 것도 강하게 역사하시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국가에서 적군이 들어올 때에 적군을 치는 것도 강하게 치며 자기 백성을 구해 주는 것도 강하게 다스리는 것과 같다.
은혜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때가 아니므로 원수에게 피해를 당해도 그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는 친히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 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동방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한 것은 동방 역사는 원수를 갚는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진노는 교회 부패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부패되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서 새로운 일군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 사 59 : 14 - 21 )
서 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루어 놓았지만 사람이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므로 범죄를 하게 되어 타락했지만 다시 그 영광을 주고자 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40:5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이 이루어진 시대가 은혜 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강권 역사이다 (14-18)
강권 역사가 없이는 원수를 갚는 날에 영광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부패될 것을 말했다(14-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날에 하나도 쓸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하였다. 이것은 강권을 뜻한 것이다. 택한자를 강권으로 붙들어서 쓰시되 하나님의 의로써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이 날을 원수 갚는 날이라고 했다. 강권 역사에 대해서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 택한자를 들어 쓰되 여호와의 도구로 쓰는 일
둘째 : 열심을 주되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
셋째 :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완전 개조를 시켜서 남은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수를 갚는 날이니 만큼 택한자의 원한을 풀어 주는 일이므로 아담의 가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로부터 이날까지 순교자의 피값을 갚는 일이니만큼 그들의 기도가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계6:10과 같이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계7:2-3 같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역사를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급할 때에 강권으로 용사를 붙들어다가 싸우게 하듯이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는 종말의 역사는 강권이 없이는 안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강권으로 역사할 때에 씌워지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 성도들은 원수에게 억울하게 쓰러져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 씌워지는 종은 원수를 짓밟고 나가기 때문이다(사41:25).
2. 해 돋는 편에 나타날 영광 (19)
금일에 서방에서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그 영광에 도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동방 사람은 서방의 문명을 받아 들여 그 지도를 받고 있다. 심지어 풍속까지라도 서방 풍속을 받아들일 때에 ‘동방의 예의’까지라도 서방의 풍속에 물들고 보니 이것이 동방 셈의 민족의 영광이라고 볼 수가 없다. 또는 소위 공산주의라는 침략적 정책이 동방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다 점령하고 가장 아름다운 산까지도 메말라 붉은 산이 되고 남한만 남았다는 것은 현재로 보아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이 나라에서 출생하여 57년 생활에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첫째 : 고아의 쓰라린 생활 15년, 둘째 : 일본 제국주의 정치 아래서 압박을 받던 생활, 공산 정치 아래 무서운 박해를 받던 생활, 셋째 : 6.25 동란에 피난민 생활, 넷째 : 깊은 영계의 생활에서 심령적으로 쓰라린 영적 전쟁에서 군대 마귀와 싸우는 영계, 대장 마귀와 싸우는 영계, 붉은 용과 싸우는 영계에서 억울한 말을 많이 듣는 피해를 당하게 된 금일에 1971년 새 봄을 맞이하는 입춘절기를 맞이하여 간곡히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 나라에 나타나
세계를 깨우치는 선지 국가가 될 것을 믿는 바이다.
3. 성결한 자로 입에 말씀이 임하는 일 (20-21)
이날까지의 많은 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들은 다 완전 역사라는 것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날의 남은 종에게는 완전한 역사가 임할 것을 가르쳐서 죄과를 떠난 자라 하였고 여호와의 신이 같이 하는 자로 여호와의 말씀이 입에 있으므로 이것으로 영원한 새시대를 이룬다고 했다. 이날까지에 모든 선지는 영광스러운 일이 두 번 있을 것을 말할 때에, 첫째는 갈릴리 해변을 가르쳐 말했고, 둘째는 해 돋는 편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동방 땅끝에 있는 우리를 가르친 말씀이다.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부족한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같이 해서 얼마든지 받아서 기록하는 대로 내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일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왜냐하면 내가 연구한다는 것은 조금도 영광이 못되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나려 수많은 책자가 내 입을 통하여 계속으로 나릴 때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에 한 자 글도 쓸 수 없이 되기 때문이다. 언약의 말씀이 묵시로 나타난 나라는 적군에게 먹힘을 당해서 이날까지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지만 그 묵시의 말씀이 햇빛같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그 나라는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나라라고 사60장에 가르쳤으니 역사상 큰 영광은 해 돋는 편에서 원수를 갚는 날에 나타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인간들이 영광을 바라는 것이 욕망의 하나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원수를 갚는 날에 큰 화가 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흑암으로 본다. 정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물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심지어 교회라 하면서 까지도 교권을 잡으려고 하는데서 부패된 세상을 원수 갚는 일이 심판으로 오게 될 때에 영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원수를 갚는 날에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에게만이 본 영광이 있을 것이다.
