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복음

   

 

목  차

1.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막 1:21-28)

2.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증거(막 2:1-12)

3. 안식일에 대한 증거(막 3:1-6)

4. 구원의 증거(막 4:35~41)

5.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하자(막 7:1-14)

6. 열매가 나타나는 비결(막 7:24-30)

7.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막 10:28-30)

 

 

 

하나님의 아들된 증거

- 막 1:21~28,  요절:24 -

 

 서 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적에 언제나 말씀이 계신 동시에 그 말씀을 확증하는 이적이 따르게 한 것이다. 오늘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이적이 나타난 일을 공부한다.

  우리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천사가 와서 마리아와 요셉에게도 현몽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했고(눅1:32), 마3:17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증거하셨고 마17:5에도 증거했다.

  그러나 오늘은 더러운 귀신이 쫓겨가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한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마귀를 멸하려 왔다는 증거 (24상반절)

  예수는 세상에 오신 목적이 마귀를 멸하려 왔다는 증거를 하게 되었다. 이제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는 일에 대하여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 십자가의 승리는 개인적인 마음속에 있는 마귀를 멸하여 없애는 능력이 있다 (엡2:1~5)

  누구나 다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의 지배를 받으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 행동을 하던 자들이 십자가를 믿을 때에 그 역사가 완전히 없어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무리 애써도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 가운데 있는 더러운 정욕의 사단을 멸할 자는 전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의 능력의 역사로만이 없어진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의 산 체험이 되는 일이다(롬8:13).

  둘째 : 촛대교회 안에 마귀가 소멸됨 (계11:4~5)

  지금은 교회 안에 쭉정과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다고 본다. 그러나 주 재림시 재앙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는 촛대교회 안에는 조금도 마귀의 역사를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없고 사단의 세력이 전부 소멸되는 권세 역사가 같이 하므로 그 교회는 완전히 승리하는 교회로 남은 교회가 된다(계12:13).

   셋째 : 성산에 마귀 역사가 없게 된다 (계20:1~3)

  지금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같이 세상에 살면서 오히려 마귀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히지만 천년왕국의 성산이 이루어질 때는 마귀 역사를 완전히 세상에서 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할 때는 개인 속에서 역사하던 마귀를 멸하고 단체적인 교회를 구원할 때는 교회 안에 마귀를 멸하고 세계적인 평화왕국이 올 때는 세계적으로 마귀를 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은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했던 것이다.

 

  2대지 :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인 것을 증거함 (24하반절)

  아무리 더러운 귀신이라도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증거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예수는 거룩한 몸이다.

  요일5:6을 보면 물과 피로 임한 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다 그 피가 더러운 사단의 질이 있는 죄악의 피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예수의 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물과 피로 임한 몸이므로 마귀도 예수를 볼 때에 자기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자라고 했던 것이다.

  둘째 : 영적으로 거룩한 자이다.

인간의 영들은 다 마귀의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죽은 영들이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아들의 영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온 것이다(요17:5~8).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한 것이다.

 

  3대지 : 아들된 권세로 귀신을 쫓아냄 (25~28)

  언제나 마귀는 조금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귀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않고 권세로 명령할 때에 귀신이 나갔던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귀신은 순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귀신이라는 것은 범죄한 자에게만 침노할 권리가 있지만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떨면서 물러갔던 것이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거룩함을 받은 자 앞에는 귀신은 물러가게 되는 것이다(행16:17~18).

 

 결 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바로 아는 데서부터 인생은 살 길이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억울하게 마귀의 미혹을 받고 죄를 범하므로 죄의 종이 되어 마귀 권세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이 없는 것이다(요일5:12~13).

 

 

 

하나님의 아들된 증거

- 막 1:21~28,  요절:24 -

 

 서 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적에 언제나 말씀이 계신 동시에 그 말씀을 확증하는 이적이 따르게 한 것이다. 오늘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이적이 나타난 일을 공부한다.

