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일서 강의

  

머  리  말

  본서는 영계가 혼선되고 말씀이 혼선된 교계에 큰 도움을 주기 위한 글입니다.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보면 기독교의 신앙 지침이 되는 요한일서를 분명히 알아 거짓선지의 미혹을 이기고 나가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 목 차 -

총  론

1 장  그리스도의 완전 속죄

2 장  성도의 생활

3 장  성도의 소망과 성결

4 장  성도의 영계 분별

5 장  성도의 승리의 열매

 

 총   론

  본서를 기록함은 말세에 성도들의 영계가 혼선되지 않도록 한 목적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혼선시키는 거짓선지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요1서 1:1-2, 2:22-24).

  왜냐 하면 소위 로스틱이라는 이단설이 나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설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천사가 나타나듯이 인성이 없는 신으로 사람에게 나타났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한 사람의 몸이 아니라면 속죄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친히 사도 요한은 밝히 증거한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요1서 2:2).

  (2) 소위 신자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그대로 가지지 못하는 세속주의를 막기 위한 목적이니 아무리 사랑이라 하여도 타협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도저히 기독교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은 공의와 진리를 위한 목적이 완성되기 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요1서 2:15-17).

  (3)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설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의 가르침 없이 사람의 생각으로 가르치는 것은 마귀의 일이라는 것을 강하게 가르쳤다(요1서 4:5, 2:27). 왜냐 하면 마귀는 언제나 그때 그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세상 사람이 잘 받아들이도록 진리를 변질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니,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가르친 그대로 교훈 안에 있어야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장 그리스도의 완전 속죄 (요절9)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완전 속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체가 생명의 말씀으로 인간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신성 없는 사람이 된다면 만민의 죄를 대속할 만한 인격이 없다는 것이요 또는 인성이 없다 해도 완전한 대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요한은 증거 했다. (1)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친히 영원한 생명의 자체가 되는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그 생명을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복음은 필요가 없고 또 복음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요한은 친히 그 생명을 목도하고 체험한 자로서 담대히 전할 때에 이 생명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교제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제라는 것은 생명을 통하여 연결되는 뜻을 가르쳤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을 적에 성부 성자의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관계를 가짐으로 사귀어 지는 것이니 이것은 생명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사귐의 교제가 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기쁨을 소유할 수 있는 한 단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2-4)

 

(요일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생명은 조금도 어두움이 없는 빛에서 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완전한 속죄를 받으려면 빛 가운데서 행하는 자라야 속죄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속죄라는 자체는 어두움의 세력을 없이하고 빛으로 하나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개라는 것은 어두움을 향하여 가던 자가 빛을 향하여 따라 가는 것이 참된 회개이기 때문이다. (5-7)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어떠한 사람이 자기의 부족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리의 빛 가운데 있는 자라고 볼 수 없다. 빛이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적은 죄라도 드러나게 하는 것이며 빛이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자는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데서 주님 앞에 자백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자백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빛이 마음에서 역사할 때에 자동적으로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 양심으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을 중심적인 회개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숨기려 하는 사람은 숨기는 시간에 그 자체가 거짓이니 하나님의 진리는 그 사람 마음 가운데 역사할 수가 없다. 말씀이라는 자체는 죄가 없는 사람을 향한 교훈이 아니고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인생을 구원해 주겠다는 것이 말씀이니 자기가 옳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므로 말씀이 역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8-10)

 