해 돋는 편에서 두려워 할 영광
( 사 59 : 18 - 21, 60 : 1 - 3 )
서 론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곳은 아시아라고 보게 된다. 에덴동산을 창설할 때도 아시아요, 인간이 타락하여 생활 개척에 번창의 시발점도 아시아요, 무서운 홍수 심판의 방주를 타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노아의 가정도 아시아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셈과 함과 야벳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 모든 선지를 통하여 기록된 역사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인간에게 나타나 보이기도 하고 역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이와 같은 역사가 앞으로 다시 있음으로써 모든 예언은 이루어져 평화의 왕국이 온다는 것이 과거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이라고 보게 된다(사46:10).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장소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씀한대로 갈릴리를 중심하여 이방을 밝히는 빛이 나타났던 것이다(사9:1-2). 그야말로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나사렛 골짜기의 한 목수의 가정으로 자리잡고 자라난 그리스도의 역사는 해변에 나가서 그물 한 개를 들고 있던 갈릴리 벳새다 동네에 어부들이 사도가 되어 세계 열방에 죽은 영들이 살아나는 빛의 종교를 이룬 것이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이제 더 큰 영광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성경의 목적이 큰 구원을 말한 것인데 이 큰 구원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재앙에서 남은자가 되어 눈물 없고 질병 없고 전쟁 없는 새로운 시대에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일을 목적 둔 것이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시작된 빛이 시작이라면 해 돋는 동방에 나타난 영광은 끝을 맺는 역사라고 본 성경은 가르쳤다. 이제 해돋는 편에 나타날 두려운 영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1.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영광이다 (19-20)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가 많이 있지만 주 재림시에 남아 있는 자가 볼 영광을 목적 두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것이다(약5:7-10, 롬8:18). 이미 죽은 자들도 이것을 바라보고 싸웠다면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들의 영광을 가르쳐서 해 돋는 편에서 그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에게 나타날 큰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계 7장에도 해돋는데서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다고 했으니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 이마에 인맞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계10장과 11장에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영광은 원수를 갚는 날에 남은 종이 받을 영광이다(19).
2. 동방 사람에게 마지막 역사가 임하는 일이다 (21)
역사적으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보여준 묵시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영광의 새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이 해 돋는 편에 있는 사람에게 입에 임하여서 그 역사로 완전히 끝을 맺는 일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가 없이는 기독교 종말에 나타날 영광을 누릴 진리 운동을 사람으로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으로 입에 말씀을 주어서 바로 증거하도록 하는 역사가 동방의 역사라는 것이다(사41:1-2, 24:14-15, 46:11). 이것은 두려워할 일이 된다. 왜냐하면 심판 권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 중에 가장 큰 역사는 새시대가 이루어지는 종말의
동방 역사이다.
3. 열방을 통치하는 영광이다 (60:1-3)
이 영광은 세계가 흑암이 덮이는 무서운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를 구원해 주는 역사이니 새시대에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에 본부는 동방 해 돋는 편이라는 것이다. 잃었던 백성을 찾는 역사는 아시아 서편 지중해 옆 유대 나라요, 하나님께로 돌아온 백성을 보호하여 새시대로 인도하는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획선을 그어서 동쪽으로 나가면 우리 대한민국이 된다.
현재에 극동에 모든 제단이 다 황폐화되고 한국만이 남아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만세 라는 우렁찬 애국가를 부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나라에 나타나 보호하는 일이 있을 것을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노래를 부르게 하신 것이라고 믿어진다. 기독교의 진리가 이것인 것을 모른다면 기독교는 지금부터 흑암에 떨어지는 비참을 보게 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대한 민국에 나타날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에 목적을 둔 일이 지상 평화 왕국인데 이것을 이루는 진리가 햇빛 같이 말씀으로 새일수도원 강단에 임했다는 것은 만민 앞에 자랑할 영광이 될 것이다. 경솔한 인간들은 공연히 남의 말에 끌려 이 나라에 나타난 진리를 비소 하지만 그들도 눈물 흘리며 회개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나라에 모든 문제는 이 민족 위에 나타난 진리 이것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60장 전체를 읽어보아서 알 수 있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과거가 아니요, 이제부터 기독교에 나타날 것이니 이것을 바로 알려주는 일이 새일을 고하는 일이다(사42:9이하). 만일 누구든지 이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전멸을 당한다는 것이니 가장 두려운 일이다(사60:12).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
( 사 60 : 4 - 14 )
서 론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롭게 되는 일은 어떠한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하시었다(요17:4-5).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걸어진 어린 양 제물로써 십자가에 죽는 일은 천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가장 영화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영광의 집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사59:19-60:3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영광의 집은 말씀이 동방 사람에게 임하여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빛이 되는 것을 가르쳤는데 새시대가 동방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영광의 집이 영화롭게 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1. 성도들이 거룩한 물질을 가지고 동방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4-9).