  우리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천사가 와서 마리아와 요셉에게도 현몽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했고(눅1:32), 마3:17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증거하셨고 마17:5에도 증거했다.

  그러나 오늘은 더러운 귀신이 쫓겨가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한 일은 다음과 같다.

 

  1대지 : 마귀를 멸하려 왔다는 증거 (24상반절)

  예수는 세상에 오신 목적이 마귀를 멸하려 왔다는 증거를 하게 되었다. 이제 예수께서 마귀를 멸하는 일에 대하여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 십자가의 승리는 개인적인 마음속에 있는 마귀를 멸하여 없애는 능력이 있다 (엡2:1~5)

  누구나 다 공중에 권세 잡은 마귀의 지배를 받으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 행동을 하던 자들이 십자가를 믿을 때에 그 역사가 완전히 없어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아무리 애써도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 가운데 있는 더러운 정욕의 사단을 멸할 자는 전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의 능력의 역사로만이 없어진다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의 산 체험이 되는 일이다(롬8:13).

  둘째 : 촛대교회 안에 마귀가 소멸됨 (계11:4~5)

  지금은 교회 안에 쭉정과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다고 본다. 그러나 주 재림시 재앙의 날에 남은 교회가 되는 촛대교회 안에는 조금도 마귀의 역사를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없고 사단의 세력이 전부 소멸되는 권세 역사가 같이 하므로 그 교회는 완전히 승리하는 교회로 남은 교회가 된다(계12:13).

   셋째 : 성산에 마귀 역사가 없게 된다 (계20:1~3)

  지금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다 같이 세상에 살면서 오히려 마귀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히지만 천년왕국의 성산이 이루어질 때는 마귀 역사를 완전히 세상에서 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할 때는 개인 속에서 역사하던 마귀를 멸하고 단체적인 교회를 구원할 때는 교회 안에 마귀를 멸하고 세계적인 평화왕국이 올 때는 세계적으로 마귀를 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은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했던 것이다.

 

  2대지 :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인 것을 증거함 (24하반절)

  아무리 더러운 귀신이라도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증거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예수는 거룩한 몸이다.

  요일5:6을 보면 물과 피로 임한 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다 그 피가 더러운 사단의 질이 있는 죄악의 피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예수의 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물과 피로 임한 몸이므로 마귀도 예수를 볼 때에 자기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자라고 했던 것이다.

  둘째 : 영적으로 거룩한 자이다.

인간의 영들은 다 마귀의 권세를 벗어날 수가 없는 죽은 영들이지만 예수님은 거룩한 아들의 영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온 것이다(요17:5~8).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한 것이다.

 

  3대지 : 아들된 권세로 귀신을 쫓아냄 (25~28)

  언제나 마귀는 조금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귀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않고 권세로 명령할 때에 귀신이 나갔던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귀신은 순종할 수 없을 것이다. 귀신이라는 것은 범죄한 자에게만 침노할 권리가 있지만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떨면서 물러갔던 것이다. 지금도 예수를 믿고 거룩함을 받은 자 앞에는 귀신은 물러가게 되는 것이다(행16:17~18).

 

 결 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바로 아는 데서부터 인생은 살 길이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억울하게 마귀의 미혹을 받고 죄를 범하므로 죄의 종이 되어 마귀 권세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이 없는 것이다(요일5:12~13).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증거

- 막 2:1~12,  요절:10 -

 

 서 론

  인류 역사상 많은 선생도 있고 또는 소위 성인이라는 이름도 가진 자가 있지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일이다.

  오늘은 예수께서 죄를 사하는 증거가 있는 일에 대하여 본문 성경에서 알 수 있다.

 

  1대지 : 믿음을 보고 죄를 사하심 (1~5)

  믿음이라는 것은 도덕적 행위를 초월한 의로운 행동이라고 본다. 친구의 병을 고치겠다고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먼길을 왔다는 것도 또는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상에다 달아 내렸다는 것은 그 믿음을 의로운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완전한 대상자를 의심없이 믿는 동시에 믿음으로 행동을 개시하게 되는 것이 있게 된다. 왜냐 하면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신앙의 대상자로 삼을 적에 움직여진다는 것은 도덕을 초월한 행동이라고 본다.