2장 성도의 생활(요절 10)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사는 생활이 아니고 항상 그리스도의 대언 기도와 연결된 생활이다. 우리는 죄의 권세 잡은 마귀와 싸우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니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고의적이 아닌 실수가 있을 때에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항상 대언 기도함으로 그를 붙들어 주고 인도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자기의 양이요 종이니 책임지고 항상 기도하는 주께서 그를 다스리는 것이다. (1)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은 온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속죄를 받은 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을 전하게 된다. 내가 용서를 받았으니 남도 용서를 받도록 해보려는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성도의 생활이 아니요 거짓 선지의 생활이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대언 기도하는 목적이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자기가 용서를 받은 것 같이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구원해 주고자 하는 자를 들어 쓰기 때문이다. (2-4)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누구든지 참으로 남을 살려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히 역사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니 주님이 행할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은 대언 기도의 목적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들어 쓰시되 완전한 사랑의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살려 보려는 예수님께서는 남을 살려 보려는 사람을 들어서 완전히 구원해 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5-6)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하나님은 자체가 사랑이시니 죄인을 구원하는 목적은 당신의 사랑의 법을 세상에서 진행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에게는 참된 사랑이 없음으로 그 사랑을 먼저 주시고 사랑 받은 자로서 남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7-8)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일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자가 아니다 왜냐 하면 사랑을 그 마음에 받았다면 마음이 밝을 것이로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심령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흑암이라는 것이다. (9-11)

 

(요일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성도라는 것은 그 죄를 완전히 사함을 받고 조물주 하나님은 사랑의 자체이신 것을 알며 또는 악한 마귀와 싸워서 승리의 생활을 하는 것을 성도라 하는 것이다. (12-13)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말씀이 그 속에 있는 자는 흉악한 마귀를 이기는 생활이니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따라가는 타협적인 사랑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정욕을 따라서 오는 것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도저히 정욕적인 방면으로 흐를 수가 없고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남을 살려 보려는 거룩한 진리의 사랑이 아니고는 그 밖의 소위 사랑이라는 것을 따라서 얼마든지 죄를 짓게 되는 마귀의 미혹이 있는 것이다. (14-17)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소위 거짓 선지라는 것은 말세 교회를 망치는 타협적인 신앙 노선에서 사도적인 거룩한 신앙 노선을 대적하는 행동을 말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사도 시대에도 사도의 교훈을 순종치 않고 탈선된 생활에서 나갔던 것이다. 오늘에는 이 거짓선지가 큰 세력을 잡고 교회를 망치는 것이 심판기라 하는 것이다. (18-19)

 

(요일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이니 이 진리라는 것은 성신이 가르치는 아래서 성경을 기록한 것이요 또는 그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믿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만 되는 것이니 여기에는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정확 무오 한 진리이다. (20-21)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기의 주관이나 지식을 따라 판단하는 것은  고의적으로 진리를 부인하는 것을 가르쳤다. (22)

 

(요일 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일 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우리 성도의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절대적으로 시인하되 처음부터 가르친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면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성도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는 동시에 조금도 변치 않고 나가는 것을 성도의 참된 신앙 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23-24)

 

(요일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일 2: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신앙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약속을 믿는 동시에 절대로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싸움이라는 것은 육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싸우는 것이니 성령을 받은 자로서 어떤 세상의 학적인 인간 지식에 끌리지 않고 완전한 진리의 신의 가르침을 받아 거짓이 없는 진리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만일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어떤 두뇌에서 난 학적으로서 진리를 분석한다는 것은 거룩한 사도 신앙의 대적이 되는 것이니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말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라면 누구든지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담대히 서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끝까지 지켜 나가는 자를 위하여 오시기 때문이다. (25-28)

 

(요일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줄 알고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참으로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볼 수  가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가 그 진리를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29)

 