각 나라의 성도들이 거룩한 물질을 가지고 동방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방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서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알지 못하던 비밀을 각 나라의 성도들에게 깨닫도록 해주는 일이 있을 적에 진리를 분명히 깨달은 성도들은 진리가 나타난 나라를 향하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동방에 나타난 진리로 말미암아 큰 싸움이 일어나게 되므로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을 피하여 진리를 따라 한 곳에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각 나라 성도들은 자기의 재산을 다 싣고 진리가 나타난 동방으로 모여드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 진리대로 살아 보려는 데서 진리의 동산을 찾아오는 것이요
둘째 : 원수의 세력과 마지막 싸움을 하기 위하여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 나라에 복 받을 성도를 한 곳에 모으는 것은 단체적으로 보호하고 단체적으로 들어 쓰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왕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택한 종들은 마지막 환난이 올 때에 한데로 모이지 않고는 도저히 안되기 때문에 모이게 된다. 각 나라의 복된 사람이 영광의 집으로 모여들므로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섬김을 받게 되는 일이다 (10-12)
하나님께서 어느 나라의 백성이든지 동방의 사람을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전멸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동방의 사람이 심판권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날까지 성경의 종말관을 너무나 혼선 시켜 나온 것을 동방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므로 하나님 앞에 큰 과오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동방에 임한 말씀으로 교회에 큰 혁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주관이나 신앙 노선이 좋다고 주장하며 동방 사람에게 임한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 전멸시킨다는 것이니 계22:17-19이하 사28:11 이하가 다 동일한 뜻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듯이 동방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흑암을 뚫고 나가 새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지상 평화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말씀으로 미혹을 이긴 자라야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새시대의 왕국을 이루는 특권은 말씀을 받은 종에게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동방 사람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떠나서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화를 받을 것이로되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을 살려 주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하여 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여호와의 성읍이 되는 일이다 (13-14)
동방에 말씀이 나타난 곳을 여호와의 성읍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과거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산을 여호와의 산이라고 하였고(출19:23, 24:13), 여호와의 사람들이 역사하던 예루살렘을 성지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언적인 율법과 예언의 묵시를 나타낸 일이지만 종말에 여호와의 영광이 동방에 나타나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곳을 여호와의 성읍이라,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새시대가 이루어지는 중심지가 동방이므로 그곳을 거룩한 곳이라고 칭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제일 영화로운 사람은 지상 축복을 받는 성도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이다. 지상 왕국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극도로 영화롭게 되는 일이니 첫째아담이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지 못하므로 저주를 받았지만 동방에 말씀을 받은 종이 대승리를 보게 되므로 지상에 큰 영광의 새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영화롭게 되는 일이다.
결 론
가장 복되고 영화로운 일은 동방 역사라고 본다. 성경에 숨어 있는 비밀은 동방 역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남은 역사는 동방 역사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방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는 비밀을 모르고 망한 것과 같이 말세에도 또 동방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반대하는 자는 다 망하게 될 것이다.
인간 최고의 영화
( 사 60 :4 - 14 )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빛이요, 생명이요, 사랑이요, 능력이시지만 이것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 영화롭게 하시는데 있어서는 조건없이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간교한 뱀을 내어서 사람을 꾀어 보고 아무리 꾀어도 말씀으로 그 마귀를 이길 때에는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다. 이제 인간의 최고 영화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영광의 집이 되는 일 (7)
영광의 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의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한 곳을 말한다. 사59:18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는 날에는 서방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 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하실 것임이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신과 그 말씀이 동방 사람에게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영광이라는 것은 천국의 영광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지상 평화왕국의 영광을 가르친 것이다.
사40:3 이하를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하였다. 이 영광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 하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그러나 해 돋는 편에 나타난 영광은 죄인을 보를 때의 역사가 아니고 원수를 갚는 날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동방에 나타난 영광은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는 역사를 뜻한 것이다.
사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고 하였고 2절에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다. 인류 역사상 제일 영화로운 일은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제일 중점을 둔 것은 동방 사람에게 말씀이 임하고 권세가 임해서 지상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첫째아담이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지 못하므로 이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동방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승리하게 되므로 지상에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일은 인류 종말에 큰 축복인 동시에 큰 역사이다. 가장 훌륭하고도 영광스러운 곳은 말씀이 임한 장막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임한 영광의 집을 찾아서 모든 족속들이 들어오게 되어 섬김을 받는 일이 있되 열방 재물을 큰 축복 속에서 받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2. 하나님이 나타난 일 (9)
팔레스틴을 섬기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땅을 말한다. 그 땅에는 지상 왕국을 이룰 언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기록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 나타나셨지만 동방 땅끝에는 원수를 갚아 주고 지상에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나타나시는 것이다. 유대 예루살렘에 나타나신 것이 영자적이라면 동방에 나타난 일은 완전히 열매 맺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화로운 일은 예언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요, 예언대로 완전히 끝을 맺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가장 영화롭게 되는 곳은 동방에 있되 여호와가 나타난 곳이라고 말씀하였다. 각 나라의 잠든 영들이 각성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동방을 찾아서 비둘기가 날아오듯이 하나님께 드리려는 재물을 가지고 모여든다. 가장 복되고 영화로운 곳은 여호와가 나타난 동방의 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에 현저히 하나님께서 나타나 직접 말씀을 알려 주고 역사하시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3. 발 둘 곳이 있는 일 (13)
인류 역사상 훌륭한 인물이 그곳에 머물러서 본부를 삼고 일해도 그 땅은 영화롭게 된 사실이다. 하물며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중심지로 삼아서 역사하는데 그곳이 얼마나 영화로운 것인가! 그러므로 동방 땅끝은 하나님께서 발판의 무대를 삼고 역사하므로 그곳에 피해를 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동방에 나타나서 그곳을 중심하여 새시대를 이루므로 동방은 자동적으로 안식 세계의 중심지가 되어 여호와의 성읍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 대한 민국이 얼마나 영화롭게 될 땅이라는 것을 알 자는 심히 적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간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9일간 눈물 흘려 기도하게 되었다. 매일 6시간씩 눈물 흘리며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열 두 별이 한국으로 비쳐지는 것이었다. 그때에 방언이 열리며 내 입에서 통역이 나오기를 너는 네 민족을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열 두 사도적인 역사가 네 나라에서 일어나 열방을 깨우치리라 하는 것이다.