  도덕이라는 것은 완전한 자에게 대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도덕상이라는 인격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동으로는 죄를 사한다는 응답을 주님께 받을 수 없고 중심에서 꼭 살려 줄줄 믿는 신앙 양심에서 움직여질 적에 사죄의 응답이 오는 것이다.

 

  2대지 : 중심에 잘못된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 (6~9)

  소위 종교인이라 하는 서기관들이 자기만 옳다는 교만에서 눈이 어두워지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고 중심에 예수님을 참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하는 말이 사람이 볼 때는 가장 하나님을 존경하는 정통 신앙을 가진 자 같으나 실지는 자기 의를 세우려는 자이므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죄를 사함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였다.

  금일에도 종교인들이 자기가 가장 옳다는 생각에서 믿음을 떠난 양심을 가지고 사랑을 떠난 마음에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자는 성신을 노엽게 하는 멸망의 자식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서기관보다도 그 병자를 고쳐보려고 믿음으로 온 그들에게 하나같이 병을 고쳐 보냈던 것이다.

  언제나 교만한 종교인을 볼 때에는 책망을 했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오면서 구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도 물리치지 않고 다 죄를 사하여 주며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이적을 행했던 것이다.

 

  3대지 :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심 (10~12)

  죄를 사한다는 것은 아무런 사람이나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만민의 죄를 걸머지고 세상에 나신 예수님밖에는 내가 네 죄를 사하노라고 할 자는 전혀 없다. 아무리 예수님이 내가 네 죄를 사하노라 하였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로되 중풍병자가 즉시 일어나서 곧 상을 가지고 돌아간 일을 볼 때 모든 사람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는 말이 우리가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기독교에서 죄를 사함 받은 증거가 없다면 생명의 종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로되 지금도 확실한 증거가 있으므로써 예수님의 속죄 도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싸워 온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하는데는 친히 말씀으로서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것만이 아니고 과연 여러 가지 이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도록 하는데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행한 이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일에 큰 증거가 되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이라도 예수님은 속죄권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도록끔 이적으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증거

- 막 3:1~6,  요절:4 -

 

 서 론

  하나님께서 언제나 법을 주신 것은 복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절대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을 정해주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면서 복을 받으라는 것이다. 사람이 수고하여야 먹게 된 것은 죄 값이니 당신의 자녀들이 타락을 했지만 이레에 하루라도 헛된 수고를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면서 복을 받으라는 것이 안식일의 뜻이다.

  그런데 외식하는 유대인들은 이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날로 아는 것보다도 그날 하루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 편히 쉰다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전력을 둔다는 것보다도 이것을 가지고 자기네 의를 내 세우는데 정신을 두고 예수님을 책잡고자 할 때에 이적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1대지 : 하나님의 날을 마음으로 더럽히는 죄 (1~2)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송사하려고 엿본다는 것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죄라고 본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신데 혹 형제의 부족이 있다 하여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나 예배를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 참된 하나님의 종을 해코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예배를 드려도 제단을 더럽히는 사단의 자식이므로 하나님은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자 보다도 더 가증히 보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금일에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들이 동역자의 흠을 잡아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자가 강단에 선다면 이것은 미운 물건이 강단에 섰으므로 주님이 노여워 할 일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용납할 수가 없을 것이다.

 

  2대지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을 기뻐하시는 예수님 (3~4)

  주님께서 원하는 것은 안식일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일하는 날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만일 안식일로 말미암아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안식일 날 큰 죄를 범하는 일이라고 본다.