3장 성도의 소망과 성결(요절3)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성도의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완전한 자녀라는 명분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이 비밀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비밀의 진리에서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은 택한 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완전한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지는 데서부터 있게 되는 것이다. (1)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소망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꼭 같이 된다는 것이니 우리가 지금 중생을 받고 성신을 받은 것은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으로 역사하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몸이 되어 승천하였고 승천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성령을 받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 하던 자를 당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서 완전한 성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2)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누구든지 주를 향하여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라면 율법을 초월한 중심 성결에서 조금도 흠과 티가 없이 살아 보려는 신앙 양심에서 거짓이 없이 살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소위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 정욕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소망에서 체험적인 생활을 못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체험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는 중심 속에서 성결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3)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우리는 죄와 싸우는 생활이니 죄라는 자체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불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탈선된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 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의 몸으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 중심의 성결을 위하여 성령으로 역사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승리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주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4-5)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 3: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주안에서 거할 때에 죄를 이기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자라 하면서 죄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분명히 그리스도를 바로 안 자로 볼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말하면서 타협적인 신앙 노선에 있다면 이것은 마귀 미혹에서 사는 생활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죄와 싸우다가 혹 실수가 있다 하여도 주님은 대언 기도하심으로 그 죄를 이길 수 있게 역사해 주신다. 이것은 택한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시니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사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범죄에도 잠간의 실수도 있고 고의적인 실수도 있으니 중심은 깨끗하나 마귀로부터 오는 세력을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자도 있고 짐짓 중심에서 계획적인 범죄를 하는 자도 있으니 이와 같은 자는 가인과 같이 그 영이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6-8)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씨를 마음에 받아서 중심에서부터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할 때에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역사해 준 것을 목적한 것이니 중심에 죄를 계획적으로 품고 다니는 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고 볼 수 없다. (9-10)

 

(요일 3:11)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도덕에 국한된 형식을 취할 수 없고 중심에서부터 자동적으로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던 가인과 같은 죄는 그 자체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다. 이것은 악마적인 행동이다. (11-12)

 

(요일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요일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미움을 받더라도 그것을 이상히 볼 것은 아니다. 필연적인 결과로 되는 것이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갈 길을 걷는 생활이다. 그러나 사랑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망 안에 있는 영이다. 그 영 자체는 살인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13-15)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보다도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워 준다는 것이 사도적인 신앙 사상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없다. (16)

 

(요일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러므로 형제의 궁핍을 보고 자기 재물이 있으면서도 도울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다고 볼 수 없고 형식에 불과한 외식이 될 것이다. (17-18)

 

(요일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진리란 자체는 남을 살려 보려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주님과 하등에 관계가 없는 것이니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자는 주 앞에서 굳세게 역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주님은 중심을 보고 들어 쓰기 때문이다. (19)

 

(요일 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요일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우리는 주의 종이니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가지고는 도저히 힘을 얻을 수 없다. 거리낌없이 일하는 종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특권이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가 응답을 못 받는 것은 그의 기뻐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히려 슬퍼 할 것이다. (20-22)

 

(요일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겠다는 약속이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되 인간을 구원한다는 그 진리에 따라 주는 것이니 당신의 신을 보내되 당신이 하실 일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완전한 자를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성령이니 누구든지 남을 살려 보려는 심정으로 나아갈 때에 성령은 강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오직 성령으로만 우리는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주의 일이라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23-24)

 

4장 성도의 영계 분별(요절 6)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우리는 영계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는 데는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고 속하지 않는 것을 바로 분별해야 한다. 아무리 믿는다 해도 영을 분별치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당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적 활동이 있다 해도 예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나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한 몸으로 오시어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을 완전히 믿는 자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온 영이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기독교의 근본적인 구원의 진리는 여기서부터 완전한 진리가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을 확실히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닌 것이다. (1-3)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기독교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은 이것이 근본 대적이 되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 시작된 영적 싸움은 오늘까지 계속되어 말세에는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것은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인간 학적으로 진리를 해석하며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누가 참으로 신앙을 지키나 보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하는 것이니 필연코 승리는 사도적인 신앙에 있다. (4)

 