그후 1964년 8월에 일곱 별이 빛을 내어 이 나라로 내려오면서 완전 역사가 네 나라에 임하리라고 하였다. 1965년 1월에도 일곱 별이 빛을 내어 내려오면서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우리 수도원에 40일 금식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지금은 400명에 달하는 금식자가 생기게 되었다. 하늘에서 나타난 이러한 징조를 보아도 너무나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를 통치할 역사의 본부가 되는 동시에 새시대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바이다.
결 론
인류 역사상 영화로운 일은 우리 나라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크게 일어난다는 것을 확신한다. 만일 우리 나라에서 영화롭게 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볼 수가 없다. 우리 나라가 공산당에게 짓밟히고 만다면 모든 성경은 다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이미 동방에 나타났으니 필연코 우리 나라는 영화롭게 된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성산 축복을 목적하고 나갈 신앙 노선
( 사 65 : 1 - 25 )
서 론
기독교는 천국을 목적한 신앙 노선과 성산 축복을 목적한 신앙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 노선은 회개하라, 중생을 받으라 하는 것으로 하나 같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노선을 찾게 된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중생을 받으면 그 시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성산의 축복을 목적하고 걸어가는 노선은 무엇이냐는 것을 모든 선지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65장 본문을 통하여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몸에 성결을 가져야 된다 (1-7)
아무리 은혜 시대에 부르심을 받았다 하여도 몸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진노의 날에 망할 것을 가르쳤다. 이 몸이 죽어서 흙에 가고 영혼이 천당에 간다는 것은 중생 받는 즉시에 죽어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거요, 이 몸이 살아서 진노의 날에 남은자가 되어 새 시대에 가는데는 돼지고기나 가증한 물건을 먹으면 그 몸이 진노의 날에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다(5-6). 왜냐하면 이 몸이 성산의 축복을 받게 될 때는 몸에 완전 성결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등한히 알고 비웃는 자라면 용서없이 망한다는 것이다(4-5). 하나님은 선악과 하나를 먹으면 죽는다는 법도 그대로 시행하셨는데 진노의 날에 몸을 더럽히면 망한다는 것을 어찌 경홀히 볼 수 있는가. 이렇게 되는 것을 합법적으로 보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 몸이 영생할 몸이 되는 축복을 받을 때 돼지고기나 가증한 물건을 먹을 수 없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결을 요구하신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마음에 성결을 요구하시고 몸을 구원할 때는 몸의 성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 완전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8-9)
영혼 구원은 회개하는 즉시에 받는 거요, 성산의 축복은 예언의 말씀을 가감없이 믿고 순종할 때에 받는 것이니 극상 포도가 맛이 변치 않듯이 진리의 말씀에 맛을 잃지 않고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성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에덴 축복을 빼앗겼고, 그 영은 구원을 받은 거와 같이 성산의 축복은 영혼 구원의 정도 사람으로는 될 수 없고 그 몸이 완전 축복을 받아 성산에 들어가게 하는 말씀을 순종해야만 될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노아의 방주를 믿지 않을 때에 육의 구원을 받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도 노아의 가정만 육의 구원을 받은 거와 같이 세계 인류가 전멸되고 성산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들어갈 것이다.
3.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가 죽게 됨 (10-15)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성산의 축복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며 자기 생명을 운명에 맡긴다는 것은 용서없이 원수의 칼에 살육을 당하고 성산의 축복을 믿고 순종하던 종과 같이 성산의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만일 순종하든 하지 않든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라고 다 같이 성산의 축복을 준다면 이것은 의로운 심판이라고 할 수 없다. 성산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새시대는 심판이 있고야 오기 때문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말씀 심판이기 때문이다.
4. 진리를 따라 복을 구할 것 (16)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인데 성산의 축복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대로 죄를 사하시고, 진리대로 은혜를 내리시고 진리대로 성산의 축복을 주는 것이니, 그 진리를 믿고 기도할 때에 속죄도 은혜도 성산의 축복도 받게 되는 것이다. 축복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진리를 모르고 축복을 구한다는 것은 미신의 우상적인 종교라고 보게 된다. 금일에 기독교가 기도를 한다 하여도 진리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상 종교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결 론
17-25절에 성산 축복이라는 것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생의 원죄로 왔던 죽음이 없고, 헛된 수고가 없고 아무런 피해가 없는 세계를 가르쳤다. 자범죄로 영이 죽고 원죄로 몸에 사망이 오고 몸에 고통이 오고 몸에 피해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순종한 자들에게 다시 육의 사망과 고통과 피해가 없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성산 축복이라는 것이다. 영적 구원이라는 것은 자범죄에서 받는 구원이요, 육적 구원은 원죄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가르친 것이다.