  예수님께서 손이 마른 사람의 손을 회복시키는 일은 안식일에 할 일이라고 본다. 지금 양떼들이 마음이 마를 대로 말랐는데 그 심령을 소성케하는 일이 없다면 이것은 오히려 목자에게 큰 죄가 될 것이다. 죄 중에 큰 죄는 심령이 마른 양떼를 안식일 날 소성을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목회자의 큰 죄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날을 주신 것은 메마른 심령들을 소성시키기 위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영혼들을 중생시키기 위하여 부활하신 날이니 우리 중생받은 영적 이스라엘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왜냐 하면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기까지는 중생의 역사가 없고 생령의 계통인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켰지만 우리 중생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축복 받는 성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3대지 : 주의 노하실 일과 긍휼 (5~6)

  주님이 가장 노하실 일은 사랑 떠난 거짓 선지가 하는 일이요, 가장 불쌍히 볼 일은 자유를 잃어버린 자라고 볼 수 있다. 소위 바리새교인들은 헤롯당과 합세하여 안식일 날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켰다는 것으로 어떻게 하여야 예수를 죽일꼬 하는 의논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거짓 선지의 행동이다. 거짓선지라는 것은 자기의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자라고 보게 된다.

  주님께서 손이 말라 일생 동안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을 볼 때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미움을 받으시면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손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마음에는 원이로되 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 주는 주님이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세우려는 마음을 버리고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적할 때에 안식일에 큰 축복이 올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명을 맡긴 날이라고 본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내신 것은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사명을 맡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이레 되는 날 사람을 축복한 것은 사명을 맡긴 날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만물을 바로 다스릴 수 있는 사명을 빼앗기고 오히려 사람이 땀을 흘려야 먹게 된 것은 축복이 떠난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걸머지고 안식일 날에 무덤에 있다가 이레중 첫날에 부활한 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생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동시에 사명을 맡긴 날이다(눅24:44~49).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이 몸이 쉬는 날로 지키는 것보다도 사명을 위하여 전적으로 일하는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원치 않는다면 역사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강하게 내리는 것은 살리기 위하여 일하라는 증거이다.

 

 

 구원의 증거

- 막 4:35~41,  요절:39 -

 

 서 론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적을 행하신 것은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공과는 무서운 풍랑에서 제자들의 몸을 구원해 준 것은 앞으로 오는 무서운 환란에서 당신의 자녀를 구원해 줄 증거라고 본다.

 

  1대지 : 날이 저물 때 일어난 풍랑 (35~37)

  아침에 솟아오른 태양은 빛을 가리우고 도저히 사방을 바라볼 때에 내다 볼 수 없는 캄캄한 흑암이 덮인 가운데서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서 도저히 배를 타고 가던 그 배는 어찌할 수 없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인간이 볼 때는 불행스러운 일인 동시에 도저히 살길이 막막한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는 초인간적인 역사가 없다면 꼼짝 못하고 다 전멸당하게 된 자리에서 주님은 이 풍랑을 모르는 듯이 주무시고 있었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어두운 흑암이 덮인 세상이 올 것이고 홀연히 풍랑이 일어나듯이 무서운 환란이 올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사17:12~14, 사8:7~8, 단11:40~43 합3:15~16). 그러나 이 환란은 주님께서 세상에 나타날 때라는 것을 가르쳤다. 풍랑이 일어날 때까지는 주님께서 잠잠히 계시나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에 주님은 일어나시는 것이다(사8:8, 17:13, 33:3, 10, 42:14).

 

  2대지 :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 한다 (38)

  (참고성구 사 24:14, 26:16~17, 30:19, 욜 2:17, 미 4:10)

  하나님께서는 인생보다 먼저 그 사정을 아시지만 환란과 고통이 올 때에 부르짖는 자라야 구원한다는 것이 심판의 다림줄의 법이다. 왜냐 하면 주님께서는 어려운 일을 당치 않게 하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올 때에 부르짖는 자를 구원해 주므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더 감사하게 하며 하나님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는 배도 풍랑을 만나서 물에 가라앉게 된 것은 주님께서 영광을 나타낼 때가 온 증거이다. 그러므로 말세를 당한 우리는 앞으로 아무런 풍랑이 일어나도 사명을 가진 종들이 부르짖을 적에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나타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사24:16).