(요일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누구든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자는 세상적인 마귀 일에 속한 것임으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그 말에 따라갈 것이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고 힘을 초월하는 진리를 믿는 것이 사도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5-6)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을 아는 자는 남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 속에서라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에서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약속하신 말씀이니 그 영이 사랑의 신의 감동을 받은 자 외에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7-8)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독생자를 주었다는 사랑이니 이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첫째 열매이다. 그러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서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과 죽기까지 그 뜻에 순종한 우리 주님의 사랑의 심정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체험한 자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랑에 녹아지는 동시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됨으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일하게 된다. (9-11)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육안으로 보고서 알았다는 것보다도 그 사랑의 신의 역사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온전함을 이루어 주는 것을 체험 할 때에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을 육안으로 보았다 하더라도 사랑의 역사가 그 마음에서 온전함을 이루어 주는 역사가 없다면 이것은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생명적인 완전한 체험의 종교라는 것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12)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시니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은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세상에 이루시되 당신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대행자로 쓰기 위한 목적이니 남을 살려 보려는 심령이 없다면 그 사랑을 증거하는 종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으니 조금도 변할 수 없는 절개를 자동적으로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자라면 하나님과 일체된 관계에서 역사하는 종이 된다. (13-15)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역사하다가 그 사랑 속에서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때에 담대함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심판날에 가서 완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는 것이니 누구든지 그 사랑 속에서 역사하던 종이라면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자로서 환난과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이 될 것이다. (16-18)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는 이 사랑을 알아 완전한 인격을 이룬 자라면 도저히 형제를 미워할 수 없다. 형제를 미워한다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서 떠났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는 맘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19-21)

  

5장 성도의 승리의 열매(요절 4)

 

(요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성도의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로만 받아서 있게 되는 것이니 이 믿음을 소유한 자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그로 말미암아 난 자들을 사랑하게 됨으로 하나를 이루게 된다. (1)

 

(요일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자동적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게 된다. 왜냐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이니 이 승리라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마귀에게 속한 세상을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쉬운 일이 된다. (2-4)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신앙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없어지고 의인으로 취급할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날 때에 그 몸은 사람을 통하여 그 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임하여 역사할 때에 그 능력으로 물과 피가 이루어져서 거룩한 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 피로 산 백성이 될 때에 우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영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역사할 때 완전한 증거를 나타내기도 하고 또는 그리스도의 형체가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역사하는 것이다. (5-9)

 

(요일 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누구든지 물과 피로 임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기 안에 큰 증거가 있게 된다. 이 증거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이루어진 역사가 죄를 없이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증거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는다 하여도 그리스도의 형체가 이루어지는 증거가 없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신앙을 소유한 자라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증거에 대하여 믿지 않고 대적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10)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의 받은 증거라는 것은 영생의 생명이 사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내게 오는 데서부터 산 활동이 있게 된다. 영생이라는 것은 중생을 받은 그 시로부터 내게 부여되는 것이니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써 영생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영생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데서 행위라는 것은 영생 받은 자의 필연적인 열매가 된다. 다시 말하면 영생의 생명을 받고 보니 세상을 분토 같이 보고 이 생명을 소유한 인격으로서 그리스도와 같이 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도덕을 초월한 생명의 열매이다. (11-12)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받은 것이니 영생을 받은 자로서 영생을 주신 주 앞에 담대한 것은 뜻대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되는 것이다. 기도도 영생을 받은 자의 기도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역사가 있다. 기도라는 것은 먼저 주께서 주시는 영생을 받은 자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을 특권이 있는 것이니 우리가 구할 때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요구를 이루어 주신다는 것보다도 먼저 주고 싶은 심정에서 기다리는 주님이시니 이것을 믿고 담대히 구할 것뿐이다 (13-15)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기도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가 완전케 해주시는 주님께 구하는 것이니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생명을 더 풍성히 주는 일도 있다. 왜냐 하면 주님은 중심을 보는 것이니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대로 살아 보려고 하는 자라면 뜻대로 살아지도록 이루어 줄 책임이 있음으로 그 사람에게 과오가 있다 하여도 주님은 응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짐짓 중심으로 진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형제를 해치고자 하는 자에게는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16-17)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절대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켜 줄 것이니 누구든지 영생을 받아서 주의 뜻대로 살아 보려는 사람이라면 범죄에 떨어져서 마귀의 밥이 되도록 하시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시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당신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자는 목적이 아니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왕권을 누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절대적인 보호가 같이 하는 것이다. (18)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온 세상은 악의 세력 안에 있는 것이니 아무리 세상에 악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속한 자를 승리하도록 역사하기 때문이다. (19)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일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지각이 있도록 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도록 역사하는 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로서 절대 우상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우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자는 절대로 영생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써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된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