종된 자의 받을 축복과 재앙
( 사 65 : 8 - 16 )
서 론
하나님은 종을 들어 쓰시되 시대가 바뀌는 그날에는 시대적인 새로운 법을 따라서 그때 종으로서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이 방법을 고칠 때는 고치는 방법을 반대한다면 그 집에서 축출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심판기가 올 때 종들은 어떤 방법으로 판단하느냐에 대하여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 참포도에 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서 판결이 올 것이다 (8)
우리는 진액을 같이 받은 종이라도 주인이 요구하는 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서 판결 받는 것은 요15:2과 같이 되는 것이니 과실을 맺지 않은 가지는 제하여 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맺게 한다는 말씀과 같다. 가지가 진액을 받는 것은 즙을 바로 내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즙이라는 것은 맛이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양은 포도 같으나 들 포도 맛이 된다면 진노를 받을 것이다(사5:4).
이것은 본질이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본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 비밀을 말한 것이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변하게 한다면 이것은 개포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종이라 하는 사람은 주인과 종과의 질이 같아야 될 것이다. 주인은 남을 극히 사랑해서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보내는데 그 종이 그 사람을 해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종은 용납할 수 없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근본적인 기독교의 본질인 사상, 중심, 양심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은 개포도라 하는 것이다.
2. 성산을 사모하느냐 잊었느냐 하는데서 판결이 난다 (9-11)
하나님께서 말세 종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성산의 축복이다. 살아서 새시대의 성산을 들어가야 할 시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오히려 잊고 세상 인간 운명에 맡기는 그 현실주의에 떨어진 자는 칼에다 붙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판기가 올 때에 살아서 안식 성산에 들어간다는 그 사상과 목적을 부인하는 종은 원수의 손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다 하여도 주시겠다는 축복을 등한히 하는 사람에게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죽어서 천당을 가는 것은 시인하면서도 살아서 성산의 축복을 받는 것은 부인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서의 말씀을 듣고도 가하면 재앙을 받고 감하면 거룩한 도성에 못 간다는 계23장 18-19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택하는 일 (12)
종이라는 것은 언제나 주인이 즐거워하는 일만을 순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은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요, 주인의 것이니 주인이 즐거워하는 일만을 하지 못하면 그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극진히 사랑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환난 중에 양떼를 사랑해서 죽지 않고 살아서 성산에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즐거워하는데 이말 자체를 기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러도 대답도 없고 듣지도 않으니 이것을 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된 종이 되려면 시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축복이 올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올 때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핍박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 종도 시대적인 비밀을 전할 때 사도적인 순교의 생활이 아니라면 참포도 송이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결 론
이러므로 순종하는 종은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할 것이로되 화를 받는 종은 주리고 목마르고 수치를 당하고 마음이 슬퍼서 통곡하게 되며 저주거리가 됨은 여호와께서 친히 그 종을 죽이고 복 받는 종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리 종이라도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라고 했다. 이것은 시대적인 진리의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참된 기도와 맹세
( 사 65 : 13 - 16 )
서 론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하되 참된 기도를 하여야 되며 맹세를 하되 참된 맹세를 하여야만 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여도 열매가 없고 아무리 맹세를 세워도 열매가 없는 사람이라면 성산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성산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려면 참된 기도와 참된 맹세를 세워야 할 것이다.
1.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 (13-16상)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요구하는 바가 어디를 향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인격과 생활은 좌우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차를 타고 가는 나그네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차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싣고 그 목적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니 어디든지 방향을 두는 대로 생활이라는 것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여도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 기도는 우상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진리대로 될 것을 확신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는 것이다(요15:7).
사람이 무엇을 요구할 때에 확신이 없이 무조건 한다는 것은 바람잡이 생활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언약을 믿는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은 진리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기 때문이다. 진리의 신이라는 것은 말씀의 언약을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신이라는 것이다.
둘째 : 진리를 대적하는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기도하는 것이다(약5:13-15).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없이 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을 당하면서도 마귀를 대적하는 강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을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는 목적은 고난이 있어도 진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평강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기도하는 자라야 큰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롬8:17-18). 성신님도 소망 중에 길이 참는 자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롬8:24-27).
셋째 : 사랑에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빌1:8-11)
누구든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조금도 외식이 없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라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는 기도이다.
2.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맹세할 것 (16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맹세를 요구하시는 신이 아니시고 당신이 맹세를 세우시고 행하시면서 당신의 맹세를 따라 맹세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을 따라갈 적에 자기의 맹세는 없이 무조건 그 말씀을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지를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맹세가 중심에 없이 있다가 불리한 조건이 있을 때는 말씀을 따라 행치 않고 그 말씀에서 떠나 자기의 주관에 따라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역사를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하나님께 맹세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자이다.
첫째 : 인을 치는 자이다(요3:33).
어떤 사람이 계약서를 썼는데 거기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면 계약서를 쓴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는 인을 치는 사람에게 맹세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신앙에서 아들을 바치기까지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르켜 맹세를 세웠던 것이다(창22:16-18).
둘째 : 말씀을 인하여 목숨을 바친 자이다(계6:9-11, 20:4).