 

  3대지 :풍랑을 잔잔케 하심 (39~41)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야 잠잠하라 고요하라 할 때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다. 그 때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인생이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주님은 버리는 것이 아니요, 믿음이 없다고 해서 택한 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두려워하고 겁을 내며 부르짖는 자를 붙들어 주며 도와주는 것이다(사41:10~13). 주님께서 원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보다도 두려워하면서라도 부르짖는 자를 향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사35:3~4).

  인생이라는 것은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두려워 말라, 겁내지 말라, 나를 바라 보라, 의지하라, 끝까지 기다리라, 부르짖으며 나를 찾으라 하는 말씀을 많이 하신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자와 재앙이 와도 나는 문제가 없다는 자와 또는 아무런 피해가 오더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도 자기 방법으로 해 보려는 사람을 오히려 기뻐하지 않고 버리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란에서 구원받는 것은 제자들이 무서워서 주님을 깨우면서 돌아봐 달라는 호소가 있을 때에 풍랑을 잔잔케 하듯이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는 주님이 나타나심으로 하루아침에 다 해결되는 것이다.

 

 결 론

  천하에 제일 복된 일은 주님이 함께 하는 일이라고 본다. 모든 일이 다 잘된 것 같으나 주님이 함께 하지 않을 때에 실패요, 모든 일이 다 절망 상태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주님이 같이 할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기사 이적을 과거로 보지 말고 그 주님은 앞으로 이렇게 역사한다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하자

- 막 7:1~14 -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가 될 적에 충성이라 하고 그 말씀을 이용할 적에 외식이 되는 것이다. 외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떠나시면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할 일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1. 육적으로 치우치는 일이 있을까 몸조심 할 일이다 (1~4)

  주의 종이라는 사람은 영의 사람이요 육의 사람이 아니니 육적으로 지나친 규칙을 따를 때에 영적 방면에 활동은 자동적으로 메말라지는 것이다.

  주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육적 방면에 거룩한 모양을 내어 보려고 치우칠 때에 여러 가지 유전을 지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육적 식물이나 몸을 깨끗이 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로되 그 방면으로 치우쳐지는 사람이 된다면 자동적으로 외식을 따르는 일이 있게 된다.

  금일에 소위 문화인이라는 간판 밑에서 위생적으로 그 몸을 숭배하려는 것을 힘쓰고 그 몸을 아껴 가꾸는 일이라는 것은 은혜자로서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위생적 방면에 손해가 된다고 해서 전부 삼가다 보면 그 몸을 주님의 일 보다도 더 위하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다.

  밤을 새워 기도할 일이 있는데 수면을 시간대로 지키지 않으면 손해라고 하면서 기도를 안 한다든지 아무리 누추한 자리라도 가서 몸소 봉사하여야 될 일이 있는데 위생상 그런 곳에 가면 몸에 위험성이 있다고 가지 않는다면 희생, 봉사도 못할 것이고 밤낮 쉬지 않고 가르쳐야 될 일이 있는데도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위생상 좋지 못하다고 그만 둔다면 급한 경고를 해야 될 말세종으로 나가서 외칠 수 없을 것은 사실이다.

  또는 험한 음식을 먹으면 위생상 몸에 손해가 된다고 하여 그런 음식을 나무란다면 앞으로 재앙의 날에 남은 종으로 외칠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전에 철야기도를 하면 수면에 방해되므로 도저히 안된다는 조건으로 철야를 반대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빈민굴을 찾아가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하다가 새로운 은혜를 받게되어 10개월간 매일 30분 이상은 자지 않고 기도하다가 머리가 명랑해지며 요한계시록을 깨닫게 된 일, 또는 설교를 한시간 이상 말하면 피곤을 감당 못한 사람이 매일 8, 9시간이 지나도록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는 일, 영양이 있는 계란이나 우육이나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는 몸의 영양을 보존할 수 없게 되어 빚을 내어서라도 먹고야 7, 8시간 설교하던 사람이 계란이나 우육이나 생선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사용을 하지 않고도 작은 한 공기 밥에 채소만 사용하고도 몸에 영양이 충분함을 받게되어 오히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일을 본다면 말세의 종은 몸도 과학적 위생을 초월한 세계에서 움직여야 된다고 보게 된다.

  이러한 생활에서 역사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는 나로서 몸만을 위하는 그 일을 반대하지는 않아도 그러한 생활에서 좀더 벗어나는 종이 되기를 바란다.

 

  2. 말씀에 없는 것을 숭배하는 일이 있을까봐 조심할 일이다 (5~9)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은 사람이 가르친 교훈을 숭배하며 예배하는 일을 미워한다. 예배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서 합당치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숭배하면 하나님께서 우상과 같이 생각하므로 그 예배를 오히려 미워하신다.

  금일에 교회가 예배시에 응답의 역사가 나리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서 가감된 사람의 교훈이 섞인 증거라고 보게된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기록했다.

  예배 시간에 강단에 선 종은 순수한 본문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생활이 있으면서 성경에 가감이 없는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은 그 강단에 축복하는 것이요, 일반 양떼들은 그것을 따라 움직일 때에 다같이 은혜를 충만히 받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종은 말씀에 없는 것을 주장한다거나 따라가는 일을 엄금하는 사람이 될 때에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일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 없는 교훈을 너무 숭배하는 일이 있게 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지금 이때에는 성경 본문만 가지고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씀에 눈먼 소경이라고 보게 된다.

 

  3. 사적 생활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10~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사적 생활을 다 버리고서 나를 공경하라는 신은 아니다. 작은 소자에게 사적으로 행한 일을 주님께 행한 일같이 주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마25:40에 말씀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들은 사적으로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합당하다고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을 행치 않는 것을 주님은 책망하셨던 것이다.

  금일에 소위 열심이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적으로 사는 생활에 본이 못되고 자기만 잘 믿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성경 중심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사적 생활에서 말씀을 따라 생활하고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일을 할 수 있도록끔 역사하는 신이시다. 다윗은 사적 생활에서 충성을 다할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던 것이다.

  그밖에 모든 선지들도 사적 생활에 본이 되는 사람으로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앞으로 말세의 종도 사적 생활에서 말씀을 준행하던 자들이 말씀대로 나가서 역사할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교훈 하신 말씀은 빠짐없이 가르친 교훈이니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될 적에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모든 역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될 것이로되 성경을 폐하는 일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나서 보았던들 외식하는 바리새인보다 나을 수 없다.

 

 

 

열매가 나타나는 비결

- 막 7:24~30 -

 

  인생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생활에서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로만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나타나는데 있어서는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주 앞에 엎드려 간구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5~26)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는 간곡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자라면 주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 은혜의 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족이 많다 하여도 주님밖에는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실 이가 없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는 심정을 가질 때에 그 마음을 주님께서는 인정하시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주님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많은 자는 열매가 많고, 엎드리는 시간이 없는 자는 열매가 없게 된다.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데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은 받은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말세 복음 운동을 시작하여 어떤 형제의 사기적인 행동을 모르고 그를 귀한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받들어 주다가 많은 물질의 손해를 보게 되었을 때에 약 2개월 동안을 무릎을 펴지 않고, 머리를 들지 않고, 밤낮 주 앞에 엎드려 있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동역자들은 오히려 조롱을 하고 있었지만, 2개월이 지난 후에 뜻밖에 역사가 일어나서 교회가 부흥되고 3, 4년간 부흥 운동을 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주 앞에 엎드리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인간이 보기에 실패 같으나 모든 일은 더 크게 열매가 나타난 것이 나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열매가 나타나는 응답을 보려면 겸손히 주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일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는 예수 앞에 엎드리는 자가 가장 약한 것 같으나 승리의 열매는 그 사람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2. 자기 부족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27~28상반절)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큰 열매를 나타나게 하실 때에는 자기 부족을 깨닫지 못한다면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하게도 하신다. 주님께서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즉시로 응답을 하시는 것이 아니요, 자기 부족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준 다음에 응답을 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신 것은 간구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보다 이 죄인들은 개와 같이 취급을 해 온 환경에 있은 것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에게도 꼭 같이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개라고 말씀하셨지만 간구 하는 여자는 조금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 하는 말을 할 때에 열매가 나타나는 단계로 들어가는 인격이 된 것이다. 아무리 개같이 취급을 받는다 하여도 거기서 자기 부족을 깨닫고 낙심치 않는다는 것이 큰 열매를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3. 지극히 적은 은혜를 갈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8하반절~30)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과 같이 내가 아무리 더러운 죄인이지만 적은 은혜라도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주님께서 열매를 맺도록 응답을 나리시는 것이다. “개도 주인의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간구하는 여자의 말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 말을 했으므로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실 때에 큰 열매가 나타나서 간구하는 자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역사가 된다.