이 사람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세세 왕권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들이 세상을 통치하게 하기 위하여 심판하시는 것이다. 말씀에 충성을 다하는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과 새시대를 말씀하신 것은 앞으로 하나님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에게 세계 통치권을 맡겨서 세세 왕국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운 종들이 받은 묵시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자에게 환난을 면케 하고 새시대의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니 그 진리를 따라서 맹세를 하고 그대로 나가는 자를 진실한 자라 충성된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앞으로 자자손손이 새 땅 축복을 누릴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를 세워 맹세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맹세를 하는 자라야 되는 것이다.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해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사30:18-19).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구하기도 하고 목숨을 바쳐 맹세하는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새시대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성산에서 복 받는 가정
( 사 65 : 21 - 25 )
서 론
조물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동방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복 받을 가정을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축복을 그 가정에 주는데 있어서는 시험을 해 보고야 주겠다는 것이다. 아담, 하와에게 시험이 없이 영원한 축복을 주었다고 한다면 전 세계 인류를 다 하나같이 시험을 해 보지 않고 복을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담 하와의 가정에도 시험이 있었으니 성산에서 복 받을 가정도 분명히 시험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계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의 가정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잃어버린 성산 축복을 다시 가정에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날까지는 가정적인 구원을 목적하지 않고 개인의 영혼 구원을 목적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가정적인 지상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마귀의 자녀들에게 핍박을 받고 훼방을 받는 가운데서 불신자보다도 곤고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는 성산에서 복을 받게 되는 가정 구원인데 이것을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날까지는 둘째아담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는 문을 열어 준 것이요,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를 마귀로 시험을 해 보고 그 시험을 말씀으로 이긴 자의 가정은 성산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가정을 이루어서 영원히 기뻐하는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문으로 증거하면 다음과 같다.
1. 건축과 재배의 축복을 받음 (21-22)
본문에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데 타인이 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 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지금과 같이 건축과 재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거기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고 길이 길이 살게 될 것과 자기가 재배한 열매를 길이 길이 먹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건축과 재배는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헛된 수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시작하신 일이라면 사람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하여도 그것을 다시 이루어 놓으시는데 이것을 완전 구원의 역사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천당 간다는 것은 원칙으로 알고 살아서 새시대에 간다는 말씀은 읽어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이러한 자의 가족은 원수의 칼 앞에서 다 구푸리고 죽을 것이 기록해졌다(사65:11-12).
아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인류 종말에도 성산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반대하고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반드시 여호와께서 죽이겠다고 말씀하시었다(15). 모든 성경은 두 가지로 구분 지어 말할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교훈은 천국을 중심하여 가르친 교훈이요, 여호와의 교훈은 지상의 성산 축복을 중심해서 가르친 교훈이다. 그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요, 성산의 축복을 가정이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자녀가 된 자들이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에 떨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므로 된다고 사66:2에 말씀했다.
과거에는 간교한 뱀을 들어서 미혹을 하였지만 심판기에는 말씀에 떠는 자를 교회에서 미워하고 쫓아낸다고 5절에 말하였다. 이것은 거짓선지로 말씀이 혼선 되도록 미혹하는 일이 있으므로 미혹을 받은 자들이 말씀에 떠는 사람을 미워하고 쫓아내기까지 될 것을 말씀한 것이다.
2. 자손의 축복을 받음 (23)
아담 하와가 범죄하므로 그 자손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말세의 성도가 미혹을 이기므로 그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조상이 범죄하므로 자손이 억울하게 망했다면 말씀을 지키는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성산에서 길이 길이 자손이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범죄로 속죄 종교가 시작되어 세계적인 인류의 타락을 구원시키는 종교로 이룬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이며 그 십자가를 믿으므로 중생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 미혹을 이기고 지상의 성산 축복을 받는 나라가 이루어지므로 근본적인 에덴 축복을 다시 받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성산의 축복을 받는 성도의 가정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그 영혼의 구원받는 일은 그 자녀를 세상에 두고 죽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말씀에 떠는 하나님의 종들이 받는 축복은 길이 길이 그 자손이 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해함도 상함도 없는 안식을 받음 (24-25)
동물들까지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므로 동물들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계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사람이 범죄하므로 자연계까지도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이긴 사람들이 복을 누리는 성산이 이루어 질 때에는 어떠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나 상함을 받는 일이 다시는 없게 된다. 이때에는 동물도 사람을 돕는데 전력을 두게 될 것이고 모든 자연계도 사람을 돕는데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된 가정은 성산의 축복을 받는 가정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정의 전 식구가 후세까지 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예언을 기록하게 하실 때에 성산의 축복을 받을 주의 종들에게 절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전하기 위하여 빠진 것이 하나도 없도록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선지서이다(사33:16).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
( 사 66 : 1 - 4 )
서 론
기독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종교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권고하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열매가 있고 하나님께서 권고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에 그 제사는 오히려 저주를 받는 일이 되는 것이다. 본 장의 말씀은 심판기에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를 두고 가르친 말씀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권고하며 어떠한 사람을 권고하지 않는가 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말한다.
1.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자 (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권고하기를 기뻐하시되 무조건 권고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자라야 권고하신다.
첫째 : 마음이 가난한 자이며
둘째 : 심령에 통회하는 자이며,
셋째 : 말씀에 떠는 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합당치 않게 생각을 하고 자기의 주관을 따라서 일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도저히 권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어떤 고집이나 주관을 버리고 자기 마음보다도 대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만을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교통하는 것은 심령이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합당치 못한 생각을 가진 것이 없이 자기 부족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만 아는 마음 가운데 지은 죄를 항상 통회할 때에 하나님은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을 권고하는 것이다.
우리가 육의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에 부족이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고 외모를 보기 때문에 사람이 보는 도덕적인 행위로서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심령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아무리 도덕적인 행위는 옳다 하여도 마음가운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다. 오히려 도덕적인 행위는 부족하다 하여도 심령 통회가 있는 사람은 권고할 것이로되 도덕적으로 행하는 일이 옳게 보여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볼 때에 외식하는 자로 보기 때문에 가까이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시므로 진리를 숨김없이 사람에게 깨닫도록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방심하고 존중히 생각을 하지 않고 떠는 마음이 없다면 말씀대로 준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권고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할 때에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한 것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데 있어서는 마음에 아무런 욕망이 없이 하나님의 참되고도 완전한 사랑을 바라보고 항상 마음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삼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공장의 주인이 계획하는 것을 직공이 무시하고 자기의 주관을 내세운다면 그 공장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든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보다도 자기 주관을 내세우는 자라면 그 사람의 제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권고하시지 않는 자 (3-4)
하나님 앞에 아무리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그 제사를 가증히 보게 되는 것은
첫째 : 자기의 길을 택하는 일과
둘째 : 가증한 것을 기뻐하는 일과
셋째 : 순종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제물을 드려도 그 제물을 살인함과 같이 더러운 개 같이 돼지의 피와 같이 여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물보다도 진리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보다도 자기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보다도 오히려 마귀가 역사하는 그 일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도저히 역사를 나릴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가 성신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도 세상의 오락적인 기쁨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세상 노래를 좋아한다면 하나님은 성신을 부어 주는 것보다도 유혹을 그들에게 부어주고 평강보다도 두려워하는 일을 그들에게 주어서 항상 공포 속에서 허덕이는 생활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을 적에 하나님도 그 예배를 받을 수 없이 되므로 오히려 헛된 예배를 드리다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종교 부패라는 것은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을 적에 자동적으로 부패한 교회가 되어 멸망을 자취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은 당신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당신의 말씀을 청종치 않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은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제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실 때에 모든 일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권고치 않을 적에 모든 일이 재앙의 날에 그 재앙을 면치 못하는 일이 되므로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고 제사를 드리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망하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권고와 제사 문제에 대하여 이 본문에서 깊이 깨달아 헛된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오늘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니 예배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권고를 받는 인격과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에 떠는 자의 시련과 축복
( 사 66 : 5 - 14 )
서 론
인생의 최고의 인격과 축복은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할 때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완전이요, 순종치 않으면 타락이라는 것이니 하나님과 인생과에 연합할 수 있는 것은 말씀에 의하여 연합될 수도 있고 멀리 떠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그 뜻을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니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필요가 없고, 말씀이 없이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니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되 말씀을 언약으로 세우시고 말씀대로 사람에게 역사해서 사람에게 완전한 인격도 완전한 축복도 주시는 것이다. 이제 말씀에 떠는 자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며 어떠한 축복이 온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시련을 당하게 됨 (5-9)
이 시련이라는 것은 교회 밖에의 사람을 통하여 오는 것보다도 교회안 사람들에게 시련이 올 것을 가르쳤다. 어찌하여 교회안 사람에게 시련을 받게 된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유없이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 말씀 때문에 큰 혼란이 오는 때에 말씀에 혼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그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말씀대로 역사하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유혹의 영이 들어가 역사하기 때문이다(4).
앞으로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혼선되게 가르치는 거짓선지자들은 말씀을 중심하지 않고 교권 중심, 인물 중심, 인간 문학 중심으로 흐르는 자들이 다수요, 그들은 마음에 사랑이 없으므로 오히려 말씀에 떠는 사람을 미워하고 교회에서 쫓아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비방하는 무리들이다. 이러한 교회가 될 때에 하나님은 그 교회를 대적으로 여기시고 원수를 갚는 심판을 하되 용서할 수 없는 진노의 재앙으로 벌하시게 되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가 여러 가지 교파로 나뉘어 있지만 심판기에는 말씀에 떠는 자와 말씀을 만홀히 아는 자와 한 교회에 있을 수 없이 분열이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날까지는 기독교가 심판기가 아니므로 믿음으로 중생을 받고 다같이 민족적 국경에 차별 없는 일반적인 은혜를 받았지만 심판기에는 이사야 성경에 가르친 심판과 새시대를 가르친 말씀에 의하여 심판하기 때문에 말씀에 떠는 자 외에는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게 될 때에 성산에 축복을 받을 사람에게 형제들을 통하여 큰 시련이 오게 될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쭉정과 알곡을 갈라서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되므로 말씀에 떠는 시온의 자녀는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자기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는 없고, 또는 완전한 축복을 받을 교회를 이룰 수도 없게 될 것이다.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목적은 말씀에 가감없이 믿고 순종해 나가기 위한 데서 받게 되는 시련이다.