 

 결 론

  가장 큰 열매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마귀에게 사로 잡혀 버림을 당했던 사람 하나가 주님 말씀 한마디에 완전해진 것은 마귀를 이기고 싸워 나가야 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일이다. 사람은 엎드려 간구하는 일과 자기 부족을 깨닫는 일과 적은 은혜를 간구하는 일이 있을 때에 마귀는 물러가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 막 10:28~30, 42~45 -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섬김을 받는 일이 아니고 섬기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일을 따라서 갚아 주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기 때문이다. 완전한 것이라는 것은 섬기는 일을 하는데서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을 받아야만 있는 것이니, 섬기는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28~30)

  사람이 물질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은 모든 일이 결국은 실패가 되고 만다. 그러나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은 처음에는 아무런 열매 없는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백 배나 받도록 축복하는 일이 있으므로 그 사람의 인격은 종 된 인격을 완전히 받는 동시에 모든 세상의 일은 그 인격을 따라 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처자나 자식이나 전토를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은 인격적인 아무런 유익이 없어도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은 세상의 모든 일을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축복 속에서 더 풍성한 생활을 하게 된다.  가장 위대한 일은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생활이다.  

  어떤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 청년은 이 말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다. 이것은 재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재물을 가지고라도 섬기는 일을 못하면 돈의 종이 된 생활이요, 아무리 가난해도 복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한다면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이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2. 형제를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42~44)

  어떤 사람이 한 평생을 형제에게 도움만 받고 살았다면 그 사람은 불행스러운 인격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하나님 앞에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를 도울 수 있는 인격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로되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완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형제를 도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더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어떤 종이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마다 듣는 자에게 돕는 힘을 하나님께로 받아서 전한다면 능력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강단에 선 종이 쓰러져 가는 자들을 소성시키는 역사가 있다면 그 인격은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서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될 때에 그 인격은 하나님의 도구가 된 인격이라고 본다.  

  가장 위대한 인격은 물질로 형제를 돕는 것보다도 한 번 말할 때에 하늘로부터 역사가 나리는 인격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물질로 형제를 돕는다 하여도 위에서부터 오는 역사가 없다면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죄인을 위하여 섬기는 일과 인격 문제 (45)

  죄인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은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고 본다.  자고이래로 임금을 섬기는 충신도 있고, 부모를 섬기는 효자도 있고, 남편을 섬기는 열녀도 있지만 죄인을 섬길 수 있는 인도자는 예수님 뿐이다. 죄인을 섬기는 대속물이 된 몸은 그리스도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먼저 죄인을 섬기는 일이 있게 되므로 세상에 이루어진 것이니, 기독교 안에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근본적인 사상 문제가 기독교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는 일이다. 주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섬기는 일로 시작된 것이니, 서로 섬기는 사람끼리 합해질 적에 하늘에서 얼마든지 역사가 내리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모일 때에 역사가 나리지 않는 것은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원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마24:45~47).

 

 결 론

  섬기려 오신 예수님께서는 섬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섬길 수 있는 것으로 공급하시고, 끝까지 섬기는 자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기는 일을 하므로만 세계를 다스릴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