2. 축복을 받게 됨 (10-14)
1) 함께 기뻐하게 됨(10)
말씀에 떠는 자들이 다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은 잠간의 시련을 겪었지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오므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씀에 떠는 종들을 통하여 많은 백성이 새시대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 기쁨은 다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복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이 즐거운 에덴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떨지 않는 아담 하와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는 다시 고통이 없는 기쁨의 생활이 있게 하신다.
2) 만족함이 있게 하신다(11)
최고의 만족이라는 것은 말씀에 떠는 사람에게 있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축복이 오니 이 축복이라는 것은 최고에 만족을 주는 축복이다. 이날까지 저주받았던 만물은 최고에 만족을 주는 것이니 예를 든다면 젖먹는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안에서 만족한 것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의 생각밖에 만족을 주는 것이니 이것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은 온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떠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책임을 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3) 평강을 주심 (12)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사랑하는 제자를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신 것은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잃어버렸던 평강을 다시 주신다는 것을 뜻한 것이다. 하나님은 평강의 신이시니 당신이 가진 평강을 인생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평강의 영광을 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랑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께서 오히려 슬퍼하시고 인생에게 그 평강을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4) 친히 위로하심(13-14)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에서 순종한 자는 친히 위로하시되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를 위로할 것인즉 네 마음이 기뻐서 네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 몸이 늙지 않고 항상 청년 같이 젊어서 영원히 있을 것을 가르쳤다. 사람의 몸이 뼈가 피곤해지고 온 몸의 피가 피곤한 것은 죄 값이라고 본다. 우리 영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고 몸까지 영생하는데는 항상 연한 풀같이 소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불신자와 같이 그 몸이 죽는 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고 그 영을 잠시동안 낙원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뿐이고 완전한 구원이라는 것은 그 몸이 영원히 청춘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을 가르쳤다.
결 론
가장 가련한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떨지 않는 인간이요, 가장 복되고 화려하게 되는 사람은 말씀에 떠는 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 복음을 주신 목적은 말씀에 떠는 자에게 자손 만대에 축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소위와 사상을 아시는 하나님의 역사
( 사 66 : 18 - 24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종말의 역사를 일으킬 때에 그 종들의 소위와 사상을 아시고 당신과 의합이 된 자를 들어 쓰는 것이니, 그 종의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합당하고 그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들을 한데로 모아서 역사를 일으켜 그들로 말미암아 완전한 새로운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 족이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 합하지 못한다면 버릴 것이고 아무리 이방족 중에서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합한 자라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제사장과 레위 족을 삼아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심 (18)
하나님께서는 사59:19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원수에게 보응 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때에는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는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고 사60:1에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리니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서 만민을 가리울지라도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말씀했다.
그러면 서방보다도 해돋는 편, 동방 사람이 소위와 사상을 바로 지도할 수 있는 주권이 있게 될 것이다. 금일에 소위 과학 문명이라 하는 것을 중심한 소위와 사상은 하나님과 대적이 될 것이로되 아무리 가난하고 무식한 자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과 합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2. 세계 통일의 완전 역사 (19)
하나님께서 당신이 볼 때에 소위와 사상이 옳은 자라면 그를 들어서 종말에 큰 역사를 일으키므로 세계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그 사람의 소위와 사상을 검토함으로써 합당한 자라야 그를 들어서 쓰시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문명으로 오는 새시대를 말하는 유물론 공산 사상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보호가 있고 말씀대로 승리가 있고 말씀대로 새시대가 올 것을 믿고 일하는 사상을 가진 자라야 그 말씀을 세계에 전파할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심 (20-21)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위와 사상을 바로 가진 자라면 완전한 왕권을 주시되 이스라엘에게 세웠던 그 왕권을 영원히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이스라엘은 약속을 말씀으로 받은 자라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라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는 레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에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것은 그때의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종말에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싸워 나가는 소위와 사상이 바른 종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라고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를 들어서 유대와 예루살렘에 관한 이상이라고 1장, 2장에 1절을 말한 것은 과거에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결론적으로 분명히 가르친 것이 사66:18 이하라고 보게 된다. 지금 소위 신학자들이 하나같이 이사야의 경고를 과거에 이스라엘에 대한 것으로 돌린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보게 된다.
4. 자손 만대의 축복을 줌 (22-23)
하나님께서 소위와 사상을 보고 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을 통하여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데는 그 자손이 함께 복을 누리되 영원한 왕국이 항상 있을 것 같이 그들의 자손과 이름이 항상 있을 것을 말씀했다.
5. 패역한 자를 영원히 없이 함 (24)
패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상을 가진 것을 뜻한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그 소위와 사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진 자는 영원히 그 자체가 없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심판이 오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소위와 사상이 바른 사람을 택하여 그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되 완전한 왕국을 이루는 것이니 금일에 소위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종교를 아편이라, 독약이라 하는 것이니 이런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납한다면 새시대의 영광을 누릴 수 없고 소위와 사상이 바른 자라야 신천 신지의 영원한 왕국을 축복으로 받되 그 자손까지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